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마을버스 뒷바퀴에 깔린 사람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를 거의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젯밤 9시 40분쯤 서울 ㅇㅇ구ㅇㅇ동ㅇㅇ터널 사거리 인근 한 버스 정류장에서 ㅇㅇ대 여성이 마을버스 바퀴에 깔려 숨졌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여성은 마을버스에서 내린 뒤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이후 버스 오른쪽 뒷바퀴에…(후략)>

찾아본 바, 9개의 매체에서 기사가 나왔고 내가 봤던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원래대로라면 나도 볼 일이 없었던 기사였지만 다른 기사를 보다 우연히, 그리고 무심코 클릭해서 보게되었다. 기사를 읽은 건. 5월 10일의 오전 쯤으로 기억한다.

사고가 난 곳은 내가 아주 잘 아는 곳이다. 기사에 첨부되어 있는 사진은 감시카메라의 화상의 캡쳐된 이미지(어두운 비오는 날의)였고 지도 어플을 열어 예상되는 버스 정류장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고가 난 장소는 모교의 후문에서 역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버스 정류장이다.

나는 마침 그 동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알고 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불안해진 나는 사고가 난 ㅇㅇ구에 있는 모든 응급병원과 장례식장을 검색하고 빈소에 등록된 망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러고도 안심할 수 없었던 나는. 해당 구의 근처에 있는 3구지역의 병원들을 모두 찾아서 확인했다.

굳이 그렇게 까지 한 건 직감 같은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오랫동안 회사원으로 일했던 사람의 업무 방법론 같은 것이다. 거기에 내가 아는 이름은 없었다.

그렇지만 한 번 머릿 속에 들어온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같은 구 혹은 인접 구 내에서 모든 게 이루어진다고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족들에게 가까운 곳으로 장례식장을 옮기는 경우도 충분히 많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찾아봐야 하는 범위를 넓힌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며 무엇을 찾아야 하고 어딜 먼저 찾아봐야 하는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하지만 그건 광기나 다름없는 생각이다. 전국의 모든 병원, 아니 최소한 수도권의 모든 병원을 확인하기 전에는 계속해서 집착하게 될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창을 닫고 이름을 찾는 걸 포기했다. 그리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기사의 댓글에는 주로 사고로 사망한 승객이 불쌍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지만 승객이 내릴 때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던게 아니냐든가 버스기사가 불쌍하다는 댓글 또한 꽤 많았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한 모든 기사, 모든 댓글을 다 읽었는데,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승객의 부주의함과 운전사의 무결함을 전제 삼아서 댓글을 달고 있던 걸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읽은 기사들 중에는 더 이상 의미 있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승객이나 운전사의 그 어떤 추가 정보 없이 나는 뭔가를 판단 할 수 없었다.

한국은 이상할 정도로 운전자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운전자가 보행자에 대한 사망 사고를 일으켜도 죽은 보행자보다는 운전자의 트라우마를 걱정한다던가 여러가지 멸칭으로 보행자를 칭하는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의 다수는, 적어도 댓글 창에 글을 쓰는 사람들의 다수는 보행자로서 사고를 당하는 불행은 자기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불운한 - 불운하다고 하자 - 사고에 대해서 죽는 쪽 보다는 죽지 않는 쪽이 될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모든 인간은 보행자고 그 반도 안되는 수만 운전자일텐데 말이다.

5월 9일 밤에는 비가 왔다. 서울은 물론 수도권 전체적으로 비가 왔다.

어두운 밤이었기 때문에 내리는 승객이 잘 보이지 않았을 수는 있다. 특히 차량의 왼쪽에 운전석, 오른쪽에 하차석이 있는 한국의 버스는 하차하는 승객들이 잘 안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비가 왔다. 마을버스의 오른쪽 뒷바퀴에 깔려서 사망했다면 하체가 아닌 상체가 깔렸다는 이야기이고. 그렇다면 아마 승객은 미끄러져서 뒤로 넘어진 상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가 앞으로 가는 것을 피하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넘어지는 것을 자신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올해 몇 번 넘어졌다. 웃기게도 500킬로미터를 넘게 러닝하는 동안 함 번도 넘어지지 않았으면서 그냥 출근을 하다가 넘어진게 두번. 퇴근을 하다 넘어진게 한 번이다.

그 중 출근을 하다 넘어진 날은 눈이 오는 날이었다. 나는 펭귄처럼 조심해서 걷다가 넘어졌고 그런 내 머리 바로 2미터 앞에서 차의 앞바퀴가 멈췄다. 평소에는 차들이 미친듯이 과속하는 구간이었는데 그날은 경찰차가 구석에 멈춰서 차들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차들은 묘하게 서행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넘어진 것은 우연 때문이지만 내가 차에 치이지 않은건 구석에 멈춰서서 차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경찰차 덕분이다. (몹시 억울하게도, 이 때 넘어져 무릎을 다친 나는 절룩거리며 언덕을 내려가던 중 한 번 더 넘어져서 갈비뼈가 부러졌다.)

사람들은 원래 자신의 행운을 과신하고, 우연을 아예 없는 것처럼 군다.

80% 성공 확률이라고 한다면 5번중에 1번은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고 봐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전 게임에 대해서 다룬 유튜브 채널에서 80% 성공 확률을 가지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100% 확률인 것처럼 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제 확률을 좀 더 높여서 90%정도로 보정한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생각해보면, 그냥 우연히 읽게 된 기사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나와 스스로에겐 절대 어떤 억울한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댓글창의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5월 11일에는 산책을 했다. 공원을 지나 농구를 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다 내 옆을 지나 빠르게 걸어가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비가 그쳐 바람을 시원하고 공기가 맑았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25년 5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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