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6] 03시의 셰익스피어
내일 내가 네 영혼을 짓누르게 하라,
이 몸, 과한 포도주에 씻겨 죽었노라.
내일의 전투에서 나를 생각하라,
그리고 그 무딘 칼을 떨어트려라.
절망하며 죽으리라.
(<리처드 3세>, 5막 3장 중 클래런스의 유령이 리처드 3세에게)
문학은 나의 오래된 악습이다.
누군가는 야구가, 또 누군가는 음악이 그러한 것이겠지만. 나의 경우엔 문학이 나의 유일한 취미이고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과장을 섞어서 말하자면 내 인생을 망쳐놓은 것도 문학이다. 누구는 아니라고 나의 고집스러운 성격이나 재능의 부족을 말 할 수도 있을테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다. 나를 망쳐놓은 것은 문학이다.
추석이 되기 전에 셰익스피어 전집을 한질 샀다.
재고 문제로 두 권이 빠진 한 질이라서 몹시 거슬리지만 안 살 수가 없었다. 셰익스피어였기 때문이다.(겨우 남들 정도로 좋아할 뿐이지만.)
거실의 잘 보이는 곳에 한 질(에서 두권이 빠진)을 꽂아두고 아무 대중 없이 아무 책이나 빼서 읽고 있다. 여러개의 희곡이 한 권에 기재되어 있지만 한 권을 통채로 읽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이제까지 잘 읽지 않고 대충 넘겨왔던 사극들을 한 작품 씩 읽고, 또 아무거나 손이 가는 대로 잡아서 한 작품을 읽고 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솔직히 즐겁다. 이러다가 딱히 더 읽고 싶지 않아지면 남은 두 권을 더 사서 한질을 완성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지만 지겨워 질 것 같지가 않다. 리처드 3세는 너무 재미있어 지난주에 읽고는 어제 또 읽었다. 리처드 글로스터 공작(훗날의 리처드 3세)은 이 희곡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 이 나약한 평화로운 시대에 시간을 보내기 위한 어떤 즐거움도 없노라.
햇빛에 비춰진 내 그림자를 쳐다보고는 나 자신의 불구를 비웃는 것 말고는.
(<리처드3세> 1막 1장 25행)
이런 말도 안나오는 문장들이 있는데 어떻게 셰익스피어를 안 읽을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요즘 나는 스스로에 대해서 확신을 잃어버렸다. 왜 사는지도 왜 살아왔는지도 잊어버렸다. 목표가 없기 때문에 행동의 호오가 없고. 행동의 호오가 업기 때문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라는 자아를 미지근한 물에 타서는 천천히 녹이고 있는 것 같다. 크게 아프지 않은 대신 편안하게 사라져간다.
블로그에 글을 써두면 그 누구보다 그 글을 쓴 나 자신이 제일 자주 읽게 되는데. 요즘 유독 예전에 내가 어땠는지에 대해서 써둔 글들이 많다. 흡사 그렇게 써두지 않으면 내가 누군지에 대해서 잊어버리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나는 아무래도 예전의 내가 했었던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서 스스로를 재현하고 싶은 것 같다.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역시 살짝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애초에 스스로의 인생을 증언하는 것이야 말로 손꼽히는 바보 같은 짓 아닌가. 항상 자기 자신이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적인 증언자기 때문에.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수다쟁이가 된다. 흡사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재연이라도 하려는 듯 하는 사람도 많다.
당신은 그게 딱히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나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위해서 글을 쓰게 된다면 상황이 좀 달라지게 된다. 실제-기억-기록은 일종의 압축과 재편집의 과정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내가 써둔 글이 달라서 (그 누구도 모든 디테일을 완벽하게 쓸 수는 없다. 프루스트는 빼고)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써둔 것으로 나의 인생을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나는 단지 써둔 글과 나 자신을 분리해두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결국 좀 덜 쓰고 더 읽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시를 읽고 싶으면 시경을 읽고(그렇다 요즘 지긋지긋한 당나라 시를 좀 그만 읽고 시경을 읽는다.) 대체로 셰익스피어를 읽는다.
오늘 아무거나 읽고 있다보니 zone 2 cardio 로 매주 200분 이상을 운동하면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게 되었는데. 내가 30분씩 매일 뛰고 있으니까, 우연인지 zone 2 cardio 로 주 210분을 운동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그냥 내가 모르는 사이 내 정신이 낫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뭔가가 깨진 것처럼 끝없이 흘러나오던 글들이 점점 나오지 않게 되고. 뭐가 문제인지. 정말로 뭘 하고 싶었던건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냥 글 쓰는 것을 멈추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였던가. 작가라는 건 몸과 정신이 건강해지는 것 정도로 글 쓰기를 그만 두지 않는다고.
어제는 새벽 3시에도 잠이 오지 않아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리처드 3세의 주인공, 리처드 글로스터 공작(=리처드 왕)은 비열하고 사악한자이다.
그가 즉위하고 만든 15개조의 공법은 힘없는 평민에게 유리한 법이었지만 그의 즉위 과정은 음모와 찬탈로 가득했고 형과 조카를 죽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용감하고 무예를 할 줄 아는 지휘관이었지만 꼽추였기 때문에 지구력이 약했고 말이 없으면 싸울 수가 없었을거라고 추측한다.
셰익스피어는 그를 추한 외모로 열등감으로 가득찬 인물로 묘사한다.
리처드 3세의 가장 유명한 장면은 바로 리처드 왕의 패배의 직전에 그가 내지르는 비명과도 같은 대사이다.
말! 말을 다오! 내 왕국을 줄테니 말을 다오!
(<리처드3세>, 5막 4장 7행)
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말일까. 참으로 문학은 나의 악습이다. 지독하고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악취나 마찬가지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누구의 것도 되지 않을 아직 오지 않은 왕국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24년 10월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