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란 애초에 개인들의 시덥잖은 기록을 남기는 곳이다.
이번 주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쓴다.

월요일에 부서 송년회는 대게 집이었다. 나는 대게 집이라면 깔끔하게 대게만 삶아서 나오는 곳을 좋아하지만, 대체로 대게집이라고 하는 곳은 쓸데없는 메뉴가 꽤 많이 나오면서 비싸다. 삶은 게만으로는 비용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일거다.

삶은 킹크랩을 먹으면서 이게 정말로 맛있다고? 하는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아저씨들은 골프 이야기를 지루하게 맥락도 없이 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우리 스크린 골프 대회를 하죠 라는 결론을 세 번 쯤 내길래 나는 참지 못하고 뜬금없이 요즘에 제가 러닝을 다시 시작했는데요. 러닝크루란게 인기잖습니까. 모든 러닝크루가 그런건 아니지만 결국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곳이라 이겁니다. 라는 말로 올해 8월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저씨들 다수가 정신이 쏙 빠져서 신비롭고 기묘한 나의 얘기를 듣고 있었는데 계산을 마감할 시간이 되어서 나는 이야기의 3/4 지점에서 끊고는 하하 다음 이야기는 다음 회식때요. 하고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지하철을 탔다. 선배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집중 할 수가 없었다. 배가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에서 내려 화장실로 뛰어가야했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서 화장실에 갈 수 있었지만…집에 도착해서도 화장실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밤을 샜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나는 화장실의 문간에 누워있었다.

화요일 아침.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고를 하고 화장실에서 기어나와 침대에 누웠다.
나는 연차를 썼고. 배가 아파서 하루 종일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다가 스프를 좀 먹었고 낮잠도 좀 잤다. 정신이 차려지기에 기어나와서 동네를 걸어다녔다. 연차를 쓴 하루는 하는 일도 없이 빨리 가버렸다. 평소처럼 약간의 우울감이 있던, 별거 없는 겨울의 하루였다. 24년 12월 3일.

저녁에는 고집스럽게 러닝을 했다. 추워죽겠네 투덜거리면서 밥을 먹고. 씻고 누웠다. 유튜브로 뭐라도 봐야지 하고 모로 누워서 22시 15분에 시작하는 정치예능쇼를 켰다. 웃을 준비를 마치고 있었는데 실시간 댓글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대통령이 심야 긴급 담화를 한다는데? 패널들도 나도 뭔가 바보 같은 소리를 하겠지 싶어서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패널 중 한 명의 얼굴 표정이 변했다.

비상 계엄이라는데?

22시 30분, 친구들이 있는 단체방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는 캡쳐를 보냈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는데, 모두가 당황한 상태여서 도움은 되지 않았다.
20분이 넘게 다들 이게 뭐지 이게 뭐지 하고 당황하는 사이. 국민의 힘 당대표가 비상계엄의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고 발표했고. 민주당 당대표가 유튜브 라이브를 켰다. 시민들에게 국회로 와달라고 호소하였고 본인도 여의도로 간다는 이야기였다.

민주당 당대표의 라이브를 보고,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한 나는. 문자를 보내서 서울은 있기 힘들 수 있으니 수원에 와 있으라는 메세지를 보내고 샤워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친구에게 메세지가 와있었다 비상계엄이면 출근도 안하는거냐. 전쟁 때도 우리는 출근이지 원래 월급쟁이는 다 나가는거야.
해외에 있는 친구가 찐미친놈이네 라고 욕을 했다. 멍청한 거에는 한도도 없는거냐.

음소거 상태로 계속되던 민주당 당대표의 라이브는 그가 국회의 담을 넘어서 어딘가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왔고. 곧라이브가 꺼졌다. 친구들에게는 이제 그만 잔다 라고 말했지만. 친구들도 나도 아니 이 상황을 알 고 있던 어떤 한국인도 잘 수는 없었다. 언론들의 유튜브 라이브를 켜봐도 지금 상황을 확인 해 줄 수 있는게 없었다. 여기서 내가 뭘 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중소 신문사의 라이브로 현재 국회의 상황이 나오고 있었다.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 이미 국회에 도착해 있었다. 카레야 어떻게 할꺼야 하고 연락이 왔다. 나 옷 갈아입고 있어. 응 같이 갈래? 성남으로 와.

23시 30분,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1호가 발표되었다.
옷을 갈아입었다. 가방을 싸서 약이랑 보조배터리 같은 것을 손에 잡히는대로 넣었다. 예전에 쓰던 폰을 꺼내서 유심이 빠져있는지 확인하고 여의도의 지도를 사진에 다운 받았다. 켜둔 유튜브 라이브에서는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크게 부숴지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이동하는 소리. 스튜디오에서 침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물이 조금났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결국 이거구나. 여의도로 가는 진입로를 확인하고 샛길을 보았다. 나는 광화문과 여의도라면 거기서 살았던 사람보다도 더 잘 안다. 아 결국 이러려고 그런거구나.

저기 누군가가 있었다. 비상계엄을 해지하기 위해서 150명의 국회의원이 모여야했다. 23시 4분에 이미 국회의 출입문은 폐쇄되었다. 23시 45분이 넘어가자 팔로잉 해둔 주요 외신에서도 한국의 계엄 소식이 뜨기 시작했다.
곧 민주당 당원인 누군가가 국회로 집결하라는 문자가 발송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당원도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구석에 쳐박아둔 낡은 - 언제라도 버려도 되는 운동화 - 를 꺼냈다.

00시 07분, 계엄군이 국회 본청에 진입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여의도로 갈거면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한 친구는 성남에 살았다. 라이브를 켜둔 상태로 집에서 나갔다. 친구에게 가면서 트위터에 짧게 “저는 가족이 없어서 상황을 지켜보다 서울로 갈 생각입니다.”라고 적었다. 다른 친구에게 아 내일 전세계의 공급망에서 한국 망했냐고 연락이 존나 오겠지. 하고 메세지를 보냈다. 너 가고 있냐. 라고 묻기에 뭐 그런거 아니겠냐 하고 말했더니. 가지마 위험할텐데 하루 종일 설사 했잖아. 라고 메세지가 왔다. 알았어 일단 잘게. 하고 말했다. 택시를 탔다.

00시 36분, 국회 의장은 본회의장에 착석했고 계엄군이 국회 본청 유리창을 깨고 진입했다. 아직 본회의의 의결 정족수는 채워지지 않았다. 택시는 성남의 친구 집에 도착했다. 기사 분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친구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친구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기사와 라이브를 들으며 기다리고 있으니 친구가 부인과 내려왔다. 와이프는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아니 기분이 안 좋은게 아니라 숫제 둘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기사 분께 죄송하다고 택시비를 계산했다. 택시에서 내렸다. 친구의 부인은 친구의 백팩을 꼭 잡고 있었다. 그걸 놓으면 친구가 죽기라도 한다는 듯이.

00시 45분, 금융 당국이 무제한의 유동성 공급 등 시장 안정 수단을 총동원 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둘의 말다툼을 어떻게 중재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알았다 너는 가족이 걱정하니 오늘은 그만 들어가라 나 혼자 가겠다. 라고 말하자 친구는 - 대학시절 그 누구보다 운동권이던 친구는 - 내가 비겁하게 어떻게 집에 있겠니. 라고 말했다. 친구의 어린 와이프는 울기 시작했다. 구축의 작은 아파트 진입로에 세 명이 서서 한 명은 울고. 한 명은 달래고. 한 명은…한 명은 그냥 그렇게 있었다.

00시 48분, 본 회의가 개의했다.

01시 01분,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재석 190인 중 찬성 190인. 야당의원 172명.
셋이서 라이브를 듣다가 나는 중재안으로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했다. 계엄군이 국회에서 철수하면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 지도 모른다. 거실 저쪽으로 힐끔 친구의 어린 자식이 자고있는게 보였다. 아직 아기이다. 2살, 3살 쯤인가. 나도 너를 보는건 처음인데 이렇게 너를 보게 되어서 유감이구나. 울어서 엉망으로 된 얼굴로 친구의 와이프는 코를 훌쩍거리고 있었다. 결혼식 이후로 처음 보는거였는데 이렇게 보게 되서 유감입니다. 라고 하기 좀 그래서 제수씨 눈에서 콧물 나와요 라고 말했다. 죄송해요 하고 친구의 부인은 다시 울기 시작했다.

01시 11분, 계엄군이 국회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시름 놓은 것 같은데. 저희까지 지금 여의도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이제 밤이 늦었으니까 저는 그만 집으로 가볼게요. 라고 인사를 했다. 카레야 그냥 자고 가지. 자고 가긴 뭘 자고 가 미친 거 아니냐. 친구의 너무 어린 와이프는 울먹였다. 죄송해요 어쩌고라고 말한 걸 들은 기분이 든다. 친구는 미안하다. 미안하다 라는 말만 반복했다.

밤거리는 추웠다. 택시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나는 성남 어딘가의 밤거리에 서서 라이브를 들으며 택시를 기다렸다. 거지같이 추웠다.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거리가 조용했다. 네가 이제 그만 버리라고 말한 운동화를 신고 나는 거기에 서있었다. 유리조각처럼 깨진 밤은 아직도 길어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사람들은 여의도 어딘가에 모여서 어깨를 서로 대고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나는 뭘 하고 있는걸까. 아직 새벽이 이렇게 긴데.

택시에서 국회의장이 계엄해지 통지서를 보냈다는 선언을 들었다. 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나 금세 집에 도착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항상 그런 것처럼. 그래서 나는 옷을 입은 그대로 소파에 누워서 라이브를 계속 들었다.

04시 27분, 계엄은 해지되었다.

친구 하나는 손이 차갑고 긴장이 되어 밤을 꼴딱 샜다고 했다.
친구 하나는 온 몸이 덜덜 떨려서 겨우 잠이 들었다고 했다.
친구 하나는 밤 중에 국회로 달려서 아침이 올 때 까지 거기에 사람들과 서 있었다고 한다.

나는 비척비척 옷을 갈아입고 회사를 나갔다. 비상계엄이든 전쟁이든 월급쟁이들은 출근을 해야한다.
새벽을 지나 아침의 바람도 차갑다. 그것이 겨울이라는 것이다. 나는 다행히 오늘도 그대로 민주국가의 시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교차로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눈물이 쏟아져나오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울면서 아침의 출근길을 걸어갔다. 새벽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 수도 없는데.

24년 12월 3일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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