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5] 23시의 로드러닝
집 근처 야트막한 언덕에 붉은 꽃무릇이 피었다.
어디서도 잘 자라는 꽃이라 어디서 씨앗이 날아와 피었나 싶었는데 언덕 곳곳에 피어난 걸 보니 누군가가 꽃무릇을 좋아해서 심었나보다.
추석 때 쯤 피어나 한 달 정도면 지는 꽃이다. 뿌리에는 독이 있고 줄기를 섣불리 먹었다간 탈이 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돌+마늘이라는 뜻의 석산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요사한 모습 때문에 피안화라고 부른다. 장례화, 사인화, 만주사화… 모두 이 꽃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같이 불길하고 슬픈 이름이라 때마침 잘 되었구나 싶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꽃무릇 군락을 보는 것이 일이 되었다. 달리기를 하러 계단을 내려갈 때도 꽃무릇 군락을 지나쳐서 간다.
8월 말부터 세보니까 6주 정도 로드 러닝을 했다. 그리 오랫동안 했다고 볼 순 없지만 병원에 있었거나 하는 불가피한 이유가 아니라면 거르지 않고 매일 매일 뛰었다.
늑골이 아프고 무릎이 아프면 진통제를 두 알 정도 먹고 느림보처럼 뛰었다. 목표나 목적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 이유가 없다. 그냥 나의 모든 것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날 갑자기 시작했다.
러닝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했다가 6주를 뛰어보고 러닝에 대해서 쓴다는 것 자체가 좀 바보 같이 느껴져서 쓰지 않고 있었다만. 실은 원래부터 꽤 오랫동안 러닝을 했었다. 오히려 러닝을 안 한 요 몇 년이 특이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두 시간 운동을 했던 20대 때는 3킬로미터 정도를 달리고 줄넘기 3천개를 하는 걸로 운동을 시작했었는데. 러닝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빨랐기에 시속 11-12킬로미터 정도로 3킬로미터를 달리는 걸로는 15분 남짓 시간이 걸리는 정도여서 부담도 없었다.
그 땐 보통 집을 나와서 좀 걷다가 국도가 나오면 그 때 부터 러닝을 시작했다. 국도를 건너 논 밭을 지나 산길을 뛸 때도 있었고 국도를 따라서 그냥 무작정 달릴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집 주변의 럭비경기장(서울 럭비구장이라는 이름이다)으로 뛰어가 트랙을 달렸다.
밤이면 사람이 없어서 트랙을 독차지하는 기분이 좋았다. 멀리에서 들려오는 온수역의 소음을 배경음악 삼아서 트랙을 달리고 또 달렸다. 가끔 동네에 아는 여자애가 찾아오면 술을 마시고 그 럭비경기장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조명이 거의 없어 밤하늘을 보기에도 좋았고 넓은데 사람이 없어서 이야기를 하기에도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꽤 어려서 여자애에게 뭘 해줘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기에 대체로 먼저 말을 하지 않고 하는 얘기를 들어주는 것에나 신경을 썼다.(지금도 모르긴 마찬가지지만)
때때로 공장들과 국도를 지나 그 트랙을 달리던 때의 일들이 떠오른다. 조명도 없는 새까만 운동장을 달리며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때 까지 사산조 왕국의 운명이나 로마시대의 군사 체제에 대해서 생각하며 달렸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묘하게 따분한 인간이다.)
어쩌다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달리는 날이 오면, 그 때는 온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 때 까지 뛰었다.
내 나름의 방법으로 하는 기도 같은 달리기였다.
그 때 내가 달리던 국도는 그대로 있지만. 산길은 수목원이 되었고. 서울럭비구장 부지는 40층짜리 주상복합 단지가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1시간을 꼬박 혼자 달려도 되는 트랙보다 거대한 상업 단지 쪽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돈 한 푼 내지 않고 써왔으면서 그냥 투덜거려봤을 뿐이다.
내가 러닝을 하는 것은 좀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될 것 같다. 호흡법을 포함해서 뛰는 방법을 배운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때 태권도 학원에서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서 아무 이유 없이 하는 러닝에 대한 기억이 시작되는 것은 중학교 때다.
그 시절 즈음엔 밤이 되면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가지고 밖에 나가서 무작정 달리기를 했다. 카세트 플레이어라니 너무 오래된 용어인데. 그 당시에는 음악 감상 서비스가 지정해주는 랜덤 플레이로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경험과 취향을 바탕으로 고유의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음악을 듣는게 당연했다. 중학생인 나는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그 당시 듀크 엘링턴을 비롯한 재즈에 푹 빠져서. Take the A-train 이라든가 Me and My shadow 같은 음악을 엄청나게 큰 볼륨으로 들으면서 양 쪽에 공장이 가득한 국도를 무작정 뛰었다.
예전에 얘기하지 않았던가. 나는 가난한 공업지대에서 자랐다. 위에서 썼던 럭비구장도 근처에 그 럭비구장을 만든 커다란 제강 회사가 있었다. 밤이면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고 먼지로 가득한 공기가 그나마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공기가 깨끗하든 말든 중학생인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달렸다. 온수역에서 역곡역 까지 달리면 편도로 1.5킬로미터. 다시 돌아오면 3킬로미터 정도였다.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은 보도는 울퉁불퉁해서 달리다 보면 발목이 아파질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달리면 기분은 항상 나아졌다.
몇 년 전부터 갑자기 변덕이 들어 달리고 싶어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면. 평소(평소라고 생각한 20대때)처럼 시속 12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달렸다.
항상 달리는 건 밤이다. 밤 공기를 깊게 들이 마시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며 상쾌해지지만. 보통 그 뒤로 3주 정도는 무릎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운동 중에 한 번 다친 무릎은 무슨 짓을 해도 안 낫는 기분이다. 20대 중반 정도에 바보 같은 짓을 하다가 다친 탓이다.
그렇게 몇년 동안은 신나게 뛰고 한 3주 아프고를 반복하고 살았다.
요는 나에겐 가끔 달리는 행위 자체가 필요한가보다. 공을 던지고 싶지도 방망이를 휘두르고 싶지도 않은데 달리기만은 다르다.
이번 6주 동안에는 나름 성공적으로 연속 러닝을 다니고 있다. 무릎이 아파지지 않았을까? 아니다. 무릎은 아직도 아프다. 무릎 보호대를 차고 파스를 잔뜩 바른 채로 달리기에 나간다. 단지 첫 번째, 이전에 얼마나 빨리 달렸었는지에 대한 고집을 버리고 시속 7-8킬로미터의 느린 속도라도 좋으니 30분 연속으로 뛰는 걸 목표로 달리기 때문에 무릎의 부담이 덜해졌다. 두 번째, 달리기 만이 삶의 목표라도 된 것처럼 달리지 못하면 오늘 밤에라도 죽을 것처럼 굴고 있기 때문에 퇴근해서 피곤해 바로 잠을 자더라도 살풋 잠에서 깨면 옷을 갈아입고 나가서 달린다.
달리는 목표는 30분 연속 러닝이다. 속도는 시속 8-9킬로미터 정도지만 무릎이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으면 시속 6-7킬로미터 정도의 느긋한 속도로 달린다. 그 정도면 그냥 빠른 걸음 아닌가 하겠지만 아니다. 달리기다 마음가짐이 다르다. 양 손을 가슴 높이로 올린다는 것 부터가 달리기라는 증거다. 로드 러닝을 하고 있으면 시속 10이 분명하게 넘는 속도로 쌩하니 달려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초보운전”표지판처럼 무릎 보호대는 러닝을 나갈 때 마다 빼놓지 않는다. (변명이 아니고 실제로 무릎이 아프다.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달릴 수가 없다. 이상한가?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달리는 코스는 랜덤이다. 로드러닝 자체가 트랙러닝이나 어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짓 10개를 뽑으면 상위권으로 뽑힐 트레드밀 위에서 하는 러닝보다 상대가 안 될 만큼 즐겁긴 하지만. 랜덤으로 달리면 더욱 즐겁다. 어차피 나는 동네의 길을 대충 뛰는 거기 때문에 길을 뛰다가 횡단보도가 파란색이 되면 그냥 길을 건넌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차려보면 너무 먼 곳에 와있는 경우도 허다하고 코스가 머릿 속에서 제대로 정리가 안되서 페이스 조절도 안된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딪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속도 조절을 하고 싶어서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사람이 없는 길을 따라가지만 항상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취객으로 가득찬 번화가 한가운데를 반바지를 입고 뛰게 된다.
자연스럽게 달리는 시간은 심야가 된다. 사람도 없고 자동차도 없다. 소리는 낮게 가라앉고 들이마시는 공기는 차가워진다. 자외선 차단제도 필요없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기껏해야 무슨 글을 쓸까 정도 생각할 뿐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땅을 밟는 것에 집중하며 아직도 내가 달리기라는 형태로 기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떤 신이 내 이 기도를 듣고 있을까. 나는 당신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칠대로 지쳐 더이상 악하지도 슬프지도 않을 내 기도가 당신에게 닿기를.
내 어떤 말보다 달리면서 생각하는 이 말들이 진실에 가깝기를.
달리기에 집착하고 있다. 약을 먹고서라도. 보호대를 차고서라도. 그닥 긴 시간도 아니잖아 하고 스스로에게 변명도 하면서.
그렇게 매일 달리기를 하고 있다. 사실은 정말로 달리는 것 외에 나에게 아무 것도 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
오늘은 해가 있을 때 뛰리라 생각하고. 석양이 슬슬 내려오기 전에 러닝을 시작했다.
4킬로미터를 넘을 때 쯤 해가 지기 시작하여 서쪽을 향해 뛰고 있노라니 언제까지라도 뛰고 싶어져서 마음이 아파왔다. 무릎 아파질라. 하고 속으로 웃었다.
그래서 단지 이 노래가 끝날 때 까지만 달려야지 하고 마음 먹었다.
내 사랑하는 당신. 그 어느 누구도 영원히 달릴 수는 없다. 소멸하는 것들은 모두 어디론가 달려가지만, 아직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그렇게 정해져있다.
24년 10월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