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나는 러닝 코스라도 찾아볼까 싶어서 가벼운 차림으로 집 근처 산책을 나갔다. 내가 사는 곳은 수도권의 공업 도시로 넓은 산업 연구 단지와 그 기반 시설로 몇천 단위의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라 어디를 돌아다녀도 길게 달릴 만한 곳은 없었다. 크게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국도 주변은 그래도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3킬로미터 정도의 직선 루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후보지를 몇 군데 선정하고 나가보았던 것인데. 이내 나는 길 주변을 까맣게 채운 까마귀들에 질려서, 아니 겁먹고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까마귀들의 겨울 도래지가 된 것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겨울철 이 지역을 찾아와 산과 들에서 겨울을 지내던 까마귀가 도심지나 국도로 모여든 것은 정말 최근의 일로, 이 도시의 배경지였던 전답과 야지가 차례차례 개발되어 아파트가 된 탓에 밤에 안전하게 보낼 곳이 없어진 까마귀 떼들이 나머지 도심지로 몰려든 것이다. 송전선들이 집중되는 교통의 요지일수록 (전깃줄이 많아) 말 그대로 까맣게 까마귀로 가득해서 저녁 나절이 되면 히치콕도 질릴 정도의 까마귀떼가 몰려들고, 땅에는 일부러 뿌려도 어려울 정도로 하얗게 새똥으로 범벅이 되었다. 나도 이런 상황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파트 단지와 회사로 이어지는 좁은 루트만 반복해서 돌아다니고 있어서 이 정도로 심각한지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나는 전깃줄에 매달려 있는 까마귀 떼를 보고 거의 질려 도망을 갔고. 나 말고도 다른 행인들이 파랗게 질려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까마귀라고 하면 반포지효라든가 오비이락이라든가. 여러가지 관련된 사자 성어도 많지만 무수하게 몰려있는 까마귀들에 대해서 표현한 문장은 찾기가 어렵다. 지금 그나마 생각이 나는 수도 많은 까마귀에 대한 문장으로는 ‘三千世界の鴉を殺し、主と添寝がしてみたい (삼천세계의 까마귀를 죽이고, 서방님과 늦잠을 자고싶구나)’ 라는 일본의 도도이츠 (都々逸、남녀들 사이의 사랑을 노래하던 속곡)가 있다. 이는 출처가 정확하지 않으나 19세기 일본 양이지사였던 다카스키 신사쿠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해석하면 까마귀가 우는 아침이 되면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실테니, 삼천세계 즉 사바세계의 까마귀를 모두 죽여 아침이 오지 않게해 당신과 함께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구나...라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유명한데. 하여간 여성의 깊은 애정과 그 깊은 애정을 실현하는 방식의 과격함으로 유명한 구절이다.

그런데 왜 하필 까마귀이냐 하면, 사실 까마귀는 아침에 우는 새로 유명해서지만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사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결성 때문에 저 위의 도도이츠에서 한 발짝 더 나간 해석도 있는데.
고전 라쿠고로 유명한 산마이키쇼三枚起請라는 이야기의 베리에이션 중 하나로. 대략 내용을 설명하자면 남자손님과 쉽게 결혼 약속을 하는 기녀를 둘러싸고 그 기녀가 손님 중 세명과 결혼 약속을 한 걸 알게 된 남자들의 호들갑을 떠는 것이 이 라쿠고의 주요 스토리인데 앞 부분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다 빼고 까마귀에 대한 것만 설명하자면.
마지막 부분 드디어 기녀가 신의가 없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며 ‘너같은 신의가 없는 사람들 때문에 (계약과 신의를 담당하는) 우에노 신사의 까마귀가 한 번에 세마리씩 떨어져 죽는 것이다!’라고 말하자 기녀는 웃으면서 말한다 ‘저는 세상의 까마귀를 모두 죽이고 싶은데요?’ ‘아니 까마귀를 죽여서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럼 느긋하게, 아침잠을 자보게요’ 라고 대답하고 라쿠고는 끝이난다.
아까 위에서 설명했던 유명한 도도이츠 삼천세계의 까마귀를 비틀어서 남자가 다 뭐냐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느긋한 아침잠이다 라는 기세 좋은 대답으로 끝내는 셈이다.

근본적으로 이 라쿠고에서 나오는 키쇼라는 것이 기녀가 기녀에서 은퇴했을 때 누군가에게 결혼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는 문서, 요는 키쇼를 세 장이나 썼다고 못난 남자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세 장을 쓰든 네 장을 쓰든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종이 한 장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그 근성이 마음에 안든디. 나는 원본의 도도이츠보다 이 라쿠고에서의 주인공이 하는 저 마지막 대사를 몹시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든 까마귀는 억울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인간인데 우에노의 까마귀들이 떨어져 죽어야 하는가. 게다가 인간이 늦잠 좀 자겠다고 (까마귀가 좀 시끄럽기로서니) 그걸 다 죽이겠다고 하다니. 삼천세계이든 우에노든 까마귀가 떼죽음을 당하는 것은 둘 다 다를 바가 없다. 우리 동네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까마귀의 서식지에 아파트를 잔뜩 지어버리니 도심지로 까마귀들이 나온 것이 아닌가.

나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쳐 분연히 주먹을 쥐고 역시 까마귀는 나쁘지 않다 보통은 인간이 나쁘다. 하고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지만 국도변 보도를 완전히 하얗게 물들인 까마귀 똥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고 그걸 물로 청소 하고 있는 자영업자 분들을 보면 아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고 인간에게도 나름의 억울한 부분이 있어! 하는 생각이 들고 최대한 까마귀가 없는 도로로만 다녀야겠다고 결심한다.

어느 날 나는 오늘에야 말로 새로운 루트를 찾아볼까 싶어서 잘 가지 않는 길로 가보다가 국도 곁 야지가 그대로 드러나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와 쓰레기들만 가득한 구석의 어느 국도 변에서 연석과 트럭 사이에 까마귀 두 마리가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주변을 찾아보았고 그 두마리 주변엔 하얗게 똥이 떨어져 있었지만 어디에도 까마귀 떼는 보이지 않았다. 상처는 보이지 않지만 무슨 연유에 떨어져 죽은 것이리라. 묻어주기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땅이라도 팔 것이 있나 야지를 둘러보는데, 분명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까마귀가 아니 까마귀 떼가 야지 근처 나무 근처 어두운 곳에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나는 쓰러진 까마귀를, 그리고 저 멀리의 까마귀 떼를 번갈아가며 보다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도망을 갔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저 땅에 떨어진 까마귀는 어떤 이유로, 땅에 떨어지고 만 것 일까. 누가 어떤 인간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떨어진 것인가. 나는 급하게 자리를 비우고. 까마귀들은 이번만은 봐주겠다는 듯이 나를 보고만 있었다.

20년 12월의 글이다.

아니 그러니까 무려 두달을 기다려서 애플워치가 왔다. 10월 중순 쯤의 내 메모를 슬쩍 들여다보면 “연휴 중 변덕으로 웨어러블 기기를 하나 샀다. 하나도 필요 없는 비싼 전자 제품을 또 산 것이다.”라고 써있는데, 아 맙소사 변덕으로 산 애플워치를 이렇게 오래 기다려서 받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그 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하루에 한 번은 꼭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 들러서 로그인을 했고. 자기 구매 내역을 확인하려면 꼭 두 번 로그인을 해야하게 만든 애플 홈페이지의 구조에 치를 떨었다.

마스크를 재빨리 내려서 페이스 아이디로 로그인을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할 동안 내 기대치는 최고조에 이르렀고 두근두근 하는 마음에 구매내역을 확인하면. 항상 내 애플워치는 <준비 중>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대실망쇼에 목숨이 좀 줄었을 지도 모른다. 분명 내분비계 어딘가에 악영향을 미쳤을거라고.

그래서 매일매일 이걸 어느 시점에서 취소 하는게 가장 현명한 행동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가장 현명한 것은 이걸 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만...

그런거 있지 않나. 정말 필요한거냐 아니면 갖고 싶었던 거냐 하고 물어보면 별로 할 말은 없다. 양 쪽 다 아니기 때문이다. 변명조차 할 수 없다. 몇 년 간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 결국 산 거지만 이걸 가지고 도대체 뭘 하지 싶다. 역시 그것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처럼 보이게 만드는 애플의 마케팅 팀의 승리겠지. 이걸로 뭘 해야할지도 모르면서 사게 만들다니.

순순히 사실을 얘기하자면 카드 결제를 하고 난 다음, 배송 예정일을 봤을 때도 주문일로부터 6~8주가 나왔다. 방망이 깎는 노인에게 8인 식탁을 부탁해도 저것보단 빨리 도착 할 것 같았지만 당시 나는 거꾸로 좀 안심이 됐다. 그 동안 좀 갖고 싶은 생각이 없으면 구매를 취소해도 될 것이고, 8주는 충동구매를 반성하고 스스로 뺨을 두대 정도 때린 다음 카드 결제를 취소한 후 안심하기 까지 충분한 시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숨길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나는 이번이 웨어러블 기기를 산 처음이 아니다. 그것고 굉장한 돈 낭비였는데.
순토의 카일라쉬라는 모델로 발매 당시 120만원 쯤. 정확히는 웨어러블이 아니라 아웃도어용으로 유명한 메이커에서 스마트폰 연동도 되는 모델을 발매한 것인데. 코퍼 모델의 간지에 반한 데다가, “특정한 위치를 입력하면 세계 어디에 있더라도 그곳까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먼지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 불명의 기능에 마음을 빼앗겨 그만 사고 말았다. 너무 인문계스러운 프로모션 포인트 아닌가요. 내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위치를 등록해 두면 너와 나의 방향과 거리를 알 수 있어...하고...

네 물론 거의 쓰지 않았고 방 찬장에 그대로 있습니다. 처음엔 여행 갈 때 마다 차고 나갔는데, 생각해보면 제가 여행을 가는게 무슨 오지도 아니고...그냥 일본이나 하여간 아시아 어딘가라서 딱히 방향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물론 툼레이더 리부트 작에선 고대 히미코국의 유적이라면서 일본의 오지가 나오지만 제 말을 믿으세요 일본에 그런 오지는 없습니다. 식생도 우리나라랑 거의 같아서 방향을 몰라도 휘휘 동서남북 한 번 돌아보면 방향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거짓말 같죠? 제가 홋카이도를 몇번이나 갔다고 생각하시는거에요.

게다가 결정적으로 시계를 차고 다니는 습관이 없는 사람이 이틀에 한 번은 충전해줘야 하는. 그리고 기능은 시간을 알려주는 것과 이동루트를 트랙킹해주는 것 밖에 없는 물건을 차고 다닐리가 없었다...(물론 다른 기능도 자잘하게 많았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쓰는 건 그 정도였습니다)는 얘기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플워치를 산 건 실수구만 싶긴 한데. 심지어 내가 샀다는 얘길 뒤늦게 듣고 구매버튼을 누른 친구가 나보다 3주 먼저 애플워치를 받았다. 3주 먼저 라기 보다 그 친구는 그냥 일주일 동안 배송이 빠른 다른 쇼핑몰을 쳐다보고 있다가 재고가 뜬 걸 보고 바로 주문을 했고 그 다음날 애플워치를 받았다. 100% 재생 알루미늄이라는 이유로 조금 장난감 느낌이 나는 블루 컬러를 산 나와는 다르게 친구는 스테인레스를 샀다. 과연...싶을 정도로 예쁘고 깔끔한 디자인이었으며. 나는 지금이야 말로 구매를 취소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과 아 억울해 진짜 이거 올 때 까지 기다린다!!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취소를 정말로 누르려던 날, DHL의 배송 번호가 떴다. 그러고도 약 7일간 추적 루트에 아무것도 뜨지 않아. DHL마저 나를 속이려는 건가 (저는 일 관련으로 DHL에 관해서는 무분별한 신뢰를 주고 있습니다)하고 화가 날 때 쯤에, 갑자기 회사로 DHL트럭이 찾아와 시계를 받았습니다. 어...감사합니다.

유용하냐고요? 어...일단 이제와서 이런 얘기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나는 시간 감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기차타고 다닐때 익힌 능력인데 대체적으로 지금 몇시 몇분인지를 가늠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원래부터 시계가 거의 필요 없습니다. 몇분이 지났는지도 대충 안다고요. 그래서 시계 페이스는 정보값이 제일 적은 사람 얼굴을 그래피티로 해둔 것을 하고있습니다. 귀여워요 누르면 조금씩 변한다는 점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쓰는 기능은 운동기록 기능과 아침에 깨워주는 알람 기능. 그리고 아이폰이 어디있는지 모를 때 커다란 소리를 내서 알려주는 기능 정도입니다. 후회하고 있느냐 하면 아니 뭐 어차피 산거고 귀엽고 해서 딱히 싫진 않습니다.

어쨌든 제 워치는 6세대에 파란색 알루미늄. 파란색 솔라루프를 하고 있습니다. 제 손목에 차면 정말 쪼끄마하답니다.

사람이란 원래 변덕스럽고 뭔가 실수를 하는 존재니까요. 실수를 함으로서 뭔가 고민도 해보고 수습도 해보면서 성장하는게 아닐까 한다니까요. 그래서 이번 애플워치 구매도 긍정적으로...잠깐만 어떻게든 그럴듯 하게 수습을 하려고 했는데 실패했어.

20년 12월의 글이다.

기억은 어떤 순간을 머리 속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에 일어날 일을 기억해내는 일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일어날 일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당신은 어느날 밤 나에게 인사를 하고 급하게 사거리를 건너서 가버린다. 나는 몇 번이나 당신이 길을 건너는 것을 지켜보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당신의 뒷 모습을 처음 본 밤의 일이다.

밤은 차갑고 미지근 하다. 공기는 낮게 깔렸고 나는 오늘의 내일에 비가 내릴 것을 안다. 우리는 내일도 만날 것이고 나는 또 똑같은 뒷모습을 보내고 혼자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실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날 밤은 내가 당신의 뒷모습을 보는 첫번째 날이다. 나는 내가 신은 나이키의 콧등을 보고 번화가의 진열장을 쳐다본다. 그 때 내가 보지 않았던 것들을 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당신이 떠나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척 하고 어서 돌아가 오늘 마저 읽지 못한 책을 더 읽어야지 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

당신은 나에게서 도망치는 것 처럼 가버리고,
나는 당신이 가버리는 장면에서 등을 돌려 그 가버리는 모습을 끝까지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당신이 가버리는 장면에서 등을 돌려 그 가버리는 모습을 다시 한 번 쳐다보려고 애쓴다.

혹시 당신이 나를 한 번 더 쳐다보지 않았을까 하고 바란다.
내가 원한다면 나는 당신이 내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당신은 내 쪽을 쳐다보지 않았고 나 또한 당신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기억 속의 장면을 삼키기 위해 노래를 떠올린다.

- 해가 반짝이는 날 구름도 말끔하게 사라져버린 공기마저 달콤한 그날.
- 당신 나에게 그 거리로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그 거리로 갈 수 있죠?

실제로 그러지 않았음에도 그 장면의 마지막에 노래를 부르는 나를 삽입한다. 꼭 그렇게 하면 시간을 되돌려 길을 건너는 당신에게 내 노래를 들려 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

나는 술집의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미 술에 얼큰하게 취해 얼굴이 빨개진 나는 안 좋은 버릇으로 먹지도 않을 안주를 뒤적거리며 이것도 저것도 더 시켜볼까 하고 생각한다. 테이블 건넛편에 앉아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상대도 이미 한참 취해서 더 이상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는 눈치이다.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들라크루와 그리고 쇼팽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니 이젠 음악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 겨우겨우 회사원이나 하고 있는 제가 예술이 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건 주제넘은 일이지만

이라고 말을 꺼내면서 나는 주제넘게 예술론에 대해서 길고 지루한 의견을 말한다. 사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삶은 콩을 좀 더 시킬까였으면서, 상대의 눈치까지 보며 혹시라도 틀린말을 하게 될까봐 고리타분한 고전 독일의 미학론보다 하나도 나을게 없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칸트의 미학론이었던가 괴테의 미학론이었을까. 학교에서 배운 애매모호한 그리고 이제와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렇게 상대가 내 말에 질려하고도 남았겠지 하고 내심 안심하는 시점까지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상대가 하는 말을 놓친다.

네 뭐라고요? 라고 다시 물어본다. 상대는 약간 풀린 혀로 그럼 님이 생각하는 예술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뭐냐고요? 라고 다시 말해준다. 당황한 나는 너무 바보 같은 말투로 더 바보 같은 대답을 한다.

- 시간을 뛰어넘는 것이요.

...

녹음 된 파일을 본다. 200X년 X월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녹음 파일은 여러 개이고 젊은 나의 목소리이다. 건방지고 오만하고 자신에 차있으며 틀린 이야기를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서,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 어딘가 운동장이나 역의 뒤 구석에서 스스로만 납득 할 수 있는 이론들을 녹음하곤 했다. 때때로 알바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새벽이 흐리게 시작되는 그런 때면 감정에 복받쳐서 더욱 아무 말이나 하곤 했다.

그 중에 하나를 들어본다. 녹음된 상태는 좋지 않고 파일의 시작부분에 차가 다가왔다 멀어지는 소리가 같이 녹음되어 있다. 나는 이 녹음 파일이 어디서, 왜 녹음된 건지 떠올리려고 한다. 목소리는 약간 술에 취한 것 같고 뭔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 모든 이야기에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불멸이란 결국 죽음에 대한 복선이다. 가장 유명한 불멸자인 아킬레우스가 발뒤꿈치의 약점을 제외하고 무적의 신체를 가지는 이유는. 그가 결국 그 약점으로 죽을 것을 의미한다...

200X년의 나는 스스로가 아니면 아무도 듣지 않을 녹음 파일에 약 10분에 걸쳐서 결락과 제한이 만들어내는 불멸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이 불멸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두려워해야한다. 우리가 가진 영혼이 정말 불멸한다면 그 불멸하는 영혼은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후 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불멸성이라는 철학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해야한다.

나는 거기까지 듣고 녹음된 파일을 닫는다. 그 뒤에 어떤 이야기가 녹음되어 있는지 기억 해낸다. 나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이 파일을 지울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둘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

여덟? 아홉살때 쯤의 나. 아버지는 서른 다섯 쯤이다. 아버지와 나는 저녁을 먹고 있다. 생선을 먹던 그는 나에게 생선을 먹으면서 열역학의 제 1법칙에 대해서 설명한다.

- 쉽게 말하자면 네가 지금 먹고있는 생선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얘기야, 질량 보존의 법칙에서 모든 질량은 형태만 바꿔서 존재한다고 하지...

아버지는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만을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내가 열역학을 이해하길 기대하며 한참을 설명한다.

- 젓가락으로 생선의 살을 발라내면...이 생선의 살은, 네 안에서 네 몸이 되고 또 에너지가 되어 운동을 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네 몸도 다른 형태로 바뀌어서 다른게 되는거야 어느 것도 사라지는 것은 없고 순환하게 된다.

- 지금 내가 말한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돼?
하고 아버지는 묻는다.

서른이 넘은 나는 대답한다.
관측하는 우리가 닫힌 계 안에 있으며 우리는 순환하는 것이 아닌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여 결국은 더 낮은 곳으로 사라진다는거죠.
하지만 아버지는 서른이 넘은 나의 대답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묻는다.

- 이해가 돼? 세상에 어느 것도 사라지는 것은 없는거야.

아버지를 쳐다보며, 항상 과학보다 신학에 더 관심이 많았던 어린 나는 우물쭈물하다 그럼 우리의 영혼은 나중에 어디로 가요? 하고 묻는다. 불교도인 아버지는 무슨 생각인지

- 우리에겐 전생도 영혼도 없어
라고 대답한다.

...

이 우주는 불멸이 아니기에 약점도 없는 신, 브라흐마의 하루이다.
그의 하루는 길고 긴 계절로 나뉘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의 하루를 계절로 나누고 또 계절로 나눈 찰나와 같은 나눈 짧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라고들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이름은 칼리유가이며 우리는 불화와 불만의 아이들이다. 정당한 댓가와 정의는 이 시대와 조금도 관련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당함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고 우리의 불행은 우리의 시대가 불의한 시대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데서 연유한다.
우리는 얼마나 하찮고 고귀한지 마음과 생각을 다하여 우리의 삶과 칼리유가의 시대를 벗어나 신의 하루를 세려고든다.

나는 때때로 그의 하루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주 전체를 하루동안 살아가는 그와 달리, 나는 겨울이 삶의 전부인 것 처럼 살아간다.
나는 겨울에 태어나 첫번째 기억조차 겨울에 대한 것이다. 모든 일들은 겨울에 일어난 일이고 나의 평생은 겨울에 걸쳐있다. 그런 시간 밀도의 차이는 내가 그를 인식하기도 쉽지 않게 만든다. 해를 볼 수 없을 촛불에게 내일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신의 하루는 인간에겐 의문의 덩어리 일 뿐이다.
내가 그에게 질문을 힌다고 가정할때 물어볼 것은 정해져있다. 하지만 질문의 내용보다 질문을 하고 대답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우리의 삶이 다 가더라도 신의 하루는 지루할 정도로 오래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모든 말들은 고스란히 신에게 전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가 우리의 질문에 생각을 하고 대답을 할 때 까지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시간을 가늠 해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의 대답이 도착했을 때 나는 연못 안의 얼어붙은 물고기이거나 또는 누구에게도 도달하지 못한 노래일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겠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

오늘 아침 일어나 긴 바지를 입고 집 밖에 나왔더니 발치에 낙엽이 수도 없이 떨어졌다. 햇볕이 쨍해 모자 위에 후드를 쓰고도 눈이 부시지 않는 그늘로 걸었더니 찬 기운이 안개처럼 깔렸다. 평소보다 아침의 해가 더 낮구나 정말 겨울이 온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해가 반짝이는 날 구름도 말끔하게 사라져버린 공기마저 달콤한 그날.
- 당신 나에게 그 거리로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그 거리로 갈 수 있죠?

나는 뭔가 이해할 수 없는 기억을 떠올린다. 내가 아는 한 나는 손을 내밀었고 당신은 그 손을 잡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손은 서늘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그 감촉과 당신의 체온은 봄날의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나는, 나의 운명은 분명.

20년 11월의 글이다.

21세기 대중의 특징적인 경향 중 하나는, 믿음을 먼저 결정하고 그 믿음에 따라 증거를 찾으려고 하는 행동 방식이다. 대중이 무엇을 믿고 싶든지 간에 그들은 인터넷에서 그 근거를 찾아낼 수 있고, 모두 자신의 주장만이 사실이라고 주장 할 수 있게 되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이런 시대를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이 시대를 예언한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실”을 인식하는 현대인의 현실인식 체제는 이미 오래전에 무너져 내린 듯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내 말이 맞아? 하고 불안하게 질문을 하는 것 뿐이다.

<여행의 핑계>

이것은 2020년 1월의 캄보디아 여행기이다. 모든 문단은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무런 연관이 없다. 나는 정말로 쓰고 싶은 것을 쓰지 못하고 여기에 그 흔적만 남겨둔다.
애초에 이 여행기는 캄보디아의 씨엠립을 거쳐 캄보디아 최북단의 유적인 쁘레아 위히어를 거쳐 육로를 통해 수린, 그리고 태국 북단의 우돈타니 또는 치앙마이로 가는 긴 여정에 대해서 작성될 예정이었다.
다만 씨엠립 일정만 결정한 채로 우돈타니는 너무 심한가 싶어서 마지막 도착지로 치앙마이를 결정하고 나서. 바로 옆 부서의 신입사원 분이 거의 같은 일정으로 치앙마이로 여행을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차마 치앙마이로 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원래 8박 9일의 일정은 4박 6일의 일정으로 바뀌었고 나는 모든 일정을 씨엠립에만 있게 되었다.

<가을은 남자와 힌두교의 계절>

씨엠립에 오려던 건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다. 한 10년 전 쯤 부터 친구들에게 가을만 되면 “가을은 남자와 힌두교의 계절”이라며 앙코르왓에 가자고 꼬셨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 내 계획은 간단했다. 우리 같이 앙코르왓에 가서 사원을 보자 ==> 끝. 그 외에 디테일은 없다. 굳이 앙코르왓이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가을인 이유도 그냥 추석때 심심할까봐...정도의 이유였다. 내가 가고 싶지만 같이 누가 갔으면 좋겠어... 이 정도의 생각으로 여행을 꼬셔봤자 잘 될 리가 없다.

마침 친구들 사이의 리더십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던 나는 가을 여행에 대해 단체 메신져 방에서 언급할 때 마다 “네가 계획 다 짜면 휴가 봐서 같이 가든가 갈게” “응 그럼 나도 너 계획 봐서” “응 그럼 나도” 정도의 리액션 밖에 못 받았고 매년 그게 되풀이 되었다. 10년 동안 앙코르왓은 꿈도 꾸지 못한 채로 계획만 어딘가 폴더에 보관 된 채로 시간만 가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내 여행은 변덕이 전부이다.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는데엔 많은 것이 필요 없다. 녹색의 습지를 가로지르는 기차나 수면 위에 솟아오른 앙상한 나무가지의 이미지 같은 것 하나면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는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는 캄보디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없었다. 도착을 프놈펜이 아니라 씨엠립 공항으로 해야하는 것도 몰랐으니까.

<심야의 도착>

천에서 씨엠립으로 가는 비행기는 심야에 있다. 대신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보다도, 프놈펜으로 가는 비행기보다도 훨씬 싸다. 비행기 안에는 단체 여행객들이 가득하다. 예전같지 않다고 했는데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 걸까. 비행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도착비자를 받기 위해 달려간다. 나는 사전에 인터넷에서 비자를 받아두었다. 캄보디아의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저렇게 링크를 타고 가면 받을 수 있는데, 구글로 검색하다보면 업자에게 연결되어 아주 비싼 값에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이제 우리 현대인에게 중요한 것은 구글로 검색을 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공항을 나오니 완전히 까만 밤이었다. 심야의 비행기를 타기 위해 리조트에 차를 부탁해두었다. 사륜구동의 튼튼하고 승차감이 안 좋은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꼭 저승을 빠져나가는 길처럼 길은 까맣고 숲에는 아무 움직임도 없다. 군데 군데 전구를 켜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나라의 모르는 숲들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무서웠다.

도착한 리조트는 더욱 무서웠다. 사람이 아무도 없고 마지막 체크인인 나를 기다려주기 위해 한 명의 당번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골길 (몰랐던 일이지만 씨엠립에는 포장된 도로가 많지 않았다) 주변의 리조트인 이 곳은, 나무와 작은 연못과 유수풀이 있는 28동 정도의 작은 마을 같은 곳이다. 새벽 1시에 가까운 시간이긴 했지만 짐을 들어주겠다는 걸 거절하고 랏지로 들어가며 너무 조용한 나머지 나 말고 손님이 있기는 한 걸까 하고 생각했다. 겁을 먹은 나는 문을 잠그고 캐리어로 문을 막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 위에는 “관대함은 좋은 것만이 아닙니다”라고 써있는 팜플렛이 놓여있었다. 일종의 동물들이 나오는 우화였는데, 말하자면 택시기사들과 호텔직원 등 당신이 마주치는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팁을 마구 주지 말라는 경고였던 것 같다. 나는 더욱 기분이 이상해졌다.

<첫째 날의 클라이막스는 고양이에게 밥을 준 것>

침에 본 리조트는 밤에 볼 때 보다 훨씬 좋은 곳이었다. 조식 시간에 맞춰서 나와 과일과 빵을 먹었다. 거짓말이다 과일과 빵과 계란 후라이와 캄보디아식 쇠고기 국수와 버터를 먹었다 태국 음식에 비하면 캄보디아 음식은 별로라던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다. 여기가 태국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라임을 만진 손에서 좋은 냄새가 나서 하루 종일 이 냄새가 나길 바랐다.

리조트 앞에서 하루 종일 같이 돌아다닐 뚝뚝 기사를 소개 받고 - 꼭 태국 영화에 악당으로 나올 것 같이 생긴 사람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둘째 날 나를 내버려두고 어딘가로 사라졌고 덕분에 둘째 날 여행을 완전히 망쳐놓았다 - 매표소로 갔다. 앙코르왓 유적군의 매표소에서 끊을 수 있는 통합 권은 2020년부터 거의 모든 유적군에 적용이 되도록 바뀌었는데. 전에는 적용이 되지 않던 뱅 밀리아와 반테이 스레이도 통합 권으로 입장이 가능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 매표소는 5시부터 문을 여는데 그것은 아침에 표를 끊고 일찍 앙코르왓의 해돋이를 보러 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표의 앞에는 표를 산 사람의 얼굴과 일련번호가 있고 뒤에는 1부터 31일까지의 숫자가 찍혀 있어서 유적군에 입장을 할 때 펀처로 표시를 한다. 그러니까 13이라는 숫자에 표시를 하면 1월 13일에 입장을 했다는 표시인 것이다. 일일 당의 입장료를 나눠서 계산하보면 당연히 하루 입장권 보단 삼일 입장권이 삼일 입장권 보단 칠일 입장권이 싸다. 길 곳곳에 체크포인트가 있어서 공무원들(아마도 공무원들)이 서서 표를 계속해서 검사한다.

생각하기에 좀 이름 시간인 7시쯤에 유적군으로 들어갔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유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앙코르왓 유적군의 남문에는 사람들이 잠시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데 내가 탄 툭툭 기사는 멈춰달라고 하기 전에 엄청난 속도로 남문을 지나쳐가버렸다. 아 툭툭 기사분들 대단하네 하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나중에 와서 찍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잘못 생각한 것이 하나 나중에 그럴 기회 따윈 없었고 둘째 이 기사 분만 이렇게 툭툭을 빨리 모는거였다. 어떤 기사도 이 정도로 빠르게 툭툭을 몰지 않았고 이 기사가 모는 툭툭은 어떤 툭툭도 추월하지 못했다. 무의미한 장점이랄까...

나는 이 여행기에는 사원에 대해서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한다. 사원에 대한 이야기만 따로 떼어내서 다른 글을 썼기 때문이다. 이 여행기와 사원에 대한 글은 원래 하나의 글이었고 나는 가느다라한 접합 부분만을 이 여행기에 남기고 글을 통채로 떼어냈다. 한달이 넘게 이 여행기를 끝내지 못하다 보니 왜 그런 짓을 했지 하는 후회를 이백번째 하고 있지만 뭐 어떤가. 씨엠립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사원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한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할 이야기를 내가 굳이 또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나는 그에 대해서 한 편의 글을 썼는데 말이다.

하여간 앙코르왓 유적군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건기에, 사람들이 오기 좋지 않은 때인데도 그렇다. 호텔 예약 사이트를 찾아보니 예약률이 30%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 100%면 어떻게 되는거지 하는 생각과 도대체 왜 30%밖에 안되는 건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앙코르왓 유적군의 유적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역사를 잃어버리고만 도시답게, 우리가 이 도시에 대해서 알고있는 것은 너무 부족하고. 하나 같이 아름다운 유적들이지만 오랫동안 똑같은 유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왜 이걸 이렇게까지 보고 있어야 하는지 의심이 든다. 먼지로 가득찬 길을 지나서 아름다운 사원 앞에 도착했더니 단체 관광객들이 우글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는 것도 짜치는 이유이다. 흙길이 아니면 돌 바닥이기 때문에 발목과 무릎이 아플 정도인데 이렇게 하루 종일 유적을 보는 것 말고는 뭐가 있을까 고민이 든다. 열심히 보지 않으면 아쉬운데 열심히 보고 있으면 왜 이걸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신기한 곳이다.
믿어달라. 나는 한국의 30대 회사원이다. 그것도 해외영업에서 일하고 있다 그것은 인류 1%수준의 실력으로 허황되고 말도 안되는 말을 숫자 까지 포함해가며 쓸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가상의 친구는 없지만 가상의 매출은 있는(그것도 엄청 많이) 있는 사나이이다. 하지만 나는 진정성을 갖고 짜쳤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아름다운 장소는 많았다. 앙코르왓의 사원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다거나 창가에서 어색한 포즈를 취하는 것이랑은 다른 요소들이다. 세월이 켜켜히 쌓여 만들어놓은 그 모든 것들과 이제는 잃어버린 영광들, 그리고 신에게 서원했던 그 마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공간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놓고 말하자면 아무리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해도 애초에 사람이 수만명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예술적인 감동을 느끼는 것은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의 영역이다. 나같은 아마추어는 짜낼 수 있는게 별로 없어서 그냥 짜치는 걸 짜친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첫째 날에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낸 것은 스라스랑이었다. 그냥 아무 것도 없는 저수지이고 그 주변에는 캄보디아의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고 있고 정말 많은 개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 평화로운 곳이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와서야 나는 내가 무엇을 보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리 할 수가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는 프레룹에 올라 한 시간을 넘게 해가 지는 걸 기다렸다. 생각해보면 앙코르와트에 해가 지는 것보다 프레룹에 석양이 닿는 것을 보는 것이, 그리고 한 시간이 넘게 해가 지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리조트로 돌아오고서, 나는 별다른 의욕이 없어서 리조트에서 저녁을 먹었다 새끼 고양이 몇마리가 내 발치에 와서 밥을 얻어먹었다. 농담 소재로 써먹으려고 북한 음식점에 가보려고 했지만 두 군데 다 닫았다고 한다. 맛없고 비싼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야 하고 생각은 했지만 한편 억울한 감이 있었다. 이래서야 여행에 왔다고 할 수 있나. 여행은 돌발적이고 웃기고 진짜 아무 짓이나 해야 여행이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여행에 웃기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친구들은 너무 실망했지만 나도 내가 이렇게 온건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못했다. 방에서 프런트에 전화를 거니 전화가 고장나 있었다. 맙소사 업자를 불렀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프런트 사람의 표정을 보니 분명 며칠 정도 고장난 게 아닌 것 같았다.

<둘째 날의 클라이막스는 너무 빨리 왔고>

앙코르왓에서 보는 일출은 어쨌거나 씨엠립여행의 클라이막스이다. 현지 사람들의 충고를 받아서 아침 5시쯤 나왔지만 후에 알게 된 것은 앙코르왓의 두 개의 연못 중 하나가 공사 중이어서 어차피 모두가 우글우글 한 곳에 모여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 딱히 일찍 가지 않아도 뷰는 비슷했다는 것이다.
딱 콘서트를 끝나고 택시를 잡아 집에 가려고 하는 사람의 수만큼 사람들이 모여서 앙코르왓의 앞 뜰을 향해간다. 다들 자기네 모국어로 너무 어두워 앞이 안 보여 하고 투덜거린다. 앙코르왓만은 다른 유적군보다 입장 시간이 빠르다. 해돋이를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앙코르왓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 쪽 연못의 왼쪽 물가에 자리를 잡았다. 풀숲이라 가렵고 축축했다. 한시간을 넘게 기다리며 사원의 그림자와 숲의 윤곽 위로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보았다. 해가 뜬 직후 사원에 입장 할 수 있는데 가이드 북에 “해가 뜬 이후엔 앙코르왓엔 사람이 적으니 그 때 보세요”라고 말한게 생각나서 앙코르왓을 관람했다. 이게 사람이 없는거라고? 꼭 토요일의 신세계 경기점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사람이 없는거였다. 앙코르왓 꼭대기 층의 도서관 건물 구석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그곳만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한 때 인드라의 신상이었던 것에 옷을 입히고 절을 하고 있다. 서양인들이 나타나 이것이 붓다의 상이냐고 나에게 묻는다. 나는 쓰고 있던 양키즈 모자를 보여주며 미안해 나 퀸즈에서 왔어. 하고 악수를 청하고 가버린다. 속은 것 같진 않지만...

그리고 앞에서 썼지만 앙코르왓을 나와보니 나를 데리고 다음 지역으로 갈 뚝뚝기사가 사라졌다. 한시간 동안 그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기분이 나빠질대로 나빠진 나에게 다른 뚝뚝기사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리조트에서 관대함은 좋은 것만이 아니다 이런 우화를 갖다놓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이 넘게 본인 기사를 찾고 있던 내가 멍청해보였던 걸까. 타프롬 사원에 갔다가 호텔로 돌아가는데 20불을 부르는 기사를 보고 화가 나서, 여행 중에는 절대로 튀어나오지 않는 내면의 회사원이 튀어나왔다. 두 명을 경쟁시켜서 10불로 깎고 타프롬에 갔다가 호텔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10불도 아까웠지만 팁으로 2불을 더 챙겨주고 없어진 기사를 찾아보았다. 그의 동료들 말로는 그가 앙코르왓의 주차장에 있다고 한다. 나는 기가 차서 말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일단 앙코르왓까지 데리고 간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동료들에게 10불을 건네주고는 전해줘, 라고 말하고 숙소로 와버렸다. 가난한 사람의 수고비를 빼앗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에게 전해졌는지는 내 알바 아니었다.

오후에는 좀 쉬다가 다시 사원을 보러 가거나 박물관에 갈 생각이었으나 툭툭 기사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 (참고로 다음날 다음 리조트로 옮길 때 리조트 직원과 교섭할 때는 6불에 승락한 기사가 도착하자 짐을 붙잡고는 7불을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이 동네의 툭툭 기사들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풀사이드에 누워 책을 읽었다.

캄보디아의 공기는 탁했다. 우리가 기대하던 파란 하늘과는 전혀 달랐다. 이게 특별히 공기가 안 좋은 시기야? 라고 물어보니 건기에는 항상 이렇다고 한다. 나만큼이나 하얀 서양인들이 풀사이드에 누워 빈둥대고 있었다 평생 배고파본적이 있기나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긴 나도 언제 배고프기나 했을까. 나는 그 사람들만큼이나 피둥하고 하얀 내 몸이 부끄러워져서 금세 방으로 들어와 저녁을 기다렸다. 레스토랑에는 또 새끼 고양이들이 있을거고 그런 생각을 하니 다른 곳에서 밥을 먹고 싶지가 않았다. 바 근처에서는 유럽억양의 영어를 쓰는 연주자들이 재즈를 연주하고 있었다. 1시간쯤 그걸 듣다가 악수를 하고-악수를 하며 팁을 주고- 돌아와 또 일찍 잠들었다.

다음 날에는 호텔에서 소개한 택시 기사와 좀 먼 사원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잠이 들며 원래 사람은 하루 중 몇번씩 배가 고파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몇번이나 배가 고픈 걸까. 우리는 누구도 새끼 고양이만큼도 배가 고프지 않다.

<셋째 날 실은 넷째 날>

행기에 리조트 얘길 적는 것은 바보 같다. 그런 것 치고 나는 여행을 오기 전부터 마지막 하루를 묵기로 한 리조트를 엄청나게 기대했는데 예산으로 따져도 비행기 값 + 나머지 3박의 숙박비가 마지막 일박의 숙박비와 비슷할 정도였다. 정문은 묵직한 나무문이었다. 툭툭을 타고 나무 문을 열자 색조가 전혀 다른 녹색이 가득한 인공의 낙원이 거기에 있었다. 이것은 단 한치의 거짓말도 없는 표현이다 인공의 낙원.

캄보디아의 농촌을 컨셉으로 만들어진 이 곳에는 잔디로 만들어진 녹지를 만드는 대신 논과 논길을 만들어두었다. 오래된 오두막을 개조한 술집에는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두었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술을 마시며 노래를 듣고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린다. 밤이 되면 개구리들이 울었고 사람이 없는 풀사이드에 나는 옷을 벗고 헤엄을 쳤다. 나는 마지막 날 예약해 둔 톤레압 호수의 투어를 취소하고 출국하는 시간까지 이 리조트에 머물러 있기로 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다시 글을 쓰고. 그렇게 씨엠립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 바로 전에 쓴 사원에 대한 글은 대부분 리조트에서 완성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들 말이다.

“멀리 사원의 후문에는 지뢰 피해자인 군인들이 캄보디아의 전통 음악을 연주하면서, 같은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을 모으고 있다. 사원 어디에 있든지 그 음악 소리가 들리고, 나는 희미하게 음악이 들리는 지점- 사원의 끄트머리, 숲의 가장자리-까지 걸어와 앉았다.”

어쩌면 내가 씨엠립에 다시 온다면 이 리조트에서 글을 쓰기 위해서 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꼭 이 곳을 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돌아가는 길은 처음 올 때 처럼 완전히 까만 밤이었다. 심야의 비행기를 타기 위해 리조트에 차를 부탁해두었다. 아마 내가 부탁하지 않았어도 이 사람들은 차를 부탁해두었을 것이다. 꼭 저승을 빠져나가는 길처럼 길은 까맣고 숲에는 아무 움직임도 없다. 군데 군데 전구를 켜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창 밖을 바라본다. 나는 숲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려다 숲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문다.

<옷을 입은 우리의 신에게 기도하는 법>

비행기는 한 시간을 늦고 두 시간을 늦는다. 나는 밤의 공항에 구석진 자리에서 내가 왜 이 여행을 오려고 마음 먹었는지 깨닫는다. 마침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것 같은 키가 크고 마른 아이 하나가 빨간 마그네틱 하나를 사려고 주춤거리는 모습을 본다. 아이는 동그란 이마를 문지르더니 기념품을 사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이 서있는 줄로 돌아간다. 중국의 청도행을 알리는 사이니지가 보딩을 알린다.
나는 비행기가 떠난 후 아이가 사지 않은 마그네틱을 사서 가방에 넣는다.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그 얼굴을 잊어버리겠지만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그 아이에게 선물이라도 할 것 처럼 말이다.

무슨 이유로 지어졌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이 앙코르왓의 유적군은 무슨 이유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도시에 살던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텐데 사람들은 불경하게 사원의 창에 몰려들어 어디 쇼핑몰의 메인 화면에 쓸 것 같은 사진을 찍고 있다. 신의 상은 언제부터인가 부처의 상이 되었고 불경한 행위는 그 어떤 행위보다 더 숭고하게 이해된다.

나는 여행에서 믿음과 배고픔에 대해서 생각했다. 레스토랑의 고양이들과 숲의 윤곽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생각했다. 나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정말로 진실인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람의 수만큼 진실이 있다는 말은 불합리하다. 일어난 일은 단 하나 뿐이고 역사가 여럿이며 그 역사를 읽는 우리들 또한 다수일 뿐이다. 믿음. 나는 믿음에 대해서 말하려다 그만둔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 그리고 믿어야 하는 것들 말이다.

언제나처럼 나는 늦게 이해하고 나중에서야 말한다. 여행을 가고 또 돌아올 때 마다 내가 명확한 이유로 여행을 온 것이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유가 있어서 여행을 떠나는 것과 우리가 여행을 다녀온 후 무언가를 깨닫는 것. 둘 다 사실 여행과는 하나도 상관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변명을 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천 오백년 전의 사원 위로 해가 뜨고 그리고 지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붓다의 옷을 입은 인드라 상을 떠올린다. 아니 비슈누의 상이었던가.

내가 그 모습을 잊어버리기 전에 나의 신에게 기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비행기를 탄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다면 아무리 빠른 속도라고 해도 기도는 어디에라도 전해질 것이다. 나는 해야할 기도와 해야만 하는 기도 양 쪽을 모두 떠올린다.
그 기도는 이것이다.

“주여 내가 매일 같이 주로부터 멀어지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나를 사랑하시나이까.”


20년 2월의 글이다.

이 글은 2020년 1월 씨엠립 여행기의 일부였던 글이다. 너무 내용이 길고 사변적이라 원래의 여행기에서 분리한다. 하지만 이 글이야 말로 내가 씨엠립 여행 동안에 정말로 쓰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글의 배경이 되는 곳은 사원 유적인 반테이 삼레와 반테이 스레이이다.

“어떤 것이나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능력있는 것이 있거든, 그것은 내 광명의 단편으로 된 것이다/그러나 아르쥬나야, 이 많은 것을 네가 다 알아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는 이 온 누리를 내 한 조각으로 뒤덮어 지지 하고 있느니라” (바가바드기타 10장 41-42, 함석헌 역)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이단은 “현재”만이 우리의 유일한 현실이라는 주장이다.
모든 종류의 종교에서 현실은 이상세계의 불완전한 반영이며 믿는 자들이 해야할 최우선의 과제는 죄를 반성하든, 인신공양을 하든, 아니면 성스러운 전쟁을 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든 최선을 다해 이상 사회를 현실 세계에 강림시키는 것이다. 이상세계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현실세계에서 모든 것은 투쟁이며 영광은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와 희생에서만 비롯한다. 번개와 비를 믿던 원시 종교에서부터 19세기에 발생한 공산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종교는 현실과 이상과의 갈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장미는 붉고 제비꽃은 푸르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 인가. 종교와 사회가 소통하는 기본 구조에 대한 나의 주장은 기껏해야 아마추어의 논변일 뿐이다.

그럼 무언가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로 바꿔보자. 모든 종교가 사회와 갈등하는 이유는 종교가 가진 이상사회가 현실에서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종교가 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한 사회를 완벽하게 지배 하에 둔다고 해도 그것에 만족하는 일은 없이 항상 더 많은 것을 바랐다. 그들은 믿는 자들에게 천년의 왕국을 약속했고 그 믿음을 세계의 끝까지 전하길 바랐다. 세계의 끝까지 도달하면 어떻게 되냐고? 그런 경우 믿는자들은 세계가 멸망하고도 계속해서 자신들의 신이 세계를 보살피고 그들 모두를 다음 세상으로 데려 가길 바랐다.

믿음은 항상 하나를 이루면 다른 하나를 바랐다. 이러한 끊임없는 꿈틀거림은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속성일까 아니면 이익집단이 갖는 결코 버릴 수 없는 확장의 욕망일까. 어쩌면 우리는 이런 것들이 종교에서 바라는 이상에 바로 그러한 속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결국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은 믿음 안에서는 불완전한 세계일 뿐이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 두고 우리가 있는 현실의 세계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나는 4박 5일의 씨엠립 여행을 끝내고 밤 늦게 공항에 도착했다. 운전기사에게 악수를 하고 짐을 챙겨 공항에 들어갔다. 공항 앞에서는 모여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무 명이 조금 안 되었을까, 모두 20대로 보이는 밝고 명랑해보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기도가 끝나자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그들의 단체 사진을 찍어주었다. 며칠이나 있었는데 저 사람들은 얼굴이 타지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나도 사나흘 있는 걸로는 얼굴이 타지도 않는다. 고소를 지으며 그 사람들을 더 이상 쳐다보지 않고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떠들썩하게, 아니 떠들썩 하다는 표현은 이상하다 결코 크게 떠들지 않고 함께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캐리어를 끌고 표를 발행하러 떠났다. 나는 우르르 몰려가는 그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 천천히 카운터로 갔지만 그들은 그대로 줄 바깥에 서서 서로의 여권을 챙기고 있었다. 나는 눈치를 보다 아무래도 티케팅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 사람들을 가로질러 티케팅을 하고 역시나 이 사람들 나랑 같은 비행기인가 하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카운터에 서자 무슨 눈치라도 보고 있던 것 처럼 내 뒤로 그 사람들이 줄을 섰다. 평온하고 밝고 명랑해보이는 얼굴이었다. 아까 시끄럽게 느껴졌던 것은 이 사람들의 표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를 탈 때 까지 그 사람들은 조금씩 늦게 내 동선을 따라 왔다. 나는 비행기 시간까지 3시간이나 기다려야 했고 책을 읽다가 그 사람들을 보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 공항의 밖에 있을 이 곳의 밤에 대해서 생각한다.

씨엠립의 밤은 새까맣다. 길 위에 비추는 헤드라이트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때때로 길 주변에 누군가가 서서 전구로 불을 밝히고 무언가를 팔고 있다. 아무리 자세히 보려고 노력해도 그 사람들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낮에도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햇볕은 너무 강하고 먼지는 뽀얗게 피어올라, 지나가는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커다란 유적군인 이 곳은 어떤 유적을 갈 때도 삼륜차를 타고 움직여야한다. 한 두곳 쯤이야 괜찮을지 몰라도 금세 딱딱한 바닥과 뜨거운 해 때문에 지치게 된다.

앙코르왓 사원에서 20분이 넘게 먼지가 가득한 길을 한참이나 가면 반테이 삼레가 나온다.
길을 따라 마을이 있고 사람들이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나간다. 교복을 입은 아이가 다른 아이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 뚝뚝의 뒷자리에 혼자 앉아있는 나를 흘낏 쳐다본다. 해가 내리 쬐어서인지 얼굴을 찡그리고 있지만 살짝 날 보며 웃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면 처음부터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내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투어 첫째날 오후의 첫 일정으로 가게 되었지만, 반테이 삼레는 예정에 없던 곳이었다. 오전 투어를 맞추고 혼자 점심을 먹으며 사람에 지쳐서 지도를 보다가 사람이 없을 법한 - 스몰 투어 코스에서도 그랜드 투어 코스에서도 조금 먼 - 사원을 하나 고른 곳이 반테이 삼례였다. 일본어가 적힌 헬멧을 쓰고 먼지가 많은 길을 뛰느라 더러워진 셔츠를 입은 뚝뚝 기사는 5불을 더 달라고 했다.

사람이 거의 없는 이 인기 없는 사원은 사람이 한참 많을 오후 1시에 갔는데도 나와 프랑스인 부부 말고는 사람이 없었다. 하긴 씨엠립의 이 사원군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 활기차고 신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뚝뚝을 내려 사원으로 가는 길은 숲 안으로 걸어들어가게 되어 있고, 그 중간 쯤 지뢰로 신체의 일부를 잃은 군인들이 캄보디아의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사원의 외곽은 붉지만, 내부는 앙코르 왓처럼 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사원의 앞에 서면 햇볕이 너무나 강해 새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고푸라(사원의 탑 형태의 출입문, 보통 화려한 부조로 장식되어있다)에는 신들이 어떻게 세상을 만들었고 이 세계가 어떻게 완성되었는지가 새겨져 있었다. 비슈누는 양 다리로 악마의 목덜미를 틀어 죽이고. 시바 신은 우주의 중심에서 춤을 춘다. 작은 사람들이 춤을 추는 신 주변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혹자는 시바 신이 춤을 추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멸망할 때라고 했다. 자동차 도로와 이어져 있는 북쪽 입구는 원래의 입구가 아니다. 벽을 돌아 동쪽 입구로 걸어 들어가면 원래는 물이 가득차 있었을 해자가 보이고 길을 건너면 내벽. 그리고 전실로 이어진다. 전실은 누가 여기서 무엇을 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작고 좁다. 뭘 위해 만들어졌는지 뭘 할 수 나 있었는가싶다. 올 때 분명 같이 있었던 노부부는 큰 흥미가 없는지 화려한 고푸라만을 구경하고 중앙성소에서 사진을 찍더니 금세 어디론가 가버린다.

중앙 성소는 아름답고 그 안의 신상에는 작은 꽃이 공물로 놓여져 있다. 나는 중앙 성소와 테라스를 이어주는 발 받침대들에 매혹된다.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된 높이로 올려져 있는게 없고 네 방향의 연결 통로 모두 반 이상 끊어져있다. 세월이 지나서 그런 걸까 아니면 복원 도중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던 탓 일까. 나는 중앙 성소로 가는 해자를 넘어 테라스 구석의 그늘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도서관과 내벽 사이의 그늘에서 문 가에 새겨진 부처의 모습과 그 광휘를 베껴 그렸다. 앙코르와트 양식과 바이욘 양식이 섞여있는 이 사원은, 만다파(전실)가 안탈라라(좁은복도)로 이어져 사방에서 중앙 성소를 바라 볼 수 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서 뒤돌아보니 검고 흰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가는게 보였다. 아까 무엇에 쓰일지 모르겠다고 했던 전실의 구석에 누가 몰래 고양이 먹이 그릇을 가져다둔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멀리서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들려 그리던 그림을 덮고 사원을 나섰다.

원래 동쪽에서 이어져 있던 사원의 진입로는 끊어져 있다. 나는 길이 끊어져 있는 곳까지 걸어가보았다. 거기 멀리엔 숲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원으로 다가오는 사악한 자들을 노려봐야 할 사자 상들은 반쯤 부서진 채 놓여있었다. 그 길로는 아무도 오지 않기 때문에 사자들은 안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작은 병아리 한 마리가 소리를 지르며 툭툭으로 달려들었다. 기사는 급하게 핸들을 잠시 꺾었다가 툭툭이 흔들리자 더 이상 방향을 꺾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다. 다행히 병아리는 툭툭 밑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병아리가 뛰어간 쪽을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병아리는 금세 그늘로 도망가버렸다.

투어의 세번째 날 새벽, 뱅밀리아와 반테이 스레이를 가기 위해 일찍 호텔을 나왔다. 호텔에서 소개해준 중고 렉서스의 운전기사는 깨끗한 옷에 콧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뱅 밀리아에서 한 시간을 넘게 시간을 보냈는데도 아직 아침이 끝나지 않았다. 차로 돌아오니 기사가 생수를 하나 주었다. 기사는 반테이 스레이로 가는 길에 이것저것 나에게 말을 걸었다. 고객 서비스라고 생각했던 걸까. 기사는 내가 대답을 느릿하게 하기 시작하자 톤레삽과 캄보디아 그리고 프놈쿨렌에 대해서 설명을 하다 답답했는지. 영어로 말을 하면 “내가 느끼는 걸 잘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나는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원래도 두배는 더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진짜 생각들은 우리 모국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가 입 밖에 낼 수 있는 건 원래의 생각들이 아닌 무너지고 흐트러진 생각들인 거죠.”
기사는 그럴 듯 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어본다. “당신은 한국인이죠? 당신도 교회에 다니나요?” 나는 웃는다. “제 어머니는 교회에 다녀요. 제 할머니는 당신 같은 부디스트죠. 둘은 사이가 엄청 나쁘기도 하고 좋기도 해요. 둘은 나름 균형점이 있는 것 같아요. 서로 말을 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죠.” 운전사는 또 웃는다. “많은 외국인들이 여기에 찾아와요 다들 감탄하고 유적지를 돌아다니지만 때때로 외국인들이 우리의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사람들이 보기엔 멋지고 훌륭한 유적일 뿐이고 유적들이 우리의 종교의 대상이란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특히 한국인들이 그런가요?” 운전사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의 영어는 추상적인 단어보다 물리적인 단어로 이루어져 있어 불교도라기 보다 엔지니어나 지도제작자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나는 그가 하는 이야기를 전부는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반테이 스레이가 있는 숲에 도착한다. 숲을 지나 사원을 보고 다시 오솔길을 걸어 나와 다시 차에 탄다. 한시간 이상은 걸리지 않았다. 기사에게 매점에서 사온 스프라이트를 건네고 나는 환타 오렌지 맛을 마신다. 그리고 이제 그만 호텔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아직도 점심 때도 되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운전사는 계속해서 캄보디아의 사람들과 종교에 대해서, 그리고 외국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때로 지도를 만드는 사람 같은 말투로 때때로는 전혀 맞지 않는 단어를 써가며 나에게 말을 한다. 어떤 시점에서 그는 나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 캄보디아 사람 특유의 겸손한 태도로 - 나를 살짝 돌아본다.

나는 사실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내가 머릿속 가득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반테이 스레이, 도자기처럼 만들어진 아름다운 숲 속의 사원.

나는 내가 방금 본, 붉은 사암의 사원 반테이 스레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모든 사원은 신의 의지의 구현이며, 신의 세계를 이 땅에 이룩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이상향이다. 분명 그 의지는 단단하고 강력했으리라. 과거 이 사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를 생각해보자. 신의 말씀이 그 땅을 정했을 것이고 왕의 의지가 사람들을 모았을 것이다.

그 사원을 만든 사람들을 상상하고 한다. 앙코르왓을 제외하고 모든 사원들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이 사원은 작은 앙코르왓 같은 구조지만 거꾸로 967년에 완성된 상당히 빠른 사원에 속한다. 어쩌면 1100년대에나 완성된 앙코르왓은 이 작은 사원을 본 따서 만들어진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해도 믿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그 이유는 역시 이 사원을 만든 사람들이 누구든 신을 믿은 것 만큼이나 아니 신을 믿은 것보다 더 아름다움을 믿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불경한 생각이 든다.

고푸라(탑형태의 출입문)의 기둥에 연꽃과 불꽃의 부조, 그리고 그 안에 원숭이 신과 턱이 없는 죽음의 신의 얼굴을 새기며. 린텔(상인방)위에 프론톤(박공지붕)을 올리고 또 그 조각들에 신과 악마 그리고 괴물 - 인간사자 나라싱하와 원숭이의 왕과 커다란 새를 탄 브라흐마, 그리고 무엇보다 비슈누와 칼리를 - 새기고나서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왕국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설령 왕의 이름과 우리의 믿음 마저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가 만들어낸 이 아름다움은 세세토록 영원할 것이라고, 그런 삿된 마음을 몰래 품고 신이 자신의 마음을 모르기를 바라며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분명 그의 손 끝과 망치와 그리고 마음을 지켜보던 그의 신은 흡족해 하셨을 것이고, 이 사원을 당신의 것으로 선포 하셨을 것이다.

......

모든 복제품들이 그러듯이 이상향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하고 우리는 약 천년 후의 세계에서 무너진 사원을 본다. 이제는 오직 몇 명의 사람만이 신을 찬양 할 줄 알고. 사원의 신을 믿지 않는 불경한 자들만이 모여들어 사원을 돈다. 이 땅의 모든 사원은 불완전한 세계에 완벽했던 사원들이다. 단지 천년이 지나갔을 뿐이다.

나는 차를 돌려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진다. 차를 돌려 저 사원의 벽 아래 내려다주세요. 해가 질 때 까지 저 곳에 빛이 비치는 것을 보고 싶어요. 아주 오래 전 부터 매일 그래왔던것 처럼 말이에요.

나는 운전사의 말에 제대로 대답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지금 떠오른 생각을 말하기로 한다.
“지금은 믿음을 갖기가 힘든 시대죠, 아직도 사람들은 서로를 증오하고 우리가 경전으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과학적 사실이랑은 거리가 멀어요.”

나는 뜸을 들이고 말을 계속 한다.
“하지만 저는 무엇이든 간에 믿음을 갖는 것이 아직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신을 믿는다는 것은 나 자신 보다 큰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믿고,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을 존중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기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나 말고도 다른 어떤게 있다고 믿는게 중요해요 안 그런가요?”

그리고 나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세상이 이상적인 세계와 다를 수록 우리는 현실을 어둡게 여기죠.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상의 세계가 얼마나 멀리 있든 간에 앞으로 더 나아가려는 모든 의지가 아닐까 싶어요. 그게 옳든 그르든 말이에요.

그리고 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생각한다.
저는 아직도 언젠가 왕국이 내려와 이 세상이 완벽해질거란 걸 믿고 싶어요. 알겠어요? 우리의 현실이 우리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기사는 나의 서툰 외국어를 이해했는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를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 이로다” (시편 137편 1에서 3절)

20년 1월의 글이다.

몇년 전인가, 겨울 나절 아직 봄이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노인과 둘이서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나무는 앙상하니 얼음을 털어내지 못하고 바람도 불지 않는 오후라 멀리까지 바라보아도 사람 하나 없었다. 

밥을 먹고 돌아가는 길이었으니 산책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발끝을 바라보며 걷던 노인은 익숙치 않은 외국어로 나에게 질문을 했다. 당신은 기도를 하나요?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역시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로 "누구에게요?"라고 대답했다.

노인은 앞서보다 더 천천히 나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나요? 

나는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짧은 말은 모두 필연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지만. 질문을 받은 이상 할 수 있는 최선의 언어로 대답해야하기에 나는 한기처럼 멈춰서서 생각을 했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확한 대답을 찾았다. “저 또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저는 저의 신에게 기도를 합니다. 저의 신은 침묵이며 숨결이고 질서입니다.
그는 중력처럼 연약하고 모든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제가 어떤 때 어느 곳에서 기도를 하더라도 그가 저의 기도를 듣고 있을 거란 걸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저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제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때때로 제가 아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제는 모르게 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아서 모르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더 정의에 부합하는 행위로 느껴집니다.

저는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말과 기도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란 구절을 믿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게으르지 아니한다면 해야할 바를 성취할 수 있고 그 모든 것은 언젠가 소멸한다는 말 또한 믿습니다.
사랑이 없는 자의 노력 또한 신에게 닿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 마저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젠가 세계의 색이 흘러내리고 그림자가 무게가 되어서도 우리의 말들이 공중에 그대로 남아 우리를 증언할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언젠가 살아있었다는 유일한 증거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네, 저는 기도를 합니다. 왕국도 도시도 노래도 코끼리도 책도 모두 언젠가 낡아 사라질 것이고. 별보다 이 기도가 오래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노인은, 늙은 외국인 엔지니어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하더니 이윽고 그 질문이 사실 혼잣말이었다는 듯이 기도는 하는 게 좋지요. 누구에게라도 누구를 위해서라도.

나는 몇 년이나 지나서 노인의 말을 떠올리고, 그의 마지막 말 앞에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오래 전의 일이었고 그는 이미 은퇴한지 오래라 그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알수가 없다.

나는 그 늙은 엔지니어를 위해 기도를 해보려 노력한다. 그러다 나는 변덕스럽게도 신을 위하여 기도를 했다. 

이 세상에 누군가 선량한 마음을 지닌 이가 있다면 그 누구보다 외로울것이기에, 누군가 한 명 쯤은 그의 평온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물방울이나, 새가 날개를 휘두르는 소리처럼 기도는 멀리까지 전해진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의 기도가 신에게 가서 닿을지는 아직 알수 없다.



19년 12월의 글이다.

데스크탑을 껐다. 

사람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사무실을 떠날 때는 의식처럼 정해진 순서대로 행동하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모든 다른 자리 처럼 지금의 내 자리도 우연히 나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항상 아주 멀리 떠나는 사람처럼 책상 위의 쓰레기를 모아 버리고. 달력과 노트를 정리한 다음, 나 대신 자리를 지킬 사람 모양의 인형 하나를 올려 둔다. 아무리 정리해도 내 자리는 다른 누구의 자리보다 내 자리처럼 보이지만, 시도를 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오늘 저녁 때 가을 비가 내릴 거라고 했는데 비는 아직 오지 않는다. 챙겨온 우산을 서랍에 넣고는 잠근다. 

커다란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노래를 튼다. 가방을 멘 다음. 의자를 넣고 한 번 더 사무실을 둘러본다. 누군가 사무실에 남아있을 때는 인사를 한다. 안녕히계세요. 아무도 사무실에 남아있지 않아 사무실을 마지막으로 나설 때엔. 불을 끈다. 안녕히계세요.

나는 회사의 정문에서 우리집 현관문 앞에 떨어트려 주는거나 다름없는 통근버스 노선이 하나 있지만, 너무 더워 걷기가 곤란 할 때가 아니면 출근 할 때도 퇴근 할 때도 그 버스는 타지 않는다. 누가 나에게 왜 걸어서 출퇴근을 해요 라고 물어보기에. 개를 산책시키는 것처럼 스스로를 산책시키는 거에요, 라고 대답했다. 일어나서 잠이 들 때 까지 나는 대체로 계속 혼자지만. 완전히 혼자가 되서 어딘가에서 다른 한 곳으로 걸어가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걸어가는 것이 좋다. 겨울 밤길을 혼자 걸어가는 거라면 더 좋다. 꼭 정신의 메트로놈을 맞추는 것처럼 기분이 좋을 때는 진정하게 해주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기분을 낫게 해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추위를 느끼며 걷고 있노라면 내가 이렇게 걷기 위해 만들어진 사람인 것 같다.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고 다리가 납처럼 무겁고 숨이 모래처럼 갈라질때 까지 걸어다니고 싶어진다. 나는 애초에 목적을 위해서 뭘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뭘 하고 싶어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소리로 음악을 틀고 신발 안에 발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해 보고 계단을 내려간다.

요즘은 예전처럼 퇴근이 늦지 않다. 일주일에 70시간을 넘게 일하던 때보다 훨씬 낫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한가하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간에 출근을 해도 정신 없이 일을 하다 보면 저녁이 되고,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시간이면 일어나 집에 간다. 일을 하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얼마 전 부터는 게임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요 몇 년 전 완전히라고 할 정도로 게임을 하지 않았는데, 그 때는 게임을 하지 않아도 생각해야할 사람들과 생각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이제는 생각해야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대신 게임에 대한 생각을 하곤 한다. 예를 들어 과일을 먹어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괴물이라거나, 그 괴물에게서 (반드시 빼앗기고 말 운명의) 과일들을 지키는 유령들 이라거나 하는 유사 셰익스피어 적인 악몽의 서사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도대체 왜 이런 이상한 규칙을 지닌 작고 우스꽝스러운 세계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게임 안으로 각자의 작은 촉수를 내밀어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 처럼 보인다. 게임 안에서 우리의 의지가 움직이는 것이야 말로 가장 즐거운 유희인 것 처럼 불편하고 이해하기 힘든 규칙에 따라서 (예를 들어, 너는 게임 안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지만 거북이와 정면으로 맞서면 죽고 말아, 혹은 너는 뭐에 부딪혀도 죽지만 네 키보다 높이 점프 할 수 있어) 게임을 플레이 한다.

규칙이 복잡하고 그래픽이 정교해져도, 게임의 법칙은 단 하나 뿐이다. 이해하기 힘든 불합리한 세계에 우리의 의지를 구현하는 것. 그리고 때때로 거기서 이야기를 떠올리고 또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 거기에 더해서 우리의 실체가 살고 있는 세상 또한 게임 안의 세계처럼 불합리한 규칙의 세계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는 것. 왜냐하면 게임에서의 죽음과 실패는 현실에는 어떤 영향도 끼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가 결코 말하지 않는 게임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하지 않을 때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책을 읽는다. 
다시 생각해보자. 걸어 다니고 있지 않을 때는 항상 무언가를 읽고 있기 때문에 내가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문제가 너무 많은 것을 읽어서 라는 걸 내심 깨닫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게임을 다시 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소설 또한 다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은 게임보다 훨씬 안전한 매체이다. 글은 어떤 시대에서도 총칼보다 강한 적이 없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라는 말은 총칼을 가진 권력자들이 엄살을 부리며 하는 소리임에 틀림없다. 그런게 아니라면 너무 많이 읽어서 지상낙원을 이룩한 곳이 한 군데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은가. 내가 아는 한 모든 지상 낙원은 아스피린과 밀가루의 부족으로 멸망한지 오래이다.

높지 않은 건물인, 사실은 원래 공장이었던 사무실을 나와서 조금 걸어가면 커다란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가 나온다. 사거리는 멋지게 뻗어 시야를 가리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운이 좋으면 해가 지는 시간에 퇴근을 해 엄청난 색으로 물들인 하늘을 보면서 퇴근 할 수도 있다. 매일 매일 같은 곳에 서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우리 회사 부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고. 무엇보다 항상 같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지 못한다면 그런 활동도 별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스타그램에서 초기에 올린 사진을 보니 무려 2011년의 사진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갈 수록 내가 사진을 찍는 폰이 바뀌어서 요즘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록 인스타그램의 이미지들은 묘하게 선명하고 밝아졌다. 나는 그게 꼭 기억의 은유처럼 느껴져서 불쾌해지고 말았다. 자연적으로 열화되지 않은 이미지가 아니라 앞으로 발전해나가며 선명해지는 이미지라니, 언젠가는 인스타그램의 이미지가 현실의 해상도를 따라 잡을 지도 모른다고 늙은이 같은 걱정을 한다.

사거리를 지나갈 때는 어째서인지 잠시 멈춰서서 왼쪽의 커다란 건물을 흘끗 보고는 헤드폰의 볼륨을 올린다. 이제는 이유도 기억나지 않고 그냥 버릇이 되었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소리로 듣는 것은 좋은 버릇이 되지 못한다. 듣는 음악은 대중이 없지만, 항상 가장 큰 소리로 항상 가장 빠르게 걸어 거리를 지나간다. 어떤 시간에 지나가든 간에 사거리에서 이어지는 그 길에는 사람이 있다. 모두 후회하는 일은 하나도 없는 사람 처럼 걸어간다.

문득 내 출근길과 퇴근길의 루트가 달라지는 지점이 이 지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출근 길엔 좀 더 왼 쪽의 커다란 건물에 가까이 그 바로 앞을 걸어 작은 공원 앞을 지나가는데, 퇴근 할 때는 커다란 건물에서 약간 빗겨가 사거리의 중앙부를 가로지른 중앙대로를 따라 걸어간다. 무슨 이유 일까 생각해 보려다 스스로의 행동에 하나하나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인 것 같아서 그만둔다. 사람은 대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제대로 이해받기 힘든 법이다.

어쨌거나 사거리와 중앙대로는 항상 엄청난 바람이 분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실상 우리 회사가 있는 곳은 거대한 공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바람을 막아줄만한 것은 거의 없고 커다란 빌딩이 연달아 서있어서 자연스럽게 바람이 강해진다. 가끔 내가 걸어가는 곳이 경기도 어딘가의 도시인지 아니면 지구 구석 어딘가의 황야인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나는 바람이 강하게 불 수록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언젠가 토요일 급하게 출근을 하며, 벼락이 치는 것을 보았다. 아파트를 가로 지르고 언덕을 올라 내려가는데 회사가 있는 단지 저 쪽에 벼락이 치고 있었다. 태풍이 불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엔 아무도 없었고 나는 벼락이 치는 곳으로 계속 걸어가며 그 장면을 혼자 보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꼭 태초의 산에 변덕스러운 신이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위험할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홀린 광신도처럼 계속 걸어갔다.

새삼스럽게 세어보니 벌써 10년 가까이 이 회사에 있었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으나 나는 하나도 달라진 점이 없이 똑같이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사는 곳이 달라져도 어디에서 일해도 나는 퇴근길에는 항상 한참을 걸어야 만족을 했다. 전철이 너무 가깝다면 전 역에서 내려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걸으려고 헀다. 무엇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나는 걸어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사랑했고, 너무나 많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나는 내가 시간 그 자체로 되는 것처럼 굴었다. 똑딱 거리는 시계처럼, 나무 위에 달려 있는 광신도의 시체처럼, 변하지 않고 도달 할 수 없는 어떤 시점처럼 행동했다. 꼭 영원히 거기에 존재할 계절처럼 살았다.

나는 누군가의 옆 모습을 떠올린다. 정신을 흐트러트리지 않기 위해 바쇼의 마지막 시를 떠올린다. 방랑에 병들어/꿈은 마른들판을/헤매인다. 최초의 시는 기도였으며 모든 시는 무언가를 이해해보려는 시도이다. 스산한 기분에 사거리에 서서 한 마디 입 밖에 내어보려고 하지만, 한 마디 조차 입 밖에 낼 수가 없다. 
인생이 꼭 누군가의 자리 건넛편으로 보는 재미없는 영화인 것 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멀리 길 건너에 보이는 사람들과 흘끗 보이는 모르는 사람의 집안 풍경은 우스꽝스럽게 따스해 보인다. 나에겐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겨울의 밤 길을 혼자 걸으면, 항상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 이리저리 이지러지고 망가져도 겨울의 기온이 나를 다시 한 번 나 자신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오로지 나 였으며 앞으로도 나 외에 다른 것은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겨울이고, 내가 입으로 뱉는 것마다 추위, 머리 속에 있는 것은 바람 뿐이다. 나무가 쓸려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가방을 고쳐매고, 어깨를 둥글게 구부리고는 계속해서 걸어간다. 밤처럼 쏟아지는 것은 비이다. 노랗게 붉은 나뭇잎들이 땅바닥에 떨어져 차가운 돌바닥을 밟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하늘이 거기에 있는지 똑바로 바라보기도 힘들어서 물에 젖은 안경을 손으로 훔쳐가며 그대로 걸었다. 
며칠 전 아침 똑같은 길을 거꾸로 올라가다가 가로수 옆에 기대듯 피어있는 작은 꽃을 하나 보았다. 처음 그 꽃을 보았을 때는 무심결에 지나쳤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그 꽃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비는 계속해서 쏟아지고 나는 그 꽃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차피 우리가 원하는 유일한 것은, 별이 멸망 할 때 까지 서쪽으로 계속해서 가는 것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신들이 당신들의 의지를 우리를 통해 구현하는 방식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한참을 멈춰있다가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19년 11월의 글이다.


저녁 벚꽃놀이 집이 있는 사람들은 돌아가고夕桜家ある人はとく帰る

- 잇사


지금은 밤이고 부산 앞 바다를 지나는 중이다. 이제까지 몇 번이나 그 위를 지나 왔을텐데 이렇게 부산 위를 지나가고 있는 걸 확실히 인식한 적은 처음이다.

당신에게 부산이 어떻게 아름답다고 설명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나는 시속 810킬로미터에 상공 8500미터에서 이곳을 지나치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지금 지나가고 있는 부산 앞 바다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설명하고 싶다. 이런 속도로 움직이는 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잠시 뿐이다.

그러나, 당신 그 검은 바다 앞을 흔들거리는 등불들이 서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지 꼭 설명하고 싶다. 산과 바다로 이루어진 도시 밤의 상공에서 볼 때 꼭 커다란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영혼들 처럼 보이는데 검은 - 분명 산일 것이다 - 구름들이 빛의 무리를 집어 삼킬듯 일렁이면 빛 또한 점점이 저 멀리로 저 멀리로 이어진다. 바다를 감싸듯 커다란 원형의 신도심과 구도심은 각자가 하나의 벌떼들인 것 처럼 이어졌다 또 끊어졌다를 반복한다.

빛이 점점 이어지고 끊어지기를 반복하더니, 금세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숨을 멈추고 있는 시간보다도 빠르게 나는 도시의 상공을 지나쳐 왔다. 나는 눈을 감지도 않고 생각한다. 이제 부산을 지나온 것 같다. 우리가 꼭 모든 스쳐지나가는 것을 애정하고 아쉬워하는 것처럼.

나는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상공에서는 영혼 하나 보이지 않는다. 비행기는 잠시 더 높이 날았다가 금세 고도를 내릴 것이다. 그리고 영혼이 강줄기를 타고 우리에게 흘러오듯이 또 빛이 보일 것이다. 아주 금방, 곧. 우리가 숫자를 세는 것만큼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19년 10월의 글이다.

글을 쓰지 않고 있다고 한다면, 너는 웃을지도 모른다.

19년에 나온 뱀파이어 윅켄드의 신보를 듣고 있다. 오늘 오전에 그렇게 까지 급하지도 않은 업무 전화를 하다가 버스를 놓쳤다. 버스를 하나쯤 놓쳐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업무전화가 길었으니 사실은 세개 쯤 놓친 셈 이었고 그래 결국 비행기도 놓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만원 정도만을 물고 비행기를 바꿨지만, 본인의 바보 같음에 몹시 시무룩해져서는 항공사의 라운지로 기어들어가 책을 읽었다.

그러니까, 국적기의 라운지는 처음이었다. 전에 해외 출장 중에 국내선을 이용해야 했을 때 일정이 뜨자 동행한 회사 사람이 따라오라며 라운지를 데리고 갔을 때가 있긴 했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공항에 넘쳐나는 것이 있다면, 눈치 없고 불평이 많은 사람들과 불편하고 별로인 의자가 아닌가. 그런걸 일부러 더 좁은 공간에 모아둔 곳이 있고 또 거기에서 굳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하지만 티켓을 새로 끊어준 직원 분께서 시간이 많이 남으셨잖아요, 라고 하며 친절하게 지도까지 그려서 주는데 달리 안 갈 이유도 없었다. 우연인지 아니면 오늘 이러한 사태가 일어날 복선이었는지 얼마 전 항공사의 등급이 하나 올라갔고 덕분에 쓰지 않으면 언젠가 없어질 라운지 사용권이 있었다. 라운지에 입장하며 라운지 사용권이 없으면 여길 돈을 쓰고 사용하는 건가, 하는 아주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처음 들어가본 국적기 항공사 라운지의 의자는 공항의 의자보다는 나은 수준이라서 쿠션이라는 것이 있었다. 요즘 공항의 의자들은 100이면 90은 쿠션처럼 생겨먹은 구조물을 의자에 붙여놓고 앉는 사람의 엉덩이를 공격하기에 바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기개 있는 젊은이를 본 노인처럼 좀 흐뭇해지려다가 정신을 차렸다. 무려 4시간이나 여기에 이러고 있어야 하잖아.

컵라면에도 볶음밥에도 별로 관심이 없어서 찬장에서 맥주조끼를 꺼내, 탄산수를 벌컥벌컥 담아 꿀꺽꿀꺽 마셨다.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공식적으로 비행 중이라 연락도 되지 않을 상황에서 굳이 일을 해야하나. 나는 실은 어제도 10시가 넘어 퇴근했고 매주 지엄한 국법을 어기고 50시간에서 60시간씩을 일하고 있다. 출장을 가느라 오늘 내일 모레 3일은 그나마 하루 8시간 일한 것으로 체크가 될텐데 거기에 더 일을 하라고? 아니 심지어 오늘 오전 내내 일했잖아 일하느라 비행기도 늦어서 내 돈으로 차액냈잖아. 다시 한 번, 나는 탄산수를 담아 꿀꺽꿀꺽 마셨다. 그거 말고는 터져나오는 심술보를 달랠 길이 없었다.

가져온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집에서 반쯤 읽은 책인데 중간에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하면 다 읽지 못할게 될 것 같아 가져온 것이라 금세 다 읽고 말았다. 좋은 독서였다. 글을 안 쓰게 된 이후로 글을 읽는 시간이 늘었다. 좋은 책을 머릿 속에 넣고 그걸 곱씹는 것은 항상 좋은 경험이다. 하지만 어쩌나 지금은 시간을 보내는게 목적인 걸. 방금 다 읽은 책을 바로 한 번 더 읽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는다. 가져온 다른 책을 읽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읽은게 데이터와 세계의 진보에 대한 책이었는데 그 다음 책이 스티븐 킹의 단편집이라니. 균형있는 독서도 정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맥주 조끼에 탄산수를 담아 꿀꺽꿀꺽 마시는 것 뿐 일까.

나는 뒤늦게 아이패드와 넷플릭스를 떠올리고 벌떡 일어난다. 지난 번 비행 때 넷플릭스 동영상 몇개를 저장 해 둔 것도 떠올랐다. 의기양양하게 넷플릭스를 펴서 저장한 동영상을 보았다. 넷플릭스로 저장한 동영상에 만기가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에러 메시지의 내용은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다시 한 번 저장해주세요”였다. 그래 아무렴 상관없어 나는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 있으니까. 하고 넷플릭스를 살펴본다.
그러고보니 요즘 입에 넷플릭스 볼거 없다는 말 달고 살지 않았었나. 주의 깊게 보고 다시 한 번 보았지만 그래 진짜로 넷플릭스에 볼 게 없었다. 굳이 비행기 안에서 볼만 한 것도 없었다. 미련을 버렸다. 이놈의 넷플릭스 내가 서비스 해지하고 만다. 하고 이를 갈았다.

이럴 거면 그냥 일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마침 백팩에 랩탑을 넣어두었으니까, 그냥 열어서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사외접속시스템에 들어가 미뤄두었던 레포트 하나랑 메일 몇개 회신만 하면 되지 않을까. 백팩이 유혹적으로 열려있다. 그냥 손을 들이밀기만 하면 랩탑이 거기 있고... 하는 순간 거래선에서 전화가 왔다. 받기 싫다. 짜증난다. 아니 도대체 왜 이걸 받아야지. 왜 일을 해야하지 하는 생각에 또 맥주 조끼에 탄산수를 담아 왔다.

사실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별로 없으니까. 그러니까 하고 생각한다, 그래 이제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하면 너는 웃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항상 뭔가를 하고 있으니까, 가끔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걸 하지 않아서 이런 형편없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고 생각한다.
나는 라운지의 소파에, 아니 그냥 쿠션이 붙은 1인용 의자에 기다랗게 기대 눈을 감고 노래를 듣는다. 나에게 남은 것이 글을 쓰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하지 말아줘. 글 같은 건 안 써도 되잖아. 차라리 그림을 그릴게. 지나가는 뚱뚱한 코카서스인을 그리는 건 어때?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림을 그리진 않는다.

그래 이럴거면 차라리 뭔가 쓰자 하고, 아이패드를 꺼내 정말로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 이제 금방 비행기를 타야하는 시간이 되지만. 그래 이제 금방 시간이 다 될테지만. 지금은 글을 쓴다.

19년 5월의 글이다.




하기의 글은 단 한 줄의 진실도 없음을 사전에 공지드리는바 참조 바랍니다.

올해 2월 페낭에 갔었다. 그렇게 안가려고 갖은 수를 다 썼는데 소용이 없었다.
공항에 가니 거래선 구매가 차를 타고 마중을 나와있었다. “로컬 음식점 가려는데 괜찮아?” 괜찮아 나는 로컬을 아주 좋아해. “로컬을 좋아하면 중국어를 좀 배우지 그래” 아냐 정정할게 나는 역시 글로벌이 좋아 맥도날드 스타벅스는 내 인생의 길잡이지. 구매는 희미하게 웃었다.
작은 도시라던 페낭은 조용하고 따뜻했다. 우리는 정말 길가의 가게에 들어가 중국음식을 먹고 농담을 몇개 하고 음식 사진을 찍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점심 식사 시간을 조금 넘겼지만 구매는 “늦어도 돼, 너랑 먹고 간다고 했어. 내 보스가 그 대신 너 돌아가기 전에 꼭 인사해야하니까 말 없이 출국하지 말라더라”하고 말했다.
몇개인가 미팅을 하고 비행기 시간에 쫓겨 나가며 나는 구매에게 인사를 했다. K 다음에 또 봐, 5월? 4월? 그 쯤에 또 올게. 구매는 양산을 썼는데도 햇볕에 눈을 찡그리며 “또 봐”라고 말했다.

커서가 깜빡인다. 사람의 숨소리보다 빠르다. 심장이 뛰는 속도보단 느리다.
나는 메일을 쓴다. 친애하는 K, 당신의 퇴직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작년에 당신이 건강 상의 이유로 잠시 휴직하고 복귀 하셨을 때 그 문제가 해결되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퇴직하게 되실 줄 몰랐습니다.
나는 내가 쓴 문장을 다시 읽고, 잠시 생각하고 물을 마시고 다시 메일을 쓴다. 모든 말을 지우고 이렇게 쓴다.
‘친애하는 K, 우리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당신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매 담당자이고 그 회사의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중요한 저의 파트너였습니다. 당신의 오랜 기간 도움과 서비스에 감사하고 당신이 퇴직 후에도 언제든 저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진심을 담아’ 나는 메일을 읽고 또 읽는다.

아직 나이가 젊어 내 누나 정도의 나이인 K는 4년 동안 나의 카운터 파트너였다. K는 암 말기로 더 이상 처치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퇴직을 한다고 한다. 그는 퇴직한다고 했던 날보다 4일을 더 출근했지만 나의 메일엔 회신을 보내지 않았다.
메일을 보내고 보니 꼭 공중에 돌을 던지는 것 같은 짓을 했다 싶었다. 어떤 곡선도 허공에 남는 일은 없고 다만 말도 하지 못하는 돌만 땅에 떨어진다. 돌을 던진 사람조차 어디론가 가버리면 남는 것은 땅에 떨어진 물질 뿐이다.

작년 A형이 죽었던 월요일의 아침, 나는 A형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몇달이 지난 후에야 그가 내가 전화를 건 걸 알았었는지가 신경쓰였지만 나는 그의 사망시간도 모른다. 멍청한 행사가 있어서 장례식에조차 갈 수 가 없었던 것이다.

그 전의 금요일 퇴근하는 A형과 같이 있었던 것은 나다. 나는 퇴근하려는 그를 붙잡고 업무 협의를 하고 형의 자리에서 메일을 보내고 담배를 피러 간다는 뒷꽁무니에 인사를 했다. 우리가 친한 사이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정말 띄엄띄엄 했고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일 얘기만 했을 뿐이다.

아니 결혼을 했다고? 하고 놀라하자 “너도 참 대단하다 2년이나 뒷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결혼했는지도 몰랐냐”라고 누군가 면박을 줬다. 내가 A형에게 아 저 솔직히 결혼하신지 몰랐었어요 라고 하자 그는 소년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가 나와 이야기 할 때 몇 번이나 웃었더라 뭘 좋아했더라 무슨 이야기를 했지. 가족의 이야기를 했던가. 아니 내가 A형과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가 뭐였지. “다다음주 쯤에 H수석 올라오면 치맥 좀 하지”라고 했었나. 뭐였지. 몇 번이나 말했었는데 치맥하자고.

메신져 앱에 A형의 이름으로 새로운 친구 추천이 떴다. 모르는 얼굴이다. 나는 아직도 A형의 번호를 지우지 않았기 때문에 형의 번호를 받은 사람이 추천에 뜬 것이다. 프로필을 보니 환하게 웃고 있는 개구쟁이 소년이다. 스마트폰을 산 것이 신이 났는지 친구들의 사진을 많이도 올렸다. 그 프로필을 삭제하려다 그대로 멈춰서서 생각을 했다. 나는 아직도 그가 왜 죽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의 가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형은 아이도 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사진 속의 개구쟁이가 형의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리도 없지만 형이 모습을 바꿔서 어딘가에 계속 살아있는게 아닐까 사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그 프로필을 지우고 전화번호를 지웠다.

여름, 친구들과 커피를 사러 단지를 가로질러 가는데 멀리 하얗게 햇볕이 비치는 곳에 A형이 얼굴을 찡그리며 지나가는 걸 보았다. 나는 어이- A책임-하고 그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흰 셔츠를 반팔로 접어 입은 그는 손으로 햇볕을 막더니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가 A형을 기억해야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다.

구매 K의 후임 L은 좀 서툰사람이라 나에게 전화를 하는 걸 어려워하고, 메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채로 똑같은 내용을 계속해서 보내온다. 나는 꼼꼼하지도 살갑지도 않아서 L과 업무 호흡은 별로 맞지 않는 것 같다. 고집을 부리며 뭔가를 해달라고 연락을 해왔기에 전화를 하면서 아웃룩을 뒤져 K가 보낸 메일을 찾았다. 이건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자, 네 선임인 K랑 나랑 어떻게 협의 했었는지 메일 히스토리를 줄게. 혹시 나한테 전화연락하는게 부담되면 나만 넣어서 메일 보내도 괜찮아. 네 보스랑 내가 너보다 일 더 오래 했어. L은 어색하게 웃는다. K는 성격은 조용했는데 진짜 좀 까르르 웃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다음주에 다시 연락할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과연 다음주에 연락을 할까. 모르겠다.

나는 어느날 꿈을 꾸었다. 나의 손자가 지금의 나보다 나이가 많아져서는 나를 추억하는 꿈이었다. 나는 꿈에서 깨어, 이미 죽어 공기와 먼지가 되어있을 내가 살아있는 것에, 내가 그렇게나 사랑한 나의 아이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 한참을 앉아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피할 수 없는 끝에 대한 위로란 것은 이렇게 허망하고 갸냘픈 것이다.

나는 울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참고 공중의 나는 새를 보살피는 우리의 신을 생각한다. 우리의 신은 지금 어디에 날아오르는 새를 보살피느라 우리를 안아주지 않는가. 어쩌면 우리는 그냥 허공에 그려진 곡선일뿐이고, 움직임과 상승 그리고 추락일 뿐이어서 신이 우리를 바라보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가락을 들어 천천히 허공에 선을 긋는다. 언제까지 손을 들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면서.

19년 4월의 글이다.

'붉은 책_(괴담 등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0821] 두자춘(杜子春)  (1) 2024.08.21
[20240815] (당신의) 원형  (0) 2024.08.15
[20240802] Dearest you  (2) 2024.08.02
[20240726] 누구도 (우리를) 구하진 못한다.  (0) 2024.07.26
[20171101] 종이의 꽃  (0) 2017.11.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