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문제였냐고 하면 짜슐랭이었다. 친구J가 오후 내내 짜슐랭을 이렇게 먹으면 맛있다고 단체방에서 얘길 했는데. 그렇게까지 맛이 있진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먹고 싶어져서 평소보다 40분 이상 일찍 퇴근했다.
걸어갈 때 잠시 블로그를 읽긴 했지만 내 블로그에 내가 썼던 내용에 뭔가 이상한게 없는지 확인 했을 뿐이었다. 신발도 나름 접지력이 좋은 괜찮은 신발이었고. 눈은 한참 전에 그쳐서 녹고 있었다. 마트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 갈 때는 주머니에 손도 넣지 않았다.

단지 오전에 내린 눈이 물이 되어 계단 위에 그대로 있었고, 저런 상태라면 사람이 넘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미끄러져 뒤로 넘어졌다. 2월 12일 수요일 오후 6시 45분. 바로 전에 넘어진지 딱 4주째였다.

기절하지 않았다. 넘어지며 왼팔을 급하게 뒤통수로 넣어서 머리가 부딪히는 걸 막았는데 내가 뭘 했던 건 딱 그 정도였고 넘어지면서 계단을 몸으로 내려왔다. 도대체 어디서 느껴지는지 모르겠는 격통 때문에 나는 계단에 쭈그려 앉아서 - 아니 이 때는 안 울었다. -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3명인가 4명인가 몇명씩 사람들이 지나가다 괜찮으시냐고 119불러드릴까요 라고 물어보았는데. 괜찮다고 거절하고 더 앉아있었다. 그래 누가 봐도 넘어진 사람으로 보였겠지. 일어나려는데 왼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때 나는 내가 망했다는 걸 알았다.

20미터만 걸어가면 내가 평소에 가는 정형외과가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곳에 가면 괜찮을거란 GTA적인 희망으로 팔을 붙잡고 힘들게 그곳에 갔다. 번호표를 뽑고 대기 하는 동안 서서 덜덜 떨고 있는데 앞의 차례 사람이 이해 할 수 없는 잡담을 하느라 계속 기다리고 있어서 아 기절하겠다 기절한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고 있던 간호사 한 분이 다치셨어요?(나는 이 병원에 왼쪽 어깨 때문에 1년째 다니고 있는데, 이번에 다친 것도 왼쪽 어깨이다. 메이저 리그 진출은 물건너 갔다고 보면 된다) 라고 하더니 나를 알아보기에 아 넘어졌어요. 라고 말하고 덜덜 떨면서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른스럽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아 선생님 한 4주만에 뵙는것 같은데 저 요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너무 아프네요. 라고 덜덜덜 떨면서 말하는게 최선이었다. 내 어깨를 보는 선생님도 표정이 별로 안 좋아보이셨다. 어깨 엑스레이를 보며 아이고 부러졌어요…라고 말하시는걸 들으면서도 나는 진짜 아니길 바랐다.

뭐라고 하셨더라. 수술을 안하면 팔이 짧아질거라고 하셨던가. 저는 팔이 너무 긴게 문제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급하게 진통주사를 맞고 바로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하는 걸 권했고 나는 쓰고 달고 시고 뭘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정말 너무 아파서 덜덜 떠는거 말고는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진통주사를 맞기 위해 눕는 것도 바지를 내리는 것도 못했다. - 이 때 쯤 부터 질질 울기 시작했다. 아픈 건 둘째 치고 너무 억울했기 때문인데.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앞서서 넘어진지 딱 4주째 되던 날이었다. 도대체 왜? -

병원 사람은 친절하게 다음 병원을 수배해주고 1층까지 내려와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알려주었다. 운이 좋게도 그 병원도 첫번째 병원에서 200미터정도면 걸어가면 되는 병원이었는데. 진통 주사로 덜덜 떨지는 않게 된 나는 옆자리 부장님과 형에게 전화를 했고, 친구들 몇 명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형은 어제 면회에 와서 내가 엉엉 울면서 전화를 했다고 했는데, 나는 전화하면서 울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소리지 싶었지만 형이 쇠고기를 사줬기 때문에 그냥 내가 운 걸로 했다.

그리고 지금 16일 일요일. 나는 입원 중이다. 5인실이지만 사람들이 빨리도 퇴원하고 입원하길 반복하는 이 병원은. 간병인도 보호자도 병실에 두지 않는 맘에 드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나보다 먼저 이 병실에 와있던 할아버지 하나가 이젠 눈치도 보지 않고 보수 우익 유튜브를 스피커로 틀고 있어서 나는 현재 너무 괴롭다. 진짜로 괴롭다. 엄청 큰 소리는 아니지만 귀를 기울이면 무슨 얘길 하는지 알아들을 정도로는 크다. (아니 할아버지와 나의 병실은 양쪽 끝인데도 그렇다.) 수술이 잘 되어 내일 점심 때 쯤이면 퇴원 할 수 있을 거란 얘길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 참인데도 기분이 좋지 않다.

나의 진단명은 좌축상완골 골절이다. MRI를 찍고 나서 알게 된 것 같지만 오른 쪽 늑골도 골절되었다고 한다. 아니 뭐 어쩌겠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부러져 있던 것이 아닌지. (이전 블로그 글 참조)

당일에는 수술이 안 되었기 때문에 진통제를 받아들고 집에 와서 식은 땀을 흘리면서 앓았고 1회차 넘어 질 때 받았던 슈퍼 진통제가 놀랍게도 두 봉지가 남았기 때문에 하나를 먹어서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이전 블로그에 안 썼음)
다음날엔 종일 금식 상태로 대기 하다가 겨우 17시가 되었을 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는데. 40분이 걸릴거고 2시간이면 깰 거라고 하더니 일어나보니 0시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상의 어깨 부분엔 피가 말라붙어있었고 - 당연하다 수술을 받았으니 - 처음보는 거창해보이는 서포터가 장착되어 있었고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저 이제 자도 되나요?라고 물어보았는데 그런 질문을 하는걸 보니 전에 누군가가 못자게 했었던 이력이 있었던 것 같지만 저 당시에는 내가 왜 저런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저렇게 얘기 했다.

자려고 했지만 잠이 들지는 못했다. 무통 주사 버튼을 계속해서 누르며 아픔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이것도 후에 알았지만 내가 메스꺼워했기 때문에 무통주사를 닫아놓았다고 한다. 아니 도대체 그럼 난 뭘 기대하며 무통주사 버튼을 밤새 딸깍 거렸단 말인가. 아침에야 다른 진통제를 맞고 잠이 들 수 있었는데 그러고 잠에서 깨자 내가 전날 수술을 받은 후에 했었던 진상 짓들이 생각나서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그날 밤에도 아파서 제대로 잠이 들지 못했던 건 똑같았다.

어제가 되서야 소독을 하게 되어 내 상처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수술 상처가 생각보다 컸다. 해적처럼 흉이 지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몇명이 찾아왔고 형네 가족, 이모와 이모부가 오셨었다. 조카는 너무 긴 운전 때문에 그렇게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이모가 요즘엔 굿도 단가가 많이 비싸져서 1억 정도 한다고 말해주었다. 치료비 다 하면 500정도 들 것 같은데 그러면 굿 한 번 할 돈으로 20번 정도 넘어질 수 있네요. 라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면 20번이나 넘어지고 싶지 않다 진짜 싫다.
내가 이렇게 넘어진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이 제각기 내가 체중이 너무 빨리 줄어들어서 그렇다거나 아니면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렇다든가 하면서 의견을 내고 있다. 나 본인의 의견은 글쎄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그럴만해서 그랬던 것 같다. 모두의 의견을 반영 하려면 나는 살도 10킬로그램을 찌우고 피티도 6개월 받고 굿도 1억원어치를 받아야한다. 그럴바엔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지금은 좀 덜 아프다. 아직 팔에 주사바늘은 꽂혀있지만 진통제는 먹기만 하고 주사로 따로 맞진 않는다. 갈비뼈가 부러진건…진짜로 괜찮은가보다. 시험삼아 기침을 해보았는데 아픈 걸 모르겠다. 팔이 조금 덜 불편해지면 러닝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서포터를 하고 다녀야 하는 기간이 생각보다 길다. 실을 뽑는데도 2주 정도 걸리고 어깨뼈에 박은 핀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도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한다. -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 생각보다 나는 꽤 심하게 다쳤다. 하지만 다치자마자 집 앞 정형외과 선생님과 형수 - 형수는 의사다. - 양쪽에게 저 얼마나 많이 다친거에요?라고 물어보았는데 둘 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별 거 아니라고 하기엔 인간적으로 미안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어찌 되었든 내 발로 병원까지 걸어갔으니까 의학적으로 중상환자는 아닌거지 싶다.

오늘, 앞으로는 더 넘어지지도 아프지도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 넘어지면…아니 뭐 문제가 있는거다 이건.
아까 잠시 집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내가 정말로 바라는 것은 뭘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살아가는 것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만 살고 싶다면 더 편하고 쉬운 방법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더 아프지도 말고 더 넘어져서도 안된다.
병실 침대 주변에는 커튼이 쳐져있다. 그 앞에 그림자가 질 때면 의료진이란걸 알면서도 나는 꿈에서 자꾸 누군가 다른 사람을 본다.
어제는 ㅇㅇ의 꿈을 꿨다. 묘하게 굿하는데 1억이라는 이모의 말이 인상에 남았는지. 나는 500정도 들거면 매달 220은 네가 그냥 써도 괜찮아. 라고 말했다. ㅇㅇ는 220은 너무 많지 않아요?라고 하기에 그러면 180 어때라고 제안했다. 도대체 뭐하는 무슨 꿈인지 모르겠다.

마취가 풀릴 때 쯤. 내가 너무 아파서 울었던 게 그렇게 기억났다. 그리고는 이렇게 아플거면 울어도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입으로 와 … ㅇㅇ이 보고 싶다. 라고 말하고 울었다. 그리고 다시 기절했다. 어떤 말들은 그런 상황이 되어서야 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그런 말들이 있는거겠지.


22년 2월의 글이다.

'부재증명_(에세이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212] 불변  (2) 2025.02.12
[20250207] 쓰러져 일어나지 않는다.  (1) 2025.02.07
[20250205] 넘어졌었다.  (0) 2025.02.06
[20250204] 넘어졌다.  (0) 2025.02.05
[20241220] We are TEAL  (0) 2024.12.20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문장은 현실의 조악한 복제품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기관과 지각능력의 한계로 인하여 현실을 완벽하게 수용해낼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문장으로도 그럭저럭 충실한 현실의 재현품을 삼을 수 있다.

우리는 회상이라는 형태로 비교적 쉽게 과거를 재현해 낼 수 있지만, 재현은 재현일 뿐이다. 불완전한 세계의 불완전한 반영이다. 실제로 현실의 시간을 뒤로 돌려 완벽하게 과거를 다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러나 문장은 완전한 역행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무시하고,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의 모습을 최대한 뭉툭하게 깎아내어 현실이 가진 속성들의 중요한 부분만을 추출한 후. 몇 번이나 재현이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주장에는 한가지 필수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문장을 읽어줄 불변의 독자이다.

이론 상 - 물론 이론 상이라는 말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지만 - 세상 어딘가에 불변하는 독자라는 모순적인 존재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그 불변하는 독자에게 문장을 읽게 함으로서 그의 머릿속에서만은 동일한 현실을 반복해서 재현시킬 수 있다. 그것은 재현이라기 보다는, 강림이나 재생에 가까운 행위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불변의 독자. 문장의 모든 체험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 당신을 가정해보자. 나의 모든 글을 읽었을 당신이 나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라고 해야할까.
누군가는 이 불변의 독자가 신에 대한 메타포로 이해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불변의 독자를 신이라는 가정을 부정한다. 당신이 정말로 신이라면 내가 쓴 모든 것들은 단지 길고 지루한 기도문일 것이고, 내가 겪고 있는 부패와 결락들은 결국 신의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재료가 될 뿐이다.

고전 모험, 추리소설의 소설가들은 독자제현 이라는 말로 자신의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그들은 때때로 자신이 이 글을 쓴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21세기에 들어서 자기의 컨텐츠를 봐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유 불명의 적대감을 표시하는게 유행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그랬다. 자신의 소중한 존재. 다시 없는 사람. 글과 나 사이에 놓인 유일한 세계.

샐린저는 소설에서 시모어가의 둘째가 쓴 글을 통해 독자가 누군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는 가상의 독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새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 이유는 새가 그 어떤 것보다 영혼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독자 당신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가 쓰고 있는 이 불완전한 글을 읽고 있는 완벽한 타자인 당신은. 예전에는 더욱 확실한 형태를 가지고 어떤 사람인지를 떠올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빠르게, 세월 그 자체보다 빠르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잊어버리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싶지 않게 된 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떠올리지 못하게 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나는 한 밤 중의 변덕으로 빨랫감을 들고 집 근처의 코인라운드리에 갔다. 당신이라면 알 고 있을 집 근처 상가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 곳의 코인 라운드리 얘기이다. 물론 빨랫감을 들고 가기 전 마트에 들르는 척 라운드리에 들러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세탁기는 비어있는지 몰래 살펴보았다. 웃기게도 내가 염탐하러 갔던 그 때 보다 손님은 줄어들었지만 커다란 빨랫 바구니를 들고 간 사람들이 늘어 줄을 서 있었던 탓에. 나는 삼십분이 넘도록 빨래도 하지 못한 채로 멍하니 코인 세탁기 앞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분간은 글을 쓰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내가 당신에 대해서 글을 쓰기로 생각한 건. 그 삼십분이다. 나는 내 차례가 되자 타올 한 무더기와 속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집에 돌아가 책을 들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코인 라운드리는 세상 그 어떤 곳보다 책을 읽기에 좋은 곳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좋은 것이라면 나란히 앉아서 손을 잡는 것 정도이다.

나는 대만 작가가 쓴 소설책을 맨 뒤부터 읽으며 (처음부터 읽을 때 이해가 가지 않고 별로 좋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초식동물이 되새김질을 하듯이 진동하는 소리를 내는 커다란 세탁기들의 소리를 들었다. 어떤 남자들은 - 대체로 남자들이었다. 심부름이겠지 - 아이들이 쓸것 같은 이불을 들고 찾아왔고. 어떤 사람들은 급하게 세탁해야하는게 틀림없는 속옷들을 들을 들고 사라졌다. 세탁소 밖은 춥고 새까만 밤이라.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내세가 이런 곳이라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옆자리의 아저씨는 어딘가로 사라지기에 담배라도 피러 나갔나 싶었더니 아이스크림을 사와서 몰래 먹기 시작했다. 눈치를 볼 필요는 없을텐데 혼자 군것질을 하는게 왠지 불편한 눈치이다.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아저씨가 편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도록 더더욱 신경쓰지 않는 척 한다. 여름부터 내내 읽고 있던 책이라 조금 너덜너덜해졌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여름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 대만은 아열대 기후이다. 어떤 계절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에겐 그냥 여름으로 느껴진다. - 책을 읽으며 비가 내리는 어떤 곳에 대한 생각을 한다.

세탁기를 돌리는데 30분. 건조기를 돌리는데는 4분에 500원. 만원짜리를 전부 동전으로 바꾼 나는 40분이고 50분이고 건조기를 돌릴 수 있었지만. 왠지 낭비를 하는 기분이 들어 20분만 건조기를 돌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80분 남짓한 시간이 그 주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며 당신, 나의 불변의 독자인 사람을 떠올렸다. 당신이라면 나의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읽어주리라. 내가 왜 행복해했는지, 왜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해주고 싶었는지 이해해주리라. 매일 매일 당신을 잃어버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목소리를 가졌을까.
당신은 새를 좋아할까.

25년 2월의 글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다양한 형태의 실망을 쌓아가는 것이다.

나는 대체로 6시에 일어난다. 대체로라고 말하는건, 사실 아무 때나 일어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어제는 5시에 일어났고 오늘은 6시 30분에 일어났다. 규칙적인 생활이랑 거리가 멀다.

해가 뜨기 전의 새벽에 러닝을 하는걸 선호하지만 요즘엔 역시 춥다. 6시에 일어나면 그냥 출근을 할지 운동을 하고 나갈지 고민하는 신성한 시간을 갖(침대에 그냥 누워있는다는 뜻이다)다가 러닝을 하러 나간다. 아침에 운동을 하면 하루 종일 묘하게 나른하지만 운동에 대한 부채감이 없는 하루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선호하는 러닝 거리는 5킬로미터이다. 전에는 급하면 3킬로미터 정도만 뛸 때도 있었지만 역시 좀 서운한 거리이다. 러닝 선배들은 킬로미터 기준으로 운동량을 정하지 말고 시간을 기준으로 다양한 시간을 뛰라고 조언해주지만. 실은 나는 풀코스 마라톤 같은 건 관심없다. 그냥 좀 더 달리고 싶을 뿐이다.

러닝을 하든 하지 않든. 집에서는 8시 전에 나간다.
회사가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기 때문에 보통 걸어서 출근한다. 아닌가,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는지도 모른다. 실은 2.5에서 3.0킬로미터 정도 거리다. 왜 0.5킬로미터 정도 차이가 나냐면 굳이 좀 돌아서 가는 경우가 많다.
고래로 철학자, 수학자, 정치인, 백수건달, 은퇴한 아저씨 등 자기가 대단한 뭔가를 사고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산책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지를 주장하는데. 그건 모르겠다 나는 그냥 걷는 걸 좋아하고 요즘은 아침 출근 시간이 피ㅋ민을 하는 시간이다.

하여간 회사에 도착하면 아침밥을 회사에서 먹는다. 회사 식당에서 앉아서 먹어도 되고, 테이크아웃류의 음식들을 받아서 가도 된다.(사무실 내 자리에서 먹는다) 받는 것은 건강한 야채구이라든가 군고구마니 삶은 계란이니. 아니면 기성품 커피 같은 것이다. 실은 나는 군고구마가 너무 좋다. 너무 많은 고구마가 건강에 안 좋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깟 건강.

변덕 때문에 7시 30분 정도 쯤에 회사에 도착 할 때도 있다. 그러면 회사 정문 시큐리티 업체 분 중에서 가장 미인이신 분에게 아침 인사를 할 수 있다. 딱히 하는 건 없다 그냥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 정문으로 들어갈 뿐이다. 그리고 이게 나의 하루의 클라이맥스다. 미인한테 인사 할 수 있다니 너무 신난다.

자리에 앉으면 받아온 테이크아웃을 먹으며 메일을 체크하고. 그날 해야할 일을 바로 시작한다. 출근하면서 오늘 뭘 해야하는지 생각해두기 때문에 나는 업무속도가 꽤 빠르다. 의외겠지만 일상생활 중에서도 일 생각을 많이 한다.
갑자기 뭔가 옆에서 튀어나오는 업무가 있어도 30분 이상 걸리는 일은 드물다. 집중을 해야하는 일이 있으면 귀를 막기 위해서 에어팟을 꽂고 노래를 듣는다. 때때로 3,4시간 정도 집중해서 일해야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면 정말 꼼짝도 하지 않고 일만 하고 있어서 이상하다는 얘길 듣는다. 아니 왜지 기계처럼 일하는 회사원 처음 보시나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메신저로 친구들과 농담을 하거나, 동네 맛집 얘길 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게임 얘기나 한다. 더 한가할 때는 인터넷으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쓸모도 없는 지식들을 검색해서 읽는다. 너무 놀았다 싶으면 시장 레포트나, 테크 레포트 같은 것을 찾아서 읽고 내키면 뭔가 스스로 레포트를 생산해낸다.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과외의 일이다.

아직 어릴 때 회사원이었던 아버지에게 아빠는 회사에서 뭘 해?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버지는 회사에선 일을 하지. 라고 말을 하기에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데? 라고 재차 물어보니. 아버지는 자못 곤란하다는 듯이. 여러가지 일을 해 라고 대답했다. 누가 나한테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나도 여러가지 일을 하죠 정도로 밖에 대답을 못하겠다. 진짜로 회사원은 여러가지 남들에게 설명하기 곤란한 일을 한다. 나도 기관사처럼 설명하기 쉬운 직업을 갖으면 좋을 것 같다.

점심은 친구들과 먹는다. 부지런한 회사원이기에 점심 메뉴는 꼭 체크한다. 점심 메뉴를 체크하지 않고 일을 하지 않는 회사원이 있다? 그 녀석은 먼 미래의 인공지능이 보낸 기계 암살자이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하여간 절대 그런 짓을 해선 안된다 점심 메뉴는 괜히 식당에 가서 고민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사전에 정해둔 메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길 바란다.

날씨가 좋을 때는 회사 근처 천변에 산책을 간다. 몇년 쯤 그랬을 까 생각해보니 6,7년은 된 습관이다. 요즘엔 너무 춥고, 또 러닝으로 충분히 운동량이 채워지는 것 같아서 산책을 잘 하지 않는다. 나의 친구인 당신에게 나는 몇 번 천변의 풍경을 설명한 적이 있을 것이다. 갈대가 많고 느티나무가 천변에 늘어서 있다. 오리와 비둘기, 그리고 설명 할 수 없는 작은새들이 많다. 게임이라도 하면서 걸어다니면 좋을 것을. 나는 생각을 하거나 머릿 속으로 글을 쓴다. 두개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저 두 가지는 진짜 명백하게 다른 활동이다. 그런 질문을 한 걸 반성하기 바란다.

얼마 전에 후배가, 선배는 심심할 새가 없겠어요. 아무 생각이나 하고 그걸 또 입으로 말하시잖아요. 라고 말하는데 내용이고 뉘앙스고 전혀 칭찬이 아니었을 뿐더러. 꼭 입가에 밥풀 붙이고 나온 다섯살짜리 꼬마한테 아이구 배고플까봐 도시락 가지고 나왔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은 말투라서 선배한테 진심을 다해서 공손하라고 설교를 해주었다.

점심을 먹으면 하루가 다 간거다. 쓸데없는 업무를 좀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오후는 또 금방 간다. 아니 거꾸로 오후 시간이 안 갈 때도 있는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일을 좀 빨리 처리하는 편이라서 해야할 일이 하나도 남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후배는 선배든 친구든 꼬셔서 커피를 사러 간다. 같이 가는 멤버에 따라서 커피를 사면서 잡담을 할 때도 있고 회사를 한바퀴 돌 때도 있고. 그냥 자리로 돌아올 때도 있다. 나는 보통의 회사원들은 사죽을 못쓰는 신기하고 기기묘묘한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어서 그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해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 그냥 평범하게 재테크 얘기나 애들 키우는 이야기 그런걸 하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안합니다 내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하는 이상한 동물 이야기나 들으시기 바랍니다.

저녁시간은 금방 온다. 회사원들은 체력이 약해서 해가 지기 시작하면 준비해온 집중력이 다 해서 다들 비실거린다. 야근을 하니 뭐니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손이 느린 놈들이 그러는 것이다. 가끔 후배들이 업무에 퀄리티를 올리겠다고 아등바등 하며 일을 하는걸 볼 때가 있는데 내심 회사원은 업무 퀄리티보다 마감기한이 훨씬 중요한거라고 잔소리를 하고 싶어진다. 네 참습니다. 잔소리해서 뭘 하겠습니까.

저녁 식사로 저녁 테이크아웃을 받아 먹으면 진짜로 그날 회사 업무도 거의 끝이다. 메뉴는 또 삶은 계란 뭐 그런 것들이다. 맛이 없는데 괜찮냐고요? 맛이 없는 것도 그냥 먹는 것이 진정한 뚱뚱보의 자세이다. 까불지 말기 바란다.

일이 남으면.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다음 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해둡니다. 그러면 오늘의 업무는 진짜로 거의 끝이다. 나는 쓸데없이 회사에 남아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사무실 체류 시간은 대체로 10시간 정도이다. 이젠 회사에서 밤을 새거나 남들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컨퍼런스콜을 하거나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남은 것은 퇴근이다.

퇴근도 거의 걸어서 집에 간다. 출근과는 다르게 여유가 있다. 노래를 들으면서 걸어가면 신이 난다. 퇴근이 좋은건 어떤 회사원을 막론하고 동일한 습성인데. 나는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서 잠이 들고 로봇처럼 그냥 출근하는 생활을 오래해서 그렇게까지 퇴근이 즐겁진 않지만 아 콧노래를 안 부를 수는 없다.

퇴근하는 루트는 출근하는 루트보다 조금 짧다. 하지만 마트를 들른다. 요즘에 사는 것은 싱싱한 딸기나 우유, 집에 식료품이 부족하면 두부나 컵라면이나 하여간 두 손으로 들고 갈 수 있는 것을 산다. 뭐라도 사서 들어가야 마음이 좀 덜 허전하다.

집에 오면, 아무도 없다. 뭔가 해야할 집안일이 있다면 바로 지금 퇴근한 시간에 해야한다. 왜냐하면 옷을 갈아입고 어딘가에 등을 기대게 되면 퇴근한 직장인 모두가 그런 것처럼 끈적하게 녹아버려서 다시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설거지, 빨래, 청소 하여간 뭐든지 해야할 일들을 한 30분내로 하고 나면. 그래 그제서야 온전히 누워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침에 러닝을 하지 못했다면 이 시간에 러닝을 한다. 퇴근의 기쁨이 가시지 않은 이 시간에 하는 것이 비결이다. 이전에는 집안일을 마치고 깜빡 잠이 들었다가 11시 12시에 러닝을 하고 그랬는데. 생활 습관 상으로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고담시 같은 곳에선 가져서는 안되는 습관이기도 하다. 극장 뒤에서 총을 맞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뭘 하냐면. 뭘 하지? 다양하다. 책을 읽거나 뭔가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잠을 일찍 잔다. 회사에서 업무가 많지 않아도 그냥 회사에 있는 것만으로 나는 모든 기력을 소진한 상태라 마음만 먹으면 바로 눈을 감고 잘 수 있다.

씻기? 러닝을 하고 나서 씻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아침에 씻는다. 세간에 들키지 않게 온 힘을 다해 노력해야할 사실이지만 가끔 세수를 하지 않고 그냥 잠이 들 때도 꽤 많다. 유독 지치고 늘어지고 촉촉하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어떤 얼굴을 떠올릴 때도 있다. 괴물도 신도 아닌, 사람의 얼굴이다. 침대에 누워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떠올린다. 표정들을. 순간들을. 어떤 감정들을. 나는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말랑말랑한 무인양품표 쿠션을 껴안는다. 그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어떤 피와 살로 된 애정인것처럼. 그리고는 아무 꿈도 꾸지 않기를 바라며, 숫자를 세는 양치기보다 빠르게 잠이 든다.

꿈을 꾸지 않는 것. 그게 나의 요즘 바라는 바이다.

그거 말고는 없다.
처음에 무슨 얘기를 했지? 살아간다는 것은 실망을 쌓아가는 거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계속 살아가는데는 어떤 형태로든 희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희망이 없이. 아무 의미도 없는 하루를 쌓아가면서.

25년 2월의 글이다.


'부재증명_(에세이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216] (일어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또 넘어졌다.  (0) 2025.02.16
[20250212] 불변  (2) 2025.02.12
[20250205] 넘어졌었다.  (0) 2025.02.06
[20250204] 넘어졌다.  (0) 2025.02.05
[20241220] We are TEAL  (0) 2024.12.20

전의 블로그 글에서 썼지만, 나는 3주 전쯤 넘어졌었다. 세어보니 정확하게 3주였다.
처음 정형외과에 갔을 때 전치6주에서 8주 쯤 되지 않을까요 라고 하셨는데. 지난주 금요일에 방문했을 때 2,3주 정도는 경과를 더 봐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라고 하셨으니 정확하게 6주 정도 되는 셈이다. (용하기도 하셔라)
차에 치인 것도 아니고 빙판길에 넘어졌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다치다니 재주도 좋다.

몸이 이런 상태이다 보니 러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남이 얼마나 아팠는가를 듣는건 정말 지루한 일이지만 여긴 내 블로그니까 내 맘대로 쓰자면.)
다친 첫번째 주에는 러닝이 문제가 아니었던게 정말 말도 안되게 아파서 4종류의 진통제를 매 끼마다 먹으면서 일상생활 비슷한 걸 했다. 입원을 왜 안 했는가? 아니 내가 노인도 아니고 빙판길에 넘어졌다고 입원을 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숨이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 골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용케 부러진 곳은 없네요.”) 그냥 몹시, 아주 몹시 아픈 것 뿐인데 입원을 할 필요는 없다 싶었는데. 걱정이 되셨던 정형외과 선생님은 소견서와 전원서를 써서 3차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다만…나는 가지 않았다. 나는 이상한 구석에서 고집이 쎄다.

다친 지 2주차가 되자 아픈게 좀 가라앉고 걸을만해지니까, 다른 문제가 생겼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러닝을 하지 못하는 것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러닝을 못하는게 괴로웠냐 싶겠지만. 작년 여름부터 내 인생은 철저하게 러닝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애초에 가족도 친구도 없이. 인생을 운영하고 있던 사람이니까(하하)

집중해야하는 것을 러닝으로 슬쩍 바꾸기만 한 것 만으로 자연스레 러닝 없이 못 사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매일 정형외과에 가면서 선생님이 내 눈치를 슬쩍 보며 아직 운동하시면 안됩니다. 라고 주의를 주셨는데. 그걸 보면 내가 되게 티나게 러닝을 하고 싶어한 것 같긴 하다. 어떻게 안 걸까 내가 이 겨울날 손바닥만한 바지를 입고 진료실에서 달리는 흉내를 낸 것도 아닌데 말이지. 물론 적당해졌다 싶은 주기마다 언제쯤 운동을 해도 될까요? 라고 물어보긴 했다만…아 맞다 다친 날 아침에도 러닝했다고 얘기 했었지만 뭐 그래.

길고 긴 설 연휴에도 대체로 누워있었다. 어디 미술관 구경하러 가자고 나오라는 연락도. 뭔가 먹으러 나오라는 연락도 모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그냥 누워있었다. 초조하게 도대체 언제 다리가 낫는거지 하는 생각만 했다. 설 전에 갔었던 진료에서 무릎을 초음파로 보다가 왼쪽 무릎 연골판에 파열 의심 증상이 있다는 소리를 듣자. 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든걸 보면 정말로 러닝 말고는 인생에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된건가 싶기도 하다. (연골판에 파열되었을 경우, 애초에 완치는 안된다. 심한 경우에는 수술을 해야하는데 재활에 몇개월이 걸린다.)

러닝을 못하게 된지 2주가 넘어갈 때 쯤엔 러닝을 하지 못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죽은 눈으로 게임 패드를 잡고 죄없는 병사들을 칼과 창으로 때려잡으며. 아니면 베트남, 대만의 신진 작가가 현대사의 비극을 녹여낸 훌륭한 문학 작품을 기운없이 읽으며. 내내 그냥 러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훌륭히 멘탈이 무너졌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피ㅋ민 블룸이라고. 나ㅇ언틱에서 만든 산책게임이 있다. 원래 있던 게임인 피ㅋ민을 나ㅇ언틱 특유의 위치 기반 서비스와 결합한 게임인데. 나온지 몇년이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갑자기 인기를 끌기 시작해서 아주 최근에 한글판 공식 에스엔에스 계정이 생길 정도가 되었다. 나도 도쿄 여행을 갔다오기 얼마 전부터 친구의 권유로 하기 시작했는다.

거기에는 “눈 데코 피ㅋ민”이라는 희귀한 피ㅋ민이 있다. 눈이 오는 시간 대에 특정한 위치에서 아이템을 쓰면 얻을 수 있는 피ㅋ민으로. 워낙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나는 얼마 전부터 그 눈 피ㅋ민을 얻으려고 노력을 아니 집착을 하고 있었다.

일단 매일 나ㅇ언틱에서 쓰는 날씨 서비스를 매일매일 찾아서 우리 지역에 눈이 올 확률을 찾아보고, 특정한 위치 (눈 피ㅋ민은 “길거리”아이콘이 딱 하나만 나오는 지점에서만 나온다. 우리나라엔 공지가 적어서 그런 지역이 드물다.)가 집과 회사 주변 어디에 있는지 찾아두었다.

설 연휴에는 폭설이 내렸는데, 우습게도 앱 안의 날씨는 매일이 흐림이었다. 눈으로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일찍 퇴근해 무릎 혈종 제거 시술을 받으려고 병원에 갔던 날. 웃기게도 앱 안의 날씨가 눈으로 바뀌었다. 나는 붕대를 감은 채로 “길거리” 아이콘이 나올거라고 예상되는 곳으로 절룩거리며 걸어갔다. 날씨 예보는 1시간 단위로 바뀌기 때문에 1시간 내로 예상한 곳 까지 갔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난리를 쳐서 눈 피ㅋ민을 두마리나 얻고 나니. 그제서야 내가 여기에 과하게 집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게임을 한지 두달이 되기 전에 레벨이 50에 근접한 것 부터가 정신줄을 놓고 이걸 하고 있었다는 증거였긴 하다.)

이게 뭐라고 말이지. 눈 피ㅋ민이 뭐라고. 러닝이 뭐라고.

3주 정도는 더 봐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못 들었다는 듯이 주말에 10킬로미터를 뛰었다. 무릎의 붓기가 빠지지 않아서 붓기가 빠지기 전에는 연골판의 파열을 확인 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냥 냅다 뛰었다. 무릎이 아파오자 눈물이 좀 날 것 같았다. 계속 달리고 싶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어느 것에도 집착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였다고 생각한다.
그냥 무의미한 집착이었다. 다 알고 있었다. 사랑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하고. 사랑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번뇌에 빠졌다.

여름부터 썼던 포스팅을 읽자. 그 동안 내가 어떻게 매달 다치고 아팠는지 (놀랍게도 매달 어딘가를 다치고 있었다 도대체 왜?) 괴로워했는지. 어떻게든 나아보려고 노력했는지 거기에 다 적혀있었다. 차라리 아무 것도 쓰지 않을 것을 그랬다. 의도치 않은 사고로 넘어지고 굴러 애써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게 내가 아니었다면 좋았을텐데.

어제 밤에 차림새를 갖추고 무작정 달려보려고 하는데. 허리가 아려왔다.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어서 새벽에 일어나 다시 달리려는데 아직도 허리가 아렸다. 디스크일까, 근막의 통증일까. 아니면 그냥 춥기 때문일까. 피트니스에 가서 트레드밀 위를 뛰었다.

모두 다 미망이고. 모두가 미련이다. 여기에 어떤 의미도 없었다.

나는 넘어졌었다. 뜻하지 않은 빙판길에 미끌어진 것 처럼 넘어졌다. 용기를 내어 혼자 걸어가야 하는데. 아무리 엉망이 되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25년 2월의 글이다.


'부재증명_(에세이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212] 불변  (2) 2025.02.12
[20250207] 쓰러져 일어나지 않는다.  (1) 2025.02.07
[20250204] 넘어졌다.  (0) 2025.02.05
[20241220] We are TEAL  (0) 2024.12.20
[20241207] 새벽에게  (0) 2024.12.07

1월 14일 아침, 나는 넘어졌다. 넘어졌다기 보다 굴렀다.

13일 밤부터 눈이 내렸다. 새벽에 일어난 나는 막연히 괜찮을거라고 생각하고 러닝을 했다. 5.05킬로미터에 36분간의 러닝. 두번 정도 넘어질 뻔 했짐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속도로(겨울이니까 빨리 달릴 수 없다) 달렸는데 정작 넘어진 것은 출근하려고 걸어갈 때였다.

나는 떳떳하다.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주머니에 손을 넣지도 않았다. 뉴스를 듣고 있긴 했지만 하여간 그렇게 정신을 빼놓고 있지도 않았다. 마음에 걸리는 건 아침에 나올 때 바닥이 미끄러운 편인 나이키 모델을 신었던 것 정도다. 나는 그 신발을 신으면 어라 이거 오늘 아침 같은 날에는 좀 위험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고, 그러니까 어른의 지혜로 나 스스로에게 충고를 한 것이다. (정작 나는 그 어른의 지혜를 무시했다. 항상 내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차에 치인 것 같은 몰골로 회사에 도착하자. 옆자리의 부장님은 뭐냐 어떻게 된거야 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어 넘어졌어요. 하고 얼빠지게 대답을 하고는 몸에 묻은 흙과 눈을 털고 아까부터 뜨겁고 쓸린 느낌이 나던 무릎이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바지를 걷어보니 맙소사 무릎이 두개가 되었다. 심지어 아랫쪽에 새로 생긴 무릎 쪽이 더 컸다. 피야 당연히 나고 있었고 휴지로 닦아냈다. 보통 다친게 아니란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야 빨리 병원 가봐라 라고 부장님이 성화신데 나는 좀 현실감이 없어서 아침에 보고 하나 작성할 게 있어서요. 라고 얼빠지게 말하고는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냈다.

회사 근처의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께서 자못 심각한 얼굴을 하셨다. 병원의 직원들이 다들 한 명씩 와서 내 무릎을 구경하고 갔다. 아프신가요? 아뇨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은데요. 라고 말헀는데 엑스레이를 찍고 진통주사를 맞추고 진통제를 세 종류 처방해주셨다. 저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은데요. 오늘밤부터 엄청나게 아프실거에요 내일은 더 아프실거고요. 너무 아프면 꼭 병원 나오셔야 합니다. 진통제 더 처방해드릴게요.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그날 밤은 엄청나게 아팠고. 그 다음날은 더욱 아팠으며. 다다음날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처음 넘어진 곳은 언덕을 올라가는 횡단보도였다. 평소엔 차들이 사양하지 않고 우회전이고 직진이고 하는 곳인데 그 날은 왠지 한 쪽에 경찰차가 서있었다. 거기에 눈이 팔린 것은 사실이었지만, 펭귄처럼 걷다가 앞으로 꽈당 소리와 함께 넘어진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후에 깨달은거지만 워낙 사고가 나기 쉬운 고갯길에 (나는 평소에도 그 곳에서 차에 치일 뻔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눈이 내린 아침이라 경찰차가 미리 와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도 내가 넘어지자 맞은 편에서 오던 차가 마법처럼 서행을 하고 있어서 횡단보도를 넘어서까지 밀려내려오진 않았다.

후에 알았지만 운이 좋게도 무릎으로 넘어지지 않아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나는 넘어졌다는 당혹감과(어른들은 넘어지면 굉장히 당혹해한다.) 창피함에 발버둥치며 일어났지만 차도 경찰도 행인들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여기 오늘 아침에 넘어진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나보다. 검은 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무르팍에 더럽게 묻은 블랙아이스를 털고 일어나니 그냥 좀 더럽고 출근 중인 아저씨인지라 비틀비틀 걸어갔다. 회사까진 2킬로미터 정도 남았고 이 정도 넘어진 걸로 회사를 안가기엔 좀 그랬다.

무릎이 쓸리는 감각과 건조한 통증이 있었지만 찰과상이겠거니 생각하며 고갯길을 비틀거리며 걸어올라 회사 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중간 쯤 걸어내려오는 횡단보도의 중간 쯤에서, 나는 한 번 더 넘어졌다.

엄청난 소리가 났다. 아니 나도 내가 넘어지면서 그렇게 큰 소리가 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한번 넘어졌기 때문에 무릎에 힘이 빠졌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부딪혔던 왼쪽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미끌어졌고 오른쪽 바닥에 넘어졌다. 눈을 감았는지 아니면 기절을 했는지, 아주 잠시 블랙아웃이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생각한 것은 머리를 부딪혔을까 였는데,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격통이 찾아왔다. 나는 숨을 토하는 소리를 냈다.

역시 우회전을 하며 진입하려던 차는 횡단보도 앞에서 비상등을 켜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본인들 눈 앞에서 사람이 엄청나게 화려하게 넘어졌는데 나와보지도 않는건, 뭐 내가 보험사기라도 칠까봐 그런걸까? 일어날 수 없었던 나는 기어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기어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어서 숨을 내쉬며 기었다.

눈을 뒷통수로 떨어지는게 느껴지고. 나는 건넛편까지 기어와 기는 것도 하지 못해 누웠다. 차들이 지나갔지만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도 일으켜주지도 않았다.

회사까지 1.5킬로미터.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고 무릎에서 나던 피가 흘러내려 발목근처에 고이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대충 피를 닦아내고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았다. 일어날 수 있을까. 걸을 수 있을까. 두 개가 해결되기 전에는 어떤 판단도 할 수 없었다. 눈이 덮여오는게 따스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짐승이 끌려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주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정확히는 무릎 근처가 엄청나게 부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왼쪽 무릎이 원래 좋지 않다. 20대때 멍청하게 운동하다 생긴 부상이다. 조졌네 조졌어. 큰일났네 큰일났어.

나는 엉망인 꼴로 발을 질질 끌며 회사로 걸어갔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아무도 내 옆에는 없었다. 고작 회사까지 걸어가는 것 뿐인데. 뭐가 이렇게 힘든지.

25년 2월의 글이다.


길지도 않은 도쿄 여행이었는데. 그 후로 몹시 앓았다. 돌아오는 날은 아침비행기라 낮에 집에 도착해 짐을 정리하고 그날의 러닝을 할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그날 밤부터 아프기 시작하더니 꼬박 일주일을 앓았다. 독감도 아니라는데 몇 년에 한 번 정도 있을까 싶게 앓았다. 여행까지 가서 러닝이나 하고 그러니까 아픈게 아니냐고 누가 그랬다만. 생일을 지나고 동짓날을 그대로 침상에서 맞았다. 여독이란 실존한다. 아무리 괜찮다고 생각해도 쉬어야 한다.

이번 생일과 동짓날은 - 내 생일은 대체로 동짓날과 붙어있다.- 한국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안 좋은 일이 있을거라는 예감이 있었기 때문에 미신을 믿는 우리의 선조들이 대체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걸로 그걸 대신하려고 했지만 아시아나의 마일리지 비행기표를 적절한 때에 잡지 못해서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예상했던대로 생일날 저녁에는 더더욱 열이 올라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할 때 안 좋은 소식을 들었다. 언젠가는 내 귀 까지 들려올 얘기였는데 왜 하필 내 생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생일이 아니었다면 그걸 피하기라도 할 수 있었다는 건가 싶어서 스스로를 비웃었다. 열이 올라서 제대로 생각 할 수가 없어서 알려온 소식에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동짓날에는 거의 굶다시피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면 결국 큰일이 나겠지 싶어서 냄비에 아무거나 넣고 아무거나 끓여서는 반쯤 흘리며 먹었다. 따스한 뭔가가 뱃속에 들어가니 그제서야 살 것 같아서 그대로 다시 침대에 누워서는 대낮부터 잠이 들었다. 잠결에 새가 홰를 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아파트에는 비둘기들이 제법 살고 있어서 가끔 침실 옆 창가에 비둘기들이 쉴 때가 있다. 하지만 한 겨울인데 새가 있을리가 없다. 나는 잠이 들면서 생각했다. 이 겨울에 아파트의 비둘기들은 어디서 겨울을 나는 걸까.

잠에서 깨어나니 이미 해는 지고. 베개 머리맡은 내가 자는 동안 흘린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땀을 왜 이렇게 많이 흘렸지 하고 얼굴을 만져보니 얼굴 또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잠이 든 동안 계속해서 울었던 것 같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모두 다 둘둘 말아서 빨래를 했다. 광화문의 시위가 끝났고. 남태령에 모여있는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를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차를 끓여 마시며 유튜브 라이브를 켰다. 그리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고도 며칠을 더 아팠다. 나는 항상 그렇다 모두에게 모든게 다 끝나고도 며칠을 더 아파한다.

이 24년 12월의 도쿄여행기의 마지막 부분을 쓰면서 들은 것은 윤마치의 <새벽에게>이다.
이 노래의 앨범 커버에는 멋있는 부엉이가 그려져 있다. 나에겐 이 그림이 내가 받지 못한 올해의 내 생일 선물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도쿄현대미술관>

몇 번이나 말했지만 시나가와에선 도쿄 어디든 1시간이지만 도쿄 현대미술관은 멀다. 길고 긴 리노베이션이 끝났는지도 감이 안 잡혔기 때문에 전혀 갈 생각이 없었는데, 전날 순전히 변덕으로 탄 전철 안에 광고판이 있는 것을 보고 간만이니 가보기로 했다. (여행 전에 세운 사전 계획 메모에는 여행 다음날 부터 미술관이 재개장 하는 것으로 체크는 해두었다.)

다른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대충 해두었으니. 전시에 대해서만 쓰고 싶다. 현대미술관의 애뉴얼 전시인 행복의 섬은 퀄리티가 정말 별로였다. 애초에 여기에 기대를 두고 왔다면 화가 나서 티켓을 잘근잘근 씹어먹었을지도 모른다. 컬렉션 전이자 여성 미술가에 대한 헌정전인 Seven beauties in the Bamboo forest 쪽이 질과 양, 양 쪽에서 훨씬 충실하고 보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행복의 섬 쪽이다.

전시의 시작을 보여준 시미즈 유키의 작품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니 이번 도쿄 여행 중에 봤었던 어떤 작품보다도 아름다웠다. 슬라이드로 촬영한 사진들과 서사, 그리고 음성을 결합하고. 영상을 넣은 시미즈 유키의 작품은 한 1980년 쯤이라고 하면 전통적인 예술의 하나로 인정받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2020년이고 오히려 중국을 침략했던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흔적들이라는 강렬한 주제로 만든 그의 작품은 그냥 미적으로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 이것이 현대미술이다. 하고 너무 흡족해서 작품마다 사진을 파바밧 찍고 대체로 영상 작품을 잘 보지 않는 나도 한참이나 작품을 봤을 정도이다.

재료의 질감과 표현에 집중해서 아예 미술관에서 프레스코를 그리고 있었던 카와타 사토시의 작품이나, 다른 어떤 것보다 깨끗한 물체임에도 불구하고 방치되어 있다는 이유로 오염된 취급을 받는 “생수병”의 위치에 대해서 천착한 우스이 류헤이의 작품은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현대미술이란 그냥 요즘 만들어진 작품이란 뜻이니까 하고 나름의 인정과 만족을 건방지게 중얼거리면서 지나쳤다.

하지만 마지막 순서이자 위치 상 클라이막스인 쇼지 아사미의 회화는 정말 내가 싫어하는 요소를 꾹꾹 눌러 만든 것 같은 작품이었다. 투명한 아크릴판을 지지체로 해서 그린 그 유화는 모든 작가의 소개에서 공통적으로 신체와 신화적 이미지를 결합한 작품이라고 소개하는데
구상으로서 뛰어난지도 의문이고…본인의 우울과 죽음에 대한 강박을 반복적으로 드러내는 것 외에 작품으로서 의의가 있기는 한가. 도대체 이 작품이 애뉴얼전의 클라이막스 위치에 있는가 하고 아주 심술궂은 생각을 하면서 작품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천장에 묘한 그림자를 보았다. 어떤 설명도 없고 맥락도 없이 미술관의 높은 천장 위에 얼룩처럼 검은 새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냥 전시회 장을 지나쳐 나가려다가 혹시 내가 놓친게 있나 하고 다시 돌아가 그림 하나를 다시 살펴보려다가 발견한 것이다. 우연하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러기엔 너무 명확하게 새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주변을 돌아보니 전시회장 구석의 벤치 위에 쌍안경이 있었다. 쌍안경 위에는 너무나 일본인스럽게 사용한 뒤 다시 자리에 올려놔주세요 라고 메모가 붙어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쌍안경으로 새의 그림자를 보았다.

국립신미술관에 잠시 들렀단 얘기를 어딘가에 썼던가. 그 곳의 아라카와 내쉬 전을 보다가 잠시 샛길을 돌아가니 햇볕이 비추는 곳에 빈백이 여러개가 놓여있었고 사람들이 앉거나 자거나 하면서 쉬고 있었다. 10분만 딱 앉아있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나도 빈백에 앉았다가 아이코 사악한 일본인들의 술수구나. 한 20분을 잠들어 있었는데 살풋 깨어나니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이 언제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내 오른 쪽 옆자리를 손으로 만지며 누군가를 찾았다.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쌍안경을 내려놓고 나는 전시를 떠났다.


<국립과학박물관 (우에노)>

우에노 공원에는 도대체 박물관과 미술관이 몇 개나 있는걸까? 일단 우에노 공원에는 가장 넓은 면적을 우에노 동물원이 차지하고 있고. 도쿄국립박물관이 있다. 전의 여행기에서 쓴 호류지 보물관을 포함해 6개 동과 넓은 정원이 있는 넓은 국립 박물관이다. 그리고 도쿄도 미술관과 모네 전을 했었던 국립서양미술관이 있다. 도쿄문화회관에서도 전시를 하던가? 그건 모르겠다. 우에노모리 미술관 같은 곳도 있지 않았던가 싶은데. 정말 많기도 하다. 그리고 우에노공원에는 내가 한 번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국립과학박물관이 있다.

모네전을 보려고 우에노역으로 왔더니 보기도 좋게 개찰구에 기세도 좋게 국립과학박물관에서 <새>특별전을 한다는 것이 아닌가. 보기도 좋게 노란색 배경에 각종 새들로 가득한 (뒤에 알았지만 전부 전시품이었다. 박제였던 것이다) 사진이 있고 일생동안 볼 분량의 새를 볼 수 있는?! 특별전 이라고 써있었다. 정말이다. 기세가 너무 좋아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날의 3시간 이상을 계획에도 없는 국립과학박물관에서 쓰게 되는데 결말만 먼저 말씀드리자면 어마어마하게 충실한 쓸데없는 시간이었다. 일단 특별전의 이야기는 둘째치고 국립과학박물관 자체가 온갖 과학에 관련된 교육으로 가득차 있는 곳이라서 같은 속에 속한 나비들의 표본들을 있는만큼 전부 벽면에 전시해둔다거나. 같은 종 쥐들의 색에 따른 차이를 비교해두고. 해양표유류들의 뼈들을 천장 가득하게 전시해두고 (대왕오징어의 표본까지 뒀더라고…) 우리가 상상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현생 포유류들의 박제들을 전부 거대한 한 전시실에 모아두고 사람들을 쳐다보는 구도로 진열해두었다. 분명 모형이겠지만 공룡 뼈까지 박진감있게 전시해둬서 나는 지치고 힘들고 지겹고 근데 안 볼 수는 없어서 거의 울먹이며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전시실을 돌았다. 동물의 숲에서 나오는 박물관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던 컨셉인건지 알 수 있게 된 기회였다…결국 나중에는 일본의 잠수함 모형 앞에서 아 이제 됐어 과학 기술 따위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아 하고 심술이 날 정도로 너덜너덜하게 지쳤지만 말이다.

지금도 글을 쓰며 - 내가 찍은 - 해양 공룡류들을 박진감 넘치게 천장에 매달아 둔 사진을 보고 있는데. 이 곳이 일관되게 가지고 있는 메세지는 인간 존재의 하찮음과 자연의 거대함인 것 같다. 추가한다면 그 거대한 자연에 과학의 힘으로 비벼보아요 예헷!! 이 정도랄까. 내가 어릴 때 이 곳에 왔다면 너무 좋은 나머지 기절도 하고 네네 꼭 과학자가 될게요 하고 피의 맹세도 했을 것 같은데. 다행히 중년의 나이에 이 곳에 왔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너무나도 충실하고 쓸데 없는 시간이었다. 상설전만 보는 것만으로도 8시간 정도는 여기서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뼛속까지 이과라서 천체물리학이나 원자력이라도 연구하는 사람이랑 왔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틀 정도는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입술이 파랗게 될 때 까지 밥도 안 먹고 하나하나 구경했겠지.

특별전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새”가 주제였다. 특별전이 하고있는 전시관의 지하로 내려가면서 평일이라 사람이 많진 않을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특이한 주제야 그렇게 내용이 많진 않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엔 넓고 넓은 특별 전시관에 전시물이 가득 차있고…무엇보다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일본에 이렇게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단 말인가. 걷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다들 진지한 얼굴로 새의 박제 같은 것을 쳐다보면서 메모도 하고 사진도 찍고 있었다. 그 전시에 아무 생각 없이 껄렁껄렁한 마음가짐으로 온 것은 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여러분은 모든 종류의 새의 형태가 균형있게 구성되어 있으며 중심축을 기준으로 흔들리지 않게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하지만 깃털은 비대칭이어야 양력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날 수 있는 새들은 비대칭의 깃털을, 날지 못하는 새들은 대칭의 깃털을 갖고 있습니다. 새라고 한다면 날 수 있는 것이 전제처럼 여겨지지만 대멸종의 시기에 살아남은 수각류의 일부인 새들은, 크지 않다는 특징 덕분에 살아남은 공룡의 일부로 여겨집니다.

예를 들어서 새의 중요한 특징이 이빨이 대부분의 종에서 퇴화되고 부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부리가 이빨보다 훨씬 변형이 쉽게 적은 에너지로 생성 될 수 있으며 심지어 같은 종 안에서도 여러가지 모양으로 분화될 수 있어서 적응에 유리한 특성으로 여겨집니다. 먹이를 거의 가리지 않는 것도 새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흔히 비어있다고 알려져있는 새의 뼈 안도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일 뿐 정교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새가 어느 순간 비행을 하기 시작한 것은 적응의 결과와 같은 것이고 실제로는 작아지고 빨라지는 과정에서 생긴 특성일 것이라 말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런 비행의 결과로 인해서 새들은 먹이 다툼에서 유리해졌고 높은 대사율과 높은 산소이용률을 유지하게 되었는데. 보통 같은 크기의 동물의 비슷한 수명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새들은 포유류보다 훨씬 높은 수명을 가지는 경우가 많게 되었습니다.

나는 대체로 아무거나 다 알고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나도 이런 새에 대한 매니악한 정보를 단시간내에 마구 익히니까 조금 멍해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매 종류가 수리류 보다 앵무새류에 유전적으로 가까운 친척이라는 정보라든가 특정한 종류의 참새 종류는 일부일처제지만 실제로 유전자를 확인해보면 자식이 부부사이의 낳은 자식일 경우는 40%가 되지 않는다는 정보 같은거 말이다.

그런 유익한지 안 유익한지 헷깔리는 정보 사이에, 전시측에서는 페라고르니스(존재가 확인된 새 중에서 가장 큰 새로, 추정된 최대 길이가 7미터 정도 된다. 그냥 진짜 공룡만하다.)의 재현 박제를 천장에 매달아 놓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어두었다. 나도 너무 유쾌해서 부리 사이에 뾰족뾰족한 것이 달려있는 모습을 확대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굳이 저건 치조골이 없기 때문에 이빨이 아니라 그냥 이빨처럼 보이는 부리라고 설명을 해두었다. 과학자놈들은 철저하군 감사합니다.

전시의 대부분은 새들의 박제였다. 우리가 상상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새들의 박제가 있고. 대체로 새들의 박제들은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고 무심하게 우리는 볼 수 없는 과거를, 혹은 누군가의 앞에 있는 내세를 바라본다.

나는 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새들은 대체로 너무 뜨겁고 작으며 부서질 것 처럼 약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작은 아파트였던 내 어릴 적 집에 거대한 새장을 만들어 거기서 앵무새를 포함한 새들을 길렀다. 내 방 바로 창 앞에 있었던 그 커다란 새장 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이면 새들이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문조와 카나리아, 왕관앵무.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수많은 새들. 나는 높이가 2미터, 바닥 면적이 3제곱미터는 넘지 않았을 그 작고 커다란 새장에서 살고 있는 새들에게 어떠한 애착도 느끼지 못했다. 새는 아버지에게 속한 것이었고 아버지는 때로는 폭력적이고 때로는 슬프기 짝이 없는 새들의 사회를 지켜보는 왕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정말로 새를 사랑했는지 아니 아버지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지 여러번 의심하곤 했다.

나는 그래서 새에 대해서 상당히 자세히 알고 있다. 그들이 겁을 내고 도망치고. 화를 내고. 슬퍼하고. 애도하는 모습을 내 방 창가에서 보았다. 내가 새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표정이 없어 보이는 그들의 얼굴과는 다르게 그 작은 몸 속에 우리가 영혼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 한 명 분의 영혼이 새 한 마리에게도 똑같이 들어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당신은 새들을 제대로 쳐다볼 수 있을까? 새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전시의 중간. 나는 한 앵무새의 박제를 보았다. 먼지처럼 푸석해져가고 있던 어떤 커다란 앵무새. 나는 어째서인지 그 앵무새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회색의 깃털 안에 검은 유리로 대신한 그 눈에 내가 어떻게 비추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앵무새가 나를 여기로 불렀다는 비상식적인 생각을 하였다.

나는 네가 기다리는 그 사람이 아냐. 그렇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부른거겠지. 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대리인으로서 그 앵무새의 박제 앞에 서는 것이 나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앵무새는 나를 쳐다보았다. 내 냄새를 맡고 내 눈을 쳐다보고 내 슬픔을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리고는 곧 모든 앵무새들이 그런 것처럼 그 앵무새의 박제는 나에게서 흥미를 잃고는 고개를 돌리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 사람이 아니라서 그러니? 나는 묻고 싶었지만 애초에 박제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는 무언가의 흔적일 뿐이다. 나는 시간을 더 들여 더 많은 새들의 박제를 살펴보고 곧 다른 곳으로 떠났다.

공룡의 뼈들을 모아둔 전시관은 말도 안되게 멋이 있었다.


이걸로 나의 24년 도쿄 여행기는 끝이다.

오늘 아침 체중을 재보니 더 줄어서 앞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하얗고 지친 얼굴을 한 남자가 보였다. 바싹이라고 할 정도로 빠르게 말라가고 있는데 내가 나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실제로 어디로 가든, 어디에 있든 그건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다만 나는 세상의 작은 곳에서 다른 작은 곳으로 가는 것이 필요했다. 당신을 잃어버리는 여행이 되었어야 할 이 여행은 내가 나라는 것을 확인하게 했을 뿐이다.

나는 아직도 음악을 좋아하며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의미도 없이 세 권씩 들고 여행을 가는 사람이며 카페 테이블에 앉으면 공룡과 로봇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계란 후라이는 써니사이드 업. 오믈렛은 플레인이 좋다. 여행을 가면 신발에 구멍이 날 때 까지 걸어다니는 사람이다. 이번에도 신발 하나를 버렸다.

좀 달라지기로 한 것도 있다. 바지가 좀 비싸더라도 마음에 드는 바지면 꼭 사기로 마음 먹었고 러닝을 할 때는 자신의 체력을 과신하지 않기로 했다. 짐에 티셔츠를 적당히 싸기로 했고 기내 사이즈 캐리어만 고집하지 않기로도 했다. 가끔 그냥 이유 없이 여행 중에 낮잠을 자기로 했다.

그리고 새들과 화해했다. 아직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나는 이제 새를 싫어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부디 새들도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새들은 나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뒤로 잠이 들기 전에 새 소리가 들리길 기다릴 때가 있다.

세어보니 나는 이번 여행에서 세 군데의 성지를 들렀다. 마사카도의 묘, 죠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도쿄 카테드랄이다. 탄게 겐조의 건축 미학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갔을 뿐인 도쿄 카테드랄이었는데. 대성당의 뒷자리에 앉자 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나의 기도는 그러했다. 제가 당신 앞에 서게 될 때 조차 거짓과 불의로 서지 않게 해주소서. 나는 내가 무엇을 비는지 제대로 모르면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유일한 친구인 당신은 내가 정말로 무엇을 위해 그런 기도를 했는지 말해 줄 수 있지 않을까?


24년 12월 28일의 글이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것에는 우리 인간의 마음이 깃들지만. 때때로 장소야 말로 사람의 마음이 깃들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번 이야기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쓸까 싶어서 고민하다가 nujabes <Modal soul>을 올렸다. 시부야에 가보니 누자베스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았다. 타워 레코드의 한 켠에는 그의 LP가 가득 쌓여있었고 어떤 가게에서는 앨범 이미지를 프린팅한 티셔츠를 팔고 있었다. 무슨 시부야 전통 민요 같은게 된건가 하고 빈정거리기는 했다만. 이해해주기 바란다 내 20대의 가장 소중한 순간 중 일부에 그가 있었다. 아마 그가 평생 그리울 것이다.

Gregorio Allegri가 작곡한 Miserere, Mei Deus를 듣는 것도 어울릴 것 같다. 시편 51편을 주제로 만들어진 성가이다.

<타니구치 요시오>
우연히도 내가 일본에 체류하는 도중 건축가 타니구치 요시오씨가 사거하셨다. 그의 아버지인 타니구치 요시로씨도 유명한 건축가로 다름 아닌 제국극장의 로비와 객석을 아름답게(그리고 불편하게) 설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또한 우연히 동선이 겹쳐서 이번 체류 기간 동안에 방문하였다. 황궁런에 대해서 썼을 때 저 건물은 누구의 설계일까 하고 궁금해져서 가봤다는게 바로 이 제국 극장이다.)

타니구치 요시오씨 본인은 캐릭터성을 두드러지지 않으나(말이 별로 많지 않다는 뜻이다), 뉴욕근대미술관 신관의 설계를 중정을 포함해 뛰어난 퀄리티로 해낸 것에 대해 유명세를 얻었고. 세련된 모더니즘 건축을 기반으로 한 미술관 설계는 정평이 나있다. 내가 그에 대해서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도쿄국박의 호류지보물관이었는데 얕은 물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작은 다리를 건너야 갈 수 있는 이 별관은 입문 조차도 정면이 아닌 옆으로 돌아가야 하는 특이한 구조이다. 또한 외곽을 둘러 싸고 있는 원형기둥들은 밖에서 보물관 안을 바라보는 것과 보물관 안에서 밖으로 바라보는 것 양 쪽에 기묘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과장을 좀 섞어서 말하자면 자연에 존재하지 않을 관념상의 직선과 투명을 통해 이루어지는 물아일체의 장소라고 설명해도 좋을 것이다. 하여튼 나는 보물관을 보는 바로 그 순간 마음에 들었다.

풍부한 조광을 바탕으로 한 자연스러운 직선을 추구하는 점에서 묘하게 마음에 든다 싶었더니 교토국박의 남문과 헤이세이 신관도 그의 설계였다. 그는 탄게 겐조 건축 사무소에 한 때 적을 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행기랑은 관련이 없다만, 왠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써두고 싶었다.



맛있는걸 먹지 않으면 여행은 단조로워진다. 뭘 먹어야지 어떻게 먹어야지 하고 고민하는게 여행의 절반 쯤은 될텐데 요즘 부쩍 식욕이 없는 나는 뭘 먹을 생각을 하지 않다 보니 여행의 컨텐츠가 몹시 단조로워졌다. 내가 여행을 가기 전에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던게 미스터 도넛의 도넛과 낫토를 넣은 흰죽이었는데. 흰 죽이야 그냥 호텔 조식 부페로 먹으면 되는거고 미스터 도넛은 지나가면서도 몇 번 씩 봤지만 귀찮아서 먹지 않았다. 지금 또 하나가 생각났다 맛 없는 나폴리탄을 먹어야지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내가 여행 중에 굳이 쓸데없이 찾아가봤던 건축물에 대해서 몇 개 적어두려고 한다. 건축물을 찾아가본다는 건, 애초에 별로 좋은 여행 컨텐츠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애초에 전문가도 아니고 유명한 미술품이나 공공기관이 아닌 한 자기 맘대로 들어가 볼 수 도 없는데. 멀리서 찾아가봤더니 외관 사진을 몇 장 찍고 끝낸다? 맙소사 정말 가성비가 안 좋은 여행 컨텐츠 같다. 공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겉에서 사진이나 좀 찍는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닐텐데 말이다.

<죠죠지>
죠죠지는, 이름만 들어도 죠죠러의 가슴을 끓게 만드는 이 곳은. 사실 1393년에 창건된 일본 정토종의 총 본산이다. 도쿠가와가의 가문 사찰로도 유명했던 이 절은. 2차 세계대전때 폭격으로 소실된 도쿠가와 가묘를 일부 복원하여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관광객으로서 이 절에 대해서 말할 것은…없다. 단지 도쿄타워의 바로 아래에 있는 절이기 때문에 도쿄타워의 사진을 찍으면 엄청나게 멋있게 나온다. 그 외에 도쿠가와 가 묘로 들어가는 입장료가 500엔인데 개인적으로 에도막부가 너무 좋고 그런게 아니라면 보지 않는 걸 추천한다. 유명 관광지가 아닌 것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도쿄에 살고 있는 친구가 말했다.
애초에 여러분 대부분은 내가 죠죠지에 대해서 썼기 때문에 그런 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화려하고 돈이 많은 이 번화가 한가운데의 절이 쓸쓸한 이유는 어쩌면 절 경내 한 쪽 구석에 마련된 좁은 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길의 한 쪽에는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공양해둔 작은 미륵보살의 석상들이 줄을 이어 놓여있다. 석상들이 진짜 아이들이라도 되는 듯이 그 앞에는 바람개비가. 머리 위에는 털모자가 씌워져 있다.

<주일본 쿠웨이트 대사관>
시간 순서 상으로는 상당히 뒤에 방문한 곳이긴 하지만. 이 곳은 경사도도 높은 히지리자카(고개) 중간에 세워져 있는 이 동네의 명물 쿠웨이트 대사관이다. 설계는 다름아닌 탄게 겐조.
이 건물의 외관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히지리자카를 올라가다 보면 따분해 보이는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있다. 분명 따분해 보이는 직사각형의 건물인데 밑에서 보면 이상하게 건물이 공중에 떠있는 듯 하게 보인다. 어떻게 된거지 하고 헉헉 거리며 고개를 올라 가까이 가보면 베이스먼트와 로비층은 여느 건물과 다르지 않지만 3층 이상의 공간은 중간을 일부러 공백으로 지우듯 계단과 기둥으로만 이어두었으며 이렇게 바깥으로 공개된 땅에는 정원을 만들어두었다. 가장 큰 중앙부의 공백에는 자랑스럽게 쿠웨이트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혹시 구글에 검색을 해보기 바란다. 진짜 이상하다니까.

<국립 요요기 경기장>
이 또한 탄게 겐조의 설계이다. 그래서 제목에도 썼지 않은가 이것은 탄게 겐조를 찾아다니는 모험이라고.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 굴곡진 용마루와 나선형의 지붕에 대해서는 이 경기장에 대해서 묘사하는 모든 사람이 하는 말이지만.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지 하고 찾아보니 1체육관의 경우 높은 장력을 이용해 매달림 지붕 방식을. 2체육관의 경우엔 원추형 천장을 통해 만들어진 절구형 건물이라고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을 위해 만들어진 이후로 현재까지 현역인 이 경기장은 21년에는 국가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데. 하라주쿠를 갈 때 마다 보이는 이 경기장에 굳이 시간까지 들여서 방문한 이유는 역시 안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지만 불행하게도 이 때는 무슨 종합 격투기의 챔피언 전이 하는 중이라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여하튼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장엄한 이 경기장의 모습은. 국가 대항전이야 말로 현재의 종교의식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찾아갔을 때는 각 격투가들의 팬들이 밖에서 오오 우오 하는 함성을 지르고 있어서 그 쪽에 신경을 쓰지 않고 구경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경기장 꼭대기부터 사면으로 내려가는 천장 곳곳에 새들이 앉아있는게 인상적이었다. 마침 석양이 질 때라서 날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너희들이 패배자들의 간을 쪼아먹는거겠지 하고 마음 속으로 말을 걸어보니 엄청나게 멋진 모습으로 편대를 지어 경기장을 한 바퀴 돌고 그랬다. 그래 믿고 있었다구.

<도쿄현대미술관>
내가 마지막으로 갔을 때는 꽤 오래 전이라서 리뉴얼 작업이 완료되기 전이었는데. 리뉴얼 작업을 도대체 누가 한거지 하고 찾아보니 조 나가사카였다. (원래 건물의 설계는 야나기사와 다카히코)
아니 조 나카사카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나름의 거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검색해봤는데 건축은 뺄셈이다 어쩌고 말을 한걸 보니 새삼스레 타니구치 요시오가 뉴욕근대미술관 신관을 설계 할 때 돈만 많이 주시면 건물을 아예 없애드릴 수도 있습니다. 라고 말한게 떠올라서 그가 그리워진다.

도쿄현대미술관, 도쿄신미술관, 교토국박 등 최근의 일본 미술관은 어떠한 트렌드를 확실히 보여주는데 밝고 확장되어 있는 로비 공간. 빛을 충분히 받아들여 관람객들에게 휴식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하는 통로를 구성하고. 건물의 반 정도를 써서 전시실을 구성한다. 전시실이 너무 좁아지지 않을까? 상설전시보다는 특별전을 위주로 구성하는 일본의 최근 미술관들에게는 커다란 부담은 되지 않는다. 미술관은 길쭉해지거나 네모나지기보다는 가로로 긴 형상이 되는데 사람들은 공간에 대한 만족감 때문에 전시가 아무리 별로였어도 좋은 체험이었어 하고 만족하게 된다. 너무 비열하게 공격했나.

내가 위에 설명한 모든 것을 갖춘 바로 그곳 도쿄현대미술관은 공원의 한 쪽 끝에 위치해있다는 것 까지 해서 완벽한 가족들의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다. 지하에 아트 식기를 갖춘 패밀리 레스토랑을 갖춘 것까지 완벽해서 불만의 여지가 없다.

지하로 이어지는 길에는 물과 돌의 산책로라고 하여서 그야말로 징검다리 비슷한 것으로 산책로를 만들어놓았는데 바깥에서는 볼 수 없는 숨겨진 장소같은 곳이라서 직접 가지 않고는 그 전모를 알 수 없게 해두었다. 풀이 없는 정원이구나 하는 느낌이라서 제법인데 조 나가사카! 같은 감상을 갖고 찾아보니 거긴 야나가사와 시절부터 있었던 장소라고 한다. 음 그렇구나.

참고로 2층의 카페는 영 별로였다. 점원이 엄청 많았는데 도대체 왜? 도대체 왜? 이런 생각만 든다.

<도쿄 주교좌 세키구치 대성당>
1899년 처음으로 지어졌던 도쿄 주교좌인 이곳은. 도쿄 대공습때 소실 1963년도 독일의 쾰른 교구의 지원으로 지금의 건물로 다시 지어지게 되었는데. 도쿄 대학 음향기사와 구조기사의 지원이 있었으며 설계자는 단게 겐조이다.
이곳이 내 여행의 목적 중 하나였던 이 곳은 성마리아 대성당이라고도 불리운다.

어느 곳을 가든지 전철이 쉽게 이어지는 도쿄 내에서 굳이 버스를 타지 않으면 갈 수가 없는 곳에 위치한 이 성당은, 현재 도쿄의 한인 성당 역할 또한 하고 있다. 성당을 찾아가려고 했던 날이 한국에서 탄핵 표결일인 12월 14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꽤 초조한 상태였는데. 도대체 이 딴 경기장이나 절을 찾아가보는게 무슨 의미인가 술이라도 사서 호텔방에 기어들어가서 유튜브나 보는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다. 그래 도쿄 카테드랄은 성당이잖아 기도라도 하자 - 라는 내 나름의 유머감각으로 하라주쿠에서 전차를 탔다. 플랫폼에 서서 유튜브의 실시간 뉴스 생방을 들었다. 어째서인지 내가 선택한 eSIM는 어째서 지하철에서 인터넷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전철에서 내리니 저 멀리 다리 너머 석양이 아름답게 지고 있었다. 토요일의 저녁이다. 사람들은 바쁘게 어디론가 떠난다. 대부분 집일 것이고 대부분은 가족들의 곁일 것이다. 집도 가족도 없는 나는 성당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여행을 떠나 오기 전 친한 사람들에게 이번주는 시위 못 나간다 라고 말하고는 꼭 한마디 농담을 덧 붙였다. 나 없는 동안 탄핵 가결 좀 시켜둬라. 누구는 그러마 했고 누구는 너무 어려운 걸 바라는거 아니냐고 했다만. 그게 농담만이 아니라는 건 다 알고 있었다.

버스에 내리니 정류장 앞에는 주교좌에서 만들어둔 걸로 보이는 작은 동방박사와 그보다 더 작은 아기예수, 그리고 마리아의 인형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서 하늘을 보니 나무 끝에 걸린 구름, 겨울의 저녁 하늘이 보였다. 아직도 해는 지지 않았다.

세키구치 대성당은 한국의 대형교회랑은 상대도 안 될 정도로 작은 부지에 있는 성당이다. 도쿄 전체를 총괄하는 곳이 이 정도로 작은 곳이어도 될까, 요요기경기장의 4분의 1이나 될까 하고 전체 부지를 가늠하다가 내가 한국 교회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서 쓴 웃음이 나왔다.

본성당은 멀리서 보기엔 은색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방주처럼 보인다. 배처럼도 보이고 책처럼도 보이는 이 건물이 1963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건물이 얼마나 많은 한국 교회의 원형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독실한 천주교 신도로 알려져 있는 탄게 겐조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이 건물을 설계하였는데. 그의 묘한 유머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 성당 건물에서 그가 정말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바로 전에 본 것이 요요기 경기장이었기 때문에 비교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진짜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국가 규모의 스포츠 대회란 왜곡된 열정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거 설계한 건물 중 가장 유명할지도 모르는 신주쿠의 도청 건물 - 많이 본 건물이기 때문에 이번엔 굳이 가보지 않았으나 - 에서 느껴지는 장엄한 차가움은 그가 국가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어렴풋하게 추측하게 해준다. (1청사의 외양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모티브를 많이 따왔다고 하는데 나는 이것이 그의 비틀린 유머감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성당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봐야 한다. 오후 5시에까지만 일반에 공개되기에 아슬아슬하게 4시가 되기 전에 도착한 나는 고갯길을 거의 뛰어올라 성당에 도착하였는데. 나도 모르게 숨이 차서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 성당의 문을 열었다.

성당의 안은 어둡다.
사무실에서는 몇명의 수녀와 봉사자들이 일하고 있지만 성당에 들어오는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다. 그곳은 넓지도 좁지도 않으며 의자들로 가득차있다. 경내는 어둡지만 아주 어둡지는 않다. 눈이 어두운 사람도 충분히 사물을 인식 할 수 있을 정도로는 밝아, 나는 당 내의 가장 뒷자리에 앉는다. 자리에 앉아서야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이 곳은 석굴이다. 그렇기 때문에 좁고 어둡고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다. 제단은 저 앞에. 희미한 조명은 제단 위의 십자가를 비추고 있고. 십자가 위로 각이 진, 자연에서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직선. 그 회색의 벽이 석굴의 모습이 되어 그 위에 놓여있다.

Averte faciem tuam a peccatis meis et omnes iniquitates meas dele.
저의 허물에서 당신 얼굴을 돌리시고 저의 모든 죄를 없애 주소서.
Cor mundum crea in me, Deus, et spiritum firmum innova in visceribus meis.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Ne proicias me a facie tua et spiritum sanctum tuum ne auferas a me.
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나는 성당에서 1시간 동안 기도를 하는 사람처럼 앉아있다 친구가 보낸 탄핵이 가결되었다는 메세지에 일어나 성당을 나갔다.
5시를 넘기고도 성당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던 나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24년 12월의 글이다.


다음은 내 티스토리에 비공개로 게시되어 있는, 지추 미술관에 관한 글의 일부인 모네의 수련에 대한 글이다. 17년 1월의 글이고 나는 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에 대해서 쓰다 마지막 결론을 내지 못하고 글을 닫았기에 여기에 그 일부를 인용해도 괜찮을 듯 하다.

(2)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작품 수련Warter lilies

바닥이 이상하다. 흰색의 작은 (일반적인 주사위보다 작은) 정사각형으로 바닥을 깔았다. 물 빠짐과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한 것 일까. 습기를 유지하기 위한 것일까. 신발을 벗고 전시 공간에 들어가면 습기가 가득찬 공간에 있다는 착각이 든다. 그렇다 그것은 착각이다. 예술작품에 있어서 습기란 작품을 유지하기 어렵게 하는 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한 공간에 있다는 착각은 작품 앞에 서있는 때 더 강해진다. 모네의 수련. 늪의 표면에서 터져나온 색과 생명.

전시 공간 안에 수련 다섯 점이 전시되어 있다. 사이즈에 따라 배치 한 것인지 뒷면 양쪽에는 100*200의 작품이. 양 옆에는 200*200의 작품이. 그리고 정면에는...200*300의 두 장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걸려있다. 압도적인 이미지. 물기가 하나도 있을리 없는 공간에 느껴지는 습기. 높은 천장으로 소리가 난반사되어 울린다. 들릴리가 없는 물방울 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생각한다. 수련이란 원래 아름다운 작품이 아니었던가. 어쨰서 이렇게 거대하고 무질서하며 깊은 가. 사방을 돌아보아도 늪으로 가득한 이 전시공간에서 수련이라는 아름답고 우아한 이름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보는 것은 혼돈이고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그 혼돈에서 터져나온 생명이다.

사실 나에게 이 작품은 개인적인 의미가 있다. 지추 미술관을 방문한 것은 이 수련을 보기 위해서 였다. 같은 여행에서 오하라 미술관의 수련을 보았지만 전혀 다른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동양화를 전공하였는데 몇 안되는 서양화 그림도 가지고 있다. 그 중 가장 같은 그림이 식탁의 내 자리에서 보이는 곳에 걸려 있었는데 검은 밤과 숲을 그려넣은듯한 그림으로 항상 아무도 이 그림의 윗쪽과 아랫쪽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농담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그림은 수련을 몹시 닮았다.


모네의 그림을 그리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때때로 그리워 질 때가 있다. 그것은 모네에게 느끼는 그리움이라기 보다는 내가 어릴 때 부터 가장 많이 봤던 최초의 회화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이번 도쿄여행의 계기는 우에노의 서양미술관에서 하는 모네전에 수련 중 몇 점이 온다는 기사를 본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 말을 꺼내보았지만 그 때 이미 나에게서 마음이 떠나있었던 여자친구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간다고 하면 겨울 쯤이 되려나 하고 생각했는데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어떤 변덕으로 나는 도쿄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혼자였다.

6일짜리 여행이었지만 실제로 여행이 가능한 일정은 4일 뿐이었고. 미술관의 휴일을 생각하면 그래도 인파를 피해서 관람을 할 수 있는 날은 금요일의 낮시간 잠시 뿐이었기 때문에 모든 일정은 수련을 보기 위한 일정을 먼저 정한 후에 하나씩 정했다. 아메카지를 하려고요. 러닝을 하려고요. 라고 말했지만 그건 모두 거짓말이었다. 나는 단지 한 점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 여행을 왔다. 그 그림을 볼 수 만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요즘 그릇이 깨져버린 사람처럼 자주 슬퍼하고 쉽게 화를 낸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질 때 마다 밖에 나가 차가운 공기를 맞으면서 러닝을 하고 긴 문장을 읽지 못하게 되어 불을 끈 채로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때때로 기도를 한다. 무엇을 위한 기도인지는 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소원을 빌지 않기 위해서 너무 슬퍼지지 않기 위해서 하는 기도이다. 사람들은 세상 어디엔가 기도를 들어줄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며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말들을 한다. 자신의 말을 들어줄 무언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영혼에 구원이 된다. 기도를 하는 행위 자체가 그 영혼을 위로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변덕스럽게 기도를 할 때 마저 거짓말을 한다. 그저 평화를 바란다고.

그렇게 거짓말쟁이가 되고 있기 때문에 바싹마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엔 식욕이 별로 없어요 라고 웃으면서 말을 하지만, 며칠 예전처럼 먹어보았는데도 살은 찌지 않고 그대로 세상 어딘가의 구멍에 떨어진 것처럼 체중이 다시 줄어들었다. 예전처럼 먹는 것은 너무나 많은 노력이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그냥 눈 앞에 있는 것을 먹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여행에 와서도 무언가를 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아무 것이나 먹었고. 야채가 부족한데 싶어서 호텔 조식을 두 번 먹은 것 외엔 정말 되는대로 먹었다. 커피? 향이든 뭐든 상관없이 커피면 그냥 아무 거나 먹었다. 제대로 된 커피는 단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여행 사실 상의 첫날 금요일. 황궁런을 뛰고 애플워치까지 사고 나니 배가 고플 만 했는데.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서 우에노로 향했다. 아침에 호텔 조식을 성의있게 먹었기 때문이다. 흰 쌀죽에 명란젓과 낫토를 듬뿍 넣고 슬슬 비벼서 먹는 것이 내가 일본 호텔에서 제일 좋아하는 조식이다. 계란 후라이(써니사이드 업이어야 한다)라도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우에노의 서양미술관은 내가 언제나 좋아하는 곳이다. 미술관의 카페 겸 레스토랑 스이렌(그렇다, 그곳의 이름 또한 수련이다.)은 풍광이 좋아서 한가할 때 가면 기분 좋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전시를 보고 그곳에서 밥을 먹어야지 하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가을. 12월이 되었는데도 도쿄는 가을 같았다. 도쿄 사람들 나름의 고충이 있었겠지만 나는 바람이 쎄지도 춥지도 않은 12월의 도쿄가 마음에 들었다. 황궁런을 이미 한 번 해봤기에 방한 도구를 꽁꽁 싸매지 않아도 러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이 정도 날씨라면 매년 12월에는 도쿄에 와서 달리기를 해도 되겠어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

우에노 공원은 언제나처럼 사람이 많았고 사람보다 많은 나무들이 있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은행잎들과 융단처럼 깔린 은행잎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떼를 지어 개찰구에서 쏟아져나왔다. 저 때는 뭘 해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즐거울 시기이다. 나는 좀 외따로 떨어져 가방에 넣어둔 책을 읽을 생각이나 하던 아이였지만 그래도 친구들이랑 있는게 싫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우르르 어딘가로 향한다 서양미술관의 모네전 보다는 국립과학박물관에서 하고 있는 조류에 관한 특별전이 목표인가보다. 나도 저 전시는 꼭 보고 싶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티켓을 미리 사뒀기 때문에 줄을 서지 않고 수월하게 입장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네 전이 도쿄에서 개최 후 내년부터는 교토에서 또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아버려서(편의점의 예약 티케팅 예약 리스트에 떠있었다.) 내가 왜 기를 쓰고 여길 이 시기에 왔는가에 대해서 회의가 잠시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괜찮겠지. 미술관 앞에 웨이팅을 위한 배리어를 설치해둔게 말도 안되게 긴걸 보고 내가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시기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좁지도 않은 서양미술관의 앞마당에 구불구불하게 줄을 설 수 있는 곳을 만들어두었다.

* 혹시 모르니 써둔다. 도쿄의 서양미술관에서의 전시는 25년 2월 11일 까지이고, 교토의 교세라미술관(아이구)에서 25년 3월 7일부터 6월 8일까지. 그리고 도요타시미술관에서 6월 21일부터 9월 15일까지 전시가 이어진다.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모네 전 관람은 1시간을 조금 넘겨서 다 볼 수 있었다. 모네 전에 대해서 뭔가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딱히 할 말이 없다. 우리가 아는 모네이고. 당신도 모네에 대해서는 잘 알 고 있을 것이다. 전시에 대해서 코멘트 하자면 전시품은 충실했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작품들로 잘 구성되어 있었다.

5개인가로 나눠져있는 전시 중에 해외에서 가져온 작품들을 모아둔 3전시의 작품들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두었다.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보존의 목적이 아닌 이상 작품의 사진 정도는 마음 껏 찍게 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3전시실에 이르자 사람들이 모두 작품을 보지 않고 온 힘을 다해서 사진만 찍고 있는 것을 보자 생각을 바꾸었다. 나도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하지만 위대한 회화를 볼 때 마음 속에 남는 그 충격과 감상이야 말로 회화를 보는 진정한 보상일텐데 사진을 찍어서 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으면 그 회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우리가 진정으로 가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여간. 아무렴.

전시를 다 보고서는 서양미술관의 상설전을 보았다. 훌륭한 작품이 꽤 많다. 교과서에나 있는 그런 작품들도 있어서 나는 꼭 상설전을 챙겨본다. 다 보고 나니 힘이 쭉 빠져서 미술관 굿즈를 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모네 특별전 굿즈들은 모두가 사고 싶어했는지 굿즈를 사러 입장하는 줄이 미술관의 중정부터 이어져있길래 포기하고 상설전의 굿즈를 조금 샀다. 엽서와 마그네틱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는 기대하던 카페 스이렌으로 가서 파스타와 커피를 시켜서 먹었다. 모네 특별전을 기념해서 뭔가 웃기는 특별 메뉴라도 있을줄 알았는데 만날 나오는 그 뭐냐 파스타+디저트+커피의 세트가 전부였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리 싸지도 않는 세트인데 좀 웃기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문득 교토국박에서 마신 블렌드 커피 류노스케가 생각났다.
자리는 어디에 앉아도 미술관의 중정이 잘 보인다. 공항에서 사온 메모장에 러닝을 할 때 봤었던 큰부리 까마귀의 그림을 그렸다. 까마귀들은 지성을 가지고 사람을 쳐다보는 것이 제법 무섭다. 하지만 그 까마귀는 내가 뭔가 불쌍하게 생각되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금세 흥미를 잃고 날아가버렸다. 왜?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하면 눈이라도 쫄 생각이었던거야?


모네의 전시를 보던 중, 어떤 그림 앞에서 나는 울었다. 나라는 그릇이 깨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쉽게 우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울었다는 말에 몹시 놀라는 지인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흐느꼈다기 보다는 눈물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어서 계속 눈물이 흐르게 내버려두었다. 어떤 그림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꽃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 색과 형태의 흐트러짐이. 너무나 영원같고 덧없어서 눈물을 흘렸다. 아니 거짓말이다. 시력을 잃어가는 노쇠한 화가가 만들어낸 아름다움이 너무나 기가 막혀서 울었다. 아니 이것도 거짓말이다.

나는 그냥 너무 아름다워서 울었다. 이 그림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서 괴로웠다. 말이 흘러넘치는데 그 말들이 그대로 바닥 어딘가에 흘러 떨어지고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그런 구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고독했다.

나는 꽃을 찾으러 이곳에 왔지만. 그것 뿐이었다. 꽃을 찾는 일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덧없이 사라져 버릴 그런 마음이다. 어쩌면 나의 유일한 친구인 당신이라면 내가 어떤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다만. 다만 그 조차도 큰 의미는 없는 일이다. 하찮기 그지 없다.

잘 생각해보면 사람의 생명만큼이나 그 소원이란 대체로 하찮은 것이다. 예를 들어서 그 꽃을 당신과 함께 보고 싶었다 라든가.


24년 12월의 글이다.


<이전 까지의 스토리>
나는 일본에 여행을 가서라도 러닝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나, 실제로는 그게 꽤나 바보 같은 아이디어란 것을 깨닫는다.

이 글을 쓰면서 들은 것은 Laufey - Let you break my heart again 이다. NPR에서 한 라이브 버젼 밖에 없는 줄 알고 있었는데. 22년에 발매한 앨범에 (스튜디오는 아니고 이것도 라이브지만) 수록곡으로 있는 걸 발견해서 열심히 듣고 있다. 이 아티스트에 대해서는 몇 번 적은 것 같지만 모든 것이 정확하다 박자와 음정, 이 사람이 부르는 노래의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피치포크의 어떤 앨범 리뷰에서는 심술궂게 그에 대한 수식어로 틱톡이 가장 사랑한 현대 재즈 보컬리스트라고 적었다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티스트의 기량은 항상 모든 심술궂은 말들을 반박해낸다. 어 뭐 솔직히 말하자면 그 정도로 엄청난 곡은 아니긴 하다. 나도 그냥 피치포크에서 뭐라고 하면 일단 빈정거리고 싶은거다.


<시부야>

6년만의 시부야는 엄청난 곳으로 변해있었다. 내 딴에는 히카리에 정도가 최신 트렌드였다만. 어느새 생긴 시부야 스크램블과 스트림 때문에 길을 찾는게 정말 어려웠다. 일본은 올해 25년 엑스포를 준비하고있기 때문에 좀 번화가다 싶은 곳은 어디나 공사 중이다. 특히나 시부야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공사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많이 바뀌었는데 또 뭘 바꾸겠다고? 어떤 느낌이냐면 교차로와 거리들을 너무 꼬아둔 나머지 직관적으로 눈 앞에 보이는 곳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한 거리가 되었다. 도겐자카도 이제 더 이상 라멘이나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원래부터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아서 쇼핑이 아니면 시부야에 올 일이 없는데, 앞으로 더 시부야에 올 일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부야의 사람들은 열심이었다. 어딜가나 관광객이 많은 도쿄지만 시부야와 하라주쿠는 좀 특이하게 일본인들의 비율이 꽤 높은 느낌이다. 너무 복잡해진 거리 때문에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 시부야에 흥미를 느낄 사람이면 역시 일본의 서브컬쳐를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원래 시부야의 완전한 중심지였던 하치공 광장 근처에 거대한 주술회전 광고판이 있는 것을 보고 엄청 웃었다. 주술회전에서는 작 중 시부야에서 사고가 터져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는다. 야 너희들 여기 있다간 다 죽어 이런건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 시부야에 오면 으레 갔었던 음악감상 카페 같은 것은 가지 않았다. 더 이상 뭔가를 먹는 것에도 듣는 것에도 미련이 없는데 그런걸 해서 뭘 하겠어 하는 생각이었는데. 거꾸로 좀처럼 들르지 않는 타워레코드에서 잘 모르는 음반들의 청음을 하다보니 묘하게 즐거워졌다. 할 수 있는 한 큰 소리로 음악을 듣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는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정작 음악을 열심히 들을 때는 타워레코드 놈들 음반 리뷰들은 다 엉망이야 라고 투덜거리면서 1층만 훑어보다 나가곤 했는데. 7층의 구석진 코너에서 추천 음반을 청음하고 있노라니 내가 오랫동안 잊어버린 어떤 애정을 다시 찾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음반 리뷰들은 엉망이고 알 수 없는 말이나 길게 늘어놓았지만. 거기에 음악이 있다는 것이, 아직도 이렇게나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되었다. 다음에 들른다면 꼭 맘에 드는 엘피를 한 뭉치 정도 사서 가야지 하고 다짐했다. (이번엔 안 샀다는 이야기이다. 말했지 않는가 유니클로 파커코트 엄청 두껍다고)

시대는 틱톡의 시대가 되었고. 3분도 못참아서 40초의 음악만을 듣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고리타분하게도 판 위에 바늘을 올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나에겐 안심이 되었다.


<긴자-유락쵸-신바시>

한 때 유락쵸에는 무인양품의 비공식적인 본점이 있었다. 거대한 건물에 무인양품 물건이 가득차 있는 멋진 곳이었는데 그 곳이 사라진 이후로 나는 유락쵸를 조금 덜 좋아하게 되었다.

전에 내가 이 거리에 대해서 썼던 글이 생각난다. 회사원으로 가득해서 무심코 눈이 마주친 사람들마다 다 나와 똑같은 눈을 하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속해 있는 거리는 여기가 아닐까 싶다. 라고 했던가. 이제는, 이제는 택도 없지. 나는 이제 사시사철 회사원의 눈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대체로 멍하고 풀린 눈을 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황궁에서 부터 도쿄역까지의 거리를 깨끗하게 정비 중이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몰라볼 정도로 깔끔해져있었다. 마루노우치 스트리트 같은 속빈 강정(퉷)도 생기고 내가 예전에 좋아하던 가게들은 엄청나게 사라져서 여기가 내가 알던 도쿄역 인근이 맞나 하며 투덜거리다가 유락쵸 근처로 가보니까. 사람이 많고 시끄럽고 좁은 곳에 복작복작한 것이 내가 알던 유락쵸가 맞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심지어 4억엔? 정도 최종 1등 상금이 붙어있다는 점보 어쩌고 복권을 사려고 500명 정도가 줄을 서있는 모습을 보자(500명이란 말은 농담도 과장도 아니다. 나는 운동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 이것이 유락쵸지 하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이번 여행 중에 가장 많이 간 곳이 이 도쿄-유락쵸-긴자 라인이다. 나이가 드니까 새로운 맵을 열고 싶지 않다는 그런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서 꼭 가야할 것이 아니면 다른 곳에 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대체로 이 동네에 있었다. 어쨌거나 나에겐 익숙한 동네이고. 긴자는 좀처럼 가게들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도쿄도에서도 압도적으로 길을 찾기가 쉬운 곳이다. 긴자의 버버리 매장은 아직도 위치를 알 고 있다. 신입사원 때 쯤에 아직 버버리 같은 것에 대해서 동경이 있었던 그 시절 아시아에서 버버리 코트를 산다면 바로 거기지 하는 추천을 받아서 갔는데. 무려, 놀라지 마라 무려 버버리 코트가 90만원이었다. 지금은 350쯤 할 것 같은데. 어…하여간 거기서도 어깨에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코트를 사지 못하고 내심 안심한 기억이 있다.

이제는 긴자에서 간다면 츠타야 서점이나 유니클로 말고 딱히 가고싶은 곳도 없다.

긴자 미츠코시 지하에 벤치가 있었던 곳에는 벤치를 치워두었다. 어느날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본에 출장을 온 ㅊ차장과 이미 30일을 넘긴 장기 출장 중이었던 나는 시간을 맞춰서 만났는데. 일본에 왔으니 뭐라도 그럴 듯한 걸 해야지 하는 ㅊ차장의 의견에 굳이 긴자에 가서. 그 지하의 식품관에서 본 것 중에 가장 신기하게 보였던 복숭아 빛깔을 한 커다란 딸기를 사서 나눠먹었다. 그렇다 지금은 없어진 그 벤치에서 먹은 것이다.

뭐냐 이거 맛이 특이하다. 그러게요. 너 일본에 대해선 뭐든지 아는거 아냐? 제가 일본 대통령이라도 되나요 뭐든지 알진 못해요. 같은 소리를 하면서 ㅊ차장(차장이라고 하지만 나에겐 그냥 형 같은 사람이었다.)과 좀 잡담을 했지만 ㅊ차장은 긴자는 역시 너무 복잡하다고 진절머리를 내며 숙소로 돌아가버렸다. 왜 미국에서 태국으로 가던 길에 여길 들른 걸까? 그 때는 이해가 안 갔지만. 글쎄 지금도 이해가 잘 안간다.

하지만 세어보면, 내가 당시의 ㅊ차장과 비슷한 연차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왜 ㅊ차장이 일본에 들렀는지 알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시나가와>

시나가와 같은 곳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오해가 있다 나는 시나가와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도쿄 도내 어디를 가더라도 1시간이면 도착하는 탁월한 교통편의성을 높이 사는 것 뿐이다. 이번에 황궁런을 하면서 느낀거지만 다음엔 꼭 도쿄역 근처에 숙소를 잡고 매일매일 황궁런을 할 것이다. 그렇게 다짐했다.

애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 한 300밤 정도는 시나가와에서 잤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교통이 편리하면서 비교적 조용한 곳이 그렇게 많지 않다. 잠깐만 너무 이상한 말인데 일단 시나가와는 하나도 조용하지 않다. 그나마 조용하다는 평판에 도움을 주던 다카나와의 상가건물 몇개가 통채로 철거되었고. 더럽게 비싸고 맛은 없던 싱가폴 게요리점도 사라지고 말았다. 더럽게 비싸고 맛이 없더라도 사라지는건 다른 문제이다 아쉬운 건 아쉽다 이거다.

황궁런을 뛴 후, 러닝이 그렇게 편안한 활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이번 시나가와 숙박이 마지막 시나가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핑계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다이바나 아라카와에 가서 러닝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3일 동안 내내 시나가와 근처를 달렸다. 골목 하나 상가 하나 전부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분히 감상적인 나의 시나가와에 대한 작별인사 같은 것이었다. 이제는 말도 안되게 비싸져서 더 이상 가성비가 좋다고는 도저히 말 할 수 없게 된 다카나와 호텔에 대한 작별 인사라고 해도 좋다.

시나가와 근처를 달리기로 한 첫번째 날에는 시나가와 역을 가로질러 소니 건물까지 간 다음 러닝을 시작했다. 덴노즈아이루와 부둣가를 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시나가와라고 한다면 그 동네를 떠올릴텐데 나는 거기에 가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냥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것 같다.
언덕처럼 경사가 있는 다리를 건너자 끝에서부터 천천히 바다가 보이고. 다리를 내려와 사거리를 건너 공터 옆을 지나자 야구를 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부둣가의 컨테이너 하역장이 가까워 먼지가 많고 트럭들이 점잖은 거인들처럼 신호를 지키고 섰지만, 막상 스치기만 해도 박살이 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아 이렇게 먼지가 많다니 완전 실패다 부둣가 달리기에 이상한 로망을 갖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며 바다 옆 물류 지대를 뛰었다. 낄낄 웃음 소리가 나왔다. 상상도 못하게 맹렬한 바닷바람이 불어서 순간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온이 분명 2~3도 정도 였을텐데 이 추위는 뭐지 하고 생각하며 부둣가를 달렸다.

돌아오는 길엔 부리또를 사 먹었다. 된장국에 생선구이라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은 나에게도 일본인에게도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돌아오기 전 날 마지막 날에는 호텔 주변을 뛰었다. 호텔 부지를 뛰기엔 좀 부족하다는 기분이 들어서. 고갯길을 달려 내려가 할 수 있는 한 - 신호등이 허락하는 한 - 멀리 북쪽으로 달렸다가 방향을 꺾어서 커다란 사각형을 그리며 달렸다. 해가 뜨기 전의 밤이었고 월요일이었기 때문에 때 이른 출근을 하는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부지런한 일본인들은 뭐지 이 미친 새끼는? 하며 길을 비켜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냥 동네 골목길에서 러닝을 할 정도로 짜증나는 인간은 일본에도 몇 없었을 것이다. 골목에 대해서 뭐라고 묘사를 하면 좋을까.

나는 사실 이 동네의 골목길을 알 고 있다. 출장을 와서 숙소에 돌아가면 보통 심야였고 그러면 나는 그대로 짐만 풀고 일을 하다가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는 걸로 자는 걸 대신했다. 때때로 시간이 남으면 호텔에서 기어나와 멀지도 않은 이 동네를 혼자 산책하곤 했다. 어디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지. 어디에 자판기가 있는지 대체로 알 고 있다. 어느 기업인가 새로운 연수원을 만든다고 역시나 공사를 하고 있어서 내가 좋아하던 나무가 없어진 것을 보고 꽤 기분이 나빴지만 외국인인 내가 뭘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그냥 그렇게 골목을 달렸다.

차갑게 낮아진 공기가 천천히 떠오르는 해에 달궈지는 걸 느껴보려고 노력하면서. 계속해서 러닝을 했다.
다음 언젠가는 너무나 먼 훗날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서.



24년 12월의 글이다.


며칠 째 몹시 아프다. 여행기를 쓰면서 여행을 다닌 시기 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은 생각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생일날을 독감 3일째와 맞으면서 겨우 집에서 기어나와 우유와 롤케익, 군고구마를 샀다. 불쌍한 초등학생의 구호식품 같네 싶어서 롯데리아에 들러서 버거도 두개 샀지만 하나를 다 먹지 못했다. 목이 너무 아프다.
이번 여행을 하는 내내 말이 넘쳐 흘러서 고통스러웠다. 내뱉지 못한 말들은 원형으로 서로의 꼬리를 물며 커다란 그림을 그렸고 나는 내가 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12월 14일 도쿄 주교좌의 마리아 대성당의 뒷자리에 앉아있다 깨달았다. 고독보다 불행한 것은 쓰여지지 못한 글이다. 나는 계속해서 쓸 생각이다.

이 글을 쓰면서 들은 것은 Orihusay - Eternal Slumber 이다. 많은 시부야계가 솟아 올랐다 사라졌고 누자베스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전설이 되었다. 이제 누자베스는 거의 시부야의 전통민요 같은게 되어서 티셔츠까지 파는 그런 아티스트가 되었는데. 과연 그를 따라갈 아티스트가 있을까? 모르겠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의 스타일을 따라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유튜브 로우파이채널에나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음악이다. 너무 가혹한 평가라고? 설마…


내가 어디까지 얘기 했더라. 아메카지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는 얘기까지 했고 그들에게 피의 복수를 다짐했다는 이야기를 했던가. 패션으로 피의 복수를 한다면 역시 엄청난 패션력과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서 24년 전국 고교 패션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그 정도의 스토리가 필요하겠지? 생각해보면 그 정도로 복수심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을 것 같다.

바로 전의 글에 썼던가, 내가 결정적으로 잘못 생각한 것 중에 하나가 러닝용 도구를 너무 많이 챙겼다는 것인데. 비싼 돈을 들여서 킹사이즈 베드 룸을 고른 주제에(심지어 혼자 쓴다) 러닝용 셔츠를 매일 밤마다 대충 물 빨래를 해서 걸어두면 된다는 생각을 안 했다. 대체로 러닝용 의류들은 세척이 장난 아니게 쉬운데 못생김을 댓가로 이런 무시무시한 힘을 얻은걸까? 하여간 러닝용 티셔츠를 4세트나 챙겼는데 실제로 쓴 건 러닝용 셔츠+바지+바람막이 뿐이었다. 바람막이야 애초에 세탁을 하는 의류가 아니기도 하거니와, 황궁런을 한 첫날 11시에 방에 들어와 왠지 심술궂은 기분이 들어 땀내가 나는 셔츠를 뜨거운 물로 촥촥 씻어서 걸어놓았더니…다음날 아침 깔끔하게 말라있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옷을 입고 러닝을 했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동행이 있었다면 꽤나 민폐여서 할 수 없는 방법이겠지만 정작 나 본인은 그렇게 깔끔한 사람이 아니라서 전혀 상관없었다. 그래서 3세트나 되는 러닝용 의류는 전혀 쓰지도 못하고…그냥 자리만 차지했다.

이렇게나 캐리어에 공간이 남을거면 최대한 유니클로가 아닌 옷을 입고 여행에 올 걸 하는 무의미한 생각을 하면서도, 네 여러분 여행의 사실상 첫날이었던 금요일에도 아메카지를 시도했습니다.

<아메카지 1트, 우에노의 아메요코>

그야말로 10년 만에 우에노 근처의 아메요코 시장을 가서 유명한 아메카지 편집 스토어들을 돌아다닌건데. 나는 사실 아메요코에 그런 곳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냥 시끄러운 술집이랑 노점 있는 곳이 아닌가 정도로 이제까지 생각해왔고. 우연히 지나치다가 한 번 들른 후로는 올 생각도 안한 곳이었다.

아무리 날티를 내봤자 묘하게 단정한 느낌의 아르켓 헌팅 자켓에 아르켓 진즈를 입은 저는 도대체 어떤 멋쟁이들을 만나게 될 까 두근두근 거리면서 아메요코 시장을 향했습니다만. 과거의 나를 찬양하라. 예전에 내가 기억했던 대로 그냥 시끄럽고 노점이 많은 곳이 맞았다. 지나가는 옷가게 마저도 AI로 각종 고양이들과 트럼프 대통령을 디자인한 프린트 셔츠들을 잔뜩 진열해놓은 곳이나 있었을 뿐. 그 외엔 지나치게 털옷이거나 지나치게 가죽옷인 가게들로 가득했다. 입구에서 5분을 넘게 걸어서 그나마 유명한 ㅎ점포에 도착했을 때는 기대가 거의 없었으나, 역시 유명한 곳은 달랐다. 꽤 괜찮아 보이는 거친 자켓과 클래식한 디자인의 청바지들. 그리고 너무 유명한 나머지 현금을 잔뜩 이고 지고 온 한국인, 중국인 하여간 여러나라의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관광객놈들아.

나는 돈이 있다는 티를 내려고 비싼 자켓을 들춰보기도 하며 열심히 구경을 했지만. 돈 있는 티는 중국인들을 당해낼수가 없었던게 도대체 왜 청바지 똑같은 디자인을 4장 씩 사는거지? 왠지 기가 죽은 나는 옆에 있는 그 가게의 분점에 가서 친절한 응대와 상담을 받았으나. 원래 목적했었던 브랜드는 없었고 웨어하우스 진의 한정판이라고 주장하는 바지를 판촉하려고 하셔서 (비쌌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 웃으면서 인사했다. 예쁘기는 예뻤기 때문이다.

<유니클로 1트, 긴자의 유니클로>

촌스럽다고 하지 마라. 내가 도쿄에 제일 많이 가던 시기에는 긴자의 유니클로 플래그십 스토어가 제일 간지나는 유니클로였다. 현재 도쿄에 살고 있는 선배의 말로는 그 건물 디자인이 너무 이상한 관계로 미어터지는 관광객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해 물건이 그리 많지 않다고. 그러면서 추천해 준 것이 유락쵸의 유니클로였는데. 그 곳의 이름은 도쿄 유니클로이고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안 그래도 선배와 저녁을 할 약속이 있었는데. 나에게 면세 셔틀을 시키는게 주 목적이었던 선배가 유니클로 가실래요? 살거 없어요? 살거 있죠? 아 여기 유니클로가 딱인데. 하면서 나를 마구 충동질 하였으나. 기억하라 유니클로와 동키호테는 사람이 갈 곳이 못 된다. 어찌저찌 일본여행을 가면 한 번은 가게 되지만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하고 싶다. 나도 그래서 주로 갔던 곳은 단층으로 되어 있었던 아키하바라 유니클로였다. 그런 조그만 곳에는 관광객들이 덜 몰린다. 도대체 왜 그럴까 너희들은 크다고 뭐 너희가 옷을 백점씩 사는 것도 아닐텐데 말야.

사려고 했던 것은 정확히 정해져 있던게 유니클로U에서 나왔던 롤업백이었는데. 실은 한국에서 발매되자마자 뭐지 이거 하고 클릭해서 기계적으로 샀습니다. 사놓고 보니 너무 좋아서 왜 이런 좋은 가방이 나온거지 하고 당혹스러워서 보니 다들 사고 싶어서 난리가 난 아이템이었다. 적당히 세련되고 적당히 싸고 후루룩 펴면 수납력이 아주 좋아서 한국에서 메인 가방으로 쓰고 있다. 근데 그걸 다른 색으로 하나 더 사고 싶다는게. 나의 요즘 이상한 습성. 뭔가 하나를 샀는데 아주 좋아 -> 그럼 하나를 더 사면 더 좋겠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논리인데 하여간 옷장에 똑같은 옷이 자꾸 늘어난다. 그런데 그 롤업백의 마지막 재고가 제가 일본에 도착하기 이틀 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도쿄에만 없는걸까? 하여간 일본 유니클로의 시스템에서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겨울엔 코트만 입는다는 나의 정책을 무시하고 하이브리드 어쩌고 한 파카 코트와 한국에서 품절이지만 딱히 살 생각은 없었던 셔츠를 샀다. 같이 줄 선 중국인들이 30점씩 사는데 나 혼자서 1점을 사는 것은 좀 바보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면세품 계산의 줄이 엄청나게 길고 그 계산 속도도 느려서 5점 정도는 사야 그 줄 서는 시간이 보상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여간 유니클로의 큰 규모 매장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뭐 패스트 리테일에서 공짜로 옷을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막 바닥에 앉아서 뭔가 계산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가족들이 태그를 이뤄서 한 명은 줄을 서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옷을 주워오고 그러는데.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는데도 줄을 서야 했다. 그것도 꽤 긴 줄이어서 나는 너무 후회가 되어(이것이 첫번째 후회가 아니었다.) 그냥 집(호텔)로 가버릴까 유니클로 따위 없어도 되지 않나? 유니클로가 우리나라에 한 짓을 생각하자 막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2층은 더욱 난장판이었다. 묘하게 무신사 티가 나는 옷을 입은 청년들이 앞다투어 지나갔고 각 나라 사람들이 각 나라의 말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 이것이 지옥의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입장을 한 이상 시간을 최대한 들이지 않고 뭔가 사긴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코트와 셔츠를 산 것이다.

나는 딱 2점을 들고 계산대에 줄을 섰으면서 너무 후회가 들어서(이것이 마지막 후회가 아니었다.) 그냥 이걸 버리고 집(호텔)에 갈까 아니면 그냥 옆에 진열대에 놓인 목도리라도 쓸어담을까 하고 있었는데. 내 바로 앞에 서있던 마른 남자가 딱 1점. 파커 베스트만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아 그래 세상엔 저런 지혜로운 사람이 있구나 사지 않는 것이 진정한 지혜로다 이러고 참고 있었습니다.

근데 놀라운 것은 그 사람은 일본인이었다. 길고 긴 기다림이 필요 없이 그냥 면세가 아닌 줄을 서서 옷을 계산하고 가면 될 것을. 그 사람은 딱 한 점 파커 베스트를 들고 현금으로 깔끔하게 계산하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내 차례가 되어 여권을 제시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초인과도 같은 모습에 질려서 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성난 러시아인(내 뒷 차례)의 호통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여권을 꺼냈다. 도대체 뭐였을까 그 사람.

<아메카지 4트, 에비스의 W와 J>

여러분에게 하나하나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계속해서 도쿄 도내의 유명 아메카지 매장을 찾아다니면서 아메카지를 테스트해보았다. 예를 들자면 2트쯤 되었던게 마루노우치 스트리트의 빔즈 플러스 매장으로, 일단 바버를 말도 안되는 가격에 팔고 있는 것에 좀 질린데다가 어떤 사이즈로 입어도 팔이 짧아서 아메카지가 맞는 건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일본에서 사는 옷들은 대부분 팔 길이가 맞지 않는다. 내가 팔이 약간 긴 편이긴 하지만 애초에 일본에서 유니클로 옷만 죽어라고 사는 이유가 팔길이가 맞는 옷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슬램덩크의 등장인물들은 평소에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얘네는 나이키 갸쿠소 마저도 팔이 짧은데 혹시 겨울에도 반팔만 입고 다니는 걸까. 오기가 좀 들어서 마루노우치에 그럴 듯한 옷 가게는 다 들어가봤는데 대체로 몸통은 엄청나게 좁고 팔은 지나치게 짧았다. 여행 중에 입은 것은 아르켓에서 나온 헌팅 자켓인데 나에겐 좀 커서 팔을 접어서 입고 다닌다. 이 정도 천 크기면 일본 기준 엠사이즈 옷은 세벌도 만들겠다 싶다.

시부야에서 몇 군데 돌아다닌 구제 스토어도 비슷비슷했다. 친구가 시부야에 살고 있어서 어쩔수 없이 간 시부야지만 최대한 즐겨보려는 마음으로 구제 스토어를 돌아봤는데. 닌텐도 스토어에 갔을 때의 10분의 1만큼도 신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분 저는 키가 188에 90킬로그램 정도 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저처럼 너무 과하게 크지 않다면 충분히 시부야의 패션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엘든링의 알렉산더 티와 괴혼의 왕자님 후드티가 사이즈 스몰 밖에 없다고 했을 땐 정말로 화가 났다. 바가지란 걸 알면서도 사겠다는데 왜 팔지 않는가?

하여간 여행 전에 보아뒀던 유명 청바지 브랜드 웨어하우스와 제라도를 가려고 굳이 역 하나 거리인 에비스까지 갔는데. 원래 웨어하우스 청바지를 사고 싶었던 터라 웨어하우스를 갔는데 점원의 대응이 정말 별로였다. 시착을 하려고 내가 들고 있는 청바지를 갑자기 들고 가버리지 않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일본어를 써서 그런가 영어도 내가 너희보다 잘할텐데 하는 일본에 올 때 마다 수십번씩 하는 의문이 또 머릿 속에 떠올랐는데. 실제로 내 친구 중에 하나는 일본어를 꽤 잘하는데도 일본 여행에서는 절대로 일본어로 말하지 않는다. 친절한 일본인이라는 이미지는 결국 권력관계에 충실한 일본사회의 왜곡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꽤 마음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지 않고 별로 기대하지 않고 다른 브랜드인 제라도에 갔다.

제라도는 비교적 한가한지 점원들 끼리 재미있게 놀고 있는 분위기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엄청나게 친절했다. 홈페이지에서 봐두었던 자켓이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어서 살 뻔 했는데. 이제까지 어떤 아메카지 매장에서도 얘기하지 않았던 면세처리 얘길 먼저 하면서 외국인이시면 이 가격에 살 수 있어요 하고 가르쳐주었다.

묘하게 감동한 나는 가까운 카페에 가서 팬케잌을 먹으면서 1시간 정도 고민한 다음, 웨어하우스에서 홀대 당한거에 열받아서 사는거 아닌가 하며 잘 생각해보다 제라도에 가서 34천엔 짜리 청바지를 샀다. 지금 잘 사시는거에요 얼마 전에 가격이 내렸거든요 라는 그럴듯한 손님 접대용 코멘트에 대해서 반감도 들지 않았고 또 올게요 하고 인사를 했다. 아니 자켓은 진짜 못 사겠더라고요 그거 정가면 10만엔이던데. 그거 사면 나는 파산이야. 파산은 둘째 치고 유니클로에서 파커 자켓 사서 공간도 없어…

이상이 이번 여행에서 나의 아메카지를 둘러싼 모험의 결과이다.

34천엔짜리 청바지 한 벌

피의 복수 실패.
이상.


24년 12월의 글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