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깎이를 샀다. 마지막으로 병원을 간 날이었다. 친절한 사람이 수고하셨다고 말해주었고 나는 감사하다고 하고 병원을 나왔다. 처음 다친 날 부터 8개월이 걸렸다.
연필 깎이는 다소 비싼 철제로 된 물건이다. 한 손 안에 들어올 정도의 크기인데 연필을 꽂고는 연필이나 연필 깍이 둘 중 하나를 돌리면 연필이 깎인다. 이제 한국에서는 연필을 좀처럼 생산하지 않는가보다 문방구에 갔지만 스태들러만 꽂혀있길래 두 자루를 샀다. 사무실 자리에 앉아 스태들러와 블랙윙(따로 인터넷 주문했다)을 사각사각 깎고 있으니 기분이 차분해졌다. 일부러 연필로 글을 써본다.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요 몇 달 동안 글을 쓰려고/쓰지않으려고 노력했다. 작년부터 거의 병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심리상태에서 블로그 포스팅만 60편이 넘는 글을 썼다. 나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다른 사람에게 솔직한 생각은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혼자가 된 나는 그 누구에게도 생각하는 걸 말 할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글을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던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시기 내 블로그 글은 공개 일기나 다름없어졌기 때문에 때문에 그리 솔직하지도 정밀하지도 않았다. 차라리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몇 편의 단편 소설 쪽이 훨씬 솔직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 예전의 일기, 아니 블로그 글을 읽고 있으면 그 글을 읽고 있었을 때의 감정과 기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서툴고 어쩔 줄 모르고 화를 내고 그리워 할 뿐인 그 때의 나를 읽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순간의 자신을 어느 틈새에 밀어넣어두는 것과 비슷하다. 많지 않은 정보량으로 쓰여져 있다고 해도 나 자신 만은 틈새에서 글을 뽑아내어 그 글을 쓸 때의 나를 높은 해상도로 떠올 릴 수 있다. 다름 아닌 그 글을 쓴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글들은 인력이 되어 모든 것의 반댓편으로 추락하고 있는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아직도 말이다.
이렇게도 말 할 수 있다. 글이 쌓여간다는 것은 수많은 시점의 내가 생겨난다는 의미이다. 25년 8월의 글을 쓰던 나는 25년 9월의 글을 쓰던 나와 다르고 그렇게 쌓여나간 글들은 서로 조금씩 다른 모습의 나를 기록으로 남기게 된다 아무리 그 간격이 짧다고 해도 말이다. 어제의 나와 그저께의 나는 그 사이에 놓여진 글을 쓰는 행위 자체로 인해서 결정적인 차이가 생긴다. 글을 쓰면 쓸 수록 나는 서로의 나로부터 멀어져간다. 나는 그렇게 글을 쓰는 것으로 멀리 돌아서 한 여름의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한다.
체중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천천히 줄어들어 이십대 언젠가의 체중이 되었다. 일을 너무 많이 하고(그래봤자 일주일에 50시간 정도이긴 하다) 스스로를 위해 하는 것은 하루에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의 러닝 밖에 없다. 이름만 나열해도 오래된 종이와 플라스틱, 그리고 고무의 냄새가 나는 재즈 연주자들의 음악만 죽어라고 듣는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나는 일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아주 오래 전에 알던 나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몇 년간 쌓아온 것들을 모두 버리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하자. 버려야 할 것에 어떤 가치도 두지 않고 한없이 가벼운 것인양 날려보내도록 하자. 그렇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를 버리지 못할 것이다.
연휴의 어느 날 전에 살던 동네에 갔다. 이사를 할 때가 왔기 때문에 어디든 좋으니 고양이를 키울 수 있을만한 작고 오래된 아파트를 한 채 살 생각이었다. 지금의 동네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영화관과 도서관이 있었던 장소에 살다가 어느새 양 쪽이 다 없어진 동네에서 사는 것은 생각보다 짜증이 나는 일이다. 할 수 있는 한 하찮은 이유를 들어서라도 이 동네를 떠나고 싶었다.
전에 살던 동네는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보다 낡고, 비가 오고 있었다. 내가 그 동네에 이사를 갔던 것은 그 당시 만나던 애인과 사는 곳이 너무 멀었기 때문이었다. 이사를 갔다고 해도 애인의 집과 걸어서 30분이 넘게 걸리는 곳이었으니 이걸 근처로 이사 갔다고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지만. 돈도 없고 경험도 없었던 나에게는 나름 최선을 다 한 선택이었다. 그 애인과 헤어지는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에게 금세 질려했고 티가 나게 바람을 피기 시작했으며 몇 번 나를 차고 다시 연락해오는 걸 반복했다.
나는 헤어진 뒤에도 그 곳에 계속 살았다. 대략 몇 년 정도는 더 거기서 그렇게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동네에서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뒀던 그 동네의 아파트가 팔렸기 때문인데(하하) 아파트가 팔릴 때 쯤, 이사를 한다면 그 때 새로 사귄 애인의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간 것이다. 줏대가 없이 애인 찾아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제까지 고작 두 번 그랬을 뿐이다.
나는 이 동네를 좋아했다. 평일에 뒤늦게 일어나 눈을 뜨면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렸고 걸어서 천천히 큰 길로 나오면 맛있는 냉면집이 있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느리게 걷는 노인들이거나 낯선 곳으로 공부를 하러 온 외국인들이 많았다. 퇴근하는 길에는 멋진 트랙이 있는 스포츠 센터가 있었고 기가 막힌 만두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도서관과 영화관이 있다는 얘길 위에서 했지만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온갖 쓰레기 같은 영화를 마음 껏 보았고 돈과 공간을 걱정할 필요 없이 그 누구도 보지 않을 것 같은 책들만 골라서 읽었다. 나는 그 동네에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그 동네에 단 한 명의 친구도 마음을 둘 아무 것도 없다. 강을 따라 남쪽으로, 그리고 북쪽으로 계속해서 걸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애인과 같이 보냈던 짧은 시간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혼자서 그 동네를 돌아다녔던 일들이다. 아무도 없는 곳을 뛰고 아무도 없는 곳을 걸었다. 나는 지독할 정도로 혼자였다.
…
전에 살던 동네는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보다 낡고, 비가 오고 있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 동네의 공인중개사에 들어가 이 곳에서 집을 하나 사고 싶다고 말했다.
나 스스로를 메어 둘 곳을 찾지 못해. 나는 내가 변치 않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멀리 석양이 보이는 하늘 저 쪽 까지 뻗어있는 나무들을 떠올린다. 한 나무의 꼭대기에서 부터 다른 꼭대기로 이어져있는 구불구불하고 삐죽빼죽한 선을. 그리고 그 너머에 어두워져가는 하늘을 떠올린다.
그래 내가 살고 싶어하는 곳에는 항상 오래된 나무들이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을 그런 나무들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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