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중년같은 소리를 하나 하자면, 나는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산책을 한다. 그렇게 긴 산책은 아니다.
회사 근처의 천변을 왔다 갔다 느릿한 속도로 걷는다. 1킬로미터 정도를 걸으면 천변을 건너 반대방향으로 돌아온다.
더 길게 걷다가는 점심시간이 지나니까 그렇다.
산책을 하면서는 대체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전에는 머릿 속으로 편지를 썼다.
나는 그렇게 솔직한 편도 설명에 재능이 있는 편도 아니지만 편지만은 잘 쓰는 편이라서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전하기 위해서 수없이 편지를 썼다.
보내지 못한 편지가 쌓여만 가도 나는 질리지도 않게 편지를 썼다.
언제부터 이렇게 산책을 했었나 하고 생각을 해보니 대체로 4-5년 정도 되었다. 요즘엔 너무 덥거나 비가 오면 산책도 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400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렇게 산책을 한 적도 있었다. 옆자리 후배가 아니 하루도 안 빼놓는거에요?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게 그 당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먹던 삶은 계란 얘기인지 산책 얘기인지 잘 모르겠어서 응? 뭐가? 라고 반문했다. 삶은 계란은 8개월 정도 연속으로 먹은 시점에서 왠지 질려서 그만 먹기로 했다. 산책은 그만두지 않았다. 써야할 편지가 끝도 없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글은 단연코 내 편지들이다. 그 대부분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고 그 문장들 대부분이 내 손에는 있지도 않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서 그렇게 편지를 썼었는지 그 감정만은 그대로 남아있다.
천변을 산책하던 어떤 봄에는 날 벌레가 머리카락 안에 들어왔다. 나는 두 호흡 정도를 기다리고는 머리를 천천히 털어 날 벌레가 날아가게 했다.
버드나무 씨앗이 날아 내 머리카락에도 붙어있었다. 천변은 하얗게 되어 보기만 해도 재채기가 날 것 같이 씨앗으로 가득했다.
징검다리 중간 쯤 잉어가 죽어서 썩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물이 더 썩을텐데 생각했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중간이라 날씨가 더워지고 풀도 벌레도 점점 미쳐서 생장하고 있었다. 녹색의 광기다. 제 정신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여름이 더워지자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길가에 엎드려 죽어있었다. 쥐라고 생각할만큼 작았다. 나뭇가지로 대충 땅을 파서 묻어주었다.
풀 숲 사이에서 눈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사람이 아닌 것들이 아쉬워서 혀를 차는 것이 느껴졌다.
그 다음해에는 고양이를 묻어준 자리에서 실처럼 얇은 뱀 하나가 길가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늦은 장마에 물이 불어 어딘가에서 굴러들어온 커다란 비닐 봉지가 천변 중간에 걸려있었다. 적당한 나뭇가지가 없길래 한숨을 쉬고는 손으로 줏어 회사로 가져가 버렸다.
옆부서 후배가 멀뚱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 다이소에서 싸게 팔길래 하나 가져왔지. 라고 말했다. 적절한 농담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가을이 되자 신이 났는지 오리 가족들이 천변의 풀숲에서 뭔가를 뽑아서 먹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신경쓰지 않게 조심해서 길 옆을 지나갔다.
따르릉 소리가 휘익 하고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오리 가족은 신경쓰지 않았다. 유독 작은 오리 하나가 너 겁쟁이구나 하고 쳐다보았다.
이렇게 추운데 눈 하나가 다친 고양이가 공원에서 하품을 하고 있었다. 거기 있으면 추워 하고 공원 화장실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는 덜 추울거야 하고 알려주었다.
고양이는 알겠다는 듯이 공원 화장실로 들어갔다. 몇 번의 계절 동안 얼굴을 익힌 고양이였지만 다음해 봄에는 만나지 못했다.
천변의 부들풀이 겨울 햇볕에 빛난다. 그걸 한참이나 보고 있노라면 내가 여기에 없어도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있겠지 하고 안심하였다.
겨울의 냄새가 났다. 나는 낮아진 햇볕을 의식하면서 하얗게 퍼져올라가는 입김을 바라보았다. 그게 내 영혼이라도 되는 것처럼.
…
올해의 여름이 시작할 때 쯤에 하얗고 어린 비둘기 한 마리를 천변 옆 비탈길에서 만났다. 나는 인간이라서 항상 똑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지만 그 하얀 비둘기는 새 주제에 항상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 있었다. 처음엔 우연이었지만 나는 굳이 갈 필요가 없는 장소를 조금 돌아서 그 하얀 비둘기를 만나고 회사로 돌아갔다.
새를 무서워하는 나는 별거 아닌 이유로 언제부터인가 비둘기는 싫어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살고 있는 동네 근처에도 비둘기들이 좀 있는데 아침이면 풀 숲에 모여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누군가가 몰래 모이를 주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식사를 하고 있는 비둘기를 보면 여어 하고 인사를 한다. 대부분 나를 무시하지만 어떤 비둘기들은 예의 바르게 꾸욱구우 하고 대답한다.
나는 그 흰색 비둘기가 누군가의 대신처럼 느껴졌다. 손을 들어 잡으면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올 것 처럼 작았던 그 흰 비둘기는 딱히 풀숲을 뒤지려는 생각도 없는 것처럼 비탈길 근처를 뱅글뱅글 돌고 내가 지나가면 나를 쳐다보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있었다.
나는 어째서인지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흰 비둘기는 울지도 않고 나를 슬쩍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인사를 했다.
올해 여름은 더웠다. 날씨가 다시 시원해지자 나는 천변 산책을 다시 시작했다.
흰 비둘기가 있던 자리를 서성여보았지만. 그 어린 비둘기는 없었다. 나는 뭘 기대한걸까.
진짜로 그 비둘기가 누군가의 대신, 혹은 영혼이라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그럴리가 없다.
당신은 이해하겠는가? 이 글은 내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이 편지에는 결론이 될만한 서사가 결여되어 있으며 당신은 이 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굳이 말한다면. 나는 결국 어떠한 형태의 개인적인 구원도 얻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24년 10월의 편지이다.
서명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라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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