High as a kite_(여행기)

[20240811] 7년 후, 교토_2

Masked 2024. 8. 11. 14:21

 
내가 여행기에 쓰는 것은 대체로 사실이다. 과장이나 거짓말은 없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판단을 잘못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7년 후, 교토>의 이어진 여행기인 이 글을 쓰면서는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 작사/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Ave generosa를 들었다. 더 높은 존재를 위한 찬양가를 듣고 있노라면 그 존재들을 위한 사랑과 사람들이 갈구한 구원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 존재가 진실이든 아니든, 그 사랑이 진실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
 
예전에 친구와 광화문 어딘가의 유명한 카페에서 얘기를 했었던 걸 떠올린 것 부터 시작하자. 친구는 큰 키와 만 명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유머감각을 지닌 이공계 여성으로. 너에겐 도저히 이성으로서 매력을 못 느끼겠는걸 하고 나에게 티를 너무 내서 몇 년이나 가느다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다.(그렇다, 이 사람은 분명히 나보다 웃기다. 유머감각에서 패배했다는 그 열등감에 나는 이 친구에게 주기적으로 집착한다.)
무슨 질문을 하다가 그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하면 개를 키울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보호소 같은 곳에서 봉사 좀 하다가 마음이 가는 개가 생기면 집에 데리고 가는거 아냐? 라고 대답했는데. 그 친구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개는...그냥 어느날 엄마가 데려오는거야. 
데려온다고?
어, 그냥 엄마가 어느날 데려와서 이 개가 니 동생이야. 라고 말하는거야. 그리고 평생 사랑해주는거지.
내가 선택하면 안돼?
안돼.
안된다고?
안된다니까.
 
거기에 나는 이해하지 못한 진실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몇 년 동안 친구가 한 말을 곱씹었다.
 
<오하라大原>
 
교토역에서도 한시간 사십오분 쯤 걸리는 (버스의 운행 간격이 30분이고,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 15분이다. 중간에 산조-시조를 거치기 때문에 말도 안되게 막히는 구간이 있다) 북쪽의 시골 마을이다. 역사적으로는 유래가 깊은 곳인데 교토 어디든 역사적 유래가 없는 곳이 없을테니 딱히 설명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겠다. 굳이 설명하자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인 헤이케모노가타리의 배경 중 하나가 되는 곳이다. 너무 성의가 없는 설명으로 들리겠지만 교토는 애초에 그렇다. 지나가다가 본 이자카야가 사실은 신선조가 칼부림을 했던 곳이고 술집이 잔뜩 있는 번화가를 걷다가 보면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장소가 나온다.
 
내가 오하라를 좋아하는 이유의 30%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기 때문이다. 카페도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잔뜩 있는 것을 보면 일년 중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시기가 있을텐데 지금까지 5번 정도 찾아왔지만 항상 그런 시기가 아니었다. 나중에 료칸의 주인분께 언제쯤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나요 라고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보았더니 요즘에는 한국분들이 많이 찾아와주세요 하고 웃으며 대답하신다. 비밀이지만 난 오하라 사람들한테 똑같은 질문을 한다.
 
사람이 없다. 시끄러운 소리도 나지 않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내가 항상 이 동네에서 제일 시끄럽고 분주한 사람이 된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멀리 학교가 보이고 좁은 길 사이로 갈대와 계절에 맞지 않게 피안화가 보인다. 시골이다.
오하라에 오는 사람들이 보통 목표로 하는 곳은 산젠인과 잣코인이다. 물론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고도 가는 길이 불편하다. 온천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오하라 산소우 라는 곳인 것 같은데 한 번도 가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지도를 보면 길고 긴 언덕 길을 - 제대로 포장이 안되어 있다.- 한참 올라가는 곳이여서 픽업 서비스를 운영한다고 한다. 길 주변은 평범한 시골 마을이라서 동행은 일본의 공포게임 배경 같다고 감격한다. 그런거에 감격할 때가 아닌데 하고 생각보다 언덕길이 길어지니 초조한 기분이 들어서 캐리어를 질질 끌고 가다보면 료칸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한다. 
 
너무 일본 특유의 사찰 거리 기념품 가게 같은 곳들을 지나서 도착한 작은 료칸이 내가 오하라에 오는 이유의 40%이다. 사람이 많아서 예약을 못 할 정도가 되는 것은 또 바라지 않아서 블로그든 어디든 이 료칸의 이야기를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유명해진지 오래라서 사람이 없는 계절인데도 한국인 숙박객들로 가득차 있었다.
너무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곳이 있지 않은가. 이 료칸은 나에게 그런 곳이다. 7년만에 오는 겁니다. 오하라에 7년만에 오세요? 그것도 그렇지만 이 료칸에 7년만에 와요. 지난번엔 가을에 와서 송이버섯이 있었죠 점심을 먹으러 혼자 왔었어요. 아 그렇군요.
저녁을 먹을 땐 나이가 드신 점원 분이 와서 시중을 드시다가 슬쩍 얘기 한다. 저는 7년 전에도 여기 있었습니다. 나는 짐짓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 웃다가 엊그제 뵌 것 처럼 하나도 변한게 없으신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에요. 라고 말한다.
 
나는 여기를 좋아해. 하고 스무 번 쯤 반복해서 말한다. 그래서 같이 오고 싶었어. 하고 열 번 쯤 이어서 말한다.
 
오하라에서 구경할 만한 가장 훌륭한 것은 스팀에서 칠천오백원에 파는 공포게임의 배경이랑 마을이 똑같이 생겼다는 것이지만. 그 외에 가장 유명한 것은 사원. 산젠인三千院, 짓코인実光院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호센인宝泉院이다.
 
산젠인은 훌륭한 본당과 넓은 정원이 유명한데. 특히 이끼가 잔뜩 낀 작은 동자등 석상이나 줄지어 서있는 아기 지장보살이 은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짓코인도 지지 않는다. 헤이케이모노가타리의 배경이라는 점이 소수의-정말 소수의- 매니아들을 두근거리게 만드는데다가 2천년대 초반 범인 불명의 방화로 인해서 천년 이상 내려오던 소나무는 물론 본존인 지장보살 상 마저 파괴되었다는 스토리 텔링이 있는 절이다.
 
그러나 호센인은 그런거 없다. 절의 규모도 다른 절의 반토막인데다가 이 절의 가장 유명한 스토리텔링은 무사들이 피묻은 칼 싸움을 하다가 묻은 핏자국이 묻은 나무판자를 (맙소사 중세 일본피플 맙소사) 절의 천장에 그대로 썼다 뭐 이 정도인데. 절의 사람에게 물어보면 바로 저쪽이에요 하고 알려준다. 무섭지도 웃기지도 않은 스토리 텔링이라고 보면 된다.
 
아름다운 것은. 이 절의 정원을 툇마루에 앉아서 감상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떡과 말차를 주는데 천년 전통을 지켜가는 맛인지 그닥 맛은 없다. 하지만 정원의 모든 시야를 사로잡는 나무는 굉장하다. 아무 일정도 없이 아침 일찍이나 절이 문을 닫을때 쯤 - 일본의 절들은 보통 5시면 문을 닫는다 - 가면 사람도 별로 없이 툇마루에 원하는 만큼 앉아 있을 수 있는데 이것도 천년 전통인가 싶을 정도로 춥고 외로운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호센인을 오하라에서 제일 좋아한다.
 
내가 오십년이 지나서 다시 온다고 하여도, 이 마음만 그대로 가져간다면 오하라는 그대로겠지 하는 기대를 한다.
 
 
<가츠라리큐桂離宮>
 
교토에서 가장 예약하기 힘든 명승지라고 한다면 사이호지西芳寺이다. 얼마 전까지 무려 엽서로 신청서를 내고 일본 내 주소로 그 회신이 오면 그걸로 예약을 확정해주던 말도 안되는 곳인데. 홈페이지가 생기더니 이제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아준다고 한다. 여전히 겨울에는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진짜인가, 여름에 교토를 오라는 건가. 너희 외국인들도 한 번 혼나보라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키부네 신사도 가본 나도 사이호지는 가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2등은 어디인가. 그건 모르겠지만 일본 궁내청에서 관리하는 가츠라리큐와 슈가쿠인리큐도 사전 예약이 꼭 필요한 쉽지 않은 장소이다. 원래 교토의 유명 관광지 중 궁내청이 관리 하던 곳에는 교토고쇼, 교토센토고쇼도 있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그 정도 까진 관리 안해도 되지 않을까요 하는 의견이 있었는지. 이제는 리큐 두 곳 정도만 예약하기 쉽지 않은 장소가 되었다. 홈페이지에서 신청 후 궁내청으로부터 승인 메일을 받아. 그 승인 번호를 입장 시에 가져가야한다. 물론 돈도 내야한다.
 
그래서 그럴 가치가 있나요. 라고 누가 물어보면 항상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냥 예약하기 힘들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닐까요 하고 대답하지만. 이거야 말로 거짓말이다. 가츠라리큐는 모든 일본 정원 문화의 정수이며 아직까지도 해외 정상들이 방문할 때 견문하도록 짜여져 있는 곳이라서 아직도 궁내청에서는 온 힘을 다 해 이 곳을 관리하고 있다. 교토에 갈거면 가츠라리큐를 가야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키요미즈데라 봣서여 이나리 진쟈 봣서여 이러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속으로 이 바보놈들 그런데 가서 뭐하게 하고 투덜거리고 있다. (우연이지만 24년 2월 키요미즈 데라와 이나리진쟈 양 쪽을 다 다녀왔다. 간만에 가니까 웅장하고 좋더라.)
 
나는 여기 벌써 세번째야 하고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한다.
 
정원이란 결국 우주의 작은 축소품이다. 보통 정원의 3요소는 빛과 흙 그리고 물이라고 여겨지는데. 가레산스이의 뛰어난 점은 모래, 바위 그리고 이끼를 통해서 - 기존과 재료를 달리해서- 우주를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재료가 달라지니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표현이 필요하였고. 자연스럽게 이는 우주에 대한 추상화로 이어졌다. 
사찰의 정원이 그 표현 목적을 지상의 땅에 대한 지배가 아니라 이상적인 현실 즉 정토를 표현하고자 한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 할 것이다. 다만 이런 목표와 재료의 변화가 절묘하게 조화되어 정원을 자연의 축소판에서 자연의 추상화로 어떻게 연결 시켰는지는 나로서는 의문이다.
애초에 료안지와 같은 거대한 연못과 그 주변을 산책하는 식으로 구성된 정원은 소위 지천회유池泉回遊라고 부르며. 이는 이전까지의 왕궁귀족들의 정원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료안지의 충격적인 가레산스이는 거대한 정원의 아주 작은 부분 일종의 상자 정원으로 구성된 것이다. 나의 일본 사찰과 정원 양식에 대한 집착도 일본인들의 추상화된 세계를 통해 극락정토라는 개념을 이해해보려는 시도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가츠라리큐는, 그 모든 정수를 모아서 만들어진 정원이다. 넓은 부지와 막대한 비용. 세계에 대한 추상화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기에 작은 원막은 배를 상징하고.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어부들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는 제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놓은 작은 장난 같은 추상화이다. 가츠라 리큐는 황궁이 지배하고 있는 영토에 대한 이상화와 더불어서 가장 느슨한 형태로 재현을 시도한다.
영토만을 축소화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정원은 4계절에 대한 재현 또한 시도한다. 모든 계절이 이 정원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되도록 다양한 나무를 심고 또 관리하려 한다. 나는 아직 달이 뜨는 밤이나 꽃이 피는 계절에 이 곳에 와본 적이 없다. 아름다운가요? 라고 물으니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라는 대답을 듣는다.
 
정원을 1시간 남짓 구경하고 나오면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역까지는 그럭저럭 걸을만하지만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역까지 가면 맥도날드 정도가 있을 것 같다. 나는 새삼 눈치를 본다. 여길 보여주고 싶었다는 걸 이해해주길 바란다. 나는 여기 이미 세번째야 하고 안해도 될 말을 한다.
 
 
<산조-시조>
 
나는 교토의 밤 길을 걸어간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닥 바뀌지 않은 거리는 그대로이다. 소품가게와 오래도록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가방 가게. 지나갈 때 마다 내 시선을 끄는 경양식 집과 극장도 그대로 있다. 저 건물을 지나 꺾어서 계단을 올라가면 내가 자주 가던 카페이다. 저 쪽으로 좀 더 가면 아침에 커피와 팬케익을 주는 가게이다. 수십번을 각각 다른 마음을 가지고 이 거리를 지나쳤다.
 
예전 어느날 밤의 일이다. 나는 완전히 쓸쓸해져서 사거리를 건넜다. 교토에 왔을 때는 보통 혼자였지만 그건 다른 곳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 대단한 것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1시간 정도 아니 30분이라도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머릿 속에 나 자신의 이야기가 가득차서 독처럼 나를 점점 무너트리고 있었다. 내가 나의 머릿 속에서 나갈 수 있도록 당신을 읽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말했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그냥 당신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허락을 받을만큼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았다.
 
다시 교토의 산조 거리에서.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달래려고 하지만 당신의 말은 어느 것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당신이 내 옆에 있기만 한다면 나는 금세 화가 풀린다. 당신이 내 옆에 있어 줄거라고 생각한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는 마귀 같은 얼굴을 하고 내 안의 당신을 본다. 당신은 내가 처음 봤을 때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다. 당신에 대해서 나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당신의 감정도 마음도 나에게는 느껴지지 않는 의문투성이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정말로 당신을 마음 속 깊이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부정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다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모든 분노와 증오가 사실은 스스로에 대한 분노이고 애초에 그 감정은 모두 당신에게서 느끼던 애정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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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을 쓰며 들은 것은 Víkingur Ólafsson – Bach: Organ Sonata No. 4, BWV 528: II. Andante [Adagio] 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사랑했으며. 앞으로 그걸 계속해서 후회하며 살아가야한다. 그래서 계속 걸어보려고 노력하지만, 밤이 좀처럼 끝나질 않는다. 
그리고 여기까지 쓴 시점에서 24년 2월의 교토에 대해서 아직 다 쓰지 않은 걸 깨닫는다. 나는 한 편의 글을 더 써야만 이 이야기를 완성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미친 사람의 말이고. 24년 8월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