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종일 썼던 글을 지우고는 오늘은 어떤 글도 쓰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오후엔 가까운 유니클로에 가서 구제불능처럼 러닝용 쇼츠팬츠와 자외선차단 파커를 샀다. 어찌된 걸까 분명히 출근용 옷을 좀 사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장바구니에 옷을 넣어서 덜렁덜렁 걸어가는데 아주 좋은 바람이 불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단지 시원하고 맑은, 아주 좋은 바람말이다. 아침에 10킬로미터를 뛰어주지 않았으면 또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겠지. 나는 대신 아주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했다. 햇볕조차 너무 좋은 오후 3시였다.

회사의 시큐리티를 담당하는 업체에는 눈에 띄는 여성 분이 있다. 나보다 80살 정도는 어릴 듯한 미인 분인데. 회사 동료와 지나가다가 그 분이 나에게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하는 걸 보고 회사 동료가 깜짝 놀라서 아는 사이에요? 라고 묻기에. 어 서로 이름 정도는 알죠 라고 했더니 도대체 어떻게 한거냐고 계속 물어보았다. 귀찮아서 사실 저희 어머니입니다. 라고 둘러댔다. 실은 그냥 왔다갔다 하면서 눈이 마주칠 때 마다 인사를 했더니 언제부터인가 서로 인사를 하게 되었을 뿐이다. 사원증을 서로 패용하고 있으니 이름 정도는 서로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분은 사원증에 걸린 얼굴과 그걸 걸고 있는 사람을 비교하는게 일인 사람이니까.
요는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고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인사를 하면 상대도 나를 우호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편의점 직원이나 단골 바리스타 직원이 퇴사 전 인사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카페는 얼굴을 금세 익히게 되는데, 매일 아침 일찍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카페에서 콜드브루를 주문하던 시절 카페의 바리스타는 내가 커피를 주문하면 숫자를 열까지 세기도 전에 내주곤 했다. 열 보다 늦어질 때는 오직 커피에 낙서를 하실 때 뿐이었다.(가끔 토끼나 고양이 같은 그림을 그려주셨다.)

내 친구들은 내가 그럴 때 마다, 낯선 사람들에게 제일 친절하다고 그렇게 친절하게 구는 걸 볼 때 마다 기분이 나쁘다고 말한다. 친구들의 말이 맞다. 나도 내가 사교적이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단지 굳이 비사회적인 특성을 티를 내며 살 필요가 있을까.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면 좋잖아. 그게 뭐가 어때서 라고 친구들에게 말하며 녀석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면 친구들은 더 불쾌해한다.
이런 얘기들은 별 거 아닌 것들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픈 구석이 있다. 나는 뭐가 잘못된 인간인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소중한 사람을 더 소중히 여겼어야 하는게 아닌가.


오늘은 5월 18일이다. 날씨가 아주 좋은 늦 봄 또는 초여름이다. 그리고 7월이 되면 여자친구와 헤어진지 1년이 된다.

사이가 나빠진 것은 5월 부터였기 때문에 사실은 이제 슬슬 1년이 되었다고 생각해도 좋다. 우리집의 창가에서 초여름의 나무들을 배경으로 여자친구가 버스를 타러 가는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일요일의 오후였는데 그날 따라 일찍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 날은 배웅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1년 동안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그날 배웅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는지는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 글은 해답편의 해답이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솔직하게 말하는게 너무 힘들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나를 위해 필요하다는 걸 안다. (그걸 아는데 1년 가까이 걸렸다는게 맞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리워 한다는 것은 나름의 순화된 표현이다. 헤어지는 과정은 별로였고, 헤어진 뒤에 벌어진 일들도 엉망이었지만 인정하기로 하자. 나는 변함없이 그 사람을 사랑한다.

내 인생에 어떤 사람보다도 그 사람을 깊숙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는 온갖 수를 다 써가면서 그 사람을 잊어보려고 했지만 (약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을 사귄다거나. 홧김에 약혼한다거나 그런 건 하지 못했다. 사실 그게 제일 확실한 방법일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다. 모두 다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작년의 5월부터 7월 까지 몇개월 동안 그 사람을 관찰하며 그 사람의 마음이 떠나가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항상 그 사람에게 약속한 것처럼 그 사람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은 나와 헤어진 후로 연락을 해오지 않는다. 그것은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자못 어른스럽게 잘난척을 한다. 떠난 사람을 생각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라든가 어른은 짝사랑은 하지 않는다거나. 하여간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얘기를 수없이 해놓고 이제 드디어 솔직하게 말한다. 나의 노력이나 힘으로는 그 사람을 잊어버리는 것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도 없었다.
실은 최근의 나는 몇개의 계절을 보내면서(그리고 미친놈처럼 책을 읽고 러닝을 하면서) 꽤 성공적으로 그 사람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겨울이 지난 어느날 부터는 더욱 더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괴로웠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 지워버렸던 원래의 해답편에 써두었던 것을 인용해보겠다.

“…내가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멀어지면서. 그 사랑하는 것이 가진 속성이 세계 전부로 퍼져가는거야. 나는 내 애정의 원형을 돌려받을 수 없기에 그 속성들에 집착하지. 어떤 뒷모습, 비슷한 이름, 이빨의 모양, 목소리의 고저, 말투, 표정, 걷는 방법 같은 아무 것도 아닌 것. 아무 의미도 없는 것. 단지 내가 사랑한 것이 가지고 있던 그 속성들은 부숴진 세상의 모든 곳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속성들을 발견할 때 마다 내 애정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거야.
그리고 거기에 내 감정이 있다는 착각을 하지. 그게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은 한 때 하나였던 세계의 파편일 뿐인데. 365분의 1의 파편. 아무 의미도 없는 단편적인 조각들…”

요지는, 세상의 어떤 것을 보아도 거기서 그 사람의 일부를 보기 때문에 괴롭다는 얘길 문과 특유의 뱅뱅 돌려말하기. 아니 앵간한 문과도 이 정도로 돌려말하진 않겠지 하여간 내 특유의 뱅뱅 돌려말하기로 써둔 것이다. 나는 매일밤 그 사람의 꿈을 꿨고 매일 그 사람의 생각을 하는 걸 피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에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모든 속성들을 떠올려야 했기 때문에 꼭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산산히 분해되어 세상의 모든 것에 깃든 것처럼 느껴졌다. 이 고통은 그 사람이 부재하기 때문에, 점점 내 머릿 속에서 그 사람이 잊혀져가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목소리를 들어야만 치유되는 종류의 고통이다. 그래서 나는 그 고통을 계속해서 어떤 다른 방식으로 우회하려고 노력했다. 그 사람의 부재와 더불어, 나는 그 사람을 잊는 것 또한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잊지 않으려는 내면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래서 지겨워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에 와 두부 한모를 먹고 한 숨 잔 다음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아마 또 어느날의 변덕으로 이 글을 그대로 블로그에서 지울 지도 모른다. 알게 뭐야 내 블로그인데)

나는 그냥 그 사람을 좀 처럼 잊을 수 없다는 것과 그 사람이 내 일부에 스며들어 있어서 내가 아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걸 자의로는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한다.
나의 실패에 대한 겸허한 인정과 더불어서. 그대로 시간이 어떻게 가고 그와 함께 내가 어떻게 되어갈지를 지켜보기로 했다는 걸 말하고 싶다.
어쩌면 이렇게 살다가 어느날 으악 하고 죽을 수도 있는 법이다. 아니면 어느날 어떤 여자아이를 만나고 뭐지 얘 엄청 웃기네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단지, 억지로 잊으려고 하지 말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려고 하지 말고. 나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스러지고 내 영혼의 빛이 어떻게 바래어가는지 그 시간을 견뎌보도록 하기로 한다.

그렇게 하기로 하자.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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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마을버스 뒷바퀴에 깔린 사람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를 거의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젯밤 9시 40분쯤 서울 ㅇㅇ구ㅇㅇ동ㅇㅇ터널 사거리 인근 한 버스 정류장에서 ㅇㅇ대 여성이 마을버스 바퀴에 깔려 숨졌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여성은 마을버스에서 내린 뒤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이후 버스 오른쪽 뒷바퀴에…(후략)>

찾아본 바, 9개의 매체에서 기사가 나왔고 내가 봤던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원래대로라면 나도 볼 일이 없었던 기사였지만 다른 기사를 보다 우연히, 그리고 무심코 클릭해서 보게되었다. 기사를 읽은 건. 5월 10일의 오전 쯤으로 기억한다.

사고가 난 곳은 내가 아주 잘 아는 곳이다. 기사에 첨부되어 있는 사진은 감시카메라의 화상의 캡쳐된 이미지(어두운 비오는 날의)였고 지도 어플을 열어 예상되는 버스 정류장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고가 난 장소는 모교의 후문에서 역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버스 정류장이다.

나는 마침 그 동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알고 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불안해진 나는 사고가 난 ㅇㅇ구에 있는 모든 응급병원과 장례식장을 검색하고 빈소에 등록된 망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러고도 안심할 수 없었던 나는. 해당 구의 근처에 있는 3구지역의 병원들을 모두 찾아서 확인했다.

굳이 그렇게 까지 한 건 직감 같은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오랫동안 회사원으로 일했던 사람의 업무 방법론 같은 것이다. 거기에 내가 아는 이름은 없었다.

그렇지만 한 번 머릿 속에 들어온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같은 구 혹은 인접 구 내에서 모든 게 이루어진다고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족들에게 가까운 곳으로 장례식장을 옮기는 경우도 충분히 많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찾아봐야 하는 범위를 넓힌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며 무엇을 찾아야 하고 어딜 먼저 찾아봐야 하는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하지만 그건 광기나 다름없는 생각이다. 전국의 모든 병원, 아니 최소한 수도권의 모든 병원을 확인하기 전에는 계속해서 집착하게 될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창을 닫고 이름을 찾는 걸 포기했다. 그리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기사의 댓글에는 주로 사고로 사망한 승객이 불쌍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지만 승객이 내릴 때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던게 아니냐든가 버스기사가 불쌍하다는 댓글 또한 꽤 많았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한 모든 기사, 모든 댓글을 다 읽었는데,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승객의 부주의함과 운전사의 무결함을 전제 삼아서 댓글을 달고 있던 걸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읽은 기사들 중에는 더 이상 의미 있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승객이나 운전사의 그 어떤 추가 정보 없이 나는 뭔가를 판단 할 수 없었다.

한국은 이상할 정도로 운전자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운전자가 보행자에 대한 사망 사고를 일으켜도 죽은 보행자보다는 운전자의 트라우마를 걱정한다던가 여러가지 멸칭으로 보행자를 칭하는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의 다수는, 적어도 댓글 창에 글을 쓰는 사람들의 다수는 보행자로서 사고를 당하는 불행은 자기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불운한 - 불운하다고 하자 - 사고에 대해서 죽는 쪽 보다는 죽지 않는 쪽이 될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모든 인간은 보행자고 그 반도 안되는 수만 운전자일텐데 말이다.

5월 9일 밤에는 비가 왔다. 서울은 물론 수도권 전체적으로 비가 왔다.

어두운 밤이었기 때문에 내리는 승객이 잘 보이지 않았을 수는 있다. 특히 차량의 왼쪽에 운전석, 오른쪽에 하차석이 있는 한국의 버스는 하차하는 승객들이 잘 안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비가 왔다. 마을버스의 오른쪽 뒷바퀴에 깔려서 사망했다면 하체가 아닌 상체가 깔렸다는 이야기이고. 그렇다면 아마 승객은 미끄러져서 뒤로 넘어진 상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가 앞으로 가는 것을 피하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넘어지는 것을 자신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올해 몇 번 넘어졌다. 웃기게도 500킬로미터를 넘게 러닝하는 동안 함 번도 넘어지지 않았으면서 그냥 출근을 하다가 넘어진게 두번. 퇴근을 하다 넘어진게 한 번이다.

그 중 출근을 하다 넘어진 날은 눈이 오는 날이었다. 나는 펭귄처럼 조심해서 걷다가 넘어졌고 그런 내 머리 바로 2미터 앞에서 차의 앞바퀴가 멈췄다. 평소에는 차들이 미친듯이 과속하는 구간이었는데 그날은 경찰차가 구석에 멈춰서 차들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차들은 묘하게 서행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넘어진 것은 우연 때문이지만 내가 차에 치이지 않은건 구석에 멈춰서서 차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경찰차 덕분이다. (몹시 억울하게도, 이 때 넘어져 무릎을 다친 나는 절룩거리며 언덕을 내려가던 중 한 번 더 넘어져서 갈비뼈가 부러졌다.)

사람들은 원래 자신의 행운을 과신하고, 우연을 아예 없는 것처럼 군다.

80% 성공 확률이라고 한다면 5번중에 1번은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고 봐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전 게임에 대해서 다룬 유튜브 채널에서 80% 성공 확률을 가지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100% 확률인 것처럼 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제 확률을 좀 더 높여서 90%정도로 보정한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생각해보면, 그냥 우연히 읽게 된 기사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나와 스스로에겐 절대 어떤 억울한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댓글창의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5월 11일에는 산책을 했다. 공원을 지나 농구를 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다 내 옆을 지나 빠르게 걸어가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비가 그쳐 바람을 시원하고 공기가 맑았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25년 5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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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세면대에서 수돗물을 받아 마신다. 미지근한 물은 마시는게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수돗물은 음용수로 써도 문제가 없는 걸 알고 있기에 손을 모아 물을 담고는 물을 꿀꺽 삼킨다. 목구멍도 가슴도 아닌 어딘가가 살짝 지글거리며 아프던 감각이 금세 사라져간다. 공기를 잘못 삼켜 그렇게 어딘가가 작게 부풀어오르듯이 아파올 때면 물을 마시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너는 언젠가 고집스럽게 그 아픔을 가만히 놔두었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기다려본 적이 있었다. 아픔은 작아지지만 결코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너는 그 뒤로 - 공기를 잘못 삼켰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은 원인을 모를 - 그 아픔이 올 때면 물이 있는 곳에 달려가 물을 마셨다. 그 아픔은 갈증과는 다르다. 그리고 갈증처럼 물이 없는 이상은 영원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네가 있는 곳은 병원이다. 몸이 아픈 것은 아니고 정기적으로 들르는 곳이다. 아직 진료까지 시간이 남아 - 그리고 어쩐지 목 한 쪽 구석이 아직 아픈 것처럼 느껴져 - 커피를 사러 카페에 가려다가 혈액검사실 앞에 자판기가 있는 것을 발견해서 생수를 뽑아 마신다. 자판기가 있었던걸 알고 있었나 모르고 있었나. 화장실에 달려가 수돗물을 마신게 왠지 바보처럼 느껴진다. 주말에 예약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평일에 예약하고 왔던 건데, 평소에 느꼈던 것 보다 더 노인이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너는 나도 어떤 사람이 보기엔 노인이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어느 정도 나이의 사람이면 나를 노인이라고 생각할지 궁금해한다. 스무살 쯤이면 그러려나.

진료는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났다. 마지막 진료 후에 사고가 있었어서 두달 가까이 제대로 운신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너는 고집스럽게 유산소 운동에 집착해서 숫자는 오히려 3개월 전보다 더 나아져 있었다. 너는 밝은 표정으로 깔깔 거리며 웃고 스스로를 너무 비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적당한 농담을 해서 괜찮은 사람을 연기한다. 너의 주치의는 - 어느 덧 10년 가까이 너를 진료해준 사람 - 웃으면서 4개월 후에 보자고 한다. 성공이다. 이 사람은 네 상태가 좋으면 다음 내원시기를 뒤로 미룬다. 그러면서 너무 그렇게 극단적으로 살지는 말고요. 하고 덧붙인다. 그건 네가 하루에 천칼로리씩 태우면서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도 잘 아는 이야기이다. 여자친구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너는 왜 1이랑 10밖에 없는 사람 같아? 너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칭찬을 들은 사람처럼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다. 그게 칭찬이 아니란걸 알기 때문이다.

약국에는 역시 노인들이 많다. 너는 약국 안의 사람의 수를 센다. 약 하나가 나오고 다음 사람이 약을 받는 시간을 세보고는 내가 얼마나 기다려야할까를 계산해본다. 의식해서 하는 거라기 보다, 모든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30분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너는 살짝 실망한다. 그리고 내심 달리 할 일도 없으면서 뭘 실망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가져온 책을 편다.

넌 알고 있을까. 너는 요즘 위태로울 정도로 책을 많이 읽는다. 밖의 모든 것에 관심을 끄고 싶다는 듯이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책을 읽는다. 걸어다닐 때도 책을 읽고 자리에 앉아있을 수만 있다면 책을 읽는다. 억지로 책에서 고개를 돌려서 유튜브를 보고 스마트폰을 쥐고 뉴스를 듣는다. 세상 어딘가에 연결이 되어있지 않으면 사람은 살수 없다는 것을 너는 안다. 그러면서도 그걸 외면하고 싶어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 때문에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너는 억지로 먹고 억지로 웃고 억지로 잔다. 자고 일어나면 달리기를 하고. 회사를 나간다. 그리고 남는 시간 전부를, 책을 읽는데 쓴다. 그것이 요즘 너의 작은 비밀이다.

삼십분은 금방이다. 처방전과 영수증을 찍어 보험회사에 보내며. 너는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밝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약국을 나간다. 친구들은 너의 그런 모습을 싫어한다. 낯선 사람에게 가장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다. 그것은 네가 싫어하는 너의 아버지와 같은 습성이다. 아버지는 가까운 사람에게 잔혹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처럼 되는 것은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거기에 생각이 닿자 너는 자기가 했던 가혹한 행동들과 말을 떠올린다.


날씨가 좋은 평일이지만 네가 해야할 일은 없다.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여서 해야할 일들은 전부 다 해두었기 때문이다. 1시도 되지 않아 모든 할 일을 마치니 이제 해야할 것이 없어진 너는 서점을 갈지 미술관을 갈지 고민이다. 누군가를 만날 약속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는 방법을 까먹기라도 한 것 같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면 된다. 대체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정말로 그리운 사람들이다.
아침에 지나왔던 덕수궁 길은 정말 예뻤지. 너는 적당히 시원하고 공기가 맑은 평일의 오후가 아쉬워서 경희궁과 숭정전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본다. 점심시간은 슬슬 끝나갈 텐데 주변의 직장인들이 무리를 지어서 산책하고 있다. 평소보다 나무의 색은 더 진하고 잔디에 물을 뿌리고 있는 스프링쿨러마저 신나보인다. 목요일이면 노동절이고 그 뒤로 연휴가 이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좋아보인다. 어쩌다가 직장으로 잡혀 와서 월급을 벌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마 네 얼굴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물론 너는 오늘 출근을 한게 아니기 때문에 파란색의 볼캡에 진청색의 워크자켓, 진한 색의 진을 입어서 별로 직장인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표정이 그럴거라고 말해볼 뿐이다.

경희궁을 한바퀴 돌고 나니. 너는 또 서점에도 가고 미술관에도 가기로 한다. 덕수궁 미술관에도 보고 싶은 전시가 있었지만 현대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전시는 주말에는 자못 붐벼 지금이 아니면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왜 할일을 가득 만들어내서 일정을 꽉채우고 싶어할까. 여유롭게 밥이라도 먹으면 좋을텐데 너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네가 왜 밥을 먹지 않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너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한다면 도대체 왜 잘 읽지도 않는 과월호 스켑틱을 또 샀는지를 먼저 물어보는게 낫겠지.
너는 책을 산 돈은 네 돈이 아니라 나라에서 주기라도 한 것처럼 책을 사댄다. 안 그래도 그랬던 것을 요즘에는 더욱 고삐가 풀린 것처럼 사댄다.

네가 보고 싶었던 전시는 해외 현대조각가의 전시는 아니었지만. 하고 있던 특별전을 피한 적이 없는 너는 바로 티켓을 끊어서 보러 들어간다. 네 취향일리가 없다는 걸 알고있어서 반쯤 웃으려고 들어간 너는 역시나 전시물 전부를 깔깔 거리면서 본다. 전시물과, 전시물을 둘러싸고 있는 관람객들 모두가 너무 웃기다. 그렇게 까지 비웃을 필요는 없이 나름 조형적인 미를 지닌 뛰어난 작품들이었지만 너는 유쾌한 기분으로 전시를 둘러본다. 다른 모든 관람객들과 다르게 혼자서 보러온 거기 때문에 전시를 다 보는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는 또 남들은 잘 보지 않는 다른 특별 전시까지 꼼꼼히 보고는 웃기긴 한데 좀 아쉽다 그치, 라는 생각을 한다.

어릴 때 너는 어딘가에 혼자있어야 할 때 유쾌한 사람의 흉내를 내거나 다른 누군가가 있는 듯한, 그것도 아니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흉내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혼자 있어야 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저 흉내들을 때때로 두개 이상, 어떤 때는 세개 이상을 하기도 했다.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유쾌한 태도로 뭔가 생각을 하는 것처럼 굴었다는 뜻이다.
언젠가는 너에게 그런 흉내를 내지 않아도 그 어떤 사람도 너에게 신경을 쓰지 않아, 라고 말해줘야 할 텐데 나는 너도 이미 그걸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자기 배역에 빠진 광대처럼 이제는 그 흉내를 그만두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너는 뭐가 진짜인지 이제는 좀처럼 알수 없게 된게 아닐까 싶다.

전시를 다 보고 너는 평소 그랬던 것처럼 기념품 점을 기웃거리고, 다른 미술관에는 없는 이 미술관의 장점인 예술 서점을 들린다. 좁고 손님도 적은 이 서점은 네가 이 미술관을 들를 때 마다의 기쁨이다. 이미 미술관에 들르기 전 대형 서점에서 잡지 몇권을 사서 가방이 무거운데도 오늘도 굳이 들르는 것을 빼먹지 않는다. 불편하게 길고 좁은 형태로 되어 있는 이 서점은 책 진열대 앞에 서있으면 어색하게 다른 손님과 나란히 서있게 된다. 너는 책을 훑어보다 스스로 생각한 농담에 웃겨 비척비척 움직이려다 옆에 서있던 사람에게 부딪힐뻔 한다. 부딪히지 않았는데도 너는 깜짝 놀라서 그 사람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숙인다. 너는 쑥스러워져서 (살 생각이 없었던) 스티븐 샤피로와 히토 슈타이얼을 하나씩 들어서 계산을 하고 나간다. 아직 해는 지지 않았고 바람이 살짝 더 강해졌을 뿐 아직도 그대로 좋은. 고스란히 아름다운 오후였지만. 너는 황급히, 얼굴이 빨개진 채로 뛰쳐나간다.

나는 네가 왜 깜짝 놀랐는지 안다. 너는 책을 읽다가 자기도 모르게 옆에 있었던 모르는 사람에게 봐봐 이거 웃기다 라고 보고있던 책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네가 그런 짓을 하려고 했는지도 안다. 거긴 네가 자주 가던 미술관에 딸린 서점이었고 옆에 서있던 낯모르는 사람은 너에게 아주 익숙한 키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익숙한 키의 사람이 바로 옆에 서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너는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이걸 봐. 하고 말을 걸려고 했었다.

그건 그냥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어 라고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너는 깜짝 놀라서 이미 미술관을 나와 거의 뛰는듯한 속도로 도망친다.

나무는 흔들리고. 오후가 아직 남아있었는데 말이지.

25년 5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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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너무 따뜻하기도 하고, 지갑 어딘가에 넣어뒀던 사진이 생각나기도 해서 나는 좀 죽고 싶어졌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두리번거리고 있노라면 달짝지근한 꽃향기가 난다. 하늘은 파랗고 며칠 전 내린 비에 공기는 맑아, 먼지도 흙도 입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숨을 들이쉬는 일이 즐겁다. 그렇다고 해도 죽고 싶어진 마음이 낫는 것은 아니다.

원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면 고스란히 그곳에 있다. 불합리하다고, 모든 것은 세상의 흐름 속에서 변해가는데 마음만은 어째서 변하지 않는지 항변해보지만. 그런 항의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마음은 거기에 있다.

- 4월 10일 목요일, 비가왔다.

주말에도 비가 올거라고 했지만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20대 대통령 파면 기념으로 타올을 만들까 싶었는데 8일 화요일, 그 얘기를 들은 친구가 그러지 말고 다른 친구들한테도 얘기해보자- 라며 냉큼 단체대화방을 만들었다. 이러면 책임감을 가지고 만들어야 하잖아 싶어서 업체에 전화도 해보고 하면서 대충 비용은 얼마나 들 것인지 디자인은 어떻게 할 것인지 확인도 해보았다.

단계 별로 다른 친구들 확인을 받았는데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라 그런지 까다롭지도 않고 그래그래 좋아좋아 하며 다 넘어가줘서 하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이 녀석들 근데 웃기는 타올 좀 받겠다고 인당 십만원 정도 쓰겠다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진짜 다들 그 생각이었다.

드디어 오늘 모든걸 확정해서 타올을 주문했는데 시안을 여기저기에 올리자 의외로 인기가 좋아서 본인들에게도 팔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일단 전체 제작 수량 중 내 몫은 15장 뿐이고 누구에게 팔기도 애매하여 그러지 말고 만나게 되었을때 줄게. 라고 말하자 타올을 팔라고 하던 사람들 중에 반 정도는 그게 더 어려운 조건이라고 투덜거렸다. 제작한 타올은 월요일부터 배송이 출발할거란다. 기대가 된다.

- 4월 12일 토요일, 비가 왔다.

어딘가에서는 눈도 내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동네에도 눈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박 정도는 내린게 아닌가 싶다. 눈이 아니더라도 바람이 세차고 비 정도는 내릴 것 같은 날씨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러닝을 했고. 그 뒤로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어서 한가해졌다.
지난주에는 그럭저럭 의욕이 남아있어서 넷플릭스도 보고 책도 읽고 그랬는데 오늘은 의욕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다. 이프 구문을 사용해 지금의 상태를 표현해보자면. 내가 의욕이 있었다면 나는 외출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정도가 되겠다.


- 4월 13일 일요일, 바람이 세게 불었다.

마트가 문을 닫는 일요일이라는 것을 아침에야 깨달았다. 어제 뒤늦게 떡볶이라도 먹으려고 아파트의 야시장에 갔는데 바람이 너무 불어선지 떡볶이 사장님은 철수를 하셨고. 과일 사장님이 시무룩하게 있으시길래 딸기를 4통이나 사왔다. 덕분에 굶어죽을 걱정은 없다. 하지만 딸기 4통…적절한 식단은 아닌 것 같다.

오후가 되서야 뭐라도 외식을 할 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밖을 나섰는데 역시나 바람이 세차서 기분이 자못 유쾌해졌다. 이상한 사람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너무 더운 날을 제외하고 일단 기후가 평소같지 않으면 유쾌해지는 사람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 근처에는 항상 대학교가 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하여간 항상 그랬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평생 학교 근처를 기웃거릴 팔자인가 보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도 마찬가지라서 종종 그 근처로 산책을 간다. 학교에 들어가는 일은 잘 없다. 나는 어떻게 보아도 대학생으로는 보이지 않는 나이이고 혼자서 남의 학교에 용건도 없이 들어가는 것은 좋은 생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은 바람이 너무 쎄서, 때 마침 해가 지려드는 저녁이라서. 그리고 아직 꽃이 떨어지지 않을 시기라서 남의 학교에 들어가 교정을 걸어다녔다. 길고 나즈막한 산에 기대듯이 펼쳐진 교정이라 교정 전체에 심어져 있는 꽃나무들이 제법 잘 어울린다.

예전에 나는 메인도로를 따라 걸어 대운동장 주변을 돌아 언덕길을 올라가며 이 학교의 꽃들을 구경하곤 했다. 혼자서 그렇게 온 적은 거의 없다. 이 동네에 산 지 8년은 되었으니 굳이 따지자면 내가 이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보다도 더 오랫동안 이 학교를 다닌 셈이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뻔뻔스러운 억지라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나는 외부인이다. 있어서는 안될 정도는 아니지만 있는게 자연스러운 사람은 아니다.

대운동장에는 학생들이 뛰어다니고 있다. 도대체 뭘 하는 건지 훈련인지 놀이인지 알 수 없는 것을 하고 있다. 나도 그들에게는 관심이 없어서 두껍고 오래된 꽃나무들에 눈을 돌렸다. 올해의 꽃은 작년의 꽃과 다를 바 없으며. 내년의 꽃은 다시 피어날 텐데. 나는 올해의 꽃에 미련을 담아 바라보았다.
있어서는 안될 곳에 있는 내가, 가장 자연스러운 때에 피어나는 것을 부러워 하는 것은 실로 비참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은 여기가 아니었다. 나는 누구의 허락도 받지 못한 채 존재하고 있었다.

바람이 차가워졌다. 나는 예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 저 멀리 보이는 나무들을 쳐다보다. 그대로 학교를 내려왔다. 저녁을 먹으려고 나갔지만 뭔가를 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 4월 14일 월요일, 비가 왔고 날이 풀리지 않고 그대로 추웠다.

회사를 마치고 서둘러 걸어 병원에 갔다. 예약해둔 치료에 늦고 싶지 않았다. 6시 반 쯤 예약해둔 치료에 때맞춰서 갔을때 모든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8시 쯤 된다. 일주일에 두 번은 그렇게 집에 들어가게 되니 5분이라도 빨리 도착해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이득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치료가 더 힘들었다. 가슴 근육이 짓눌린것처럼 아팠고. 넓적다리를 포함해 다리가 욱씬거렸다. 감기이려나, 생각하며 치료를 받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되지 않았다.

재활치료사 분은 잘 안 될 때도 있는거죠. 라고 말하며 약을 먹고 집에 빨리 돌아가 쉬는 걸 권했다. 그 말대로 집에 돌아가며 과자 한 박스를 샀다.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했다.

- 4월 15일 화요일. 일부 흐리고 따뜻해졌다.

파면 기념 타올이 왔다. 회사 선배 중 한 명은 인터넷말고 진짜로 이런거 하는 사람 처음 본다. 라고 하기에 짜잔 인터넷에 있는 사람 중에 한 명이 저에요 라고 말했다.
같이 타올 구매에 돈을 낸 친구들이 모두 먼저 받았고 마지막으로 받은 사람이 나였다. 생각보다 커다란 박스에 타올이 가득차 있었다. 이게 십만원 돈을 쓸만큼 보람찬 짓인가 하고 혼자 생각해봤는데, 아무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것 또한 애초에 맥락이 없는 건데 말이지.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25년 4월의 글이다.

퇴근하려고 계단을 내려오니 하늘이 검푸른 색이었다. 나는 잠시 멈춰서서 먼 곳을 쳐다보고 생각을 했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여기에 쓰지 않기로 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입 밖에 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잊어버릴 그런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코트에 한쪽 팔은 끼워넣고 다른 쪽은 어깨에 걸친 채로 집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겨울이 나를 따라 지나가고 있었다.

결국 봄이 왔지만,
나는 아직도 내 어딘가가 결락된 것처럼 느껴진다.

오랑캐 땅은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아.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 동방규(東方虬), <소군원(昭君怨)>

몸도, 마음도 어딘가 깨져서는 원래의 형태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그릇처럼 되었다.
제대로 달리지 못하게 되었고 어깨 위로 올리지 못하는 왼팔은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끊임없이 되새기게 한다. 나아지겠지, 나아져야지 하고 생각하며 한달 남짓 재활을 받고 나서야 어깨의 고통이 좀 가시고 서툰 동작이나마 하게 되었다. 언제까지 재활 치료를 해야할까요 몇주 정도 걸릴 것 같나요. 라고 묻자 다소 심술궂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재활치료사는 몇 주요? 몇 달이 아니고요? 라고 말하더니 곧 실수 했다는 것을 깨달은 듯이 지금 잘 낫고 계세요. 그래도 두달은 더 하셔야 할 것 같네요. 라고 말한다. 어깨 언저리까지 팔을 힘들게 들어올리며 나는 땀투성이가 된다. 이 쉬운 동작이 이렇게 어려우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재활치료사는 어색하게 동의한다 근육이 작은 부분이라 그래요 잘 되실거에요.

달리기를 다시 시작한지는 아직 한달이 되지 않았다. 러닝을 다시 할 때는 달릴 때 마다 어깨가 찌르는 것 처럼 아파서 어깨를 고정하고 지탱하는 서포터를 차고 달렸다.
재활치료사가 어깨가 아픈걸 참고 일상생활을 하지 않으시면 낫는게 늦어져요, 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몇주는 더 서포터를 한 채로 달렸을텐데. 며칠 고통을 참으며 달리자 팔의 아픔은 의외로 금방 나아졌다. 속도는…형편 없다. 달리는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겨우겨우 달리는 척을 한다고 밖에. 그래도 달리고 있을 때는 즐겁다. 온전히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기 위해 노래도 듣지 않고 달릴 때가 있다. 발구름, 팔의 각도, 호흡의 깊이. 모두 자연스럽게 되는 것들인데 때때로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집중하며 동작을 해본다.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배우는 사람처럼 말이다.

며칠 전엔 집안 꼴이 엉망이 되지 않도록 집을 좀 청소했다. 몇박스나 되는 짐을 빼냈는데도 내 집은 엉망이다. 오히려 더 엉망이 된 것 같다. 모든 것이 모든 방향을 향해 쌓여있고,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더 이상 혼란이 더해지지 않도록, 꼭 머릿 속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먼지라도 치우는 것 뿐이다. 이 짐 어딘가 안 쪽 구석에 정말로 중요한게 있는거겠지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보려고 노력한다. 내심, 이제 이 집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라고 생각한다. 뭐 하나라도 남겨놓을 걸 그랬지 하고 후회한다.

중요한 것은, 쪼개진 마음을 다시 고치는 일이다. 나는 운동을 하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고 잠을 잘 자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하면 쪼개진 마음도, 박살나서 가루처럼 된 일상도 나아지길 기대한다. 물론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나의 편식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작년 여름부터 시작된 편식 습관은 당근이나 오이를 골라 먹지않는 어린아이의 귀여운 습관이 아니라. 질리도록, 계속해서 한가지 음식을 먹는 습관이다.
물론 그 음식이 없으면 굶는다거나 하는 팬더같은 습성도 아니다. 누군가 뭐라도 주면 아무거나 먹는다. 다만, 내가 뭔가를 선택해야할 때. 혼자서 뭘 먹어야할 때. 나는 항상 같은 음식을 고른다. 그렇게 되었다.
누군가는 두부를 왜 그렇게 많이 먹어요 두부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나빠요, 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쁜 것은 두부가 아니다. 나에게 정말 해로운 것은 같은 음식을 계속해서 먹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매일 아침 회사에서 똑같은 메뉴 - 삶은 계란과 고구마, 그리고 커피 - 를 받아와 13개월째 먹고 있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어떤 결정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뭔가를 결정해버리면 시간이 지나가고, 모든 지금이 결국 과거가 되는 걸 피하고 싶은 것처럼 구는 것 같다.

요즘 먹는 것은 딸기이다. 매일 저녁 딸기 500그램을 먹고 배가 고프면 컵라면 같은걸 하나 더 해서 먹는다. 먹는걸 잊어버리면 또 빠르게 살이 빠진다. 빠르게 찌는 것도 빠르게 빠지는 것도 바라는 바가 아니라서 나는 꾸역꾸역 뭔가를 먹는다. 내가 뭘 먹는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곧 딸기철이 끝나서 딸기 편식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는 점이다. 불행인 것은 내가 또 다른 매일매일 먹을 음식을 골라야 한다는 점이다. 편식을 그만 둘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아지겠지. 나는 매트 위에 누워 왼쪽 팔을 브이자 모양으로 펴면서 생각한다. 이 바보 같은 동작들도 수천번을 반복하면 능숙해질거고. 팔이 더 이상 아파지지 않을 순간이 오겠지.

부러진 마음도, 쪼개진 생각들도.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텅빈 마음으로 살아가는 한이 있어도 말이야.

6월에는 홋카이도에 간다. 몇년 만인지도 모르겠다. 6년 정도 되었으려나.

오랜만에 홋카이도의 지도를 보니. 그 커다란 습원이 떠올랐다. 주변을 둘러싼 모든 곳에서 불던 바람과 벌레, 새의 소리들.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던 그 새하얀 모래구릉. 여우가 만들어낸 구멍. 물가 근처에 모여들던 이름 모를 새들. 덤불 사이를 빠르게 날아 가버리던 그 작은 새들. 바다 저 멀리 종을 모를 고래가 꼬리 지느러미를 내리치던 모습.

무엇보다 아무도 없었던 그 순간들.

나는 그 아무도 없었던 그 순간들이 너무 그립다가도, 이 부서진 마음으로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5년 4월의 글이다.

올해 청명날이 되자, 봄이 찾아온 기분이 들었다.

올 3월엔 계절에 맞지 않는 눈이 몇 차례나 왔고 얇은 봄 자켓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추위에 멋쟁이가 아닌 나는 두터운 겨울 코트를 그대로 입고 회사에 갔었더랬다.
점심을 먹으러 친구와 나가는데 건물 앞 벚꽃에는 이미 꽃이 만개할 듯 꽃봉오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이제껏 보지 못한 탓이려나, 봄이 오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지냈구나 싶어서 코트 깃을 바르게 펴고 겨울 옷 안에서나마 기지개를 펴보았다.

어째서 이렇게 봄이 오는지도 몰랐단 말인가. 어린 시절 내가 자란 집 옆에는 크고 멋진 백목련이 있어 봄이 오면 항상 누구보다 빨리 그걸 알 수 있었는데, 봄과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도 만개한 백목련을 볼 때면 봄의 좋은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바닥에 꽃이 떨어져 썩어가는 모습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와는 별개로 봄이 오는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묘한 고집은 어릴 때도 그대로여서 딱히 올해가 아니어도 나는 봄 꽃이 피어오를 때 까지도 겨울 옷을 그대로 입으며 다녔고 주변 사람들의 한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봄이 싫은건 아니라고 설명하련다, 굳이 따지자면 겨울을 너무 좋아하는 탓이다.

그렇다고 해도, 겨울이 이렇게 길어질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난 겨울, 여행은 한번 밖에 가지 않았으나. 회사에서는 남에게 말하고 싶지도 않은 피곤한 이슈가 있었고 무엇보다 두번에 걸쳐서 크게 다쳤는데. 어깨도 무릎도 그 재활치료를 아직도 하고 있다. 요는, 멀미가 날 정도 지난 겨울에 여러가지가 많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시위도 있었다. 시위에 나간 날을 세어보니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12월 3일 이후 벌어진 시위에는 바로 참석 할 수 있었지만 여의도에서 광화문으로, 그리고 한남동으로 모이기 시작한 딱 그 시점에 크게 다치기 시작한 탓이다.(다치기 시작했다고 설명 할 수 밖에 없다, 몇 번이나 다쳤기 때문이다.) 재활치료는 둘째 치고 너무 크게 다친 탓에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던게 컸다. 잘 걷지 못하거나 몸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외출을 하겠는가. 다시 시위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3월 중순, 부러진 어깨뼈를 지탱해주던 서포터를 빼고 나서였다.
아직도 일주일에 두 번은 재활치료를 다니고 있고 왼쪽 팔을 내 힘으로 제대로 들어올리지 못하고 있지만 뭐 어떤가 사람이 시위에 나가서 왼쪽 팔을 들어올릴 일이 얼마나 많다고. 아니 깃발이란게 있긴 하죠 아 근데.

그 동안 초조한 나머지 시사 채널만 그렇게 보다보니, 애초에 이상한 로어나 게임이나 나오던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정치 이야기로 가득차버렸고. 정치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던 회사에서도 짜증나게 구는 사람들에게 나는 부천 사람이라구요 새빨간 빨갱이라는 뜻이니 제 앞에서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라고 농담을 반 섞어서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봄이 오지 않았다면 내가 얼마나 회사 사람들에게 패악을 부리고 다녔을지, 나도 알 수 없다.

맘에 드는 자켓을 하나 샀다. 아저씨들이나 좋아할 새파란 자켓이다. 세일도 아니었고 내 평소 옷 가격을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게 비싼 옷이었지만 너무 마음에 들어서 3개월 가까이 머릿속 한 구석에 넣고 다니다가 봄도 지나가버리면 영원히 입지 못하게 될 까봐 그냥 샀다. 사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며칠이나 그 옷을 입고 다녔다. 아이구 춥다 추워 하며 결국 다시 겨울 코트를 꺼내 입었지만 이제 정말로 봄이 왔으니 일주일에 다섯번은 그 자켓을 입고 다닐 생각이다.

청명 다음날. 하루 종일 비가 올 예정이다. 아무런 계획이 없는 주말이다. 몇시간이나 뒤척거리다 잠들었지만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소파 앞 바닥에 누웠다. 아직도 비가 오는 것 같다.

나는 모로 누워 천천히 눈물을 흘렸다. 봄이 왔다. 아주 길었다.

25년 4월의 글이다.

뭐가 문제였냐고 하면 짜슐랭이었다. 친구J가 오후 내내 짜슐랭을 이렇게 먹으면 맛있다고 단체방에서 얘길 했는데. 그렇게까지 맛이 있진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먹고 싶어져서 평소보다 40분 이상 일찍 퇴근했다.
걸어갈 때 잠시 블로그를 읽긴 했지만 내 블로그에 내가 썼던 내용에 뭔가 이상한게 없는지 확인 했을 뿐이었다. 신발도 나름 접지력이 좋은 괜찮은 신발이었고. 눈은 한참 전에 그쳐서 녹고 있었다. 마트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 갈 때는 주머니에 손도 넣지 않았다.

단지 오전에 내린 눈이 물이 되어 계단 위에 그대로 있었고, 저런 상태라면 사람이 넘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미끄러져 뒤로 넘어졌다. 2월 12일 수요일 오후 6시 45분. 바로 전에 넘어진지 딱 4주째였다.

기절하지 않았다. 넘어지며 왼팔을 급하게 뒤통수로 넣어서 머리가 부딪히는 걸 막았는데 내가 뭘 했던 건 딱 그 정도였고 넘어지면서 계단을 몸으로 내려왔다. 도대체 어디서 느껴지는지 모르겠는 격통 때문에 나는 계단에 쭈그려 앉아서 - 아니 이 때는 안 울었다. -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3명인가 4명인가 몇명씩 사람들이 지나가다 괜찮으시냐고 119불러드릴까요 라고 물어보았는데. 괜찮다고 거절하고 더 앉아있었다. 그래 누가 봐도 넘어진 사람으로 보였겠지. 일어나려는데 왼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때 나는 내가 망했다는 걸 알았다.

20미터만 걸어가면 내가 평소에 가는 정형외과가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곳에 가면 괜찮을거란 GTA적인 희망으로 팔을 붙잡고 힘들게 그곳에 갔다. 번호표를 뽑고 대기 하는 동안 서서 덜덜 떨고 있는데 앞의 차례 사람이 이해 할 수 없는 잡담을 하느라 계속 기다리고 있어서 아 기절하겠다 기절한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고 있던 간호사 한 분이 다치셨어요?(나는 이 병원에 왼쪽 어깨 때문에 1년째 다니고 있는데, 이번에 다친 것도 왼쪽 어깨이다. 메이저 리그 진출은 물건너 갔다고 보면 된다) 라고 하더니 나를 알아보기에 아 넘어졌어요. 라고 말하고 덜덜 떨면서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른스럽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아 선생님 한 4주만에 뵙는것 같은데 저 요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너무 아프네요. 라고 덜덜덜 떨면서 말하는게 최선이었다. 내 어깨를 보는 선생님도 표정이 별로 안 좋아보이셨다. 어깨 엑스레이를 보며 아이고 부러졌어요…라고 말하시는걸 들으면서도 나는 진짜 아니길 바랐다.

뭐라고 하셨더라. 수술을 안하면 팔이 짧아질거라고 하셨던가. 저는 팔이 너무 긴게 문제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급하게 진통주사를 맞고 바로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하는 걸 권했고 나는 쓰고 달고 시고 뭘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정말 너무 아파서 덜덜 떠는거 말고는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진통주사를 맞기 위해 눕는 것도 바지를 내리는 것도 못했다. - 이 때 쯤 부터 질질 울기 시작했다. 아픈 건 둘째 치고 너무 억울했기 때문인데.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앞서서 넘어진지 딱 4주째 되던 날이었다. 도대체 왜? -

병원 사람은 친절하게 다음 병원을 수배해주고 1층까지 내려와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알려주었다. 운이 좋게도 그 병원도 첫번째 병원에서 200미터정도면 걸어가면 되는 병원이었는데. 진통 주사로 덜덜 떨지는 않게 된 나는 옆자리 부장님과 형에게 전화를 했고, 친구들 몇 명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형은 어제 면회에 와서 내가 엉엉 울면서 전화를 했다고 했는데, 나는 전화하면서 울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소리지 싶었지만 형이 쇠고기를 사줬기 때문에 그냥 내가 운 걸로 했다.

그리고 지금 16일 일요일. 나는 입원 중이다. 5인실이지만 사람들이 빨리도 퇴원하고 입원하길 반복하는 이 병원은. 간병인도 보호자도 병실에 두지 않는 맘에 드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나보다 먼저 이 병실에 와있던 할아버지 하나가 이젠 눈치도 보지 않고 보수 우익 유튜브를 스피커로 틀고 있어서 나는 현재 너무 괴롭다. 진짜로 괴롭다. 엄청 큰 소리는 아니지만 귀를 기울이면 무슨 얘길 하는지 알아들을 정도로는 크다. (아니 할아버지와 나의 병실은 양쪽 끝인데도 그렇다.) 수술이 잘 되어 내일 점심 때 쯤이면 퇴원 할 수 있을 거란 얘길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 참인데도 기분이 좋지 않다.

나의 진단명은 좌축상완골 골절이다. MRI를 찍고 나서 알게 된 것 같지만 오른 쪽 늑골도 골절되었다고 한다. 아니 뭐 어쩌겠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부러져 있던 것이 아닌지. (이전 블로그 글 참조)

당일에는 수술이 안 되었기 때문에 진통제를 받아들고 집에 와서 식은 땀을 흘리면서 앓았고 1회차 넘어 질 때 받았던 슈퍼 진통제가 놀랍게도 두 봉지가 남았기 때문에 하나를 먹어서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이전 블로그에 안 썼음)
다음날엔 종일 금식 상태로 대기 하다가 겨우 17시가 되었을 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는데. 40분이 걸릴거고 2시간이면 깰 거라고 하더니 일어나보니 0시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상의 어깨 부분엔 피가 말라붙어있었고 - 당연하다 수술을 받았으니 - 처음보는 거창해보이는 서포터가 장착되어 있었고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저 이제 자도 되나요?라고 물어보았는데 그런 질문을 하는걸 보니 전에 누군가가 못자게 했었던 이력이 있었던 것 같지만 저 당시에는 내가 왜 저런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저렇게 얘기 했다.

자려고 했지만 잠이 들지는 못했다. 무통 주사 버튼을 계속해서 누르며 아픔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이것도 후에 알았지만 내가 메스꺼워했기 때문에 무통주사를 닫아놓았다고 한다. 아니 도대체 그럼 난 뭘 기대하며 무통주사 버튼을 밤새 딸깍 거렸단 말인가. 아침에야 다른 진통제를 맞고 잠이 들 수 있었는데 그러고 잠에서 깨자 내가 전날 수술을 받은 후에 했었던 진상 짓들이 생각나서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그날 밤에도 아파서 제대로 잠이 들지 못했던 건 똑같았다.

어제가 되서야 소독을 하게 되어 내 상처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수술 상처가 생각보다 컸다. 해적처럼 흉이 지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몇명이 찾아왔고 형네 가족, 이모와 이모부가 오셨었다. 조카는 너무 긴 운전 때문에 그렇게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이모가 요즘엔 굿도 단가가 많이 비싸져서 1억 정도 한다고 말해주었다. 치료비 다 하면 500정도 들 것 같은데 그러면 굿 한 번 할 돈으로 20번 정도 넘어질 수 있네요. 라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면 20번이나 넘어지고 싶지 않다 진짜 싫다.
내가 이렇게 넘어진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이 제각기 내가 체중이 너무 빨리 줄어들어서 그렇다거나 아니면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렇다든가 하면서 의견을 내고 있다. 나 본인의 의견은 글쎄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그럴만해서 그랬던 것 같다. 모두의 의견을 반영 하려면 나는 살도 10킬로그램을 찌우고 피티도 6개월 받고 굿도 1억원어치를 받아야한다. 그럴바엔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지금은 좀 덜 아프다. 아직 팔에 주사바늘은 꽂혀있지만 진통제는 먹기만 하고 주사로 따로 맞진 않는다. 갈비뼈가 부러진건…진짜로 괜찮은가보다. 시험삼아 기침을 해보았는데 아픈 걸 모르겠다. 팔이 조금 덜 불편해지면 러닝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서포터를 하고 다녀야 하는 기간이 생각보다 길다. 실을 뽑는데도 2주 정도 걸리고 어깨뼈에 박은 핀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도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한다. -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 생각보다 나는 꽤 심하게 다쳤다. 하지만 다치자마자 집 앞 정형외과 선생님과 형수 - 형수는 의사다. - 양쪽에게 저 얼마나 많이 다친거에요?라고 물어보았는데 둘 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별 거 아니라고 하기엔 인간적으로 미안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어찌 되었든 내 발로 병원까지 걸어갔으니까 의학적으로 중상환자는 아닌거지 싶다.

오늘, 앞으로는 더 넘어지지도 아프지도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 넘어지면…아니 뭐 문제가 있는거다 이건.
아까 잠시 집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내가 정말로 바라는 것은 뭘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살아가는 것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만 살고 싶다면 더 편하고 쉬운 방법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더 아프지도 말고 더 넘어져서도 안된다.
병실 침대 주변에는 커튼이 쳐져있다. 그 앞에 그림자가 질 때면 의료진이란걸 알면서도 나는 꿈에서 자꾸 누군가 다른 사람을 본다.
어제는 ㅇㅇ의 꿈을 꿨다. 묘하게 굿하는데 1억이라는 이모의 말이 인상에 남았는지. 나는 500정도 들거면 매달 220은 네가 그냥 써도 괜찮아. 라고 말했다. ㅇㅇ는 220은 너무 많지 않아요?라고 하기에 그러면 180 어때라고 제안했다. 도대체 뭐하는 무슨 꿈인지 모르겠다.

마취가 풀릴 때 쯤. 내가 너무 아파서 울었던 게 그렇게 기억났다. 그리고는 이렇게 아플거면 울어도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입으로 와 … ㅇㅇ이 보고 싶다. 라고 말하고 울었다. 그리고 다시 기절했다. 어떤 말들은 그런 상황이 되어서야 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그런 말들이 있는거겠지.


22년 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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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문장은 현실의 조악한 복제품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기관과 지각능력의 한계로 인하여 현실을 완벽하게 수용해낼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문장으로도 그럭저럭 충실한 현실의 재현품을 삼을 수 있다.

우리는 회상이라는 형태로 비교적 쉽게 과거를 재현해 낼 수 있지만, 재현은 재현일 뿐이다. 불완전한 세계의 불완전한 반영이다. 실제로 현실의 시간을 뒤로 돌려 완벽하게 과거를 다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러나 문장은 완전한 역행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무시하고,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의 모습을 최대한 뭉툭하게 깎아내어 현실이 가진 속성들의 중요한 부분만을 추출한 후. 몇 번이나 재현이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주장에는 한가지 필수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문장을 읽어줄 불변의 독자이다.

이론 상 - 물론 이론 상이라는 말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지만 - 세상 어딘가에 불변하는 독자라는 모순적인 존재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그 불변하는 독자에게 문장을 읽게 함으로서 그의 머릿속에서만은 동일한 현실을 반복해서 재현시킬 수 있다. 그것은 재현이라기 보다는, 강림이나 재생에 가까운 행위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불변의 독자. 문장의 모든 체험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 당신을 가정해보자. 나의 모든 글을 읽었을 당신이 나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라고 해야할까.
누군가는 이 불변의 독자가 신에 대한 메타포로 이해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불변의 독자를 신이라는 가정을 부정한다. 당신이 정말로 신이라면 내가 쓴 모든 것들은 단지 길고 지루한 기도문일 것이고, 내가 겪고 있는 부패와 결락들은 결국 신의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재료가 될 뿐이다.

고전 모험, 추리소설의 소설가들은 독자제현 이라는 말로 자신의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그들은 때때로 자신이 이 글을 쓴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21세기에 들어서 자기의 컨텐츠를 봐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유 불명의 적대감을 표시하는게 유행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그랬다. 자신의 소중한 존재. 다시 없는 사람. 글과 나 사이에 놓인 유일한 세계.

샐린저는 소설에서 시모어가의 둘째가 쓴 글을 통해 독자가 누군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는 가상의 독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새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 이유는 새가 그 어떤 것보다 영혼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독자 당신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가 쓰고 있는 이 불완전한 글을 읽고 있는 완벽한 타자인 당신은. 예전에는 더욱 확실한 형태를 가지고 어떤 사람인지를 떠올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빠르게, 세월 그 자체보다 빠르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잊어버리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싶지 않게 된 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떠올리지 못하게 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나는 한 밤 중의 변덕으로 빨랫감을 들고 집 근처의 코인라운드리에 갔다. 당신이라면 알 고 있을 집 근처 상가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 곳의 코인 라운드리 얘기이다. 물론 빨랫감을 들고 가기 전 마트에 들르는 척 라운드리에 들러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세탁기는 비어있는지 몰래 살펴보았다. 웃기게도 내가 염탐하러 갔던 그 때 보다 손님은 줄어들었지만 커다란 빨랫 바구니를 들고 간 사람들이 늘어 줄을 서 있었던 탓에. 나는 삼십분이 넘도록 빨래도 하지 못한 채로 멍하니 코인 세탁기 앞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분간은 글을 쓰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내가 당신에 대해서 글을 쓰기로 생각한 건. 그 삼십분이다. 나는 내 차례가 되자 타올 한 무더기와 속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집에 돌아가 책을 들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코인 라운드리는 세상 그 어떤 곳보다 책을 읽기에 좋은 곳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좋은 것이라면 나란히 앉아서 손을 잡는 것 정도이다.

나는 대만 작가가 쓴 소설책을 맨 뒤부터 읽으며 (처음부터 읽을 때 이해가 가지 않고 별로 좋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초식동물이 되새김질을 하듯이 진동하는 소리를 내는 커다란 세탁기들의 소리를 들었다. 어떤 남자들은 - 대체로 남자들이었다. 심부름이겠지 - 아이들이 쓸것 같은 이불을 들고 찾아왔고. 어떤 사람들은 급하게 세탁해야하는게 틀림없는 속옷들을 들을 들고 사라졌다. 세탁소 밖은 춥고 새까만 밤이라.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내세가 이런 곳이라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옆자리의 아저씨는 어딘가로 사라지기에 담배라도 피러 나갔나 싶었더니 아이스크림을 사와서 몰래 먹기 시작했다. 눈치를 볼 필요는 없을텐데 혼자 군것질을 하는게 왠지 불편한 눈치이다.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아저씨가 편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도록 더더욱 신경쓰지 않는 척 한다. 여름부터 내내 읽고 있던 책이라 조금 너덜너덜해졌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여름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 대만은 아열대 기후이다. 어떤 계절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에겐 그냥 여름으로 느껴진다. - 책을 읽으며 비가 내리는 어떤 곳에 대한 생각을 한다.

세탁기를 돌리는데 30분. 건조기를 돌리는데는 4분에 500원. 만원짜리를 전부 동전으로 바꾼 나는 40분이고 50분이고 건조기를 돌릴 수 있었지만. 왠지 낭비를 하는 기분이 들어 20분만 건조기를 돌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80분 남짓한 시간이 그 주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며 당신, 나의 불변의 독자인 사람을 떠올렸다. 당신이라면 나의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읽어주리라. 내가 왜 행복해했는지, 왜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해주고 싶었는지 이해해주리라. 매일 매일 당신을 잃어버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목소리를 가졌을까.
당신은 새를 좋아할까.

25년 2월의 글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다양한 형태의 실망을 쌓아가는 것이다.

나는 대체로 6시에 일어난다. 대체로라고 말하는건, 사실 아무 때나 일어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어제는 5시에 일어났고 오늘은 6시 30분에 일어났다. 규칙적인 생활이랑 거리가 멀다.

해가 뜨기 전의 새벽에 러닝을 하는걸 선호하지만 요즘엔 역시 춥다. 6시에 일어나면 그냥 출근을 할지 운동을 하고 나갈지 고민하는 신성한 시간을 갖(침대에 그냥 누워있는다는 뜻이다)다가 러닝을 하러 나간다. 아침에 운동을 하면 하루 종일 묘하게 나른하지만 운동에 대한 부채감이 없는 하루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선호하는 러닝 거리는 5킬로미터이다. 전에는 급하면 3킬로미터 정도만 뛸 때도 있었지만 역시 좀 서운한 거리이다. 러닝 선배들은 킬로미터 기준으로 운동량을 정하지 말고 시간을 기준으로 다양한 시간을 뛰라고 조언해주지만. 실은 나는 풀코스 마라톤 같은 건 관심없다. 그냥 좀 더 달리고 싶을 뿐이다.

러닝을 하든 하지 않든. 집에서는 8시 전에 나간다.
회사가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기 때문에 보통 걸어서 출근한다. 아닌가,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는지도 모른다. 실은 2.5에서 3.0킬로미터 정도 거리다. 왜 0.5킬로미터 정도 차이가 나냐면 굳이 좀 돌아서 가는 경우가 많다.
고래로 철학자, 수학자, 정치인, 백수건달, 은퇴한 아저씨 등 자기가 대단한 뭔가를 사고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산책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지를 주장하는데. 그건 모르겠다 나는 그냥 걷는 걸 좋아하고 요즘은 아침 출근 시간이 피ㅋ민을 하는 시간이다.

하여간 회사에 도착하면 아침밥을 회사에서 먹는다. 회사 식당에서 앉아서 먹어도 되고, 테이크아웃류의 음식들을 받아서 가도 된다.(사무실 내 자리에서 먹는다) 받는 것은 건강한 야채구이라든가 군고구마니 삶은 계란이니. 아니면 기성품 커피 같은 것이다. 실은 나는 군고구마가 너무 좋다. 너무 많은 고구마가 건강에 안 좋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깟 건강.

변덕 때문에 7시 30분 정도 쯤에 회사에 도착 할 때도 있다. 그러면 회사 정문 시큐리티 업체 분 중에서 가장 미인이신 분에게 아침 인사를 할 수 있다. 딱히 하는 건 없다 그냥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 정문으로 들어갈 뿐이다. 그리고 이게 나의 하루의 클라이맥스다. 미인한테 인사 할 수 있다니 너무 신난다.

자리에 앉으면 받아온 테이크아웃을 먹으며 메일을 체크하고. 그날 해야할 일을 바로 시작한다. 출근하면서 오늘 뭘 해야하는지 생각해두기 때문에 나는 업무속도가 꽤 빠르다. 의외겠지만 일상생활 중에서도 일 생각을 많이 한다.
갑자기 뭔가 옆에서 튀어나오는 업무가 있어도 30분 이상 걸리는 일은 드물다. 집중을 해야하는 일이 있으면 귀를 막기 위해서 에어팟을 꽂고 노래를 듣는다. 때때로 3,4시간 정도 집중해서 일해야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면 정말 꼼짝도 하지 않고 일만 하고 있어서 이상하다는 얘길 듣는다. 아니 왜지 기계처럼 일하는 회사원 처음 보시나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메신저로 친구들과 농담을 하거나, 동네 맛집 얘길 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게임 얘기나 한다. 더 한가할 때는 인터넷으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쓸모도 없는 지식들을 검색해서 읽는다. 너무 놀았다 싶으면 시장 레포트나, 테크 레포트 같은 것을 찾아서 읽고 내키면 뭔가 스스로 레포트를 생산해낸다.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과외의 일이다.

아직 어릴 때 회사원이었던 아버지에게 아빠는 회사에서 뭘 해?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버지는 회사에선 일을 하지. 라고 말을 하기에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데? 라고 재차 물어보니. 아버지는 자못 곤란하다는 듯이. 여러가지 일을 해 라고 대답했다. 누가 나한테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나도 여러가지 일을 하죠 정도로 밖에 대답을 못하겠다. 진짜로 회사원은 여러가지 남들에게 설명하기 곤란한 일을 한다. 나도 기관사처럼 설명하기 쉬운 직업을 갖으면 좋을 것 같다.

점심은 친구들과 먹는다. 부지런한 회사원이기에 점심 메뉴는 꼭 체크한다. 점심 메뉴를 체크하지 않고 일을 하지 않는 회사원이 있다? 그 녀석은 먼 미래의 인공지능이 보낸 기계 암살자이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하여간 절대 그런 짓을 해선 안된다 점심 메뉴는 괜히 식당에 가서 고민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사전에 정해둔 메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길 바란다.

날씨가 좋을 때는 회사 근처 천변에 산책을 간다. 몇년 쯤 그랬을 까 생각해보니 6,7년은 된 습관이다. 요즘엔 너무 춥고, 또 러닝으로 충분히 운동량이 채워지는 것 같아서 산책을 잘 하지 않는다. 나의 친구인 당신에게 나는 몇 번 천변의 풍경을 설명한 적이 있을 것이다. 갈대가 많고 느티나무가 천변에 늘어서 있다. 오리와 비둘기, 그리고 설명 할 수 없는 작은새들이 많다. 게임이라도 하면서 걸어다니면 좋을 것을. 나는 생각을 하거나 머릿 속으로 글을 쓴다. 두개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저 두 가지는 진짜 명백하게 다른 활동이다. 그런 질문을 한 걸 반성하기 바란다.

얼마 전에 후배가, 선배는 심심할 새가 없겠어요. 아무 생각이나 하고 그걸 또 입으로 말하시잖아요. 라고 말하는데 내용이고 뉘앙스고 전혀 칭찬이 아니었을 뿐더러. 꼭 입가에 밥풀 붙이고 나온 다섯살짜리 꼬마한테 아이구 배고플까봐 도시락 가지고 나왔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은 말투라서 선배한테 진심을 다해서 공손하라고 설교를 해주었다.

점심을 먹으면 하루가 다 간거다. 쓸데없는 업무를 좀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오후는 또 금방 간다. 아니 거꾸로 오후 시간이 안 갈 때도 있는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일을 좀 빨리 처리하는 편이라서 해야할 일이 하나도 남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후배는 선배든 친구든 꼬셔서 커피를 사러 간다. 같이 가는 멤버에 따라서 커피를 사면서 잡담을 할 때도 있고 회사를 한바퀴 돌 때도 있고. 그냥 자리로 돌아올 때도 있다. 나는 보통의 회사원들은 사죽을 못쓰는 신기하고 기기묘묘한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어서 그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해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 그냥 평범하게 재테크 얘기나 애들 키우는 이야기 그런걸 하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안합니다 내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하는 이상한 동물 이야기나 들으시기 바랍니다.

저녁시간은 금방 온다. 회사원들은 체력이 약해서 해가 지기 시작하면 준비해온 집중력이 다 해서 다들 비실거린다. 야근을 하니 뭐니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손이 느린 놈들이 그러는 것이다. 가끔 후배들이 업무에 퀄리티를 올리겠다고 아등바등 하며 일을 하는걸 볼 때가 있는데 내심 회사원은 업무 퀄리티보다 마감기한이 훨씬 중요한거라고 잔소리를 하고 싶어진다. 네 참습니다. 잔소리해서 뭘 하겠습니까.

저녁 식사로 저녁 테이크아웃을 받아 먹으면 진짜로 그날 회사 업무도 거의 끝이다. 메뉴는 또 삶은 계란 뭐 그런 것들이다. 맛이 없는데 괜찮냐고요? 맛이 없는 것도 그냥 먹는 것이 진정한 뚱뚱보의 자세이다. 까불지 말기 바란다.

일이 남으면.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다음 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해둡니다. 그러면 오늘의 업무는 진짜로 거의 끝이다. 나는 쓸데없이 회사에 남아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사무실 체류 시간은 대체로 10시간 정도이다. 이젠 회사에서 밤을 새거나 남들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컨퍼런스콜을 하거나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남은 것은 퇴근이다.

퇴근도 거의 걸어서 집에 간다. 출근과는 다르게 여유가 있다. 노래를 들으면서 걸어가면 신이 난다. 퇴근이 좋은건 어떤 회사원을 막론하고 동일한 습성인데. 나는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서 잠이 들고 로봇처럼 그냥 출근하는 생활을 오래해서 그렇게까지 퇴근이 즐겁진 않지만 아 콧노래를 안 부를 수는 없다.

퇴근하는 루트는 출근하는 루트보다 조금 짧다. 하지만 마트를 들른다. 요즘에 사는 것은 싱싱한 딸기나 우유, 집에 식료품이 부족하면 두부나 컵라면이나 하여간 두 손으로 들고 갈 수 있는 것을 산다. 뭐라도 사서 들어가야 마음이 좀 덜 허전하다.

집에 오면, 아무도 없다. 뭔가 해야할 집안일이 있다면 바로 지금 퇴근한 시간에 해야한다. 왜냐하면 옷을 갈아입고 어딘가에 등을 기대게 되면 퇴근한 직장인 모두가 그런 것처럼 끈적하게 녹아버려서 다시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설거지, 빨래, 청소 하여간 뭐든지 해야할 일들을 한 30분내로 하고 나면. 그래 그제서야 온전히 누워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침에 러닝을 하지 못했다면 이 시간에 러닝을 한다. 퇴근의 기쁨이 가시지 않은 이 시간에 하는 것이 비결이다. 이전에는 집안일을 마치고 깜빡 잠이 들었다가 11시 12시에 러닝을 하고 그랬는데. 생활 습관 상으로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고담시 같은 곳에선 가져서는 안되는 습관이기도 하다. 극장 뒤에서 총을 맞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뭘 하냐면. 뭘 하지? 다양하다. 책을 읽거나 뭔가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잠을 일찍 잔다. 회사에서 업무가 많지 않아도 그냥 회사에 있는 것만으로 나는 모든 기력을 소진한 상태라 마음만 먹으면 바로 눈을 감고 잘 수 있다.

씻기? 러닝을 하고 나서 씻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아침에 씻는다. 세간에 들키지 않게 온 힘을 다해 노력해야할 사실이지만 가끔 세수를 하지 않고 그냥 잠이 들 때도 꽤 많다. 유독 지치고 늘어지고 촉촉하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어떤 얼굴을 떠올릴 때도 있다. 괴물도 신도 아닌, 사람의 얼굴이다. 침대에 누워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떠올린다. 표정들을. 순간들을. 어떤 감정들을. 나는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말랑말랑한 무인양품표 쿠션을 껴안는다. 그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어떤 피와 살로 된 애정인것처럼. 그리고는 아무 꿈도 꾸지 않기를 바라며, 숫자를 세는 양치기보다 빠르게 잠이 든다.

꿈을 꾸지 않는 것. 그게 나의 요즘 바라는 바이다.

그거 말고는 없다.
처음에 무슨 얘기를 했지? 살아간다는 것은 실망을 쌓아가는 거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계속 살아가는데는 어떤 형태로든 희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희망이 없이. 아무 의미도 없는 하루를 쌓아가면서.

25년 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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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 블로그 글에서 썼지만, 나는 3주 전쯤 넘어졌었다. 세어보니 정확하게 3주였다.
처음 정형외과에 갔을 때 전치6주에서 8주 쯤 되지 않을까요 라고 하셨는데. 지난주 금요일에 방문했을 때 2,3주 정도는 경과를 더 봐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라고 하셨으니 정확하게 6주 정도 되는 셈이다. (용하기도 하셔라)
차에 치인 것도 아니고 빙판길에 넘어졌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다치다니 재주도 좋다.

몸이 이런 상태이다 보니 러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남이 얼마나 아팠는가를 듣는건 정말 지루한 일이지만 여긴 내 블로그니까 내 맘대로 쓰자면.)
다친 첫번째 주에는 러닝이 문제가 아니었던게 정말 말도 안되게 아파서 4종류의 진통제를 매 끼마다 먹으면서 일상생활 비슷한 걸 했다. 입원을 왜 안 했는가? 아니 내가 노인도 아니고 빙판길에 넘어졌다고 입원을 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숨이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 골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용케 부러진 곳은 없네요.”) 그냥 몹시, 아주 몹시 아픈 것 뿐인데 입원을 할 필요는 없다 싶었는데. 걱정이 되셨던 정형외과 선생님은 소견서와 전원서를 써서 3차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다만…나는 가지 않았다. 나는 이상한 구석에서 고집이 쎄다.

다친 지 2주차가 되자 아픈게 좀 가라앉고 걸을만해지니까, 다른 문제가 생겼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러닝을 하지 못하는 것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러닝을 못하는게 괴로웠냐 싶겠지만. 작년 여름부터 내 인생은 철저하게 러닝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애초에 가족도 친구도 없이. 인생을 운영하고 있던 사람이니까(하하)

집중해야하는 것을 러닝으로 슬쩍 바꾸기만 한 것 만으로 자연스레 러닝 없이 못 사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매일 정형외과에 가면서 선생님이 내 눈치를 슬쩍 보며 아직 운동하시면 안됩니다. 라고 주의를 주셨는데. 그걸 보면 내가 되게 티나게 러닝을 하고 싶어한 것 같긴 하다. 어떻게 안 걸까 내가 이 겨울날 손바닥만한 바지를 입고 진료실에서 달리는 흉내를 낸 것도 아닌데 말이지. 물론 적당해졌다 싶은 주기마다 언제쯤 운동을 해도 될까요? 라고 물어보긴 했다만…아 맞다 다친 날 아침에도 러닝했다고 얘기 했었지만 뭐 그래.

길고 긴 설 연휴에도 대체로 누워있었다. 어디 미술관 구경하러 가자고 나오라는 연락도. 뭔가 먹으러 나오라는 연락도 모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그냥 누워있었다. 초조하게 도대체 언제 다리가 낫는거지 하는 생각만 했다. 설 전에 갔었던 진료에서 무릎을 초음파로 보다가 왼쪽 무릎 연골판에 파열 의심 증상이 있다는 소리를 듣자. 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든걸 보면 정말로 러닝 말고는 인생에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된건가 싶기도 하다. (연골판에 파열되었을 경우, 애초에 완치는 안된다. 심한 경우에는 수술을 해야하는데 재활에 몇개월이 걸린다.)

러닝을 못하게 된지 2주가 넘어갈 때 쯤엔 러닝을 하지 못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죽은 눈으로 게임 패드를 잡고 죄없는 병사들을 칼과 창으로 때려잡으며. 아니면 베트남, 대만의 신진 작가가 현대사의 비극을 녹여낸 훌륭한 문학 작품을 기운없이 읽으며. 내내 그냥 러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훌륭히 멘탈이 무너졌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피ㅋ민 블룸이라고. 나ㅇ언틱에서 만든 산책게임이 있다. 원래 있던 게임인 피ㅋ민을 나ㅇ언틱 특유의 위치 기반 서비스와 결합한 게임인데. 나온지 몇년이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갑자기 인기를 끌기 시작해서 아주 최근에 한글판 공식 에스엔에스 계정이 생길 정도가 되었다. 나도 도쿄 여행을 갔다오기 얼마 전부터 친구의 권유로 하기 시작했는다.

거기에는 “눈 데코 피ㅋ민”이라는 희귀한 피ㅋ민이 있다. 눈이 오는 시간 대에 특정한 위치에서 아이템을 쓰면 얻을 수 있는 피ㅋ민으로. 워낙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나는 얼마 전부터 그 눈 피ㅋ민을 얻으려고 노력을 아니 집착을 하고 있었다.

일단 매일 나ㅇ언틱에서 쓰는 날씨 서비스를 매일매일 찾아서 우리 지역에 눈이 올 확률을 찾아보고, 특정한 위치 (눈 피ㅋ민은 “길거리”아이콘이 딱 하나만 나오는 지점에서만 나온다. 우리나라엔 공지가 적어서 그런 지역이 드물다.)가 집과 회사 주변 어디에 있는지 찾아두었다.

설 연휴에는 폭설이 내렸는데, 우습게도 앱 안의 날씨는 매일이 흐림이었다. 눈으로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일찍 퇴근해 무릎 혈종 제거 시술을 받으려고 병원에 갔던 날. 웃기게도 앱 안의 날씨가 눈으로 바뀌었다. 나는 붕대를 감은 채로 “길거리” 아이콘이 나올거라고 예상되는 곳으로 절룩거리며 걸어갔다. 날씨 예보는 1시간 단위로 바뀌기 때문에 1시간 내로 예상한 곳 까지 갔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난리를 쳐서 눈 피ㅋ민을 두마리나 얻고 나니. 그제서야 내가 여기에 과하게 집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게임을 한지 두달이 되기 전에 레벨이 50에 근접한 것 부터가 정신줄을 놓고 이걸 하고 있었다는 증거였긴 하다.)

이게 뭐라고 말이지. 눈 피ㅋ민이 뭐라고. 러닝이 뭐라고.

3주 정도는 더 봐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못 들었다는 듯이 주말에 10킬로미터를 뛰었다. 무릎의 붓기가 빠지지 않아서 붓기가 빠지기 전에는 연골판의 파열을 확인 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냥 냅다 뛰었다. 무릎이 아파오자 눈물이 좀 날 것 같았다. 계속 달리고 싶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어느 것에도 집착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였다고 생각한다.
그냥 무의미한 집착이었다. 다 알고 있었다. 사랑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하고. 사랑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번뇌에 빠졌다.

여름부터 썼던 포스팅을 읽자. 그 동안 내가 어떻게 매달 다치고 아팠는지 (놀랍게도 매달 어딘가를 다치고 있었다 도대체 왜?) 괴로워했는지. 어떻게든 나아보려고 노력했는지 거기에 다 적혀있었다. 차라리 아무 것도 쓰지 않을 것을 그랬다. 의도치 않은 사고로 넘어지고 굴러 애써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게 내가 아니었다면 좋았을텐데.

어제 밤에 차림새를 갖추고 무작정 달려보려고 하는데. 허리가 아려왔다.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어서 새벽에 일어나 다시 달리려는데 아직도 허리가 아렸다. 디스크일까, 근막의 통증일까. 아니면 그냥 춥기 때문일까. 피트니스에 가서 트레드밀 위를 뛰었다.

모두 다 미망이고. 모두가 미련이다. 여기에 어떤 의미도 없었다.

나는 넘어졌었다. 뜻하지 않은 빙판길에 미끌어진 것 처럼 넘어졌다. 용기를 내어 혼자 걸어가야 하는데. 아무리 엉망이 되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25년 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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