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다. 인테리어가 끝날 때 까지 임시로 살고 있는거니까 3주 정도만 살면 되는 곳인데 요즘 날씨가 너무 추운지 그냥 이곳에서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예를 들자면 이 오피스텔 건물에는 스타벅스가 있는데 여긴 전에 만났던 분과 처음으로 갔었던 카페다. 왜 그랬었는지 아구찜을 먹고선 스벅에 가 그 분이 만났던 예전 남자친구들 얘기를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철벽을 치려고 그런 얘길했던게 아닌가 싶지만. 나는 그 때 이미 그 분이 마냥 좋기만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도 즐겁기만 했다.
매일 내 방으로 들어가기 전 스벅에 들러서 커피라도 하나 살까 생각을 하다 그 분이 내게 해줬던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거기에 만족해서 방에 그대로 들어간다.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항상 이야기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바란다 나는 그럼 그대로 만족해서 몇 년이나 당신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잠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묵고 있는 방은 계산해보면 하루 5만6천원 정도의 풀옵션이다. 노력하면 대여섯 걸음 정도는 걸을 수 있는 크기인데도 샤워부스가 딸린 화장실이 있고 세탁기와 조리도구, 세미싱글 정도 되는 침대가 딸려있다. 작은 냉장고도 텔레비젼도 있으니까 뭐 사는데 부족한 것은 없는 셈이다. 부족한게 있다면 상당히 건조하고 죽도록 춥고 새벽2, 3시쯤 깨서 귀를 기울여 보면 희미하게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가 나고 어딘가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는 것 정도이다. 회사에서 걸어서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것 까지 생각하면 이 한심천만한 가성비가 거슬리지 않는 한 4년 정도는 거뜬히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층마다 25개의 방이 있는데도 여기서 산지 1주일이 넘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층에서 누군가와 마주치기라도 한 적은 딱 한 번 뿐이다. 친구는 역 앞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는건 기본적으로 범죄자들 뿐이야 라고 편견 가득한 얘길 하며 오며가며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목을 유심히 보라고 했지만. 애초에 누굴 마주치질 않으니까 그런 기회는 없는 셈이다. 어째서 이렇게 까지 누굴 마주치지 않는 걸까 중정을 가진 ㅁ자모양의 건물이라서 그런걸까. 이 층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나오는걸 보고는 나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반댓쪽으로 빙그르르 돌고 있는걸까.

눈이 오는 어느 날 중정을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이 끝나버린 걸 눈치채지 못하고 눈치 없이 혼자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중정으로 난 창을 통해서 아랫층도 볼 수 있었지만 내가 내려다 볼 수 있는 약 200개 쯤 되는 문 중 어떤 문도 열리지 않았고 10개 가까운 복도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사이 2주 아니 3주가 거의 지나가고 있다. 나는 늦든 빠르든 결국 이곳을 떠나게 된다. 그러니 좀 더 감상에 젖어보자면. 이사를 간다는 것은 연애가 끝나는 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어느 쪽이 다른 한 쪽의 메타포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이사를 나왔던 곳에 우연히라도 오게 되면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거의 그대로 있지만 이상하게도 낯선 기분이 들고, 더 이상 이 곳에 속해있지 않다는 기분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거기 남아있는 것들은 내가 떠났는데도 불구하고 망하거나 없어지거나 하는 일도 없이 그냥 예전처럼 살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떠나온 곳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던 것이다. 미련가득히 중얼거려본다 그렇게까지나 저는 아무 것도 아니었나요 대답해보세요 영통구여. 내가 8년이나 살았던 곳이여.

이 글의 제목이 Flight to Denmark인 이유는 듀크 조던의 앨범을 들으며 겨울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히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찰리 파커와도 같이 연주했다)였지만 뉴욕에서는 전문적인 피아노 연주자 잡을 잡지 못해서인지 사정이 어려웠던 탓인지 택시드라이버로 투잡을 뛰던 듀크 조던은 70년대 유럽의 재즈 유행에 힘입어 덴마크에 초청되어 가서 여러 연주를 했고 이 멋진 앨범을 냈다. 이 앨범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넘버는 Everything happens to me 인데 아니 이게 … 이 곡(듀크 조던 앨범에 있는)이 그 곡(쳇 베이커의 보컬로 유명한)이라고?? 하고 생각하며 러닝을 했다. 들을 때 마다 거기서 울지 말고 이 근처로 와서 이 연주를 들으며 울어요 라고 말하는 듯한 대단한 연주이다. 그리고 그는 이 앨범의 대성공을 계기로 미국을 떠나 덴마크로 완전히 이주하게 되고 그곳에서 죽는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뭐 그런 쓸쓸함에 대한 것이다.

듀크 조던과는 다르게 내가 덴마크에 가게 된다면 그 여행기의 제목은 <덴마크는 감옥이다>라고 짓고 누군가가 댓글로 “그렇다면 이 세상도 온통 감옥이겠지요”라고 말하는 것을 기다릴 생각이다. 누군가 정말 그렇게 댓글을 달면 낄낄 웃고는 포스팅을 지우겠지. 나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은 오직 한 사람에게 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이해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 글을 읽고 있지 않을테지. 단 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으로 과분하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사람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목숨이 간당간당한 사람처럼 살고 있는걸까.

여기서 사는 것도 이제 3,4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곧 내가 산 집으로 이사를 간다.


26년 1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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