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문장은 현실의 조악한 복제품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기관과 지각능력의 한계로 인하여 현실을 완벽하게 수용해낼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문장으로도 그럭저럭 충실한 현실의 재현품을 삼을 수 있다.

우리는 회상이라는 형태로 비교적 쉽게 과거를 재현해 낼 수 있지만, 재현은 재현일 뿐이다. 불완전한 세계의 불완전한 반영이다. 실제로 현실의 시간을 뒤로 돌려 완벽하게 과거를 다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러나 문장은 완전한 역행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무시하고,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의 모습을 최대한 뭉툭하게 깎아내어 현실이 가진 속성들의 중요한 부분만을 추출한 후. 몇 번이나 재현이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주장에는 한가지 필수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문장을 읽어줄 불변의 독자이다.

이론 상 - 물론 이론 상이라는 말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지만 - 세상 어딘가에 불변하는 독자라는 모순적인 존재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그 불변하는 독자에게 문장을 읽게 함으로서 그의 머릿속에서만은 동일한 현실을 반복해서 재현시킬 수 있다. 그것은 재현이라기 보다는, 강림이나 재생에 가까운 행위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불변의 독자. 문장의 모든 체험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 당신을 가정해보자. 나의 모든 글을 읽었을 당신이 나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라고 해야할까.
누군가는 이 불변의 독자가 신에 대한 메타포로 이해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불변의 독자를 신이라는 가정을 부정한다. 당신이 정말로 신이라면 내가 쓴 모든 것들은 단지 길고 지루한 기도문일 것이고, 내가 겪고 있는 부패와 결락들은 결국 신의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재료가 될 뿐이다.

고전 모험, 추리소설의 소설가들은 독자제현 이라는 말로 자신의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그들은 때때로 자신이 이 글을 쓴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21세기에 들어서 자기의 컨텐츠를 봐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유 불명의 적대감을 표시하는게 유행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그랬다. 자신의 소중한 존재. 다시 없는 사람. 글과 나 사이에 놓인 유일한 세계.

샐린저는 소설에서 시모어가의 둘째가 쓴 글을 통해 독자가 누군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는 가상의 독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새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 이유는 새가 그 어떤 것보다 영혼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독자 당신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가 쓰고 있는 이 불완전한 글을 읽고 있는 완벽한 타자인 당신은. 예전에는 더욱 확실한 형태를 가지고 어떤 사람인지를 떠올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빠르게, 세월 그 자체보다 빠르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잊어버리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싶지 않게 된 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떠올리지 못하게 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나는 한 밤 중의 변덕으로 빨랫감을 들고 집 근처의 코인라운드리에 갔다. 당신이라면 알 고 있을 집 근처 상가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 곳의 코인 라운드리 얘기이다. 물론 빨랫감을 들고 가기 전 마트에 들르는 척 라운드리에 들러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세탁기는 비어있는지 몰래 살펴보았다. 웃기게도 내가 염탐하러 갔던 그 때 보다 손님은 줄어들었지만 커다란 빨랫 바구니를 들고 간 사람들이 늘어 줄을 서 있었던 탓에. 나는 삼십분이 넘도록 빨래도 하지 못한 채로 멍하니 코인 세탁기 앞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분간은 글을 쓰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내가 당신에 대해서 글을 쓰기로 생각한 건. 그 삼십분이다. 나는 내 차례가 되자 타올 한 무더기와 속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집에 돌아가 책을 들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코인 라운드리는 세상 그 어떤 곳보다 책을 읽기에 좋은 곳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좋은 것이라면 나란히 앉아서 손을 잡는 것 정도이다.

나는 대만 작가가 쓴 소설책을 맨 뒤부터 읽으며 (처음부터 읽을 때 이해가 가지 않고 별로 좋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초식동물이 되새김질을 하듯이 진동하는 소리를 내는 커다란 세탁기들의 소리를 들었다. 어떤 남자들은 - 대체로 남자들이었다. 심부름이겠지 - 아이들이 쓸것 같은 이불을 들고 찾아왔고. 어떤 사람들은 급하게 세탁해야하는게 틀림없는 속옷들을 들을 들고 사라졌다. 세탁소 밖은 춥고 새까만 밤이라.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내세가 이런 곳이라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옆자리의 아저씨는 어딘가로 사라지기에 담배라도 피러 나갔나 싶었더니 아이스크림을 사와서 몰래 먹기 시작했다. 눈치를 볼 필요는 없을텐데 혼자 군것질을 하는게 왠지 불편한 눈치이다.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아저씨가 편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도록 더더욱 신경쓰지 않는 척 한다. 여름부터 내내 읽고 있던 책이라 조금 너덜너덜해졌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여름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 대만은 아열대 기후이다. 어떤 계절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에겐 그냥 여름으로 느껴진다. - 책을 읽으며 비가 내리는 어떤 곳에 대한 생각을 한다.

세탁기를 돌리는데 30분. 건조기를 돌리는데는 4분에 500원. 만원짜리를 전부 동전으로 바꾼 나는 40분이고 50분이고 건조기를 돌릴 수 있었지만. 왠지 낭비를 하는 기분이 들어 20분만 건조기를 돌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80분 남짓한 시간이 그 주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며 당신, 나의 불변의 독자인 사람을 떠올렸다. 당신이라면 나의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읽어주리라. 내가 왜 행복해했는지, 왜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해주고 싶었는지 이해해주리라. 매일 매일 당신을 잃어버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목소리를 가졌을까.
당신은 새를 좋아할까.

25년 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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