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떨어지는 걸 보고 있었다.

이마가 하얀 후배가 대리님, 그게 말이죠. 라고 말을 걸었지만 나는 듣고 있지 않았다.



당신,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시기에 이렇게 꽃이 떨어지는 길을 걸으며 당신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던가요? 

분명 없을리가 없는데 저는 좀처럼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아직 많은 것들이 명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많은 것들이 제 머릿속에서 불명확하져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제 여기에 없는 것처럼, 그 때의 제가 여기에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은 흔적이 되었습니다.

목소리나, 어떤 웃는 방식, 농담하는 방법이나 같이 걸음을 걸을 때 손등에 스치는 느낌. 

저는 이런 생생한 것들이 어떻게 흔적이 되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습니다만.



그러나 당신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저는 잊혀져가는 것을 쉬이 놓아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 한 사람 또는 모든 당신들이 제 안에 고스란히 남았는데 제가 어떻게 당신을 놓아버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고집스럽게 하나하나의 이름들과 순간들을 모아서 저라는 인간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이 자신의 고통을 늘리기만 할 뿐인 어리석은 업이라고 한들, 저는 그걸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삶이 그냥 별 볼 일 없는 게임이고, 죽는 것만이 우리에게 예정되어 있는 궁극적인 패배라고 해도.

저는 살아있는 동안 영원히 패배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살아갈수 있습니다.


이 모든 어리석은 행위들이 불멸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변명하고

고집스럽게 당신들을 잊어버리는 것을 패배로 간주하고.

이 어리석은 고통의 행진을 계속하는 한 단 한 순간도 패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어떤 때라도 예전 그대로의 당신을 떠올리고 당신이 그대로의 저를 바라보는 것으로

영원히 고통을 받을 수 있을게 틀림없겠지요.



당신은 저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많은 것을이 아직 명확할 때, 저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의 이름을 잊어버릴 때 까지 내내 입을 다물고 기다리기만 하지 않겠습니까.

매번 봄이 오고 갈 때 마다 멀리 퍼져 나가는 파동같은 흔적들을 주워가며 말입니다.


...


대리님, 어디까지 가세요? 이마가 하얀 낯선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사이 꽃은 이미 떨어졌고. 나는 어느새 몇년이나 나이를 먹었다.

아직 시간이 있으면 더 가볼까요? 하고 나는 물었다. 15년 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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