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5] (당신의) 원형
광고 사진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찌푸린듯 웃는 듯 저쪽을 쳐다보고 있는 사진이다. 흰 옷을 입고 바싹 말라서는 머리 끝이 부드럽게 말려있다. 이 사람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떠오른다. 떠오른 사람은 친구일 때도 있고 후배 일 때도 있다. 광고를 멍하니 오래 쳐다본다. 요즘 나는 자주 이런다.
이제는 죽은 캐나다 문학 평론가 노스럽 프라이의 얘기를 잠시 해보자. 이제는 내용도 가물가물한 책 <비평의 해부>와 <구원의 신화>에서 그는 원형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신화적 이야기의 요소는 그 이야기 안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원형으로서 전유되고 또 유비되어 다른 상징에 사용되고, 그렇게 변형된 신화의 원형은 현대의 서사에서도 발견된다...정도의 이야기이다.
신화나 문학에 익숙한 몹쓸 인간들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를 뭣하러 저렇게 설명하고 있지? 하는 생각을 하겠지만. 좀 더 설명을 해보자.
현대의 탐정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인 싸움도 잘하고 고독한 탐정은 아무런 댓가 없이 약자와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데 이런 영웅의 이미지는 캔터베리 이야기 등 중세의 낭만시 영역에서 왕과 기독교에 충성하고 약자를 위해 댓가 없이 싸우는 용감한 기사의 이미지에서 시작했으며. 이 용감한 기사의 이야기가 시작한 원형은 술자리에서의 약속을 위해서 메두사를 해치우기 위한 여행을 떠난 페르세우스이다.
이처럼 모든 이야기에는 원형이 존재한다. 우리가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원형의 변주일 뿐이다. 설명하고나니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누구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나는 자주 듣는다.
인상적인 경험이 있다. 외가 어른의 장례식장에서 그냥 정문에 서있을 뿐인데. 생전 만나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 한명 씩 ㅇㅇㅇ님 장례식장이 몇 호실인가요? ㅇㅇㅇ회장님은 와 계시나요 하고 물어보기에 신기해서 어 혹시 제가 누군지 알고 여쭤보시는 건가요? 라고 물어보니까 우아한 숙녀 한 분이 빙그레 웃으면서 그 쪽 집안이 아니라고 할 수 없게 생기셨는걸요 라고 대답해주셨다.
물론 지금 하는 이야기는 얼굴이 닮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완전히 남남인 누군가가 있는데. 나를 보고 그 누군가를, 혹은 그 누군가를 보고 나를 떠올리는 일, 말하자면 원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누가 우리를 보고 있을 때 우리의 무엇을 보는지 이해할 수 없긴 하다만.
어느날의 일이다. 온수역 1호선 플랫폼의 상행선 중간 쯤 벤치가 놓여져 있는 곳에 서있는데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좀처럼 전화를 하는 후배가 아니어서 이동하는 중이었지만 일단 전화를 받았다.
별로 대단하지 않은 신상 얘기를 주고 받더니 후배는 갑자기 어떤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동아리에서 만났어요. 응. 되게 똑똑한 척을 하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 응. 그러고는 후배는 머뭇거리더니 말한다 선배를 되게 많이 닮았어요.
내가 평범하게 생겨서 나랑 자기 아는 사람 누구 닮았다는 얘기 많이 듣는데 실제로는 안 닮았을걸?
아니 진짜 많이 닮았어요. 그리고 되게 좋은 회사 다녀요. ㅇㅇㅇㅇㅇ이에요.
오 좋은 회사다 나는 면접도 못 본 회사인데 능력있는 사람인가 보지.
선배도 좋은 회사 다니잖아요.
아니요 선배는 그냥 공장 다닙니다.
이미 약속은 늦었다. 그런데 후배가 아직 하고 싶은 말이 있구나 하는 생각과 아직 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끔 그런 이유없는 확신을 가지고 행동한다.)
근데 얘기하는 것만 들어보면 진짜 비호감에 잘난척만 엄청 하는 사람인데 너랑 친해?
네 저랑 많이 친해요. 연락도 자주 하구요.
나랑 닮았다는 것 빼고는 장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인데 말야.
괜찮은 사람이에요. 여자친구도 되게 예뻐요. 선배랑 닮은게 오히려 단점이죠.
후배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 시점에서 그래 나 약속 있어서 이제 그만 끊어야겠다 또 연락하자. 라고 말해야한다는 걸 알았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머릿 속에 떠오른 여러가지 말 중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그래서 그 사람 좋아한거니?
후배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그거 알아요 선배는 진짜 잔인해요.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 그 후배와 연락을 한 적은 없었다. 나중에 다른 후배에게 물어보니 결혼을 했다고 들었다. 어느 한가한 날의 변덕으로 SNS를 뒤져 뭘 하고 있는지를 찾아보았다. 머리가 하얗게 된 남자의 부인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귀여웠다.
...
형은 항상 내 여자친구들은 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놀린다. 그렇게 10년 쯤 놀리기에 과학적인 접근법을 써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 어 뭐였지 맞다 공부를 잘함. 그리고 성실함. 가장 중요한 웃는 얼굴이 예쁨. 이라고 메모지에 쓰고는 봐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생길 수 밖에 없어.
내가 안경을 쓴 사람을 좋아하는게 아냐 공부를 잘 하려면 안경을 쓰기 마련이고 (여기서부터 NG였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바싹 마르고 타질않아서 얼굴이 하얗게 된다고. 라고 말했더니 형은 웃는 얼굴이 예쁨 부분을 가리키고는 그냥 앞니가 큰 사람을 좋아하는거겠지. 하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아니 맞다 사실이 그렇다.
나는 요새, 아니 요 몇년 동안 내 삶이 어떤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누군가를 볼 때 마다 누군가를 떠올린다. 웃는 얼굴이 겹쳐 보이고 예전에 들었던 말투를 들으면 속으로 깜짝 놀라 놓고는 다른 곳을 쳐다봐 표정을 감춘다.
나는 이 규칙성이 너무나 기묘하게 느껴져서 어느날 정리를 해보기로 결심하고 머릿 속으로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를 선으로 이어보았다. 이 사람은 이 사람과 닮았어. 이 사람은 이 사람을 떠올리게 해. 그렇게 한참을 머릿 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머릿 속이 더 복잡해진다.
모든 관계선을 지우고는 처음부터 다시 긋는다. 이 사람과는 이런 일이 있었어 이 비슷한 일이 다른 사람과 있었지. 그리고 이 사람과 이야기하다보면 저 사람을 떠올리게 돼.
그렇게 계속해서 줄을 잇다가 어떤 생각에 다다르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계속해서 생각한다. 이 사람과는 이런 일이 있었어. 하지만 이건 내 잘못이었기 때문에 후회했어. 그래서 저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 거기까지 생각하자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사죄인지 아니면 후회를 반복하지 않는 것인지 헷깔리기 시작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전에 알았던 사람과 다른 행동을 한다고? 왜 그런 짓을 하지?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백지에서 아무 상관도 없는 두개의 점을 연결하는 것 뿐이야.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하고서야 나는 단지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그 사람들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된 지금을 후회하고 있을 뿐이란걸 깨닫는다.
언젠가 어느날 누군가를 만났다. 검은 셔츠를 입고 바싹 말라서 덩치가 작은 남자아이, 혹은 작은 새처럼 보였다. 나는 바람에 꽃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다가 이 사람이 내가 아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이미 가슴이 아려와서 오히려 쾌활하게 웃으며 조금 걸을래? 라고 말했다. 나는 걸어가며 내가 사과를 해야할 누군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더 시간이 지난 어느날. 정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으면서 나는 순수하게 변덕으로 미안해. 하고 사과한다. 너한테 그렇게 하지 말아야했어 라고 말한다. 상대가 놀랐는지 아니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냥 아무 동요 없는 문자열이 다음에 커피나 한잔 해요 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제대로 말했는지 아니면 뭔가 실수를 했는지. 이 모든 것이 그냥 이기적인 충동이라는 것을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 그러자 하고 대답할 뿐이다.
…
도스토예프스키와 카프카, 그리고 쿳시의 지옥을 생각하자.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가들의 내세는 죽음의 순간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그들의 죽음은 대심문관의 앞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진술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이 전부이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시점이야 말로 그들의 소설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언젠가 내가 대심문관의 앞에 섰을 때 대심문관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정말로 대심문관 같은 것이 있다면 그는 내 인생에 가장 친밀한 사람일 것이다. 내 인생 전체를 이해하고 판결을 내려 줄 사람 일테니 나의 모든 개인 서사를 꿰뚫을 수 있는 - 그러니까 내가 가진 모든 원형이 합쳐진 그런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볼까? 아니면 내가 이제까지 사랑해온 어떤 원형과는 상관없는 얼굴을 한 채로 나를 쳐다볼까?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무심코 기대한다. 어쩌면 대심문관은 당신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보길 바란 - 그리고 보지 못할 - 당신의 나이 든 모습을 하고 나를 내려보고 있지 않을까? 단정한 이마와 흰 얼굴을 하고는 커다란 눈으로 나를 보며 지금부터 내가 해야할 일-참회와 고백-을 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나는 혹시 그 때가 오면 눈물을 제대로 참고 대심문관에게 당신을 만난 지금이 나의 모든 인생 동안 기다려온 단 한 순간이라고 제대로 말 할 수 있을까?
24년 8월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