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의미를 둔다. 의미를 갖고 해석하고, 이해하려 들고 현상들을 스스로의 안에 받아들여 영혼에 새기려고 한다. 우리가 현상의 일부 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해석이란 결국 주관의 다른 이름임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허공에 그어진 선이고 바닥을 누르는 압력과 소리이며. 공중을 떠다니는 진동, 전기적인 신호이다. 우리는 주관적인 해석을 통해 현상을 이해했다고 주장하고 예측과 관찰을 통해 해석이 맞았음을 증명하려 한다. 그렇다, 우리에게 있어서 해석은 결국 예측을 위한 도구이다. 예측이 결여된 해석은 결국 망상과 다를바 없다. 우리가 불완전한 언어로 하고 있는 이 모든 소통이 모래 밭 위에 세워진 드높은 탑처럼 언젠가는 무너질 것임을 직감하고 있다면. 당신도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잊어버린다.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을 잃어버린다. 모든 것이 소진 될 때 까지 생산하고 소비해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사기 위해 버리고 버리지 않고 쌓아두는 것을 사악한 행위의 일종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것은 우리가 가진 가장 높은 지대의 땅에 쓰레기장을 만들고 그곳에 가장 비싼 가치 없는 것들을 모아둔 후.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일을 하는 사원으로 여기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소비라는 이름의 강박을 좀 더 신실한 행위로 받아들일 수 있고. 버리는 것과 사는 것 모두를 삶의 목표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요소이고 기계이다. 거대한 책에 놓여진 점과 같다. 우리가 어느 지면에 찍히든 이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기능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 많이 걷거나 서있다. 세월의 노고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노력은 배신한다, 마음은 가라앉는다. 삶은 흘러간다. 이제까지 어떠한 알려진 사례에서도 시간을 돌릴 수 있었던 경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흘러간 시간과 노력에 대해 동등한 보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가능한 비슷한, 그러나 절대 동등하지 않은 것들이다. 돌아오지 않는 것을 적당한 비용과 합리적인 수준의 스트레스를 통해 변환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멋진 피아노 연주 솜씨, 월급, 반짝거리는 자동차, 무릎부상, 소꿉친구와의 돌이킬 수 없는 헤어짐, 매미껍질, 바닷가에서 주운 매끈한 유리조각, 긴 머리카락. 우리가 지불해야하는 것은 우리의 가능성 뿐이지만 우리가 가진 전부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의 총합이라는 이야기이다.



25년 1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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