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설명을 잘 못하는 편이다. 어떤 일의 원인1부터 결과인 5까지 12345의 논리적 흐름을 통해 도달해야한다면 나는 주로 5만 말한다. 기껏해야 145정도이다. 12345를 전부 얘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걸 업무 메일 같은 곳에 써야한다? 정말 최악이다. 12345를 전부 쓰는 메일을 작성하려면 한 30분 동안, 아니 3시간 정도 싫음과 고통에 몸부림 쳐야한다.
 
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버릇이 아니란 걸 알고 있는데 모든 걸 뛰어넘고 5만 얘기하다 보니 어떤 친구들은 (비난의 뉘앙스를 담아서) 예언이라도 하느냐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아 고민하고 싶지 않다 설명하고 싶지 않다. 설명 혹은 변명을 하는 것은 멋지지 않다. 간지가 나지 않는다. 혼자서만 아는 수십가지 의미를 넣어서 음습하게 넣어서 글을 쓰고 설명은 하지 않고 뭔가 남 모를 걸 알고 있다는 듯 한 잘난척 하는 자세로 자신감에 차서 행동하고 싶다.
 
가끔 12345를 전부 설명해야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딱히 이유가 없고 순전히 변덕에 의해서이다. 얼마 전에는 회사의 후배가 선배는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일을 하는데 하루 종일 배고프지 않으세요? 라고 질문했다. 실제로 나는 자주 배가 고픈터라 이게 나보고 뚱뚱보라고 놀리는 건지 잘 구분이 들지 않아서 어어 그 정도는 아닙니다 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벌컥 화를 냈어야 옳다.
 
얼마 전 동네를 찾아온 친구와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러면 안됩니다 어린이 여러분들도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해야할 얘기가 떨어져서 순수한 변덕으로 12345를 얘기할 일이 있었는데. 얘기를 다 들은 친구는 그렇게 슬픈 생각을 하며 살 필요는 없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이 블로그나, 나에 대해서 아무 생각나는 것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은 것들을 설명하려고 한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 이 블로그의 글 중에서 제목이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은 그 글을 쓸 당시 내가 자주 들었던 곡 중 하나의 제목이다. 
 
2. 이 블로그는 내가 개설한 블로그 중에서 여섯?번째 정도? 된다. 싸이월드에 적었던 글 중에서 여행기만 따로 모아서 올리는 블로그였는데. 다른 블로그들은 모두 폐쇄하고 이제 이 블로그 밖에 남지 않았다. 내 다른 블로그에서 내 글을 봤던 사람이 이 블로그에 찾아와서 혹시 ㅇㅇ님이 아니신가요? 라고 물어보는걸 인생 내내 두려워했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서 오히려 서운한 상황이다.
 
3. 다른 블로그 중 가장 좋아한 블로그는 텀블러였는데. 다른 언어로 동화 비슷한 괴담을 올리는(인기는 없었다) 곳을 제일 좋아했다. 하지만 내 모든 블로그 중에서 제일 인기가 없는 곳은 바로 여기 티스토리이다.
 
4. 티스토리의 모든 글들이 마지막에 ㅇㅇ년ㅇㅇ월의 글이다. 라고 끝나는 이유는 그게 내 여행기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블로그에서는 거기에 맞는 또 나만의 법칙의 글들을 써댔다. 대부분 삭제되어서 일부는 출력물 형태로 남아있고 일부는 txt로 남아있다. 그걸 복구 하려면 전에 쓰던 데스크탑을 살려야한다. 내 주제에 굉장히 아름다운 글도 몇 개 썼지만 살리는 것은 너무 귀찮은 일이다.
 
5. 다른 블로그를 모두 없앤 이유는. 크게 상심할 일이 있어서 나 자신의 일부를 상실함으로서 그 상심에서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이다. 
 
6. 최근에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299792로 바꾼 이유는 광속의 속도가 299,792,458m/s이기 때문이다. 광속으로 한 이유는 여기서 말하고 싶지 않다. 
 
7. 나는 자주 이런 물리법칙 상 유명한 숫자들로 비밀번호를 해두는데. 꽤 오랫동안 980665로 해둔 적도 있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중력 가속도 (9.80665 m / s2)의 숫자이다. 여기에 지금 비밀번호를 썼기 때문에 또 비밀번호를 바꿀 생각이다. 여러분은 모두 나를 실제로 볼 일이 없지만. 그래도 뭐.
 
이런 물리법칙이나 수학 상의 유명한 숫자들을 비밀번호로 해두는 이유는 예전에 (전에 사귄) 여자친구의 전화번호로 비밀번호를 해두고는 까먹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술을 마셔서였긴 했는데 진짜로 생각이 안나서 2시간 정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980665를 또 까먹을 일이 있을수도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에게 죄송한데 지구의 중력 가속도 좀 검색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라고 해서 집에 들어갈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넌 어느 별에서 왔느냐 첩자 녀석 하고 광선총을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지금까지 그럴 일은 없었다)
 
8. 나는 이렇게 여러가지 숫자로 비밀번호를 해두는데. 지금 집 비밀번호는 예전에 살았던 집의 번지수이다. 다음 집으로 이사 가면 지금 집의 번지수로 바꿀까 생각 중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기억하기 좋기 때문이라기 보다 나의 족적을 잊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동네에서는 6년이나 살았고 이사를 가야한다고 느끼고 있다.
 
9. 대학시절 맘에 안 드는 남학생에 대해서 누가 평을 물어보면 못생겨서 싫어한다. 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실은 굉장히 종합적으로 그 사람이 맘에 안 드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만 12345를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못생겨서 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곤 했다. 
 
예전에 후배J가 후배C를 좋아하는걸 알고 있었는데. C가 어느날 J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C는 이상할 정도로 나를 정신적으로 의지 했는데 J가 C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서 차마 혹평을 하지 못하고 애매한 평 - 어어 나쁜애 아냐-을 하고 말았다. 결국 J와 C는 2,3년 정도 사귀게 되었는데 C가 그 후 왜 그랬냐고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몇년이나 사귀었다고 불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혹평해야할 때는 사양않고 해야한다는 삐뚤어진 교훈을 얻게 되었다.
 
10. 친구L과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건 몇년 전 나의 연애 때문이었다. L은 상황도 이해하고 네 생각도 이해하지만 그런 연애는 하지 말아야 한다 네가 이 연애를 시작하면 다시는 널 보지 않을 것이다. 라고 선언했고. 우리는 그 뒤로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 때는 아니 내가 뭐 만나면 안되는 사람 만나냐 하고 자못 분해했지만. L이 그냥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관계가 망가진 건 전적으로 나의 탓이었다.
 
11. 나는 사실 타고난 동생으로 어리광부리는 걸 엄청 좋아하는데. 사회적 지위도 있고 외관 상 어울리지도 않아서 항상 꾹 참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보이는 차가운 모습이나 짜증나 보이는 모습 중 일부는 어리광을 부리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징그럽게 느껴지겠지만 어쩌겠는가.
 
12. 내가 카레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에게 카레를 만들어준 사람은 모두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있다.
 
13. 내가 그 대학의 그 과를 간 이유는. 외할아버지 댁이 그 대학교 후문에 있었기 때문이고 그 분이 문학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반수를 해서 모 대학 법대를 갈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반수 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말하고 다녔었지만 수능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믿어주질 않았다. 억울하게도 여름에 알바 하다가 날짜를 헷깔려서였는데.
 
14. 내가 말린 무화과를 먹을 때는 대체로 아버지가 보고싶어질때다. 이건 정말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다.
아 왜 말린 무화과냐면 아버지는 석류랑 무화과를 좋아한다. 취향도 이상하지. (향수 필로시코스랑은 관련없다 진짜 징그러운 발상이로군)
나는 아버지 얘기를 좀처럼 안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나와 닮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근본적으로 증오하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아버지를 머릿속에서 최대한 지우고 싶어하긴 한다.
 
15. 나는 어릴 때 부터 감정이 남들보다 흐릿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거의 없었고 동물이라도 된 것 처럼 대체로 아무 생각 없이 행동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도 거의 없어서 친누나는 대학생이 되도록 아무도(심지어 연예인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 쯤 나도 스스로의 이상함을 느껴서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 때 친구가 타이른 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요지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누군가를 잘해주고 싶고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진다면 그건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라는 말이었다. 좋은 집안에서 자란 착하고 예쁜 여대생이나 할 법한 얘기긴 했다. (진짜 친한 친구이다)
 
나는 그 뒤로 몇년이 지나도록 누군가를 좋아한다는게 뭔지 제대로 이해를 못했는데. 서른 살도 넘어서 어느날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좋아한다는게 뭔지 깨달았다.
 
예쁜 사람을 좋아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래 전 내가 술자리에서 찍은 완전히 흔들리고 촛점도 제대로 맞지 않는 후배 한 명의 사진을 보고는 스스로가 가진 애정의 깊이를 한 번도 이해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몇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을 매일 했다. 머리가 이상해지고 그 아이가 했던 이야기 마저 어느 쪽이 진짜였을까 하고 의심이 들만큼 오래되서야 이것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거구나 하고 깨달았었더랬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어리석기 짝이 없다.
 
그 뒤로 나는 가끔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서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이해한다. 기묘한 방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방식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을 사귀기 전에 그 사람이 관광지에서 사진사를 고용해 찍은 사진을 여러장 보여주며 어떤 사진이 마음에 들어?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가 맘에 든다고 고른 사진들은 하나 같이 얼굴색이나 턱 같은 것들이 보정이 되지 않은 사진들이었는데. 그 사람은 좀 질렸다는 듯이 너 나 진짜로 좋아하는구나. 라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16. 평소에 설명하지 않았던 것을 설명하고 있노라니 스스로가 두배는 멍청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난 평소에 진짜의 두배 정도로 스스로를 똑똑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내가 하는 행동의 이유들이란 이렇게 정말 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이구 빌어먹을
 
 
24년 7월 30일의 글이다.
 

어제 새벽 4시, 아니 새벽 5시쯤 자기 시작해서 8시에 일어났다. 별로 하고 싶은게 없어서 책을 정리 하다가 이제 갈 일이 없어진 여행 예약을 취소 하고는 8월 말 까지 무료 취소인 이 예약은 그 때 가서 취소 할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다가 더 바보 같은 생각을 떠올렸지만. 지금 쓰는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12시가 될 때 까지 책을 읽고 있다가 오늘은 만물이 생동하는 주말이니까 분리 수거를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꾸러미에 플라스틱 병과 콜라 캔을 잔뜩 넣고 분리 수거장으로 내려갔다.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니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 쪽 구석에 보라색티에 마스크로 입을 가린 말라깽이 아이 하나가 쭈그리고 앉아 엘레베이터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굉장히 놀라고 동요하여 서로 눈이 마주친 말라깽이 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인사를 하는 것도 못 본 척 하고 밖으로 나가 천천히 분리 수거를 했다. 초등학생? 중학생 정도 되었으려나. 주눅이 든 아이 특유의 표정에 얼굴은 어둡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분리수거장은 그늘 아래에 있었는데도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항상 쓰레기통 주변에서 서성이는 까치도 나무 위 그늘 안 보이는 곳에서 말 한마디 없이 그냥 가지 위에 앉아있었다. 나무 그늘 벗어난 곳의 아스팔트는 지옥처럼 뜨거웠다. 바로 오늘의 일이니까 감히 현재형을 써서 말할 수 있다. 숨을 쉬기가 싫을 정도로 덥다.
 
돌아오는 길에 본 말라깽이 아이는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누군가와 통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워서 탈진 하고 있는 아이 특유의 나른해진 표정이 몹시 신경이 쓰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목이 마른 것도 배가 고픈 것도 쉽게 눈치 챈다. 여자친구들이 대체로 바싹 말라 물도 안 마시는 사람들이었던 탓이 크다.
집에 올라와 화장실에서 보니 아랫 잇몸 중 하나에 피가 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놀라서 입술을 깨물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피는 검고 멍울져있었다.
 
해야할 빨래가 있고. 집안일이 있어서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 머리카락이 아직도 있다. 이걸 다 치우는데는 얼마나 걸리려나 빽다방에 가서 아샷추라도 사와야지 싶었다. 지갑을 가지고 나가는 길에 냉장고의 펩시제로 한 캔을 꺼내 가지고 나갔다. 아이가 있으면 줘야지 목이 말라보였으니까. 아이가 없으면 그걸로 다행이다 쿨팩이라고 생각하고 목 뒤에 대고 카페에 가야지.
 
저기요, 하고 캔을 내밀자 아이는 아주 순순히 캔을 받았다. 말도 안되게 더운데 이미 한 시간 이상 앉아있었던 것 같다. 너무 더울텐데 이거라도 드세요. 하고 말했다. 아이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목이 갈라져서 제대로 말을 못하고 겨우 감사합니다 라고 말한다. 아파트 통로인데도 후덥지근하다.
 
나는 걸어서 10분, 15분 정도 되는 카페까지 걸어가며 생각한다. 내가 돌아갈 때도 아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어떻게 하지. 스마트폰 배터리는 있는 것 같은데 부모가 어디 멀리에서 오고 있는건가.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하는데. 어디에서 봤더라. 콜라에 카페인이 들어있는데 초등학생이면 마시면 안되는거 아닌가. 
아샷추를 샀다. 그것도 큰 사이즈로. 그리고 그걸 들고 평소의 반도 안되는 속도로 느릿하게 걸어간다. 아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어떻게 하지. 곧 1시가 되고 2시가 되면 더 더워질텐데 어떻게 하지.
 
언덕 등성이를 올라가는 나무 계단에서 나는 속으로 애타게 기도한다. 제발 다른데로 가게 해주세요. 걔가 기다리는게 누구이든 이 더운 날에 걔를 그만 기다리게 하게 해주세요.
 
계단에 앉아있는 뒷모습을 보니 다행히 콜라는 마시기로 한 것 같았다.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보니 가끔 동네에서 보이던 중학생인 것을 알았다. 우리 동은 아니다. 우리 동 같은 라인에 친구가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침이면 항상 아파트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아서 전혀 눈치채지도 못했고 그냥 말라깽이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저기, 12시부터 앉아계시지 않았나요? 더운거 괜찮으세요? 아이는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 좀 두서없이 대답한다. 아 친구가 12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자고 있었데여 지금 일어났다고 해서 2시에 만나기로 했어여. 아이는 얼굴에 난 여드름을 가리는 버릇이 있는지 얼굴을 가리며 웃는다. 아 친구라는게 그 못생긴 남자 아이 얘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네. 하고 집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요리를 하려고 아샷추를 한 모금 마시고 손을 씻다가 마음을 바꿔 냉장고에서 탄산수를 하나 꺼내 1층으로 내려가서 아이에게 주었다. 콜라 하나 마시는 정도로 열기가 가셨을리가 없을거고. 그 나이대 남자애들이 흔히 그러듯이 배려 하나 없이 더 기다리게 할 거라는 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까.
그 뭐냐. 친구가 2시간이나 기다리게 하면 그냥 집으로 가세요. 아이는 문자로 따지면 ㅎㅎㅎ정도 될 듯한 웃음 소리를 내며 차가운 탄산수를 받았다. 다시 엘베를 타려고 올라가는데 소리가 너무 크게 나지 않게 조심히 잡아서 탄산수 뚜껑을 여는 소리가 났다.
지금은 고기를 재워두고. 빨래가 돌아가길 기다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은 글을 쓰는 사이 2시 20분 쯤 되었고 지금쯤 말라깽이 아이는 다른 말라깽이 친구를 만나서 원래 하려던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왜 아까 그렇게 놀랐냐고 하면.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고 흘낏 그 아이를 보는데 내 아이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나는 결혼을 한 적도 없고,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이 없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나는 그 새처럼 마른 아이를 잘못 보고 깜짝 놀라 입술을 깨물었다. 잇몸에 고여있는 피를 닦아내자 입술에서 난 피가 다시 이빨에 맺혔다.
 
이상하지 애초에 나한테 아이가 있지도 않았는데 왜 입술을 이렇게 아프게 깨문거지. 하고 또 다시 생각한다.
 
 
2024년 7월 28일 너무 더워서 정신이 이상해버릴 것 같은 날에 쓴 글이다.

(아래의 이야기에는 어떠한 진실도 없다. 진실이 있다면 아버지의 음악 취향 정도이다.)
 


...이런거 물어보는게 너무 쓰레기 같은 질문이지만 우리가 어떤 사이였지?
 
그러니까, 대단한건 아니고. 스마트폰에서 뭔가를 검색하려고 찾다가 우연히 네가 보냈던 문자가 검색에 걸렸어. "ㅖ"인지 "ㅕ"인지 하여튼 모음만 저렇게 쓰는 일은 별로 없잖아. 그래서 네 문자가 나왔어. 너 이상한 오타를 냈더라. 하여간 네가 저 문자를 보낸지 진짜 몇 년이나 지났더라.
번호는 있는데 이름은 지우지 않았고 문자를 주고 받은걸 보니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네가 누군지 하나도 기억이 안나. 이름을 지운 걸 보니 그렇게 좋은 형태로 관계가 끝이 난 건 아니었겠지만 굳이 문자를 지우지 않은 걸 보면 널 완전히 잘라내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지. 근데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두 세번 읽어보았지만 하나도 기억이 안나. 이제 몇년이나 지난 일이니까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겠지만. 문자 타래를 지우려고 하다 보니까 네가 누군지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진>
같이 찍은 사진이 있으려나. 문자를 주고 받은 날 기준으로 앞 뒤 한 달 두 달 정도를 천천히 찾아보자 네가 있을수도 있어. 최소한 너랑 같이 있을 때 찍은 밥 사진이라도 있겠지. 너도 알지만 나는 사진을 좀처럼 지우질 않아. 사진이 없으면 어떤 일들은 너무 쉽게 잊어버리게 되니까. 그거 알고 있어? 꿈은 보통 그냥 머릿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나쁜 꿈을 꾸더라도 그걸 말로 하거나 글로 쓰는 등 적극적으로 기록하려는 행동을 하지 않고 그냥 머리 속에만 담아두고 있으면 금방 잊어버린다고 하더라. 나는 그래서 너무 괴로운 꿈을 꾸게 되면 그걸 잊어버리도록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있어. 잠깐만 내가 너한테 이 얘길 했던가?
 
아 사진. 사진 얘길 하고 있었지. 나는 진짜 사진을 지우는게 힘들어. 사진을 지우면 진짜로 그 시간이 지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래서 내가 아주 싫어하는 기억들에 대해서는 일부러 사진을 더 지우는 적도 있지. 예를 들어 바람을 하도 피우던 여자친구 같은거 있잖아. 사진은 싸그리 지워버렸거든 그래서 몇년이 지나버린 다음에는 걔와 했었던 일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아. 어딜 갔었는지 뭘 먹었는지 그런게 다 흐릿하고 사진 속에는, 예를 들어 수족관 앞에서 바다거북 흉내를 내고 있는 내 사진은 아주 어색하게 혼자 찍혀있지. 그 앞 뒤엔 무슨 일을 한건지 아무 것도 찍혀있지 않아. 아주 잘라내버린 것처럼.
 
너랑 사진을 찾다 보니까. 지금은 해외로 아주 가버린 친구와 찍었던 사진을 찾았다. 정확히는 그 친구를 찍은게 아니라 그 친구와 마지막으로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광고판을 찍은 사진이야. 웃기지만 그 광고판 사진을 보니까 그날 친구랑 무슨 얘길 했는지 내가 얼마나 걔를 좋아했는지가 다 기억나네. 의외라고? 나도 사람을 좋아하긴 해.
근데 너랑 찍은 사진은 없다. 사진을 찍지 않은걸까 아니면 네가 정말 싫어서 찍힌 사진을 모두 지운 걸까.
 
<음악>
뭔가 기록이 있다면 그냥 사소한 실마리만 있으면 네 이름이 떠오를 것 같아서. 그 당시 들었던 음악을 좀 찾아보고 있어. 알고 있지 않았어? 그 때만 해도 나 음악평론 블로그(가명으로)하고 있었을 때니까. 그 블로그 인기도 하나도 없었고 날려버린지 오래지만 그래도 트위터도 그렇고 여기저기에 계속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지는 적어두었거든. 아마 그 때 쯤에도 어딘가 전세계 적으로 아무런 흥행 돌풍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힙합 레이블이나 락 밴드 음악이나 듣고 있었을거야.
그걸 들으면 네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까? 나 네 동생 이름도 완전히 까먹었거든. 네가 누군지도 잊어버렸으니 네 동생 이름이 기억날 리가 없지.
 
하여간 음악은 참 편리하지 않아? 그 때 듣던 노래를 들으면 그 때가 생각나잖아. 사람들이 그래서 유행가를 듣는지도 모르지. 나는 비틀즈를 들으면 항상 어릴 때가 기억나. 주말이면 아버지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곤 했는데 (대부분 할아버지 댁이었지) 아버지 취향이 모차르트 좋아하고 팝송만 듣고 그런 묘하게 속물스러운 구석이 있어서 반쯤 잠이 들어서 꾸벅꾸벅 졸면서 비틀즈를 들었던 기억이 되게 많거든. 아버지의 비틀즈 앨범은 본인이 맘대로 편집한 본인만의 베스트 앨범이라서 비틀즈의 어떤 앨범을 들어도 조금씩은 아버지의 차를 타고 가던 그 밤의 생각이 나. 그래 너한테 이 얘기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한테 비틀즈 뭐 좋아하냐고 물어봤던가? 그래 그 때 처음 LHCB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페니레인 얘기도 한 것 같은데...그건 MMT거든. 근데 나 그 때 아직 20대였는데 왜 비틀즈 같은 얘길 했지.
 
아 근데 딱 너랑 연락 할 때 쯤 들었던 노래 확인해보니까 뜬금없이 한국 대중 가요인데? 심지어 리믹스 버전이고 이 가수의 이 리믹스가 실려있는 앨범은...애플뮤직에도 유튜브 뮤직에도 없어. 음 잠깐만 멜론 딱 한 달만 구독할게. 들으면 뭔가 기억이 나지 않을까?
 
<SNS>
아니. 지금 이 노래 일주일째 듣고 있거든. 적어도 백번은 들었을텐데 아무 기억도 안 나는데? 그냥 좋은 노래란 것은 알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 음악 취향은 나랑 제일 잘 맞는구나. 나 아직도 네가 누군지 생각이 안나. 이름도 생각이 안나.
이럴 때는 일기장 같은게 있으면 편할텐데 나는 일기를 쓰지 않아. 그 뭐냐 일기를 쓰면...나중에 내가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었을때 사람들이 그걸 다 읽을거 아냐. 걱정도 팔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짜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진짜로?
 
근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진짜 궁극의 해결책이 있는데. 내 SNS를 검색하는 거야. 그 날짜에 해당 하는 글을 읽다 보면 뭔가 ...힌트라든가...그런게...아니 근데 나 진짜로 SNS는 예전에 엄청 많이 해서 온갖 블로그를 다 했거든. 너무 괴로워서 죽고 싶을 때 마다 하나씩 태워버려서 지금에야 남아있는 계정이 없지만. 웃기게도 카카오스토리에는 내가 좋아한 그림(그것도 순수 회화만)을 간간히 올리다 보니 없애질 않았고. 인스타랑 트위터도 그대로 남아있어. 몇 번이나 없애려고 했는데 안 없애고 그래도 있다고. 너 그 강남에 강남대로 가기 전에 오른 쪽 골목으로 돌면 있는 건물 3층인가 4층에 있는 파스타집 기억나? 엄청 넓고 사람은 별로 없는데 칵테일을 싼 가격에 먹을 수 있어서 나 거기서 술 엄청 마셨는데. 너랑 몇 번 가지 않았나? 가서 술만 엄청 마신 것 같은데. 거기 사진 정도는...어 아냐 나 거기 너무 어두워서 사진 찍는거 포기했었는데. 사진이 없으니 인스타에 뭔가 남아있을리는 없고. 잠깐만 지금 네가 기억날 것 같았는데.
...
아니 모르는척 하는게 아니고 진짜로 기억 못했어.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당시의 나에게 너는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나봐. 화났어? 근데 내가 정말로 너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어쩔수 없는거야. SNS를 검색하는건...그만두자 진짜 끝도 없는 일이고. 특히 나 내 텀블러 백업해둔 파일 그거 열면 안돼. 아니 진짜로 거기에 네 이름이랑 내가 찍은 네 포트레이트가 있어도 안 열어볼거야. 진짜 안 열어볼거냐고? 어 없는거 알고 있거든 거기 네 이름은 없어.
 
<이야기하기>
그러니까 나는 이제 네가 누군지 알 것 같아. 좀 더 노력을 하면 네가 나에게 했던 말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건 네가 남긴 문자를 볼 때 부터 알고 있었어. 아무도 깨어있지 않았을 것 같은 시간에 보낸 문자라든가. 내가 아무 대중 없이 보낸 문자에 후다닥 보낸 답이라든가. 더럽게 재미없는 얘길 하는데도 웃어준거라든가. 그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너를 내가 통채로 잊어버렸다는게 결국 내가 너에게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걸 알수 있어서. 몇년 아니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갑자기 네가 누군지 궁금해졌어.
다른 무엇보다. 네가 다시 친구를 해달라고 보낸 문자에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어떤 말을 할 자격이 없어.
 
너를 만나지 않게 된 후에 여러가지 일이 있었어. 친구도 많이 생겼고 많이 생긴 만큼 많이 잃었지. 되도 않는 농담을 하면서 살았고 쓰지 않아도 될 글들을 많이도 썼지.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었어 네가 걱정했던거랑 다르게 말야. 왜? 내가 그렇게 세상 끝날까지 사람을 싫어하면서 살 줄 알았어? 
 
너에게 화를 낸 건. 그래 온당하지 못했어. 나는 항상 내가 이성의 화신이라도 되는 듯 굴지만 전혀 그런 사람이 아냐. 형편없는 사람이지. 너에게 그렇게 화를 내선 안되었었는데. 네 상처 받는 얼굴을 봤을 때 그만 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 뒤로도 똑같은 실수를 몇번이나 했어. 그게 어떤 위로도 되지 않겠지만.
 
너는 나에게 과분한 사람이었고. 아마 지금 이 마음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 둘을 구할 수는 없을거야.
...그래도 이 멍청아 내가 널 진짜로 잊어버리기 전에 나한테 뭘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지 그랬어. 나는 아직도 너를 생각하고 있는데 이 밤에 너는 뭘 하고 있냐고.
 
그리고 어쩌지. 나 이제서야 네 이름이 기억났어.
 
24년 7월 26일 비가 오는 날 밤에 쓰는 글이다.

죽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요?
아니요. 그냥 가장 바라는 세계에 다가가는 문제에 관해서예요.
- 코맥 매카시(2023), 스텔라 마리스. p327
 
오늘 퇴근하는 길에 사람들이 몰려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고개를 돌려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쪽을 보니 기가 막힌 토끼 구름이 떠있었다. 여름이었고 비가 그친 후 무더위가 시작하기 전이라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흰 색이었다. 분명 해가 질 때 쯤이면 더욱 멋진 하늘이 되겠지. 색은 보라색에 천국을 암시하는 듯한 형태의 멋진 뭉게구름.
 
나는 그 사람들과 오래 같이 있지 않았다. 그들이 감탄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방금 찍은 멋진 사진을 보내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비웠다. 나는 사진을 찍어도 보낼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부끄러웠던 탓이다. 걸음을 재빨리 해 커다란 회사 공터를 가로지르다가 그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을 깨달았는데.

애초에 나는 이 몇 년간 이런 사진을 보내도 되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머릿 속의 무언가가 잘못되어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완전히 혼자였다는 것을 아무런 계기도 없이 알아채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나는 너무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새빨갛게 된 채로 급하게 게이트를 넘어 집으로 도망갔다.
 

작년 여름, 작가 하나가 죽었다. 아주 유명한 작가이다. 나는 그의 죽음을 제 때에 애도하지 않았지만 세상 중에 만명 정도는 그의 죽음을 제 때에 애도했을 것이다. 아니지 이만명 정도로 하자. 아니 오만명 정도로 할까?
 
이렇게 말하면 안되겠지만 작가는 죽음으로서만 온전한 평가가 시작된다. 살아있을 때는 그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도 있고 그에게 불필요할 정도로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도 있지만. 작가가 너무 유명해지면 무엇보다 "너무 유명해서 싫어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다. 물론 세상에 몇 안되는 독서인구 중에 "너무 유명해서 싫어하는"사람들의 비중이 몇이나 되겠어 라고 얕볼 수야 있지만 말이야 바른말이지, 이런 세상에서 굳이 책을 읽고 앉아있는 사람들 중에는 제정신인 녀석은 별로 없다. 감히 말하건데 독서인구라는 녀석들은 기본적으로 "너무 유명하면 싫어"라는 생각을 갖고 산다. 내기를 해도 좋다.

하지만 작가가 죽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갑자기 사람들은 자비로워져서 그가 현대 문학에 미쳤던 커다란 영향 같은 것을 앞다투어 얘기하고 흑백사진에 생몰을 적어서 올리기도 한다. 물론 너무 살아있는 전설이라는데 책이나 읽어볼까 같은 기특한 생각을 해주는 사람도 줄어들긴한다. 그러니까 어쨌든 죽어야 올바른 평가를 받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의 유명세는 기묘한게, 그의 몇 편의 영화와 그 영화의 명성을 완전히 갉아먹을 정도로 형편없는 시나리오 작업에서도 나타났다. 애초에 문장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희곡을 써도 그의 문장을 제대로 표현 할 수가 없어서 결과물이 형편없어진다고 해야할까.

예를 들어 내가 그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희곡 하나는 더 이상의 캐스팅은 없을 사무엘 존슨과 토미 리 존스의 연기로 영화화 되었는데 아무리 한국어로 읽었다지만 이게 같은 작품이 맞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잠들고 말았다. 중간에 잠이 들 정도로 길지도 않았는데 깨고 보니 엄청 상쾌하기까지 했단 말이지.

그렇게 문장이 아름답다면 시인을 해야하는게 맞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는 시인으로서는 치명적인 단점, 장광설이라는 버릇이 있어서 시인을 하기에는 또 적합하지 않다. 과작의 작가라서 대체로 한가한지 갑자기 뜬금없는 내용을 엄청난 분량으로 쏟아낸다. 주제에 관련이 없는 내용이냐고? 아니 기본적으로는 있다. 그래서 그런 점이 더 화가 난다. 애초에 플롯이 복잡한 작가가 아니라서 줄거리가 10줄 이내로 끝나는 소설이 오백페이지가 넘어간다.
 
오해는 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그의 문장을 정말로 사랑한다. 왠지 집에 자동소총도 다섯 정 정도는 사뒀을 것 같은 노인네지만 (심지어 그는 군인 출신이다 없을리가 없다) 그의 소설의 아름다움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한다.
예를 들어서 멸망한 세상을 소재로 한 소설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바다에 도착한다. 밑의 인용은 그 묘사이다.
 
저 멀리 잿빛 해변이 보였다. 둔한 납빛 물결이 느릿느릿 밀려왔다. 멀리서 소리도 들렸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세계의 해변에서 부서지는 어떤 이질적인 바다처럼 황량했다. (중략) 그리고 재가 그리는 잿빛의 스콜 선. 남자는 소년을 보았다.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파란색이 아니어서 미안하구나. 남자가 말했다. 괜찮아요. 소년이 말했다.
- 코맥 매카시(2006), 더 로드. p244
 
중략이라고 써두었지만 내가 생략한 것은 두 줄 반 정도의 문장이다. 짧고 간결하게 그는 상황을 설명하고 그보다 더 짧고 간결하게 사람의 마음을 묘사한다. 그는 좀처럼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의 문장을 통해서 그 사람들을 볼 수 있게 한다. 하나를 더 보자.
 
고요 속에서 눈이 소곤거리며 내렸고, 불꽃들은 피어났다 희미해지다 영원한 암흑 속에서 죽었다.
- 코맥 매카시(2006), 더 로드. p111
 
이런 글을 쓰는 작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설령 조지 부시 주니어를 지지했다거나(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인터뷰도 아직 보지 못했다) 지구 온난화는 사기야 하고 8기통 차량을 밟으며 다녔더라도 (그가 환경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인터뷰도 아직 보지 못했다) 이런 문장을 쓴다면 남들에게 비밀로 하는 일이 있어도 좋아했을 것이다.
 
내가 요즘 읽고 있는 것은 그의 유작인 연작 소설이다. 작년 겨울에 발매된 책을 이제와서 읽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리 쉽게 잃혀지지 않고 30페이지 쯤 읽다가 며칠을 쉬고 문장 몇 줄을 읽고 한 시간쯤 다른 짓을 하며 천천히 읽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엔 남녀가 나오는데. 남자는 자기를 떠나간 여자에 대한 생각을 십년도 넘게 지난 지금(작중 시간)에서도 멈추지 못하고. 여자는 ... 아니 소설의 내용을 이야기 하는 것은 관두자. 그냥 말하자면, 아주 기나긴 이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정도로 해두자.
 
하여간 유작인 책을 읽고 있노라니. 내가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작품을 읽을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읽으면서 별별 생각을 하게 한다.
그가 정말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인간 존재 내면에 사라지지 않는 고독? 자아와 타자 사이의 갈등만이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게 한다는 거? 모르겠다. 몇주 쯤 아니면 몇 개월  쯤 진득하게 생각해야 알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연구자가 아니니 이러다가 남이 써놓은 글을 읽고는 아이구 그렇구나 그런 내용이구나 하고 납득 할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성을 초월한 이치 같은것이 인간이 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가 직접적으로 "이것은 스파게티의 화신이다." "이것은 정부 관료제의 화신이다." 뭐 이런 설명을 집어넣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인간을 초월한 것이 분명한 것들 나오고. 평범한 인간인 등장인물을 말 그대로 박살내어 버리는 전개가 많이 등장한다. 어떤 초인 판사가 등장하는 서부 배경의 소설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소설에서는 그가 문명의 화신 비슷한 것이란 걸 잘 숨기지도 않으며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등장 인물은 그 초인 판사의 손에 의해 말 그대로 박살난다. 말하고 보니 무슨 히어로물 같은데. 살인 강간 강도 방화 이 모든게 나오는 끔찍한 소설이다.
 
그런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는. 구원 받지 못하는 인간이다. 무언가를 구하겠다 는 의지를 가진 인간은 반드시 실패하고 그들을 정말로 구하는 것은 글쎄... 작중의 등장 인물들을 정말로 구하는 게 한 번이라도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곰곰히 생각해봐도 기억나는게 없다.
그들이 받은 구원은 얄팍하고 불안한 것이고, 우리가 읽지 않는 동안 책 바깥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져서 순식간에 모든 등장인물들이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은 연약하다. 그들은 정말로 순간. 딱 어느 순간만 구원 받는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해야할지 우리의 필멸의 여정 중에 주어지는 잠시간의 위로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왜 갑자기 이 작가에 대해서 쓸 생각이 들었지 싶었는데. 잠시 서재에 앉아서 생각해보니 스스로 나에게 주어진 구원이 몹시 얄팍한 것이고 한 번도 구해진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아 빌어먹을. 서부극에 혼자 당나귀를 타고 가다가 머리에 총을 맞고 죽는 소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작가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닐텐데 왜 이런거에 꽂혀있지 하고 쓴 웃음이 나온다.
 
그래. 오늘 다른 사람의 책으로 가득찬 방에서 내가 정말로 혼자라는 생각을 했다. 한 번도 혼자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그래서 지금 글을 쓰다 말고. 그가 쓴 작은 희곡의 문장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그 희곡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구하려고 대화하는 내용 밖에 없는 책이다. 마지막 문장은 기억나지만 구원을 거부하고 떠나는 사람의 마지막 말이 뭐였더라.
 
결국 원하던 구절이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글을 쓰길 그만두고 서재를 뒤져가며 책을 찾아보려고 한다.

어째서인지 책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나는 필사적이 되어서 제발. 제발이라고 중얼거린다. 중얼거리다 못해 제발, 이라고 기도한다.
 
 
이제 댁이 뭘 구한 건지 알겠지요.
구하려고 했지. 구하려고 하고 있고. 열심히
- 코맥 매카시(2006), 선셋 리미티드. p135
 
24년 7월 24일의 글이다. 

사람이라면 모두 다 그런 것처럼, 나에게도 "나의 나무"가 있다.

"나의 나무"가 무엇인지 설명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나로서는 나의 나무가 없는 사람을 상상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긴 하겠다. 예를 들어 아직 나의 나무가 있어본 적이 없는...그러니까 한 3살 쯤 된 사람. 아니면 다른 별의 지적 생명체가 지구 문명의 멸망 후 인류 문명의 서버들을 어렵게 돌려서 내 글을 읽고 있다거나. 해독에 수고하셨지만 다른 별의 사람이여 이 글에 뭔가 유용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뒤로 가기를 눌러 어딘가에 있는 알콜스왑으로 물건 이리저리 닦아보기 포스팅이나 읽어보십쇼.

짧게 설명하자면, 내가 말하는 "나의 나무"는 살아가다 특별히 사랑하게 되는 나무를 뜻한다. 오에 겐자부로의 유명한 에세이집 <'나의 나무' 아래서>에는 소년 겐자부로가 몹시 사랑하여 자주 그 아래에 앉고, 마음이 외롭거나 할 때 위안을 받았던 커다란 나무 이야기가 나오는데.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쓴 에세이 중에 안 그런게 있는가 싶겠지만) 우습고도 슬픈, 무력한 소년시절을 쓴 이 에세이에서 그는 2차 세계 대전 중의 일본이라는 가혹하고 잔인한 시대에서 아니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자기가 사랑했던 그의 ”나의 나무“에서 나즈막한 기도나 오래된 이야기에게서 얻는 그런 위로를 받습니다. 훌륭한 책이랍니다. 아동 대상의 에세이지만 그의 다른 소설들 보다 나은거 아냐 싶을 정도니까.

아주 어릴 적에 내가 가졌던 "나의 나무"는 관목처럼 키가 작은 단풍나무였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뜰에 심어진 관상용의 나무이다. 크게 자라지도 굵고 단단하게 자라지도 못한채 자라버린 나무였다. 원래 그럴 태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 그 나무를 볼 때는 내가 너무 작았는데도 다른 나무보다 눈에 띄게 작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십 몇년이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는데 오래된 단지인 만큼 단지의 나무들은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어떤 나무들은 5층 짜리 작은 아파트의 건물 높이 만큼이나 자라났지만. 그 단풍나무만은 좀처럼 자라지 않았다.

- 그 이유는 (아니 정말 그 이유에서 였을까) 내가 어린 시절부터 그 나무에 원숭이처럼 매달려 괴롭혀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릴 적 책을 읽지 않는다면 단지의 뜰, 아니면 주변의 야산을 쏘다녔는데. 무당벌레나 꿀벌을 수십마리씩 산채로 모으거나 개미들 위에 과자를 뿌려 개미들이 그걸 옮기는걸 구경하는데 영원같은 시간을 썼지만 그것이 지겨워지면 대체로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아마 다른 나무는 내가 오르기엔 너무 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그 나무에 매달렸을 것이다. 나무로서는 정말 곤란했을게 틀림없는데 어딘가에서 나무는 가지만으로 생식이 가능하다는 걸 읽고는(그건 아마 접붙이기에 대한 이야기였을텐데) 그래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단풍 나무의 싱싱한 가지를 몇개 부러트려서는 그 근처에 심고 물을 주고 그랬었다. 아니 못되쳐먹은 꼬마였네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내가 점점 커지는 동안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더 쉬운 나무타기 상대가 된 그 작은 단풍나무는 결국 어른이 되어 무슨 교목처럼 키가 커진 나보다 작아지게 되었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렇게 된건 역시 내가 중학생이 되도록 그 나무에 매달려 지냈기 때문 일 것이다. 부드럽고 탄력있게 휘는 그 가지에 나는 더 커지고도 가끔 매달려보곤 했는데 부러질까 두려워 체중을 실을 수는 없어도. 어두운 밤 집에 돌아오는 길 역시 아무런 이유 없이 무슨 불길한 징조라도 되는 양 양팔로 가지를 잡고는 대롱대롱 매달려 마음이 내킬 때 까지 있곤 했다. 전세계의 소년소녀 모두가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한참 그렇게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역시나 그 작은 나무를 사랑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재건축으로 사라졌다. 나무들은 잘리거나 파내어졌다. 13동 앞에 서있던 커다란 백목련이나 6동 뒤로 줄지어 서있던 포플러는 아마 파내어져 팔렸을 것이다. 단단하고 곧은 훌륭한 나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작은 단풍나무는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너무 매달려 커지지 못한 단풍은 그냥 잘려졌을 까 아니면 어느 좀 마음 착한 인부의 손에 파내어져 여느 부지의 정원 구석진 곳에 심어졌을까? 운이 나쁘자면 또 어디 학교의 운동장 같은 곳에 심어져 원숭이 같은 인간놈들을 세명씩 네명씩 매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단풍나무 생각을 하며 한번 알아볼까 싶다가도 자기 땅 한평 없는 월급쟁이가 나무의 행방을 알아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금세 그만둔다.

나무에게서 위로를 받는다는 게 우스운 이야기이긴 하다. 나무가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쓰다듬어 주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그 등치에 기대거나 그늘 아래 앉는 것 뿐인데 나무로부터 위로를 받는다니. 인간은 정말 제멋대로가 아닌가. 우리가 나무를 사랑하든 증오하든 나무들이 우리를 구분이나 할 수 있으려나, 우리가 나무에 울분을 터트리고 주먹을 휘두르고 그 아래에서 눈물을 흘린다고 한들 나무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싶다. 그저 바람소리에 맞춰 그 가지를 흔들고 나뭇잎 부서지는 그 소리와 함께 그늘을 내려 볕을 가리기나 할 뿐이지.
말하자면 나의 나무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그림자다.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어서 우리는 그저 서있을 뿐인 나무를, 그 그늘과 단단한 침묵을 사랑하고 마는 것일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나의 나무란 대체 그런 것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을 생각하듯이 나의 나무를 생각한다. 어쩌면 당신을 나의 나무를 그리워하듯이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학 시절 내가 좋아했던 나무는 단과대 옆에 서있었다. 7층에 있는 학생회실을 나와 창가에 서면 보이는 커다란 나무로. 여느 건물 3층 4층 까지는 닿을 듯한 여름이 되면 가지를 사방으로 뻗는 나무이다.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사방으로 뻗은 가지들과 풍성하게 매달린 나뭇잎들이 일제히 흔들려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나는 어느 봄 학교에 처음 들어가 혼자 어슬렁거리다 문과대 창을 통해 나무를 보고는 한눈에 그 나무가 마음에 들어 매일매일 혹은 기회가 날 때 마다 창가에서 나무를 바라보았다. 질리는 일은 없었다. 복학을 하고 돌아왔을 때도 처음 한 것도, 졸업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것도 7층에 올라가 그 나무를 바라본 것이었다. 나의 학교 생활은 멍청하고 한심한 일화들과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읽은 책들, 그리고 변하지 않고 철이 되면 바람에 흔들려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번 겨울 볼일이 있어 학교에 돌아가 보니 그 나무는 있던 자리 그대로 있었으나 커다란 가지 대부분이 잘려져 있었다. 눈이 내렸지만 어떤 눈송이도 나뭇가지에 매달리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또 7층에 올라 나무를 바라보고 나무가 내던 소리를 떠올렸다. 항상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23년 2월의 글이다.

얼마 전 이상한 일이 있었다.

무선 이어폰을 끼고 화장실에 가며 폰을 자리에 놓고 가는 바람에 화장실 문을 닫자 블루투스의 신호가 끊겨 듣고 있던 노래의 재생이 끊겼다. 이상한 일은 노래가 끊겼던 일이 아니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싶어 볼일을 마치고 나오며 무선 이어폰을 재작동하자 듣고 있었던 한국의 유행가가 아니라 낯선 외국어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흥겨운 리듬의 곡이다.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인데도 아는 노래처럼 느껴지는 건 보컬이 내가 예전에 많이 듣던 곡의 가수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운 기분이 들어 노래를 몇 분 정도 듣다가 사무실의 자리로 돌아와 내 스마트폰을 보았다. 노래는 역시나 내 폰에서 재생되는게 아니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분명 다른 사람의 신호가 - 사무실 내에서 나와 같은 종류의 스마트폰을 쓰는 누군가 - 섞여서 들어간게 아닐까. 아주 예전 라디오로 음악을 듣던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일이다. 아니 그 때는 다 유선 헤드폰과 이어폰이라 그럴일이 더욱 없었으려나. 낯설고도 익숙한 외국의 노래에 아쉬운 기분 반으로 무선 이어폰 연결을 다시 설정해 내가 처음부터 듣던 노래를 들으려는데 문득, 어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익숙한 음악의 가수가 누구였지? 아니 것보다 그 가수의 그 노래, 내가 엄청 많이 들었는데 그게 제목이 뭐였지? 진짜로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나는 그리 부지런한 음악 감상자가 아니다. 스트리밍의 시대에 나만 그런 것은 아닐꺼야 하고 혼자 하고 혼자 듣는 변명을 해본다. 유튜브와 애플뮤직 두 개나 굳이 음악감상 앱으로 쓰는 것은 그냥 해둔 구독을 해지하지 않을 뿐이다. 스포티파이까지 쓰기에는 너무 듣는 노래만 들으며 멜론을 쓰기에는 내가 너무 속물이다.

컴퓨터가 되었든 스마트폰이 되었든 파일을 어딘가에 저장하던 시절에는 나름 분류도 하고 태그도 하면서 음악을 들었던 것 같은데. 요즘 음악감상 앱의 알고리즘은 너무 편리하여 어떤 가수의 곡을 하나 고르면 자동으로 그 다음곡이 알아서 흘러나온다.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고 어떤 기분인지 쓰면 검색이 괜찮은 재생목록을 골라준다. 생각은 필요 없고 그냥 기분만 있으면 된다.
앨범 전체를 들으며 앨범 전체의 구성을 하나의 음악을 듣는 것처럼 듣던 그런 감상법도 딱히 필요 없다. 하나의 좋은 곡이 끝나면 그것과 비슷한 그리고 더욱 포퓰러한 음악을 골라주니 항상 클라이막스만 골라서 신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얏호. 그러다보니 장르에 대해서도 가수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없다. 제목을 외울 필요도 없다. 그게 뭐 어때서요 라고 묻는다면 나도 솔직히 그게 싫다는 것도 이래선 안된다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 시대에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대체로 "소유"와 비슷한 의미였던 것 같다. 꽤 비싼 돈을 들여야만 음향기구를 갖출 수 있었고 LP나 CD, 이도 저도 아니면 Tape라도...하여간 물리적인 매체를 사서 듣는 것이 중요했다. 나도 CD의 부흥 무렵에 태어나서 그런지 그 후 대용량의 인터넷 회선이 당연한 시대가 되자마자 음악을 모으는데 열중했다. 유명한 당시의 유행가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의 유행곡을 하드에 저장하고 CD로 다시 리핑해서 들었다. 각자 컴필레이션 CD를 만들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이 로맨틱한 제스추어였던 시대이다.

나는 음악 수집에 꽤나 악질이라서 한국인은 나말고 아무도 모를만한 음악을 폴더로 정리하고 들으면서 뿌듯한 기분을 느끼고 때때로 인터넷에 잘난척하는 글을 써댔다. 아무도 모르는 음악에 대해서 글을 쓰니 조회수는 두자리수나 겨우 올라가고 가끔 달리는 댓글은 저 말고 이 아티스트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 분이 계셨군요 어쩌고 하는 역시나 잘난척 하는 댓글들 뿐이었다. 복제된 컨텐츠의 시대일 수록 나는 내가 가진 데이터 베이스의 방대함과 희귀함에 (그리고 그걸 몹시 싼 비용 그러니까 드는 비용이 오직 나의 차고 넘치는 여가 시간인데, 생각해보면 10대 20대의 청춘만큼 귀중한 싸구려가 어디있을까 제기랄, 하여간 몹시 싼 비용으로 구축한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자부심을 가졌다. 이런 취미는 본질적으로 몹시도 궁핍한 것이어서, 동시대 한국인의 기준으로 성의만 있으면 가능한 것이라 자부심을 가질 이유는 한 개도 없었는데 말이다.

요는, 한 때 나는 음악을 모으는 것과 듣는 것 모두에 시간을 마음 껏 낭비할 수 있었으며. 엄청난 시간을 다양한 음악을 듣는데 쏟았지만 거기에는 어떤 깊이도 없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하드디스크를 채우고 리핑된 CD에 네임펜으로 사람들은 알아주지도 않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적는게 내 취미였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뒤의 결말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났다. 시대가 변하고. 인터넷이 더 발달하였으며 회선은 빨라졌다. 서버의 운용비용이 더 낮아지자 음악파일을 다운받는 시대에서 스트리밍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각 음악 사이트는 통합되었으며 결국 내 하드와는 상대도 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음악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더 멋진 (더 멋진?) 음악 저장고를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게 되자 금세 음악 모으는 것을 관두었다. 그랬던 것 같다.

애플 뮤직의 초기에는 전처럼 재생목록도 만들고 했던 것 같지만 뭘 쳐도 거기에 음악이 있는데 내가 뭐라고 개인 음악 저장고를 유지한단 말인가. 제기랄. 하지만 노래를 모으게 되지 않게 된 무렵부터 나는 그렇게 열심히 음악을 듣지 않게 되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테니 단순히 말하긴 어렵겠지만 어느새부터인가 나는 더 이상 음악을 취미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외국 어딘가의 음악감상 카페에 들어가 커피 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인 불편한 자리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한참을 울던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간건지 본인인 나 조차도 알수가 없다.

이제는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그 노래가 유럽의 곡이 아닌건 알 수 있었다. 제목도 영어가 아니다. 유튜브에서 재생했던가 싶어서 재생 목록을 찾아보다가 1,2년 어치의 검색을 해서 나올 곡이 아니란걸 깨달았다. 샤잠 같은 곳에 콧노래로 노래를 불러보다가 내가 일반인 뺨치는 음치라는 걸 다시 기억해냈다. 기억나는 키워드로 구글링을 해보기도 한다. 무슨 짓을 해도 나오지가 않는다.

결국 집에 가는 길에 내 트위터를 검색했다. 나는 꽤 오랫동안 맘에 드는 노래는 유튜브 링크를 트위터에 올리곤 했는데 키워드 유튜브로 내 트위터를 검색하면 분명 제목이 나올 것이다 싶었다. 제목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러니까 왜 그 정도로 특이한 노래인데 제목을 기억못하는가 싶지만 하여간 내 트위터를 검색했다. 정말 다양하게 이상한 노래를 엄청나게 들었구나. 1년치를, 2년치를, 3년치를 넘어갈 시점에서 노래를 하나 찾았다.

원래 기억하고 있었던 것과는 다른 부분도 있고 가사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것은 애초에 내가 전혀 모르는 외국어 (포르투갈어였다)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활동한 것은 1979년에 내가 듣던 곡은 1972년에 발표한 노래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찾아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애초에 이 곡을 왜 듣게 된건가 싶어서 생각해보니 나는 한 때 남미의 재즈를 엄청나게 들었는데 그 때 이어졌던 것 같다. 왠지 그리운 기분으로 노래를 듣고 또 유튜브가 이어주는 다른 노래들도 따라 들었다. 아 역시 좋은 노래들이다.

글을 쓰는 지금은 다른 곡을 듣고 있다.
유튜브에도 애플뮤직에도 없는 한 15년 전 쯤 발매된 곡이다. 혹시나 싶어서 검색해봤는데 역시나 한국의 스트리밍 사이트에나 있는 곡이다. 분명 내 하드 어딘가에 앨범 전체를 추출한 (그렇다 나는 앨범도 엄청나게 사댄 사람이다) 파일이 있을텐데 지금은 들을 길이 없다.

만오천원이든 구천구백원이든 결재해서 들어볼까 하다가 미리듣기로 음악을 들어본다. 듣고는 너무 좋아 한 번 더, 그리고 한 번 더. 그렇게 글 하나를 통채로 다 쓰는 동안 1분간의 미리듣기를 반복한다.


이 노래가 이렇게 좋았던가 아니면 내가 미리 듣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좋게 느껴지는 걸까. 그건 스트리밍 시대에 살고 있는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22년 12월 30일의 글이다.

브라우저를 열고 닻이라고 검색한다.
이미지 검색 결과에는 우스울 정도로 비슷한 아이콘 이미지들만 가득하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낡고 검고 상처입어서는, 누군가의 몸뚱아리처럼 조용한 닻의 사진이었다. 조금 더 이미지를 스크롤해보다 생각을 달리해서 키워드를 바꿔 검색해본다.
어릴 적 나는 누군가에게 닻이 무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단어의 뜻을 물어보는 일이 좀처럼 없고 제 멋대로 단어의 뜻을 상상해보는 버릇이 있어 상대는 신기한 마음이 들었나보다. 나를 쳐다보며 뜸을 들이더니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잡아주는 무거운 추가 닻이야. 라고 말했다. 나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뾰로통해져서는 물었다. 왜 배가 떠내려가면 안되는데? 그러니까 말야 왜 배가 그냥 가버리게 내버려두면 안되는거야?

나는 예전에 꽤 오랫동안 새벽3시가 되면 잠에서 깨어났다. 그냥 깨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공포에 질리거나 아니면 울부짖으며 잠에서 깨어났으며. 잠에서 깨어나면 때때로 오열을 했고 가끔은 바로 다시 잠들었으며 대부분 두통약을 삼키고 그대로 누워 해가 뜨길 기다렸다. 다른 사람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두통약이 고통을 잊는데 도움을 줬고 밤에 겪는 고통보다는 살짝 더 견디기 쉬운 소화불량과 가끔 좀 버겁게 느껴지는 위통을 대신 주었다. 나중엔 이틀에 한 번은 두통약을 샀고 결국 나중에는 두통약을 200알 단위로 샀다. 일본 아마존은 가격이 싼 대신 약물 오남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충고도 해주지 않았다.
글쎄 어째서 새벽 3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만났던 연애는 긴 짝사랑에서 이어진 연애였는데. 정작 연애는 길지 않았고 이별 후의 매일은 내가 얼마나 그 사람을 좋아했는지, 아니 사랑하고 있는지를 되새기는 길고 지루한 과정이었다. 술을 마셨고 아무 약속이나 잡아서 나다니고 금세 우울해져서 아무도 듣지 않을 노래들을 듣고 다녔다.
헤어진 뒤 그 사람과는 밥을 먹을 기회가 두번 있었고 몇번인가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다. 우리가 운명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집이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었는데, 어찌됐든 나는 그럴 때 마다 과하게 행복해했다. 어느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람이 심하게 불어 무엇이라도 저 편에서 날아오지 않을까 싶던 날. 언덕에 올라 고개를 들어 뒤를 바라보니 하늘이 맑았고 구름은 가벼워 바람소리와 저 멀리 자동차 소리 말고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때 내 일부의 어떤 것이, 아주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겨온 어떤 것이 정말로 물질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나를 떠나 휘익—날아가버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뭔가가 차오르는 것을 꾹 참아가며 성지순례를 하는 기독교도처럼 다리를 끌며 집으로 걸어갔고 집에 문을 따고 들어오자마자 문자 그대로 무너져 통곡했다.

그 뒤로 내가 새벽3시에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최소한 그랬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아주 오래 전 일이 되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었다.

오랜만에 새벽3시에 잠에서 깼다. 1분도 어기지 않은 그 시간이다. 아직 추분이 되지 못한 한 여름의 하늘도 그 때는 어둡고, 나는 몹시도 혼자여서 무시무시하게 겁을 먹은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잠이 오길 기다렸다.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꼭 몸이 물에 녹아, 남겨진 마음만 돌처럼 가라앉고 잊혀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과 초에 묶인 사람처럼 마음이 답답해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방을 치우고 입으로 소리를 냈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할 수만 있다면 발을 구르고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나는 나는 여기에 있어. 하고 말이다.

그러던 중 나는 닻의 이미지에 마음이 도달한다. 물 속에 조용히 잠겨서 배가 움직이지 않도록 묶어둔 무겁고 거대한 추. 물은 어둡고 더러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닻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나는 문득 그 닻이 꼭 내 몸뚱이처럼 느껴져서.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묶어둔 것이 따개비가 가득 붙고 녹색 해초들이 치감고 있는 내 몸이 아닐까 싶어져서. 황급히 일어나 거실의 불을 켜고 다시 끈다. 그렇게 하면 내 운명이 나에게로 주의를 돌려 내 목숨을 구해주기라도 할거란 듯이.

나는 그렇게 몇 번 더 새벽3시에 일어났다. 빈도는 점점 늘어나고 아마 곧 나는 매일 매일 그렇게 일어날 것이다. 내 운명은 왜 이렇게 천천히 다가오는 것일까. 하고 나는 울먹이며 말한다. 그리고 불을 켠다. 다시 끈다. 그리고 다시 켠다.

22년 7월의 글이다.

20년 11월 어떤 기사가 올라왔다. 시부야역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사망한 중년여성에 대한 기사로, 사인은 외상에 의한 지주막하출혈 - 뇌출혈의 일종이라고 담담하게 적고 있다. 뒷통수를 둔기로 가격당해 죽은 것이다.

며칠 뒤 확인된 사건의 개요는 간단했다. 죽음의 현장이었던 곳은 버스 정류장의 벤치로, 차가 끊기고 시작하는 그 짧은 심야 시간에 버스 정류장의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곤 했던 64세의 노숙인 오오바야시 미사코씨를 마음에 들지 않아한 한 남성이(그는 현장 근처에서 살고 있는 주민으로 알려져있다) 그를 돌을 넣은 페트병으로 가격하여 - 그 남성은 죽일 생각이 없었다고 하였으나 - 살해한 것이다.

단신으로 처리 될지도 모르는 기사에 특이한 점이 있었던 걸까? 통행인이 많은 시부야 역의 일각에서 일어난 그 죽음의 무참함 때문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신이 발견되었을 당시 그에 대해 신분을 증명 할 만한 것들이 없어서 최초 신원 불상으로 발표되었던 이 사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신의 신분이 밝혀지게 되었고 범인은 그 후 일주일도 안되어 체포되었다.

내가 읽었던 기사는 범인이 체포된 시점의 기사로. 거기에는 가해자에 대한 긴 설명과 말도 안되는 변명도 같이 적혀 있었으나, 나는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싶지 않기에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가지 매체에서 찾아 퍼즐을 맞추듯이 알아내었다. 피해자 오오바야시 미사코씨는 노숙인으로 시부야 근처의 사람들에게도 안면이 알려져 있었던 사람이었다. 다만 사람을 피하는 노숙자치고도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극히 꺼렸는데 노숙 생활을 한 것은 올 11월을 꽉 채워서 생각해도 9개월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히키코모리로 살면서 평생 거의 일을 하지 않았던 가해자와는 달리 30년이 넘게 일을 하면서 살았던 것이 된다. 

그는 20년 초 까지는 도내의 아파트에 혼자 살 고 있어 주거지가 안정되어 있었고 올 2월 까지도 파견직으로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주로 시식 업무를 담당하며 살아왔지만 최근 Covid-19의 확산으로 슈퍼마켓에서의 일자리를 잃었으며, 결국 어느 시점에선가 집세를 내지 못해 아파트를 나와 노숙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발표하였다.
다만, 전술한 바와 같이 노숙을 하고 있으면서도 행색이 깨끗하고 몸가짐이 바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냥 보기에는 전혀 노숙인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시부야의 버스 정류장에서도 버스의 막차가 끊기고 첫차가 오기 전의 아주 짧은 시간에만 잠시 쉬어가려는 듯이 벤치 위에 앉아서 쉬기만 하였다고 하며 누워서 자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고 주변의 시민들은 말하고 있다.
또 그가 항상 똑같은 시간에 앉아있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노숙인인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어쩌면 그가 노숙을 시작한 이후 짐을 두고 있는 다른 생활 공간이 있었고 단지 버스 정류장의 벤치는 밤을 잠시 피할 피난처 같은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찰이 그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3일이 걸렸다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는 대해 결혼을 한 적이 없으며, 아이를 낳은 적도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꼭 그가 아무도 찾지 않을 사람이었다는 듯 한 설명이었다. 죽음의 순간, 오오바야시 미사코씨의 주머니에 들어있던 것은 8엔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일본의 매체들이 8엔의 무상함과 비참함을 표현하려는 듯이 기사의 제목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보도된 후 시민들이 시부야에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우리가 그 일 수도 있다고 시위를 했으며 그 모인 숫자가 1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은 제목에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몇개월이 지났다. 그의 죽음 이후 나는 계속해서 NHK 등 주요 언론매체에 그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왔지만 12월 이후 더 이상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의 죽음 이후로 일본사회에 무엇인가 바뀌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이 일본사회의 병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떠한 분열과 개인의 파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더 이상 그 기반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 여러 산업 분야에서 중소 사업체는 무너져가고 실업자들이 쏟아져나온다. 투입한 자본을 돌려받지 못해 계속해서 무너져가는 사업체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차라리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한쪽 켠에선 자신이 이제까지 쌓아온 기술과 숙련을 인정받지 못하고 비숙련 노동자로서 불완전한 고용상태에 몰리고 있다. 그들을, 아니 우리를 지탱해줄 그물은 어디에도 없고 다들 서로의 눈치를 보고 고개를 숙이며 일자리를 잃은 것이 우리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눈짓을 몰래 보낸다.
 
여기 숫자가 또 몇 개 있다.
옥스팜은 20년 4월 Covid-19으로 인해 전체 소득이 최고 20% 감소 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으며 이 경우 극빈층은 전세계적으로 4억 3천5백만명이 늘어 총 9억 2천 200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하였고, 월드 뱅크는 20년 10월 극빈층이 7억 3천만명으로 늘어났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월드 뱅크는 덧붙여서 이전까지 극빈층은 저학력의 농업 종사자들이 많았으나 현재는 기본 학력을 갖춘 도시 노동자들 사이에서 극빈층이 늘어나고 있음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하였다.
같은 날 발표 된 미국의 재산 분석 전문기관 웰스엑스는 순자산 3천만 달러 이상을 보유한 전세계 갑부들의 수가 23만 8천여명에서 28만 여명으로 늘었으며 세계 갑부들이 5개월 동안 늘린 재산은 6조 83백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 모든 보고서는 오오바야시씨의 죽음 이전에 발표되었다. 나는 이러한 현상들이 인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부를 쌓은 사람들이 악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왕정에서 왕에 대한 무모하고 절대적인 충성이 죄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추구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 될 수 없다. 때때로 나는 그것이 우리 현재의 유일한 선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한다.
하지만 나는 숫자와 숫자화 된 사람들의 이름들을 떠올리고 이 모든 현상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단일화된 현상이 아닌가 의심한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우리 등 뒤에 있는 사람들을 잊어버리게 된다면,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잊어버리게 된다면. 우리의 세대와 우리의 땅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신의 등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쌓아올린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지운다. 그리고 다시 글을 써내려간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서.

21년 4월의 새벽의 글이다.

...
얘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주 옛날의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주 최근의 일도 아닙니다. 때는 숲 속에서 농사를 짓는 동물들이 늘어나 열매를 줍는 동물들보다 농사를 짓는 동물들이 훌륭하다는 여겨지는 평판이 생겨났고 비버씨가 댐을 만들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공터를 크게 늘려 더 많은 동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소리씨는 어째서인지 농사를 짓는 것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가끔 사촌인 비버씨네나 이웃의 곰씨네의 밭에서 도움을 줄 때도 있었지만 한가한 시간에는 강변에 나가서 진흙을 골랐습니다. 아주 이상한 취미가 있었기 때문이죠. 오소리씨는 그릇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릇이라고 해도 여러분 집에 있는 그릇들 처럼 편리하고 멋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냥 진흙을 이렇게 저렇게 빚고 말려서 나무 열매 정도 넣어 둘 수 있는 물건들입니다.
오소리씨의 사촌인 비버씨는 그런 오소리씨가 맘에 들지 않았답니다. 손재주가 아까웠던거죠.
며칠을 고민하던 비버씨는 그날도 강가에서 진흙을 모아 가던 오소리씨에게 댐을 만드는 일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네 취미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 우리가 하는 일은 밭과 논을 늘리는 훌륭한 일이야. 오소리씨는 고개를 끄덕이죠. 비버는 오소리씨의 유일한 사촌이었고 훌륭한 비버가 하는 말이니 옳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비버는 아직 그릇의 훌륭함을 모르고 있어. 내가 장돌뱅이 개미햝이가 보여준 것 같은 흰 그릇을 만들어내면 알아줄지도 몰라.

오소리씨는 여름 동안 비버가 댐을 만드는 일을 열심히 도왔답니다. 비버의 댐은 나날이 갈수록 크고 튼튼해져갔죠. 해가 화창한 날에는 댐의 위쪽 끝에 햇볕이 하얗게 내리쬐어 오소리와 비버는 그 위에 누워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마른 여름이었지만 비버의 댐이 모아둔 물 덕분에 어떤 동물도 목이 마르지 않았죠.

눈을 감고 햇볕을 쬐던 오소리씨는 말했습니다. 비버, 나는 잠시 구릉지대에 다녀오려고 해. 나에게 여름 동안의 삯을 계산해주지 않겠어? 비버씨는 깜짝 놀랐죠 가을이 된다고 해서 댐의 공사가 끝나는건 아니었으니까요. 증축이 끝나면 보수공사가 있고 또 비버씨는 자신의 밭도 일구어야 했으니까요. 구릉지대는 왜 다녀오려는거야? 라고 묻자 오소리씨는 거기 좋은 흙이 있대 그 흙만 있으면 흰 그릇을 잔뜩 만들 수 있다던데. 라고 말했죠. 비버씨는 또 그릇 얘기냐 하고 한숨을 쉬었지만 오소리씨에게 나무 열매를 잔뜩 주었죠. 겨울이 되기 전에 돌아와. 내년 봄이 되면 새끼 동물들이 늘어날거고 숲에는 공터가 더 필요해.

비버씨는 그렇게 혼자서 오소리씨를 기다렸어요. 겨울은 금방 왔어요. 해가 길어지고 숲의 어떤 넓은 공터에도 겨울의 긴 햇볕과 그림자가 늘어져 동물들은 어떤 계절보다 더 게으르고 행복하게 하루를 보냈죠. 비버씨는 눈이 내리는 날이면 댐의 위를 돌아다녔습니다. 오소리씨와 같이 쉬던 댐의 끝에 다다르면 코를 킁킁 거리며 먼 곳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구릉은 멀고 이미 겨울이 되었으니 겨울이 지나고 오는 게 좋겠군. 비버씨는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봄이 되었습니다. 그 해의 봄은 유독 영원처럼 긴 봄이었지요. 많은 동물들이 새로 태어났죠. 봄이 왔으니 천천히 출발하면 여름에는 도착하겠어. 비버씨는 일을 도와줄 일꾼들을 뽑았어요. 동물들이 찾아와 새끼들이 태어났으니 공터를 더 늘려야 한다고 부탁을 해왔기 때문이죠. 오소리가 감독을 해줬으면 편할텐데...

그 영원 같던 봄은 아주 길게, 그리고 빠르게 사라졌고 금세 여름이 되었어요. 그 해 여름엔 비가 많이 오지도 적게 오지도 않았습니다. 동물들은 열심히 일했죠. 이제 비버와 오소리 둘이서 만들던 시절보다 댐은 훨씬 훌륭해지고 튼튼해졌어요. 다른 숲의 동물들이 기웃거리며 찾아와 댐을 구경했죠.
곰은 나무등걸에 앉아 바람을 쐬다 비버씨 네 댐은 우리 숲의 자랑이야 고마워 라고 감사를 표합니다. 비버씨는 머리를 긁적였어요. 오소리가 있었으면 더 좋은 댐을 만들수 있었을거야. 이런건 아무 것도 아냐.

그리고 가을이 되었어요. 이제 올때가 되었어 하지만 너무 늦군 오소리. 공사 현장에서 밥을 먹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비버씨는 고개를 들어서 사방을 보았죠. 하지만 이웃집의 너구리씨나 여우씨인 경우가 많았죠. 곰씨는 커다래서 아무리 몰라도 곰씨를 오소리씨로 착각할 일은 없었어요. 비버씨는 좀 퉁명스러워졌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군. 이라는 말이 비버씨의 말버릇이 되었습니다. 동물들은 때때로 그게 자기들에게 하는 말인가 싶어서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렇게 또 가을이 지났습니다. 겨울도 또 지나갔죠. 그 해 겨울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비버씨의 말버릇은 변함이 없었지만 동물들은 그가 누굴 기다리는지 잘 몰랐어요. 숲의 시간은 빨리 지나가니까 몇몇 젊은 동물들은 오소리씨가 누군지도 몰랐죠. 그런 젊은 동물들이 보기에 비버씨는 숲에서 제일 훌륭한 동물이었고, 무서운 동물이었죠.

또 한 번의 봄이 지나고 그리고 어느날 여름.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날. 비버가 댐의 꼭대기에서 저 멀리 숲의 저쪽을 보고 있던 날. 오소리씨가 돌아왔어요. 흰 흙을 잔뜩 지고 그리고, 아기 오소리를 데리고 있었어요. 열매처럼 작고 아름다운 아이였죠.
오소리씨가 돌아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사촌인 비버씨였습니다. 비버씨 내 딸이야.
비버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렇군. 그래서 늦은거냐. 하고 생각을 했죠.
오소리씨가 원래 살던 동굴을 청소하는 동안 오소리씨의 작은 아이를 풀숲에 눕혀놓고 비버씨는 묵묵히 나무 뿌리를 갉으며 중얼 거렸죠. 이제 돌아왔으니 내 일을 도와줄수 있겠지

하지만 오소리씨는 돌아오고서도 비버씨를 돕지 않았어요. 그 댐은 이제 너와 내가 만들던 댐이 아냐 아주 훌륭해졌어. 하고 말하고 오소리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릇을 빚었고 딸을 키웠죠. 오소리씨는 정말 좋은 엄마였어요.비버씨는 댐의 높은 곳에서 나무를 갉다가 오소리씨가 딸과 산책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비버씨는 이제 더 이상 너무 늦는군 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아주 과묵해졌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오소리씨가 돌아오고도 한참이 지나 겨울이 가기 전의 어느 날, 오소리씨는 숲속의 동물들을 모아서 이제까지 만들어온 자기의 그릇을 보여주었답니다. 사촌인 비버씨, 친했던 곰씨, 이야기꾼 여우씨 등 많은 동물들이 모였죠. 정말 많은 그릇이 있었죠 나무 열매를 올려놓는 접시와 항아리. 빗살무니와 발바닥무늬 그릇. 오소리씨는 자랑스럽게 자기 그릇들을 소개했죠. 마음껏 가져가세요. 곡식을 넣는데도 쓸수 있을거에요. 이제까지 숲속에서는 곡식을 그냥 동굴에 쌓아뒀었거든요. 이제는 동굴 바닥에 두다 물에 젖는 일도 없을 거에요. 초대된 동물들은 오소리씨의 그릇을 구경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죠. 과연, 이런걸 하고 있었구나. 다들 웃는 얼굴로 오소리씨를 칭찬하고 오소리씨의 딸에게 너희 엄마는 아주 훌륭한 일을 하는구나. 하고 따뜻한 말을 해주었죠.

그런데 그 때 오소리씨의 초대에 제일 먼저 나타나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던 비버씨가 갑자기 일어나 퉁명스럽게 소리쳤습니다. 말도 안돼 이런건 게으름뱅이의 취미일 뿐이야.
오소리씨는 당황해서 비버를 쳐다보았습니다. 비버 무슨 일이야.
우리가 매년 만들어내는 곡식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작은 그릇에 곡식을 채운다는거지? 나무 열매나 몇개씩 따먹고 배를 주리던 시절에나 어울리는 재주야. 우리가 털이 없어 앞발이 부드러운 인간도 아니고 이런 흙투성이 물건이 필요할리가 없잖아.
비버씨는 다른 동물들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시간 낭비 했군. 성실한 숲속 동물들의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다니 너는 어떻게 된거 아냐? 이런 걸 만들 시간에 댐에 나와 허드렛일이라도 시켜줄테니까. 동굴을 나가버리는 비버씨의 뒤를 웅성거리면서도 많은 동물들이 뒤를 따랐습니다. 오소리씨는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숲 속의 동물들은 오소리씨를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은연중에 농사를 짓는 동물이 훌륭해. 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리고 비버씨는 댐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 중에 제일 훌륭했어요. 오소리씨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비버는 훌륭해 똑똑해 잘났어. 나는 상대도 안되지. 하지만 나는 그릇을 만들고 싶어. 
오소리씨는 낮에는 열매를 줍고 밤에는 그릇을 만들었어요. 동굴 가득 그릇이 쌓여갔어요. 가끔 개미핥기 장돌뱅이가 와서 그릇을 사주기도 했어요. 숲에서 만든것치고 훌륭해. 근데 여기선 아무도 안 쓰는거야?
충분히 훌륭하지 않아서 그래. 하고 오소리씨는 딸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소리씨는 자기가 훌륭한 그릇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비버씨가 자길 인정해주지 않는거라고 생각했어요. 딸이 자라 스스로 땅을 파고 열매를 따올 수 있게 되자 오소리씨는 더욱 많은 시간을 그릇을 만드는데 쏟았습니다. 비버씨가 더 훌륭해 지는 동안 말이죠 결국 주변 숲 전체를 통틀어서도 제일 근면하고 훌륭한 동물이 되었죠.

오소리씨가 흰 흙을 가지러 구릉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황야의 문턱에서 쓰러졌을때도 비버씨는 댐을 짓고 있었죠. 소식을 들은 오소리씨의 딸이 오소리씨의 뼈를 오소리씨가 마지막으로 만든 그릇에 담아돌아왔죠.
뚜껑이 있는 항아리였어요 아주 특이한 작품이었죠. 그리고 작은 오소리씨는 이제 오소리씨와 완전히 똑같이 닮아 꼭 오소리씨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요.

비버씨는 바쁜 일과 중에 부러 동굴에 찾아와 작은 오소리씨에게 말했어요. 알다시피 너희 엄마와 나는 사촌이다. 하지만 너희 엄마는 훌륭한 손재주를 썩혔어. 더 건실한 일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야.
작은 오소리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비버씨는 앞발을 핥다가 말합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너의 친척이다 일자리가 필요하면 언제라도 찾아와라. 하지만 작은 오소리씨는 비버를 찾아가지 않았어요 대신 그 많던 그릇을 숲 속의 동물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죠. 나눠주고 남은 것들은 모두 팔렸습니다.
장돌뱅이가 와서 며칠에 걸쳐서 실고 갔죠. 남은 것은 엄마 오소리씨의 뼈가 든 뚜껑이 달린 항아리 뿐이었어요. 작은 오소리씨는 그릇을 만들진 않았어요. 하지만 댐에서도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개미도 독수리도 느티나무도 알듯이 그 해 정말로 큰 홍수가 있었습니다.
누구도 손을 쓸수 없었죠. 비가 열흘 밤낮 동안 내렸어요. 해가 지나 더 크고 훌륭해졌던 비버씨의 댐이...결국엔 무너졌죠. 곡식 창고가 물이 잠겼어요. 숲의 반이, 아니 숲의 전부가 물에 잠겼죠 아무 것도 젖지 않은 것이 없었어요. 심지어 파종을 위해 남겨놓은 것들도 모두 물이 묻어 썩기 시작했어요. 동물들은 아직 젖지 않은 나무 위에 올라가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습니다. 물이 빠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도 닷새가 지난 후였죠.

강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지만 댐은 흔적도 없었습니다. 개척한 공터는 대부분 다시 물에 잠겼고 숲은 아주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죠. 적어도 동물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모든 동물들. 살아남은 동물들이 겨우 해가 난 숲의 공터에 모였어요. 먹을수 있는 것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파종할 씨앗에 물이 찬게 문제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습니다.

내가...인간 마을에 가서 씨앗을 구해오겠다. 곰씨가 입을 열자 모두 반대합니다. 여우씨가 말합니다. 무모한 짓 하지마 인간은 동물들과는 달라. 털이 없어서 우릴 질투해 가죽을 벗기려고 드는 놈들이라고.
비버씨는 가슴이 타들어갈 것 같았습니다. 다 자기의 잘못인 것 같았습니다. 인간 마을에 가야하는건 나야. 내 댐이 무너져서 이렇게 된거야. 내가 꼭 씨앗을 구해오겠어. 아직도 숲의 가장 훌륭한 동물이었던 비버씨가 그렇게 얘기하자 동물들은 모두 어떻게 대답할지를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 때 풀 숲에서 작은 오소리씨가 나타났습니다. 뚜껑달린 항아리를 안은채로 작은 오소리씨도 물에 휩쓸렸었는지 물에 젖어 엉망이 된 얼굴로 말했습니다. 씨앗을 구하러 가실 필요 없어요. 비가 오기 전에 제가 준비해둔게 있어요.작은 오소리씨는 뚜껑을 열어, 비버씨 앞의 겨우 마르기 시작한 땅에 항아리 살짝 기울입니다.
너..어머니의 뼈를...하고 놀란 비버씨 앞에 떨어진건

씨앗들이었습니다.

작은 오소리씨는 숲에 비가 심상치 않게 오자 어머니 대신 씨앗을 넣어둔 것 입니다. 오소리씨의 뼈는 비에 씻겨 나갔지만 타타탁 하는 맑은 소리를 내며 젖지 않은 씨앗들이 공터에 떨어집니다.

작은 오소리씨는 분명 어머니도 이걸 바라셨을거에요.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비버씨는, 비버씨는 가만히 씨앗을 봅니다.


작년 겨울, 나는 러닝 코스라도 찾아볼까 싶어서 가벼운 차림으로 집 근처 산책을 나갔다. 내가 사는 곳은 수도권의 공업 도시로 넓은 산업 연구 단지와 그 기반 시설로 몇천 단위의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라 어디를 돌아다녀도 길게 달릴 만한 곳은 없었다. 크게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국도 주변은 그래도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3킬로미터 정도의 직선 루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후보지를 몇 군데 선정하고 나가보았던 것인데. 이내 나는 길 주변을 까맣게 채운 까마귀들에 질려서, 아니 겁먹고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까마귀들의 겨울 도래지가 된 것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겨울철 이 지역을 찾아와 산과 들에서 겨울을 지내던 까마귀가 도심지나 국도로 모여든 것은 정말 최근의 일로, 이 도시의 배경지였던 전답과 야지가 차례차례 개발되어 아파트가 된 탓에 밤에 안전하게 보낼 곳이 없어진 까마귀 떼들이 나머지 도심지로 몰려든 것이다. 송전선들이 집중되는 교통의 요지일수록 (전깃줄이 많아) 말 그대로 까맣게 까마귀로 가득해서 저녁 나절이 되면 히치콕도 질릴 정도의 까마귀떼가 몰려들고, 땅에는 일부러 뿌려도 어려울 정도로 하얗게 새똥으로 범벅이 되었다. 나도 이런 상황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파트 단지와 회사로 이어지는 좁은 루트만 반복해서 돌아다니고 있어서 이 정도로 심각한지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나는 전깃줄에 매달려 있는 까마귀 떼를 보고 거의 질려 도망을 갔고. 나 말고도 다른 행인들이 파랗게 질려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까마귀라고 하면 반포지효라든가 오비이락이라든가. 여러가지 관련된 사자 성어도 많지만 무수하게 몰려있는 까마귀들에 대해서 표현한 문장은 찾기가 어렵다. 지금 그나마 생각이 나는 수도 많은 까마귀에 대한 문장으로는 ‘三千世界の鴉を殺し、主と添寝がしてみたい (삼천세계의 까마귀를 죽이고, 서방님과 늦잠을 자고싶구나)’ 라는 일본의 도도이츠 (都々逸、남녀들 사이의 사랑을 노래하던 속곡)가 있다. 이는 출처가 정확하지 않으나 19세기 일본 양이지사였던 다카스키 신사쿠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해석하면 까마귀가 우는 아침이 되면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실테니, 삼천세계 즉 사바세계의 까마귀를 모두 죽여 아침이 오지 않게해 당신과 함께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구나...라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유명한데. 하여간 여성의 깊은 애정과 그 깊은 애정을 실현하는 방식의 과격함으로 유명한 구절이다.

그런데 왜 하필 까마귀이냐 하면, 사실 까마귀는 아침에 우는 새로 유명해서지만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사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결성 때문에 저 위의 도도이츠에서 한 발짝 더 나간 해석도 있는데.
고전 라쿠고로 유명한 산마이키쇼三枚起請라는 이야기의 베리에이션 중 하나로. 대략 내용을 설명하자면 남자손님과 쉽게 결혼 약속을 하는 기녀를 둘러싸고 그 기녀가 손님 중 세명과 결혼 약속을 한 걸 알게 된 남자들의 호들갑을 떠는 것이 이 라쿠고의 주요 스토리인데 앞 부분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다 빼고 까마귀에 대한 것만 설명하자면.
마지막 부분 드디어 기녀가 신의가 없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며 ‘너같은 신의가 없는 사람들 때문에 (계약과 신의를 담당하는) 우에노 신사의 까마귀가 한 번에 세마리씩 떨어져 죽는 것이다!’라고 말하자 기녀는 웃으면서 말한다 ‘저는 세상의 까마귀를 모두 죽이고 싶은데요?’ ‘아니 까마귀를 죽여서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럼 느긋하게, 아침잠을 자보게요’ 라고 대답하고 라쿠고는 끝이난다.
아까 위에서 설명했던 유명한 도도이츠 삼천세계의 까마귀를 비틀어서 남자가 다 뭐냐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느긋한 아침잠이다 라는 기세 좋은 대답으로 끝내는 셈이다.

근본적으로 이 라쿠고에서 나오는 키쇼라는 것이 기녀가 기녀에서 은퇴했을 때 누군가에게 결혼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는 문서, 요는 키쇼를 세 장이나 썼다고 못난 남자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세 장을 쓰든 네 장을 쓰든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종이 한 장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그 근성이 마음에 안든디. 나는 원본의 도도이츠보다 이 라쿠고에서의 주인공이 하는 저 마지막 대사를 몹시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든 까마귀는 억울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인간인데 우에노의 까마귀들이 떨어져 죽어야 하는가. 게다가 인간이 늦잠 좀 자겠다고 (까마귀가 좀 시끄럽기로서니) 그걸 다 죽이겠다고 하다니. 삼천세계이든 우에노든 까마귀가 떼죽음을 당하는 것은 둘 다 다를 바가 없다. 우리 동네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까마귀의 서식지에 아파트를 잔뜩 지어버리니 도심지로 까마귀들이 나온 것이 아닌가.

나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쳐 분연히 주먹을 쥐고 역시 까마귀는 나쁘지 않다 보통은 인간이 나쁘다. 하고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지만 국도변 보도를 완전히 하얗게 물들인 까마귀 똥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고 그걸 물로 청소 하고 있는 자영업자 분들을 보면 아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고 인간에게도 나름의 억울한 부분이 있어! 하는 생각이 들고 최대한 까마귀가 없는 도로로만 다녀야겠다고 결심한다.

어느 날 나는 오늘에야 말로 새로운 루트를 찾아볼까 싶어서 잘 가지 않는 길로 가보다가 국도 곁 야지가 그대로 드러나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와 쓰레기들만 가득한 구석의 어느 국도 변에서 연석과 트럭 사이에 까마귀 두 마리가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주변을 찾아보았고 그 두마리 주변엔 하얗게 똥이 떨어져 있었지만 어디에도 까마귀 떼는 보이지 않았다. 상처는 보이지 않지만 무슨 연유에 떨어져 죽은 것이리라. 묻어주기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땅이라도 팔 것이 있나 야지를 둘러보는데, 분명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까마귀가 아니 까마귀 떼가 야지 근처 나무 근처 어두운 곳에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나는 쓰러진 까마귀를, 그리고 저 멀리의 까마귀 떼를 번갈아가며 보다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도망을 갔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저 땅에 떨어진 까마귀는 어떤 이유로, 땅에 떨어지고 만 것 일까. 누가 어떤 인간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떨어진 것인가. 나는 급하게 자리를 비우고. 까마귀들은 이번만은 봐주겠다는 듯이 나를 보고만 있었다.

20년 1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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