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구는 주택가로 둘러싸인 조용한 곳이다. 도쿄 현대미술관은 그곳의 역시나 조용한 공원 - 키바 공원이라는 이름이다 - 외곽에 뜬금없이 세워져있다. 어떤 지하철 노선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이런 곳에 어째서 미술관을 세웠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도쿄 어디를 가도 시간이 일정하게 걸리는 시나가와에서도 1시간은 걸린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야한다.
도쿄의 버스는 120엔에 노선의 끝에서 부터 끝까지 갈 수 있다. 비싸고 상업화되어 있는 전철과는 다르게 그야말로 도쿄 도민의 발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관으로 가기위해 역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며 낯선 - 나는 고토구에 올 일이 없다 - 동네를 두리번 거리며 구경했다. 추운 겨울인데 사람들의 표정이 나쁘지 않다. 웃지도 않고 찡그리지도 않지만 우리 동아시아 인들은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혼자 무표정 으로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상태이다. 모두들 다른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겨울의 햇볕을 각자 즐기며 고요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버스에 안에서 본 거리의 풍경은 겨울처럼 따뜻했다. 아이들을 태운 자전거와 산책을 하는 노인들. 어딘가로 우르르 달려가는 중학생들. 대단지를 이루지 않고 다양한 크기로 세워져 있는 맨션들은 깨끗하고 안전해보였다.
키바 공원은 좋은 곳이다. 넓지 않은 공원이지만 나무들이 충분히 나이가 들었고 공터는 넓다. 내가 좋아하는 홋카이도 오비히로의 공원을 닮았다. 공터 어딘가 멀리에서 축구공 만한 아이에게 남자어른이 축구를 가르치고 있었다. 아니 축구를 가르치는 것보다 공을 굴리고 있었다는게 좋을 것이다.
미술관 관람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수고가 아까워진 나는 지하의 패밀리레스토랑이라도 가볼까 생각이 들었는데. 이미 그곳은 아이들과 온 부모들로 가득하고 줄까지 서있었다. 그래보이지 않았는데 혹시 소문난 맛집인가. 초코 파르페를 커다랗게 찍은 포스터를 보자 나도 먹고 싶어졌다. 미술관을 나오는 길에는 역시나 축구공만한 아이(아까와는 다른 아이이다. 어째서 다들 축구공만할까?)가 산타 복장을 입고 계단을 혼자 내려가보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돌아가는 버스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잘 보니, 이 노선은 스카이트리와 신주쿠를 왕복하는 상당히 긴 노선인 것 같다. 스카이트리에 가고 싶은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사람이 몰리는 유명한 관광지는 좀처럼 가지 않는 속물근성으로 유명한 나는 아까 미술관에서 본 전시 작품들 생각을 하면서 그에 대해서 어떤 글을 쓸까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아니 하려고 했다.
내 주의를 끈 것은 버스 의자에 앉아 졸고, 아니 완전히 잠에 빠져있는 작은 아이이다. 아이는 촌스러운 털옷에 상하의의 색깔이 어울리지 않게 입고 있었다. 빨간 색에 가까운 자주색의 바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연보라색의 윗옷은 오랫동안 길가에 놔둔 것처럼 회색이었다. 신발은 역시 작고 더러웠다. 아이는 좌석에 완전히 파묻혀서 버스에 얼굴을 대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덜컥 겁이 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몇살 쯤 되었을까. 나는 조카를 생각한다. 또래보다 키가 큰 것이 자랑인 조카라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버스 안의 아이는 5살 정도 되었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오래 쓴 듯 조금 닳아있지만 마스크는 알록달록한 어린이용 마스크이다. 머리카락은 역시나 알록달록한 방울 - 나는 저걸 뭐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슈슈라고 부르던가. - 로 단정하게 묶어두었다. 나는 아이를 돌봐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안심한다. 그리고 아이의 근처 앞 좌석에 타고 역시나 고단하게 자고 있는 어른 한 명이 아이의 보호자일거라고 추측한다.
그 사람은 역시나 좌석에 깊숙하게 기대어 앉아 자고있다. 햇볕에 상한 피부라 나이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옷은 역시나 때가 탔고 잠에 곯아떨어져 있는 와중에도 손으로는 등산지팡이를 꼭 쥐고 있다. 발치에는 옷만큼이나 낡은 빨간 색의 백팩이 놓여져 있다. 모녀하고 하기엔 나이차이가 많이 난다. 할머니일까. 갈라진 손등을 쳐다본다. 안전할 게 틀림없는 버스 안에서 잠에 곯아떨어져 있을 때도 주변을 경계하는 것 같은 손등이다.
겨울이기 때문일까. 노선의 끝에서 끝까지 가도 한 사람 당 120엔. 아마 한 쪽은 아이였기 때문에 버스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노선의 한 쪽 끝에는 신주쿠이다. 원래는 신주쿠에서 살고 있는 사람일까. 120엔에 따뜻하게 걱정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행자이다. 1400엔을 내고 전시를 보고 역시 그 정도 돈을 내고는 맛없는 커피와 닭가슴살 샌드위치를 먹었다. 호텔로 돌아가면 잠시의 변덕으로 사치스럽게 예약해둔 킹사이즈 베드의 방이 기다리고 있다. 몇 년만에 온 도쿄의 물가는 말도 안되게 올라가 있었다. 도쿄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묻자 아주 저렴하게 먹으려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다른 물가는 말도 안되게 올랐지. 도쿄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걸까 하고 혼잣말을 하니 친구는 그러게, 관광객들이랑 부자들 말고는 다 죽으라는 거랑 비슷하지. 라고 말한다.
세이브더칠드런 재팬은 24년 7월 아동계층의 빈곤에 대해서 19년 이래 최대급의 앙케이트를 벌였다. 전국의 일반층3만명과 단체에서 후원한 비과세세대의 13세부터 70세까지의 당사자층. 그리고 17세까지의 아동층이 대상이다. 해당 설문에서 우리의 주의를 끌만한 점은 19년의 앙케이트와 비교하여 아동빈곤에 대해서 알고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들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 퍼센테이지가 10%이상 늘어났다는 점이다. 아동 빈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고 한 비율은 더욱 더 줄어들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추정되는 일본의 절대 빈곤층, 즉 하루 $2.15 이내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일본 인구의 0.35%로 보여진다. 올해 일본의 인구는 1억2450만명. 즉 절대 빈곤선 아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40만명이 넘고 그 중 대부분이 복지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는 어린이로 추정된다. 일을 해도 먹고 살 수 있을 수 없는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야유를 당하고 있는 일본의 사회복지 체제는, 일을 할 수 없는 어린이에게는. 어린이를 길러야 하는 부모에 대해서는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을까.
스카이트리로 가는 정류장이 얼마 남지 않자 버스안의 사람들은 더욱 웅성거린다. 누군가는 짐을 다시 챙기고.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보며 지도를 확인한다. 하지만 좌석에 앉은 두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 두 사람에게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걸 - 버스 안에 있는 다른 어떤 사람들처럼 - 깨닫고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창 밖으로 눈을 돌린다.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어째서인지 자꾸 자고 있는 아이의 땋은 머리를 물끄러미 보게되어 나는 버스를 내린다.
나를 버스에서 내리게 한 것이 죄책감인지 아니면 비열한 안도감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24년 1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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