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처럼 푸르고, 기억처럼 앙상하나. 아름답기 그지 없다"


15년 7월 1일.

남자는 도북버스 시로가네 선의 시간에 맞춰서 자전거를 반납한다.

키가 크지만 등이 굽고 안경을 썼다. 낡은 유니클로 청바지에 아메리칸 어패럴에서 산 회색 후드티를 입었다. 

안에 입은 남색 셔츠는 땀과 비가 섞인 냄새가 나서 고약하기 그지 없다. 남자는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멀찍히 떨어져 선다.

가방은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한 긴 사각의 백팩이고 비교적 새것 인 것은 나이키 신발 밖에 없다.

좀처럼 웃지도 않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을 하고 있다. 따분한 인상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음료수를 사고 있으니, 가게의 주인이 말해준다.

저 여자아이들도 아오이케에 가. 슬쩍 쳐다보니 튼튼하고 따뜻하게 옷을 입었지만 묘하게 새것.

대만 사람이나 싱가폴 사람이려나, 하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가겠군.


버스는 하루에 고작 네 번, 아사히카와 역에서 비에이 역을 거쳐 시로가네 온천까지 가는 노선이다. 

9시 26분, 12시 11분, 15시46분, 17시26분. 비에이역 출발, 아오이케 도착.

15시 46분 버스를 타고 가면, 16시 06분에 도착. 돌아오는 버스는 16시 43분에 출발한다.

37분 밖에 체류 안하잖아. 괜찮으려나. 왕복 40분에 37분짜리 체류라니.


비에이의 시가지는 보잘 것 없다. 

후라노도 비에이도 농촌치고는 비교적 세련되었지만 건물들은 평범하고 화려하게 뭘 먹거나 쇼핑을 하는 건 바라기 힘들다.

"비에이센카(비에이 북쪽 시가지에 있다)"나 "후라노마르쉐(후라노 시가지에 있다)"같은 농산품과 기념품을 손쉽게 살 수 있는 곳도 생겼고 

비에이의 북쪽의 주택가에는 온통 이탤리언과 프렌치 뿐이지만 비에이역 주변은 평범하게 약국과 도장가게, 꽃집 같은 것들이 있다. 

관광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곳으로 보내고 자기들의 삶을 침범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농지로 들어가지 마세요. 비에이가 아름다운 이유는 농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는 안내문을 어딜가나 볼 수 있다.

두시간도 넘게 비에이의 구릉을 자전거를 타고 굴러다녔기 때문에 젖은 휴지처럼 지친 남자는 사실 아무 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홋카이도에 도착한 뒤 매일 짧게는 세시간에서 길게는 여섯시간 정도의 기차이동을 하고 있고,

매일 매일 적어도 8킬로미터 정도는 걷고 있다. 오늘은 오전 내내 비오는 길을 걸었고 오후 내내 자전거를 탔다.

더 이상 움직이기도 싫으면서 앉을 곳도 없는 낡은 버스 표지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여자 둘은 사이가 좋은지 지친 행색을 하고도 서로 끊임없이 소근대며 얘기를 나눈다.

키득키득 웃으며 잠시 남자쪽을 쳐다보다가 남자가 쳐다보자 금방 고개를 돌려버린다.

생각 했던 것보다 더 오래 기다려 버스가 온다.


낡은 버스는 덜컹거리며 숲길을 달려간다. 언덕과 밭과 숲과 구릉이 스쳐지나간다.

이 땅에서 버스를 타면 아름다운 광경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아무런 감흥없이 가버린다.

여길 여행하는데는 자전거를 타는게 좋겠지. 오토바이가 제일 좋으려나. 하고 남자는 생각한다.

바람을 느끼고, 소리를 기억하는데 차는 좋지 못한 탈 것이다. 

그는 아주 잠시 졸고, 버스는 정류장에 도착한다.


버스가 내리고 아주 잠깐 흙길을 걷자 거기에 푸른 연못이 있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작은 연못이 있었고 죽은 나무들이 있었다

연못은 파랬고, 나무들은 희디 희였다

연못의 반을 도는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연못가에 서서 움직이질 않았다

모두 푸른 색을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흙길을 빠져나와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에 선다. 

그는 혼자 였기 때문에 그가 그 연못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아무도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남자는 울컥하는 무언가가 핏덩이처럼 목 아래 차오르는 걸 느낀다. 버스 정류장 뒤의 숲으로 들어가 숨을 들이쉰다.

녹슨 철창과 군데 군데 보이는 콘크리트에도 불구하고 길 옆의 숲조차도 주먹질처럼 빽빽하게 녹색이 들어서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손목 냄새를 맡는다. 땀 냄새가 아니라 아까 본 푸르디 푸른 연목에 시체처럼 서있는 흰 나무 같은 냄새가 난다.

이 연못은 88년에 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의 연못, 

어째서 이런 물 빛을 내는지는 알수가 없고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물에 잠겨 있는 흰 나무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사라져갈 것이고

언젠가 산 속의 그냥 평범한 연못이 될 것이 틀림없다. 

남자는 어느날 처음으로 이 "만들어진"연못이 푸른 물을 머금고 있는 걸 본 사람의 마음을 떠올린다.


빗줄기가 거세지기 시작하자. 그는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든다.

한참을 지나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여자 둘이 연못이 있는 숲길에서 빠져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온다.

그들은 버스 시간이 다 되도록 연못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우산이 없는지 둘은 서로를 반쯤 얼싸안고 나무 아래에 선다.


남자는 영어로 말을 건다. 우산 쓰세요, 저는 하나가 더 있습니다.

두 여자는 당황한듯 애매모호하게 우산을 받아 하나의 우산을 같이 쓴다. 

생각 했던 것보다 더 오래 기다려 버스가 온다.

오늘 오전부터 비가 내렸으니 우산이 있었을거야.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남자는 버스의 오른 쪽에 여자들은 버스의 뒷 편에 앉는다. 시로가네 온천에서 돌아가는 사람들이 몇 명 타고 있지만.

아오이케에서 버스를 타는 것은 외국인인 그들 세 사람 밖에 없다. 빗줄기가 점점 세지고 세상이 젖어서 녹아들어가는 것처럼 추워진다.


남자는 비에이 역에서 내리려던 걸 포기하고, 아사히카와 역까지 그대로 버스를 타기로 한다.

그리고 친한 누나가 쓴 문장을 떠올린다.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겠지만, 그대로 버스를 타기로 한다"

눈을 감고 버스가 도착하길 기다린다.



16년 6월.

주인어른, 아오이케는 요즘 어때요?

그대로야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찾긴 하지.

자전거를 타면 얼마나 걸리죠?

작년에도 말했잖아 가는데 두시간 오는데 두시간, 중간에 언덕이 있어서 힘들고.

12시에 버스가 있어. 지금 8시 정도니까 밥먹고 가면 되지 않을까?

요즘은 비가 와서 별로 파랗지 않을거야.

날이 개어야 파란가요?

그렇지, 날이 개면 물이 그렇게 파래. 그래서 겨울엔 볼 수 없어.


남자는 잠시 생각한다. 지난 번에도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페달을 두 세번 밟는 듯 하더니 금방 역의 광장을 벗어나 휙하고 가버렸다.




이 글을 쓰면서 John Butler Trio의 "Sunrise over sea"에 포함되어 있는 곡 "What you want"를 들었다.

오늘은 16년 6월 14일. 여행기 다섯 번째 까지 써있던 홋카이도 여행은 약 350일 전의 이야기이고. 

두번째 홋카이도 여행은 그저께 끝이 났다. 아름다운 기타리프와 시작되는 이 곡의 단순한 가사는 아래와 같다.


넌 어떤 얘길 하고 싶은거야, 집에 도착하길 기다리면서

난 전화로 하는 이런 이야기에 질렸어. 

하지만, 나한테 네가 어떤 기분인지 말해봐,
나도 너처럼 외롭고 너에 대해 알길 바라.
지금 난 춥고, 얼간이 같아 너처럼 말야.

하지만 난 날아가 버릴 수도 있고, 완전히 타인이 될 수도 있어.
그리고 넌 산 위에 비추는 햇빛이 될 수도 있어.

그것도 아니라면, 넌 단지 어리로 와서 머무룰 수도 있지.
넌 집으로 바로 갈 수도 있고.
...
나는 오래된 실수들을 고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을거라고 생각해.
....


여행기의 두번째 시작은 16년 6월 5일 부터 시작한다.

홋카이도 동부를 여행하기로 마음을 먹은 나는, 홋카이도에서 조차도 아무 것도 없는 곳인 노츠케 반도에 가기 위해 

삿포로 역에서 국내선을 타고 나카시베츠 공항으로 이동. 거기서 세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길거리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시골 중의 시골.

오다이토미나토에 도착한다.(미나토란 "항"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나는 오다이토 항에 도착했다)

홋카이도에 처음오는 것도 아니고 일상회화 수준의 일본어는 어렵지 않게 하며, LTE 로밍이라는 강력한 아군을 지닌 나로서도 

터프하기 짝이 없는 일정이었는데, 홋카이도 동부의 일정이란 것이 그런 식이었다.

다들 렌트카를 몰고 다니거나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에 4번 밖에 없는 버스를 잡아 타거나 비싼 돈을 주고 택시를 타야했다.

심지어 어떤 버스는 일년 중 5개월에만 운행하기도 하였다. 동네란 것들이 "쵸(정)"하나에 편의점이 하나 밖에 없는 곳들이 잔뜩 있었고 며칠 후 시레토코의 우토로에 도착했을 때는 길을 건너서 편의점 두개가 나란히 있는 걸 보고 손을 합장하며 자본주의의 은혜에 감사했을 정도였다.


거기서 나는 한 시간에 한 대 밖에 없는 버스를 타고 공항에서 나카시베츠 버스 정류장으로 간 다음

(믿어집니까? 공항인데 공항 앞에 버스가 한시간에 하나야?)

버스 정류장에서 시베츠로 가는 버스를 탔다. 뭔가 적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놀랍게도 내가 나카시베츠 버스 정류장에서 뭘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을 빼앗긴 액션스타처럼 버스를 탄 나는 여기까지 했으면 뭐라고 해야지 하는 미친 생각에 시베츠 버스 정류장으로 가지 않고 시베츠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는 살몬(연어)과학관이라는 곳에 간다. 연어와 연어 초밥을 같이 전시해두고, 제일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은 칠성장어에게 손을 물리는 체험을 하는 수조였는데(칠성장어는 이빨이 없어서 물려도 안 아프단다) 내가 제일 재미있게 시간을 보낸 곳은 인공적으로 만든 작은 강에서 장난감 낚시대로 물고기 모양의 플라스틱 조각들을 낚는 곳이었다. 과학관을 나와 2킬로미터 남짓을 걷는데도 힘이 들었다.

12키로미터 쯤 걸어서 오다이토 미나토의 숙소까지 가겠다는 생각은 1.5키로미터 지점 쯤에서 날아갔다. 유럽처럼 단정하게 정리하려고 노력한 도로의 구석 벤치에 앉아 후드 하나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동부 홋카이도의 6월 날씨와 내가 도대체 여길 왜 온거야 하는 자괴감에 넉다운이 되어서 앉았다.

물론, 거기서 나를 기적적으로 북돋아 준 응원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났고 터벅터벅 걸었고 가지고 온 짐 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나는 현명하게도 보통 3일용이라고 불리우는 작은 캐리어에 옷만 꽉차게 담아갔다) 마음을 굳게 먹고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꼼짝없이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국내선 항공을 조금 고생해서 12시 편을 탄 덕에(원래 계획은 5시 30분 정도에 도착하는 편이었다) 연락 버스가 아직 있었고. 대절하다 시피 버스를 혼자 타고 오다이토 미나토 항과 숙소인 우타세야까지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시바견 두마리가 나를 보고 미친듯이 짖기 시작했다. 그날 내가 미나토항에서 갈매기 외에 목격한 유이한 생명체였다.


여관은 2층에 온천, 12테이블 규모의 식당까지 갖춘 멋들어진 건물이었는데

그날의 손님은, 나 혼자였다. 저녁은 해물 특선이었는데, 이 항구의 명물인 특대형 가리비도 있었다.

얼마나 큰지 손바닥 만 한 것을 양념을 치지도 않고 그대로 구워내는데도 맛이 있다.

여관의 주인(보통 여자인 경우가 많고, 오카미상이라고 부른다)은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테이블 옆에 서서 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했다.


"손님은 왜 이런 구석진 곳 까지 온거에요? 한국인이라며"

"아, 이번 여름 휴가를 계획하고 있을 때 노츠케 반도의 사진을 봤어요 너무 아름다워서 여길 꼭 가야지 하고 생각해서"

"홋카이도 여행의 전체를 노츠케 반도를 방문하는 걸 기본으로 짰어요 오늘이 제 이번 여행의 첫번째 날이자 하이라이트입니다"

"어머 대단하네 그런 멀리서 노츠케 반도를 보러 오고 말야"


주인에게 했던 얘기는 진실의 반 밖에 되지 않았다.

노츠케 반도를 보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째서 이런 세상의 끝이나 다름 없는 풍경을 보고 싶어했는지.

내가 무슨 마음으로 이 곳에 왔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겠지. 그걸 누구한테 말하겠는가.


그날 밤 나는 밤새 앓았다. 머리가 아팠고 토했고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어서 아침이 되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기만을 바랐다. 나는 왜 이런 곳에 있는거지 하는 생각을 이백번 쯤 했고

어디든 좋으니 잘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사백번 쯤 했다. 물론 하나 하나 세어 본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세어봤어도 비슷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홋카이도 두번 째 여행의 첫 번째 밤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오래된 실수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고칠 수 있다면 그건 오래된 것도 실수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고칠 수는 있다.


이제야 나카시베츠 버스 터미널에서 뭘 했는지 기억이 난다. 친절한 직원을 만나 버스 정류장을 안내 받았다.

라멘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다 시간에 쫓겨 바로 버스를 탔다. 인간은 이렇게 쉽게 잊어버린다.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 자신을 고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집에 갈 때 까지 뭔가 말해볼 생각이다.


다음 글은 아마 15년의 여행에 대해서 조금 더 쓰게 될 것이다.

이렇게 15년과 16년의 여행을 내 안의 맥락에 따라 번갈아 가면서 올리게 될 것 같다.

고백 할 것이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나에겐 유일한 친구이다. 

나에게 친구란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걸 이해해주길 바란다.




15년 7월 1일 홋카이도 여행 4일 째


눈을 감으면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언덕을 달려내려가는게 느껴진다.

이렇게 눈을 감으면 언젠가는 나뒹굴어질 거란걸 알면서, 나는 언덕을 내려갈 때 자주 눈을 감았다.

자전거는 튼튼하고 전동식이라 기어를 올리고 힘을 주면 언덕을 미끄러지듯이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길고 긴 녹색의 구릉을 미끄러지듯이 내려간다. 


비에이는 아름다운 곳이다. 


나는 비에이에 대한 글을 쓰지 못해서 1년 간 여행기를 완성하지 못했다.

원래 이 여행기는 내 친구를 위해 쓰기 시작한 이야기이었지만, 여행기를 쓰기 시작하기 전, 친구는 나에게 실망해서 나를 떠나갔다.

언젠가는 네가 이걸 읽지 않을까 하고 어렴풋하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알고 있다 그 사람은 다시는 나의 글을 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걸 이렇게 쓸꺼야. 하고 친구에게 얘길 했고 그걸 그대로 쓰는게 나에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을 읽어야 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원래의 구조는 불완전해지고 글은 무의미해진다. 결론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여행기는 결국 온전히 나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1년 가까이 여행기를 끝마치지 못한 것은 그 이유이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이 이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비를 맞으며 시골길을 걷고, 갖가지 색으로 펼쳐진 라벤더 밭을 보고 자전거로 구릉을 오르며 보았던 모든 것들을.

내가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소리를 듣고. 어떤 기분으로 너에게 지금 무얼 하고 있냐고 물어봤던 건지.


나는 일부러 너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는다. 너의 얼굴도 목소리도 떠올리지 않고, 옛 친구에게. 라고 생각하며 글을 쓴다.


15년 7월 1일. 홋카이도 여행 4일 째.


저기, 내가 가끔 아주 잘못된 판단을 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솔직히 나는 8킬로미터 쯤 걷는 것은 그닥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물론 그게 홋카이도의 6월이라는 점에서 1점 플러스(예에!) 그리고 비가 오고 길을 잘 모른다는 점에서 1점 마이너스지...2점쯤, 아니 3점쯤 마이너스지.

도대체 왜 그렇게 오전 내내 후라노를 걸어다녔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아사히카와에서 후라노로 가는 열차를 탈 때는 분명 아, 이거 먼걸 하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 그리고 아침부터 흐리군 비가 오겠어. 하는 생각도 했던거 기억난다. 라벤더를 보고 기분이 들떴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봐 내가 도대체 언제 그렇게 넓은 곳에 라벤데가 펼쳐져 있는걸 봤겠어?


라벤더 바타케 역에서 내렸을때 쯤엔 굉장히 실망하고 아 뭐지 이거 하는 기분이 들었던것 같은데 말야....

라벤더 바타케 역은 상시 개장되는 역은 아냐. 라벤더 철이 되어야 정차하는 역이라서 그런지 역 주변엔 창고 뿐이야. 내린 순간 아, 내가 지역관광청에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까. 창고만 가득하고 자꾸 나에게 영어로 얘기하려고 드는 청년에게 겨우겨우 도미타 팜이라는 곳이 라벤더가 굉장히 많다는 얘기를 듣고 그 쪽으로 갔지. 나는 일본어로 얘기하고 청년은 영어로 얘기하고! 내 뒤에서는 여자 두 분이 저 사람 한국인인가봐 쫓아가자 수군수군. 이러고 있었다고! 게다가 지역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슬로프를 손보고 있는걸 봤을때(그리고 그 언덕에 미묘한 보라색으로 심어져 있는 라벤더를 봤을때) 나의 실망은 어떤 결심적 지점에 다다랐지. 야, 어서 라벤더 바타케 역으로 돌아가서 비에이로 가버리자! 하고.

아 하지만, 도미타 팜의 멜론을 안 먹을 순 없었어. 아까 청년이, 라벤더는 아직이지만 메론은 드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기 때문이지.


그래 무엇을 숨기랴. 이 동네에서 재배하는 메론은 칸탈루프가 많아. 일반 메론은 참외에 가까운 맛이지만 이건 두리안에 가깝달까.

너도 잘 알거야. 보통 멜론처럼 옅은 녹색이 아니라 오렌지처럼 샛노란 메론 말야. 나도 많이 먹어본 것은 아냐. 동남아에서 먹으면 거의 좀 단단한 칸탈루프를 먹게 되지. 하지만 여기의 멜론은 좀 달라 엄청 물이 많고 부드럽고 달지. 듣기로는 프로슈트와 함께 먹는 것도 일반 메론이 아니라 이런 칸탈루프 종의 메론이래. 그래 이것도 숨길수 없지 나는 참외는 싫어하지만 햄메론은 너무나 좋아한단다. 안 갈 수가 없었어. 메론이 있다니!


라벤더 바타케 역에서 10분간 실망하고 10분간 꽃밭을 구경하면서 북쪽으로 걸으면 그 쯤에서 내가 와야 할 곳을 왔다는 걸 알게 되지.

엄청난 색이 펼쳐져 있거든. 그래, 라벤더 밭이야. 갖가지 색의 꽃들이지. 알겠어? 눈 앞에 언덕이 가득하고 그 언덕 모두에 꽃이 심어져 있어. 

저쪽 멀리 마르쉐 풍의 매점이(얏호 여기선 멜론빵 멜론케익 생멜론 멜론 아이스크림을 팔아!) 있고 아직 제철이 되지 않은 라벤더의 보라색은 비를 맞아 점점 진해져가. 바람이 강해져가는데 꽃들은 아랑곳하지 않아. 네가 이걸 보았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라벤더, 사루비아, 해바라기, 양귀비. 그리고 라벤더와 사루비아와 해바라기와 양귀비.


솔직히 말한다면 그렇게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었어. 중국인 관광버스가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도착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들은 군대처럼 내려서 향수와 각종 샤프란을 파는 가게로 달려가 기념품을 싹쓸이 하고 다들 손에 뭔가 들고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어. 그렇게 많아보였던 라벤더도 중국 관광객들과 1:2정도 비율인 것처럼 보였지.


나는 오백엔에 믿을 수 없을만큼 단 삶은 옥수수를 먹으면서(미안, 멜론 빵 먹었다는 얘기 빼먹었네 보자마자 먹었어) 온 몸에 차오르는 감동과 기력에 이제 뭘 할까 생각하고 있었지. 여길 도망쳐야 한다는 건 명백했는데 어쩔까 비에이에 가야하나. 아니면 로컬 미술관을 하나쯤 들를까. 고민하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툭치더라고.


"???"

"저기 한국분이시죠"

"아, 네..."


아까 기차역에서 날 쳐다보던 여자 두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어.


"일본어 잘 하시길래 한국분인지 일본분인지 헷깔리셔서요" 하며 내 옆에 다가오더라구 히이익

"혹시 도미타 팜 다음에 어디 가실거에요?"

"아, 저..." 뭔가 기분이 이상했지. 그도 그럴 것이 후라노에 온다면 비에이에 가거나 후라노 역으로 돌아가거나 둘 중 하나니까. 어쩌지 나처럼 비에이를 가는 사람이면 어쩌지? 설마 동행하자는 건 아니겠지 히이이익. 결단을 내려야해 하고 생각했지. 아 절대로 쫓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자.

"가미 후라노(약 8키로미터 정도 떨어져있다)까지 걸어서 가려고요"

"걸어서요?"

"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하고 나는 한국인에게서 도망치겠다는 씩씩하고 멍청한 이유로 3시간에 걸친 비오는 시골길 트래킹을 시작하고 말았어.


자, 이 시점은 겨우 오전 9시야. 나를 위해서 유투브를 열어서 Take me country road를 켜주지 않을래?

기껏해야 경기도에서 근교 농업 하는 거나 봤던 내가 뭘 알았겠어. 그렇게 컨츄리 로드가 길고 길줄은...

컨츄리 로드라니, 컨츄우우우우우우우리이이이이이 로오오오오오드 정도 된다구. 

처음 출발 할 때는 가미 후라노 쯤에 있는 고토 스미오 미술관에 들릴 생각이었지. 

미술관 자체도 아름답지만 자연 풍경을 세밀한 묘사로 그려낸 작품도 뛰어나지

문제는 내가 걸어야 되는 거리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한 것 뿐이야.


비가 왔지만 우산을 쓰면서 걸을 정도는 아니었어. 중학교때 이런 생각했던거 기억나? 한 번 쯤 비오는 날 우산 없이 걸어올 때가 있잖아. 

왜 기말고사 성적이 이것밖에 안나올까, 용돈을 깎이는게 아닐까. 그래도 주말에 치킨시켜먹고 싶은데 엄마한테 혼나겠지? 그런 생각하면서, 

미안 나만 그렇구나. 하여간 나는 그런 분위기였어. 그냥 농촌을 왜 걸어서 종단하겠다고 했을까. 머릿속에선 여러가지 잡념이 들기 시작하지.


잠깐만, 내가 걸어가면서 컨츄우우우우우리리리리 로오오오드 부르는거 녹음한거 있는데 들어볼래? 눈물과 웃음의 대서사시라구.

불러도 불러도 언덕이 안 끝나!

밭은 쳐져 있었지. 내가 자주 보던 논이 아니라 꽃을 심은 밭. 커다란 트랙터들.

여기가 미국이었으면 나는 24키로미터 지점 쯤에서 코요테한테 물려죽거나 지쳐서 3주 후에 발견되었겠지.


2시간 후 (그래 8키로미터 정도는 2시간이면 주파한다) 카미 후라노 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어떠한 긍정적인 마음도 없었어.

그냥 어딘가 들어가서 대충 따뜻한 음식을 먹고 아이폰을 충전한 다음 침대에 누워서 SNS에서 출근해있는 사람들이나 놀리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가 길었고(이 때 쯤 12시가 좀 안됐었어) 다음 내가 갈 곳이 있으니까.


비에이는 홋카이도의 거의 정 중앙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야. 1899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마을이고 구릉지역에 있지.

농촌이구나, 싶은 조용하고 작은 마을인데 연간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길 찾아온대. 

개척마을이었을 때는 아이누어로 "피-에(탁한 강, 기름이 떠있는 강)"이라고 불리우는 곳이었대. 

그래 누가 여길 탐낼까 싶을 정도로 구릉에 강에 숲이 있는 작은 마을이야. 사람들이 여길 찾아오는 이유는 다른게 아냐, 아름답기 때문이야.

일본 안의 유럽이라고 해도 괜찮을거야. 나도 맛있는 집을 찾으려고 했더니 이탤리언이랑 프렌치 비스트로만 잔뜩 나오더라고.


시가지는 비에이 역과 철도를 중심으로 남동/북서로 나뉘어져 있어. 주택가가 있는 곳은 주로 비에이역 주변의 남동쪽이지

하지만 요즘은 북서쪽의 주택가에 비스트로가 많이 생겼나봐. 트라토리오? 비스트로? 잘 모르겠다. 그냥 일반 주택처럼 하고 있고 아주 작은 간판만 하고 있어서 정확히 어떤 가게인지는 모르겠어. 개 중에는 아주 멋진 피자 화로가 집 옆에 보이는 곳도 있었는데 설마 취미로 그런걸 하신건 아니겠지?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이탤리언에서 밥을 먹었어 내가 외국인인걸 아니까 아무 것도 묻지 않았지. 세트 메뉴에 디저트까지.

테이블이 세개 밖에 없는 가게라 그냥 아는 사람 집에 불려가 밥을 먹는 느낌이었어. 정신을 차려보니 뭘 먹었는지 찍어두지도 않았더라.

기억하고 있어, 샐러드, 파스타, 케익. 하하 


나는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지. 여길 돌아보고 싶었어. 나는 이 다음에 갈 곳이 있었거든.

역 앞에는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많아. 깨끗해 보이는 자전거가 많은 집에 들어갔지. 잡화점도 겸하고 있는 곳이야.

자전거 코스 좀 찍어주세요 라고 하니까 어디까지 알아봤는지 몰라도 내 말대로 해, 라는 표정으로 코스를 그려주셨지.

대략 설명해주신건 여긴 자전거 코스가 크게 세개 정도 있다는 거야.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구릉코스, 다른 하나는 산쪽으로 가는 코스 다른 하나는 남쪽의 시가지를 가는 코스.

어느게 제일 비에이 답나요. 라고 물어보니 구릉에 가야지. 하고 한국어로 된 지도를 꺼내 색연필로 코스를 주욱 그려주셨어.

이게 한시간 짜리에요. 한시간 반을 가려면, 여기서 한 바퀴 더 돌면 되지.


"버스는 두시간 뒤에 있으니까. 한시간 반 코스로 타고 돌아와서"

"돌아와서 아오이케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되겠네요"

"그래요'

"다녀오겠습니다"


후에 알게 된 거지만, 나는 이 분이 알려준 코스를 비슷하게 가려고 노력은 했는데 약간 틀렸어. 

이렇게 가면 두시간짜리 코스인데 잘도 시간내에 왔네 하고 웃으셨지.


기찻길을 너머서 본격적으로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하면, 여기가 이 작은 시내와는 전혀 다른 곳이란걸 알 수 있어.

녹색

끊임없이 펼쳐진 녹색.

녹색 뒤에는 녹색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흰 꽃(무슨 꽃일까)과 보라색 꽃과 내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꽃들이 가득해.

올라오는 길조차도 그런데. 언덕길로 내려와 아주 먼 곳에 보이는 또다른 언덕으로 뛰어내려갈 때의 기분은...

나는 페달을 밟았어. 으으으 아아아 하고 작은 소리를 질렀지. 허벅지가 아프고 엉덩이가 쑤셔왔지만 도저히 멈출수가 없었어.

도대체 어디까지 이 길이 계속 되는지 저 너머에는 이 녹색이 끝날까? 아니면 계속될까. 작은 공포와 작은 기대가 번갈아가며 솟아올랐고

나는 언덕의 가장 위에 올라설 때 마다 멈춰서서 사방을 바라보았지. 구릉 사이에 서있는 나무들. 녹색과 노란색의 길들.

이렇게 넓은데, 아무도 없었어. 이렇게 아름다운데 나 밖에 없었어. 아무리 먼 곳을 쳐다봐도 이 모든 땅이 비어있었지.


사람들과 때로 스쳐지나가면, 중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지나가면 나는 길을 잠깐 옆으로 비켜서 흰색 꽃을 바라보았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면 페달을 밟고 하늘을 날듯이 언덕길을 달려내려갔어. 

나는 바람이에요. 자 봐요 엄청나게 빨라요. 나를 보지 않으셔도 되요. 저는 바람일 뿐이니까요.


언덕을 몇개나 올라왔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높은 곳에 나무 하나가 있었어.

사진을 찍었지. 내 얼굴을 찍고 하늘을 찍고 그리고 공터를 찍었어.

내 옛친구. 너는 내가 사진을 찍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아직 기억하고 있니?

나는 약속처럼 너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었어. 그것이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처럼.

그리고 금방 다시 자전거에 탔지. 쉬지도 않았어.


구릉을 달려내려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 곳을 쳐다보고 있었어.

커다란 나무가 있어서 나는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만이 아니었어. 고개를 드니

거대한 신과 같은 것이 지평선 위에 서있었다. 다이세츠잔, 구릉 너머로 보이는 산.

22만6천 헥타르에 달하는 위대함. 나는 말야, 왜 옛날 사람들이 산을 신으로 받들었는지 이해했어.

낯선, 아주 낯설고 거대한 것을 보자 저런 것이야 말로 사람의 이상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걸 실감했지.


결국 이 구릉을 한바퀴 돌아서 전망대에 돌아오자 나는 공주처럼 지쳐서 헥헥거리고 있었지.

그제서야 오늘 처음으로 생 멜론을 시켜서 전망대 테이블에서 먹었어. 물론 기적처럼 맛있었지.

점원에게 물었어. 저기 저렇게 가득히 피어있는 꽃의 이름이 뭐죠?

믿어져? 저 하얀 아름다운 꽃이 고구마 꽃이래. 너랑 같이 볼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나는 고구마 꽃이 피어있는 밭을 한참 바라보다, 자전거에 올라탔어.


곧 자전거 대여시간이 끝난다. 이제 자전거를 반납하고. 버스를 타고 아오이케에 갈거야.

거기엔 아무 것도 없이, 단지 아오이케만 있을 뿐이라고 하더라.

돌아가는 길은 알고 있어 이 언덕길을 내려가 구릉을 두개 타고 가면 된다.

눈을 감으면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언덕을 달려내려가는게 느껴진다.

바람이 불었다.





...

남자는 아무도 없는 플랫폼에 혼자 서있다. 누군가 그를 1년이 넘게 기다리게 한 것 같은 모습이다.

6월이지만 홋카이도에 있기에는 조금 섣부른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다. 발치에 작은 캐리어가 있다.

휴가의 첫날, 공항에는 일찍 도착했지만, 열차를 놓쳐 4시간이 넘게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다섯시가 된 지금에서야 열차를 한 번 갈아타고 4시간 가까이 걸려 섬의 남부에 있는 구시로란 도시로 갈 생각이다.

대합실엔 지친 한 무리가 날씨 예보가 나오는 NHK를 보고 있다. 


벌써 플랫폼 건너편은 새까맣다. 드문하게 서있는 교외의 건물들은 아무 흥미로운 것이 없는데 남자는 그 쪽을 쳐다본다. 

밭인지 공터인지 알 수 없는 땅이 있고 사람 한 명 짐승 하나 지나다니지 않는다. 

생각이 났다는 듯이 아이폰을 들어 역의 여기 저기를 찍는다. 반댓 편에는 남자 처럼 일찍 플랫폼에 기다리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있다. 

저쪽 반댓 편은 숲이 있다. 숲의 건너편도, 까맣기는 마찬가지이다.


남자 자신 외에 아무도 그를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남자는 허공을, 자신의 얼굴을 쳐다본다.

곧 열차가 온다. 열차를 타고 그는 아주 멀리 갈 생각이다.

2015년 6월의 일이다.


혼자서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었겠지만, 기차 여행을 하고 싶었다.

원래는 친구와 같이 가기로 했던 여름 휴가 계획이 어그러진 것은 5월이었다.

원래 일정은 파리였던가 하와이 였던가, 아니면 저 먼 남미였던가.

여행을 혼자 가려면 가지 않는게 나을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주 멀리 느리게 흔들리며 나를 옮겨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저 소란과 말들 사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공항에서 산 오리 인형을 가방 위에 올려놓았다. 오리는 소리도 내지 않고 나를 쳐다본다.


복도자리라 창 밖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끊임없이 무엇인가 흔들리고 스쳐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아주 멀리로 가고 있다. 오리와 함께 이 밤의 기차를 타고. 

친구의 생각을 한다. 그 사람은 지금쯤 어디에 있는거지. 눈을 감는다.


구시로 역,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흩어진다.

이 남쪽 끝의 항구 도시는 홋카이도 열차의 마지막 도착지점이기 때문에 이 곳에 탄 사람들은 모두 여기에 오려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11시에 가까운 늦은 시간에 내리는 걸까. 아, 오늘은 일요일이지. 입으로 한국어를 중얼거리고 웃는다.

택시를 타도 괜찮았지만, 호텔은 걸어도 충분한 거리에 있다. 역 앞 사거리를 건너서 나도 월요일을 찾아 흩어지는 사람들중 하나가 되었다.

북쪽 항구 도시의 밤은 6월인데도 추웠다. 가방에 든 후드 티를 입을 생각도 못하고 반바지에 티 차림으로 신음 소리를 내며 걸었다.

지금은 영상 8도, 내일 해가 뜨는 시간은 3시 45분이고 첫번째 열차를 탈 때 쯤이면 기온이 14도까지는 올라갈 것이다.


아무도 없다. 사거리를 세번 건널 동안 마주치는 사람 한 명도 없고 건물은 완전히 불이 꺼져있다.

거리의 건물들은 2층보다 높은 건물은 거의 없다. 비교적 새로 만든 오피스 건물들도 있지만 대부분 낡고 노란 가로등 불빛에 이라크의 흙벽돌 집처럼 보인다. 바람이 부는데도 그 바람소리 사이로 내 숨소리가 들린다.

나는 죽어있는 도시에 온 걸까. 사거리를 여섯개 지나쳐서 구시로 시청에서 오른쪽. 사거리를 다섯개 더 지나쳐서 구시로 시청에서 오른쪽.

졸음과 추위에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중얼거린다. 세상이 내가 기차를 타고 있는 사이에 멸망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시청 옆의 편의점에 들어가 물을 샀다. 편의점의 점원도 호텔의 데스크에서 서있는 남자도 졸린 기색이 역력하다.

이 도시에 12시는 유령과 바람 외엔 아무 것도 지나다니지 않는 것이다.

방에 들어가 침대에 앉아 안심한다. 그렇다 나는 이런 아무도 없는 풍경을 보러 이 곳에 온 것이다.


내일은 습지에 갈 것이다. 누우면 언제나처럼 잠이 온다.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몇 주가 지났다. 

피트니스에서 트레드밀에 올라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평소라면 안 볼 여행 프로그램을 봤다.

노인들이 타이완의 과일 가게에서 망고와 석가 같은 과일들을 먹고 있었다. 

트레드밀의 TV는 그닥 선명하지 않지만, 입가에서 물이 떨어지고 과일향이 사방에 퍼지는 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밤의 마트에 가서 망고를 샀다. 

노랗고 둥글 넓적하게 온순한 작은 망고를 몇개 샀다. 망고는 공화국의 사람 값처럼 쌌다.

나는 망고를 자르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가운데에 대충 칼을 넣고 껍질을 벗겨 입안에 넣었다.

망고는 달콤하고 시었다. 과육은 생각보다 얇았다. 


나는 눈물이 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 나는 뭐가 먹고 싶다거나 하는 걸로 떼를 쓰는 아이는 아니었다. 

달라붙어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아이였지.할아버지가 해줬던 이야기가 기억났다. 

 

언제 쯤이었을까 옛날 중국에 뭐시기 라는 이름의 남자가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가난한지, 부자인지 다른 가족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는 병에 걸린 늙은 어머니가 있었다.

새도 날지 못할 만큼 눈이 내리는 겨울, 쇠약해진 어머니는 남자에게 딸기가 먹고 싶구나. 하고 말을 한다.

노인의 투정이었을까 열이 머리에 까지 미쳐 제대로 생각을 못했던 탓일까. 한 겨울에 딸기라니.

하지만 쇠약해진 나머지 딸기가 나오는 봄까지 버틸수 없어 보이는 어머니에게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절을 하고 물러나온 남자는. 채비를 갖추고 산으로 떠난다.

강을 건너고, 숲을 가로지르고, 갖은 고생을 하며 연못 근처의 공터에 다다른 남자는 

거기서 빨갛게 익어 얼지도 않은 딸기를 발견해 소중히 품고 돌아와 노인에게 먹인다.

 

그래서요, 할아버지 딸기를 먹여서 어떻게 되었어요?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되다니, 그냥 딸기를 먹였다는 이야기야. 

병이 낫거나 그러진 않고요?

아니 도대체 뭐하는 병이길래 한참을 앓던 사람이 딸기를 먹는다고 낫는다더냐. 

- 그냥, 딸기를 먹고 싶다고 하니 딸기를 가져와 먹인게지.

그게 뭐에요, 별로다. 무슨 얘긴지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너한테는 아직 이야기가 어려웠구나.


할아버지는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내가 하는 이야기에 틀렸다고 하는 법도 없으셨다.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 손자가 하는 말 들어보시오 이 아이가 이렇게 똑똑하다오.

내가 기억하는 한, 할아버지가 놀라서 호통을 치신 것은 5살쯤 되던 내가 선풍기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 였다.

아이고 이놈. 하고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매어주셨다. 그게 다였다. 아이고 이놈.


할아버지는 16년 3월, 금요일의 어느 밤에 돌아가셨다.

얼마나 오랫동안 아프셨는지, 해로 세어도 한참이었다.

보통 사람은 돌아가시고도 남은 뇌수술을 받은지 십년도 넘었지만

이렇게 돌아가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걸 믿지 않은 것은 나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강건했던 할아버지를 무너트린 건 노쇠였는지 우울이었는지.

가끔식 건강하고 힘이 강했던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일부로 보였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금방 다시 건강해질 거라고 믿은 것은 나 뿐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눈이 망가지고 귀가 안 들리고 머리 한 쪽이 움푹 패였어도.

건강이 점점 나빠져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항상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였다.

 

할애비는, 위가 찢어졌단다.

전보다 더 작아진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길을 가다가 쓰러지고 말았지. 사람들이 꼼짝없이 죽는다고 했는데 이렇게 일어는 났단다.


할아버지는 커다랬는데 건강한 땀내가 나고 성큼성큼 걸어다니셨는데

할아버지가 떼어냈다는 몸의 일부가 얼마나 컸던지 할아버지는 조그맣게 되셨다.

할애비랑 점심이나 먹자구나. 시간 있느냐?

할아버지랑 저는 제 평생만큼 시간이 있어요. 아시잖아요.

이야기하다가 가끔 혼자 잠드시는 것도 괜찮아요.

할머니 몰래 술드시겠다고 제 핑계 대시는 것도 괜찮아요.

걸음이 엄청나게 느려지신 것도 괜찮아요.

할아버지 다 괜찮아요. 내가 서투르고 느리게 걸을 때 할아버지가 거기에 있었잖아요.


친구들이 말이다. 이제는 죽어도 장례에 참석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루는 친한 친구 놈이 죽었는데도 코배기도 안 비추길래,

아이 이놈아 내가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데도 이렇게 식장엘 다녀왔는데 너는 뭐하는거냐? 하고 했더니

이보게 자네는 그래도 아파트 단지 밖에 나갈수나 있지. 하더라고

이것이 할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마지막 농담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것이 있는데, 할아버지는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망고가 맛있고 더 달수록 나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중국의 뭐시기 라는 남자가 바로 이런 마음이었겠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아주 잠시라도 맛있는 것을 먹이려는 마음.

어머니, 먹어보세요 딸기에요. 입술이 말라붙어 터지고 죽도 못 삼키시는데도 딸기는 드시고 싶어하셨잖아요.

 

그리고 이것이 호흡기를 차시기 전에 할아버지와 나의 마지막 대화이다.

할아버지는 마지막 순간 까지 의식이 또렷하셨다. (그렇다고 믿는다)

그러나 호흡기를 차셔서 말씀을 못하시고 그렇다 아니다 라는 의사 표현만을 하셨다.

할아버지는 의지가 강한 분이셨다. 내가 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아마 끝까지 이겨내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셨던게 틀림없다.


할아버지, 고모가 전화해서 깜짝 놀랐잖아요. 이게 뭐에요

그렇게 됐다.

어울리지도 않게 누워서 뭐하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얘야, 할애비가 많이 어려울 것 같구나.

왜 자꾸 이상한 소리 하세요. 할머니랑 고모가 겁먹잖아요.

-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잖아요.

그래 그렇구나. 많이들 겁을 먹었겠구나.

어서 일어나세요. 일어나서 불고기랑 평양 냉면 먹으러 가요.

...요새 할애비는 불고기도 평양냉면도 별로구나.

그럼 뭐가 먹고 싶으세요?

글쎄다. 요새 먹고 싶은게 뭐였냐면.


나는 할아버지가 무엇이 먹고 싶으셨는지 끝까지 듣지 못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다.

할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내일 못 오면 모레 올게요.였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나는 개처럼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게 내가 사람이라는 증거라도 되는 듯이 울었다.

나에게 그 마음은 사랑이었다. 재처럼 희미하고 지워지지도 않는 그런 사랑이었다.



16년 4월 비오는 날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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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물건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아요?"라고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그러게? 지금 내 방을 둘러보니 확실히 그런 경향이 있다. 내 책상에 앉아 왼쪽을 쳐다보면 형이 준 소품 그림이 있고. 

그 아래 플레이스테이션3,4가 상자처럼 쌓여있다. 그 위에는 물론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블루레이 소프트웨어가 몇개 더 쌓여있다. 야쿠자거나 야쿠자처럼 생긴 군인이거나 야쿠자처럼 구는 미국인이거나 하여간 그런 녀석들이 주인공이랍시고 사람들을 때리는 게임들이다. 

나는 준법 정신이 투철해서 이런 불법적인 폭력이 나오는 게임을 아주 좋아한다. 책상 위의 무인양품의 뻐꾸기 시계는 거의 정확하게 1년 정도 울지 않고 있다. 내가 이걸 왜 샀는지 잊어버렸지만 왜 멈춰놓은 채로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걸 돌보지 않게 된게 언제인지만 기억한다. "뻐꾹"하는 소리가 아주 귀여웠는데.


그 앞에는 그룹 이름으로 되어있는 크리스탈 상패가 있다. (내가 뭘 잘 했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런 걸 받았다) 그 옆에는 돼지 모양의 저금통 위에 냄비를 잡는데 쓰는 장갑이 올려져있다. 물휴지가 있네. 

옆에는 다크타워와 건축과 내러티브, 그리고 하버드 비즈니스 클래식 그리고 존 키건의 저작 몇 권이 쌓여져 있다. 실은 책이 마흔권 정도 "쌓여"있다. 내가 분명 여기 있는 책들은 "금방 읽을 책들"로 분류해 둔 것 같은데. 

이 책들보다 더 "아주 금방 읽을 책들"이라는 명목으로 바닥에 책의 탑이 생겨나고 있다. 제 1책의 탑, 제2 책의 탑...이 책의 탑들은 불길한 모르고스의 탑들처럼 남동쪽에 위치하는데, 너무 늘어난 나머지 이제는 대략 중간계에서 샤이어가 위치한 서쪽을 침략하기 시작하고 있다. 


책 앞에는 생수병과 코카콜라 제로 그리고 몇가지 잡동사니가 있다. 별거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내 약들이 다수(제길! 늙은이처럼 이렇게 약을 정기적으로 먹어야 하다니!) 그리고 기한이 지난 삼성카드의 명세서와 올해 5월에 끊은 병원의 영수증과 약들. 

그리고 1995년쯤 디즈니 랜드에 여행을 다녀온 사촌형이 사준 딱따구리 연필까지 있다. 잠깐 디즈니랜드에 가서 사온 건데 왜 딱따구리 연필이야?

일관성이라곤 없는 혼돈의 땅. 그냥 물건을 올려놓았으니까 책상인줄 아는거지 효율성이나 일관성은 하나도 없이 정리된 내 책상.


아직 바닥에 늘어져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포스팅에 혼돈이 가득하다.

비교적 동향인 내 방의 남쪽엔 옷이 가득차있는 행거가 있고 서쪽엔 세로로 놓여진 침대가 있다. 풍수지리랑은 아무 상관도 없지만  현관문 앞에는 분리수거를 해야할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다.

매일 매일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방 때문에 고통받으면서도 방을 치우지 않고 있다. 그냥 침대에 누워 손을 뻗으면 닿는 연습장을 잡고 아래와 같은 문구를 적는다.


"모든 사랑은 사라지고 그 모든 것들이 고통이 되었다.

나는 고통들을 멈춰보려 했지만, 이미 너무 오래 전부터 나는 그 가증스러운 것들을 나 자신의 안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거짓말을 멈추지 못했다. 

그 거짓들은 바다에 치는 천둥아 작은 항구를 뒤흔드는 것처럼 나를 흔들어댔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부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가지를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을 멈추고 그대로 있었다. 그게 다 였다"


And in the end, the love you take is equal to the love you made.


15년 12월 27일 비틀즈의 편곡 앨범 Reloved를 들으며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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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얘기를 들은 것은 어느 무당벌레로부터이다.


나는 가끔 공원에 나가 사람이 잘 찾아오지 않는 벤치에 앉아 그림을 그리곤 하는데, 이 무당벌레는 신기하게도 풀이나 꽃 위에 앉지 않고 내 옷깃에 가만히 앉아서 내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구경하였다. 

성격이 급한 작은 벌레 답지 않게 한참이나 그림을 보고 있던 무당벌레는 풀쩍 날아올라 내 손과 연습장 위로 한바퀴를 돌더니 내 연습장 위에 앉아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인간은 이런거 좋아해? 

 이런거?

 응, 그림 말야. 그림이라고 부르지?

 응, 나는 좋아해. 너는 좋아하니?


무당벌레는 대답을 하지 않고 파르르 하고 날아 연습장의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말했다.

나 말야 전에 그림이랑 얘기한 적이 있거든.

그러니까 무당벌레가 해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림은 처음에는 동그라미였대.

 동그라미?

 응, 동그라미. 동그라미에 눈이 이렇게 두개가 찍히고 그 아래엔 날개같은 모양의 금이 그어져 있었대.

 그거 웃는 얼굴이라고 하는거야.

 웃는얼굴? 그래 처음에는 웃는 얼굴이었다고 해.


그 그림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깨달은 건 어느 작은 여자아이의 손바닥 안이었다고 한다.

열이 나서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아이는 아빠를 붙잡고 보채고 있었다.

어쩌지, 아빠 잠시 다녀오면 안될까? 하고 아빠는 여자아이를 달래보았지만 아이는 무엇보다 무서워서.

모르는 사람만 잔뜩 있는 병원에 혼자 있는게 무서워서 아빠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러자 아빠는 품 속에서 펜을 꺼내서.아이의 오른 손 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점을 두개. 그리고 웃는 얼굴. 작은 아이 손 안에 그려진 작은 웃는 얼굴.

 아빠 이게 뭐야?

 친구야.

 친구?

 응 아빠 다녀올 동안 친구랑 같이 있어 정말로 금방 다녀올게.

아이는 아빠를 쳐다보고 손바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빠는 꼭 가야하나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빠는 웃는지 우는지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녀올게. 하고 뛰어나갔다.

손바닥 안의 "친구"는 웃고 있었다.

그 때 까지 그림은 오직 "웃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소녀가 그림에게 귓속말을 했다. 안녕, 나는 네 친구야. 너도 내 친구니?

그림은 배시시 하고 웃었다.

아빠가 일을 마치고 아이 곁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는 열이 내린채 자고 있었다.

정말로 착한 아이에요. 하고 누군가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는 자는 아이 옆에 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아이는 자고 있었지만, 웃는 얼굴 그림은 아빠의 우는 소리를 들었다.


아빠는 그 다음부터 아이가 떼를 쓰거나, 착한일을 하거나, 혼자 있게 되거나 하면 손바닥에 그림을 그려주었다.

처음엔 그냥 동그라미에 웃는 얼굴이었던 그림은, 언제부터인가 코와 귀가 생기고 머리카락이 생겼다.

아이의 손바닥은 금방 커졌고, 때로는 손등, 때로는 팔뚝에 여자아이를 그려줬다.

 이건 내 친구야.

 네 친구?

 응 내 친구야.

아이는 그림이 지워지니까 손을 씻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설득했다. 네 친구는 어디 다른 곳에 가는게 아냐.

네가 손을 씻어서 지워지면 네 방에서 널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그림을 그리면 손으로 옮겨오는거야. 라고 말했다.

응, 그렇구나. 내가 안 보고 있어도 나랑 같이 있는거구나.

그래서 그림은 그 날부터 정말로 아이의 방에서 아이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배시시 웃음만 짓고 있다가 토라지거나 크게 웃을수 있게 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는 그림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나 손이랑 발이 있으면 걸어다니고 싶어.

지금은 데굴데굴 굴러가기만 하니까?

응 지금은 데굴데굴 굴러가기만 하니까. 이곳저곳 다니려면 굴러가기만 해서는 안되잖아.

아이는 아빠에게 손이랑 발도 그려줘. 라고 말했다.

아빠가 처음으로 그린 손이랑 발은 정말 형편없었다.

아빠, 이런 손이랑 발은 얼음이 가득한 하얀 바다나 연기가 나는 산에 갈수 없어.

인도에 있는 왕비를 사랑한 왕이 세운 성에도 갈수 없고 말야.

맞아, 아빠가 엄마를 사랑했던 것 처럼 말야.

아니 도대체 저런 건 어디서 배우는 걸까, 하고 아빠는 쓴웃음을 짓고 그날부터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서툴렀지만, 아니 그 뒤로도 한참을 서툴렀지만 곧 아이만은 잘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그 모습을 아이의 손바닥에 그려주었다.

 이건 네 친구지?

 응 내 친구야. 아빠가 없을 때도 항상 나랑 같이 있어줘.

아빠는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아이는 아빠와 공원에 가는 걸 좋아했다. 동물원도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코끼리였다. 기린을 무서워했는데 한 번 기린 우리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빠, 밥을 먹을 때는 식탁을 예쁘게 정리해야해. 하고 작은 식탁보를 깔아 밥과 반찬을 엉망으로 올려놓았다.

아빠는 잘했다고 상으로 공주 옷을 입은 친구를 그려주었다. 머리 위에는 별이, 옷에는 꽃이 달려있었다.

아빠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달려와서 아빠의 다리를 안았다.

이야기 해줘. 엄지 동자 얘기가 좋겠어. 하고 맘대로 이야기를 정했다.

그림과 아이는 자리에 누워 아빠의 엄지 동자 얘기를 들었다.

옛날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습니다.

엄지 동자 얘기인데 왜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나와? 하고 그림이 묻자

쉿. 우선 잘 들어봐. 하고 아이가 아니 소녀가 말했다.


소녀는 자주 아팠지만 달리기를 좋아했습니다. 큰 소리로 웃으면서 달리고

학교에서 받은 과제 책을 빽빽하게 채우는 걸 좋아했습니다. 하고 소녀가 스스로 말했다.

가지런히 정리하면 좋아. 재미있어. 하고 그림은 따라 말했다.

둘은 좋은 친구였다.

소녀가 학교에 가게 되자 그림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아빠는 자주 소녀의 손에 그림을 그렸다.

아빠는 예전보다 더 바빴고 소녀가 혼자 있는 시간은 그림이 혼자있는 시간만큼 많았으니까.

멜빵 바지, 좋아하는 꽃무늬 원피스, 소녀가 좋아하는 피리를 그림으로 그려주었다.

소녀가 학교에서 피리를 불 때는 그림도 집에서 피리를 불었다. 

어느날 소녀는 볼이 빨갛게 되서 집으로 들어와 이거봐 이 가수 정말 멋있어! 하고 처음 듣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끝내준다.

 끝내주지?

소녀와 그림은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고 춤을 추다 지치면 책을 읽었다.

그렇게 백년을 소녀와 그림은 친구로 보냈다. 정말 백년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소녀가 그림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우리 백년 동안 친구하자. 그러니까 아마 둘은 백년 동안 친구로 지냈을게 틀림없었다.


아무도 잠을 자지 않는지 시끄러운 밤이 있었다.

학교에 갔었었나, 놀러나간다고 했었나. 그날따라 소녀는 그림과 함께 외출하지 않았다.

아빠가 며칠이나 바빠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은 소녀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다.

왜냐하면 정말로 들어올 시간이 훨씬 지나고도 소녀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빈 집에 전화가 울렸고 어느 샌가 집에 돌아온 아빠가 큰 소리로 통화를 했다. 

아직도 소녀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림은 소녀의 방 구석에 앉아 소녀를 기다렸다.

초조하게,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소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도 집을 나가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소녀도, 아빠도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림은 소녀의 방에서 데구르르 구르고 엎드려 다리를 흔들고 책 사이에 숨어서 시간을 보냈다.

며칠이나 지났는지 그림은 알수가 없었다. 인형의 머리위에 올라서서 창가까지 올라왔을 때 그림은 창 밖에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아빠! 하고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불렀다. 그림은 깜짝 놀라 입을 막았지만 애초부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창문은 닫혀있었고 그림은 새처럼 작았으니까. 

아빠는 집에 돌아와도 소녀의 방에 들어오진 않았다. 들어올것 처럼 문을 두드렸지만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녀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아빠는 알고 있었다. 아빠는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그림은 혼자 시간을 보냈다.


며칠 뒤부터 아빠는 소녀의 방을 찾아왔다. 올 때는 방 문을 두어번 두드리고 조심스럽게 방을 연다음 먼지를 털어내고 바닥을 쓸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금방 방을 나가버렸지만 때때로 방의 의자에 앉거나 방 바닥에 앉아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림은 아빠가 방에 들어올 때면 벽에 가만히 서서 그림인척 했다. 그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그림이 잘하는 거였다. 

소녀는 어딜 갔어요? 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아빠는 왜 그런 슬픔 얼굴을 하고 있어요? 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아빠는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집에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소녀의 방에선 울지 않았다.

울 것 같은 일그러진 표정이 되면 소녀의 방에서 급히 나갔다. 그 방에서 울면 누군가 자기가 우는 걸 듣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빠가 우는 소리는, 혹은 우는 걸 참는 소리는 소녀의 방에서도 아주 잘 들렸다.

그림은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모든 걸 이해했다.


그날, 드물게도 아빠는 소녀의 방 바닥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방을 청소하다 피곤해진게 틀림없었다.

전날 밤 그림은 자기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신을 집중해서 이상하게 들리지 않도록 소녀의 목소리로 "아빠"라는 말을 해보았다. 아빠. 아빠 일어나봐요.

일요일 오후의 햇살이 천천히 움직여 아빠의 위를 비추자 아빠는 햇살보다 더 천천히 눈을 부비고 일어났다.

아빠 일어났네? 그림은 아빠를 쳐다보았다. 아빠도 그림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쳐다보던 아빠는 자리에 일어나 소녀의, 그림의 방을 나가버렸다.


매일 매일 소녀의 방에 찾아와 바닥에 앉아 그림을 쳐다보았다. 그림은 평소처럼 책 위에 앉아있거나 책상을 뛰어다니다가

아빠가 오면 아빠 안녕? 또 왔네? 하고 인사해주었다. 아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자리에 앉아있다가 30분쯤 그림을 쳐다보다가 방을 나가버렸다. 한 번은 그림은 아빠에게 말을 걸었다. 그 때 나 아팠을 때 말야 아빠가 가버리는거 싫었지만 손에 웃는 얼굴 그려줘서 좋았어. 아빠는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역시 아무 말 없이 나가버렸다.

그림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소녀인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녀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날 부터 점점 그림은 소녀의 빈자리에 미끌어내려가듯이 변했다.

아빠는 이제 소녀의 방에 와서 그림을 쳐다보는게 아니었다. 그림을 그렸다. 연습장에 소녀를 그렸다. 하루에 한 장. 어떨때는 세장도 그렸다. 웃는 소녀의 모습 뛰는 소녀의 모습 밥을 먹는 소녀의 모습. 그림은 아빠의 그런 모습을 구경했다.


그림은 점점 색이 진해지고 키가 커졌다. 검은 색과 하얀 색이 아니라 분을 바른 것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볼이 생겼고 갈색의 팔꿈치와 무릎이 생겼다. 목소리는 (시험해보지 않았지만) 분명 먼 곳까지 들리도록 큰 소리를 낼수도 있을 것이다. 창 밖을 날아가는 굴뚝새에게 소녀가 하던 것처럼 "왕!"하고 짧은 소리를 질러도 보았다.


아빠는 점점 색이 흐려져 갔다. 머리 카락은 더 이상 새까맣지 않았다. 목소리는 작아지고 매일매일 마르고 앙상해져갔다.

아빠의 그림에 나오는 소녀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 아가씨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림은 점점 아빠가 걱정스러워져가기 시작했다. 아빠, 밥은 먹고 있어? 라고 묻자 아빠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빠 언제까지 이렇게 그림만 그릴거야? 라고 묻자. 아빠는 고개를 숙였다.


그림은 깨달았다. 내가 있기 때문에 아빠가 저렇게 작아지고 있는거야. 소녀의 방은 이제 소녀를 그린 아빠의 그림으로 가득차서 더 이상 소녀의 방 같지가 않았다.


그날은 소녀가 돌아오지 않은 날로부터 1년 정도 지난 날이었다. 아니 2년이 지났을지도 3년이 지났을 지도 몰랐다.

그림은 잘 알 수 없었지만 그 날과 같은 햇볕 냄새가 나는 날이었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으로 거리를 걸어다녔고 풀 냄새가 났다. 그래, 그림은 이제 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팔에 햇볕이 닿으면 따스했다. 머리카락을 입으로 물면 미끌미끌하고도 까끌까끌한 이상한 맛이 났다. 아빠는 소녀가 좋아하는 멋진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그림은 아빠가 저녁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림은, 아니 소녀는, 아니 아가씨는 창틀에 앉아 뒤를 돌아 소녀의 방을 바라보았다. 방은 그대로였다.

바람이 불고, 무당벌레가 춤을 추듯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아가씨는 창틀에서 뛰어내렸다.

붕, 하는 소리와 함께 아가씨는 날아올랐다. 얼마나 가볍게 날아올랐던지 지나가던 야구 꼬마가 와, 저 사람봐 하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야구 꼬마를 빼고 아무도 그녀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무당벌레는 날개를 파르르 떨고 다리를 두어번 사방으로 펴서 사람으로 치자면 아주 시원한 기지개를 폈다.


 ...그래서 그림은 사람이 되었대. 여자아이가 원하던 대로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갖가지 모험도 많이 했더라구. 멋진 남자랑 춤도 추고 토끼처럼 달려보기도 하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바다도 보고 

 산도 보고 오래된 성도 보았대.


나는 무당벌레를 바라보았다. 무당벌레는 배가 고파졌는지 고개를 몇번 위아래로 흔들더니 점차 이야기와 나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던 손을 멈추고 무당벌레에게 노래하듯 물었다.


 북쪽에 하얀 얼음이 가득한 바다를 보았겠구나. 동쪽에 불이 난 것 처럼 연기가 나는 산을 보았겠구나. 

 왕비를 사랑한 왕이 세운 커다란 성을 보고 말이지. 봄에는 꽃을 보고 가을에는 달을 보고 밤마다 별을 보았겠지.


 그래 맞아 그거였어. 근데 어떻게 알았지? 


무당벌레는 포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올라 진딧물을 먹으러 가버렸다.





2015년 8월 31일, 11시 59분. World's end girlfriend의 앨범 Hurtbreak wonderland를 들으며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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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도시는 심하면 천년도 전에 만들어진 도시일때도 있지만, 삿포로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다른 대도시와는 아주 결정적인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서양식의 Av, St, 개념으로 구획되었다는 점. 

예를 들어, 주소를 봐서 서5, 남10 이런 식의 주소가 많고. 유명한 징기스칸 체인점인 다루마 같은 경우엔 "다루마4.4호점"같은 식의 이름이 있는데 그건 남4,서4지점의 다루마라는 얘기다. 거의 균등한 블록에 장방형의 도시라 길을 찾기가 엄청 편리.


이 주소의 기점이 되는 장소가 어디냐하면 대충 삿포로 시계탑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한다는 얘기는 한국의 웹에선 검색해도 나오지 않으니 확실히 말하기가 어렵고 삿포로 시계탑의 주소에는 동서남북 어떤 옵션도 붙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북쪽 블럭인 크로스호텔 삿포로는 북2가 주소이다)

기회가 있다면 삿포로 시계탑에 기점이 되는 돌이라도 있지 않을까 찾아보고 싶은데 항상 관광객이 바글거려서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삿포로에 낯선 여행객이라고 해도 대충 이 정도만 기억해두면 안심. 길을 잃을 걱정은 거의 없다.

건물을 못찾는다고 해도 한 블록 정도 돌아볼 생각을 하면 문제가 없다. 혹시 그래도 불안하다면 용과 같이 5를 하면 됩니다. 거기 삿포로 시가 나오는데 웃길 정도로 삿포로시를 잘 축소해놔서 처음 가보는데도 대충 어디에 뭐가 있을지 추측이 갈 정도였으니까. 깨알같은 홍보로군요 세가님 저에게 돈을 주세요. 홍보해드립니다.

(주의: 정말로 삿포로 시내 확인을 하겠다고 게임을 해선 안됩니다. 이상한 농담이라고 생각해주세요)


...하지만 여기까진 일반적인 얘기. 제 길잃는 재주가 얼마나 출중한지 삿포로시에서도 길을 잃었습니다 저는!

아주 깜짝 놀랐다니까요! 걸음도 얼마나 빠른지 스즈키노 역에 가야하는데 정신차려보니 호스이 스스키노 역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었어!

그러니까 삿포로시를 여행하시는 여러분은 길이 아무리 찾기가 쉬워도 방심하시면 안됩니다. 잘못하다간 스스키노 역 주변에 유흥가가 있는데 거기서 이상 기묘한 노래방 디스플레이 같은거 구경하다가 길을 잃을수가 있어요(변명이다)

 

그리고 한가지 주의할 점이, 삿포로시를 도보로 걸을때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기가 힘들다.

블럭과 블럭의 거리가 거의 일정한데 신호등의 타임이 미묘해서 매 블럭을 건널 때 마다 신호등에 걸린다. 진짜로.

예를 들어, 남10서6인 노보텔 삿포로 북7서5인 삿포로카니본케까지는 고작 2.3키로미터 정도로 걸어서 30분이 안 걸릴 거리인데 실제로 걸어보면 더 걸린다. 이유는 신호에 18번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리듬이다. 

음 블록이다 걸어가야지. 

신호네 파란불 기다리자. ..기다리자. 아 바뀌었다. 

블록이다 걸어가야지. 어 신호네. 파란불 기다리자. ...기다리자. 아 바뀌었네.

역시나 걷다보면 약간 짜증나는 느낌이다.


블록이 짧은 거리는 아닌데 거의 걷는 시간과 신호 기다리는 시간이랑 비슷한 듯 하다.

만약에 걸음이 몹시 느린 노약자라면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끊임없이 걸어갈수 있겠지만 그건 또 너무나 가혹하다.

성인 남성 반 밖에 안되는 속도로 걷는 노약자를 쉴 시간도 안 주고 계속 걷게 하다니! 삿포로 시 공무원들이여 너희들은 짐승인가!!

이 가혹한 신호 체게에 고통받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닐터. 삿포로 시민들은 어떻게 극복하는 걸까 하고 유심히 지켜보니까. 의외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휘이이잉 하는 느낌으로 한번에 몇 블록을 이동할수가 있는 것 같았다. 거의 두블록은 기본?

잘은 모르겠지만 상당히 쾌적한 속도로 신호 같은건 신경쓰지 않고 움직이는 시민들이 많았다.

호텔에서 자전거를 빌려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관광객인 나는 자전거가 없으니.

이런 삿포로 시민들의 기득권을 인정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좋겠어 이 사람들.





길을 헤매는 사람에게야말로 달콤함이 필요하다. 

 

이번 여행에서 정말 지독하게 길을 헤맸는데

헤맬 때 마다 길바닥에 앉아서 울기보다는 아무가게나 들어가서 뭘 사먹었다.

홋카이도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전체적으로 다 맛있었다.

그 중에서 제일 꿀맛이었던 것이 롯카테이 본점에서 먹었던 디저트들이었는데

그 디저트들을 먹은 얘기를 하려면 가장 장렬하게 길을 헤맨 3일째 날 얘기를 할수 밖에 없다.

시간 순서대로 써도 내가 도대체 왜 이 따위로 헤맸는지 이해가 안가는 이야기기라

성의없이 휴먼굴림체로 대충대충 쓸 수 밖에 없다. 그 개요는 하기와 같다.

 

숙소 ->어리버리 -> 오비히로 역 -> 마나베 정원 -> 배고픔 -> 오비히로 역 -> 판쵸

-> 롯카테이 본점 -> 어리버리 -> 오비히로 경마장 -> 미도리가오카 공원 -> 폭우에서 길잃음 -> 오비히로 역

-> 롯카테이 본점 -> 모든 걸 포기 -> 오비히로 역

 

전날 구시로에서 3시간 기차타고 오비히로에 도착.

오비히로 시의 중심가는 오비히로 역을 중심으로 시의 북쪽에 기울어져 있는 형태인데 왼쪽으로 굽은 가지 처럼 통통하게 남서쪽으로 기울었다. 북쪽엔 토카치 천, 동쪽 끝에는 사츠나이천을 기대고 남서쪽의 끝에는 피파이로 산(성의없는 이름이다) 토카치호로시리 산을 접했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넓은 땅이 소위 말하는 토카치 평원의 일부로, 정원 문화와 낙농업이 크게 발달한 남쪽의 번화지역이다.

 

홋카이도에 와서 한 두번 실수한게 아닌데, 가이드북에 오비히로에서 가면 좋은 곳 뭐 이렇게 써있다고

절대로 가까운게 아니다. 대학교 들어가서 저 서울살아여 이러면 꼰대들이 서울이 다 니네집이냐 하는 이유가 있었다. 편의상 오비히로를 얘기할 때 토카치 지방과 함께 묶는데 정확히는 토카치에 오비히로가 있는 것으로 토카치 평야는 무려 3,600제곱키로미터(충청북도의 반정도)

그리고 정식 행정구역인 토카치 군은 오비히로 주변의 군이니까 복잡하기 짝이 없다 토카치 지방과 토카치 평야와 토카치 군은 다르다! 알게 뭐야 하여튼 넓다.

 

이 쪽에서 가려고 한건 토카치 천년의 숲이라고 인공적으로 만든 거대한 수목원.

천년 후 까지 남을 숲을 만들겠다는 그 스케일에 반했습니다. (사실은 치즈가 맛있다고 해서 가려고 했지만)

전날 인상 깊었던 구시로 습원에 한 번 더 갈까 고민하는 바람에 전날 관광버스 예약을 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2분의 4박자로 비가 내려서 걍 무슨 습원이냐 수목원이나 가자 라고 생각했는데

비오는 날에 습원은 가면 안되지만 수목원에도 가면 안된다는 생각은 못한 나는 바보.

솔직히 버스 예약 안 했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고 생각한게 정말 바보 같았다.

호텔 프런트에 물어보니까 차 타고 40분 넘게 걸리는 곳인데 예약도 안하고 가실려구요 하길래 포기. 

다른데 갈만한 곳 없냐고 물어보니까 오늘은 반에이 경마도 없는 날인데 하고 말끝만 흐리고...

 

반에이가 뭐냐 하면 만화 은수저에 나오는 바로 그 짐수레 끄는 말로 하는 경마가 바로 반에이 경마.

거기 경마장에 바로 오비히로에 있고(여기만 있다) 은수저 만화 자체도 오비히로 농고가 배경이다. 덕후들 참조요.

 

멍청한 외국인이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걸 귀찮아 하지 않은 친절한 호텔 프런트에서 어렵게 찾아봐 준 곳은 홋카이도 식 정원인 마나베 정원.

이런 홋카이도식 정원은 오비히로와 아사히카와에 많은데 일종의 개인이 운영하는 수목원.

전통적인 일본 정원과는 다르게 유럽식 정원의 영향을 받아서 다양한 식생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넓다.

솔직히 이 시점에서 나도 그냥 정원이겠지 금방 끝나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날 하루 종일 걷고 걷고 또 걷게 될줄은 몰랐던 것이다. 안 그랬다면 이런 개인 규모의 수목원 따위 가지 않았을 거다.

 

- 마나베 정원

잠시였지만(이 때는 잠시 그친건지 몰랐지...) 비가 그쳤기에 버스를 타고 마나베 정원으로 갔다. 시내에서 15분 정도의 거리.

마나베 정원에 가니까 입구에는 화분들을 잔뜩 팔고 관광객들에겐 15분/30분/45분짜리 산책 코스가 있다는 안내가 있었다. 가니까 젊은이는 나 밖에 없다. 서른살도 넘은게 젊은이라고 하면 웃기지만 거기 가면 알수 있다 압도적인 차이로 내가 최연소인게 분명.

할아부지 할머니들이 버스를 타고 몰려와 (일본인답게) 조용히 산책하거나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이 곳의 공기에 스며들지 못하는 느낌...

내 선택지는 저 보기보다 늙었어요, 라고 늙은 척 하거나 저 길가다가 우연히 헤맨겁니다, 두 개 밖에 없었다. 

당연히 후자를 골랐습니다. 후드 뒤집어 쓰고 어쩌다 흘러들어온 힙스터인 척하면서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도 메소드 연기를 했습죠.

마나베 정원은 전형적인 홋카이도식 정원 중의 하나라는데, 꽤 넓은 부지에 구역을 나눠서 식생을 완전히 분리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45분 정도 정원을 걸어다니니까 예쁘기도 하고 나무들도 평화롭고 폭포도 있고 연못도 있고 하여튼 그래서 나올때 쯤엔 마음이 온화해졌쯤.

수많은 노인들과 동료의식 느꼈다. 그들도 나를 동료로 받아준 듯한 느낌이 들어...

 

- 판쵸

1시간 정도 산책을 한건데 버스 시간 안 맞아서 40분간 수목원에서 비맞으며 기다리다 시내로 돌아오니까

이미 기력은 제로였다. 비는 오고 쉴 수 있는 곳도 없고. 마음이 삐뚤어지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점심은 계획이 있었다. 일본 최초의 부타동 집이었다는 판쵸가 바로 오비히로 역 앞에 있는 것. 무려 1909년에 개점한 집으로.

흔히 돼지갈비 덮밥 같은 걸로 생각하기 쉽지만 풍부한 고기에 달기보다 짠맛 베이스의 양념이라 생각했던 맛과 다르다.

8테이블 남짓한 작은 가게라 모르는 사람과 합석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줄을 서서 기다리기 시작한 시점에 들어가 아이고 부타동 조상님 하고 넙죽 업드려서 제일 비싼 1300엔 짜리 시켰더니 밥 위에 돼지고기만 잔뜩 올려져 나왔는데 합석한 아저씨들이랑 눈치보며 어색하게 한술 뜨다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뛰어난 밥맛과 숯불구이한 돼지고기의 풍부한 맛이 어우러져 밥 먹다가 박수 칠뻔. 

게다가 비도 완전히 그쳐서(착각이었다 오후 늦게 비 미친듯이 오기 시작함) 오비히로 괜찮은 곳이구나.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쩔수 없었던게 그 시간대에 다음 숙박지(아사히카와) 로 가는 기차가 없었는데, 어디 들어가서 그냥 휴식이나 취하지, 그 때 나는 괜찮을 줄 알았다.....

 

돼지고기가 과했을까. 8장이나 되는 돼지 고기를 먹으니 힘이 너무 난 탓이었다.

앞으로 에정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오비히로시를 탐험해보자!(=할거 없으니 그냥 돌아다니자)라고 생각한 것. 오비히로시는 삿포로시와 같이 계획하에 만들어진 도시이다. 서구의 도시처럼 스트리트와 애비뉴가 정확하게 나눠져있진 않지만 구획을 정하고 그 위에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방향만 똑바로 잡으면 길을 찾는게 편하다.

낯선 도시를 구경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 분명 이것저것 즐거운 게 많을거야.라고 생각했다.

앞에서 설명했지만, 남쪽의 번화가이자 낙농업이 발달한 토카치 지방의 중심가가 아닌가.

 

- 롯카테이 본점

우선 첫번째 목적지는 오비히로 중심가의 북쪽에 있는 롯카테이의 본점. 롯카테이는 홋카이도의 유명한 제과 기업으로 일본 면세점을 가도 꽤 자주 볼 수 있는 초콜릿으로 유명한 가게다. 하지만 초콜릿만이 업이 아니라 일본에서 접할 수 있는 스위트 종류는 대부분 취급하고 있다.

일본식 과자의 세계야 워낙 넓고도 깊어서 모든걸 취급한다고 볼순 없지만 팥 계열의 모나카, 안미쯔, 젤리야 당연히 취급하고 각종 케익류, 샌드류도 폭넓게 취급하고 있다. 내가 특히 즐겁게 먹은 것은 본점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크림과 바삭한 과자류. 파손과 부패에 약한 것들만 골라서 먹었는데 과연 훌륭했다. 많은 여행객이 지적하는 바, 다른 음식들은 특별히 싼건 아니지만 

홋카이도 특히 오비히로의 스위츠들은 말도 안되게 싸고 괜찮은 퀄리티다.

바로 이런 단 음식이야 말로 여행을 즐겁게 해주는 소소한 기쁨. 입에 달콤한 것이 들어오면 그야말로 펄펄해진다.

1층에는 제과점, 2층에는 카페를 운영하며 레스토랑이 입점해 있는데 스프카레가 있는걸 보고 저녁때 너를 먹으러 올게 스프 카레야하며 롯카테이를 20분도 채 안 머무르고 용감하게 떠난 것이 오후 1시쯤.

 

- 반에이 경마장

두려울게 없는 상태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오비히로 읍내를 도는 것이 아니냐. 볼만한 것은 다 보겠다 하는 심정으로 반에이 경마가 열리는 오비히로 경마장으로 걸어갔다가 남쪽에 있는 미도리가오카 공원(동물원이 같이 있다)을 한바퀴 돌며 오비히로 시내의 평범한 일상을 만끽하겠다 하는 오늘의 마지막 잘못된 판단을 했었던 것이다.(아니 몇개 더 한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것이 끝난 지금 그날 내가 롯카테이 본점 부터 걸어간 루트를 구글 맵으로 계산해보니 약 14키로미터 정도.

비오는 6월 말의 홋카이도. 얼간이 같이 걸어갔던 나.

매주 주말, 혹은 월요일만 열리는 반에이 경마가 있다. 말에 관한 박물관과 홋카이도 식료품을 파는 마트, 음식점 등이 있어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종합 휴식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경마가 열리지 않는 날에도 충분히 즐거운 공간이지만. 경마가 열렸다면 더 즐거웠겠지...왜 여길 기를 쓰고 걸어갔을까.

 

- 미도리가오카 공원

오비히로의 가장 커다란 공원. 얼마나 커다랗냐 하면 50헥타르 부지에 있습니다. 안에 미술관, 오비히로100년 기념관, 오비히로 동물원이 있고도 남는다.

무려 뉴욕의 센트럴 파크 7분의 1넓이입니다. 이게 얼마나 넓은건지 잘 이해하기 힘들겠군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100헥타르인 에버랜드의 반, 서울랜드는 28헥타르 입니다.

미도리가오카 공원을 산책한 일 하나가 에피소드 반 정도의 분량이 될것 같은데. 다른 이유는 없고 공원 안에서 길을 잃었다...잃을 정도로 숲이었습니다.

비도 오고 그래서 그런지 50헥타르 부지에 나 혼자 있었던 것 같은 느낌. 롯카테이에서 사온 팥떡을 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아서 꾸역꾸역 먹었답니다.

1시간 넘게 헤매다가 문득 이러다간 큰일나겠다 싶어서 찻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뛰쳐나갔더니 풀밭에서 사람들이 고기를 굽고 놀고 있었다.

 

미도리가오카 공원을 나오고도 한참을 걸었다. 오비히로 역까지도 멀었고 저녁을 먹을 생각이라 롯카테이까지 꾸역꾸역 걸어서 레스토랑이 저녁 개점을 하는 시간을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창 밖을 보고 있노라니 뭔가 귀찮아져서 저녁을 먹지 않고 기차를 타러 떠났다. 스프카레? 먹었으면 체했을게 틀림없다.

로바다야끼의 본고장이 구시로라 여기서라도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안한건 아니지만. 결국 그대로 모든걸 포기하고 오비히로를 떠났다.


- 총평

혼자서니까 가능한거지, 누군가. 예를 들어 당신이 있었다면 나는 이렇게 여행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을 숨기랴, 홋카이도에 처음 갈 때 내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기차여행"이었다.

이유란게 별게 없는게 Anna Kendrick의 "Cups"의 가사가 이랬기 때문이다.

 

나는 멀리로 떠나는 표를 하나 샀지.

위스키도 두 병 샀으니, 다정한 길동무가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내일 떠날 건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멀리로 가는 표를 하나 샀지.

엄청나게 아름다운 풍경일거야. 산도 보고, 강도 보고.

하지만 너랑 같이 있으면 더 아름다운 풍경일거야.

 

나는 멀리로 떠나는 표를 하나 샀지.

위스키도 두 병 샀으니, 다정한 길동무가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내일 떠날 건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가버리면, 내가 가버리면 말야.
넌 내가 가버리면 날 그리워할 거야.
 
나는 여기서 곡의 화자가 샀다는 티켓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기차로군! 하고 추리해냈다.
이유는 역시 1. 비행기에서 술을 가지고 탈순 없지 2. 그레이 하운드는 지정석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기차 창가에 앉아있는 Anna Kendrick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아 궁색하네.

기차여행을 하고 싶었다. 어쩌면 기차여행을 하고 싶어서 홋카이도에 간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기차여행에 대해서 할 말이 몇개 있지만 여기선 주의할 점을 간단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홋카이도 레일 패스 외 각종 정보는 하기 링크에서 확인 할 것.
http://www2.jrhokkaido.co.jp/global/korean/railpass/rail.html

<<홋카이도 기차 여행의 주의할 점>>
 
1.
가장 중요한 것은 홋카이도는 넓다. 미국인은 코웃음을 치겠지만, 한국인 기준으로는 넓다.
첫번째 이동이었던 신치토세 공항에서 구시로까지의 이동은 순수하게 이동만 4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매번 이동 할 때 마다 2시간 이상이 걸렸고. 원하는 시간에 열차의 착발이 있을거란 보장이 없었다.
열차운송의 나라인 일본이라서 의외였던 부분으로 인구밀도가 낮어서 그런지
대도시간의 이동도 인구 밀도가 높은 서부 이외에는 하루 4번 정도 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아침에 두건, 저녁때 두건. 이런 식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두가지 준비, 첫 번째는 스마트폰 어플로 일본의 열차 시간을 체크할 것.
내가 쓰는 것은 야후 재팬의 교통 정보로 도쿄의 본토에서는 거의 100%에 가까운 정확도를 자랑하는 훌륭한 어플인데
홋카이도에서는 상황이 다른게, 열차의 지정석이 만석이 될수 있다...나도 몇번 당했습니다....
다른 걸 써도 상관없지만 항상 열차 시간과 빈자리를 체크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야후재팬의 로선 정보는 하기 링크에서 확인할 것.
http://transit.yahoo.co.jp/

두 번째는, 약간 큰 규모의 열차 역마다 항상 있는 녹색창구(미도리노 마도구치)를 이용해서 
열차 시간을 사전에 체크하고 예매를 할 것.
뒤에 레일패스에 대해서 적겠지만, 레일패스를 쓴다면 지정석은 무료로 예매가 가능하며 전날, 최소한 당일 아침에 예매하면
그날 자리가 부족해서 이동을 못하는 불상사를 피할수 있다. 나름 엘리트인 JR직원들이라 일처리도 정확하고 영어도 어느 정도 통한다! 필요한 경우 관광에 대한 가이드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고 시간표 배부야 당연히 공짜다.
 
2.
다음은 홋카이도, 아니 일본의 열차 체제에 대한 이해. 기본적으로 도심을 달리는 열차는 자유석, 그러니까
그냥 표만 사면 되는 전철식 구성을 하고 있는데 조금 멀거나 쾌속, 특급 같은 열차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먼거리를 가는 만큼 화장실도 달려있고(감사합니다) 자유석이 한 열차에 2차량 정도, 나머지는 거의 지정석으로 채워진다.
서울에서 선량하게 살고 계신 여러분은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지방에서 살거나 어딘가 여행이라도 가본 분들은
사전에 좌석을 지정한 티켓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이렇게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간다)
 
그러니까 열차 칸의 종류는 이런 식인 것이다.
 
-자유석
-지정석(모든 차에 있는건 아님)
-그린차(모든 차에 있는게 아님)
 
거의 모든 열차에는 표만 사면 타는게 가능한 자유석, 즉 입석이 있고 대부분의 열차는 "지정석"을 구매해서 이동해야합니다.
열차 표는 만국 공통, "착발 지점" "시간대" "차량번호" "자리"가 기입되어 있고. 2시간 이상의 이동은 무조건 지정석으로 이용하는게 좋다.
홋카이도 레일 패스가 있어도 창구에서 지정석을 발급 받아서 차량에 타야한다. 항상 차량 내에서 표를 검사합니다.
보통 앞 좌석 머리 뒷 부분에 티켓을 꽂아주는 곳이 있어서 거기에 티켓을 꽂아두고 주무시더라고요.
 
그린차는 일종의 1등석인데, 저도 출장 때 이용할 때만 사용해봤으니까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홋카이도에서는 거리가 길어서 그런지 그린차가 엄청 비싸고 복잡해요, 도쿄에선 스이카로 이리저리 해서 저리저리 하면 간단한데(시무룩) 
 
3.
사실은 가장 중요한 점인데. 어떻게든 기차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차로 이동하는 시간을 디자인해야 한다.
1번과 2번의 이유로 자기가 원하는 시간대에 완벽한 기차가 있을지 알수가 없다. 
사전에 어떤 시간대에 어디서 어디로 이동해야한다는 디자인이 나오면
관광객들에게 중요한 홋카이도 레일패스를 사용할지 안 할지 결정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치토세->구시로의 이동이 8천엔이 넘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쓰는 편이 안 쓰는 것보다 이익이 되었는데. 계산해보면 좀처럼 할인 이익을 보기 힘들다.
충고를 하자면 어차피 지정석을 예매하기 위해서는 미도리노 마도구치에 가야하기 때문에
삿포로 시내에서 이동할 때 편하겠다고 레일패스를 쓰는 것은 효율이 좋지 않다.
장거리 이동이 있을 때 할인효과를 누리기 위해 혹은 편하게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사용하는게 좋다.
매번 계산하고 돈내는 것보다 레일패스로 바로 발급받는게 상당히 편하다.

이렇게 각 구간 어떻게 갈 것인지까지 결정하게 되면
어느 방향으로 갈때 어떤 풍경을 볼 수 있을지까지 계산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은 이미 사람의 업이라기 보다 덕후의 영역.
물론 이런걸 알려주는 곳이 몇군데 있더라고요. 있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철덕이란 참 두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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