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7] 겨울이 온다.
요즘 시간을 들여 읽어보는 광고가 있다. 문자의 첫머리에 광고라고 크게 써있는 꽃을 배달하는 업체의 광고다.
지금은 이런 꽃이 나오는 철이구나. 다음엔 어떤 꽃이 나오겠구나. 하고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는다. 지금은 가을국화가 나오는 철이라고 한다. 좀 늦은거 아닌가.
생각해보았는데 언젠가 이맘때 가을국화를 사서 선물한 기억이 났다. 좋아하는 한시 중에 이런 것이 있다.
年年歲歲花相似(연년세세화상사) 해가 지날수록 꽃은 서로 닮아가는데
歲歲年年人不同(세세연년인부동) 해가 지나면 사람은 더 이상 같지 않구나.
짧게 설명하자면 세월은 그렇게 흘러간다는 뜻이다.
친구Y와 사람이 없는 작은 공원에서 고양이를 구경하며 커피를 마셨다.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 세마리, 그리고 아주 작은 새끼 고양이 한마리.
둘이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홀짝 거리면서 아무의미도 없는 멍청한 소리를 하고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추웠고 즐거웠다.
우리는 대체로 심각한 얘긴 하지 않고 아무 이야기를 한다.
까치가 사람을 하나도 경계하지 않네. 쟤들 입장에선 사람은 그냥 느릿느릿한 멍청이니까. 너 내가 참새 사냥 해봤다고 말한 적 있지? 어 참새는 잡기 쉬운가? 그럴리가 있냐.
느릿하게 기어가는 햇볕은, 조용히 그리고 확실하게 겨울로 떠나가고 있었다.
러닝을 하러 나가는데 추웠다. 10초만에 후회했지만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는데. 바람이 너무 쎄서 달리기가 힘들었고 회초리에 맞는것처럼 몸이 움츠러들었다.
실외 기온은 11도였다. 그렇게 추운가 하면 그렇게까진 춥지 않았지만 애초에 러닝용 반바지에 반팔로 나갔으니 그런거겠지. 하지만 1분 쯤 지나자 점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추위가 적당했고 밤공기를 시원하게 빨아들이자 처음에 느껴졌던 날카로운 느낌이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다음 날 출근길에 바람이 쎄서 눈을 감았다. 얼굴에, 팔에, 온 몸에 바람이 느껴졌다. 달리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졌고 가슴이 아팠다. 무엇을 간절히 바라는 것은 항상 괴로운 일이다.
편지를 쓰려고 해본다. 첫머리에 이렇게 쓴다. <…예전에는 편지를 써야 할 때 어떤 고민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바로 써나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어떤 솔직한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참을 고민하고 나서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어서 그대로 삼켜봅니다…>
나는 여기까지 문장을 쓰고는 그대로 둔다. 매일 같이 완성하지 못한, 어디에도 올리지 못한 글들이 늘어간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말의 조각 들이다.
다음날이 되면 다시 로드러닝을 한다. 나는 9월과 10월, 나는 약 20시간을 달렸고 총 달린 거리는 160킬로미터가 넘는다.
이제는 글도 잘 쓰지 않는다. 아니, 글을 써도 어디에도 올리지 않는다. 읽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하는 시간 외엔 하루 종일 즐거운 일이 없다. 외롭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냥 지독한 강박에 빠진 사람처럼 세수를 하고, 이빨을 손질하고 다음 달리기를 준비한다. 시간이 남으면 스트레칭을 하고 거실에 그대로 누워서 책을 읽는다. 유튜브를 음성만 틀어두고 낄낄거리며 듣는다. 영상을 보고 싶은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두부를 계속 먹는다.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까지 두부만 먹고 있는건 아냐 라고 말하지만 그렇게까지 두부만 먹고 있다. 달리기는 8월 말부터 했지만 두부만 먹는 것은 7월 말부터 하였으니 더 오래 되었다. 질리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의미를 잘 모르겠다. 왜 먹어야하는지부터 잘 모르겠다.
다음날이 되면 다시 로드러닝을 한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는다. 몸이 아프면 진통제를 먹고 달린다. 안되겠다 싶으면 평소보다 짧은 거리만을 뛴다. 체중이 계속 줄어들어 회사의 엑셀에 내 15년치의 체중을 적어두었다. 지금의 체중이면 이 해 정도의 체중이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체크 중이다. 기묘한 걸 깨달은 건 2015년의 체중 평균치 정도에 도달했을 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체중이 비슷해지자 근육량도, 체지방비율도 비슷한 숫자가 되었다. 우연일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요새 체중이 줄어든 것 보다 많은 양의 지방이 줄어들었고 그 빈 무게만큼의 근육이 늘었다.
얼마 전에 2014년의 체중 평균치가 되었다. 우연히 그 해 나는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내가 확인 할 수 있는 모든 수치를 확인해보았더니. 지금의 숫자와 2014년의 숫자가 아주 비슷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나는 시간을 돌리길 바라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뒤로 돌아나가 내가 했었던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다시 하려고 하고 있었다.
시간을 돌려서 뭘 하지. 그렇게 시간을 돌리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걸까.
광인의 생각을 하는 거을 광인이라고 한다. 광기로 조금씩 끝이 물들어가고 있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생각해본다.
나는 내 머릿속의 작은 방에서 도망치기를 바란다. 여름처럼 과열되어 같은 생각 밖에 하지 못하는 이 지겨운 곳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봄부터 여름 내내 내가 바란 것은 겨울이 오는 것이었다. 겨울만 오면 모든 것이 괜찮아 질 것 이다.
점점 정신 나간 생각을 하기 시작한 나는,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내가 시간의 연속성 위에 정말로 존재하고 있다면 2024년의 나는 2014년의 나는 같은 존재이니
내가 앞으로 갈 수 없다면 나는 기꺼이 뒤로 돌아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열에 들뜬 광기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신화와 이야기에 나오는 불사의 존재들은 항상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한다. 그들의 불사는 조건에 의해 원래의 모습에서 무너진 삶을 살고. 그들은 불사만큼의 뭔가를 희생한다.
주술과 마법이 진짜로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이야기안에서 어떤 비논리적인 믿음은 항상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겨울이 온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하는 나의 믿음은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여름이 나를 철저하게 파괴했기 때문에 겨울이 온다면 모든 것이 원래 대로 돌아올 것이다.
나는 그냥 그렇게 믿은 걸까?
얼마 전에 써둔 글을 지운다. 그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되어있다.
<…당신이 나를 찾고 싶다면, 갈림길 어딘가에서 운명이 나를 만나게 하길 바라며 눈을 감고 당신 맘대로 아무 선택을 반복하여 겨울로 가는 길을 찾길 바란다. 당신은 어쩌면 하얗고 빨간 두 마리의 사자가 서로의 사랑을 핑계삼아 서로를 물어뜯고 죽이는 곳을 지나 바벨의 도서관에 도착 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바벨의 도서관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어떤 길고 조용한 밤에 내가 있는 곳에 도착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기 위해 창문을 열고 바깥을 보니 저 멀리 겨울이 오는게 보였다.
나는 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다시 또 달리기를 하러 나가야지.
24년 10월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