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The thing speaks for itself.” 영미법에서 말하는 과실추정의 법칙을 의미한다. 잘 모르는 분야지만 아는 선에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직접 증거가 없이도 피고의 과실이 있었다고 추론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피고의 완전한 통제와 일반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사고여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할 지 모르겠다. 그 동안의 내 삶에 뭔가 달라진게 있다면 그걸 정리해서 말해보겠지만 그럴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어딘가 멈춰져 있는 작은 세계에서 똑같은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뭘 했었지, 뭘 읽었지, 어딜 갔었더라. 어떤 생각을 했었더라.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시간을 보냈고 어느새 또 가을이 왔다. 나는 가을바람이 부는 게 믿겨지지 않아서 매일 아침 출근을 반팔에 반바지로 하다가 얼어죽은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몇 달 전에는 인턴 한 명이 우리 부서에 배치되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나이차이도 한참 나고 중간관리자인 내가 인턴의 멘토로 임명이 되었다. 부담스럽고 귀찮고 피곤했지만 재미있었다. 키가 크고 근육질에 선한 얼굴의 인턴은 한국의 부모님 열 명 중 아홉 명은 제발 이 청년이 우리 아들이었으면 하고 생각 할 정도로 잘 큰 청년이었다.

우리 회사는 나름 이름있는 기업인데도 우리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인턴청년과 대화를 하고 난 뒤면 나에게 인턴은 여긴 안 들어오겠다. (우리 회사 들어오기엔) 너무 인재잖아 안 그래?라고 물어보곤 했다. 나는 뭐라고 얘기를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물어볼 때 마다 전혀 다른 대답을 했는데 그러게요. 아니에요 알고 보면 성격 이상해요. 중소기업 살린다고 생각하고 우리쪽에 오지 않을까요. 맞아요 인턴십 끝나면 우리 회사 쪽으로는 돌아보지도 말라고 했어요 등등 나도 내가 무슨 얘길 했는지 까먹을 정도로 많은 대답을 했고 또 그 대답들을 인턴 청년에게 전부 말해줬다. 인턴은 내가 또 무슨 대답을 했는지 재미있어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는 인턴청년에게 얘길 한다면 되도록 솔직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회사의 문제점이 뭔지 네가 하고 싶은 커리어에 대해서 보강할 점이 뭔지. 20대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해서 무엇을 하면 안되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내 조언이 완벽한 정답은 아니겠지만 가능한 최선을 다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답을 말해주곤 했다. 대체로 잔소리였고 잔소리가 아닌 말들은 거의 농담이었다. 예를 들어서 20대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농담이었다. 농담이 아닌 말은 이거 하나 정도였다. 남자는 다소 손해를 보면서 사는 편이 딱 좋다. 의외로 인턴청년은 그게 맞는 것 같다고 공감해주었다.

인턴십이 끝나고 인턴이 퇴근을 할 때. 나는 배웅을 가지 않았다. 전날 이미 너 없어지면 심심해지겠다 라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그렇다. 그런 말들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작별인사다. 인턴청년은 인턴십 초기에 이미 본인이 하고 싶은 커리어에 대해서 나에게 얘길 한 적이 있다. 그 커리어를 생각하면 아마 그가 우리 회사에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너 우리 회사 정식 입사 하면… 네, 정식 입사 하면요. 그 때부터는 성경에 나오는 당나귀처럼 부려먹을거니까 잘 생각해. 왜 하필 당나귀 비유를 그렇게 쓰시는거에요?
이 정도가 인턴과 내가 나눈 정식 입사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의 전부였다.

또 뭘 했더라. 이제 스마트폰과 전화번호가 생긴 조카에게 동물짤을 종종 보낸다. 조카는 드라마를 아주 좋아하고 동물들보다 자기가 귀엽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나와 언쟁이 가능할 정도로 말이 많이 늘었는데(그렇다 나는 초등학교3학년과 전력을 다해 언쟁을 하는 어른이다.) 지난번엔 본인이 좋아하는 드라마 여자 주인공에 대한 험담을 하는 내가 너무 미워서 울음을 터트리려다가 꾹 참고. 삼촌은 정말 남 험담을 잘하시는 분이군요 라고 침착하게 말했다. 솔직히 조카가 귀여워서 죽을 것 같다.

동물짤을 보내면 조카는 항상 하나도 귀엽지 않다는 대답을 한다. 나는 조카가 무슨 대답을 하든지 말든지 귀여운 동물짤을 찾으면 이거 귀엽다 라면서 짤을 보낸다. 외동으로 자라난 초등학생의 고집은 정말 대단해서. 이상한 억지를 부리며 삼촌의 동물짤들은 별로라는 얘기를 한다. 지난번에 조카의 사진 라이브러리를 뒤져본 결과(공정을 다하기 위해 말해보자면 조카도 항상 내 사진 라이브러리를 뒤진다.) 내가 보낸 동물짤들을 모두 저장해둔 걸 확인하지 못했다면 나도 조카의 태도에 깜빡 속을 뻔했다. 어쩌다 이런 겉과 속이 다른 아이로 자라게 되었을까. 곧 뱃속이 시꺼먼 청소년이 되겠지만 뭐 어떠랴 나는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이 아이는 점점 똑똑해질텐데. 내가 아직 이 아이를 놀릴 수 있을 때 온힘을 다해 놀리고 괴롭힐 생각이다.

회사의 후배 중 하나가 업무가 바뀌게 되면서 내가 하는 일과 관련성이 깊어졌는데.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은 쑥스러운지 요 몇 달 간 나에게 연락해오는 일이 잦았다. 생각해보니 매일매일 회사 메신져든 카톡이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락해오고 있었다. 내용은 대체로 업무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이게 맞는지 조언을 구하는 내용이고 때때로 본인의 분을 못 참고 투덜거리는 내용이었다. 내가 바빴던 나머지 대답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후배의 질문에 대해서는 빠지지 않고 대답을 하려고 노력했다. 누가 회사에서 도움을 청하면 가능한한 들어주려고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후배가 화난 앵무새처럼 투덜거리는게 제법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종일같이 회사일만 생각하다가 회사일이라고 해야할지 사적인 연락이라고 해야할지 알 수가 없는 연락을 받으면서 기분을 전환했던 것 같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외로운 나머지 누가 한없이 회사일에 가까운 얘기를 하는 것 마저도 반가웠던 것이다. 나는 어느덧 누군가에게 기대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깨달은 것은 후배와 매일 같이 연락을 해온지 2개월에서 3개월 쯤 되었던 때였다. 나는 사적인 연락과 사적이지 않은 연락의 구분을 못 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서(이미 충분히 멍청했던 것 같지만) 때마침 본인이 하는 업무가 안정되어 가던 후배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자 그 뒤로 후배에게 먼저 연락이 오는 일이 없었다. 이미 후배에게 나의 효용은 없어진지 오래였던 것이다.

때때로 잘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잘 하고 있느냐고 연락을 하려다 왠지 그런 질문 자체가 눈치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 뒤로 후배로부터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기에 대화도 나누지 않게 되었다. 사람과의 관계란. 사람의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한없이 가늘고 아주 쉽게 끊어진다.

그러고보니 그런 일도 있었다. 언젠가 후배가 고집을 부려 일이 남았는데도 같이 퇴근을 했었더랬다. 그날의 석양은 여름답지 않게 아주 아름다워 나는 뜬금없이 후배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네가 지금 퇴근하자고 해서 저런 멋진 저녁노을을 볼 수 있었다고. 나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았을까.

얼마 전 혼자 퇴근을 하던 날에도 노을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그날 노을이 아름다웠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다.

이게 올해 봄 이후 가을까지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당신은 알 수 있을까. 지금 날씨에 반바지반팔로 출근하면 얼어죽는다는 것 말고 말이다.


26년 9월의 글이다.

'부재증명_(에세이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60909] Carnassial  (0) 2026.09.09
[20260128] Konoyumegasametara  (0) 2026.01.28
[20260121] 플라이트 투 덴마크  (0) 2026.01.21
[20251230] 우리는 너무 많이  (0) 2025.12.30
[20251204] nothing’s gonna change  (0) 2025.12.04

세존께서 이르시기를,
여기 독화살에 맞아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
다행히 그가 절명에 이르기 전에 사람들이 의원을 찾아 독화살을 뽑으려 하였으나 그는 고개를 흔들며 말하였다.
나는 이 화살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고, 누가 쏘았으며 그 쏜 사람은 어떤 가문인지. 왜 쏘았는지를 알기 전에는 화살을 뽑지 않을 것이다.

세존은 이어 말하였다. 그는 화살을 바로 뽑지 못하였기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오늘 아침 트랙을 달리다가 문득 깨달음이 있었다. 별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 깨달음이 오자 더욱 숨차게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다리에 힘을 주고 속력을 높여 한 바퀴 반을 더 돌았다. 초가을 아침바람이 서늘했다. 이 트랙이 있는 공원은 반쯤은 숲이다. 한 여름에도 그럭저럭 서늘하고 항상 사람들이 있다. 산에 걸쳐져 있는 공원이라 공원 면적에 비해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좀 좁지 않은가 생각도 들지만 좋은 공원이다. 이 동네에 이사 온 후 제일 많이 시간을 보낸 것도 이 공원이다.

대규모로 개발된 택지 단지인 이 동네는, 주거구역(대체로 아파트)와 녹지(대체로 공원과 일부 수변)로 나뉘어져 있고 일자리가 되는 도심형 공장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돈을 빨아들일 수 있는 넓은 상업지구까지 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지 않고 개발이 되지 않은 구역도 잘 통제되어 있어 이제까지 내가 살았던 그 어떤 곳보다 세련되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공장 지역에서 자라난 세련되지 못한 나는, 여기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니 그저 여기에 관심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외출을 하지 않고 있다. 매일의 출근과 러닝, 가끔의 서울행이나 지역의 도서관 정도가 아니면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얼마 전 상업지구의 한 쪽(커다란 호텔이 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에 유명한 지방 떡집의 분점이 생겼다는 걸 알고 드물게 저녁 산책을 나섰다. 이 동네에 이사 온 지도 반년이 되었는데 몇 번째 저녁 외출이었더라 세번째, 아니 네번째 정도 되려나.

동네에 있는 큰 공터는 프랜차이즈 호텔인지 프리미엄 아웃렛인지가 들어온다고 하고서 오랫 동안 공터로 남아있었는데 새로 플랜카드가 붙었다. 천몇백세대 쯤 되는 주상복합 겸 아파트가 들어온다고 한다. 온갖 채널로 광고가 들어와 나도 모를 수가 없었는데. 민망할 정도로 비싼 분양가가 실린 기사를 보고 나는 속물답게 우리집도 비슷하게 오르면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작은 부자 정도는 될 수 있겠는 걸 하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 집의 진정한 소유주는 은행이라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한 생각이었다.
낯설기 짝이 없는 사거리를 걷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천 몇세대의 주거지가 들어오면 여기가 어떻게 바뀔까 생각을 한다. 오천명 쯤 될 인구가 들어오고 그 사람들이 여기에서 얼마나 되는 돈을 소비할지. 하수도와 전기의 소비는 얼마나 늘어날지. 나는 머릿 속의 숫자들을 세어보다 문득 망연해져서 오천, 혹은 만 정도 될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한국 어딘가의 택지지구에서 살게 될 다수의 사람들. 무언가를 타고 와서 무언가를 타고 나가는 사람들. 숫자가 커질수록 머리가 복잡해진다. 너무 많은 사람이, 타인이 머릿 속에 담긴다.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그만하기 위해 맹수의 이빨에 대해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식육목의 치아구조.
사람들은 맹수의 이빨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송곳니라고 생각하지만, 송곳니는 잡식동물에서도, 때때로는 초식동물에게서도 발달할 수 있다. 식육목의 맹수가 가진 치아 구조 중 가장 특이한 것은 위턱의 작은 어금니와 아랫턱의 첫번째 큰 어금니가 맞물려 생기는 가위와 같은 구조, 열육치이다. 열육치는 이름 그대로 먹이를 작은 조각으로 자르는 역할을 하는데. 물론 앞니와 송곳니는 사냥감을 물어 무력화 시키고 살점을 찢는 역할을 하는데 왜 열육치가 식육목의 주요한 특징이냐면 육식동물이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먹이를 잘게 부수는 것이 중요해졌고 거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열육치였기 때문이다.
고양이과의 동물들은 이 열육치를 쓰기 위해 먹이를 먹을 때 고개를 돌린다. 어금니로 잡고 열육치로 자르는 것이다.

곰과 같은 잡식 동물의 경우는 고기만을 먹는 고양이과의 동물들보다 어금니가 평평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사람은 식육목이 아니기 때문에 열육치가 없다. 우리 영장목의 특징은 멋진 열육치가 아니라 양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마감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유명 떡집의 우리 동네 분점은 상품이 다 떨어져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어이가 없어서 검색해보니 사람들의 개인블로그에 평일 오후에 내점했는데도 대기팀이 몇백팀 정도 있었다는 글이 있었다. 나는 좀 더 어이가 없어져 무심결에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는 와 이거 말도 안된다 그치.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같이 끄덕여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만, 그만 생각해야한다.

다시 식육목의 이빨에 대해서 생각한다. 앞니와 송곳니를, 그리고 열육치를 떠올린다. 곰의 어금니를 생각하고 개의 이빨의 수를 센다. 먹이의 종류가 많을 수록 이빨의 수가 많아진다고 한다. 이빨 마다 각기 다른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정말일까. 나는 다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서 생각한다. 국도의 구조와 교통이 퍼져나가는 스프레드를. 도심지와 부도심지를. 그리고 이 지역의 중심 지역이 어디인지 가늠해본다.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계속해서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다음 생각, 그리고 다음 생각으로.

나는 오늘 아침 떠올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원하는 것이 독화살을 빼고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이 독화살의 이름이 무엇인지, 이 화살을 쏜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이 화살을 쏘았는지 아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화살을 쏜 자가 지금은 평안한지. 나를 미워함으로서 위로를 얻었는지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나는 이빨에 물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며 트랙을 한바퀴 반 달렸다.

26년 9월의 글이다.


소원을 쉽게 빌어서는 안된다.
문제는 항상 그 소원이 정말로 이루어졌을 때 일어난다. 우리는 우리가 빈 소원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 수 가 없고 그 방식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 나는 아버지의 서가를 물려받았다. 이제 그 중에서 내 손에 남아있는 것은 한 권도 없지만 주로 독일문학(그 유명한 마인 캄프트도 있었다)과 20년치의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 그리고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전공책들이 아버지 서가의 주요 구성요소 였다. 아버지가 내 앞에서 뭔가를 읽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거의 없지만 끊임없이 뭔가를 읽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하게 알 고 있었다. 당대에 유행하는 책은 거진 읽는 것 같았고 개중에는 아직 도입 초기이던 웹에서 유행하던 소설까지도 있었다. 아버지가 집을 떠나기 전부터 아버지의 책은 내 책이나 다름없었기에 뭐가 그렇게 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 후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한국판 발행을 멈출 때 까지 계속해서 정기구독을 했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 역시 아버지가, 그리고 아버지의 서가가 나에게 남긴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할아버지의 서가는 작았다. 방 반 정도의 크기였던 서가는 할아버지가 이사를 갈 수록, 그리고 나이가 드실 수록 줄어들어서 나중에는 책장 하나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그렇게 서가가 작아졌을 때도 버리지 못했던 것은 평양계 실향민들을 위한 잡지들. 다른 것들은 말년의 취미셨던 어학 책들이 다수. 때때로 책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할아버지의 친구들이 낸 회고록이었다. 그 세대의 교양있는 노인들이라면 누구나 회고록을 내고 싶어했는데, 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그 뒤에 벌어진 정치적인 격동들과 고도의 경제성장들을 겪은 세대이다보니. 스스로의 인생이 어떤 기록물적인 가치를 지녔다고 강한확신을 가지시는것이 보통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군인이었던 적이, 아니 정확히는 20년이 넘도록 군인을 했다는 것을 안 것도 내가 성인이 된 후였는데. 어린 내가 할아버지에게 매달려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할 때면 할아버지는 곤란하다는 듯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동화를 들려준다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어린시절의, 고향의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셨다.

누군가에게는 의외의 사실이었나보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2016년에 돌아가셨다)에야 오랫동안 일기를 써오셨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나는 그걸 읽어보기는 커녕 존재조차도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일기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았다. 그 분은 그런 세대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일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 것은 할아버지가 귀여워하셨던 친척고모로 간만에 수도권에 올라오실 일이 있어서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는데 그 때 뜬금없이 이야기가 나왔다. 네 할아버지가 백인 여자랑 연애했다는거 아나? 아뇨 전혀 몰랐는데,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분이 아니셨잖아요. 나도 몰랐다. 근데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그 분 일기를 봤다 아이가. 거기에 금발의 백인 여자랑 찐하게 연애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는데…그게 또 얼마나 문학적이고 참신하던지 이런 양반이었나 싶어서 내 깜짝 놀랐다.

금발의 벽안. 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에 짚히는게 있는 것이 그게 정말로 벌어진 일이라면 아마 할아버지가 30대때 펜타곤에 파견나가있을 때의 일 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이미 결혼을 해서 아버지는 물론 작은 아버지도 있을 때 쯤의 일이 아닌가 근데 그런 시기에 연애를 했다면 그냥 불륜이잖아 싶어서 화제를 돌리려던 차. 친척 고모는 웃으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일기장에 뭐라고 써있었는지 자세히 알려주셨다. 뭐가 도대체 참신하단 말인가, 그냥 진부하고 천박한 표현이라 나는 머릿 속으로 항상 내 앞에선 점잖은 노인인 할아버지를 떠올리고는 음 그 이야기인 재미있지만 더 듣고 싶진 않아요 라고 말했다. 그래 일기장은 남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 일기장이 같이 있었을 할아버지의 서가에 대한 이야기는 묻지 못했다.

외할아버지의 서가는 원래 서재라고 하기도 부족했고 집의 부지 안에 책만 넣어두는 건물을 세우셨었다고 한다. (그게 사실 서재의 정확한 정의인가.) 그러나 내가 본 것은 사업을 그만 두고 서울의 빌라에서 살고 계셨던 외할아버지의 문간방. 책으로 가득했던 그 방이다. 책으로 가득했다고 말하는 것도 면구한 것이 외할아버지의 집은 거실도 다른 방들도 책으로 가득차 있었고 책이 없는 것은 화장실과 침실 뿐이었다. 하지만 책 외에는 어떠한 기능도 없던 문간방을 나는 멋대로 서재라고 불렀는데. 서재의 가장 큰 책장은 내 지정석 같은 곳이라 외할아버지 댁을 가게 되면 항상 그 주변을 얼쩡거리며 책 등에 써있는 제목들을 읽어보곤 했다.

외할아버지의 소장 도서들은 분별있게 모여있던 것이 아니었고 영문과 일본어, 한자와 한글을 섞어서 쓰던 분 답게 책들도 마구잡이로 섞여있었는데. 그 제각각인 책들을 제목이라도 전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자손 중에서는 그나마 나 뿐이라 나는 항상 외할아버지의 서재를 물려받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외할아버지로부터 그 책들을 물려받고 싶었다. 군사학과 건축학. 미술과 문학. 특히 일문학에는 조예가 깊어 다수의 일본 작가들과 교류도 있었던 외할아버지는 꽤 많은 수의 초판본과 희귀본. 더불어 여러나라의 작가들과 교류한 흔적-서간문들도-있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가쪽 친척들과의 교류도 일시적으로 끊었던 나는. 그 책들이 어디로 갔을지 몇 년 동안 계속해서 궁금해하고 아쉬워했다. 이혼을 해 가정사정이 어려워진 작은 딸과 그 아들은 외조부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가엽기 때문에 거두신거겠지만 역시나 귀찮고 성가신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 분이 돌아가시도록 나는 내가 그 분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알 수가 없었고 최소한 외할아버지 생전의 본인과 가장 가까운 물건, 그 분의 책들을 그 분의 뜻에 따라 물려받고 싶어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다른 무엇도 아닌 외할아버지의 말과 글이야 말로 본질의 그 분과 가장 가까운 것이기에…

또 몇년이 지난 후 이모와 화해를 하고 한가로이 잡담을 하던 날. 이모에게 외할아버지의 서재에 대해서 묻자 전쟁과 그 후의 기록도 있고 결국 국방 대학에 전부 기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할아버지 뿐만이 아니다 외할아버지 또한 군문에 오랫동안 계셨다.) 아니 일본문학관련 초판본도 다수이고 희귀본도 꽤나 있을텐데 그걸 통채로 기증했어요? 이모는 그런거 몰랐지 그러면 네가 기증하기 전에 추려내지 그랬니. 하고 여상하게 대답하는 이모의 모습에 나는 할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거기 외할아버지 일기장이 있어서 그걸 국방대학에 기증하는 전날 밤까지 읽고 그랬거든. 거기에 말년의 외할아버지 기록도 있는데 말년에는 네 이야기가 그렇게 많더라 ㅇㅇ이랑 다음주 점심. ㅇㅇ이랑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뭐 그런 내용 말야. 그야 말년에는 외할아버지랑 제일 자주 만난 사람이 이모랑 저니까 그렇겠죠. 라고 대답을 하면서 나는 내 목소리가 조금 갈라진 것을 깨달았다. 서운했을거야 너 회사 들어간 다음에는 자주 안 찾아왔잖아. 매달 일본에 갈 때 마다 단무지나 먹을거 잔뜩 사서 어머니 편으로 외할아버지한테 보냈는데요. 그런 것보다 얼굴 보는게 훨씬 좋지 당연한 걸 모르니 너는.

내 집의 서재에는 아직 풀지 못한 짐들이 쌓여있다. 그 중에서는 다른 사람이 내 집에 놓고 간 책들이 있다. 책들이 있다고 하기엔 너무나 가벼운 표현인 것 같다. 무게로 따지면 100킬로그램은 가뿐히 넘을 책 무더기가 있다. 나는 이걸 버리려고도 주인에게 돌려주려고도 했지만 어떻게 된 것이 모두 실패했고.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의 인생의 일부 분량 정도는 될 듯한 책 더미를 가지고 있게 되었다. 이것은 혹시 누군가의 일부라도- 그 사람의 서가를- 가지고 싶어하던 내 소원이 삐뚤어지게 이루어진 결과인걸까 싶었지. 우리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조절 할 수 없다. 그것이 소원의 정의이기도 하다.

금요일엔 새로 산 책장이 온다. 그러면 그 중 한 책장에 이 책들을 다시 꽂아놔야겠다는 생각이 충동적으로 들었다. 박스에 책을 둔 채로 방치하면 책은 곰팡이가 피고 냄새가 나게 된다. 이 책들을 펴서 읽을 일은 없겠지만 그 책등을 살피며 제목을 읽어보는 것 정도는 나에게도 허락된 일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뜻하지 않게 책을 맡게된…솔직히 말하자면 뒤에 남겨진 사람의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


26년 1월의 글이다.


'부재증명_(에세이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60913] res ipsa loquitur  (0) 2026.09.13
[20260909] Carnassial  (0) 2026.09.09
[20260121] 플라이트 투 덴마크  (0) 2026.01.21
[20251230] 우리는 너무 많이  (0) 2025.12.30
[20251204] nothing’s gonna change  (0) 2025.12.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