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9월 30일 이제껏 없었다던 10일간의 휴가 중 5일을 보내기 위해, 교토로 갔다. 이번에도 여행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연휴 기간 동안 내가 밥을 해먹고 싶지 않았고, 이런 여행이라도 가야 연휴 동안 아무 것도 안 했다고 징징 안 대시겠죠- 라고 후배가 이야기를 했으며 때마침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비행기가 있는 곳이 간사이 뿐이었다. 계획 이라고는 아이폰을 사는 것과 일본에서 놀고 있는 후배와 저녁을 먹는 것 뿐이었다.

4박 5일 간의 교토 여행 동안 나는 아이폰을 사고 친구와 두 끼의 저녁을 먹었고 비가 오는 루리코인과 오하라를 들렀으며 사이호지에 갔다 사전 예약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일 해지는 가모가와의 강변에 앉아 시간을 보냈고 밤에는 칵테일 바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고 호텔에 가기 전 커피 하우스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여기저기 호텔이나 카페에서 밥을 먹었고 교토국립미술관과 산쥬산겐도를 들렀다. 나는 여행 내내 하고 싶은 말을 찾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아직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고 나는 여행의 기록을 정리한다. 

이번 여행기는 <낮>과 <밤> 두 개로 정리한다. 두 가지의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를 거의 완성하고 보니 어쩌면 여행의 기록을 정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핑계이고 나는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진 건지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우리에게 혹은 내가 당신에게 할수 있는 말은 제한되어 있고 나는 힘들게 힘들게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한 마디만을 여기에 쓴다.

이번 여행에도 음악을 많이 듣진 않았다. 교토는 여러분의 생각보다 조용하다. 가게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지 않고 아무 것도 듣지 않는 편이 많은 것을 들을 수 있다. 여행 중 월요일에는 종일 비가 내렸다. 이끼의 정원 위에 비가 내렸다. 당신은 어떤 소리가 날지 상상 할 수 있을까? 


가장 많이 들은 것은 Sonder의 Too fast
https://youtu.be/zZmPZDySFMI

그리고 Kamasi Washington 의 harmony of difference 앨범이다.
https://youtu.be/rtW1S5EbHgU


괜찮으면 이 글을 듣는 동안 이 곡들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 커피

커피를 좋아하십니까? 저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지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건 안하려고 드는 속물 근성 때문에 믹스 커피를 거부하고 살아온 기나긴 삶. 그 후 시애틀의 카페 체인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믹스가 아닌 커피가 당연해진 것도 20년이 다 되어 가건만. 
좋아하는 커피라면 몇 개 정도는 항상 댈 수 있지만, 커피라면 글쎄요 싶다. 콩의 차이와 배전의 차이를 아직도 모르겠다. 주는대로 마십니다. 
교토의 커피를 이야기할 때면 보통 8,90년대의 소위 서드 웨이브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콩을 쓰더라도 균일한 향과 맛을 내는 추출방식이 대세였던 시대에서 산지와 추출방법을 다양하게 하려고 했던 시도 말이다. 지금에야 당연하게 생각되던 콩 산지에 대한 애호가 대중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공급망을 통일함으로서 균일한 커피 맛을 만들려고 했던 대규모 커피 체인점이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던 지점과 일치한다. 거꾸로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산지"를 중요시하는 점이 교토인의 마음에 든걸까? 아니면 예술의 영역에 가버려서 귀찮게 변해버린 차노유(다도)에 질린 걸까. 가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만 교토의 번화가에는 골목 골목 마다 커피 하우스가 있다. 물론 교토의 여러 커피 전문점들은 길어야 겨우 100년 (그렇다, 소바 집에 500년을 넘게 하고 당고 집이 400년을 이어가는 동네에서 100년은 고작인 것이다) 정도의 역사를 가졌지만 실은 교토는 일본 내에서도 인구 당 커피 소비 량이 최고인 도시. 일찍 부터 아침을 먹으러 커피 하우스에 가보면 동네 사람일게 분명한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 지역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내는 스타벅스의 컨셉 스토어도 교토에는 두 점포나 있으며, 니넨자카의 다다미 방 형식의 스타벅스는 한국에서도 기사화가 될 정도로 이슈가 되었다. 해당 사실로만 보면 그냥 스타벅스가 노력하는구나 정도겠겠지만 교토 인들의 커피 사랑을 생각하면 그래 이 동네는 그럴만 하다 하는 생각이 든다.
교토의 커피는 조금 특이하다. 배전은 지독하리만큼 진하게 하지만 추출은 맑다. 마시는 순간 차를 마시고 있는건가 하는 착각이 든다. 내가 잘못 주문한 건가 하고 커피를 내려놓고는 맛을 느끼려고 눈을 감아본다. 기름지지 않다. 향은 훅하고 들어오는 듯 하지만 결코 진하지 않다. 그래 나는 착각하지 않았어 내가 마시는 건 차야 커피가 아니라고. 나는 안심하며 잔을 다시 들고 조금 더 마셔본다. 아 하지만 커피이다. 카페인이 올라오지도 않고 입안에는 쓴맛이 아주 얇게 남다가 날아가버린다. 고소함은 없다.
교토의 오리지널이라고 불릴만한 커피라면 역시 이노다 커피인데 커피에 밀크와 설탕을 넣어주는, 일본에서라면 특이한 커피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응당 진해야할 이노다 커피 조차도 맛이 느슨하다. 이걸 싫어해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에 극단적으로 가까우면서 결코 차의 맛은 아니며 성의가 없는 맛 또한 아니라니.
몇개의 커피 하우스에 들러서 커피를 마셨다. 의자는 딱딱하고 서비스는 과한 곳 하나 없이 딱 맞아 떨어진다. 팔짱을 끼고 괜찮은 문장이 떠오르기를 기다힌다. 교토에 와서 콜드브루 같은 걸 시킬리가 없다. 커피가 나오는데는 항상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커피가 나와도 금방 마시진 않는다 괜찮은 문장이 떠오르면 그걸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매일 아침 일찍 교토의 커피를 마신다. 좋아하건 싫어하건 교토를 시작하게 하는 것은 커피이다.


- 강변
쇼와 39년 7월 10일 일본법률 167호 하천법에 의거하여 하천은 원류에서 하구 혹은 합류 지점까지 동일한 명칭으로 통일되게 되었다. 가모가와는 비와호에서 부터 흘러나오는 “요도가와”의 지류로 요도가와는 지역에 따라 세타가와, 우지가와 등으로 이름을 바꿔 바다로 흘러가게 된다. 고도 교토를 관통하며 흐르는 강 답게 많은 문학 작품에 등장하며 때로는 그냥 “동하(동쪽의 하천)”이라고 불린 적도 있는 듯 하다.
한국인이라면 아무래도 동서를 관통하는 하천에 익숙하기 때문에 어째서 이런 곳에? 하며 방향을 착각하기 딱 좋은 북남 방향의 하천이다. 거대한 분지인 교토를 오사카와 잇는 수운으로 오랫동안 이용되어 왔으며 의외로 풍수지리적으로는 그닥 좋지 않은 위치라고 해서 후세에 말이 있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으나, 누가 신경을 쓰겠는가 이미 교토는 천년 동안의 수도였고 그 동안 험한 일도 좋은 일도 수도 없이 많았는데. 
가모가와에 오게 되면 놀랄만한 것은 수서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대도시를 관통하는 강 치고는 깨끗하게 관리 되어 있어서 특히 새들이 많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는 점 많은 사람들이 매일 가모가와 강변을 산책하거나 운동을 하고 있고 밤이 되면 산조와 시조 사이의 번화가를 중심으로 “가와도코”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가와도코는 나무로 된 바닥을 강변에 설치하여 음식점이나 술집을 강변에서 영업할 수 있게 한 장소인데, 밤이 되면 가와도코에서 설치한 노란 색 등롱들이 아름답게 빛난다. 결코 밤의 어둠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명을 설치해두었다. 
이런 가와도코를 제외하고도 강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밤의 강을 감상하는데 일본인들이 그들 사이의 심리적인 거리를 자조적으로 “가모가와 등간격의 법칙”이라고 일컬으며 이런 무리들 사이는 자동적으로 등간격으로 배치된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데 과연, 딱히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 없이 다들 적당한 간격을 두고 강을 바라보고 있다.


- 숨

아마노산 콘고지의 목조 대일여래상은 항삼세명왕, 부동명왕과 같이 한 조로 취급되고 있지만 <국보>를 주제로 한 이번 교토 국립박물관의 전시에는 대일여래와 부동명왕만이 전시되었다. 
실상, 불상 미술은 간다라 미술에 의해서 기초적인 기술은 모두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신성한 인간, 혹은 신으로서의 불상을 표현하는 방법 자체는 끊임없이 발전과 쇠퇴를 거듭해왔다. 신상이 상당한 과장, 데포르메를 가진 다는 것은 상식이다. 보통 거대한 인체의 형태를 하는 신상은 거대할 수록 그 모습을 한 눈에 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작가는 신상의 머리를 상대적으로 크게 설계하고 참배자가 바닥에서 “우러러”볼 때에 자연스러운 위엄을 갖도록 한다.
태양의 화신이자 우주 제공의 조화를 상징하는 대일여래, 그리고 그 대일여래의 뜻을 받아 일체의 장애를 제거하는 그의 분노를 나타내는 이 부동명왕.
이 두 상도 동일한 강조와 불균형을 통한 조화를 통해서 만들어졌는데 기본적으로 실제 인체의 몇배나 되는 형태를 한 이 좌상들은 조형미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물론 우주가 혼돈 속에서 태장의 질서 속에 수태되고 완성되는 모습을 그리긴 하나, 이 조상의 기본 목적은 장엄함과 숭고함에의 표현이다. 아름답지 않아도 좋다. 설령 그것이 공포라도 좋다. 이걸 보는 자들이 이 앞에 엎드리고 신의 세계를 편린이나마 맛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종교 철학의 구현이다.
부동명왕. 자리에 앉아 항마의 검과 금강삭을 지닌 채 자신의 앞에 선 참배자를 휘둥그레 쳐다보는 이 명왕은 정면이 아닌 아랫쪽에서 볼 때 솟아오른 어깨와 부푼 흉곽 때문에 자연스럽게 명왕의 동작 - 숨을 들이키는 호흡과 오른 쪽의 칼을 들고 휘두르려는 준비 자세-을 떠올리게 된다. 명왕의 정면에 있는 이상 그의 시야 밖을 벗어날 수 없다. 항마의 검은 당신을 향하며 금강삭이 겨누고 있는 상대는 당신이 된다. 신상이 숨을 다 들이키는 순간 동작은 시작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다. 아무리 정교하다고 하여도 목조로 만든 신상이 움직일리가 없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이 숨을 들이쉬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일여래. 원래는 가운데에 놓여있어야 할 이 금색의 조상은 부동명왕의 상과는 반대이다. 그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지혜의 수인인 지권인을 한 대일여래는 황금 빛으로 빛나며 눈을 반쯤 감았다. 그의 숨은 고요하며 들이키는 숨이 아니라 들이내쉬는 숨을 암시한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당신을 벗어난 모든 세계이며 그게 비추는 것은 당신을 포함한 모든 세계이다. 
내쉬는 대일여래와 들이쉬는 부동명왕. 세계는 불타의 한 호흡 위에 놓인다.


- 나무
서기 594년 건립된 오하라의 잣코인에는 일본의 유명한 “헤이케이이야기”에도 나오는 소나무가 있다. 그 구절은 대략 1186년의 봄, 고시라카와 법왕이 오하라에 행차하며 헤이케 일족의 명복을 빌고 있던 겐레이몬 도쿠코를 방문하는 장면이다. 
나카시마의 소나무에 기대어...애달프게 너울거리는 보랏빛 등나무 꽃이여, 라고 시인은 읊는다.
이 유명한 나카시마의 소나무는 2000년에 발생한 본당의 대화재로 큰 피해를 입고 2004년 말라죽고 만다. 
오래된 이야깃 속에서 옛날과 지금을 이어주던 천 년의 세월을 보낸 소나무를, 지금의 우리는 흔적만을 볼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가 아니 어떤 사람들이 이 나무를 너무나 사랑하여 천년을 살게 했으나 그들의 사랑으로 조차 나무의 생명을 더 이어지게 하는 것은 어려웠구나. 



- 창
어두운 방안에 빛이 들어오고 손 때가 묻어 까맣게 되고 만 기둥들, 꺼끌꺼끌한 다다미. 사람들이 그 위를 걸어다니는 소리. 이끼 낀 정원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또 하나의 눈꺼풀을 감는다. 
눈꺼풀 뒤에 있는 방, 자리에 앉아 어딘가에 있는 창문을 연다. 볕이 충분히 들어오도록. 
나는 한참을 창 앞에 서서 소리를 듣는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언제인지 모를 녹색의 계절들이 스치면, 이윽고 충분하리만치 볕이 들어온다. 빛을 받은 사물의 윤곽선들은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한다. 색은 더 진해지고 형태는 더 분명해진다. 사물들은 따뜻해져가고, 그 직선과 곡선의 모든 형태를 더 날카롭게 빛내는 것도 잠시. 무너져내린다. 흐트러진다. 
먼 곳 하얀 모래의 별이 모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부드럽게 가라앉는 것 같다. 나는 우리를 지탱하는 것이 그림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색도 윤곽도 모두 그림자가 벌인 행위임을. 빛이 오는 쪽으로 몸을 돌린다. 녹아없어지는 형태들. 밤이 오길 기다린다. 우리는 어두운 곳에서야 말로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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