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증명_(에세이 등)

[20240901] Tell my wife I love her very much

Masked 2024. 9. 1. 17:29

아래의 문장들은 내가 아이패드에 남겨둔 짧은 메모들이다. 어떤 편지의 일부이며 단상이고 쓰다 만 소설의 일부이다. (내 글이야 뭐 그렇지)
아래 메모들에게는 각자 노래 이름으로 된 제목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제목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내가 정말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
어느 날 밤, 평소처럼 퇴근이 늦은 날이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의 불을 끄고, 계단을 내려와 뒷 문의 현관 앞에 섰다. 코트를 챙겨 입고 헤드폰을 꼈다. 곧바로 문을 나서지 않고 유리문 밖을 바라보며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올 때 까지 기다렸다. 문장이 동작이 되고, 생각이 호흡이 되기라도 하듯이 나는 밤을 그대로 바라보다 밖으로 나섰다.

문 밖엔 직각의 건물들과 그 사이를 가로질러 전선이 늘어져 있었고, 아무도 칠할 수 없는 색들이 거기에 있었다. 사방을 보았다. 공업도시의 오피스 건물들이 하늘과 맞닿은 선을 보았다. 새삼스럽게 직선들이 추상을 향한 기도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을 벌리면 밤이 입안에 고여들까봐 입을 벌리지도 못하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볼륨으로 음악을 들었다.

세상을 감각하는 것과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동작이다. 세계를 표현하는것과 표현된 세계를 감상하는 것이 전혀 다른 동작인 것 처럼 말이다.


(2)
나를 제외한 모든 세계에 한 명의 타인도 없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세계가 결국 불완전한 자신의 일그러질 상일 뿐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우리가 어떠한 것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고 애정 또한 고여있는 물처럼 어딘가에 쏟아져버리기만 할 뿐 이라면.

(3)
나는 항상 “달moon”이라는 단어가 너무 아름다워서 이 지구의 단어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왔다. 이러한 종류의 어떤 불안정한 애정은 어디로 가고 어떻게 남을까. 나는 새삼 두려워진다.


(4)
나는 아무래도 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 라고 생각을 한 건 밥을 먹고 해변을 산책하다가 중간 쯤 와서야.
중간이라고 하는 이유는...원래는 훨씬 더 멀리 까지 다녀와서 저 멀리 보이는게 뭔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중간 쯤 네 생각을 하게 되고 너를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서 돌아갔어. 돌아가는 중에 스피커로 트로트 들으면서 걸어가시는 분이랑 동선이 겹쳐서...몹시 후회가 되었지. 이럴 바엔 그냥 저 멀리 까지 갔다가 돌아갈걸 그랬지.

하지만 바다보다 저 멀리 보이는 흐릿한 풍경들 보다 밤새 고집부리며 뒤척거리다 잠이 든 널 보는게 중요하게 느껴져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어. 그리고 나는 이렇게 메모를 쓰고있지. 딱히 할 말이 있어서는 아니고. 지금 방으로 들어가면 나는 참지 못하고 너를 깨울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더 자게 해주고 싶거든.

어제 여러가지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아. 중간 중간에 나는 깜빡 졸았는데도 꿈에서조차 너랑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기분이 들어. 내가 기억하는 이야기 중에 어떤 것은 어쩌면 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에게 물어보려다가 그만둔다.

나는 수많은 실패를 했어.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다양한 종류의 실패-실수 들이었는데 결국 그 모든 실패-실수를 하는 동안 나는 죽도록 후회를 했고 똑같은 바보 짓은 하지 않을거라고 맹세를 했지. 그런데 어째서인지 또 이렇게 커다란 후회의 전조가 될 일을 하고 있구나.
이제까지 배웠던 것들은 다 무의미한 어디 망해버린 공화국의 짧은 역사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너와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마실거고) 같은 풍경을 보며 서로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네.

나는 또 그리고 계속해서 두려워져 그리고 널 보고 있으면 그 실수들이 다 아무래도 괜찮을 일들로 느껴져. 가끔 꺄르르 웃는 네 웃음이나 돌아오지 않는 대답들이나 놀란 눈을 하고 고장이 나서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조금 화가 나기도 해.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문제를 점점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걸까. 우리는 좀 더 제대로 뭔가를 해결해야하는게 아닐까?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누군가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얘길 해야하지 않을까?


(5)
오늘 며칠이더라? 아니 확인 안해봐도 괜찮아. 그냥 어떤 말로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말해본거야.
일단 잠시만 있자. 이제 곧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거야. 하나…둘 하고 셋. 봐봐 진짜로 나오지.

아주 오랫동안 너한테 편지를 쓰려고 했었어. 할 말이 있을 때면 편지를 쓰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나 스스로도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를 때는 편지를 쓰는게 정말로 어려워. 한 바닥이 넘는 편지를 쓰고도 결국 해야할 말을 찾지 못해서 찢어버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냐.

깔끔하게 인정하고 시작하자.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죽을 것처럼 보고 싶어. 하지만 그래서 편지를 쓰는 건 아냐. 아니 제기랄 그래서 편지를 쓰는 거기도 해. 이렇게 편지를 쓰면 네가 보고 싶은게 조금이라도 가실거니까. 나는 때때로 죽을 것처럼 보고 싶다는 말이 너무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해. 만약에 죽게 된다면 그건…정말로 끝이잖아. 다시는 볼 수 없는거잖아. 근데 죽을 것 처럼 보고 싶다는게 말이 돼? 그냥, 그 말을 처음에 한 사람은 아마도 누군가를 보지 못하게 된다면. 차라리 죽는게 나았을거라고 생각했을거야. 스스로도 모순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쓴거지. 그대가 보고 싶소 죽을 것처럼 보고 싶소. 꼭 지금의 나처럼 말이지. 나는 모순된 말을 하고 있잖아 안 그래?

언젠가 내가 지하철의 통로를 쥐 한마리가 뛰어가는 걸 봤다는 얘길 했던가? 아마 안 한 것 같다.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니까. 그건 내가 스무살, 아니 스물한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야. 그 때 우리집 앞이 종점이었던 호선이 하나 있었는데. 그 나이 때의 나는 그 호선의 전철들이 다른 곳도 아니고 내가 사는 곳에서 멈춰선다는게 참을 수 없게 좋았거든. 그래서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도 마지막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갈 때가 많았어.

전철이 천천히 느려지며 살짝 쉰 듯한 목소리의 기관사가 - 나는 기관사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 - 곧 종점에 도착한다고 말하면 한숨처럼 느려진 전철이 멈추고. 몇 되지 않는 승객들 - 대부분이 주정뱅이 - 이 느릿하게 전철에서 내려. 그러면 전철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려는 듯이 전철의 불이 한번. 그리고 두 번 꺼지고. 종점의 막차는 어떤 승객도 태우지 않고 저 멀리 터널로 사라져버리지. 보통 역장들은 - 역장들은 내 얼굴을 알았어 나는 보통 첫차를 타고 알바를 하러 가서 마지막 차를 타고 돌아왔거든 - 플랫폼에 있는 손님들을 다 데리고 나가서 어 그리고…모르겠다 어떻게 하지? 역의 불을 끄나? 사람들이 더 이상 플랫폼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철창으로 닫아버리는거야 많이 봤지만 역을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쥐를 본 날은 - 아니 정말 대단치 않은 이야기야 -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날이었어. 그냥 나는 그날도 밤이 늦도록 알바를 했고, 이제 막차를 타고 들어왔으니 집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다른 알바를 하러 갈 차례였지. 그런데 그날은 왠지 너무 많이 지쳐서 막차에서 내려서 그냥 플랫폼의 벤치에 앉아있었어. 그날따라 주정뱅이도 없어서 막차에서 내린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은 그런 날이었어. 그리고 쥐 한 마리를 봤어. 막차가 사라진 열차선 어디선가에서 나타나서는 뭘 찾는 것처럼 두리번 거렸지. 나와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어. 아니 분명히 마주친 것 같아. 찍찍하는 느낌으로 내 쪽을 쳐다보며 두 번 수염을 움찍 거렸으니까. 그리고는 적은 없어 라는 식의 표정을 짓고는 또 어딘가로 열심히 사라졌어.

나는 솔직히 이 이후에 지하철에서 쥐를 본 적이 없어. 아니 진짜로. 차라리 우리 동네의 풀 숲에서 보거나 번화가의 하수구 근처에서 본 적은 있는데. 지하철에서 쥐는 정말 없단 말야. 그래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거야 신기했거든. 어디론가 사라졌던 쥐는 금세 열차 선로 근처에서 나타났는데. 친구. 아니 친구일까? 하여간 다른 쥐 한 마리를 데리고 나타났어. 그리고는 또 내 쪽을 보고 찍찍 하는 느낌으로 코를 찡긋 거리더니. 터널 저 편으로 뛰어갔어. 마지막 전철이 사라진 전차 정거장 쪽이 아니라 마지막 전 정거장이 있는 쪽으로 말이지. 친구도 그 쥐를 따라갔어. 꼭 이 방향에서 이제 더 이상 전철이 오지 않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두 마리의 쥐는 찍찍 거리면서 신나서 뛰어가버렸어. 나는 안중에도 없었지.

나는 느릿느릿 플랫폼을 기어나와서 역장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아저씨 여기 쥐가 있어요?라고 물어보니까 역장아저씨는 웃더니 네 쥐 있겠죠? 하고 말씀하셨어. 진짜 별거 아닌 이야기지.

우리가 그 두마리의 쥐처럼 용감했다면 좋았을텐데. 설령 죽음을 부르는 수십톤짜리 괴물이 그 어떤 재앙보다 빠르게 달려온다고 해도 어두운 통로를 함께 달려나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겁이 많은 나는 그러지 못했어.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너를 잃는게 두려웠어. 그 모든 감정들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모순일 뿐이었는데 말이야.


(6)
일주일만에 머리를 감았다. 새까맣게 더러운 냄새가 날텐데 다행히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침에 배달시킨 커피에 진통제를 한 알 먹는다.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은 지 일 년 쯤 되었고 노트에 적어 놓은 채 정리하지 않은 메모들이 피딱지 나는 상처처럼 뭉그러져 있다. 이제 글을 쓸 때가 된거다.

아파트의 난방을 끄고 써큘레이터를 꺼내 바람이 잘 통할 것 같은 통로에 켜둔다. 창문을 열어 먼 곳을 쳐다보니 오래된 공원 저 건넛편에 나무들이 듬성하게 서서 잎을 늘려가고 있었다. 국도를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본다. 바람이 지나가는 것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창을 좀 더 여니 소리는 더 이상 부드럽진 않고 더 크게 들려왔지만 창 앞의 울타리가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 보다 너무 낮아 깜짝 놀라 창을 다시 닫았다. 여름이 오고 있었다. 나는 창 밖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이제 그만 끝 마치려 하지만 어떻게 글을 끝맺어야 하는지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모든 글의 순서는 시간의 순서나, 사건의 원인과 결과와 상관없다.

나는 요즘 계속 같은 꿈을 꾼다. 거기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꿈은 몹시 꿈일 뿐이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상들은 나에게 의미가 많아서 잠에서 일어나면 나는 한참동안 꿨던 꿈을 곱씹고 어디에도 기록을 남기지 않고 고스란히 잊어버린다.

꿈은 그렇게 잊어버리지만. 어떤가 나는 당신이 이걸 모두 읽는다면 내가 어떤 노래를 들으며 이 글들을 썼는지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지금 듣고 있는 것은 다니엘 바렌보임의 BWV 846이다. 아무 의미도 없지만.

24년 9월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