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올려놓은 메모 장에는 언제 적어둔지도 모를 문장들이 작은 거미처럼 도사리고 있다. 기회만 있다면 잠이 든 내 입 속에 들어와 뱃속에서 가느다란 실로 거미줄을 치기라도 할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참고 있다. 말을 하는 것을, 글을 쓰는 것을 그리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을.
언제부터인가 기억력도 나빠져 예전처럼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때때로 내가 생각했던 것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만다. 어쩌면 내가 바라는 것이 그저 잊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기 내가 몇 주 간 생각했었던 거미와 같은 문장들을 몇개 적어본다.
…
나는 어느 가을 날, 살아있는 사람의 유령을 보았다. 그렇게 표현 할 수 밖에 없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 날은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연차를 낸 날이었다. 모든 회사원들이 그런 것처럼 쉬는 날 갈 수 있는 모든 병원을 한 번에 가려고 아침부터 병원을 돌아다니던 날이었다.
얼마 전 가을 같지 않았던 더운 날씨가 끝나고 서늘하니 기분이 좋아 아무리 걸어도 땀도 나지 않을 그런 평화로운 오전께. 나는 6층의 병원에 가려고 엘레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엘레베이터의 모퉁이, 거미나 붙어있을 것은 구석에 누군가 서있었다. 뒷모습은 숱많은 머리에 반쯤 열린 짙은 색의 백팩, 백팩에는 사람들이 흔히 그러는것처럼 인형들이 늘어져 있었다. 작고 하얀 얼굴은 엘레베이터에 들어온 나를 외면 하듯 벽을 향해 있었고. 길고 마른 팔은 가방을 꼭 쥐고 있었다.
나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엘레베이터의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1층에서 2층으로, 한 층 씩 올라가는 층수를 머릿 속으로 세던 나는 6층에 이른 엘레베이터에서 뛰는 듯한 걸음으로 내렸다.
내리고 나서 깨닫는다. 내가 본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그 누구도 아닐 뿐더러, 유령도 아니었다. 어째서 엘레베이터의 사람을 보고 그걸 살아있는 유령이라고 생각 한 걸까. 아마도 그건 내 머릿 속 어딘가에 유령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마도 나다.
병원 진료를 마친 다음 건물로 나온 뒤에도 햇볕은 적당했고 바람은 선선했다. 해가 낮아지는 계절임에도 낮은 한참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밝은 얼굴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살아있는 유령인 나였다.
…
거미의 신이 온 세상의 지혜를 훔쳐 항아리에 넣었다. 아무도 그가 모든 지혜를 훔쳤는지 몰랐다 하늘의 신조차도 말이다. 모든 지혜를 한 손에 넣은 거미의 신은 심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 모든 지혜를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 아무도 보지 않을 곳, 예를 들어서 커다란 나무 꼭대기에 지혜를 넣은 항아리를 숨기려고 들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 머리가 작아지고, 꾀를 부리느라 팔다리가 가느다랗게 길어진…심술궂은 거미의 신은 지혜 그 자체를 손에 넣은 자신의 지혜에 만족하며 항아리를 안고 나무를 타려고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항아리를 숨겨두면 모든 지혜가 영원히 나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거미의 신을 보고 있던 작은 존재가 있었으니 이는 거미의 신의 어린 자식이었다. 어린 거미는 자신의 어버이가 항아리를 들고 나무를 오르려는 것을 보았으나 항아리가 무엇인지, 왜 나무를 오르려 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그 어린 거미는 거미의 신을 사랑했기에 어버이에게 말한다. 항아리를 안고 나무를 타는 것은 위험해요. 아버지, 항아리를 등에 태우고 올라가세요.
그러나 지혜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기고자 했던 거미의 신은 어린 자식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조용히 해라 어리석은 것. 눈을 부릅뜨고는 이어 말한다. 내가 항아리를 등에 지고 나무를 오를 때 너 어린 놈이 나의 항아리를 잡아 채가려고 꾀를 쓰는 구나. 나는 너의 몇 배는 현명한 신이다. 어버이의 호통에 깜짝 놀란 아이는 놀라 훌쩍이며 말한다. 아니에요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걱정될 뿐이에요.
거미의 신은 아이의 말을 듣지 않는다. 지혜가 가득 담겨 철렁거리는 항아리를 더욱 꼭 안고는 나무를 오른다. 너 내가 이 항아리를 두고 온 뒤에 보자. 거미의 신은 힘겹게 나무 위를 올라간다. 오르고 또 오른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항아리를 안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안전하고 좋은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무는 너무나 키가 컸고 거미의 신이 나무를 오르던 중 비가 내리자 상황이 바뀌었다. 몇 번이고 항아리를 꼭 안은 신의 손이 미끄러졌고 고집스럽게 나무를 오르던 거미의 신은 항아리를 놓치고 만다. 땅에 떨어진 항아리는 깨져 모든 세상의 지혜는 다시 모든 세상으로 퍼져나갔으며. 충분히 지혜롭지 못했던 거미의 신은, 아이의 사랑을 받을 자격을 잃었을 뿐 아니라. 지혜의 항아리도 놓치고 말았다.
…
주나라 목왕에 대해. 열자의 탕문편에 이러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서쪽으로 순행을 떠난 목왕이 곤륜산과 엄산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갈 적에 어느 지방에서 언사라는 장인을 추천받아 만나게 된다. 그는 못 만드는 물건이 없었으나 가장 자신있어 하며 보여준 물건은 어찌 보아도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인형, 꼭두각시였다.
언사는 그 인형이 진짜 사람이 아니라 본인이 만들어낸 꼭두각시라고 설명하였으니. 아무리 보아도 나아가고 말하고 허리를 굽히며 동작하는 모습이 사람과 다름없었고 노래와 춤까지 뛰어나게 해냈으니 도저히 물건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이 아주 놀라웠으나 왕 앞에서 여러가지 연기를 피로하던 인형이 무왕의 총비를 희롱하는 모습을 보이자 안 그래도 의심이 깊던 무왕은 이 인형은 사람이 틀림없다고 대노하여 인형의 목을 베려하였다.
그러자 놀란 언사는 왕 앞에서 인형의 배를 갈라 그 내장이 나무와 아교, 실로 이루어진 것을 보여주며 진짜 사람이 아닌 것을 보였다. 인형은, 정말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
이 포스팅에 쓴 글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모두 새끼거미의 실타래와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블로그에 종종 들어와 블로그의 일일 방문자 수가 계속해서 1을 찍다가 0을 찍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글을 쓸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그 동안 내 삶에 뭔가 달라진 것을 정리해보려고 했지만, 그런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정리 할 것도 없었다.
뭘 했었지, 뭘 읽었지. 어떤 생각을 했지. 어디를 갔었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시간을 보냈고 어느새 가을이 왔다. 나는 가을 바람이 온게 믿겨지지 않아서 매일 아침 출근을 반바지에 반팔로 하다 못 견디고 바지는 긴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팔을 입고 있는 건 그대로라서 머지 않은 미래에 얼어죽은 시체로 발견될 예정이다.
아니 어쩌면 그저 버려진 꼭두각시일지도 모르지.
26년 10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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