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as a kite_(여행기)

[20240813] 7년 후, 어디도 아닌.

Masked 2024. 8. 13. 15:23

the Animals - the house of the rising sun 을 듣는다.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교토국립 박물관>
 
교토역에서 가모 강을 건너 산쥬산겐도를 근처에 있는 이 조용한 박물관은 항상 교토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서점을 좋아하는 이 습벽은 어디 가질 않아서 혼자 여행을 하면 사양하지 않고 한참 시간을 보낸다. 18년도 도쿄에서 여행을 했을 땐 여행 전체를 도쿄의 미술관과 도쿄국립박물관을 돌아다니는데 썼다. 몰라서 못 간 적은 있어도 사양 한 적은 없다니, 도박꾼이 하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런 대단한 것은 아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좋아한다.
 
교토의 미술관들은 기대보단 그리 대단하지 않은데. 일본 미술의 성지 같은 곳이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에 교토에 처음 왔을 때는 미술관들을 주로 찾아다녔는다. 그러다 깨달은게 있다면 뮤지엄이란 뭔가를 모아둔 곳인데 말 그대로 천년의 교도인 교토의 미술과 유물들을 모아두게된다면 아무리 큰 장소로도 부족하다. 굳이 따진다면 교토라는 장소 자체가 거대한 뮤지엄이구나 거기 지하철도 있고 빵집도 있고...너무 무서운데...
그래서 여행 중에 굳이 찾는다면 보통 동선이 이어지는 교세라 미술관이나 교토국립박물관을 찾는다. 물론 마음에 드는 전시가 있는지 찾아보는 건 매번 하고 있다. 이번 여행중에는 무라카미 다카시와 로산진 기획전 정도가 흥미로웠는데 소중한 시간을 할아버지가 주물주물한 무언가를 보면서 보낸다고? 아니 아니 그럴 순 없지.
 
뮤지엄에서 좋아하는 활동 중 하나는 기념품 샵에 들르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추억 삼아서 마그네틱을 수집하고 있는데(우연히도 지금 방금 다시는 안하리라 마음 먹었다) 공항에서 살 수 있는 마그네틱보다 그나마 볼 만한 건 언제나 뮤지엄 기념품샵의 물건들이다. 아무리 전시가 훌륭해도 기념품 샵의 구성이 별로라면 나는 일단 실망하고 보는데. 좋아하는 것은 대표 전시물을 마그네틱으로 만든 것. 그게 아니라면 엽서 뭐 이렇다. 만약에 인형이 있다? 인형이 있다 그럼 최고다. 나는 인형을 모으지 않지만 일단 사고 주변의 아무나에게 준다. 그 대상은 대체로 조카나 친구들인데 예전에 펠메르의 그림을 이미지로 만든 미피 인형은 아직도 조카의 장식장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선물을 한 사람으로서 다시 바랄 수 없는 영광이다.
 
블로그에서 몇 번 박물관에서 봤던 불상의 이야기를 썼던 적이 있다. 그 중에서 '숨'이라는 소제목으로 부동명왕 상과 대일여래상을 봤었던 일을 쓴 적이 있다. 그 정도의 이야기를 쓸만큼 인상적인 전시물은 없었기 때문에 전시물에 대해서는 쓰지 않기로 한다.(그 전시는 최근 몇 년 간 교토국박의 가장 성공적인 전시 중 하나로 불리우는 국보전이었다 표를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사실 반년이 지난 지금 전시물에 대해서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을 할려면 할 수 있는데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떤 것들은 기억하지 않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한 장소인 뮤지엄에 대해서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하다니. 너무 일부러 만들어낸 아이러니 같아서 스스로를 좀 비웃게 된다.
 
뮤지엄에서 좋아하는 활동 또 다른 걸 말해보자. 뮤지엄에 딸려있는 카페나 음식점에서 뭘 먹는 것이다. 이 오래된 습성은 혼자 미술관을 다니다가 생겨났는데. 우리나라의 뮤지엄들은 이전에는 카페가 없었던 엄격근엄진지한 곳이라서 그렇지 않았지만(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게 좀 기쁘다) 해외의 뮤지엄들은 작은 카페라도 하나 딸려있는 것이 대부분. 
언제인가 기억도 안나는데 우에노의 미술관을 반나절 만에 돌아야지 하고 마음 먹고 돌던 중 너무 배가 고파서 그 중 하나에 딸린 카페에서 파스타와 샌드위치를 시켜서 먹었는데 가격이 합리적인 것은 물론이고 꽤 맛이 있어서 대만족한 나머지 기회가 있다면 뮤지엄에 딸려있는 장소에서 뭔가를 먹고 있다.
항상 가격이 합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전시물들을 보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가까운 거리에서 달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사실 이번 박물관 방문에서 내가 항상 가던 가게가 없어졌다는 것에(뮤지엄 직원이 알려주었다. 그 분도 정말 쓸쓸한 표정이었다.) 격노했지만 뮤지엄 부지 안에 있는 마에다 커피를 갔더니 이게 웬걸 이 곳 한정 블렌드인 류노스케가 허세스러운 이름에도 불구하고 너무 맛있고 다른 음식들도 먹을만해서 분노가 사그러들었다. 보통은 밥을 먹고 급히 일어나서 다음 곳으로 가는데 여유가 좋아서 류노스케를 한 잔 더 마시며 혼자 한참을 앉아있었다.
 
"혼자 한참을 앉아있었다.“

<가이유칸>

여러분은 수족관을 좋아하십니까? 이제까지 힘들게 비밀로 해왔지만 저는 동물원과 수족관을 둘 다 좋아합니다.
어느날 아사히카와 동물원에서 불행해 보이는 동물들을 보고 동물원은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가진 않게 되었지만 수족관은 그래도 저항감없이 다니고 있습니다. 고등어나 정어리가 불행한 표정을 지어도 나는 모르니까…아니 농담입니다.
 
그날은 엄청나게 비가 왔다. 애들을 데리고 굳이 저기에 간단 말이지 하고 생각하며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간 사람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혀를 찼는데.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지 않은 것은 먼 미래의 기후조차 예상하는 뛰어난 지혜 덕분이 아니라 그냥 익스프레스 티켓을 여행가기 한달 전에나 예매해야지 하고 생각한(보통 두달 전에 오픈된다) 나의 멍청한 실수 때문이었다. 그 대신 간 곳이 오사카의 가이유칸이었다. 처음부터 가이유칸은 갈 생각이었지만 이왕 가는 김에 좀 더 느긋하게 보자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맞겠다.
 
가이유칸에 생긴 지 몇년 안팍의 비교적 최근에 생긴 프로그램으로 보이는 "백야드"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다. 고래상어 등 대형어류가 전시되어 있는 태평양 수조를 위에서 볼 수 있게 해주는 투어인데. 정면이나 옆모습을 그냥 볼 수 있는데 굳이? 위에서?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나와 동행은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백야드 투어가 포함된 티켓을 샀다. 애초에 나도 그렇고 동행도 그렇고 "그런 인간"인 것이다. 시간이 맞지 않았다면 모를까 시간이 맞다고 하자 고민이 없었다.
 
백야드는 정말로 백야드이다.입장을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입장을 해야하는 곳은 그냥 스탭들이 이용하는 통로로 보여서 여기서 정말로 기다려도 되는걸까 하는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기다려야 한다. 어색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여기가 맞을까요 하고 물어보면 확신이 없다는 듯이 아아 그렇겠죠 하는 식으로 대답한다. 애초에 그렇게 경험해본 사람이 많지 않은 서비스인 것이다. 
시간이 되면 스탭들이 문을 열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을 하고 물건을 떨어트리면 되찾을 수가 없으니 모두 로커에 넣어달라고 설명을 해준다. 휴대폰은 당연히 휴대 할 수가 없다. 꽤나 다들 진지해서 동행에게 귓속말로 아이돌 콘서트 티켓이랑 각성제 팔아요, 총이랑 칼도 제시하면 싸게 드려요 하고 말하려다가 그만 둔다. 나와 동행 말고도 외국인과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이 많다. 
 
백야드는 춥고.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다. 말소리가 울리는 공간에서 스탭이 마이크로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고래상어와 가오리. 그리고 여러 물고기 들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설명은 그렇게 길지 않다. 너희들은 굳이 여기 들어올만한 녀석들이니까 내 설명 같은건 하나도 필요 없을거야. 하는 태도이다. 그 말이 맞다. 사람들은 각자 적당한 위치를 잡고 물 속의 거대한 짐승들을 내려다본다.
 
고래상어는 일정한 서식지가 없다. 물고기 치고는 아주 느릿한 초속 1.3m/s 정도의 속도로 헤엄치며 사람의 걸음걸이로도 조금 급하게 걸어가면 따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속도이다. (마이크 펠프스의 수영 속도는 시속 9.7km...그러니까 초속 2.7m/s 정도이다. 장하다 펠프스 고래상어를 이겼구나.)
가이유칸의 고래상어는 오키나와에 있는 츄라우미 수족관의 고래상어보다는 작은 크기지만(작다. 왜냐하면 물어봤다.) 두마리 다 좀 더 활발하다는 느낌이다. 그들은 원래 집이 없는 생물인 것 처럼 끊임없이 헤엄을 친다. 멀리 가버렸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금세, 그리고 천천히 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고래상어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쥐 가오리, 숏테일 가오리 등 가오리들은 상어의 친척다운 우아한 태도로 헤엄을 친다. 사람들은 대체로 물고기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만 단순히 그들의 표정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표에서 살고 있는 우리 같은 육상 동물이 3차원을 인식하여 살아가는 바다생물보다 뛰어날지 의문이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 안에 물고기들이 가득 헤엄치는게 보인다. 나는 수영장에 누군가와 가면 두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첫번째는 어느날 헤엄치는 방법을 잊어버렸던 이야기이고 두번째는 수영을 하다보면 내가 보지 못하는 이 물 밑에 커다란 물고기가 있을까봐 무서워진다는 이야기이다.

백야드의 철책에 기대어 서서 나는 이거야 말로 내가 무서워 하는, 바닥을 보지 못하는 물 밑의 커다란 물고기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백야드에서의 체류시간은 짧다. 20분 정도이다. 물고기에 환장한 녀석들과 아이들의 시간이 끝나고 나와 동행은 누구보다 오랫동안 물고기를 구경한다. 나는 나가기 전 동행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대관람차>

오사카에는 유명한 대관람차가 세 개나 있다. 요즘 유명해진 도심 속의 헵파이브. 바다 가까이에 있는 린쿠노호시. 그리고 가이유칸에 과하게 가깝게 있는 텐포잔의 대관람차이다. 잊어버리고 말을 안 했지만 나는 관람차도 무서워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가이유칸에 간 날엔 비가 내렸다. 동행은 대관람차를 타고 싶어했다. 물론 동행은 내가 대관람차를 무서워한다는 걸 잘 알 고 있었다. 다만 동행이 나에게 뭔가를 하자고 말하는 일이 거의 없어서 비바람이 부는 슈퍼 악조건에서도 관람차를 타기로 하고. 쪼잔하고 집요하게 그럼 탑승료는 네가 내라고 투덜거렸다.

내가 애초에 탈 것 전반에 약한 것은 사실이다. 20대 후반 쯤 친구들과 이유없이 놀이공원에 가서. 이유없이 후룸라이드-바이킹-롤러코스터를 연속으로 타고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어어 나는 괜찮아 어서 다음 탈 것으로 가자고오오 하고 가다가 속이 메스꺼워져서는 토하기 직전이 되어 벤치에 누워버린 적이 있었다. 생리적인 영역에서 일단 멀미에 약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리적인 부분을 뛰어넘어 관람차 그리고 그와 비슷한 케이블카는 정말로 타는 것을 무서워한다. 나는 내가 왜 관람차를 무서워하는지 정확하게 알 고 있다.

동행은 엄청나게 즐거워했다. 겁쟁이 주제에 탈 것은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을뿐더러 내가 곤란해하는걸 보는게 좋은 것 같다. 심지어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는 대관림차(하느님 맙소사 일본인들아 천벌이 내릴 것이다.)가 타고 싶은지 그 쪽을 지긋이 보길래 사정을 하며 일반 관람차 쪽을 타자고 했다. 아니 제안했다. 아니 솔직히 빌었다. 부탁드렸다.

저승 아니 천포산의 대관람차는 기다리는 사람도 적었다. 애초에 비바람이 부는 날이다.  발걸음도 가볍게 관람차에 올라타니 천천히 꼭대기를 향해 올라갔고 저 멀리 도심과 바다 모두가 보였다. 나는 스스로가 충분히 위엄을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이 들자. 동행에게 내가 덜덜 떨거나 바닥에 쓰러져 훌쩍훌쩍 울수도 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어서 내 손을 잡아줬으면 좋겠다 라고 말했자. 바람이 또 엄청나게 불었고 관람차의 창에는 비가 부딪혀서 타닥거리는 소리를 냈다.

내가 대관람차를 무서워하게 된 것은 처음에 고베에 갔을 때 하버랜드의 대관람차를 탔기 때문이다. 그 때는 겨울이었는데 도대체 몇년 전인지도 바로 숫자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옛날이다. 길고 지겨운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얘기하자면 하버랜드의 대관람차 안에서 당시의 동행이자 여자친구였던 사람이 이제 그만 만나자는 얘기를 했다.

왜 거기였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떴다는거야 당연히 알았다 그러나 이 타이밍에? 그것도 관람차 안에서?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거꾸로 알았다는 말을 해야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갔던게 료안지였던 것 같다. 그래 이야기가 그렇게 이어진다. 2년…아니 3년이었던가. 하여간 그 후로 몇 년을 더 만났다. 싸우고 헤어진 것도 여러번. 다시 만난 것도 여러번. 더 이상 만날 수가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차였다. 내 생일 바로 전 주의 일이었고 그 뒤로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그렇게 관람차를 무서워하게 된 것이다. 무슨 90년대 소설에 나오는 것 같은 얘기라고 나도 생각한다. 케이블카도 관람차와 비슷해서 그런지 무서워한다.

그리고 (놀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정말로 무서워하는게 관람차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내가 정말로 무서워 한 것은 관계가 끝나는 것이다. 나는 그걸 혼자서 케이블카에 타면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천포산의 관람차에서 동행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한 것이다. 당신을 잃는 두려움에서 벗어 날 수 있도록.



일단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더 이상 뭔가를 쓰기에는 너무 지쳤다. 요즘 나는 하루에 2시간 이상 자는 날이 드물고 오즈의 나라 용감한 허수아비처럼 마르고있다. 아니 심장이 없는 허수아비인가. 그래 그게 맞겠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직도 다 못했음을 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정말로 갖고 싶어한 것은 헤어질 걱정을 하지 않고 앞으로의 일을 함께 얘기 할 수 있는 사람 - 가족 - 이라는거 라든가. 관계란 결국 서로가 가진 마음의 병을 나누어 갖는 거라는 거라든가.
무엇보다 내가 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 마지막으로 방문한지 7년 만에 다시 교토에 오게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얘기들을 해야할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동네 대장 고양이가 죽었을 때와 같다 혼자가 된 나는 그 누구에게도 고양이가 죽은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얘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여기까지다. 우리는 이야기로만 스스로를 이해 할 수 있고 이야기-개인서사를 통해서 스스로에 대한 정의마저 바꾸어 버릴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나의 이야기를 바꿔 당신이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존재 한 적이 없는 것처럼 만든다고 해도 그걸로 내가 정말 예전으로 돌아 갈 수 있을까? 나에게 스며든 당신을 그대로 그림자로 만드는게 옳은 결정이기는 할까?

나는 더 이상 뭔가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바싹 말라버렸고 어떤 소원도 빌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입을 다물고 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옳은 일이길 바란다.


24년 8월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