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일 아침, 나는 넘어졌다. 넘어졌다기 보다 굴렀다.
13일 밤부터 눈이 내렸다. 새벽에 일어난 나는 막연히 괜찮을거라고 생각하고 러닝을 했다. 5.05킬로미터에 36분간의 러닝. 두번 정도 넘어질 뻔 했짐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속도로(겨울이니까 빨리 달릴 수 없다) 달렸는데 정작 넘어진 것은 출근하려고 걸어갈 때였다.
나는 떳떳하다.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주머니에 손을 넣지도 않았다. 뉴스를 듣고 있긴 했지만 하여간 그렇게 정신을 빼놓고 있지도 않았다. 마음에 걸리는 건 아침에 나올 때 바닥이 미끄러운 편인 나이키 모델을 신었던 것 정도다. 나는 그 신발을 신으면 어라 이거 오늘 아침 같은 날에는 좀 위험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고, 그러니까 어른의 지혜로 나 스스로에게 충고를 한 것이다. (정작 나는 그 어른의 지혜를 무시했다. 항상 내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차에 치인 것 같은 몰골로 회사에 도착하자. 옆자리의 부장님은 뭐냐 어떻게 된거야 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어 넘어졌어요. 하고 얼빠지게 대답을 하고는 몸에 묻은 흙과 눈을 털고 아까부터 뜨겁고 쓸린 느낌이 나던 무릎이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바지를 걷어보니 맙소사 무릎이 두개가 되었다. 심지어 아랫쪽에 새로 생긴 무릎 쪽이 더 컸다. 피야 당연히 나고 있었고 휴지로 닦아냈다. 보통 다친게 아니란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야 빨리 병원 가봐라 라고 부장님이 성화신데 나는 좀 현실감이 없어서 아침에 보고 하나 작성할 게 있어서요. 라고 얼빠지게 말하고는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냈다.
회사 근처의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께서 자못 심각한 얼굴을 하셨다. 병원의 직원들이 다들 한 명씩 와서 내 무릎을 구경하고 갔다. 아프신가요? 아뇨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은데요. 라고 말헀는데 엑스레이를 찍고 진통주사를 맞추고 진통제를 세 종류 처방해주셨다. 저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은데요. 오늘밤부터 엄청나게 아프실거에요 내일은 더 아프실거고요. 너무 아프면 꼭 병원 나오셔야 합니다. 진통제 더 처방해드릴게요.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그날 밤은 엄청나게 아팠고. 그 다음날은 더욱 아팠으며. 다다음날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
처음 넘어진 곳은 언덕을 올라가는 횡단보도였다. 평소엔 차들이 사양하지 않고 우회전이고 직진이고 하는 곳인데 그 날은 왠지 한 쪽에 경찰차가 서있었다. 거기에 눈이 팔린 것은 사실이었지만, 펭귄처럼 걷다가 앞으로 꽈당 소리와 함께 넘어진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후에 깨달은거지만 워낙 사고가 나기 쉬운 고갯길에 (나는 평소에도 그 곳에서 차에 치일 뻔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눈이 내린 아침이라 경찰차가 미리 와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도 내가 넘어지자 맞은 편에서 오던 차가 마법처럼 서행을 하고 있어서 횡단보도를 넘어서까지 밀려내려오진 않았다.
후에 알았지만 운이 좋게도 무릎으로 넘어지지 않아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나는 넘어졌다는 당혹감과(어른들은 넘어지면 굉장히 당혹해한다.) 창피함에 발버둥치며 일어났지만 차도 경찰도 행인들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여기 오늘 아침에 넘어진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나보다. 검은 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무르팍에 더럽게 묻은 블랙아이스를 털고 일어나니 그냥 좀 더럽고 출근 중인 아저씨인지라 비틀비틀 걸어갔다. 회사까진 2킬로미터 정도 남았고 이 정도 넘어진 걸로 회사를 안가기엔 좀 그랬다.
무릎이 쓸리는 감각과 건조한 통증이 있었지만 찰과상이겠거니 생각하며 고갯길을 비틀거리며 걸어올라 회사 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중간 쯤 걸어내려오는 횡단보도의 중간 쯤에서, 나는 한 번 더 넘어졌다.
엄청난 소리가 났다. 아니 나도 내가 넘어지면서 그렇게 큰 소리가 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한번 넘어졌기 때문에 무릎에 힘이 빠졌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부딪혔던 왼쪽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미끌어졌고 오른쪽 바닥에 넘어졌다. 눈을 감았는지 아니면 기절을 했는지, 아주 잠시 블랙아웃이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생각한 것은 머리를 부딪혔을까 였는데,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격통이 찾아왔다. 나는 숨을 토하는 소리를 냈다.
역시 우회전을 하며 진입하려던 차는 횡단보도 앞에서 비상등을 켜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본인들 눈 앞에서 사람이 엄청나게 화려하게 넘어졌는데 나와보지도 않는건, 뭐 내가 보험사기라도 칠까봐 그런걸까? 일어날 수 없었던 나는 기어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기어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어서 숨을 내쉬며 기었다.
눈을 뒷통수로 떨어지는게 느껴지고. 나는 건넛편까지 기어와 기는 것도 하지 못해 누웠다. 차들이 지나갔지만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도 일으켜주지도 않았다.
회사까지 1.5킬로미터.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고 무릎에서 나던 피가 흘러내려 발목근처에 고이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대충 피를 닦아내고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았다. 일어날 수 있을까. 걸을 수 있을까. 두 개가 해결되기 전에는 어떤 판단도 할 수 없었다. 눈이 덮여오는게 따스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짐승이 끌려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주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정확히는 무릎 근처가 엄청나게 부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왼쪽 무릎이 원래 좋지 않다. 20대때 멍청하게 운동하다 생긴 부상이다. 조졌네 조졌어. 큰일났네 큰일났어.
나는 엉망인 꼴로 발을 질질 끌며 회사로 걸어갔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아무도 내 옆에는 없었다. 고작 회사까지 걸어가는 것 뿐인데. 뭐가 이렇게 힘든지.
25년 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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