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얘기를 들은 것은 어느 무당벌레로부터이다.


나는 가끔 공원에 나가 사람이 잘 찾아오지 않는 벤치에 앉아 그림을 그리곤 하는데, 이 무당벌레는 신기하게도 풀이나 꽃 위에 앉지 않고 내 옷깃에 가만히 앉아서 내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구경하였다. 
성격이 급한 작은 벌레 답지 않게 한참이나 그림을 보고 있던 무당벌레는 풀쩍 날아올라 내 손과 연습장 위로 한바퀴를 돌더니 내 연습장 위에 앉아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인간은 이런거 좋아해? 
 이런거?
 응, 그림 말야. 그림이라고 부르지?
 응, 나는 좋아해. 너는 좋아하니?


무당벌레는 대답을 하지 않고 파르르 하고 날아 연습장의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말했다.
나 말야 전에 그림이랑 얘기한 적이 있거든.
그러니까 무당벌레가 해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림은 처음에는 동그라미였대.
 동그라미?
 응, 동그라미. 동그라미에 눈이 이렇게 두개가 찍히고 그 아래엔 날개같은 모양의 금이 그어져 있었대.
 그거 웃는 얼굴이라고 하는거야.
 웃는얼굴? 그래 처음에는 웃는 얼굴이었다고 해.


그 그림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깨달은 건 어느 작은 여자아이의 손바닥 안이었다고 한다.
열이 나서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아이는 아빠를 붙잡고 보채고 있었다.
어쩌지, 아빠 잠시 다녀오면 안될까? 하고 아빠는 여자아이를 달래보았지만 아이는 무엇보다 무서워서.
모르는 사람만 잔뜩 있는 병원에 혼자 있는게 무서워서 아빠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러자 아빠는 품 속에서 펜을 꺼내서.아이의 오른 손 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점을 두개. 그리고 웃는 얼굴. 작은 아이 손 안에 그려진 작은 웃는 얼굴.
 아빠 이게 뭐야?
 친구야.
 친구?
 응 아빠 다녀올 동안 친구랑 같이 있어 정말로 금방 다녀올게.
아이는 아빠를 쳐다보고 손바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빠는 꼭 가야하나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빠는 웃는지 우는지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녀올게. 하고 뛰어나갔다.
손바닥 안의 "친구"는 웃고 있었다.
그 때 까지 그림은 오직 "웃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소녀가 그림에게 귓속말을 했다. 안녕, 나는 네 친구야. 너도 내 친구니?
그림은 배시시 하고 웃었다.
아빠가 일을 마치고 아이 곁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는 열이 내린채 자고 있었다.
정말로 착한 아이에요. 하고 누군가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는 자는 아이 옆에 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아이는 자고 있었지만, 웃는 얼굴 그림은 아빠의 우는 소리를 들었다.


아빠는 그 다음부터 아이가 떼를 쓰거나, 착한일을 하거나, 혼자 있게 되거나 하면 손바닥에 그림을 그려주었다.
처음엔 그냥 동그라미에 웃는 얼굴이었던 그림은, 언제부터인가 코와 귀가 생기고 머리카락이 생겼다.
아이의 손바닥은 금방 커졌고, 때로는 손등, 때로는 팔뚝에 여자아이를 그려줬다.
 이건 내 친구야.
 네 친구?
 응 내 친구야.
아이는 그림이 지워지니까 손을 씻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설득했다. 네 친구는 어디 다른 곳에 가는게 아냐.
네가 손을 씻어서 지워지면 네 방에서 널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그림을 그리면 손으로 옮겨오는거야. 라고 말했다.
응, 그렇구나. 내가 안 보고 있어도 나랑 같이 있는거구나.
그래서 그림은 그 날부터 정말로 아이의 방에서 아이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배시시 웃음만 짓고 있다가 토라지거나 크게 웃을수 있게 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는 그림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나 손이랑 발이 있으면 걸어다니고 싶어.
지금은 데굴데굴 굴러가기만 하니까?
응 지금은 데굴데굴 굴러가기만 하니까. 이곳저곳 다니려면 굴러가기만 해서는 안되잖아.
아이는 아빠에게 손이랑 발도 그려줘. 라고 말했다.
아빠가 처음으로 그린 손이랑 발은 정말 형편없었다.
아빠, 이런 손이랑 발은 얼음이 가득한 하얀 바다나 연기가 나는 산에 갈수 없어.
인도에 있는 왕비를 사랑한 왕이 세운 성에도 갈수 없고 말야.
맞아, 아빠가 엄마를 사랑했던 것 처럼 말야.
아니 도대체 저런 건 어디서 배우는 걸까, 하고 아빠는 쓴웃음을 짓고 그날부터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서툴렀지만, 아니 그 뒤로도 한참을 서툴렀지만 곧 아이만은 잘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그 모습을 아이의 손바닥에 그려주었다.
 이건 네 친구지?
 응 내 친구야. 아빠가 없을 때도 항상 나랑 같이 있어줘.
아빠는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아이는 아빠와 공원에 가는 걸 좋아했다. 동물원도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코끼리였다. 기린을 무서워했는데 한 번 기린 우리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빠, 밥을 먹을 때는 식탁을 예쁘게 정리해야해. 하고 작은 식탁보를 깔아 밥과 반찬을 엉망으로 올려놓았다.
아빠는 잘했다고 상으로 공주 옷을 입은 친구를 그려주었다. 머리 위에는 별이, 옷에는 꽃이 달려있었다.
아빠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달려와서 아빠의 다리를 안았다.
이야기 해줘. 엄지 동자 얘기가 좋겠어. 하고 맘대로 이야기를 정했다.
그림과 아이는 자리에 누워 아빠의 엄지 동자 얘기를 들었다.
옛날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습니다.
엄지 동자 얘기인데 왜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나와? 하고 그림이 묻자
쉿. 우선 잘 들어봐. 하고 아이가 아니 소녀가 말했다.


소녀는 자주 아팠지만 달리기를 좋아했습니다. 큰 소리로 웃으면서 달리고
학교에서 받은 과제 책을 빽빽하게 채우는 걸 좋아했습니다. 하고 소녀가 스스로 말했다.
가지런히 정리하면 좋아. 재미있어. 하고 그림은 따라 말했다.
둘은 좋은 친구였다.
소녀가 학교에 가게 되자 그림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아빠는 자주 소녀의 손에 그림을 그렸다.
아빠는 예전보다 더 바빴고 소녀가 혼자 있는 시간은 그림이 혼자있는 시간만큼 많았으니까.
멜빵 바지, 좋아하는 꽃무늬 원피스, 소녀가 좋아하는 피리를 그림으로 그려주었다.
소녀가 학교에서 피리를 불 때는 그림도 집에서 피리를 불었다. 
어느날 소녀는 볼이 빨갛게 되서 집으로 들어와 이거봐 이 가수 정말 멋있어! 하고 처음 듣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끝내준다.
 끝내주지?
소녀와 그림은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고 춤을 추다 지치면 책을 읽었다.
그렇게 백년을 소녀와 그림은 친구로 보냈다. 정말 백년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소녀가 그림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우리 백년 동안 친구하자. 그러니까 아마 둘은 백년 동안 친구로 지냈을게 틀림없었다.


아무도 잠을 자지 않는지 시끄러운 밤이 있었다.
학교에 갔었었나, 놀러나간다고 했었나. 그날따라 소녀는 그림과 함께 외출하지 않았다.
아빠가 며칠이나 바빠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은 소녀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다.
왜냐하면 정말로 들어올 시간이 훨씬 지나고도 소녀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빈 집에 전화가 울렸고 어느 샌가 집에 돌아온 아빠가 큰 소리로 통화를 했다. 
아직도 소녀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림은 소녀의 방 구석에 앉아 소녀를 기다렸다.
초조하게,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소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도 집을 나가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소녀도, 아빠도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림은 소녀의 방에서 데구르르 구르고 엎드려 다리를 흔들고 책 사이에 숨어서 시간을 보냈다.
며칠이나 지났는지 그림은 알수가 없었다. 인형의 머리위에 올라서서 창가까지 올라왔을 때 그림은 창 밖에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아빠! 하고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불렀다. 그림은 깜짝 놀라 입을 막았지만 애초부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창문은 닫혀있었고 그림은 새처럼 작았으니까. 
아빠는 집에 돌아와도 소녀의 방에 들어오진 않았다. 들어올것 처럼 문을 두드렸지만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녀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아빠는 알고 있었다. 아빠는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그림은 혼자 시간을 보냈다.


며칠 뒤부터 아빠는 소녀의 방을 찾아왔다. 올 때는 방 문을 두어번 두드리고 조심스럽게 방을 연다음 먼지를 털어내고 바닥을 쓸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금방 방을 나가버렸지만 때때로 방의 의자에 앉거나 방 바닥에 앉아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림은 아빠가 방에 들어올 때면 벽에 가만히 서서 그림인척 했다. 그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그림이 잘하는 거였다. 
소녀는 어딜 갔어요? 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아빠는 왜 그런 슬픔 얼굴을 하고 있어요? 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아빠는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집에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소녀의 방에선 울지 않았다.
울 것 같은 일그러진 표정이 되면 소녀의 방에서 급히 나갔다. 그 방에서 울면 누군가 자기가 우는 걸 듣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빠가 우는 소리는, 혹은 우는 걸 참는 소리는 소녀의 방에서도 아주 잘 들렸다.
그림은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모든 걸 이해했다.


그날, 드물게도 아빠는 소녀의 방 바닥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방을 청소하다 피곤해진게 틀림없었다.
전날 밤 그림은 자기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신을 집중해서 이상하게 들리지 않도록 소녀의 목소리로 "아빠"라는 말을 해보았다. 아빠. 아빠 일어나봐요.
일요일 오후의 햇살이 천천히 움직여 아빠의 위를 비추자 아빠는 햇살보다 더 천천히 눈을 부비고 일어났다.
아빠 일어났네? 그림은 아빠를 쳐다보았다. 아빠도 그림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쳐다보던 아빠는 자리에 일어나 소녀의, 그림의 방을 나가버렸다.


매일 매일 소녀의 방에 찾아와 바닥에 앉아 그림을 쳐다보았다. 그림은 평소처럼 책 위에 앉아있거나 책상을 뛰어다니다가
아빠가 오면 아빠 안녕? 또 왔네? 하고 인사해주었다. 아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자리에 앉아있다가 30분쯤 그림을 쳐다보다가 방을 나가버렸다. 한 번은 그림은 아빠에게 말을 걸었다. 그 때 나 아팠을 때 말야 아빠가 가버리는거 싫었지만 손에 웃는 얼굴 그려줘서 좋았어. 아빠는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역시 아무 말 없이 나가버렸다.
그림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소녀인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녀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날 부터 점점 그림은 소녀의 빈자리에 미끌어내려가듯이 변했다.
아빠는 이제 소녀의 방에 와서 그림을 쳐다보는게 아니었다. 그림을 그렸다. 연습장에 소녀를 그렸다. 하루에 한 장. 어떨때는 세장도 그렸다. 웃는 소녀의 모습 뛰는 소녀의 모습 밥을 먹는 소녀의 모습. 그림은 아빠의 그런 모습을 구경했다.


그림은 점점 색이 진해지고 키가 커졌다. 검은 색과 하얀 색이 아니라 분을 바른 것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볼이 생겼고 갈색의 팔꿈치와 무릎이 생겼다. 목소리는 (시험해보지 않았지만) 분명 먼 곳까지 들리도록 큰 소리를 낼수도 있을 것이다. 창 밖을 날아가는 굴뚝새에게 소녀가 하던 것처럼 "왕!"하고 짧은 소리를 질러도 보았다.


아빠는 점점 색이 흐려져 갔다. 머리 카락은 더 이상 새까맣지 않았다. 목소리는 작아지고 매일매일 마르고 앙상해져갔다.
아빠의 그림에 나오는 소녀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 아가씨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림은 점점 아빠가 걱정스러워져가기 시작했다. 아빠, 밥은 먹고 있어? 라고 묻자 아빠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빠 언제까지 이렇게 그림만 그릴거야? 라고 묻자. 아빠는 고개를 숙였다.


그림은 깨달았다. 내가 있기 때문에 아빠가 저렇게 작아지고 있는거야. 소녀의 방은 이제 소녀를 그린 아빠의 그림으로 가득차서 더 이상 소녀의 방 같지가 않았다.


그날은 소녀가 돌아오지 않은 날로부터 1년 정도 지난 날이었다. 아니 2년이 지났을지도 3년이 지났을 지도 몰랐다.
그림은 잘 알 수 없었지만 그 날과 같은 햇볕 냄새가 나는 날이었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으로 거리를 걸어다녔고 풀 냄새가 났다. 그래, 그림은 이제 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팔에 햇볕이 닿으면 따스했다. 머리카락을 입으로 물면 미끌미끌하고도 까끌까끌한 이상한 맛이 났다. 아빠는 소녀가 좋아하는 멋진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그림은 아빠가 저녁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림은, 아니 소녀는, 아니 아가씨는 창틀에 앉아 뒤를 돌아 소녀의 방을 바라보았다. 방은 그대로였다.
바람이 불고, 무당벌레가 춤을 추듯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아가씨는 창틀에서 뛰어내렸다.
붕, 하는 소리와 함께 아가씨는 날아올랐다. 얼마나 가볍게 날아올랐던지 지나가던 야구 꼬마가 와, 저 사람봐 하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야구 꼬마를 빼고 아무도 그녀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무당벌레는 날개를 파르르 떨고 다리를 두어번 사방으로 펴서 사람으로 치자면 아주 시원한 기지개를 폈다.


 ...그래서 그림은 사람이 되었대. 여자아이가 원하던 대로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갖가지 모험도 많이 했더라구. 멋진 남자랑 춤도 추고 토끼처럼 달려보기도 하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바다도 보고 
 산도 보고 오래된 성도 보았대.


나는 무당벌레를 바라보았다. 무당벌레는 배가 고파졌는지 고개를 몇번 위아래로 흔들더니 점차 이야기와 나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던 손을 멈추고 무당벌레에게 노래하듯 물었다.


 북쪽에 하얀 얼음이 가득한 바다를 보았겠구나. 동쪽에 불이 난 것 처럼 연기가 나는 산을 보았겠구나. 
 왕비를 사랑한 왕이 세운 커다란 성을 보고 말이지. 봄에는 꽃을 보고 가을에는 달을 보고 밤마다 별을 보았겠지.


 그래 맞아 그거였어. 근데 어떻게 알았지? 


무당벌레는 포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올라 진딧물을 먹으러 가버렸다.








2015년 8월 31일, 11시 59분. World's end girlfriend의 앨범 Hurtbreak wonderland를 들으며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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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이야기는 북미와 남미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전해지는 죽은 배우자를 찾으러 가는 구전이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많은 버전이 있다. 때로는 남편이, 때로는 아내가 죽은 배우자를 찾으러 간다.

 

....

 

그는 위대한 사냥꾼이자 부족에서 제일가는 주술사. 마음 속 깊이 자신의 아내를 사랑했네.

 

아내가 죽자 일곱 개의 매듭으로 끈을 묶어 몸에 두르고 그녀의 무덤에서 그녀가 일어나길 기다렸네.

 

이윽고 이틀 밤을 꼬박 새자 무덤이 열리고, 생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그녀가 일어나 무덤을 떠났지.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따라갔지. 그녀는 예전과 다름없는 날씬한 모습으로 뒤를 돌아보며 차갑게 말했지

 

"나는 이제 죽었고 당신과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나를 따라오지 마세요"

 

그녀는 황야를 가로질러 산을 넘었고 강을 건넜어. 그는 계속해서 그녀를 따라갔지.

 

이윽고 며칠 밤을 걸려 저 건너편에 죽은자들의 섬이 보였고 강을 지키는 위대한 자가 그 둘 앞에 나타났어.

 

"산 사람의 냄새가 나는구나. 네 뒤에 있는 저자는 누구냐?"

 

"저 사람은 제 남편입니다" 아내는 위대한 자에게 머리를 숙였어.

 

위대한 자는 그를 쳐다보았지,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어 일곱개의 매듭으로 끈을 묶었기 때문이야.

 

"너는 무엇을 바라고 여기에 왔는가"

 

그는 이윽고 입을 열었어 "저는 제 아내와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있는 자가!" 위대한 자는 숲이 떨릴 정도로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지. 하지만 그는 용감했어. 물러서지 않았지.

 

아내는 그의 어깨 끈을 잡았어. 죽은 사람처럼 차갑게 덜덜 떠는 아내의 손을 잡았지.

 

위대한 자는 그들을 보고 깊은 숨을 쉬었어. "그렇다면 너에게 하룻밤을 주겠다. 가라"

 

사냥꾼과 그의 아내는 카누에 몸을 실고 강을 건넜어. 물이 밤처럼 검었지만 두려울게 없었지.

 

죽은 자들의 섬을 건너는 카누에는 죽은자들의 죄가 카누 위에 돌처럼 쌓여 때때로 가라앉지만

 

사냥꾼은 아내의 손을 놓지 않았어. 그는 아무 것도 후회하는 게 없었거든.

 

죽은자들의 섬에 내리자 그들의 친척과 가족들이 그들을 환영했지. 낯선 자들 익숙한 자들 모두 친족이었어.

 

남자들은 함께 사냥을 나갔지. 여자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오자 모두 볼을 부비며 기뻐했지.

 

밤이 되자 불을 피워놓고 모두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어. 아내도 사냥꾼도 배불리 먹고 큰 소리로 웃었어. 

 

사냥꾼과 아내는 같은 텐트에서 잠을 잤지. 살아있는 사람처럼 따뜻했어. 

 

아침이 되자, 야영지는 온데 간데 없었어. 아내가 아니라 검게 탄 숯이 그의 잠자리 옆에 놓여있었지.

 

위대한 자도, 아내도, 친족들도 아무데도 없었어. 일곱 번의 매듭으로 꼬은 줄도 그들을 돌려놓진 못하였지

 

그가 실수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 단지 그에게 허락되어 있던게 단 하룻 밤이었을 뿐이야.

 

그의 아내가 자신의 인생을 꽉 채워서 살았던 것처럼 말이지. 결국 위대한 사냥꾼도 그걸 이해했어.

 

그는 며칠을 걸려서 갔던 길을 그 배에 배가 되는 시간을 걸려서 돌아왔지.

 

맹세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가 돌아오는 길에 검던 머리는 하얗게 되고 

 

뺨은 화살을 맞은 사슴처럼 패였지. 마을에 돌아온 그는 사람들을 불러 이야기를 시작했지.

 

이 모든 이야기는 위대한 사냥꾼이자, 부족에서 제일 가는 주술사인 그가 아이들에게 남긴 이야기.

 

이야기를 끝낸 그는 몸을 씻기 위해 강가로 향했어. 

 

강변에 선 위대한 전사, 노래를 불렀지 "아이야- 아이야- 내 이야기를 들어라."

 

노래가 끝나자, 독을 품은 작은 뱀이 수풀에서 살그머니 기어나와 그의 발목을 물었지. 그는 그대로 무너졌어. 

 

그는 그렇게 죽었지. 그는 그렇게 아내에게로 다시 돌아갔어.

 

그는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았을거야.

 

伯樂 본명은 손양(孫陽). 생몰년 미상.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로을 감정하는 상마가(相馬家)였다. 그 안목이 특출나 여러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사람들은 본명인 손양 대신 백락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고 한다.

 

일화 중 하나인 ‘伯樂相馬(백락상마)’의 백락이 말을 관찰하다 말이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나왔다.

목공(穆公)이라는 왕이 백락에게 말했다. “당신도 이제 늙었으니 당신의 자손 중에 명마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하시오.” 백락이 대답했다. “명마는 겉모습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구방고라는 사람이 저보다 더욱 말을 잘 봅니다.” 목공은 구방고로 하여금 명마를 구하게 하였다. 구방고는 천하를 다니다가 돌아와 명마를 구했다고 보고하였다. “어떤 말이오?” 목공이 물었다. “누런빛의 암말입니다.” 목공은 하인으로 하여금 그 말을 살피고 오게 하였다. 하인은 그 말이 검은빛의 수말이라고 보고하였다. 목공은 불쾌하여 백락을 불렀다. “당신이 추천했던 구방고라는 자는 말의 색깔이나 암수조차도 구별 못하니 어찌 된 일이오?” 백락은 크게 한숨을 쉬면서 말하였다. “구방고가 본 것은 말의 내면에 있는 명마의 소질입니다. 그것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므로 겉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구방고는 살펴야 할 것만을 살피고, 살피지 않아도 될 것은 빠뜨린 것입니다.” 목공이 그 말을 직접 길러보니 과연 천하의 명마였다.

...

 

모월 모일.

어머님의 기별을 살피고 밭에 나가 하인들과 기장을 살피었다. 노대가 올해는 비가 잦지도 부족하지도 않아 기장이 잘 자랄 것이 틀림없다고 몇번이나 반복하였다. 오후엔 구방인이 인편이 보낸 편지가 왔다. 술과 고기를 대접하고 편지를 읽었다. 급히 지필묵을 준비 시켜 몇 줄을 적어 돌려보냈다. 

모월 모일.

낮에 말을 보아달라는 사람이 왔다. 손대인 손대인 하며 내 분에 넘치는 선물을 가져왔기에 선물은 돌려보냈지만 말을 감정해주었다. 나보단 수도의 구방인이 명인이니 다음엔 그를 알아보오 하자. 어찌 천하에 백락선생보다 말을 감식하는데 뛰어난 자가 있겠소 하고 부끄러운 말을 하기에 손사래를 칠 수 밖에 없었다.

모월 모일.

기장을 돌보는 중 사람이 왔다. 백락 선생. 하고 부르기에 고개를 숙였는데 구방인이 찾아온 것이라 왈칵 껴안고 구대인 어찌 기별도 없이 오셨소 하고 물었다. 말없이 웃기만 하여 밤새 술을 기울였다.
내 말을 하나 골라두었다오. 하더니 요 근중에 본 말 중에 제일로 훌륭하니 선생께 보내겠소. 하며 웃었다.

싱겁기도 하다 그 친구. 어떤 말이길래 그토록 훌륭하오? 하고 물어보니 밤색의 암말이라오. 하고 대답했다. 새벽이 되자 곧 채비를 하더니 목공이 기다리시는 수도로 돌아가고 말았다.

 

모월 모일.

하루 종일 동풍이 불어 바람막이를 세웠다. 백락 선생은 귀하신 몸인데 어찌 이런 일을 직접 하는가? 하고 지나가던 근방의 촌부가 웃으며 묻기에 그러지 마시고 그늘에서 쉬시구랴 하고 술을 꺼내 한 잔을 마시라 하고 주었다.

말을 보는데 최고의 명인은 이제 구방인이라고 할 수 있소. 내 하나 뿐인 벗이라오. 하고 말하자 촌부는 과연 과연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구방인이 보냈다는 암말이 도착하질 않았다. 수도에 돌림병이 돈다니 그 탓이 아닌가 싶다.

 

모월 모일.

수도에서 사람이 왔다. 머리에 베 끈을 동여매고 온 그는 곧바로 내 집 앞에 달려와 구방인이 병마로 숨이 경각에 이르렀으니 나를 모시러 왔다고 말했다. 경황이 없이 소매를 묶고 여행 채비를 갖추기도 전에 또 한 명의 사람이 수도에서 와서. 구방인 어르신이 한시라도 빨리 백락 선생을 모시러 오라 하였다고 했다.

동구 밖을 건너자 멀리 이마에 흰 수건을 두른 사람이 소매에 검은 천을 묶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망연자실하여 수도까지 다녀오는데 손발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모월 모일.

바람이 차가워지기 전에 보리를 심으려 근방의 사람들과 상의를 하였다. 

목공께서 사람을 보내 이제 말을 알아보려면 누구에게 물어야 하냐고 전갈을 보내셨다. 이제 저는 말을 찾으러 가기 위해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없나이다. 멀리 수도를 향해 절을 드리고 서한을 인편에 전달하였다.


모월 모일.

구방인이 보낸 말이 도착하였다. 구방인은 밤색 암말이라고 하였으나 도착 한 것은 검은색 종마였다. 달리는 모습을 보니 역시나 천하에 다시 없을 명마였다. 잘 자란 보리 밭이 얼마나 푸른지 눈이 시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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