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증명_(에세이 등)

[20241110] 흐느끼고, 슬퍼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Masked 2024. 11. 10. 21:51

이 글은 오늘이 아닌 몇 주 전 노트에 써둔 글이다. 별로 멀지도 않은 일인데. 이 글을 썼던 나도 그 때의 내가 무엇을 생각하며 이 글을 썼는지 알 수 없다.
어떠한 추측과 불완전한 기억을 가지고 그리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뿐이다. 우리가 어색하게 미소 짓는 어린시절의 빛바랜 사진을 볼 때면 느끼는 불편한 감정과 함께 말이다.

글의 가장 위에는 이렇게 써있다. <나는 내 머릿 속의 작은 방에서 나가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나는 내 머릿 속의 작은 방에서 나가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동네의 작은 마사지 가게에서 불균형하게 엇나가버린 어깨를 눌러주시던 안마사 분이 몸에 피부 트러블이 거의 없으시네요. 라고 말했다. 없다고요? 그럴리가요. 하고 웃었는데. 아니요 피부가 깨끗하세요 라고 말하며 어깨를 누르셨다.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물 정도로 아팠다.

매일 매일 러닝을 하다 보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기도나 명상을 하는 것처럼 한가지 생각에 집중하게 되는데 주로 나는 머릿 속에 여러 사람을 불러내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몸을 움직이는 행위 자체가 그 생각들에 연료가 된다. 내 머릿속의 사람들은 내가 달리는 동안 쉬지도 않고 나에게 말을 걸고 나는 대답한다. 충분히 달리다못해 몸이 노곤해지면 멈춰서서 머릿 속의 사람들이 했던 말을 곱씹는다. 오늘은 뛰다 말고 밤거리를 걸어 돌아오면서 한가지 생각을 계속 했다. 귀가 찢어질 것처럼 엄청나게 큰 기타 소리를 듣고 싶다. 할 수 있는 한 큰 소리로 들으시오. 그것이 락 음악의 철칙인데 도대체 언제부터 볼륨을 이렇게 작게 해서 노래를 들었지.

나는 지금의 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을 꾸준히 고민해보고 있다. 그러다가 생각해낸 - 아니 생각해냈다기 보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해야겠다 - 방법으로 조금씩 시간을 돌려보려고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뒤로 뒤로 계속해서 시간을 돌리는 것이다.

그 방법은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달리는 것이다. 밤거리를 달린다 내가 몇킬로미터 정도 뒤로 갔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잠이 들면 꿈을 꾼다. 그렇게 계속해서 밤거리를 달리는 것이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가장 먼저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얼굴이 백지장처럼 점점 하얗게 되어 갔다. 몸이 가벼워져서 잘 지치지 않게 된 덕에 나는 더욱 더 긴 거리를 더 빠르게 달리게 되었다. 달리기를 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를 어떤 날에 변덕으로 안경 - 알이 없는 그냥 가짜 안경 - 을 사서 썼다. 나는 2020년 정도 쯤부터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 주변 사람들은 안경을 쓴 나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안경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래서 나는 더, 빠르게 달리기로. 길고 멀리 까지 달리기로 마음 먹었다.
체중이 2019년의 체중에서 18년의 체중으로 그리고 계속 뒤로, 뒤로 체중이 줄어가는 만큼 나 또한 뒤로 갔다. 오랜만에 복직한 선배가 예뻐졌네 하고 웃으면서 살을 뺀거야? 라고 묻기에 빠진거에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냥 머릿 속의 방에서 나가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매일 매일 달린 것 뿐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그냥 벌어진 일일 뿐이다.

후배에게 말해본다. 꿈은 너무 편리하지 않나요. 내가 무엇을 원하든 그걸 그대로 보여주잖아요. 선배는 꿈이 원하는 걸 보여주나요? 후배는 이상하다는 듯이 묻는다. 그제서야 나는 이상한 것을 깨닫는다. 음, 요즘 저는 그래요 현실은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꿈에서만 내가 원하는 걸 얻게 되요. 후배는 웃는다. 두부 말고 다른 것 좀 드세요. 매일 두부 말고 다른 건 아무 것도 안 먹으니까 그런 꿈만 꾸는거에요.

어느날 꿈을 꿨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어두운 건물의 계단을 혼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꿈이었다. 처음에는 계단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지 구분이 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는 동안 작고 속삭임 같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불경을 읊고 있는지 아니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 회색의 계단참처럼 잘 구분이 가지 않는 그 중얼거림은 내가 이해하지 못할 어느 시점부터는 점점 커져서 벽에 부딪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외침 같은 것이 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그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입에서 굉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러닝을 하다가 문득 가을 색으로 변한 나뭇잎을 보았다. 나는 길 한 복판에 서서 울 수는 없어서 다리를 절룩거리며 집에 돌아와 샤워를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애초에 내가 스스로의 머릿속에서 나가고 싶었던 이유는. 고통이나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속죄 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그 노트는 까맣게 지운 문장들과 썼다가 지운 말들로 가득하다. 그 모든 것을 여기에 쓰는 것은 무리다.
나는 알아 보기 힘든 메모로 노트의 마지막에 이렇게 써두었다.

“우리가 먼지와 물방울, 조각난 한숨과 쉽게 없어지는 무엇이 되더라도. 나는 스스로를 지표로 삼고 어떤 한 곳에 꼼짝 않고 서서. 당신이 어떤 모습이 되더라도 당신을 당신임을 알아보고 오지 않는 과거나 도달해버린 미래처럼 생각하며 살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그리고. 라고 쓰고 나는 그 노트 페이지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24년 11월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