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때 진 모 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행색이 단정하여 벼슬길에 나아가면 큰 인물이 될 거라 소문이 날 정도였으나 이상하게도 벼슬길에 나아가질 못하고 서른이 되도록 진사에 머물러 있었다.

본인도 세간의 평가와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바, 온갖 방법을 강구하여 관직에 오르려 했으나 잘 풀리지 않아 살림은 기울고 단정했던 외모도 초라해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밝은 표정으로 장터에 나타나 비싼 술과 고기, 그리고 비단을 사기에 그의 친구들이 간 밤에 무슨 좋은 기별이라도 있었는가 하고 물으니 진 모는 아니 글쎄 어젯밤 집 근처에서 귀인을 만났어. 라고 말하였다.

이마가 곧다랗고 눈이 커다란 것이 분명 훌륭한 이였는데 나보고 지금은 시골의 촌부지만 장차 높은 자리에 올라 가문을 빛낼 것이라고 하고 가시더군. 곧 수도에서 좋은 소식이 올테니 걱정마시오. 하며 아무래도 내가 벼슬길에 오를 건가 보이.

친구들은 책상을 치고 웃으며 자네 놀림 받은 것은 아닌가. 그것은 꿈이 아닌가 하고 말했지만 만면의 희색이 가득했던 진 모는 아랑곳 하지 않고 집에 달려가 수도에서 손님이 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비단으로 새 옷을 짓고 좋은 술을 따라두고. 그러나 그 날 진 모의 집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그를 꿈에서 장원에 급제한 사람이다 장원공이다 라며 놀려대기 시작했고 진모, 아니 장원공은 낙심한 듯 보였지만 귀인을 만난 것은 사실이었는지 아침 저녁으로 집안을 쓸고 책을 읽고 용모를 단정히 하며 손님을 준비했다.

그러기를, 3년. 장원공에게 손님은 오지 않았다.

가세가 기울어 더 이상 좋은 술을 준비할 수 없던 장원공은 장터의 놀림꺼리가 되었고 그는 대신 종이꽃과 깃발 같은 잡동사니를 사서 집을 치장하기 시작했다.
장원공, 장원공. 아이들은 종이 꽃을 가득 사 집으로 가는 그를 보며 놀려대기 여념이 없었고 그는 점점 야위여갔지만 어째서인지 단정한 얼굴만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기를, 또다시 3년.

어느날 동문수학하였던 그의 오랜 친구가 장원공을 방문하였다. 집은 황폐하고 문은 부숴져 있는데 온갖 화려한 잡동사니가 장원공의 집에 가득하였다.
친구는, 놀랍도록 단정하고 평온한 얼굴의 장원공에게 소식을 들었다. 격조해서 미안하다. 라고 말문을 튼 후. 이제 그만 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을 하였다.

자네는 재주가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인데 어째서 이렇게 세월을 보내는가. 집안을 잡동사니로 가득 채우고 장터의 웃음소리가 되다니.

친구는 다정하나 엄하게 장원공을 꾸짖었다. 장원공은 오랜 친구의 질책에 몹시 괴로운 듯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친구가 돌아간 후, 장원공이 세상을 떠나는데에는 달포가 걸리지 않았다. 집을 차마 치우지 못해 아직 종이꽃이 가득 남아있는 장원공의 집엔 그리 많은 사람이 모이진 않았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친구는 누구보다 슬퍼했다.

그리고 2달 후, 수도에서 사자가 와서 진 모를 찾았다. 6년전 암행 중에 이 고을에서 그를 보았던 태자가 그를 좋게 보아 새로운 관청을 세우게 된 올 중추절에 그를 등용하겠노라. 하고 물론 사자가 만난 것은 그의 쓸쓸한 무덤 뿐이었고 사자는 그의 집에 사람이 없었다는 증거로 그의 집을 가득 채웠던 종이꽃 중 하나를 들어 수도로, 태자에게로 돌아갔다.

나는 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면, 장원공 진모의 종이 꽃을 떠올린다. 오지 않는 소식을 기다리며 잡동사니로 자기 자신을 가득채우고 또 텅비어버렸던 사람의 마음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길 바라며. 다만 고개를 숙이고 입을 틀어막고 아무 말도 새어나가지 않기를 바라한다.

17년11월1일의 글이다.


'부재증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0916] Either-or  (0) 2018.09.16
[20180511] 잔불  (0) 2018.05.13
[20170424] 이것은 딱히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0) 2017.04.24
[20161230] 가모가와, 강변의 여우  (1) 2016.12.30
[20160316] 여행의 이유  (0) 2016.09.1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