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말이다 너 결혼도 못할 줄 알았다 못생겨서 말야” 하고 이모부는 말했다. 친척들과 주말의 부페에 점심을 먹으러 와서는 먹고 싶은 것도 없어 메밀국수를 한 대접 퍼와서 먹으려던 참인데 난데없는 이모부의 말에 쪽파를 입에서 조금 흘렸다. 흘려서 듣고 있긴 했지만 오늘 점심 모임을 갖기 전 머리를 하고 온 내 새 머리를 형수가 칭찬하던 참이었는데. 어느새 이모부가 내 얼굴을 욕하고 계셨다. 나는 “엥 제가요? 못생겼다고요? 와...”하고 얼빠진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머리가 반백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이 못생겨서 라는 것일까.

사실 오늘은 좀 외모에 자신이 있었다. 모임에 오기 전 하고 온 머리가 아주 자연스럽게 반백으로 음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놀라, 물론 놀랄 이유도 없었지만 하여간 그래서 밥을 먹는 것도 까먹고 이모부를 쳐다보았다.

사촌형은 말을 돌리려는 듯이, “쟤가 날이 갈 수록 외삼촌을 닮아가는 것 같아요.” 하고 말한다. 이모부는 그걸 놓치지 않고 “외삼촌도 못생겼지”하고 받았다. 첫째는 못생기고 둘째는 그래도 깔끔하게 하고 다녀서 낫고.

저 평생 못생겼다는 말 이모부한테 처음 들어요. 라고 끊고 갈랬더니 ”네가 너무 남의 말을 안 듣는거 아니냐? 하여간 내 요지는 너는 어릴 때 엄청 못생겼는데 서른살 넘고 나서 점점 잘 생겨져서 지금은 볼만하다는 거야.” 하고 지치지도 않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거니, 결혼하고 니 어머니랑 같이 살아라. 하고 두 마디를 더 했다.

“싫어요” 나는 대답한다. “그거 사기 결혼이잖아요”
이모부는 짐짓 마음이 상하셨다는듯이 “그게 왜 사기 결혼이야. 사기는 모-럴이지. 모-럴 메리지 어떠냐 흐하하하하.” 이모부의 역정인지 농담인지가 재미있는지 조카는 망고를 씹다 말고 헤헤 하고 짧게 웃는다. 아기는 분위기를 못 읽어서 아기인거겠지. 조카는 아까부터 테이블 반댓편에 앉아 호쾌하게 포크를 들고 망고를 찍어 먹고 있었다. 농산물 같은 머리를 하고 있는 23개월의 아기라니.

접시를 꺼내는 형을 뒤에서 때린다. 아니 여긴 왜 온거야? “누구 말야?” 이모부! “우리가 아버지랑 밥을 먹는 자리에 너를 부른거야.” 와 나 진짜 인생에서 못생겼다는 얘기 이모부한테 처음 들어봐. 형은 “뭐라고? 그럴리가”하고 가버린다. 형수는 조카의 밥 시중을 들고 있고 이모부는 식탁 가득 음식을 올려두고 먹고 있다. 그 때 그 때 먹고 싶은 걸 가져다 먹으면 좋을텐데 이모부는 부페에 오면 먹고 싶은 모든 음식을 한 번에 퍼서 드신다. 조카와 이모부가 닮았다는 생각을 하다 고개를 흔든다. 맙소사 여든이 된 이모부와 23개월을 맞은 조카라니

일요일의 스시 부페는 사람이 붐빈다. 운동을 많이 한 사람들이 샐러드를 산더미만큼 담고는 몰래 고기와 탄수화물을 야채 안에 숨긴다. 스시는 밥만 둥글 둥글 남아서 돌아다니는게 반, 나머지 반은 정말 굶주린 사람만 먹을 것 같은 것들이다. 예를 들어 대충 굴린 밥 위에 올린 묵은지다. 꼬마 한 명이 예의바르게 눈썹을 찡그리고는 바지락을 올린 스시를 겨우 하나 접시 위에 올린다. 내가 쳐다보자 음, 하는 표정으로 집게를 자리에 내려놓는다. 나는 무더기처럼 떨어져 있는 밥알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우리 둘 같은 사람만 있다면 부페는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텐데 말이야. 내가 먹는 양에 대한 친척들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달고 매운 맛의 면샐러드를 펐다. 입맛이 없어진지는 오래이다.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놓는데 조카가 통통 거리며 어딘가로 걸어간다. 급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형수를 쳐다보니 도와줘요 하는 눈치라 내가 조카를 쫓아간다. 아이는 걸음이 느리다. 열심히 걸어도 내가 두 발짝만 크게 내딛으면 바로 그 앞에 있다. 손을 내밀자 조카는,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는다. 아직 23개월인 아이는 엄마 안아줘, 라고 말할 수도 통통거리며 달릴 수도 있지만 손을 높이 뻗어도 내 손까지 손이 닿지 않는다. 나는 허리를 구부려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따라간다. 검은머리에 뒷통수가 동그란 아이는 저 아래에서 저 위를 본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이 곳을 보고 저 곳을 본다.

아이는 가게 바깥으로 나가려다 문득 허락을 구하듯 나를 본다. 바깥은 안돼 엄마한테 물어보자, 라고 말하니 휘이잉 뒤로 돌아 가게 안으로 간다. 손은 나를 그대로 잡고 있다. 언제까지 두 발짝 만에 너를 따라잡게 될까. 언제쯤 되면 네가 내 손을 잡지 않고도 멀리 걸어가게 될 까. 가끔 나는 조카가 내 딸 같다는 생각을 한다. 쳐진 눈과 하얀 얼굴과 사람을 싫어하는 먹보 아기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의자에 앉아 아이를 쳐다본다. 아이는 칭얼대다 안겨서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졸려? 하고 입 모양으로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 아이는 세상에 어떤 사람보다 “내 아이”에 가까운 사람이다. 볼은 둥글고 발걸음은 빗소리처럼 토도독하고 난다. 아기답지 않게 음습하게 나를 쳐다보는 조카를 보면 웃음이 난다.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눈에 마음이 저릴 때도 있다. 형수는 조카의 귀에 “삼촌이 너를 사랑한대”하고 상냥하게 속삭인다. 나는 엥? 사랑까진 아닌데? 뭐 그렇게 사람을 빤히 쳐다보니. 하고 딴청을 부린다.

가장 먼저 밥을 먹기 시작 한 것이 이모부였는데, 가장 마지막에 식사를 끝낸 것도 이모부였다. 이모부는 내가 본 것만 해도 세 접시 쯤, 오뎅 그릇과 라멘과 우동을 다 먹고 나서야 아 잘 먹었다. 하고 식사를 마치셨다. 한 시간 삼십분 쯤 걸렸나보다. 밥을 다 먹으니 얘기가 하고 싶으신지 뒤늦게 야채를 집어먹고 있는 형수에게 말을 건다. 도와줘요 하는 눈빛으로 형수가 주변을 돌아봤지만 나는 조카에게 반동결 크랜베리(세상엔 그런 것이 있다)를 먹이느라 바쁜 척을 하고 있다. 이제 갈까요? 손님도 많은데 다 먹고 안 가면 실례잖아. 하며 형이 형수를 구한다.

가까운 곳에 이모부를 내려다 드리고 형이 집안일 사소한 것들을 하는 동안 형수는 이모부의 길고 맥락 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는 잠이 들락말락하는 조카를 쳐다보다 이제 낮잠을 좀 자야겠다는 이모부의 말에 인사를 드리고 집에서 나왔다.

형이 다시 운전을 하고 조카를 안은 형수와 내가 뒷자리에 탄자.
형수,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다는거 엄청 귀찮지 않아요? 아니 생각해봐요 그냥 살아가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너무 신경쓸게 많아서 귀찮잖아요. “그래서 결혼하기 싫어요? 연애도 하기 싫고?” 하고 형수는 웃었다.

(아 그렇잖아요. 타인은 불안전한 저 자신의 그림자일지도 모르고. 이제까지 최선을 다 해 살아왔다고 생각한 건 그냥 변명일지도 모르고. 감정은 언젠가 무너지고 그 무엇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건 곧 언젠가 상처에 대한 복선 같은 거잖아요)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대답하지 않고 형수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한다.

“응 가끔 귀찮다는 생각도 해요. 결혼이라는게 가정을 꾸린다는게 만만치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저는 계속해서 열심히 살아왔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외롭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서른살이 넘도록 살아왔는데 어느날 아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십년 가까이 내가 해온게 뭘까.”

“나는 열 아홉 살 때 처음으로 한국에 왔어요. 이제까지 살았던 곳이랑 달랐고 낯설었고. 친구들도 가족들도 한 명도 없었어요. 이제와서 한 번 더 제 인생을 살아보라고 하면 음 어쩌려나 다르게 살아보고 싶지 않을까 내가 선택한 인생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지 않으려나.”여기까지 말하고 형수는 조카의 얼굴을 처다본다.

“하지만 어느날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나 자신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아 역시 이제까지의 내 인생은 잘못 된 것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결혼을 잘 했다고 생각해요. 때때로 그냥 혼자 살 걸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운명이란 선택지와 결정으로 이루어지는데, 어느날 누군가를 만나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거기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무섭지 않아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세상은 영원히 겨울이고, 한 번도 여름에 당도하지 않았던거라면. 내가 여름이라고 생각한 것이 모두 착각이고 그게 다 아무 것도 아니라면 어쩔거에요)

하지만 나는 생각했던 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음 그렇군요 하고 수긍한다. ”응 그래요 삼촌도 언젠가 자기 자신보다 사랑하는 아주 소중한 사람이 생길거에요.” 나는 쓰게 웃는다.

오늘 밤 잠이 들면 열 아홉살이 되는 꿈을 꿀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전혀 모르는 학교에서, 이제까지 내가 배워본 적도 없는 것들을 배우게 될 것이고. 새로 친구가 된 사람들은 이번의 생에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흰 가운을 입고 다니는 검은 얼굴의 키가 큰 친구나, 일곱 명의 마드리드에서 온 유학생들 처럼 말이다. 나는 이번 생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인연 하나 남기지 않고 웃고 농담을 하고 뛰어다닐 것이다.

어쩌면 이런 꿈이라면 뒷 모습만 볼 수 있는 사람도 등장 할 지 모르겠다. 너무나 무서워 차마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 같은거 말이다. 길을 걷다가 뒷 모습을 보고 바로 그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지만 차마 어깨를 두드려 말을 걸지는 못하고. 다만 꿈 속에서조차 누군가의 얼굴을 바라볼 때 마다 혹시 이 사람일까 놀라게 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꿈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정말로 저런 꿈을 꾼다고 하더라도 그걸 어딘가에 적을 필요는 누군가에게 말 할 필요도 없다. 현실의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이번 생은 처음부터 생겨나지도 않았으니, 잃어버려서 슬퍼할 것은 하나도 없다. 이번 생의 우리는 만난 적도 만날 일도 없을테니까.” 꿈 속의 내가 망연히 중얼거린다.

집은 아직 멀었다. 형은 계속 운전을 하고 있고 형수는 창 밖을 본다. 조카는 한 손을 나에게 맡기고 잠을 잔다. 필시 고단했으리라. 집이 도착 할 때 까지는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잡고 있을 생각이다.

아이는 짧은 그 시간 동안 꿈을 꾸는지 발을 들어올렸다 내린다. 눈은 감은 그대로이다. 나는 아이의 숨을 세어보다 노래를 부른다.

“네가 있던 여름은 먼 꿈에나 있고, 하늘에 쏘아올린 불꽃놀이는 사라져 가네. 이야기는 했지만 좋아한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하고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아기는 깨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자신보다 사랑하는 것은 만들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그리고 이어서 아주 아주 작은 소리로 노래의 나머지 부분을 부른다.



차에서 내리면 아마 그곳은 여름이 없는 세계일 것이다.

19년 3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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