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 블로그 글에서 썼지만, 나는 3주 전쯤 넘어졌었다. 세어보니 정확하게 3주였다.
처음 정형외과에 갔을 때 전치6주에서 8주 쯤 되지 않을까요 라고 하셨는데. 지난주 금요일에 방문했을 때 2,3주 정도는 경과를 더 봐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라고 하셨으니 정확하게 6주 정도 되는 셈이다. (용하기도 하셔라)
차에 치인 것도 아니고 빙판길에 넘어졌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다치다니 재주도 좋다.

몸이 이런 상태이다 보니 러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남이 얼마나 아팠는가를 듣는건 정말 지루한 일이지만 여긴 내 블로그니까 내 맘대로 쓰자면.)
다친 첫번째 주에는 러닝이 문제가 아니었던게 정말 말도 안되게 아파서 4종류의 진통제를 매 끼마다 먹으면서 일상생활 비슷한 걸 했다. 입원을 왜 안 했는가? 아니 내가 노인도 아니고 빙판길에 넘어졌다고 입원을 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숨이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 골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용케 부러진 곳은 없네요.”) 그냥 몹시, 아주 몹시 아픈 것 뿐인데 입원을 할 필요는 없다 싶었는데. 걱정이 되셨던 정형외과 선생님은 소견서와 전원서를 써서 3차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다만…나는 가지 않았다. 나는 이상한 구석에서 고집이 쎄다.

다친 지 2주차가 되자 아픈게 좀 가라앉고 걸을만해지니까, 다른 문제가 생겼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러닝을 하지 못하는 것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러닝을 못하는게 괴로웠냐 싶겠지만. 작년 여름부터 내 인생은 철저하게 러닝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애초에 가족도 친구도 없이. 인생을 운영하고 있던 사람이니까(하하)

집중해야하는 것을 러닝으로 슬쩍 바꾸기만 한 것 만으로 자연스레 러닝 없이 못 사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매일 정형외과에 가면서 선생님이 내 눈치를 슬쩍 보며 아직 운동하시면 안됩니다. 라고 주의를 주셨는데. 그걸 보면 내가 되게 티나게 러닝을 하고 싶어한 것 같긴 하다. 어떻게 안 걸까 내가 이 겨울날 손바닥만한 바지를 입고 진료실에서 달리는 흉내를 낸 것도 아닌데 말이지. 물론 적당해졌다 싶은 주기마다 언제쯤 운동을 해도 될까요? 라고 물어보긴 했다만…아 맞다 다친 날 아침에도 러닝했다고 얘기 했었지만 뭐 그래.

길고 긴 설 연휴에도 대체로 누워있었다. 어디 미술관 구경하러 가자고 나오라는 연락도. 뭔가 먹으러 나오라는 연락도 모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그냥 누워있었다. 초조하게 도대체 언제 다리가 낫는거지 하는 생각만 했다. 설 전에 갔었던 진료에서 무릎을 초음파로 보다가 왼쪽 무릎 연골판에 파열 의심 증상이 있다는 소리를 듣자. 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든걸 보면 정말로 러닝 말고는 인생에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된건가 싶기도 하다. (연골판에 파열되었을 경우, 애초에 완치는 안된다. 심한 경우에는 수술을 해야하는데 재활에 몇개월이 걸린다.)

러닝을 못하게 된지 2주가 넘어갈 때 쯤엔 러닝을 하지 못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죽은 눈으로 게임 패드를 잡고 죄없는 병사들을 칼과 창으로 때려잡으며. 아니면 베트남, 대만의 신진 작가가 현대사의 비극을 녹여낸 훌륭한 문학 작품을 기운없이 읽으며. 내내 그냥 러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훌륭히 멘탈이 무너졌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피ㅋ민 블룸이라고. 나ㅇ언틱에서 만든 산책게임이 있다. 원래 있던 게임인 피ㅋ민을 나ㅇ언틱 특유의 위치 기반 서비스와 결합한 게임인데. 나온지 몇년이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갑자기 인기를 끌기 시작해서 아주 최근에 한글판 공식 에스엔에스 계정이 생길 정도가 되었다. 나도 도쿄 여행을 갔다오기 얼마 전부터 친구의 권유로 하기 시작했는다.

거기에는 “눈 데코 피ㅋ민”이라는 희귀한 피ㅋ민이 있다. 눈이 오는 시간 대에 특정한 위치에서 아이템을 쓰면 얻을 수 있는 피ㅋ민으로. 워낙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나는 얼마 전부터 그 눈 피ㅋ민을 얻으려고 노력을 아니 집착을 하고 있었다.

일단 매일 나ㅇ언틱에서 쓰는 날씨 서비스를 매일매일 찾아서 우리 지역에 눈이 올 확률을 찾아보고, 특정한 위치 (눈 피ㅋ민은 “길거리”아이콘이 딱 하나만 나오는 지점에서만 나온다. 우리나라엔 공지가 적어서 그런 지역이 드물다.)가 집과 회사 주변 어디에 있는지 찾아두었다.

설 연휴에는 폭설이 내렸는데, 우습게도 앱 안의 날씨는 매일이 흐림이었다. 눈으로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일찍 퇴근해 무릎 혈종 제거 시술을 받으려고 병원에 갔던 날. 웃기게도 앱 안의 날씨가 눈으로 바뀌었다. 나는 붕대를 감은 채로 “길거리” 아이콘이 나올거라고 예상되는 곳으로 절룩거리며 걸어갔다. 날씨 예보는 1시간 단위로 바뀌기 때문에 1시간 내로 예상한 곳 까지 갔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난리를 쳐서 눈 피ㅋ민을 두마리나 얻고 나니. 그제서야 내가 여기에 과하게 집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게임을 한지 두달이 되기 전에 레벨이 50에 근접한 것 부터가 정신줄을 놓고 이걸 하고 있었다는 증거였긴 하다.)

이게 뭐라고 말이지. 눈 피ㅋ민이 뭐라고. 러닝이 뭐라고.

3주 정도는 더 봐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못 들었다는 듯이 주말에 10킬로미터를 뛰었다. 무릎의 붓기가 빠지지 않아서 붓기가 빠지기 전에는 연골판의 파열을 확인 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냥 냅다 뛰었다. 무릎이 아파오자 눈물이 좀 날 것 같았다. 계속 달리고 싶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어느 것에도 집착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였다고 생각한다.
그냥 무의미한 집착이었다. 다 알고 있었다. 사랑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하고. 사랑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번뇌에 빠졌다.

여름부터 썼던 포스팅을 읽자. 그 동안 내가 어떻게 매달 다치고 아팠는지 (놀랍게도 매달 어딘가를 다치고 있었다 도대체 왜?) 괴로워했는지. 어떻게든 나아보려고 노력했는지 거기에 다 적혀있었다. 차라리 아무 것도 쓰지 않을 것을 그랬다. 의도치 않은 사고로 넘어지고 굴러 애써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게 내가 아니었다면 좋았을텐데.

어제 밤에 차림새를 갖추고 무작정 달려보려고 하는데. 허리가 아려왔다.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어서 새벽에 일어나 다시 달리려는데 아직도 허리가 아렸다. 디스크일까, 근막의 통증일까. 아니면 그냥 춥기 때문일까. 피트니스에 가서 트레드밀 위를 뛰었다.

모두 다 미망이고. 모두가 미련이다. 여기에 어떤 의미도 없었다.

나는 넘어졌었다. 뜻하지 않은 빙판길에 미끌어진 것 처럼 넘어졌다. 용기를 내어 혼자 걸어가야 하는데. 아무리 엉망이 되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25년 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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