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달이다. (내 다른 것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까지 오래 있을 생각이 아니었는데 그렇게나 오래 있게 되었다.
나는 항상 그렇다. 어느날 운명의 어쩌고에 휘말려서는 뜻하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그게 그리 억울하진 않다.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지만 휘말려들어간 삶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충분히 강하다는 증거다. 자신의 운을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
집은 수원시 어딘가에 있는 아파트다. 2000년대 언제 쯤에 만들어진 정말 흔한 구조의 아파트. 적당히 낡고 멀리서는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린다. 나무들은 늙고 커다랗다. 내가 <집>이라고 생각할만한 요소를 여러개 갖췄다.
내가 회사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면접을 제외하고는 수원에 한 번도 와보지 않았을 때. 당시 수원에서 살고 있던 아버지가 난데없이 나를 수원으로 부른 적이 있었다. 그 때 당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나를 불러 차를 끓여주었는데, 그 때의 아버지의 집도 꼭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처럼 생겼다. 흔한 구조이긴 하다. 하지만 역시 음 아무래도 그렇다. 주변의 풍경도 단지의 모습도 아주 비슷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나는 아버지에게 그 때 사시던 집이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냐고 확인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어디에 사는지 모른다. 아버지와 나는 그런 부자관계이다.)
그저 꿈에서 보았던 어떤 장면처럼 세피아 필터의 갈색 풍광을 기억하듯, 아버지도 나와 비슷한 곳을 <집>으로 골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날 있었던 일을 하나 더 얘기해보겠다. 아버지는 인생 전체에 걸쳐서 아버지다운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은 사람이지만(아버지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날엔 무슨 변덕인지 아버지 다운 이야기를 하나 했는데. 운전석에 앉아서는 아주 어려운 이야기를 지금 한다는 듯이 어렵게 어렵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라.”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러니까 취업이 결정되었고 게다가 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인 나는 이제와서 그런 얘길 하는 아버지가 너무 어이없어서 하는 얘길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평소처럼 그럴 듯한 달변으로 하고 싶은 걸 하고 살 때의 장점을 설명하려고 들었다.
조금 짜증이 났었기도 했고, 때마침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포기하고 취업을 결정했던 스물 몇살의 나는 “제가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물론 아버지는 나의 그런 의견에 대해서 여러가지 반박과 후려치기를 하긴 했다. 아버지다운 이야기를 하는 유효기간이 끝나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부모이든지 간에 인생에 한 번 쯤은 자기 자식에게 하고 싶은걸 했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변덕을 부리게 되나보다. 단지 아버지는 그걸 자기 자식에게 직접 말로 할 정도로 의욕이 있는 사나이였다.
실은 아까 글의 앞에는 운명의 노예로 살았던 것처럼 말했지만 나는 어느 정도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았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입시를 결정했고(상의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가족은 한 명도 부르지 않은채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만 살고 있으며 무엇보다 하고 싶었던 일보다 해야할 일을 하며 살아가기로 선택 한 것도 내 뜻이었다.
여러분에게 자세히 설명 할 수는 없지만. 나는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을 포기한 대신 온갖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야할 것을 해야한다는 핑계로 해야하는 것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내 인생의 진실이며 내 비겁한 삶의 내력이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이란 결국 열심히 발버둥친 결과 아버지의 안티테제가 되는 것 뿐일지도 모르겠다. 이것 또한 내가 세상의 그 누구보다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에 하는 생각이겠지.
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김에 집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도록 하자. 이사가 결정되고 11월부터 나는 매일 짐을 치웠다. 우습게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은 요즘 짐이 꽤 많이 줄어들어서 깔끔한 상태가 되었다. 아니 꽤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다소 과장이다.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를 대량으로 사들였고 그 박스에 매일 같이 물건들을 집어넣고 쌓아두고 있다.
아니 이사를 나갈때가 되서야 집이 깨끗해지다니 게다가 다음 집으로 이사를 가면 플라스틱 박스에 있었던 것들을 다 풀어버리고 집이 다시 어지럽혀지는 것이 아닌지. 그렇다 이것이 인생의 모순이라는 걸까.
알게 뭐야 싶다. 오늘은 12월 4일이고 올 겨울 첫번째 눈이 내리고 있다. 갑자기 하늘을 가득 덮은 까마귀 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이 모순된 감정도 마음도 조금은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5년 1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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