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7] 봄날의 꽃에 대해 물어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너무 고통스러워 기절을 했는데. 기절한 상태에서 살풋 봄날의 꿈을 꾸었다.
깨어나서 이 글을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패드의 받아쓰기 기능으로 글을 썼다. 두서없이 쓰여진 글을 고쳐보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이해해주기 바란다.
…
나는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돌아가신지 너무 오래 되기도 했지만,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예 모르는 사이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주로 해외에서 사셨던 외할머니가 한국에 계실 때면 종종 우리 집에 머무르셨고. 미국으로 아예 건너가시기 전인 내 고등학교 2,3학년 - 한창 신경질이 가득할 때 - 우리집에서 같이 사신 적도 있었다.
아…외할머니가 또 그러잖아. 엄마 나 외할머니 싫어 -라고 다들리게 투덜거리는 나에게. 역시나 본인의 어머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어머니는 나를 말리지도 않았고. 결국 외할머니가 좀 드물게. 아이고 모자가 아주 쌍으로 싸가지가 없네 하며 화를 냈었던 일이 기억난다. 그것이 외할머니에 대한 나의 마지막 기억이다.
외할머니가 좋았느냐 하면, 싫었다. 외할머니는 외모로는 어머니를 꼭 빼닮은- 그 반대긴 하지 어머니가 외할머니를 닮은거지 - 화려한 미인이었고, 영어도 일본어도 유창(원래 영어 교사였다고 들었다.)했다.
주로 해외에 체류하시느라 한국에 거의 없었고 해외살이를 오래한 사람의 그 특이하고 세련된 느낌이 강해 일반적인 “외할머니상“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하여간 그와는 별개로 나는 외할머니와는 성격적으로 맞지 않았다. 일단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안 좋아하는 나와 다르게 평생 말보로 레드를 줄담배로 피고(본인 주장으로는 말보로 소프트를 한국에선 잘 안 팔아서 레드를 피운다고) 술도 말술이었으니. 성향부터 다른 사람이다.
이제와서 외할머니가 나를 대했던 방식을 생각해보면 애초에 외할머니는 아이를 제대로 길러본 적이 없어서 나를 포함 아이들을 대하는데 항상 서툴렀다. 평생 세 아이를 낳았지만 어머니가 갓난 아이였을 때 외할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해외로 떠나버린 걸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에 대한 불공정한 감정은 어머니가 가지는 외할머니에 대한 애증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내가 처음으로 돈이라고 할만한 것을 타왔던 글은 외할머니의 장례와 그 장례를 참석하는 딸들(이모와 어머니)의 마음에 관한 글이었다.
내용은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이었는데. 그건 진실을 위해서 썼던 글이 아니라. 미국에서 돌아가셨기에 외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도,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도 못했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서 쓴 글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글로 상금을? 그렇다 나는 20대때 별로 사람다운 마음을 갖고 있지 못했다. 부끄러움은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글은 이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외할머니가 그렇게까지 싫은 사람은 아니었고 그냥 낯선 할머니였을 때, 외할머니는 맛없는 외국 과자를 사오고 - 몰랐는데 고급과자였다. - 이상한 외국 노래를 듣는 - 몰랐는데 김연자씨의 일본 노래였다 - 그런 사람이었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외할머니는 나와 단 둘이 있게 되면 어른인 본인이 먼저 어색해해서 억지로 담배 심부름을 시키거나 마작을 가르쳐주려고 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어느나라의 동화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들을 해주곤 했다. 외할머니에겐 다행이게 나는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가 이야기를 해주면 굉장히 얌전하게 그 이야기를 듣는 이상한 성질이 있다.
하여간 어른이 되고 나서 외할머니가 해준 이야기들의 원전을 대부분 확인했는데. 다음에 내가 쓸 이야기는 원전을 확인하지 못한 몇 안되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심플하다. 다른 사람에게 닥치는 재앙을 막아주는 힘을 가진 사람이 그 힘을 거두자 기다렸다는듯이 재앙이 닥친다는, 하멜룬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비롯 비교적 흔한 모티브의 이야기이다.
…
어느 산속에서 다른 곳에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마을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얼굴이 하얗고 팔다리가 길었으며. 주변 동리 사람들과는 눈에 띄게 다른 풍습을 유지하고 사는 사람들이었는데. 혹자는 그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왔다고 하였고, 또 혹자는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그런 소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사람들은 단지 겸손하게 떠들썩하게 사는 일도 없이 산 속 분지의 작은 땅에서 소소하게 살아갈 뿐이었다.
그렇게 조용히 살아가는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로 어울리지도 않고 유명하지 않은 소문 하나가 더 있었는데.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재주가 있어서 이 마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액운을 막아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액운을 막는다니 그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가. 그 마을을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았고 택도 없는 소리라고 생각하였지만. 수도에서 마을로 사람이 와서 용모가 단정한 아이 몇을 데려가 지체가 높은 분들의 시종으로 데려가는 일이 종종 있었으니. 수도의 사람들 중 몇 몇은 그걸 정말인 것 처럼 믿었던 것 같다.
그 해에도 수도에서 사람이 와서 시종으로 쓸 아이 몇명을 뽑아서 데려가는데. 그 해에는 여자아이 하나도 수도의 대감집의 시종으로 쓰이게 되었다. 산 속의 조용한 마을에서 살던 아이가 수도에 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들떴겠는가.
그런 아이에게 마을의 어른들은 두가지를 당부 하였는데 하나는 주인집이 될 분들에게 항상 충성하되 그 분들에게 친애의 마음을 갖지는 말 것. 다른 하나는 힘이 닿지 않는다면 사람을 구하려고 들어서는 안된다는 당부였다.
옛날의 이야기인만큼 굳이 해석을 하자면 분수를 지키라는 이야기였지만. 실은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은 분수와는 다른 이야기였다. 아이는 마을 사람들과 일가친족들이 가진 조금은 기묘한 운명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마음 속 깊이 새기었다.
아이는 어렸고 수도는 화려했다.
두견새 우는 소리야 고향에서도 수도에서도 똑같거늘, 높은 담 불빛이 가득한 수도는 밤이 없는 것 같았고. 본 적도 없는 화려한 색의 치마와 장의에 마음을 빼았겼다. 고작 열 칸이 넘는 집도 없었던 마을과 다르게 스무칸 서른칸의 권세 있는 저택이 넘쳐났으며. 그 중에서도 주인집은 수도에서도 권세가 높은 정승댁이라 하였다.
하루에 불이 붙는 가마솥이 몇 개인지 통문을 드나드는 수레가 몇 개 인지 셀 수도 없었다. 주인댁을 가까이서 모시는 시종으로 불려왔다고 하여도 지체가 높으신 분들과는 애초에 신분이 다르다. 아이는 새벽같이 일어나 부엌일을 도왔고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모시게 된다는 주인댁 도련님은 보지도 못한 채 달포가 지났을까.
어느날 도련님이 머무시는 별채를 치우라는 지시를 받았고. 그리고 그곳에서 도련님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아이의 눈에, 지체가 높은 소년 - 그러나 자기와는 나이차이가 그리 나지 않는 흰 얼굴의 소년 - 이 어떻게 보였을까. 아이는 새벽에는 부엌일을 하였지만, 낮에는 도련님의 별채를 치우고 식사를 갖다드리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도련님의 아침은 일렀지만 아이의 아침은 더 일렀다. 도련님이 식사를 하면 시중을 들고 그걸 치울 때 까지가 아이의 일이었다. 도련님은 아이를 잘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아이는 식사를 하는 그 옆을 떠나지 않고 기다렸다.
도련님도 아이가 익숙해지고, 아이가 익숙해진 만큼 아이는 커져서 소녀가 되었다.
아이가 붙박이 가구처럼 거기 있는게 자연스러워진 도련님은 매 끼니 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한 두마디 정도 아이에게 말을 걸었는데. 집안의 대소사나 장터의 소문들 같은 것들을 물어보았다. 수도 살이가 익숙하지 않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였지만 아이는 열과 성을 다해서 도련님이 물어보는 말에 대답하였다.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도련님이 실망하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아이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 다음 끼니 때 까지 꼭 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곤 했다.
도련님은 보통 아이에 대한 것은 하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아니 딱 한 번 아이에게 아이에 대한 것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고향마을에 대한 소문. 너희들은 사람에게 오는 액운을 피하게 할 수 있다면서? 하고 도련님이 묻자 아이는 또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서 대답했다. 저는 무식하여 어려운 것은 잘 모르지만 액운은 하늘이 내리시는 것인데 촌 사람들이 무슨 수로 그런 것을 피할 방도를 알겠습니까. 도련님은 금세 흥미를 잃고 네 말이 옳다. 하고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식사를 마쳤다.
아이가 정승댁에서 일하기로 한 것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였다. 그렇게 아이가 어른이 될 때 까지 도련님에게는 별 다른 횡액이 없었다. 병을 알아도 이틀 이상 앓지 않고 금세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학당의 친구들과 말을 타고 사냥을 간다 어쩌다 하다 무리가 들짐승에 쫓겨 동무 하나가 말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졌는데 도련님은 무사 하였다. 물놀이를 가도 나들이를 나가도 항상 도련님은 무사 하였다.
도련님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아지만 내심 나는 운이 따르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점점 태연해지고 대담해졌다. 도련님의 부모님인 정승 내외는 그런 도련님을 바라 보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 얼마 남지 않은 동짓날이 되어 다시 마을로 돌아가기로 약조한 시기가 되었다. 섣달이 되면 아이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주인댁에서는 이제까지 몇 년간 일을 한 새경을 쥐게 된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후련하지 만은 않았다. 몇 년 간의 봉사로 큰 돈을 손에 쥐게 된다지만 수도도 아닌 고향 마을에선 돈은 별로 쓸모가 없었다.
수도에서 물건들을 사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성인이 되어 곧 혼인을 올리실 도련님께 인사를 드려야지 하고 아이는 생각했다. 정승댁의 인심은 후하였다. 몇 년이나 성실하게 시종을 한 아이에게 약속한 새경만 내어준게 아니었다. 큰 마님이 정승댁을 떠나닌 아이에게 특별히 내어준 옷감으로 곱게 차린 옷을 입은 아이는 눈썹이 구름 같고 눈이 연못처럼 동그랬다.
아이는 마지막 식사 시중을 들며 도련님에게 곱게 절을 하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강녕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도련님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아 그래 곧 섣달이 되니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구나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느냐 라고 물었다. 아이는 네 도련님 곧 혼사가 있으시다고 들어서 작은 일로 마음을 쓰이게 할 수 없기에 이제야 말씀 드립니다. 혼인 감축 드립니다. 하고 천천히 그리고 길게 절을 올렸다.
도련님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수도에서의 일들이 꿈이었던 것처럼, 도련님의 시종을 보았던 일도 모두 없었던 일인 것처럼. 고향 마을은 예전과 똑같다.
아이는 고향에 내려오기 훨씬 전부터 집안이 정해주는 상대와 혼인을 하였고 곧 아이를 낳았다. 파란 꽃 같은 남자아이 하나와 빨간 열매 같은 여자아이 둘을 낳았다.
고향 마을은 수도에서의 일들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을만큼 척박하고 아름다웠다.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다. 아이는 수도에서 일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하지만 수도는 아이의 일을 잊지 않은 듯 보였다. 어느날 정승댁에서 난데 없이 전갈이 왔다. 정승댁 내외가 아이를 찾으니 여유를 두고 수도로 오라는 전갈이었다. 마을 어른들은 그 전갈을 보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뢰옵기 송구스럽습니다. 천한 것들이 언제 정승댁에 초청을 받을까만 아이가 산달이 얼마 남지 않나 남지 않아 수도까지 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라고 회신을 보냈다.
물론 아이에게는 세 자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무리 젖먹이라고 하여도 마을 사람들에게 맡기고 간다면 올라가지 못 할 것도 없었는데 마을 어른들은 어째서인지 아이가 수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아이가 고향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마을 어른들은 안심 하는 듯 보였다. 아이는 알 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안심한 것이다.
커다란 전란도 없이 가뭄도 없이 태평성대가 몇년이나 계속되었다. 아이가 봉사했던 정승댁에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을 어른들에게는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아이는 내심 도련님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곧 그런 일은 잊어 버렸다.
지체 높은 분들의 변덕이라, 생각이 나 부르시고도 곧 잊으셨으리라.
그러나 일년이 지나고 다시 전갈이 왔다. 아이를 부른 것은 정승 내외가 아니었다. 아이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도련님의 안 사람이 되시는 새 마님이었다.
어째서 새 마님이 아이를 부르는가. 마을 어른들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새 마님이 되었든 누가 되었든 간에 정승댁에서 연락을 주었다는 것은 사실이고. 두번째에도 연락을 피할 일은 없었다. 그나마 꾀라도 낸 것이
자식들이 어려서 놔두고 먼 길을 가기가 힘듭니다. 말미를 주시면 채비를 갖춰 올라가겠습니다. 라고 회신을 한 것이었다.
마을 어른들은 이렇게까지 얘기하면 굳이 정승 댁에서 아이를 찾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말겠지. 잊어버리겠지.
그러나 정승 댁은 이번에 말과 사람을 보냈다. 아이는 두 딸을 마을 사람들에게 맡기고 아직 엄마 품을 떠나려하지 않는 아들을 데리고 수도로 향했다.
정승댁에서 아이를 맞이한 것도 새 마님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승댁보다도 권세가 높은 집안의 자제라고 한다. 정승댁 내외는 아이가 찾아온 다음 날 인사를 받을 때 얼굴을 봤을 뿐 그 후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큰 마님은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시고 아이에게 미안한 기색이었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새 마님은 아이에게 해줄 것이 있다고 하였다. 새로 태어난 어린 아기씨의 젖어멈을 해달라는 이야기였다.
아이는 어렵다고, 이미 자신의 자식들이 커서 젖이 나오지 않는다고 아뢰었지만.
새 마님은 막무가내였다. 새경을 충분히 주지 않을까봐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젖어미가 어렵다면 댁하인으로 아기 곁에 있어주도록 하여라. 네 원한다면 너의 어린 아들에게는 글공부도 시켜주도록 하겠다.
덜컥 겁이 난 아이는 양민이 글을 배워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름이나 쓸 줄 알고 숫자나 가르칠 생각입니다. 고향에 두고 온 어린 자식들이 걱정이 되니 딱 1년만 댁하인으로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승낙하였다.
듣자하니 새 마님의 아이는 벌써 세 번째였다.
정승댁의 아이들은 대대로 건강하고 다치는 일도 거의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새 마님의 첫째와 둘째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유모를 둘이나 두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진 않았다.
편의 상 침모라고 부르며 대우도 침모로 해주었지만 아이는 바느질이 그렇게 능숙하지 못하였다.
유모가 따로 있었으니 아이가 하는 일은 단지 아기씨의 곁에서 아기씨를 지키는 일이었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마음이 불편했던 아이는 새벽이면 일찍 부엌에 나가 일을 돕기 시작하였다.
오륙년 만의 정승댁 살림이었지만 아이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실하고 친절한 아이를 기억하는 사람들 모두 아이를 환영해 주었다. 그렇게 달포 쯤 지났을까 아이는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새 마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새벽이면 새 침모 - 아이 - 가 자리를 비운다는 것을 알고는 불호령이 내렸다. 누가 침모에게 부엌일을 하라고 시켰더냐 하고 부드럽게 묻는가 싶더니 아이가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하자. 부드럽던 새 마님은 서릿발처럼 화를 내기 시작하였다. 부엌을 맡고 있던 늙은 하인이 치도곤을 당했다. 나이가 많고 큰 마님의 신뢰가 깊어 겸인 역할까지 하는 하인들의 우두머리나 다름 없는 사람이었는데 새 마님의 추궁을 받고 새경을 중간에 챙겨 나간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아이는 부엌일을 돕는걸 그만 두었다. 다른 사람이 곤경에 빠질까 단 한 순간도 새 마님과 아기씨 곁을 떠날 수가 없게 되었다. 아이는 자기 아들인 어린 꼬마에게도 신경을 쓰지 못 하게 되었다. 부끄러움이 많고 사람을 잘 따르지 않던 꼬마는 너무 어려 소를 치거나 나무를 해올 수도 없었고 다른 집안일을 시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또래 친구도 제대로 없으니 외롭게 정승 댁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런 꼬마와 가끔이나마 놀아줬던 것은 다름아닌 도련님이었다. 꼬마는 어째선지 도련님을 꽤 잘 따랐고. 글공부나 가소사를 챙기기보단 나돌아다니는 것에 더 바빴던 도련님은 장터나 어딘가에서 가져온 장난감들을 꼬마에게 선물하고 때때로 같이 놀아주기까지 하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 정도였다 꼬마는 정승댁을 빠져나가 나돌아다니며 가까운 거리에 있는 또래들을 찾으려고 할 때가 많았고 그런 꼬마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의 생활은 점점 바빠져갔다. 아기씨는 칭얼거림이 심해졌고 새 마님의 신경도 더 날카로워져갔기에 유모 혼자서는 도저히 아기씨의 시중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수시로 열이 나고 발진이 나 의원이 드나들었고 유모나 새 마님을 대신해서 아이가 의원을 모셨다. 어째서 아기씨는 이렇게까지 아픈 걸까 도련님과는 아주 다르다 하고 하인들은 수근거렸다.
아이는 도련님이 특별했을 뿐 아기는 원래 언제든지 아플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자면 새 마님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기씨가 아플 때마다 새 마님은 죄인이 되어 당장이라도 죽으려는 표정을 하고 유모와 아이를 쳐다보았다.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아기씨가 몹시 아파 밤새도록 울며 보채던 밤. 겨우 겨우 아기씨를 달래서 잠을 재우고 유모도 쉬러 간 그날. 방안에서 잠든 아기씨와 새 마님 그리고 아이 그렇게 셋 밖에 없었던 날이 있었다.
새 마님은 아기씨를 안고 잠을 재우는 아이를 바라보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기가 이렇게 아픈건 내 잘못이겠지? 아이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원래부터 아기님들은 자주 아프고 쉽게 열이 나며 부모의 가슴을 놀라게 하는 법입니다. 한 살이 되고 세 살이 되고 일곱 살이 되면 점점 아플 일이 줄어들고 부모님의 마음도 알아주는 것이 자식이라는 것이지요.
새 마님은 아이의 말을 듣는 듯 마는 듯 하다 갑작스럽게 물었다. 친정 어머님께 들은 적이 있다. 너희 마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횡액을 피하게 해 줄 수 있다지.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흘러가는 말인 것처럼 아기씨를 안고 가만히 달랬을 뿐이었다.
새 마님은 대답을 원한게 아니었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방법에 대해서도 들었다. 그 사람을 마음속 깊이 생각하고 무사를 바라면 그 사람이 받아야 될 횡액을 대신 받을 수 있다고 그렇게 들었다.
질문인지 추궁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담담하게 하고는 새 마님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이는 그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바란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랬다.
새 마님이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내가 아기를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아기가 이렇게 아픈 거라고 생각하느냐?
아이는 그제야 대답했다. 아니요 마님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는 이어서 말했다. 깊숙하게 생각한 사람의 횡액을 대신해서라도 받고 싶은거야 누구든 그렇지 않겠습니까. 다만 정말로 그런 게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불운은 누구에게나 닥치고 그것은 하늘에서 주신 벌이나 선행의 결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여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이 저희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새 마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그렇게 아기씨를 돌보며 밤을 새하얗게 보냈다.
그렇게 또 몇 개월이 지나갔다. 아기씨는 아프고 또 다시 나았고 의원들이 드나드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는 의원들의 시중까지 들며 몇 달을 바쁘게 지내야 겠다. 그렇기 때문에 꼬마가 도련님을 쫓아 사냥터에 같이 나갔다가 말에 밟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이는 그게 자신의 자식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째서 사냥터에 나갔을까 분명 어제도 그런 말이 없었는데 이런 어린 아이를 사냥터에 데리고 나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무슨 사고가 있었던 걸까.
아이는 차가워져서 돌아온 꼬마를 부여안고 아무도 대답 하지 않는 질문을 계속해서 반복 했다. 꼬마를 사냥터에 데리고 나간 도련님은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같이 사냥터에 나갔던 다른 하인들은 아이에게 사고 였다고, 갑자기 수풀에서 여우가 튀어 나와 말이 놀라 앞발을 들었다고. 꼬마가 우연히, 그리고 부주의하게 말 근처에 - 도련님 곁에 - 있다가 말에 밟힌 것이니. 도련님의 탓이 아니라고 말했다.
아니 이제 겨우 자기 이름자나 쓸만 한 아이가 말을 어떻게 피하고 도련님의 사냥을 어떻게 수행 한단 말입니까. 아이는 힘들게 질문을 짜냈지만. 같이 사냥에 나갔던 하인은 말문이 막혀 대답을 못했다. 겸인이 그날 밤 찾아와서 실은 꼬마가 외로이 혼자 노는 것을 보고 도련님이 같이 가자고 하고 데려간 것이네. 이렇게 될 줄 알았겠나 도련님은 호의로 그렇게 행동하신 것이네.
아이는 기가 막혔다.
사냥터에서 돌아온 도련님은 말에서 떨어졌다더니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죄책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냥터에서 죽은 꼬마가 아이의 아들이란 것도 잊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정승댁에서도 꼬마의 죽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새 마님이 휴가를 주고 쌈짓돈을 내어주어 그것으로 사치스럽게 작은 관을 짜주었다. 고향은 너무 멀었다. 꼬마는 어렸던 아이가 고향 생각이 날 때 마다 두견새 울음소리를 들으러 가던 산에 묻혔다.
또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겨울이 왔고 새해가 오기 전에 아기씨도 죽었다. 새 마님의 잘못도 아이의 잘못도 아니었다. 겨울이 왔기 때문도 아니었다.
유명한 의원을 몇 명이나 불렀는데 의원 모두 아기씨 체질이 원래부터 그러하여 이렇게 한 살 이상 산 것도 보통일이 아니라며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한 살을 산 것이 오래 산 것이라니 부모 앞에서 어찌 그렇게 말씀을 하신단 말입니까. 아이는 그렇게 물으려다 새 마님이 새하얗게 질린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 소리를 듣고도 사방을 수소문해 계속 새로운 의원을 불렀다. 어떤 의원도 제대로 된 답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겨우내 시름시름 앓던 아기씨가 촛불이 꺼지듯 숨을 거두었다. 기가 세던 새 마님은 멍하니 산만 쳐다보았다.
정승댁 이라고 하여도 어른이 되지 못한 아기씨의 장례는 작고 조용히 치러졌다. 장례가 끝나자 새 마님은 친정으로 돌아가 버렸다. 소문을 들어보니 새 마님이 먼저 친정으로 돌아간다고 얘기를 했다는 하인도 있었고 큰 어른께서 이제 여기엔 더 이상 네가 있을 곳은 없구나 라고 먼저 말씀하셨다는 얘기도 있었다.
아이는 더 이상 아무 역할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일 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도련님께 인사를 드리기로 하였다.
아이가 오랜만에 처소로 찾아갔을 때. 도련님은 여느 때처럼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곁에는 옛날의 아이처럼 작고 마른 여자 아이가 밥 시중을 들고 있었다. 도련님께 인사를 드리고 이제 그만 고향으로 돌아가 보려고 합니다. 라고 말씀 올렸다.
그러자 도련님은 의외라는 듯이 굳이 벌써 고향에 돌아 갈 필요는 없다. 일 년을 채우고 나서도 더 남아 있어도 좋다.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는 아기씨일로 봉사하려고 이곳에 온 것 입니다. 더 이상 일을 할 필요가 없으니 돌아가는 것이 맞는 듯 합니다.
도련님은 피식 웃더니 일은 곧 하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작년부터 다른 곳에 혼담이 오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 부인이 들어올 거고 그러면 곧 아이가 생길 것이니 네가 그 아이의 유모를 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네가 얼마나 일에 열심인지는 내 익히 알고 있느니라.
아이는 혈색이 좋은 도련님의 얼굴을 곁눈으로 바라 보았다. 아 저런 분이셨구나 왜 몰랐을까 아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냥 모르는 척 했을 뿐이다. 알고있었다. 처음 얼굴을 보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저렇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왜 모르는 척 하였을까. 왜 보지 않으려고 했을까.
도련님은 내가 천 것이라서 이해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도련님은 그저 다른 사람을 쳐다보려고도 사랑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왜 도련님을 매일 생각했을까. 왜 도련님의 무사를 한시도 잊지 않고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이는 몰래 울었다. 눈물을 흘리며 그걸 숨기려고 더 깊숙하게 절을 했다.
그만 고향에 돌아 가게 해 주소서. 저는 더 이상 이곳에 있지 못 하겠습니다.
아이가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도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을 물렸다.
아이는 정승 댁에서 준비한 말을 거절하고 혼자 두 딸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 후 멀지 않아서 수도에 돌림병이 돌아 정승댁에 관이 여럿 나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때 도련님도 돌림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
나는 이 이야기를 외할머니에게 들었을 때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원래의 이야기는 훨씬 더 두서가 없었고 위에 쓴 내용과는 전개도 대부분 달랐다. 얼마나 다르냐면 마지막에 커다란 산사태가 일어나서 정승댁을 덮치게 되고 정승댁이 그대로 떠내려간다. 이야기를 그럴듯 하게 각색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어린 내가, 할머니 그래서 다른 사람의 횡액을 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뭐에요? 라고 물어보자. 외할머니는 내가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듯이 첫번째는 그 사람을 마음 속 깊이 사랑하는거고, 두번째는 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 순간도 잊지 말고 기원하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어쨌든 도련님은 원래 죽을 운명이었다는 거네요? 라고 또 묻자. 글쎄 그건 모르겠는데. 죽을 운명이라는게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리고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까맣게 염색을 하고 파마를 해서 숱이 줄어드는 것을 숨긴 노인이면서 외할머니는 그렇게 아주 능글맞게 사람을 쳐다보곤 하였다.
먼 훗날에야 깨달은거지만 사람에게 닥치는 횡액들은 계절성 독감 같은거라서 주변에 누군가가 있었거나 살아야할 이유가 있었거나 하면 대체로 이겨낼 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애정이라고 해야할까. 그래 애정이라는 말 외에 다른 말로는 설명 할 수 없겠지 싶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위 이야기의 해설판이라고 하여도 좋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도 몇 년이나 지나서일까. 어느날 여상하게 이모와 잡담을 나누던 중에 - 나는 이모와 잡담 하는걸 정말 좋아한다 - 이모에게 큰 오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큰 오빠라고 하기도 좀 그래 다섯살땐가 죽었으니까. 라고 이모는 담담히 얘기했다.
이야기는 그랬다. 아들과 두 딸을 낳은 외할머니는, 당시의 인텔리로 자존심도 강해서 외할아버지가 후처를 들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는데. 외할아버지가 후처를 두려고 하자 일가 친척 중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인 이혼을 선택하고 집안을 나가기로 하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수는 없었다. 그 당시 아이는 집안의 소유물 같은거였으니까. 외할머니는 가장 어렸던 젖먹이 - 나의 어머니- 마저도 남긴 채로 해외로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군인으로 파주에 임지를 받은 외할아버지는 새로 들인 어린 처와 그나마 사리 분별이 어느 정도는 되는 큰 아들만을 데리고 파주로 떠나는데. 그곳에서 다섯살 난 큰 아들은 말라리아에 걸려서 어린 나이에 죽었다.
이모는 심술궂게 갓 스무살이나 된 처녀애가 애 보는 방법을 알리가 없지. 아프다고 우는데 과자만 자꾸 입에 넣어주니까 병 난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그만 죽어버렸다지 뭐니. 라고 말해주었다.
외할머니는 언제 그 소식을 들었을까. 1960년대 초반의 이야기일테니 제대로 연락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얘기지만, 나는 외탁을 했다. 어머니의 동생인 외삼촌들과도 닮았고 외삼촌들의 아들들과도 많이 닮았다. 아마 외할아버지를 직접 닮은 것이리라.
고등학생일 때. 나는 외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는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상 아이처럼 취급했고 제일 싫어했던 것은 내가 밥을 먹고 있노라면 갑자기 밥 위에 김치를 찢어서 올려주는 거였는데 내가 그걸 얼마나 싫어했는지 외할머니에게 싫다고요 하지 말라고요 라며 몇 번이나 화를 냈고 그 때 마다 외할머니는 깔깔 웃으면서 아주 귀엽다는 듯이 매번 그렇게 김치를 주곤 했다.
…변명을 하자면 그 때 나는 큰 외삼촌이 그렇게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마지막으로 키운 아이는 바로 그 다섯살의 나이에 죽은 큰 외삼촌이었을 것이다. 외할머니가 매번 능글맞게 웃으면서 이북 사투리도 아니고 경상도 사투리도 아닌 이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이상한 말투로 나를 달랬던 것은. 자기의 아들을 달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커다랗게 자라서 고등학생이 된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른이 되지 못한 자신의 아들을 생각했을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3년 아니 5년쯤 되었을때 였을 것이다.
상도동 어딘가의 참치집에서 외할아버지와 점심을 먹는 날이었는데 차나 한잔 하자꾸나 하고 한의원 옆 카페에 나를 데리고 들어간 외할아버지는 잘 드시지도 않는 진한 차를 시키시고는. 이 얘기 저 얘기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물어보시다가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문득 생각나서 물어봤다는 것처럼.
너희 외할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신거냐 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외할아버지의 망설임을 읽었다. 나에게 외할머니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에 보인 망설임이라고 생각한다. 외할아버지는 나에게 말을 꺼내기 전에 춘화春花는. 이라고 중얼거리셨다.
봄의 꽃春花. 그것이 외할머니의 이름이다.
나는 내가 망설임을 읽었다는 것을 티내지 않고 최대한 담담하게 언제 돌아가셨는지.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왜 돌아가셨는지. 내가 알고 있는 걸 모두 설명해드렸다.
외할아버지는 나 외에 다른 누구에게도 외할머니의 일을 물어보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아마 아주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묻지 못한 마음에 품고 있던 질문이었을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외할머니가 나에게 이야기해준 버전은 내가 이 글에 쓴 버전과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다른 이야기이다.
나는 딱 한 번 이 이야기를 나보다 두 배 정도 똑똑한 친구에게 해준 적이 있는데. 그 때 친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라고 말했다. 역시 그렇지? 나도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어. 그냥 외할머니가 대충 지어낸 이야기겠지.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게 외할머니 자신의 이야기이고. 나만을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나에게 사랑때문에 신세를 망치지 않는 법에 대해서 가르치고 싶었던 것 같다.
전혀 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 어떤 노인 하나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사람은 사랑 때문에 죽는거라고 말 한 적이 있었다. 그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같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당황해했는데. 그 이야기를 면전에서 들은 나는 그 노인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했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멀지도 않은 시기였는데. 그냥 그래서요, 라는 표정으로 그 노인을 쳐다보고 웃었다. 당신은 알 것이다 내가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웃었을지.
사랑 때문에 신세를 망치는 것은 외할머니 한 명의 일이 아니다. 나는 외모는 외갓집 식구들을 빼닮았지만 그런 부분만은 외할머니를 닮은 것 같다.
언젠가 이모에게 신기하게 외할머니는 꿈에서도 한 번을 안나오네요. 라고 했더니. 뭘 그렇게 신경쓰니 저승에서 큰 아들 만나서 재미가 좋은가보지. 하고 꺄르르 웃으셨다.
이 글에서 내가 다시 정리한 이야기가 아닌, 외할머니가 해준 원래의 이야기는 앞으로는 누구에게도 해줄 생각이 없다. 나는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이야기의 의미를 이해한 것 같다.
자, 들어보아라.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의 사랑하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법이고. 그 이야기는 당신이 사랑받은 증거이다.
그래. 그렇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나만의 것이다.
24년 9월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