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알겠어? 내가 왜 너한테 편지를 쓰고 있는지.

며칠 전 서럽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왜 그 길로 집에 돌아오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그 날에. 나는 바람이 너무 쎄고 비가 후드득 떨어져서 코트 깃을 세우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집에 돌아가고 있었어. 헤드폰을 쓰고 할 수 있는 한 큰 소리로 볼륨을 키우고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어.

사고가 나는 걸 봤어.
집 앞 사거리 중 두 번째, 6차선과 4차선이 교차되는 그 사거리 앞에서 나는 사고가 나는 것을 봤어. 배달을 가는 스쿠터와 택시가, 신호가 바뀌는 것을 놓치지 않고 길을 건너려다 비에 미끌어져 스쿠터는 택시와 택시는 스쿠터와 서로 부딪혀서 스쿠터는 넘어지고 택시는 급하게 멈춰섰지. 내가 노래를 듣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비에 미끌어지는 소리도 스쿠터가 날아가는 소리도 들었겠지만 나는 아무 것도 듣지 못하고 스쿠터가 미끌어져 날아가는 것만 보았어. 배달 박스가 날아가 몇 번이나 돌아 길바닥에 부딪히고 짬뽕과 짬뽕과 짬뽕이 바닥에 엎어졌어. 잘 포장 된 짬뽕의 내용물은 하나도 쏟아지지 않고 그대로 길에 엎어졌지. 스쿠터의 배달 기사도 똑같이 길에 엎어졌고. 길에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멈춰섰어.

내가 왜 너에게 편지를 쓰는지 알겠니? 나는 네 생각을 했단다. 네가 스쿠터를 몰고 다니면서 가끔 배달을 하는거야 알고 있지만 그 때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실감했어. 글쎄 말야 아무리 숫자를 보고 통계를 봐도 실감을 못하면서 눈 앞에 일이 벌어지고서야 알 것 같았어.

스쿠터의 기사는 몸에 힘을 빼고 비에 젖은 길에 엎어져 있었어. 택시는 멈춰서서는 잠시 숨을 돌리는 듯이 하나 둘 셋 아니 여섯 일곱쯤을 세고는 비상등을 켰어. 사거리의 한 가운데서 멈춰섰거든. 다른 모든 차들도 멈춰섰어. 좌회전을 하는 차도 직진을 하는 차도 없었지. 모두가 스쿠터 기사가 숨을 쉬는지 궁금해했지. 그냥 밀려나가 엎어진 건지 아니면 나가 떨어진 건지. 숨을 세 번쯤 네 번쯤 쉴 만큼 되자 스쿠터의 기사가 천천히 머리를 흔들며 일어났어. 사람들은 계속 그를 쳐다봤고 갑자기 뭔가 알았다는 듯이 차들은 좌회전과 직진을 하기 시작했지. 기사는 절룩거리지도 않고 스쿠터를 일으켜 세우고, 전화를 걸며 택시로 걸어가기 시작했어. 택시는 눈을 깜빡이는 채로 문이 열렸고 기사가 내렸지.

아직 신호는 바뀌지 않았어. 나와 같이 횡단보도 앞에 서있던 중학생 쯤 되는 아이 둘이 멈칫 멈칫 하더니 길을 뛰어나갔어. 나는 아이들이 뭘 하는지 궁금해져서 멍청하게 그걸 쳐다봤지. 아이 둘은 길 바닥에 쓰러져 있는 배달박스와 엎어져 있는 짬뽕을 누워있는 짬뽕을 뒤집어져 있는 짬뽕을 수습해서 상자에 다시 고스란히 넣고는 둘이서 그걸 잡아 스쿠터의 기사에게 뛰어갔어. 아이 둘은 모든 걸 원래대로 해두고 싶은 것처럼 짬뽕을 차례대로 쌓고 배달 가방의 문을 닫아서 스쿠터 옆에 두었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지도 않고 원래 해야하는 일인 것 처럼 그렇게 했어.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게 그 아이들의 목적이었던 것 같지만- 다시 총총 뛰어서 원래의 건널목으로 돌아왔어. 스쿠터의 기사는 아이들을 보지도 못하고 택시의 기사와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신호가 바뀌었고. 나는 길을 건너면서 쓰러진 스쿠터와 원래대로 돌아와있는 배달상자, 그리고 택시에 기대서 이야기를 하는 택시의 기사와 스쿠터의 기사를 보았어. 그리고 다시 아이들을 보았어. 아이들은 길을 건너지 않고 그대로 거기에 있었지.

영아, 아이 둘이 짬뽕과 짬뽕과 짬뽕을 수습해서 스쿠터의 기사에게 가져다 주고 다시 건널목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횡단보도에 서서 그걸 보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너에게 편지를 쓴단다. 나는 네 생각을 했어.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비가 오는 날의 이야기고 말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겠어?

19년 3월의 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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