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책_(괴담 등 단편)

​​[20190427] 공중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이

Masked 2019. 4. 2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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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페낭에 갔었다. 그렇게 안가려고 갖은 수를 다 썼는데 소용이 없었다.
공항에 가니 거래선 구매가 차를 타고 마중을 나와있었다. “로컬 음식점 가려는데 괜찮아?” 괜찮아 나는 로컬을 아주 좋아해. “로컬을 좋아하면 중국어를 좀 배우지 그래” 아냐 정정할게 나는 역시 글로벌이 좋아 맥도날드 스타벅스는 내 인생의 길잡이지. 구매는 희미하게 웃었다.
작은 도시라던 페낭은 조용하고 따뜻했다. 우리는 정말 길가의 가게에 들어가 중국음식을 먹고 농담을 몇개 하고 음식 사진을 찍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점심 식사 시간을 조금 넘겼지만 구매는 “늦어도 돼, 너랑 먹고 간다고 했어. 내 보스가 그 대신 너 돌아가기 전에 꼭 인사해야하니까 말 없이 출국하지 말라더라”하고 말했다.
몇개인가 미팅을 하고 비행기 시간에 쫓겨 나가며 나는 구매에게 인사를 했다. K 다음에 또 봐, 5월? 4월? 그 쯤에 또 올게. 구매는 양산을 썼는데도 햇볕에 눈을 찡그리며 “또 봐”라고 말했다.

커서가 깜빡인다. 사람의 숨소리보다 빠르다. 심장이 뛰는 속도보단 느리다.
나는 메일을 쓴다. 친애하는 K, 당신의 퇴직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작년에 당신이 건강 상의 이유로 잠시 휴직하고 복귀 하셨을 때 그 문제가 해결되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퇴직하게 되실 줄 몰랐습니다.
나는 내가 쓴 문장을 다시 읽고, 잠시 생각하고 물을 마시고 다시 메일을 쓴다. 모든 말을 지우고 이렇게 쓴다.
‘친애하는 K, 우리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당신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매 담당자이고 그 회사의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중요한 저의 파트너였습니다. 당신의 오랜 기간 도움과 서비스에 감사하고 당신이 퇴직 후에도 언제든 저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진심을 담아’ 나는 메일을 읽고 또 읽는다.

아직 나이가 젊어 내 누나 정도의 나이인 K는 4년 동안 나의 카운터 파트너였다. K는 암 말기로 더 이상 처치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퇴직을 한다고 한다. 그는 퇴직한다고 했던 날보다 4일을 더 출근했지만 나의 메일엔 회신을 보내지 않았다.
메일을 보내고 보니 꼭 공중에 돌을 던지는 것 같은 짓을 했다 싶었다. 어떤 곡선도 허공에 남는 일은 없고 다만 말도 하지 못하는 돌만 땅에 떨어진다. 돌을 던진 사람조차 어디론가 가버리면 남는 것은 땅에 떨어진 물질 뿐이다.

작년 A형이 죽었던 월요일의 아침, 나는 A형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몇달이 지난 후에야 그가 내가 전화를 건 걸 알았었는지가 신경쓰였지만 나는 그의 사망시간도 모른다. 멍청한 행사가 있어서 장례식에조차 갈 수 가 없었던 것이다.

그 전의 금요일 퇴근하는 A형과 같이 있었던 것은 나다. 나는 퇴근하려는 그를 붙잡고 업무 협의를 하고 형의 자리에서 메일을 보내고 담배를 피러 간다는 뒷꽁무니에 인사를 했다. 우리가 친한 사이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정말 띄엄띄엄 했고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일 얘기만 했을 뿐이다.

아니 결혼을 했다고? 하고 놀라하자 “너도 참 대단하다 2년이나 뒷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결혼했는지도 몰랐냐”라고 누군가 면박을 줬다. 내가 A형에게 아 저 솔직히 결혼하신지 몰랐었어요 라고 하자 그는 소년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가 나와 이야기 할 때 몇 번이나 웃었더라 뭘 좋아했더라 무슨 이야기를 했지. 가족의 이야기를 했던가. 아니 내가 A형과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가 뭐였지. “다다음주 쯤에 H수석 올라오면 치맥 좀 하지”라고 했었나. 뭐였지. 몇 번이나 말했었는데 치맥하자고.

메신져 앱에 A형의 이름으로 새로운 친구 추천이 떴다. 모르는 얼굴이다. 나는 아직도 A형의 번호를 지우지 않았기 때문에 형의 번호를 받은 사람이 추천에 뜬 것이다. 프로필을 보니 환하게 웃고 있는 개구쟁이 소년이다. 스마트폰을 산 것이 신이 났는지 친구들의 사진을 많이도 올렸다. 그 프로필을 삭제하려다 그대로 멈춰서서 생각을 했다. 나는 아직도 그가 왜 죽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의 가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형은 아이도 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사진 속의 개구쟁이가 형의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리도 없지만 형이 모습을 바꿔서 어딘가에 계속 살아있는게 아닐까 사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그 프로필을 지우고 전화번호를 지웠다.

여름, 친구들과 커피를 사러 단지를 가로질러 가는데 멀리 하얗게 햇볕이 비치는 곳에 A형이 얼굴을 찡그리며 지나가는 걸 보았다. 나는 어이- A책임-하고 그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흰 셔츠를 반팔로 접어 입은 그는 손으로 햇볕을 막더니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가 A형을 기억해야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다.

구매 K의 후임 L은 좀 서툰사람이라 나에게 전화를 하는 걸 어려워하고, 메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채로 똑같은 내용을 계속해서 보내온다. 나는 꼼꼼하지도 살갑지도 않아서 L과 업무 호흡은 별로 맞지 않는 것 같다. 고집을 부리며 뭔가를 해달라고 연락을 해왔기에 전화를 하면서 아웃룩을 뒤져 K가 보낸 메일을 찾았다. 이건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자, 네 선임인 K랑 나랑 어떻게 협의 했었는지 메일 히스토리를 줄게. 혹시 나한테 전화연락하는게 부담되면 나만 넣어서 메일 보내도 괜찮아. 네 보스랑 내가 너보다 일 더 오래 했어. L은 어색하게 웃는다. K는 성격은 조용했는데 진짜 좀 까르르 웃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다음주에 다시 연락할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과연 다음주에 연락을 할까. 모르겠다.

나는 어느날 꿈을 꾸었다. 나의 손자가 지금의 나보다 나이가 많아져서는 나를 추억하는 꿈이었다. 나는 꿈에서 깨어, 이미 죽어 공기와 먼지가 되어있을 내가 살아있는 것에, 내가 그렇게나 사랑한 나의 아이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 한참을 앉아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피할 수 없는 끝에 대한 위로란 것은 이렇게 허망하고 갸냘픈 것이다.

나는 울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참고 공중의 나는 새를 보살피는 우리의 신을 생각한다. 우리의 신은 지금 어디에 날아오르는 새를 보살피느라 우리를 안아주지 않는가. 어쩌면 우리는 그냥 허공에 그려진 곡선일뿐이고, 움직임과 상승 그리고 추락일 뿐이어서 신이 우리를 바라보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가락을 들어 천천히 허공에 선을 긋는다. 언제까지 손을 들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면서.

19년 4월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