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올려놓은 메모 장에는 언제 적어둔지도 모를 문장들이 작은 거미처럼 도사리고 있다. 기회만 있다면 잠이 든 내 입 속에 들어와 뱃속에서 가느다란 실로 거미줄을 치기라도 할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참고 있다. 말을 하는 것을, 글을 쓰는 것을 그리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을.

언제부터인가 기억력도 나빠져 예전처럼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때때로 내가 생각했던 것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만다. 어쩌면 내가 바라는 것이 그저 잊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기 내가 몇 주 간 생각했었던 거미와 같은 문장들을 몇개 적어본다.
…

나는 어느 가을 날, 살아있는 사람의 유령을 보았다. 그렇게 표현 할 수 밖에 없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 날은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연차를 낸 날이었다. 모든 회사원들이 그런 것처럼 쉬는 날 갈 수 있는 모든 병원을 한 번에 가려고 아침부터 병원을 돌아다니던 날이었다.
얼마 전 가을 같지 않았던 더운 날씨가 끝나고 서늘하니 기분이 좋아 아무리 걸어도 땀도 나지 않을 그런 평화로운 오전께. 나는 6층의 병원에 가려고 엘레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엘레베이터의 모퉁이, 거미나 붙어있을 것은 구석에 누군가 서있었다. 뒷모습은 숱많은 머리에 반쯤 열린 짙은 색의 백팩, 백팩에는 사람들이 흔히 그러는것처럼 인형들이 늘어져 있었다. 작고 하얀 얼굴은 엘레베이터에 들어온 나를 외면 하듯 벽을 향해 있었고. 길고 마른 팔은 가방을 꼭 쥐고 있었다.

나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엘레베이터의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1층에서 2층으로, 한 층 씩 올라가는 층수를 머릿 속으로 세던 나는 6층에 이른 엘레베이터에서 뛰는 듯한 걸음으로 내렸다.

내리고 나서 깨닫는다. 내가 본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그 누구도 아닐 뿐더러, 유령도 아니었다. 어째서 엘레베이터의 사람을 보고 그걸 살아있는 유령이라고 생각 한 걸까. 아마도 그건 내 머릿 속 어딘가에 유령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마도 나다.

병원 진료를 마친 다음 건물로 나온 뒤에도 햇볕은 적당했고 바람은 선선했다. 해가 낮아지는 계절임에도 낮은 한참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밝은 얼굴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살아있는 유령인 나였다.
…

거미의 신이 온 세상의 지혜를 훔쳐 항아리에 넣었다. 아무도 그가 모든 지혜를 훔쳤는지 몰랐다 하늘의 신조차도 말이다. 모든 지혜를 한 손에 넣은 거미의 신은 심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 모든 지혜를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 아무도 보지 않을 곳, 예를 들어서 커다란 나무 꼭대기에 지혜를 넣은 항아리를 숨기려고 들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 머리가 작아지고, 꾀를 부리느라 팔다리가 가느다랗게 길어진…심술궂은 거미의 신은 지혜 그 자체를 손에 넣은 자신의 지혜에 만족하며 항아리를 안고 나무를 타려고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항아리를 숨겨두면 모든 지혜가 영원히 나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거미의 신을 보고 있던 작은 존재가 있었으니 이는 거미의 신의 어린 자식이었다. 어린 거미는 자신의 어버이가 항아리를 들고 나무를 오르려는 것을 보았으나 항아리가 무엇인지, 왜 나무를 오르려 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그 어린 거미는 거미의 신을 사랑했기에 어버이에게 말한다. 항아리를 안고 나무를 타는 것은 위험해요. 아버지, 항아리를 등에 태우고 올라가세요.

그러나 지혜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기고자 했던 거미의 신은 어린 자식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조용히 해라 어리석은 것. 눈을 부릅뜨고는 이어 말한다. 내가 항아리를 등에 지고 나무를 오를 때 너 어린 놈이 나의 항아리를 잡아 채가려고 꾀를 쓰는 구나. 나는 너의 몇 배는 현명한 신이다. 어버이의 호통에 깜짝 놀란 아이는 놀라 훌쩍이며 말한다. 아니에요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걱정될 뿐이에요.

거미의 신은 아이의 말을 듣지 않는다. 지혜가 가득 담겨 철렁거리는 항아리를 더욱 꼭 안고는 나무를 오른다. 너 내가 이 항아리를 두고 온 뒤에 보자. 거미의 신은 힘겹게 나무 위를 올라간다. 오르고 또 오른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항아리를 안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안전하고 좋은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무는 너무나 키가 컸고 거미의 신이 나무를 오르던 중 비가 내리자 상황이 바뀌었다. 몇 번이고 항아리를 꼭 안은 신의 손이 미끄러졌고 고집스럽게 나무를 오르던 거미의 신은 항아리를 놓치고 만다. 땅에 떨어진 항아리는 깨져 모든 세상의 지혜는 다시 모든 세상으로 퍼져나갔으며. 충분히 지혜롭지 못했던 거미의 신은, 아이의 사랑을 받을 자격을 잃었을 뿐 아니라. 지혜의 항아리도 놓치고 말았다.
…

주나라 목왕에 대해. 열자의 탕문편에 이러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서쪽으로 순행을 떠난 목왕이 곤륜산과 엄산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갈 적에 어느 지방에서 언사라는 장인을 추천받아 만나게 된다. 그는 못 만드는 물건이 없었으나 가장 자신있어 하며 보여준 물건은 어찌 보아도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인형, 꼭두각시였다.

언사는 그 인형이 진짜 사람이 아니라 본인이 만들어낸 꼭두각시라고 설명하였으니. 아무리 보아도 나아가고 말하고 허리를 굽히며 동작하는 모습이 사람과 다름없었고 노래와 춤까지 뛰어나게 해냈으니 도저히 물건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이 아주 놀라웠으나 왕 앞에서 여러가지 연기를 피로하던 인형이 무왕의 총비를 희롱하는 모습을 보이자 안 그래도 의심이 깊던 무왕은 이 인형은 사람이 틀림없다고 대노하여 인형의 목을 베려하였다.

그러자 놀란 언사는 왕 앞에서 인형의 배를 갈라 그 내장이 나무와 아교, 실로 이루어진 것을 보여주며 진짜 사람이 아닌 것을 보였다. 인형은, 정말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

이 포스팅에 쓴 글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모두 새끼거미의 실타래와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블로그에 종종 들어와 블로그의 일일 방문자 수가 계속해서 1을 찍다가 0을 찍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글을 쓸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그 동안 내 삶에 뭔가 달라진 것을 정리해보려고 했지만, 그런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정리 할 것도 없었다.

뭘 했었지, 뭘 읽었지. 어떤 생각을 했지. 어디를 갔었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시간을 보냈고 어느새 가을이 왔다. 나는 가을 바람이 온게 믿겨지지 않아서 매일 아침 출근을 반바지에 반팔로 하다 못 견디고 바지는 긴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팔을 입고 있는 건 그대로라서 머지 않은 미래에 얼어죽은 시체로 발견될 예정이다.

아니 어쩌면 그저 버려진 꼭두각시일지도 모르지.

26년 10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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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The thing speaks for itself.” 영미법에서 말하는 과실추정의 법칙을 의미한다. 잘 모르는 분야지만 아는 선에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직접 증거가 없이도 피고의 과실이 있었다고 추론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피고의 완전한 통제와 일반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사고여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할 지 모르겠다. 그 동안의 내 삶에 뭔가 달라진게 있다면 그걸 정리해서 말해보겠지만 그럴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어딘가 멈춰져 있는 작은 세계에서 똑같은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뭘 했었지, 뭘 읽었지, 어딜 갔었더라. 어떤 생각을 했었더라.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시간을 보냈고 어느새 또 가을이 왔다. 나는 가을바람이 부는 게 믿겨지지 않아서 매일 아침 출근을 반팔에 반바지로 하다가 얼어죽은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몇 달 전에는 인턴 한 명이 우리 부서에 배치되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나이차이도 한참 나고 중간관리자인 내가 인턴의 멘토로 임명이 되었다. 부담스럽고 귀찮고 피곤했지만 재미있었다. 키가 크고 근육질에 선한 얼굴의 인턴은 한국의 부모님 열 명 중 아홉 명은 제발 이 청년이 우리 아들이었으면 하고 생각 할 정도로 잘 큰 청년이었다.

우리 회사는 나름 이름있는 기업인데도 우리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인턴청년과 대화를 하고 난 뒤면 나에게 인턴은 여긴 안 들어오겠다. (우리 회사 들어오기엔) 너무 인재잖아 안 그래?라고 물어보곤 했다. 나는 뭐라고 얘기를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물어볼 때 마다 전혀 다른 대답을 했는데 그러게요. 아니에요 알고 보면 성격 이상해요. 중소기업 살린다고 생각하고 우리쪽에 오지 않을까요. 맞아요 인턴십 끝나면 우리 회사 쪽으로는 돌아보지도 말라고 했어요 등등 나도 내가 무슨 얘길 했는지 까먹을 정도로 많은 대답을 했고 또 그 대답들을 인턴 청년에게 전부 말해줬다. 인턴은 내가 또 무슨 대답을 했는지 재미있어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는 인턴청년에게 얘길 한다면 되도록 솔직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회사의 문제점이 뭔지 네가 하고 싶은 커리어에 대해서 보강할 점이 뭔지. 20대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해서 무엇을 하면 안되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내 조언이 완벽한 정답은 아니겠지만 가능한 최선을 다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답을 말해주곤 했다. 대체로 잔소리였고 잔소리가 아닌 말들은 거의 농담이었다. 예를 들어서 20대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농담이었다. 농담이 아닌 말은 이거 하나 정도였다. 남자는 다소 손해를 보면서 사는 편이 딱 좋다. 의외로 인턴청년은 그게 맞는 것 같다고 공감해주었다.

인턴십이 끝나고 인턴이 퇴근을 할 때. 나는 배웅을 가지 않았다. 전날 이미 너 없어지면 심심해지겠다 라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그렇다. 그런 말들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작별인사다. 인턴청년은 인턴십 초기에 이미 본인이 하고 싶은 커리어에 대해서 나에게 얘길 한 적이 있다. 그 커리어를 생각하면 아마 그가 우리 회사에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너 우리 회사 정식 입사 하면… 네, 정식 입사 하면요. 그 때부터는 성경에 나오는 당나귀처럼 부려먹을거니까 잘 생각해. 왜 하필 당나귀 비유를 그렇게 쓰시는거에요?
이 정도가 인턴과 내가 나눈 정식 입사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의 전부였다.

또 뭘 했더라. 이제 스마트폰과 전화번호가 생긴 조카에게 동물짤을 종종 보낸다. 조카는 드라마를 아주 좋아하고 동물들보다 자기가 귀엽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나와 언쟁이 가능할 정도로 말이 많이 늘었는데(그렇다 나는 초등학교3학년과 전력을 다해 언쟁을 하는 어른이다.) 지난번엔 본인이 좋아하는 드라마 여자 주인공에 대한 험담을 하는 내가 너무 미워서 울음을 터트리려다가 꾹 참고. 삼촌은 정말 남 험담을 잘하시는 분이군요 라고 침착하게 말했다. 솔직히 조카가 귀여워서 죽을 것 같다.

동물짤을 보내면 조카는 항상 하나도 귀엽지 않다는 대답을 한다. 나는 조카가 무슨 대답을 하든지 말든지 귀여운 동물짤을 찾으면 이거 귀엽다 라면서 짤을 보낸다. 외동으로 자라난 초등학생의 고집은 정말 대단해서. 이상한 억지를 부리며 삼촌의 동물짤들은 별로라는 얘기를 한다. 지난번에 조카의 사진 라이브러리를 뒤져본 결과(공정을 다하기 위해 말해보자면 조카도 항상 내 사진 라이브러리를 뒤진다.) 내가 보낸 동물짤들을 모두 저장해둔 걸 확인하지 못했다면 나도 조카의 태도에 깜빡 속을 뻔했다. 어쩌다 이런 겉과 속이 다른 아이로 자라게 되었을까. 곧 뱃속이 시꺼먼 청소년이 되겠지만 뭐 어떠랴 나는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이 아이는 점점 똑똑해질텐데. 내가 아직 이 아이를 놀릴 수 있을 때 온힘을 다해 놀리고 괴롭힐 생각이다.

회사의 후배 중 하나가 업무가 바뀌게 되면서 내가 하는 일과 관련성이 깊어졌는데.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은 쑥스러운지 요 몇 달 간 나에게 연락해오는 일이 잦았다. 생각해보니 매일매일 회사 메신져든 카톡이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락해오고 있었다. 내용은 대체로 업무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이게 맞는지 조언을 구하는 내용이고 때때로 본인의 분을 못 참고 투덜거리는 내용이었다. 내가 바빴던 나머지 대답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후배의 질문에 대해서는 빠지지 않고 대답을 하려고 노력했다. 누가 회사에서 도움을 청하면 가능한한 들어주려고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후배가 화난 앵무새처럼 투덜거리는게 제법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종일같이 회사일만 생각하다가 회사일이라고 해야할지 사적인 연락이라고 해야할지 알 수가 없는 연락을 받으면서 기분을 전환했던 것 같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외로운 나머지 누가 한없이 회사일에 가까운 얘기를 하는 것 마저도 반가웠던 것이다. 나는 어느덧 누군가에게 기대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깨달은 것은 후배와 매일 같이 연락을 해온지 2개월에서 3개월 쯤 되었던 때였다. 나는 사적인 연락과 사적이지 않은 연락의 구분을 못 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서(이미 충분히 멍청했던 것 같지만) 때마침 본인이 하는 업무가 안정되어 가던 후배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자 그 뒤로 후배에게 먼저 연락이 오는 일이 없었다. 이미 후배에게 나의 효용은 없어진지 오래였던 것이다.

때때로 잘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잘 하고 있느냐고 연락을 하려다 왠지 그런 질문 자체가 눈치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 뒤로 후배로부터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기에 대화도 나누지 않게 되었다. 사람과의 관계란. 사람의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한없이 가늘고 아주 쉽게 끊어진다.

그러고보니 그런 일도 있었다. 언젠가 후배가 고집을 부려 일이 남았는데도 같이 퇴근을 했었더랬다. 그날의 석양은 여름답지 않게 아주 아름다워 나는 뜬금없이 후배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네가 지금 퇴근하자고 해서 저런 멋진 저녁노을을 볼 수 있었다고. 나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았을까.

얼마 전 혼자 퇴근을 하던 날에도 노을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그날 노을이 아름다웠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다.

이게 올해 봄 이후 가을까지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당신은 알 수 있을까. 지금 날씨에 반바지반팔로 출근하면 얼어죽는다는 것 말고 말이다.


26년 9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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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께서 이르시기를,
여기 독화살에 맞아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
다행히 그가 절명에 이르기 전에 사람들이 의원을 찾아 독화살을 뽑으려 하였으나 그는 고개를 흔들며 말하였다.
나는 이 화살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고, 누가 쏘았으며 그 쏜 사람은 어떤 가문인지. 왜 쏘았는지를 알기 전에는 화살을 뽑지 않을 것이다.

세존은 이어 말하였다. 그는 화살을 바로 뽑지 못하였기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

오늘 아침 트랙을 달리다가 문득 깨달음이 있었다. 별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 깨달음이 오자 더욱 숨차게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다리에 힘을 주고 속력을 높여 한 바퀴 반을 더 돌았다. 초가을 아침바람이 서늘했다. 이 트랙이 있는 공원은 반쯤은 숲이다. 한 여름에도 그럭저럭 서늘하고 항상 사람들이 있다. 산에 걸쳐져 있는 공원이라 공원 면적에 비해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좀 좁지 않은가 생각도 들지만 좋은 공원이다. 이 동네에 이사 온 후 제일 많이 시간을 보낸 것도 이 공원이다.

대규모로 개발된 택지 단지인 이 동네는, 주거구역(대체로 아파트)와 녹지(대체로 공원과 일부 수변)로 나뉘어져 있고 일자리가 되는 도심형 공장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돈을 빨아들일 수 있는 넓은 상업지구까지 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지 않고 개발이 되지 않은 구역도 잘 통제되어 있어 이제까지 내가 살았던 그 어떤 곳보다 세련되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공장 지역에서 자라난 세련되지 못한 나는, 여기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니 그저 여기에 관심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외출을 하지 않고 있다. 매일의 출근과 러닝, 가끔의 서울행이나 지역의 도서관 정도가 아니면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얼마 전 상업지구의 한 쪽(커다란 호텔이 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에 유명한 지방 떡집의 분점이 생겼다는 걸 알고 드물게 저녁 산책을 나섰다. 이 동네에 이사 온 지도 반년이 되었는데 몇 번째 저녁 외출이었더라 세번째, 아니 네번째 정도 되려나.

동네에 있는 큰 공터는 프랜차이즈 호텔인지 프리미엄 아웃렛인지가 들어온다고 하고서 오랫 동안 공터로 남아있었는데 새로 플랜카드가 붙었다. 천몇백세대 쯤 되는 주상복합 겸 아파트가 들어온다고 한다. 온갖 채널로 광고가 들어와 나도 모를 수가 없었는데. 민망할 정도로 비싼 분양가가 실린 기사를 보고 나는 속물답게 우리집도 비슷하게 오르면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작은 부자 정도는 될 수 있겠는 걸 하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 집의 진정한 소유주는 은행이라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한 생각이었다.
낯설기 짝이 없는 사거리를 걷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천 몇세대의 주거지가 들어오면 여기가 어떻게 바뀔까 생각을 한다. 오천명 쯤 될 인구가 들어오고 그 사람들이 여기에서 얼마나 되는 돈을 소비할지. 하수도와 전기의 소비는 얼마나 늘어날지. 나는 머릿 속의 숫자들을 세어보다 문득 망연해져서 오천, 혹은 만 정도 될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한국 어딘가의 택지지구에서 살게 될 다수의 사람들. 무언가를 타고 와서 무언가를 타고 나가는 사람들. 숫자가 커질수록 머리가 복잡해진다. 너무 많은 사람이, 타인이 머릿 속에 담긴다.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그만하기 위해 맹수의 이빨에 대해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식육목의 치아구조.
사람들은 맹수의 이빨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송곳니라고 생각하지만, 송곳니는 잡식동물에서도, 때때로는 초식동물에게서도 발달할 수 있다. 식육목의 맹수가 가진 치아 구조 중 가장 특이한 것은 위턱의 작은 어금니와 아랫턱의 첫번째 큰 어금니가 맞물려 생기는 가위와 같은 구조, 열육치이다. 열육치는 이름 그대로 먹이를 작은 조각으로 자르는 역할을 하는데. 물론 앞니와 송곳니는 사냥감을 물어 무력화 시키고 살점을 찢는 역할을 하는데 왜 열육치가 식육목의 주요한 특징이냐면 육식동물이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먹이를 잘게 부수는 것이 중요해졌고 거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열육치였기 때문이다.
고양이과의 동물들은 이 열육치를 쓰기 위해 먹이를 먹을 때 고개를 돌린다. 어금니로 잡고 열육치로 자르는 것이다.

곰과 같은 잡식 동물의 경우는 고기만을 먹는 고양이과의 동물들보다 어금니가 평평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사람은 식육목이 아니기 때문에 열육치가 없다. 우리 영장목의 특징은 멋진 열육치가 아니라 양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마감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유명 떡집의 우리 동네 분점은 상품이 다 떨어져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어이가 없어서 검색해보니 사람들의 개인블로그에 평일 오후에 내점했는데도 대기팀이 몇백팀 정도 있었다는 글이 있었다. 나는 좀 더 어이가 없어져 무심결에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는 와 이거 말도 안된다 그치.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같이 끄덕여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만, 그만 생각해야한다.

다시 식육목의 이빨에 대해서 생각한다. 앞니와 송곳니를, 그리고 열육치를 떠올린다. 곰의 어금니를 생각하고 개의 이빨의 수를 센다. 먹이의 종류가 많을 수록 이빨의 수가 많아진다고 한다. 이빨 마다 각기 다른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정말일까. 나는 다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서 생각한다. 국도의 구조와 교통이 퍼져나가는 스프레드를. 도심지와 부도심지를. 그리고 이 지역의 중심 지역이 어디인지 가늠해본다.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계속해서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다음 생각, 그리고 다음 생각으로.

나는 오늘 아침 떠올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원하는 것이 독화살을 빼고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이 독화살의 이름이 무엇인지, 이 화살을 쏜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이 화살을 쏘았는지 아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화살을 쏜 자가 지금은 평안한지. 나를 미워함으로서 위로를 얻었는지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나는 이빨에 물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며 트랙을 한바퀴 반 달렸다.

26년 9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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