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문제였냐고 하면 짜슐랭이었다. 친구J가 오후 내내 짜슐랭을 이렇게 먹으면 맛있다고 단체방에서 얘길 했는데. 그렇게까지 맛이 있진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먹고 싶어져서 평소보다 40분 이상 일찍 퇴근했다.
걸어갈 때 잠시 블로그를 읽긴 했지만 내 블로그에 내가 썼던 내용에 뭔가 이상한게 없는지 확인 했을 뿐이었다. 신발도 나름 접지력이 좋은 괜찮은 신발이었고. 눈은 한참 전에 그쳐서 녹고 있었다. 마트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 갈 때는 주머니에 손도 넣지 않았다.
단지 오전에 내린 눈이 물이 되어 계단 위에 그대로 있었고, 저런 상태라면 사람이 넘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미끄러져 뒤로 넘어졌다. 2월 12일 수요일 오후 6시 45분. 바로 전에 넘어진지 딱 4주째였다.
기절하지 않았다. 넘어지며 왼팔을 급하게 뒤통수로 넣어서 머리가 부딪히는 걸 막았는데 내가 뭘 했던 건 딱 그 정도였고 넘어지면서 계단을 몸으로 내려왔다. 도대체 어디서 느껴지는지 모르겠는 격통 때문에 나는 계단에 쭈그려 앉아서 - 아니 이 때는 안 울었다. -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3명인가 4명인가 몇명씩 사람들이 지나가다 괜찮으시냐고 119불러드릴까요 라고 물어보았는데. 괜찮다고 거절하고 더 앉아있었다. 그래 누가 봐도 넘어진 사람으로 보였겠지. 일어나려는데 왼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때 나는 내가 망했다는 걸 알았다.
20미터만 걸어가면 내가 평소에 가는 정형외과가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곳에 가면 괜찮을거란 GTA적인 희망으로 팔을 붙잡고 힘들게 그곳에 갔다. 번호표를 뽑고 대기 하는 동안 서서 덜덜 떨고 있는데 앞의 차례 사람이 이해 할 수 없는 잡담을 하느라 계속 기다리고 있어서 아 기절하겠다 기절한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고 있던 간호사 한 분이 다치셨어요?(나는 이 병원에 왼쪽 어깨 때문에 1년째 다니고 있는데, 이번에 다친 것도 왼쪽 어깨이다. 메이저 리그 진출은 물건너 갔다고 보면 된다) 라고 하더니 나를 알아보기에 아 넘어졌어요. 라고 말하고 덜덜 떨면서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른스럽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아 선생님 한 4주만에 뵙는것 같은데 저 요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너무 아프네요. 라고 덜덜덜 떨면서 말하는게 최선이었다. 내 어깨를 보는 선생님도 표정이 별로 안 좋아보이셨다. 어깨 엑스레이를 보며 아이고 부러졌어요…라고 말하시는걸 들으면서도 나는 진짜 아니길 바랐다.
뭐라고 하셨더라. 수술을 안하면 팔이 짧아질거라고 하셨던가. 저는 팔이 너무 긴게 문제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급하게 진통주사를 맞고 바로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하는 걸 권했고 나는 쓰고 달고 시고 뭘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정말 너무 아파서 덜덜 떠는거 말고는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진통주사를 맞기 위해 눕는 것도 바지를 내리는 것도 못했다. - 이 때 쯤 부터 질질 울기 시작했다. 아픈 건 둘째 치고 너무 억울했기 때문인데.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앞서서 넘어진지 딱 4주째 되던 날이었다. 도대체 왜? -
병원 사람은 친절하게 다음 병원을 수배해주고 1층까지 내려와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알려주었다. 운이 좋게도 그 병원도 첫번째 병원에서 200미터정도면 걸어가면 되는 병원이었는데. 진통 주사로 덜덜 떨지는 않게 된 나는 옆자리 부장님과 형에게 전화를 했고, 친구들 몇 명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형은 어제 면회에 와서 내가 엉엉 울면서 전화를 했다고 했는데, 나는 전화하면서 울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소리지 싶었지만 형이 쇠고기를 사줬기 때문에 그냥 내가 운 걸로 했다.
그리고 지금 16일 일요일. 나는 입원 중이다. 5인실이지만 사람들이 빨리도 퇴원하고 입원하길 반복하는 이 병원은. 간병인도 보호자도 병실에 두지 않는 맘에 드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나보다 먼저 이 병실에 와있던 할아버지 하나가 이젠 눈치도 보지 않고 보수 우익 유튜브를 스피커로 틀고 있어서 나는 현재 너무 괴롭다. 진짜로 괴롭다. 엄청 큰 소리는 아니지만 귀를 기울이면 무슨 얘길 하는지 알아들을 정도로는 크다. (아니 할아버지와 나의 병실은 양쪽 끝인데도 그렇다.) 수술이 잘 되어 내일 점심 때 쯤이면 퇴원 할 수 있을 거란 얘길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 참인데도 기분이 좋지 않다.
나의 진단명은 좌축상완골 골절이다. MRI를 찍고 나서 알게 된 것 같지만 오른 쪽 늑골도 골절되었다고 한다. 아니 뭐 어쩌겠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부러져 있던 것이 아닌지. (이전 블로그 글 참조)
당일에는 수술이 안 되었기 때문에 진통제를 받아들고 집에 와서 식은 땀을 흘리면서 앓았고 1회차 넘어 질 때 받았던 슈퍼 진통제가 놀랍게도 두 봉지가 남았기 때문에 하나를 먹어서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이전 블로그에 안 썼음)
다음날엔 종일 금식 상태로 대기 하다가 겨우 17시가 되었을 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는데. 40분이 걸릴거고 2시간이면 깰 거라고 하더니 일어나보니 0시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상의 어깨 부분엔 피가 말라붙어있었고 - 당연하다 수술을 받았으니 - 처음보는 거창해보이는 서포터가 장착되어 있었고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저 이제 자도 되나요?라고 물어보았는데 그런 질문을 하는걸 보니 전에 누군가가 못자게 했었던 이력이 있었던 것 같지만 저 당시에는 내가 왜 저런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저렇게 얘기 했다.
자려고 했지만 잠이 들지는 못했다. 무통 주사 버튼을 계속해서 누르며 아픔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이것도 후에 알았지만 내가 메스꺼워했기 때문에 무통주사를 닫아놓았다고 한다. 아니 도대체 그럼 난 뭘 기대하며 무통주사 버튼을 밤새 딸깍 거렸단 말인가. 아침에야 다른 진통제를 맞고 잠이 들 수 있었는데 그러고 잠에서 깨자 내가 전날 수술을 받은 후에 했었던 진상 짓들이 생각나서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그날 밤에도 아파서 제대로 잠이 들지 못했던 건 똑같았다.
어제가 되서야 소독을 하게 되어 내 상처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수술 상처가 생각보다 컸다. 해적처럼 흉이 지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몇명이 찾아왔고 형네 가족, 이모와 이모부가 오셨었다. 조카는 너무 긴 운전 때문에 그렇게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이모가 요즘엔 굿도 단가가 많이 비싸져서 1억 정도 한다고 말해주었다. 치료비 다 하면 500정도 들 것 같은데 그러면 굿 한 번 할 돈으로 20번 정도 넘어질 수 있네요. 라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면 20번이나 넘어지고 싶지 않다 진짜 싫다.
내가 이렇게 넘어진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이 제각기 내가 체중이 너무 빨리 줄어들어서 그렇다거나 아니면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렇다든가 하면서 의견을 내고 있다. 나 본인의 의견은 글쎄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그럴만해서 그랬던 것 같다. 모두의 의견을 반영 하려면 나는 살도 10킬로그램을 찌우고 피티도 6개월 받고 굿도 1억원어치를 받아야한다. 그럴바엔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지금은 좀 덜 아프다. 아직 팔에 주사바늘은 꽂혀있지만 진통제는 먹기만 하고 주사로 따로 맞진 않는다. 갈비뼈가 부러진건…진짜로 괜찮은가보다. 시험삼아 기침을 해보았는데 아픈 걸 모르겠다. 팔이 조금 덜 불편해지면 러닝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서포터를 하고 다녀야 하는 기간이 생각보다 길다. 실을 뽑는데도 2주 정도 걸리고 어깨뼈에 박은 핀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도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한다. -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 생각보다 나는 꽤 심하게 다쳤다. 하지만 다치자마자 집 앞 정형외과 선생님과 형수 - 형수는 의사다. - 양쪽에게 저 얼마나 많이 다친거에요?라고 물어보았는데 둘 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별 거 아니라고 하기엔 인간적으로 미안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어찌 되었든 내 발로 병원까지 걸어갔으니까 의학적으로 중상환자는 아닌거지 싶다.
오늘, 앞으로는 더 넘어지지도 아프지도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 넘어지면…아니 뭐 문제가 있는거다 이건.
아까 잠시 집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내가 정말로 바라는 것은 뭘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살아가는 것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만 살고 싶다면 더 편하고 쉬운 방법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더 아프지도 말고 더 넘어져서도 안된다.
병실 침대 주변에는 커튼이 쳐져있다. 그 앞에 그림자가 질 때면 의료진이란걸 알면서도 나는 꿈에서 자꾸 누군가 다른 사람을 본다.
어제는 ㅇㅇ의 꿈을 꿨다. 묘하게 굿하는데 1억이라는 이모의 말이 인상에 남았는지. 나는 500정도 들거면 매달 220은 네가 그냥 써도 괜찮아. 라고 말했다. ㅇㅇ는 220은 너무 많지 않아요?라고 하기에 그러면 180 어때라고 제안했다. 도대체 뭐하는 무슨 꿈인지 모르겠다.
마취가 풀릴 때 쯤. 내가 너무 아파서 울었던 게 그렇게 기억났다. 그리고는 이렇게 아플거면 울어도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입으로 와 … ㅇㅇ이 보고 싶다. 라고 말하고 울었다. 그리고 다시 기절했다. 어떤 말들은 그런 상황이 되어서야 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그런 말들이 있는거겠지.
22년 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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