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으로 그 사람에 대해서 안다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을 모르면서 어떻게 그 사람에 대해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집에서 클래식만 듣는 사람이었다. 우리 아버지 말고도 그런 부모들이 20세기에는 꽤 있었지 않나 싶다. 한국 대중음악을 혐오하는 뭐 그런 사람들 말이다.
주로 듣는 것은 모차르트를 위시한 화려하고 장엄한 콘체르토들이었는데, 아주 어릴 때 아버지는 내가 절대음감 비슷한 재주도 없다는 것을 테스트 해보고는 아주 실망했다. 내 오해 아니냐고? 아니다 정말 노골적으로 실망해서 다섯살 정도의 나이였던 나도 아버지가 실망했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원하는 자식 상은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했는데 그 첫번째가 절대음감과 고전음악에 대한 심미안이었다.(그 두번째는 수학적 두뇌, 세번째는 테니스 재능이었다. 모든 남자들이 그렇지만 아버지는 내가 자기 클론인간이길 바랐다.)
아버지는 종종 어린 나와 누나에게 지금 나오는 곡은 누구의 곡이야, 라든가 하는 질문을 했는데. 열에 일곱 정도는 모차르트였어서 나는 무조건 모차르트라고 대답했다. 처음엔 내가 모차르트를 구분하게 된 줄 알고 기뻐하던 아버지는 사실을 알고 두배로 실망했는데. 사실 나는 지금도 기본적인 고전음악들은 작곡가를 구분할 수 있다. 고전음악에 딱히 취미가 없을 뿐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있는데 할아버지 댁에서 텔레비젼을 보다 그 당시 유행하던 노래가 흘러나오자 나와 사촌들은 신나서 따라 불렀는데. 아버지는 씁쓸하다는 듯이 집에서 절대로 유행가 안 트는데 어떻게 저렇게 유행가를 잘 알고 있지. 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키운 자식인(적어도 어느 정도 까지는) 나와 누나가 고전음악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전혀 아니다 누나는 서태지의 아주 오래된 열성 팬으로 대학 이후에는 성시경이라느니 하는 음악을 듣는 사람이 되었고. 나의 경우엔 음 좀 더 복잡하다. 나의 음악 취향은 엉망이고 깊이가 하나도 없다.
아버지의 웃긴 점은 자기 차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 껏 들었다는 점인데. 주로 팝송이었다. 고전음악을 그렇게나 들으면서도 오페라는 과장되고 왜곡되었다는 이유로 듣지 않는 사람이 팝송을? 그렇다 나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평생을 당산에서 산, 할아버지 댁에 우리는 주말마다 방문하곤 했는데. 일요일 밤 부천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버지의 차를 타고 꾸벅꾸벅 졸던 순간들은 내 영혼 어딘가에 영원히 저장되어 있다. 아버지의 비틀즈 테이프. 그리고 팝송 모음집. 거기서 나오던 음악들이 내 음악 취향의 모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에겐 억울하고 팔짝 뛸 일이지만 말이지.
그 당시에는 음악을 곡단위로 다운받아 듣는 것이 아닌 어딘가에서 테이프를 사거나 씨디를 만들어서 듣곤 했는데 (간단히 얘길 하지만 사실 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일과 씨디로 듣는 일 사이에는 십년에서 십오년 정도의 차이가 있다) 아버지는 매니아 답게 자기만의 비틀즈 테이프를 몇 개 가지고 있었고(실험적인 곡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인 답게) 일요일 밤은 누군가에게 상을 주듯 비틀즈를 틀었다. 아버지는 헤이주드 같은 것을 좋아했던 것으로 추측하는데, 맙소사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를 들었다.
덜컹거리던 아버지의 차. 그 오른 쪽 뒷자리에서 차가운 차창에 이마를 대고 밤의 한강을 건너며 비틀즈를 들었다.
곧 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할 거고, 여러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가정은 파탄날거고. 나는 지독하게 가난한 상태로 10년을 넘게- 아니 독립을 할 때 까지도 세상이랑 주먹질을 계속할 거란 걸 모르고 나는 반쯤 졸며 그 음악들을 들었다. 아니 안다고 해도 그렇게 음악을 듣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비틀즈는 영원할텐데 말이다.
고등학생 때 쯤 몇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양희은을 듣고 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심술궂었던 나는 이제 클래식 안 들어요? 라고 물어보았는데 (아버지는 집을 나가면서 방대한 도이체 그라모폰 카피판 콜렉션을 집에 남기고 갔다. 그걸 복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하) 클래식도 듣지 가끔 김광석 같은 것도 듣고. 라고 하는 걸 듣고는 아버지에게 맞는 음악은 모차르트 콘체르토가 아니라 쇼팽의 소나타나 그도 아니면 말러 같은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냥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로서 아버지에 대해 살짝 이해한 순간이었다.
차를 타는 이야기를 하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할아버지는 제법 운전을 즐겨하셨고 어린 나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하는건 더 좋아하셨는데. 내심 귀찮게 어린이의 질문을 받을 필요 없이 차를 태우고 멀리 나가는 편이 편해서 그랬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도 할아버지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호인이었고 손주들에게는 다시 없이 인자한 사람이었다.
아주 먼 훗날에는 수술 후 청력을 반 정도 잃어서 음악을 듣지 않으셨을 것 같지만, 할아버지가 운전을 특별히 많이 하던 시기에 할아버지의 차에서 자주 듣던 것은 주현미씨의 앨범이었다. 복제판 열화된 테이프 같은게 아니고 레코드 점에서 사온게 맞다. 나는 아직도 그 테이프 커버를 기억하는데, 당시 젊은 트롯가수로서 아이돌 같은 존재였던 주현미씨에 대해서 할아버지는 봐라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한단다. 1집을 틀고는 드라이브를 시작하셨다. 할아버지는 모르셨겠지만 운전을 기가 막히게 잘 하는 할아버지는 그 당시 나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할아버지는 감정의 일부를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그 어떤 사람보다 복잡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야 할아버지와 긴 산책을 하고 할아버지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욕망도 감정도 없이 단지 세상이 다하는 날까지 모든 힘을 다해서 단지 살아남는 걸 선택한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주현미 외에 할아버지가 어떤 음악을 마음에 들어했는지 모른다. 그건 내가 영영 후회할 일들의 리스트에 올라와있다.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음악 취향은 정확히 안다. 엘비스 프레슬리-남진을 좋아하더니 최근에는 김ㅎㅈ이라는 가수를 좋아한다. 철이 든 후 어머니의 애인을 몇 명 볼 기회가 있었는데 전부 덩치가 크고 기름진 스타일이라서 철저하게 저런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그것도 아버지랑은 완전히 반대되는 스타일의…라는 생각을 했다. 두터운 목소리와 성량으로 노래라도 해주면 너무 신나해서 징그럽다고 생각하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김ㅎㅈ은 이모도 좋아한다고 한다. 자매가 어떻게 된거지 싶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너무 이해가 부족한, 어머니를 납작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 같은가? 그거야 어쩔수 없다 어머니의 음악 취향은 정말로 너무 뚜렷해서 거꾸로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외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과는 뭐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악은 아주 잘 안다. 진짜…엔카를 너무 좋아해서 외할머니와 같이 살 때는 정말 지긋지긋했다.)
나의 음악 취향은 대중이 없다. 최근에 친구가 너는 아이돌에 대해서 도대체 모르는게 뭐야 라고 질색을 했는데, 나는 조용히해 그냥 박식할 뿐이야 라고 말했다. 실은 나는 2021년 이전의 아이돌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냥 여자친구가 좋아했기 때문에 내 특유의 그 뭐냐 무시무시한 그걸로 그랬던 것이다. 그렇게 3년을 파니까 모르는게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아버지의 고전음악 세뇌작전은 어떤점에선 아주 훌륭히 성공했다. 나는 스무살이 넘을 때 까지 한국 대중 음악은 서태지를 제외하곤 한톨도 듣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지금 아이돌 노래 박사가 된 건 아버지의 혐오를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으로 이겨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진짜로) 서태지를 그렇게 많이 들었던 이유는 단지 서태지의 코어 팬인 누나 때문이다. 누나는 정말 지긋지긋하게 다른 가수는 좋아하지도 않고 서태지만 그렇게 들어댔다. 결국 나는 서태지 노래는 가사는 물론이고 곡 수록 순서나 곡의 길이조차 어느 정도 꿰고 있게 되었는데. 누나와 대화를 하지 않게 된 이후로는 거꾸로 서태지를 한톨도 듣지 않았다.
작년, 러닝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을 때 음악 중의 음악은 락음악이고 서태지도 락이지 하는 생각을 하며 앨범을 통채로 넣어서 러닝할 때 들었는데 과연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 나는 러닝 할 때 어떤 음악을 들어도 상관없는 사람이란 걸 자각하게 되었고 오늘 러닝을 할 때는 막스 리히터가 편곡한 비발디의 사계를 들었다.
하여간 나는 한국 대중 음악보다는 일본 대중음악을, 그보다는 락을. 때때로 어떤 소수민족들의 민요를. 고전음악을 하여간 진짜로 깊이는 하나도 없이 아무 음악이나 듣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 마다 종종 내가 누구의 영향으로 이 음악을 듣기 시작했는지를 떠올리면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서태지를 누나 때문에 듣게 되고 아이돌 음악을 전 여자친구의 영향으로 들은 것처럼 대체로 거기엔 여성에 대한 추억이 끼어있기 때문이다. 뭔가를 들을 때 마다 누군가가 생각나는 건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하지만 완전히 누구의 영향도 없이 듣게 된 음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학생이 된 어느날, 나는 아무 맥락도 없이 재즈를 선택해 듣기 시작했다. 어떠한 강렬한 체험도 계기도 없이 듀크 엘링턴부터 시작해 빅밴드의 음악을. 엘라 피츠제럴드의 절절한 보컬을 들었다. 콜트레인도 델로니어스 몽크도 전부 중학생 때 들었다. 밤이 되면 나는 낡은 워크맨에 멋대로 편집해서 음질도 나쁜 테이프를 넣고는 재즈를 들었다. 가끔 걸어다녔고 대부분 뛰었다. 내가 왜 이걸 듣고 있는지 왜 달려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부천의 공장지대를 뛰었다.
때때로 눈물이 났다. 공기를 들이마시면 그 모든 달빛이 내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공장지대의 나쁜 공기와 지직거리는 노이즈의 음악이 필터도 없이 내 몸 속으로 들어와 개화했다. 이름 모를 피아노의 박자는 너무 아름다웠고, 나는 봐주는 사람도 한 명 없는 뒷골목을 울면서 달렸다.
재즈가 나에게 왜 소중한지 알겠는가? 나는 누구의 영향도 없이 벼락같은 계시와 함께 재즈를 듣기 시작했다. 그게 나의 14살의 밤이었다.
25년 5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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