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청명날이 되자, 봄이 찾아온 기분이 들었다.

올 3월엔 계절에 맞지 않는 눈이 몇 차례나 왔고 얇은 봄 자켓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추위에 멋쟁이가 아닌 나는 두터운 겨울 코트를 그대로 입고 회사에 갔었더랬다.
점심을 먹으러 친구와 나가는데 건물 앞 벚꽃에는 이미 꽃이 만개할 듯 꽃봉오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이제껏 보지 못한 탓이려나, 봄이 오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지냈구나 싶어서 코트 깃을 바르게 펴고 겨울 옷 안에서나마 기지개를 펴보았다.

어째서 이렇게 봄이 오는지도 몰랐단 말인가. 어린 시절 내가 자란 집 옆에는 크고 멋진 백목련이 있어 봄이 오면 항상 누구보다 빨리 그걸 알 수 있었는데, 봄과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도 만개한 백목련을 볼 때면 봄의 좋은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바닥에 꽃이 떨어져 썩어가는 모습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와는 별개로 봄이 오는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묘한 고집은 어릴 때도 그대로여서 딱히 올해가 아니어도 나는 봄 꽃이 피어오를 때 까지도 겨울 옷을 그대로 입으며 다녔고 주변 사람들의 한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봄이 싫은건 아니라고 설명하련다, 굳이 따지자면 겨울을 너무 좋아하는 탓이다.

그렇다고 해도, 겨울이 이렇게 길어질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난 겨울, 여행은 한번 밖에 가지 않았으나. 회사에서는 남에게 말하고 싶지도 않은 피곤한 이슈가 있었고 무엇보다 두번에 걸쳐서 크게 다쳤는데. 어깨도 무릎도 그 재활치료를 아직도 하고 있다. 요는, 멀미가 날 정도 지난 겨울에 여러가지가 많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시위도 있었다. 시위에 나간 날을 세어보니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12월 3일 이후 벌어진 시위에는 바로 참석 할 수 있었지만 여의도에서 광화문으로, 그리고 한남동으로 모이기 시작한 딱 그 시점에 크게 다치기 시작한 탓이다.(다치기 시작했다고 설명 할 수 밖에 없다, 몇 번이나 다쳤기 때문이다.) 재활치료는 둘째 치고 너무 크게 다친 탓에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던게 컸다. 잘 걷지 못하거나 몸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외출을 하겠는가. 다시 시위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3월 중순, 부러진 어깨뼈를 지탱해주던 서포터를 빼고 나서였다.
아직도 일주일에 두 번은 재활치료를 다니고 있고 왼쪽 팔을 내 힘으로 제대로 들어올리지 못하고 있지만 뭐 어떤가 사람이 시위에 나가서 왼쪽 팔을 들어올릴 일이 얼마나 많다고. 아니 깃발이란게 있긴 하죠 아 근데.

그 동안 초조한 나머지 시사 채널만 그렇게 보다보니, 애초에 이상한 로어나 게임이나 나오던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정치 이야기로 가득차버렸고. 정치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던 회사에서도 짜증나게 구는 사람들에게 나는 부천 사람이라구요 새빨간 빨갱이라는 뜻이니 제 앞에서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라고 농담을 반 섞어서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봄이 오지 않았다면 내가 얼마나 회사 사람들에게 패악을 부리고 다녔을지, 나도 알 수 없다.

맘에 드는 자켓을 하나 샀다. 아저씨들이나 좋아할 새파란 자켓이다. 세일도 아니었고 내 평소 옷 가격을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게 비싼 옷이었지만 너무 마음에 들어서 3개월 가까이 머릿속 한 구석에 넣고 다니다가 봄도 지나가버리면 영원히 입지 못하게 될 까봐 그냥 샀다. 사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며칠이나 그 옷을 입고 다녔다. 아이구 춥다 추워 하며 결국 다시 겨울 코트를 꺼내 입었지만 이제 정말로 봄이 왔으니 일주일에 다섯번은 그 자켓을 입고 다닐 생각이다.

청명 다음날. 하루 종일 비가 올 예정이다. 아무런 계획이 없는 주말이다. 몇시간이나 뒤척거리다 잠들었지만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소파 앞 바닥에 누웠다. 아직도 비가 오는 것 같다.

나는 모로 누워 천천히 눈물을 흘렸다. 봄이 왔다. 아주 길었다.

25년 4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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