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께서 이르시기를,
여기 독화살에 맞아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
다행히 그가 절명에 이르기 전에 사람들이 의원을 찾아 독화살을 뽑으려 하였으나 그는 고개를 흔들며 말하였다.
나는 이 화살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고, 누가 쏘았으며 그 쏜 사람은 어떤 가문인지. 왜 쏘았는지를 알기 전에는 화살을 뽑지 않을 것이다.

세존은 이어 말하였다. 그는 화살을 바로 뽑지 못하였기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

오늘 아침 트랙을 달리다가 문득 깨달음이 있었다. 별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 깨달음이 오자 더욱 숨차게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다리에 힘을 주고 속력을 높여 한 바퀴 반을 더 돌았다. 초가을 아침바람이 서늘했다. 이 트랙이 있는 공원은 반쯤은 숲이다. 한 여름에도 그럭저럭 서늘하고 항상 사람들이 있다. 산에 걸쳐져 있는 공원이라 공원 면적에 비해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좀 좁지 않은가 생각도 들지만 좋은 공원이다. 이 동네에 이사 온 후 제일 많이 시간을 보낸 것도 이 공원이다.

대규모로 개발된 택지 단지인 이 동네는, 주거구역(대체로 아파트)와 녹지(대체로 공원과 일부 수변)로 나뉘어져 있고 일자리가 되는 도심형 공장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돈을 빨아들일 수 있는 넓은 상업지구까지 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지 않고 개발이 되지 않은 구역도 잘 통제되어 있어 이제까지 내가 살았던 그 어떤 곳보다 세련되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공장 지역에서 자라난 세련되지 못한 나는, 여기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니 그저 여기에 관심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외출을 하지 않고 있다. 매일의 출근과 러닝, 가끔의 서울행이나 지역의 도서관 정도가 아니면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얼마 전 상업지구의 한 쪽(커다란 호텔이 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에 유명한 지방 떡집의 분점이 생겼다는 걸 알고 드물게 저녁 산책을 나섰다. 이 동네에 이사 온 지도 반년이 되었는데 몇 번째 저녁 외출이었더라 세번째, 아니 네번째 정도 되려나.

동네에 있는 큰 공터는 프랜차이즈 호텔인지 프리미엄 아웃렛인지가 들어온다고 하고서 오랫 동안 공터로 남아있었는데 새로 플랜카드가 붙었다. 천몇백세대 쯤 되는 주상복합 겸 아파트가 들어온다고 한다. 온갖 채널로 광고가 들어와 나도 모를 수가 없었는데. 민망할 정도로 비싼 분양가가 실린 기사를 보고 나는 속물답게 우리집도 비슷하게 오르면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작은 부자 정도는 될 수 있겠는 걸 하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 집의 진정한 소유주는 은행이라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한 생각이었다.
낯설기 짝이 없는 사거리를 걷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천 몇세대의 주거지가 들어오면 여기가 어떻게 바뀔까 생각을 한다. 오천명 쯤 될 인구가 들어오고 그 사람들이 여기에서 얼마나 되는 돈을 소비할지. 하수도와 전기의 소비는 얼마나 늘어날지. 나는 머릿 속의 숫자들을 세어보다 문득 망연해져서 오천, 혹은 만 정도 될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한국 어딘가의 택지지구에서 살게 될 다수의 사람들. 무언가를 타고 와서 무언가를 타고 나가는 사람들. 숫자가 커질수록 머리가 복잡해진다. 너무 많은 사람이, 타인이 머릿 속에 담긴다.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그만하기 위해 맹수의 이빨에 대해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식육목의 치아구조.
사람들은 맹수의 이빨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송곳니라고 생각하지만, 송곳니는 잡식동물에서도, 때때로는 초식동물에게서도 발달할 수 있다. 식육목의 맹수가 가진 치아 구조 중 가장 특이한 것은 위턱의 작은 어금니와 아랫턱의 첫번째 큰 어금니가 맞물려 생기는 가위와 같은 구조, 열육치이다. 열육치는 이름 그대로 먹이를 작은 조각으로 자르는 역할을 하는데. 물론 앞니와 송곳니는 사냥감을 물어 무력화 시키고 살점을 찢는 역할을 하는데 왜 열육치가 식육목의 주요한 특징이냐면 육식동물이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먹이를 잘게 부수는 것이 중요해졌고 거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열육치였기 때문이다.
고양이과의 동물들은 이 열육치를 쓰기 위해 먹이를 먹을 때 고개를 돌린다. 어금니로 잡고 열육치로 자르는 것이다.

곰과 같은 잡식 동물의 경우는 고기만을 먹는 고양이과의 동물들보다 어금니가 평평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사람은 식육목이 아니기 때문에 열육치가 없다. 우리 영장목의 특징은 멋진 열육치가 아니라 양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마감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유명 떡집의 우리 동네 분점은 상품이 다 떨어져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어이가 없어서 검색해보니 사람들의 개인블로그에 평일 오후에 내점했는데도 대기팀이 몇백팀 정도 있었다는 글이 있었다. 나는 좀 더 어이가 없어져 무심결에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는 와 이거 말도 안된다 그치.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같이 끄덕여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만, 그만 생각해야한다.

다시 식육목의 이빨에 대해서 생각한다. 앞니와 송곳니를, 그리고 열육치를 떠올린다. 곰의 어금니를 생각하고 개의 이빨의 수를 센다. 먹이의 종류가 많을 수록 이빨의 수가 많아진다고 한다. 이빨 마다 각기 다른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정말일까. 나는 다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서 생각한다. 국도의 구조와 교통이 퍼져나가는 스프레드를. 도심지와 부도심지를. 그리고 이 지역의 중심 지역이 어디인지 가늠해본다.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계속해서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다음 생각, 그리고 다음 생각으로.

나는 오늘 아침 떠올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원하는 것이 독화살을 빼고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이 독화살의 이름이 무엇인지, 이 화살을 쏜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이 화살을 쏘았는지 아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화살을 쏜 자가 지금은 평안한지. 나를 미워함으로서 위로를 얻었는지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나는 이빨에 물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며 트랙을 한바퀴 반 달렸다.

26년 9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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