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중의 특징적인 경향 중 하나는, 믿음을 먼저 결정하고 그 믿음에 따라 증거를 찾으려고 하는 행동 방식이다. 대중이 무엇을 믿고 싶든지 간에 그들은 인터넷에서 그 근거를 찾아낼 수 있고, 모두 자신의 주장만이 사실이라고 주장 할 수 있게 되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이런 시대를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이 시대를 예언한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실”을 인식하는 현대인의 현실인식 체제는 이미 오래전에 무너져 내린 듯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내 말이 맞아? 하고 불안하게 질문을 하는 것 뿐이다.

<여행의 핑계>

이것은 2020년 1월의 캄보디아 여행기이다. 모든 문단은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무런 연관이 없다. 나는 정말로 쓰고 싶은 것을 쓰지 못하고 여기에 그 흔적만 남겨둔다.
애초에 이 여행기는 캄보디아의 씨엠립을 거쳐 캄보디아 최북단의 유적인 쁘레아 위히어를 거쳐 육로를 통해 수린, 그리고 태국 북단의 우돈타니 또는 치앙마이로 가는 긴 여정에 대해서 작성될 예정이었다.
다만 씨엠립 일정만 결정한 채로 우돈타니는 너무 심한가 싶어서 마지막 도착지로 치앙마이를 결정하고 나서. 바로 옆 부서의 신입사원 분이 거의 같은 일정으로 치앙마이로 여행을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차마 치앙마이로 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원래 8박 9일의 일정은 4박 6일의 일정으로 바뀌었고 나는 모든 일정을 씨엠립에만 있게 되었다.

<가을은 남자와 힌두교의 계절>

씨엠립에 오려던 건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다. 한 10년 전 쯤 부터 친구들에게 가을만 되면 “가을은 남자와 힌두교의 계절”이라며 앙코르왓에 가자고 꼬셨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 내 계획은 간단했다. 우리 같이 앙코르왓에 가서 사원을 보자 ==> 끝. 그 외에 디테일은 없다. 굳이 앙코르왓이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가을인 이유도 그냥 추석때 심심할까봐...정도의 이유였다. 내가 가고 싶지만 같이 누가 갔으면 좋겠어... 이 정도의 생각으로 여행을 꼬셔봤자 잘 될 리가 없다.

마침 친구들 사이의 리더십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던 나는 가을 여행에 대해 단체 메신져 방에서 언급할 때 마다 “네가 계획 다 짜면 휴가 봐서 같이 가든가 갈게” “응 그럼 나도 너 계획 봐서” “응 그럼 나도” 정도의 리액션 밖에 못 받았고 매년 그게 되풀이 되었다. 10년 동안 앙코르왓은 꿈도 꾸지 못한 채로 계획만 어딘가 폴더에 보관 된 채로 시간만 가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내 여행은 변덕이 전부이다.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는데엔 많은 것이 필요 없다. 녹색의 습지를 가로지르는 기차나 수면 위에 솟아오른 앙상한 나무가지의 이미지 같은 것 하나면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는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는 캄보디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없었다. 도착을 프놈펜이 아니라 씨엠립 공항으로 해야하는 것도 몰랐으니까.

<심야의 도착>

천에서 씨엠립으로 가는 비행기는 심야에 있다. 대신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보다도, 프놈펜으로 가는 비행기보다도 훨씬 싸다. 비행기 안에는 단체 여행객들이 가득하다. 예전같지 않다고 했는데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 걸까. 비행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도착비자를 받기 위해 달려간다. 나는 사전에 인터넷에서 비자를 받아두었다. 캄보디아의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저렇게 링크를 타고 가면 받을 수 있는데, 구글로 검색하다보면 업자에게 연결되어 아주 비싼 값에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이제 우리 현대인에게 중요한 것은 구글로 검색을 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공항을 나오니 완전히 까만 밤이었다. 심야의 비행기를 타기 위해 리조트에 차를 부탁해두었다. 사륜구동의 튼튼하고 승차감이 안 좋은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꼭 저승을 빠져나가는 길처럼 길은 까맣고 숲에는 아무 움직임도 없다. 군데 군데 전구를 켜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나라의 모르는 숲들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무서웠다.

도착한 리조트는 더욱 무서웠다. 사람이 아무도 없고 마지막 체크인인 나를 기다려주기 위해 한 명의 당번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골길 (몰랐던 일이지만 씨엠립에는 포장된 도로가 많지 않았다) 주변의 리조트인 이 곳은, 나무와 작은 연못과 유수풀이 있는 28동 정도의 작은 마을 같은 곳이다. 새벽 1시에 가까운 시간이긴 했지만 짐을 들어주겠다는 걸 거절하고 랏지로 들어가며 너무 조용한 나머지 나 말고 손님이 있기는 한 걸까 하고 생각했다. 겁을 먹은 나는 문을 잠그고 캐리어로 문을 막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 위에는 “관대함은 좋은 것만이 아닙니다”라고 써있는 팜플렛이 놓여있었다. 일종의 동물들이 나오는 우화였는데, 말하자면 택시기사들과 호텔직원 등 당신이 마주치는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팁을 마구 주지 말라는 경고였던 것 같다. 나는 더욱 기분이 이상해졌다.

<첫째 날의 클라이막스는 고양이에게 밥을 준 것>

침에 본 리조트는 밤에 볼 때 보다 훨씬 좋은 곳이었다. 조식 시간에 맞춰서 나와 과일과 빵을 먹었다. 거짓말이다 과일과 빵과 계란 후라이와 캄보디아식 쇠고기 국수와 버터를 먹었다 태국 음식에 비하면 캄보디아 음식은 별로라던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다. 여기가 태국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라임을 만진 손에서 좋은 냄새가 나서 하루 종일 이 냄새가 나길 바랐다.

리조트 앞에서 하루 종일 같이 돌아다닐 뚝뚝 기사를 소개 받고 - 꼭 태국 영화에 악당으로 나올 것 같이 생긴 사람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둘째 날 나를 내버려두고 어딘가로 사라졌고 덕분에 둘째 날 여행을 완전히 망쳐놓았다 - 매표소로 갔다. 앙코르왓 유적군의 매표소에서 끊을 수 있는 통합 권은 2020년부터 거의 모든 유적군에 적용이 되도록 바뀌었는데. 전에는 적용이 되지 않던 뱅 밀리아와 반테이 스레이도 통합 권으로 입장이 가능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 매표소는 5시부터 문을 여는데 그것은 아침에 표를 끊고 일찍 앙코르왓의 해돋이를 보러 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표의 앞에는 표를 산 사람의 얼굴과 일련번호가 있고 뒤에는 1부터 31일까지의 숫자가 찍혀 있어서 유적군에 입장을 할 때 펀처로 표시를 한다. 그러니까 13이라는 숫자에 표시를 하면 1월 13일에 입장을 했다는 표시인 것이다. 일일 당의 입장료를 나눠서 계산하보면 당연히 하루 입장권 보단 삼일 입장권이 삼일 입장권 보단 칠일 입장권이 싸다. 길 곳곳에 체크포인트가 있어서 공무원들(아마도 공무원들)이 서서 표를 계속해서 검사한다.

생각하기에 좀 이름 시간인 7시쯤에 유적군으로 들어갔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유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앙코르왓 유적군의 남문에는 사람들이 잠시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데 내가 탄 툭툭 기사는 멈춰달라고 하기 전에 엄청난 속도로 남문을 지나쳐가버렸다. 아 툭툭 기사분들 대단하네 하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나중에 와서 찍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잘못 생각한 것이 하나 나중에 그럴 기회 따윈 없었고 둘째 이 기사 분만 이렇게 툭툭을 빨리 모는거였다. 어떤 기사도 이 정도로 빠르게 툭툭을 몰지 않았고 이 기사가 모는 툭툭은 어떤 툭툭도 추월하지 못했다. 무의미한 장점이랄까...

나는 이 여행기에는 사원에 대해서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한다. 사원에 대한 이야기만 따로 떼어내서 다른 글을 썼기 때문이다. 이 여행기와 사원에 대한 글은 원래 하나의 글이었고 나는 가느다라한 접합 부분만을 이 여행기에 남기고 글을 통채로 떼어냈다. 한달이 넘게 이 여행기를 끝내지 못하다 보니 왜 그런 짓을 했지 하는 후회를 이백번째 하고 있지만 뭐 어떤가. 씨엠립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사원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한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할 이야기를 내가 굳이 또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나는 그에 대해서 한 편의 글을 썼는데 말이다.

하여간 앙코르왓 유적군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건기에, 사람들이 오기 좋지 않은 때인데도 그렇다. 호텔 예약 사이트를 찾아보니 예약률이 30%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 100%면 어떻게 되는거지 하는 생각과 도대체 왜 30%밖에 안되는 건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앙코르왓 유적군의 유적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역사를 잃어버리고만 도시답게, 우리가 이 도시에 대해서 알고있는 것은 너무 부족하고. 하나 같이 아름다운 유적들이지만 오랫동안 똑같은 유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왜 이걸 이렇게까지 보고 있어야 하는지 의심이 든다. 먼지로 가득찬 길을 지나서 아름다운 사원 앞에 도착했더니 단체 관광객들이 우글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는 것도 짜치는 이유이다. 흙길이 아니면 돌 바닥이기 때문에 발목과 무릎이 아플 정도인데 이렇게 하루 종일 유적을 보는 것 말고는 뭐가 있을까 고민이 든다. 열심히 보지 않으면 아쉬운데 열심히 보고 있으면 왜 이걸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신기한 곳이다.
믿어달라. 나는 한국의 30대 회사원이다. 그것도 해외영업에서 일하고 있다 그것은 인류 1%수준의 실력으로 허황되고 말도 안되는 말을 숫자 까지 포함해가며 쓸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가상의 친구는 없지만 가상의 매출은 있는(그것도 엄청 많이) 있는 사나이이다. 하지만 나는 진정성을 갖고 짜쳤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아름다운 장소는 많았다. 앙코르왓의 사원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다거나 창가에서 어색한 포즈를 취하는 것이랑은 다른 요소들이다. 세월이 켜켜히 쌓여 만들어놓은 그 모든 것들과 이제는 잃어버린 영광들, 그리고 신에게 서원했던 그 마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공간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놓고 말하자면 아무리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해도 애초에 사람이 수만명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예술적인 감동을 느끼는 것은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의 영역이다. 나같은 아마추어는 짜낼 수 있는게 별로 없어서 그냥 짜치는 걸 짜친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첫째 날에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낸 것은 스라스랑이었다. 그냥 아무 것도 없는 저수지이고 그 주변에는 캄보디아의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고 있고 정말 많은 개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 평화로운 곳이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와서야 나는 내가 무엇을 보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리 할 수가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는 프레룹에 올라 한 시간을 넘게 해가 지는 걸 기다렸다. 생각해보면 앙코르와트에 해가 지는 것보다 프레룹에 석양이 닿는 것을 보는 것이, 그리고 한 시간이 넘게 해가 지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리조트로 돌아오고서, 나는 별다른 의욕이 없어서 리조트에서 저녁을 먹었다 새끼 고양이 몇마리가 내 발치에 와서 밥을 얻어먹었다. 농담 소재로 써먹으려고 북한 음식점에 가보려고 했지만 두 군데 다 닫았다고 한다. 맛없고 비싼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야 하고 생각은 했지만 한편 억울한 감이 있었다. 이래서야 여행에 왔다고 할 수 있나. 여행은 돌발적이고 웃기고 진짜 아무 짓이나 해야 여행이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여행에 웃기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친구들은 너무 실망했지만 나도 내가 이렇게 온건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못했다. 방에서 프런트에 전화를 거니 전화가 고장나 있었다. 맙소사 업자를 불렀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프런트 사람의 표정을 보니 분명 며칠 정도 고장난 게 아닌 것 같았다.

<둘째 날의 클라이막스는 너무 빨리 왔고>

앙코르왓에서 보는 일출은 어쨌거나 씨엠립여행의 클라이막스이다. 현지 사람들의 충고를 받아서 아침 5시쯤 나왔지만 후에 알게 된 것은 앙코르왓의 두 개의 연못 중 하나가 공사 중이어서 어차피 모두가 우글우글 한 곳에 모여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 딱히 일찍 가지 않아도 뷰는 비슷했다는 것이다.
딱 콘서트를 끝나고 택시를 잡아 집에 가려고 하는 사람의 수만큼 사람들이 모여서 앙코르왓의 앞 뜰을 향해간다. 다들 자기네 모국어로 너무 어두워 앞이 안 보여 하고 투덜거린다. 앙코르왓만은 다른 유적군보다 입장 시간이 빠르다. 해돋이를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앙코르왓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 쪽 연못의 왼쪽 물가에 자리를 잡았다. 풀숲이라 가렵고 축축했다. 한시간을 넘게 기다리며 사원의 그림자와 숲의 윤곽 위로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보았다. 해가 뜬 직후 사원에 입장 할 수 있는데 가이드 북에 “해가 뜬 이후엔 앙코르왓엔 사람이 적으니 그 때 보세요”라고 말한게 생각나서 앙코르왓을 관람했다. 이게 사람이 없는거라고? 꼭 토요일의 신세계 경기점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사람이 없는거였다. 앙코르왓 꼭대기 층의 도서관 건물 구석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그곳만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한 때 인드라의 신상이었던 것에 옷을 입히고 절을 하고 있다. 서양인들이 나타나 이것이 붓다의 상이냐고 나에게 묻는다. 나는 쓰고 있던 양키즈 모자를 보여주며 미안해 나 퀸즈에서 왔어. 하고 악수를 청하고 가버린다. 속은 것 같진 않지만...

그리고 앞에서 썼지만 앙코르왓을 나와보니 나를 데리고 다음 지역으로 갈 뚝뚝기사가 사라졌다. 한시간 동안 그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기분이 나빠질대로 나빠진 나에게 다른 뚝뚝기사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리조트에서 관대함은 좋은 것만이 아니다 이런 우화를 갖다놓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이 넘게 본인 기사를 찾고 있던 내가 멍청해보였던 걸까. 타프롬 사원에 갔다가 호텔로 돌아가는데 20불을 부르는 기사를 보고 화가 나서, 여행 중에는 절대로 튀어나오지 않는 내면의 회사원이 튀어나왔다. 두 명을 경쟁시켜서 10불로 깎고 타프롬에 갔다가 호텔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10불도 아까웠지만 팁으로 2불을 더 챙겨주고 없어진 기사를 찾아보았다. 그의 동료들 말로는 그가 앙코르왓의 주차장에 있다고 한다. 나는 기가 차서 말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일단 앙코르왓까지 데리고 간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동료들에게 10불을 건네주고는 전해줘, 라고 말하고 숙소로 와버렸다. 가난한 사람의 수고비를 빼앗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에게 전해졌는지는 내 알바 아니었다.

오후에는 좀 쉬다가 다시 사원을 보러 가거나 박물관에 갈 생각이었으나 툭툭 기사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 (참고로 다음날 다음 리조트로 옮길 때 리조트 직원과 교섭할 때는 6불에 승락한 기사가 도착하자 짐을 붙잡고는 7불을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이 동네의 툭툭 기사들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풀사이드에 누워 책을 읽었다.

캄보디아의 공기는 탁했다. 우리가 기대하던 파란 하늘과는 전혀 달랐다. 이게 특별히 공기가 안 좋은 시기야? 라고 물어보니 건기에는 항상 이렇다고 한다. 나만큼이나 하얀 서양인들이 풀사이드에 누워 빈둥대고 있었다 평생 배고파본적이 있기나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긴 나도 언제 배고프기나 했을까. 나는 그 사람들만큼이나 피둥하고 하얀 내 몸이 부끄러워져서 금세 방으로 들어와 저녁을 기다렸다. 레스토랑에는 또 새끼 고양이들이 있을거고 그런 생각을 하니 다른 곳에서 밥을 먹고 싶지가 않았다. 바 근처에서는 유럽억양의 영어를 쓰는 연주자들이 재즈를 연주하고 있었다. 1시간쯤 그걸 듣다가 악수를 하고-악수를 하며 팁을 주고- 돌아와 또 일찍 잠들었다.

다음 날에는 호텔에서 소개한 택시 기사와 좀 먼 사원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잠이 들며 원래 사람은 하루 중 몇번씩 배가 고파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몇번이나 배가 고픈 걸까. 우리는 누구도 새끼 고양이만큼도 배가 고프지 않다.

<셋째 날 실은 넷째 날>

행기에 리조트 얘길 적는 것은 바보 같다. 그런 것 치고 나는 여행을 오기 전부터 마지막 하루를 묵기로 한 리조트를 엄청나게 기대했는데 예산으로 따져도 비행기 값 + 나머지 3박의 숙박비가 마지막 일박의 숙박비와 비슷할 정도였다. 정문은 묵직한 나무문이었다. 툭툭을 타고 나무 문을 열자 색조가 전혀 다른 녹색이 가득한 인공의 낙원이 거기에 있었다. 이것은 단 한치의 거짓말도 없는 표현이다 인공의 낙원.

캄보디아의 농촌을 컨셉으로 만들어진 이 곳에는 잔디로 만들어진 녹지를 만드는 대신 논과 논길을 만들어두었다. 오래된 오두막을 개조한 술집에는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두었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술을 마시며 노래를 듣고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린다. 밤이 되면 개구리들이 울었고 사람이 없는 풀사이드에 나는 옷을 벗고 헤엄을 쳤다. 나는 마지막 날 예약해 둔 톤레압 호수의 투어를 취소하고 출국하는 시간까지 이 리조트에 머물러 있기로 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다시 글을 쓰고. 그렇게 씨엠립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 바로 전에 쓴 사원에 대한 글은 대부분 리조트에서 완성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들 말이다.

“멀리 사원의 후문에는 지뢰 피해자인 군인들이 캄보디아의 전통 음악을 연주하면서, 같은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을 모으고 있다. 사원 어디에 있든지 그 음악 소리가 들리고, 나는 희미하게 음악이 들리는 지점- 사원의 끄트머리, 숲의 가장자리-까지 걸어와 앉았다.”

어쩌면 내가 씨엠립에 다시 온다면 이 리조트에서 글을 쓰기 위해서 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꼭 이 곳을 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돌아가는 길은 처음 올 때 처럼 완전히 까만 밤이었다. 심야의 비행기를 타기 위해 리조트에 차를 부탁해두었다. 아마 내가 부탁하지 않았어도 이 사람들은 차를 부탁해두었을 것이다. 꼭 저승을 빠져나가는 길처럼 길은 까맣고 숲에는 아무 움직임도 없다. 군데 군데 전구를 켜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창 밖을 바라본다. 나는 숲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려다 숲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문다.

<옷을 입은 우리의 신에게 기도하는 법>

비행기는 한 시간을 늦고 두 시간을 늦는다. 나는 밤의 공항에 구석진 자리에서 내가 왜 이 여행을 오려고 마음 먹었는지 깨닫는다. 마침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것 같은 키가 크고 마른 아이 하나가 빨간 마그네틱 하나를 사려고 주춤거리는 모습을 본다. 아이는 동그란 이마를 문지르더니 기념품을 사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이 서있는 줄로 돌아간다. 중국의 청도행을 알리는 사이니지가 보딩을 알린다.
나는 비행기가 떠난 후 아이가 사지 않은 마그네틱을 사서 가방에 넣는다.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그 얼굴을 잊어버리겠지만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그 아이에게 선물이라도 할 것 처럼 말이다.

무슨 이유로 지어졌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이 앙코르왓의 유적군은 무슨 이유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도시에 살던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텐데 사람들은 불경하게 사원의 창에 몰려들어 어디 쇼핑몰의 메인 화면에 쓸 것 같은 사진을 찍고 있다. 신의 상은 언제부터인가 부처의 상이 되었고 불경한 행위는 그 어떤 행위보다 더 숭고하게 이해된다.

나는 여행에서 믿음과 배고픔에 대해서 생각했다. 레스토랑의 고양이들과 숲의 윤곽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생각했다. 나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정말로 진실인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람의 수만큼 진실이 있다는 말은 불합리하다. 일어난 일은 단 하나 뿐이고 역사가 여럿이며 그 역사를 읽는 우리들 또한 다수일 뿐이다. 믿음. 나는 믿음에 대해서 말하려다 그만둔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 그리고 믿어야 하는 것들 말이다.

언제나처럼 나는 늦게 이해하고 나중에서야 말한다. 여행을 가고 또 돌아올 때 마다 내가 명확한 이유로 여행을 온 것이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유가 있어서 여행을 떠나는 것과 우리가 여행을 다녀온 후 무언가를 깨닫는 것. 둘 다 사실 여행과는 하나도 상관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변명을 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천 오백년 전의 사원 위로 해가 뜨고 그리고 지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붓다의 옷을 입은 인드라 상을 떠올린다. 아니 비슈누의 상이었던가.

내가 그 모습을 잊어버리기 전에 나의 신에게 기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비행기를 탄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다면 아무리 빠른 속도라고 해도 기도는 어디에라도 전해질 것이다. 나는 해야할 기도와 해야만 하는 기도 양 쪽을 모두 떠올린다.
그 기도는 이것이다.

“주여 내가 매일 같이 주로부터 멀어지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나를 사랑하시나이까.”


20년 2월의 글이다.

이 글은 2020년 1월 씨엠립 여행기의 일부였던 글이다. 너무 내용이 길고 사변적이라 원래의 여행기에서 분리한다. 하지만 이 글이야 말로 내가 씨엠립 여행 동안에 정말로 쓰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글의 배경이 되는 곳은 사원 유적인 반테이 삼레와 반테이 스레이이다.

“어떤 것이나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능력있는 것이 있거든, 그것은 내 광명의 단편으로 된 것이다/그러나 아르쥬나야, 이 많은 것을 네가 다 알아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는 이 온 누리를 내 한 조각으로 뒤덮어 지지 하고 있느니라” (바가바드기타 10장 41-42, 함석헌 역)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이단은 “현재”만이 우리의 유일한 현실이라는 주장이다.
모든 종류의 종교에서 현실은 이상세계의 불완전한 반영이며 믿는 자들이 해야할 최우선의 과제는 죄를 반성하든, 인신공양을 하든, 아니면 성스러운 전쟁을 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든 최선을 다해 이상 사회를 현실 세계에 강림시키는 것이다. 이상세계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현실세계에서 모든 것은 투쟁이며 영광은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와 희생에서만 비롯한다. 번개와 비를 믿던 원시 종교에서부터 19세기에 발생한 공산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종교는 현실과 이상과의 갈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장미는 붉고 제비꽃은 푸르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 인가. 종교와 사회가 소통하는 기본 구조에 대한 나의 주장은 기껏해야 아마추어의 논변일 뿐이다.

그럼 무언가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로 바꿔보자. 모든 종교가 사회와 갈등하는 이유는 종교가 가진 이상사회가 현실에서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종교가 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한 사회를 완벽하게 지배 하에 둔다고 해도 그것에 만족하는 일은 없이 항상 더 많은 것을 바랐다. 그들은 믿는 자들에게 천년의 왕국을 약속했고 그 믿음을 세계의 끝까지 전하길 바랐다. 세계의 끝까지 도달하면 어떻게 되냐고? 그런 경우 믿는자들은 세계가 멸망하고도 계속해서 자신들의 신이 세계를 보살피고 그들 모두를 다음 세상으로 데려 가길 바랐다.

믿음은 항상 하나를 이루면 다른 하나를 바랐다. 이러한 끊임없는 꿈틀거림은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속성일까 아니면 이익집단이 갖는 결코 버릴 수 없는 확장의 욕망일까. 어쩌면 우리는 이런 것들이 종교에서 바라는 이상에 바로 그러한 속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결국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은 믿음 안에서는 불완전한 세계일 뿐이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 두고 우리가 있는 현실의 세계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나는 4박 5일의 씨엠립 여행을 끝내고 밤 늦게 공항에 도착했다. 운전기사에게 악수를 하고 짐을 챙겨 공항에 들어갔다. 공항 앞에서는 모여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무 명이 조금 안 되었을까, 모두 20대로 보이는 밝고 명랑해보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기도가 끝나자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그들의 단체 사진을 찍어주었다. 며칠이나 있었는데 저 사람들은 얼굴이 타지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나도 사나흘 있는 걸로는 얼굴이 타지도 않는다. 고소를 지으며 그 사람들을 더 이상 쳐다보지 않고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떠들썩하게, 아니 떠들썩 하다는 표현은 이상하다 결코 크게 떠들지 않고 함께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캐리어를 끌고 표를 발행하러 떠났다. 나는 우르르 몰려가는 그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 천천히 카운터로 갔지만 그들은 그대로 줄 바깥에 서서 서로의 여권을 챙기고 있었다. 나는 눈치를 보다 아무래도 티케팅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 사람들을 가로질러 티케팅을 하고 역시나 이 사람들 나랑 같은 비행기인가 하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카운터에 서자 무슨 눈치라도 보고 있던 것 처럼 내 뒤로 그 사람들이 줄을 섰다. 평온하고 밝고 명랑해보이는 얼굴이었다. 아까 시끄럽게 느껴졌던 것은 이 사람들의 표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를 탈 때 까지 그 사람들은 조금씩 늦게 내 동선을 따라 왔다. 나는 비행기 시간까지 3시간이나 기다려야 했고 책을 읽다가 그 사람들을 보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 공항의 밖에 있을 이 곳의 밤에 대해서 생각한다.

씨엠립의 밤은 새까맣다. 길 위에 비추는 헤드라이트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때때로 길 주변에 누군가가 서서 전구로 불을 밝히고 무언가를 팔고 있다. 아무리 자세히 보려고 노력해도 그 사람들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낮에도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햇볕은 너무 강하고 먼지는 뽀얗게 피어올라, 지나가는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커다란 유적군인 이 곳은 어떤 유적을 갈 때도 삼륜차를 타고 움직여야한다. 한 두곳 쯤이야 괜찮을지 몰라도 금세 딱딱한 바닥과 뜨거운 해 때문에 지치게 된다.

앙코르왓 사원에서 20분이 넘게 먼지가 가득한 길을 한참이나 가면 반테이 삼레가 나온다.
길을 따라 마을이 있고 사람들이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나간다. 교복을 입은 아이가 다른 아이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 뚝뚝의 뒷자리에 혼자 앉아있는 나를 흘낏 쳐다본다. 해가 내리 쬐어서인지 얼굴을 찡그리고 있지만 살짝 날 보며 웃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면 처음부터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내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투어 첫째날 오후의 첫 일정으로 가게 되었지만, 반테이 삼레는 예정에 없던 곳이었다. 오전 투어를 맞추고 혼자 점심을 먹으며 사람에 지쳐서 지도를 보다가 사람이 없을 법한 - 스몰 투어 코스에서도 그랜드 투어 코스에서도 조금 먼 - 사원을 하나 고른 곳이 반테이 삼례였다. 일본어가 적힌 헬멧을 쓰고 먼지가 많은 길을 뛰느라 더러워진 셔츠를 입은 뚝뚝 기사는 5불을 더 달라고 했다.

사람이 거의 없는 이 인기 없는 사원은 사람이 한참 많을 오후 1시에 갔는데도 나와 프랑스인 부부 말고는 사람이 없었다. 하긴 씨엠립의 이 사원군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 활기차고 신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뚝뚝을 내려 사원으로 가는 길은 숲 안으로 걸어들어가게 되어 있고, 그 중간 쯤 지뢰로 신체의 일부를 잃은 군인들이 캄보디아의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사원의 외곽은 붉지만, 내부는 앙코르 왓처럼 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사원의 앞에 서면 햇볕이 너무나 강해 새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고푸라(사원의 탑 형태의 출입문, 보통 화려한 부조로 장식되어있다)에는 신들이 어떻게 세상을 만들었고 이 세계가 어떻게 완성되었는지가 새겨져 있었다. 비슈누는 양 다리로 악마의 목덜미를 틀어 죽이고. 시바 신은 우주의 중심에서 춤을 춘다. 작은 사람들이 춤을 추는 신 주변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혹자는 시바 신이 춤을 추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멸망할 때라고 했다. 자동차 도로와 이어져 있는 북쪽 입구는 원래의 입구가 아니다. 벽을 돌아 동쪽 입구로 걸어 들어가면 원래는 물이 가득차 있었을 해자가 보이고 길을 건너면 내벽. 그리고 전실로 이어진다. 전실은 누가 여기서 무엇을 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작고 좁다. 뭘 위해 만들어졌는지 뭘 할 수 나 있었는가싶다. 올 때 분명 같이 있었던 노부부는 큰 흥미가 없는지 화려한 고푸라만을 구경하고 중앙성소에서 사진을 찍더니 금세 어디론가 가버린다.

중앙 성소는 아름답고 그 안의 신상에는 작은 꽃이 공물로 놓여져 있다. 나는 중앙 성소와 테라스를 이어주는 발 받침대들에 매혹된다.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된 높이로 올려져 있는게 없고 네 방향의 연결 통로 모두 반 이상 끊어져있다. 세월이 지나서 그런 걸까 아니면 복원 도중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던 탓 일까. 나는 중앙 성소로 가는 해자를 넘어 테라스 구석의 그늘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도서관과 내벽 사이의 그늘에서 문 가에 새겨진 부처의 모습과 그 광휘를 베껴 그렸다. 앙코르와트 양식과 바이욘 양식이 섞여있는 이 사원은, 만다파(전실)가 안탈라라(좁은복도)로 이어져 사방에서 중앙 성소를 바라 볼 수 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서 뒤돌아보니 검고 흰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가는게 보였다. 아까 무엇에 쓰일지 모르겠다고 했던 전실의 구석에 누가 몰래 고양이 먹이 그릇을 가져다둔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멀리서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들려 그리던 그림을 덮고 사원을 나섰다.

원래 동쪽에서 이어져 있던 사원의 진입로는 끊어져 있다. 나는 길이 끊어져 있는 곳까지 걸어가보았다. 거기 멀리엔 숲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원으로 다가오는 사악한 자들을 노려봐야 할 사자 상들은 반쯤 부서진 채 놓여있었다. 그 길로는 아무도 오지 않기 때문에 사자들은 안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작은 병아리 한 마리가 소리를 지르며 툭툭으로 달려들었다. 기사는 급하게 핸들을 잠시 꺾었다가 툭툭이 흔들리자 더 이상 방향을 꺾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다. 다행히 병아리는 툭툭 밑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병아리가 뛰어간 쪽을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병아리는 금세 그늘로 도망가버렸다.

투어의 세번째 날 새벽, 뱅밀리아와 반테이 스레이를 가기 위해 일찍 호텔을 나왔다. 호텔에서 소개해준 중고 렉서스의 운전기사는 깨끗한 옷에 콧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뱅 밀리아에서 한 시간을 넘게 시간을 보냈는데도 아직 아침이 끝나지 않았다. 차로 돌아오니 기사가 생수를 하나 주었다. 기사는 반테이 스레이로 가는 길에 이것저것 나에게 말을 걸었다. 고객 서비스라고 생각했던 걸까. 기사는 내가 대답을 느릿하게 하기 시작하자 톤레삽과 캄보디아 그리고 프놈쿨렌에 대해서 설명을 하다 답답했는지. 영어로 말을 하면 “내가 느끼는 걸 잘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나는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원래도 두배는 더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진짜 생각들은 우리 모국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가 입 밖에 낼 수 있는 건 원래의 생각들이 아닌 무너지고 흐트러진 생각들인 거죠.”
기사는 그럴 듯 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어본다. “당신은 한국인이죠? 당신도 교회에 다니나요?” 나는 웃는다. “제 어머니는 교회에 다녀요. 제 할머니는 당신 같은 부디스트죠. 둘은 사이가 엄청 나쁘기도 하고 좋기도 해요. 둘은 나름 균형점이 있는 것 같아요. 서로 말을 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죠.” 운전사는 또 웃는다. “많은 외국인들이 여기에 찾아와요 다들 감탄하고 유적지를 돌아다니지만 때때로 외국인들이 우리의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사람들이 보기엔 멋지고 훌륭한 유적일 뿐이고 유적들이 우리의 종교의 대상이란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특히 한국인들이 그런가요?” 운전사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의 영어는 추상적인 단어보다 물리적인 단어로 이루어져 있어 불교도라기 보다 엔지니어나 지도제작자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나는 그가 하는 이야기를 전부는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반테이 스레이가 있는 숲에 도착한다. 숲을 지나 사원을 보고 다시 오솔길을 걸어 나와 다시 차에 탄다. 한시간 이상은 걸리지 않았다. 기사에게 매점에서 사온 스프라이트를 건네고 나는 환타 오렌지 맛을 마신다. 그리고 이제 그만 호텔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아직도 점심 때도 되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운전사는 계속해서 캄보디아의 사람들과 종교에 대해서, 그리고 외국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때로 지도를 만드는 사람 같은 말투로 때때로는 전혀 맞지 않는 단어를 써가며 나에게 말을 한다. 어떤 시점에서 그는 나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 캄보디아 사람 특유의 겸손한 태도로 - 나를 살짝 돌아본다.

나는 사실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내가 머릿속 가득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반테이 스레이, 도자기처럼 만들어진 아름다운 숲 속의 사원.

나는 내가 방금 본, 붉은 사암의 사원 반테이 스레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모든 사원은 신의 의지의 구현이며, 신의 세계를 이 땅에 이룩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이상향이다. 분명 그 의지는 단단하고 강력했으리라. 과거 이 사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를 생각해보자. 신의 말씀이 그 땅을 정했을 것이고 왕의 의지가 사람들을 모았을 것이다.

그 사원을 만든 사람들을 상상하고 한다. 앙코르왓을 제외하고 모든 사원들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이 사원은 작은 앙코르왓 같은 구조지만 거꾸로 967년에 완성된 상당히 빠른 사원에 속한다. 어쩌면 1100년대에나 완성된 앙코르왓은 이 작은 사원을 본 따서 만들어진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해도 믿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그 이유는 역시 이 사원을 만든 사람들이 누구든 신을 믿은 것 만큼이나 아니 신을 믿은 것보다 더 아름다움을 믿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불경한 생각이 든다.

고푸라(탑형태의 출입문)의 기둥에 연꽃과 불꽃의 부조, 그리고 그 안에 원숭이 신과 턱이 없는 죽음의 신의 얼굴을 새기며. 린텔(상인방)위에 프론톤(박공지붕)을 올리고 또 그 조각들에 신과 악마 그리고 괴물 - 인간사자 나라싱하와 원숭이의 왕과 커다란 새를 탄 브라흐마, 그리고 무엇보다 비슈누와 칼리를 - 새기고나서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왕국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설령 왕의 이름과 우리의 믿음 마저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가 만들어낸 이 아름다움은 세세토록 영원할 것이라고, 그런 삿된 마음을 몰래 품고 신이 자신의 마음을 모르기를 바라며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분명 그의 손 끝과 망치와 그리고 마음을 지켜보던 그의 신은 흡족해 하셨을 것이고, 이 사원을 당신의 것으로 선포 하셨을 것이다.

......

모든 복제품들이 그러듯이 이상향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하고 우리는 약 천년 후의 세계에서 무너진 사원을 본다. 이제는 오직 몇 명의 사람만이 신을 찬양 할 줄 알고. 사원의 신을 믿지 않는 불경한 자들만이 모여들어 사원을 돈다. 이 땅의 모든 사원은 불완전한 세계에 완벽했던 사원들이다. 단지 천년이 지나갔을 뿐이다.

나는 차를 돌려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진다. 차를 돌려 저 사원의 벽 아래 내려다주세요. 해가 질 때 까지 저 곳에 빛이 비치는 것을 보고 싶어요. 아주 오래 전 부터 매일 그래왔던것 처럼 말이에요.

나는 운전사의 말에 제대로 대답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지금 떠오른 생각을 말하기로 한다.
“지금은 믿음을 갖기가 힘든 시대죠, 아직도 사람들은 서로를 증오하고 우리가 경전으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과학적 사실이랑은 거리가 멀어요.”

나는 뜸을 들이고 말을 계속 한다.
“하지만 저는 무엇이든 간에 믿음을 갖는 것이 아직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신을 믿는다는 것은 나 자신 보다 큰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믿고,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을 존중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기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나 말고도 다른 어떤게 있다고 믿는게 중요해요 안 그런가요?”

그리고 나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세상이 이상적인 세계와 다를 수록 우리는 현실을 어둡게 여기죠.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상의 세계가 얼마나 멀리 있든 간에 앞으로 더 나아가려는 모든 의지가 아닐까 싶어요. 그게 옳든 그르든 말이에요.

그리고 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생각한다.
저는 아직도 언젠가 왕국이 내려와 이 세상이 완벽해질거란 걸 믿고 싶어요. 알겠어요? 우리의 현실이 우리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기사는 나의 서툰 외국어를 이해했는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를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 이로다” (시편 137편 1에서 3절)

20년 1월의 글이다.


휴가가 시작하기 , 친구의 차를 얻어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친구는 세계 제일로 막히는 길로 우회전을 했고, 걸어서 7분도 걸리는 거리를 좌회전 신호가 5 바뀌는 동안 느릿하게 지나가야 했다.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처럼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던 친구는 생각이 났다는 듯이너는 집착이 많아라고 말했다. 무슨 소리야 경기도 제일의 쿨가이인데,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네. 하고 내가 투덜거리는 짐짓 들은 친구는 대답은 안하고 뜬금없이이번에 데스크탑 말아...”하고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넘겼다. 이윽고 5번째 좌회전 신호가 되고 차가 좌회전을 하게 되었을 친구는 말했다. “네가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이름도 까먹었을거다.” 친구는 언제나처럼 운전을 지지리도 못해서 몸이 쪽으로 크게 쏠렸다.


<도쿄>, Matoma - Sunday morning


올해 번도 여행을 가지 않았다. 12 23 부터 27 까지의 여행이 첫번째이자 마지막 여행이다. 얘기를 하면 다들 당황하며 어딘가 가지 않았었나?하고 물어본다. 하지만 정말로 나는 동안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 12 19 퇴근하기 직전 자리에서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후배가 보내준 도쿄 소재 미술관의 전시리스트 메모를 보고 미술관의 휴무와 개관 시간만을 확인했다. 그리고 현금을 산더미처럼..거짓말이다 나에게 산더미 같은 현금이 있을리가 없지 어쨌든 현금을 가져갔고, 가져간 속옷과 8년을 넘게 캐리어를 버리고 왔다.


온전하게 혼자서 있었던 5 이었다. 계속 걸어다녔고 생각을 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해서 여행기가 아니라 여행록을 써도 정도가 되었다. 말들이 흘러나오고 흘러나갔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단순히 혼자서 생각하고 걷는 시간이었을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행기는 작은 주제로 개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는다.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을수도 있고 서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여기서 쓰지 않은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책임지지 못할 이야기는 쉽게 하지 말아야지. 여기서 하지 않은 이야기는 안에 고여서 다른 형태로 변하게 것이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에도, 여행기를 쓰는 동안에도 어울리는 음악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소제목 옆에 있는 것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도쿄와 어울리는 음악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도쿄 너무 다양한 이미지를 가진 총체적인 개념이다. 도쿄라는 이름 안에는 이노카시라 공원의 번쩍이는 고요함이 있고 아카사카의 우아한 번잡함이 있으며 신주쿠의 골목마다 짙게 스며든 거리의 냄새도 있다. 내가 도쿄에 대해서 간단하게 있는 것은 도쿄를 사랑한 적이 번도 없다는 뿐이다. 넓은 지역을 모두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르긴 몰라도 도쿄 도지사(18 현재 고이케 유리코씨가 역임 중이다)에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명의 여행객이 있으면 개의 여행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도쿄를 사랑하지 않는 여행객-- 있는 것도 괜찮을 하다. 하물며 도쿄는 인구가 900만명이 넘는다. 하나 쯤이야...그래 괜찮을거다.


했었지. 먹었었지.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했는지를 떠올린다. 스시처럼 일년에 이백번씩 먹는 것들은 사진을 찍지도 않았다. 사진을 보다보면, 기억보다 사진에 의존하는 것이 뭐가 그리 나쁜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다수의 경우 현실보다 기억이 아름다우며, 기억보다 사진이 아름답다.

여행 도중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30분도 가만히 있지 않으려고 해서 가만 앉아 커피를 마신 적도 없다. 밤에는 다케우치 마리야의 Plastic Love 들었지만, 그건 굳이 여기에 필요도 없는 것이다. 도쿄의 호텔방에 혼자 그보다 적합한 음악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위에 적은 도쿄의 지명들은 이번 여행 때는 들르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오뎅이란 뭘까>, Billiy Ocean - Red light spells danger


음식의 원형이란 뭘까. 우리가 먹는 음식들은 원래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노포 설렁탕집에서 면을 넣어주는 이유는 곡물섭취의 비율을 국가에서 강제하던 시절의 흔적이라고 한다. 진짜일까. 

나는 음식은 원래 이런거야, 라든가 이렇게 먹는거야 라든가 하는 얘기를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외국의 음식은 현지의 방식을 존중하면서 먹고 싶다. 나라의 음식은 항상 나라 사람들이 먹는 방법을 제일 알기 때문이다. 참치김밥을 생각해보자, 남한 인구의 80%정도는 참치김밥을 달에 번은 먹고 있으며 12%정도는 하루에 끼를 참치김밥으로 먹고 ... 물론 이건 거짓말이다. 중요한 것은 참치김밥은 맛있는 음식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점이다. 원형과 정통성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한의 많은 사람들이 참치김밥을 먹고 있다보니 전세계적인 규모에서 참치김밥의 발전, 참치김밥 에포크(그런거 없다) 이끌고 있는 것은 남한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형태의 참치김밥은 우리나라에 있을 것이다.


말이 길었지만, 이번 도쿄에서 고민하고 먹어보려고 했던 것은 돈가츠와 덴푸라, 그리고 오뎅이다.

이제와서 덴푸라가 일본식 튀김요리란 것을 헷깔려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오뎅은 헷깔려하는 사람이 많다. 애초에 오뎅은 어묵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어묵은 오뎅에 들어갈수 있지만 반대는 불가능하다. 오뎅은 삶은 요리煮物의 일종이며, 나베요리鍋料理이기도 오뎅은 어묵과 이것저것을 넣고 간장으로 맛을 내어 삶은 요리를 말한다. 어묵이라고 해도 사츠마아게, 한펜, 치쿠와 엄청나게 종류가 많다. 일본인에게 치쿠와를 뭐라고 하죠? 라고 물어보면 오뎅이죠. 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치쿠와는...치쿠와죠 물어보고 싶으세요? 하고 어두운 표정을 지을 것이다. 

결국 오뎅의 재료가 되는 것들은, 이것저것은 범위가 상당한데 기본은 , 그리고 곤약. 삶은 달걀, 고구마, 다시마, 힘줄...요즘엔 심지어 토마토도 넣어서 먹는게 보통이 되었다. 

애초에 오뎅은 두부와 가지 그리고 곤약 같은 것을 뭉쳐서 만든 미소덴가쿠味噌田楽 생선으로도 만들기 시작한 것이 기원이다. 덴가쿠는 두부요리로 분류되는데 역사는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문헌 상에서 표기를 확인 수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요리가 오뎅おでん이라고 불리우며, 익숙한 요리가 것은 에도의 명물이 되면서부터 것이다. 당시 두부를 네모나게 꼬치로 구운 미소를 발라(웃음과 함께 서빙한다는 얘기가 아니다)먹는게 에도의 명물이었다고 하는데. 에도시대 초기부터 꾸준히 생산이 늘어난 쇼유를 나베에 넣어 국물을 다음, 재료를 넣고 탕을 끓이는 현대적인 형태의 오뎅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안주로 널리 보급될 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은 하다. 달고 매운 오뎅이 술안주로 제격- 이라는 문구도 발견할 있었다고 하니 과연. 만들어진지 이백년 되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오뎅의 가장 중요한 매력은 그대로라는 훈훈한 결론.


그래, 오뎅이 먹고 싶었다. 어느날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쇼유를 넣고 국물을 내어 신선한 무를 뭉텅뭉텅 잘라 끓인 다음 일본산 오뎅재료를 우당탕 넣으니까 너무 맛있는 오뎅이 나왔다. 아니 애초에 인스턴트 라면이랑 그리 크게 다를 있나 어느 나라든 서민음식이란 그런 것이다. 빠르고 싸게 맛있는 만들 있다면 최고의 음식이다. 하지만 의문도 들었다. 내가 무서운 재능(하하!)으로 만들어낸 오뎅이 어느 정도 수준인 걸까, 본토인 도쿄 땅에는 맛있는 오뎅이 존재하는게 아닐까? 마침 때는 겨울, 오뎅을 먹기에 가장 적합한 계절이라는 12. 먹을 밖에 없었다 먹어야했다. 나는 눈과 혀로 오뎅의 궁극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집에 쌓여있는 도쿄 식도락 잡지를 가지고 일본으로 갔다. 첫째 호텔방에서 오뎅집을 찾아보았다. 눈에 차는 곳이 없다. 기재된 숫자도 적었지만 허름하지만 추억의 맛이라는 , 고급 정식집이지만 오뎅 메뉴가 있다는 그런 밖에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오뎅에 매료가 되어 2,30 정도 오뎅만을 만들어온 장인이 하는 집이었다. 오뎅을 극한까지 연구하여, 어떤 재료로도 맛있는 오뎅을 만들어내며 오뎅에 힘을 다한 삶을 살아온 나머지 하나 뿐인 아들과는 사이가 나빠졌고 아들은 지금 가스미가세키에서 재무성 공무원을 하고 있다... 백스토리도 있으면 좋겠다. ...


결국 서점에서 18 도쿄 미슐랭 가이드까지 사와 정독해보고 깨달은거지만, 오뎅이 그리 고급요리가 아니다보니맛집혹은명점이라고 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새롭게 연구되기에 오뎅은 너무 서민의 요리였고 이미 발전할 만큼 발전해 있었던 것이다. 이미 만드는 방법마저 완성에 가까운 지점에 이른 오뎅은 뛰어난 대중요리로서의 완성도 때문에 이자카야와 편의점에서 먹는 요리가 되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있단 말인가. 나는 슬픔을 이기고 안경을 침대에 집어던진 정리된 호텔의 푹신한 침대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리다 잠이 들었다. 이것도 거짓말입니다. 그냥 잤어요.


오뎅을 먹을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차라리 세븐일레븐에 가서 국자 퍼서 먹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오뎅을 먹으려고 머나먼 도쿄 땅에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오뎅력을 높여줄 있는 요리로서의 오뎅을 원했다.

그렇게 먹이를 노리는 야수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다 오뎅을 먹을 기회는...네번째 저녁에나 찾아왔다. 여행 내내 미술관을 전전하느라 바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오뎅의 명점이라 불릴 만한 곳이 없어서 동선이 맞지 않았다. 괜찮은 오뎅집들은 뱅글 돌아서 찾아가지 않는 이상 수가 없었다. 

결국 찾아간 곳은 신바시 미슐랭의 빕스 구루밍인 가게. 일부러 저녁 개점 시간을 정확하게 맞춰서 자리에 앉았다. 예약없이 혼자 외국인 손님-그렇다 나다- 소중한 저녁식사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알아서 훌륭한 오뎅을 가져다 코스를 시키고 기다렸다. 그런데 맙소사, 이천오백엔 정도의 코스지만 오뎅을 마음 먹을 있을 알았더니 다짜고짜 사시미가 나왔다. 잘못 시킨 것은 아니었다. 사시미가 나오고 오뎅이 나오는 코스가 가게의 저녁 주요 코스였던 것이다. 가게 주인은 짐짓 사시미의 훌륭한 품질이 자랑이라는 듯이 한참 설명을 했고 나는 웃으면서 생각했다. 제기랄 여기 오뎅 별로겠군. 비싸지 않은 코스인데 사시미가 나오면, 남은 오뎅이 보통일 거란 보듯 뻔했다. 

접시에 서빙되어 나온 오뎅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한국처럼 국물에 담겨져 나오지 않을거란 알았지만 꼬치에 성의있게 종류별로 꽂아져 나온 오뎅을 먹는데는 입도 걸리지 않았다. 그릇에 조금 담긴 국물을 마셨는데 국물이 괜찮아서 서글퍼졌다. 코스를 먹는데고 생맥주를 잔이나 마시는데 까지 삼십분도 걸리지 않았다. 예의바르게 인사를 다음 가게를 나오며 이게 뭐야 라는 생각을 스무 정도 했다. 실망과 애수가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져 미나토구의 골목에 길게 드리워졌다. 잊지 않을거야 (도쿄까지 와서 별로인 오뎅을 먹은) 슬픔은.

하지만 가게가 좋지 않은 가게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정도 밖에 안되었다는 것은, 역시 내가 마음 속에서 생각한 오뎅이 신기루 같은 환상이었을까. 일본에 가면 진짜 닌자가 있을 기대하는 서양인의 쟈포니즘처럼 말이지. 참고로, 그날 너무 분해서 다른 음식을 먹었고 여행 덴푸라는 끼나 먹을 있었다. “하루에 저녁을 끼나 먹는자는 명예를 아는 라며 무지막지하게 무리를 했기 때문이지만. 아니나 다를까 비싸고 맛있었다. 나참... 이래 진짜.



<도쿄풍정>, Philip Bailey - Easy lover


도쿄가 익숙하다. 긴자에서 이어지는 번화가. 유락쵸, 신바시, 아키하바라, 칸다. 모두 눈을 감고도 다닐 있다. (실은 소리를 치지만 몰래 몰래 구글맵을 꺼내 방향을 확인해야한다) 출장을 왔을 시간이 남으면 오던 동네들이다. 동네가 가장 마음이 편한 점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직장인들이란 점이다. 세련된 패션피플이나 젊은이들처럼 직장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은 동네에 없다. 다들 비슷한 얼굴에 복장을 하고 퇴근 후에 이곳에 왔다(물론 개중에는 그냥 여기가 직장인 사람들도 있다) 하여간 서로를 쉽게 알아보는 우리 모두 직장인들이다. 내가 비록 백팩에 파카코트를 입은 관광객이지만 그들도 얼굴을 보는 순간 알아차렸을 것이다. 삐릿삐릿 너도 우리 하나다 삐릿삐릿 그렇지? <Y/N>


이번 여행에선 평소라면 오지 않았을 거리를 걸었고, 즐거웠다. 물론 나는 겁쟁이이기 때문에 수틀렸다 싶으면 긴자로 도망가는 짓을 반복했다. 어느날에는 추위를 뚫고 토요스 시장에서 츠키지까지 걸어갔다. 하루는 도쿄역에서 내려 고쿄교엔을 거쳐 근대미술관을, 그리고 진보쵸에 들렀다. 우에노에서 칸다까지 걸어가 토리스키야끼를 먹기도 했다. 

가장 즐거웠던 경험은 오모테산도와 하라주쿠, 그리고 시부야를 갔던 일이다. 하라주쿠는 전에 출장 하루 남는 주말에 들렀다가 이곳은 안되는 곳이야 라고 마음 먹고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싶었던 곳이었지만, 다행히 이번여행에선 괜찮았다. 정확히는 하라주쿠 바로 전의 시부야와 오모테산도였지만 다음에 여기까진 괜찮겠어 하고 캣스트리트까지를 경계선으로 삼아 구글 지도에 표시를 해뒀다. 사람이 많은 곳도 패션피플이 출몰하는 곳도 나에겐 너무 무섭다. 차라리 롯폰기 힐즈를 가겠다. 거긴 외국인도 많단 말이지.


도쿄의 풍정은 쉽게 이야기 있는 것들이 아니다. 하나 하나의 장면을 할수 있는 최선을 쓰고 남길 뿐이다. 여기에 하나를 적는다. 역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갔었던 토요스 시장, 추위를 뚫고 다리를 개나 건너서 갔더니 그런 대실망쇼도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거기에 와있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카이센동집에 무슨 미슐랭 맛집 처럼 줄을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도 하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나는 카이센동을 먹는 대신 츠키지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다리를 3개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는 도중 추운겨울이 봄이 될리는 없었다. 너무 추워 슬램덩크의 삽입곡을 들으며 나는 강백호다 나는 서태웅이다 하고 중얼거리며 달려갔다. 아니 달린다고 생각하며 걸어갔다. 

다리를 건너 가는 도중 운하 위로 커다란 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나왔다. 물론 추워서 나왔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고보니 오모테산도에서는 차를 마셨고, 시부야에서는 음악찻집에 들러 음악을 들었다. 좋은 차를 마시고 좋은 음악을 듣는걸 얼마나 좋아했는지 까맣게 잊고있었다. 신경쓰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잊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으면 우리는 아주 쉽게 마모된다.


<미술관>, Kokoroko - Abusey Junction


오랫동안 의심하고 생각해온 것들이 있다. 우리의 자아가 생각보다 연약하고 부드러우며 현실세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간에 의탁하여 구성되어 있다는 의심도 중에 하나이다. 공간에 대한 체험은 기억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공간에 대한 기억은 우리 자아의 부분이 있지 않을까. 우리가 공간을 기억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기억하는 것에 가까운게 아닐까. 물론 나는 작가도 학자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의심-혹은 망상- 구체적으로 밖에 내는게 부끄럽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막연한 심상에 따라 말을 뱉고 보면, 이게 얼마나 멍청한 소리일까 걱정이 되지만 용기를 내보자. 

나는 우리의 자아가 공간에 따라 다층적으로 존재 있는게 아닐까 의심한다. 우리가 어떤 공간에 대해 충분히 집착 있다면 우리가 공간에 (시간을 뛰어넘어) 망령처럼 보존될 있지 않을까. 나는 가끔 과거의 내가 어딘가의 공간 속에 그대로 살고 있는 꿈을 꾼다. 바보같은 망상이지만 지금 여기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있는 나보다 다른 공간에 망령처럼 보전되어 있는 쪽이 진짜 나에게 가까운게 아닐까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특별한 공간에 대한 기억이란 그런 착각을 일으킨다.


시나가와구의 하라미술관은 내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장소이다. 세르비아와 미얀마 대사관이 있는 주택가에 있는 미술관은, 1938년에 하라가문의 저택으로 지어지고 1979년에 미술관으로 개관하였다. 어느덧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컨템포러리 아트 뮤지엄이 되었다. 

이곳을 가려면 역에서 내려 주택가 골목길을 지나야한다. 오사키 역에서 내리면 다리를 건너고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시나가와 역에서 걸어가면 메리어트 호텔의 부지를 지나쳐가야한다. 어느 쪽이라도 상관은 없다. 고급 주택가라 길이 반듯하고 나무들은 손질 되어 있다. 차가 지나다니는 곳이지만 각지고 검은 택시들만이 거의 소리도 내지 않고 골목을 지나다닌다. 여기쯤일까 하고 고개를 돌리면 작은 정원에 커다란 나무가 현관을 가리듯 서있다. 그게 하라미술관이다.


이번 도쿄 여행에서 가장 많이 돌아다닌 것은 역시 미술관들이다. 사실 다른 곳에는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다. 도쿄는 국립, 도립은 물론 사립 미술관에서도 일본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풍부한 라인업을 자랑하는데. 우에노 같은 곳에선 마음 먹고 하루 종일 미술관에만 있어도 정도이다. 이번 여행에 들른곳은 시나가와 구의 하라미술관, 다이토구의 우에노 모리 미술관, 국립서양미술관, 도쿄도미술관, 도쿄 국립박물관, 치요다구의 국립근대미술관, 미나토구의 국립신미술관, 롯퐁기의 모리 미술관, 시부야구의 분카무라 미술관. 일요일 급히 찾아갔지만 이미 17일부터 휴관에 들어간 네즈 미술관까지 합치면 10군데이다. 

어째서 이렇게 미술관을 다녔냐고 물어보면, 도쿄에서 미술관보다 흥미로운 곳이 어디 있겠느냐고 대답하겠다. 애초에 미술관이랑 추상적인 개념을 사물화하여 담은 공간에 진열해 곳이다. 분카무라 미술관이나 롯퐁기의 모리 미술관처럼 거대한 빌딩 안에 있는 미술관도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들은 공간과 작품이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체험으로서의 미술관이다. (그리고 그런 극단적인 형태는 나오시마의 지추미술관이다) 

특별한 공간은 특별한 체험이 되고, 그곳에서 우리는 분열되어 여러개로 나눠진다.


하라 미술관은 크지 않다. 본관은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1층과 2, 그리고 3층의 다락처럼 생긴 곳에 작은 방이 있을 뿐이다. 기획 전시들은 대부분 1층과 2층에 나눠져 전시되고, 상설전시는 기획전시를 하기 어렵다 싶은 작은 방들에 전시되어 있다. 

사실 미술관의 상설전시는 다름아닌 미술관 자체의 건물이다. 상술했듯이 1938년에 지어진 바우하우스 양식의 건물인 저택은 우아한 계단과 개의 정원이 특징이다. 섬세한 벽과 중정으로 이어지는 작은 복도는 전시를 하기에 적합한 공간은 아니다. 가장 넓은 장소조차 (거실과 개의 방을 틔어 만들었지만) 개인 주택이라고 봤을 넓은 공간이지, 미술관으로서 대형 미술작품을 전시하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회화가 아니라 현대미술을 주로 전시 했는지도 모르겠다. 전시장에 이어진 효율적으로 보이는 반원형의 공간(예전에는 분명 정원을 바라보는, 거실의 일부였을 공간이다) 유리창. 작품의 보관이나 유지에 신경 쓸수나 있을까 싶게 습기와 실내기온이 유지가 되지 않는 작은 미술관은 누군가의 집에 잠시 들른 같은 곳이다. 중정을 바라보도록 만들어진 공간은 카페이다. 대부분의 설치 미술품은 하라미술관 아크에 보관되어 있지만 몇몇 작품은 중정에 나가 가까이서 있도록 되어 있다.


나는 공간을 기억하려고 해본다. 현관에서부터 자국, 처음에 보이는 것은 무엇. 오른쪽에 있는 방과 왼쪽에 있는 . 기억의 공백을 유사한 기억으로 채워나가고 감촉과 기온을 그대로 기억 본다. 기억 속의 계단을 올라가며 단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생각한다. 기억과 실제의 장소가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생생하게 기억할 있는 장소가 군데 있다. 모교 교실, 중앙도서관의 어떤 서가 . 위치를 없는 어떤 사거리. 그런 기억 속의 장소 중에는 거대한 습지도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뛰어 놀던 아파트 단지와 단지에 딸려있는 작은 잡목림도 그런 장소의 리스트에 있다.

어떤 장소를 생생하게 기억하면 기억할 수록 나는 당시의 나도 같이 떠올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든 장소가 그대로이길 바란다. 그리고 장소에 같이 놓여 있는 예전의 내가 영원하길, 적어도 내가 아는 이상은 그대로 거기에 있길 바란다. 

언젠가 내가 장소에 돌아왔을 예전의 나도 거기에 그대로 있는 확인 있도록 말이다. 물론 그런 나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많은 장소가 사라졌고 사라질 것이다. 결국 장소들 조차 나의 기억 속에서만 안전하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당신은 어느날 우연히 찾은 미술관에서 나의 망령을 만날지도 모른다. 당신은 그것이 나를 아주 많이 닮은 누군가가 아닐까 의심하다, 망령의 얼굴을 보고 그것이진짜나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아마도 나의 망령은 당신을 알아보지 것이다. 망령이란 결국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 자리에 그대로 있는 외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망령은 때때로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초조하게 어딘가를 바라본다. 망령은 장소가 사라질 까지 자리에 서있는 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작은 부탁이 있다. 그런 나의 망령을 미술관의 작은 정원이나 구석진 복도의 자리에 그대로 내버려두지 말고 당신이 아는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바란다. 그리고 손을 잡아서 천천히 당신의 옆자리 까지 이끌어주기 바란다. 나의 망령이 당신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있도록. 아마 망령은 당신이 누군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윽고 당신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 있게 되면, 다만 당신이 기다리던 사람이라고만 생각하여 환하게 웃고는왔어요?’ 하고 말할 것이다.


하라미술관은 2020 폐관이 결정되었다. 언제 도쿄에 다시 오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번쯤은 미술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찾은 미술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도 외로운 모르고 나는 카페에서 파스타와 차를 마시고, 케익까지 먹었다. 내가 시간이 되어 미술관을 나갈 까지도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았다


<정원이 있는 아침>, The police - every breath you take


정원을 좋아한다. 정원이 있는 호텔은 좋아한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정원을 보는게 좋다. 일본에 열번쯤 왔을 조식도 비즈니스 호텔도 너무 지겨워서 괜찮은 호텔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1,2박쯤 하는거라면 어떤 호텔의 조식도 참을수 있지만 그게 며칠이나 계속 되기 시작하면 편의점 음식으로 매끼를 채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거의 없다) 중에서는 편의점 음식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의 편의점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고, 그걸 폄하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아니 편의점 음식 먹으면 금방 질리지 않나요? 간이 쎄거나 차가운 음식이기 때문에 그렇다고만 없다. 그냥 이걸 재미로 먹는다면 몰라도 이상 연속으로 먹으면 뭔가 회의감이 든다. 굳이 외국에 와서 돈과 시간을 들여서 이런걸...하는 생각이 든다. 편의점에서 사야하는 1.5리터짜리 물과 탄산수 뿐이다. 


이야기가 정말 다른 곳으로 새버렸다. 하여간 같은 호텔의 조식을 며칠이나 먹는다면 돈을 들이더라도 신경을 조식을 먹고 싶다. 내가 자주 가는 호텔은 커다랗고 오래된 구닥다리 호텔이다. 도쿄 주제에 호텔부지만한 정원이 있고 그만큼 호텔의 숙박비는 비싸다. 그래서 호텔에 불만이 생길 마다 정원을 바라본다. 

호텔에서 역에서 걸어야 하는 것도 그게 언덕길이라는 것도, 방이 생각보다 좁고 작다는 것도 (예전에는 어울리지 않게 방이 컸지만 리노베이션 이후 오히려 방이 작아졌다 맙소사) 정원을 보고있노라면 그러지말고 그만 용서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성적으로 어차피 여행오면 호텔은 잠만 자는 곳이니 합리적인 가격에 깔끔하고 위치가 좋으면 최고지...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정원의 연못가에 비단잉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잠을 자고 있는 것을 구경하다 보면, 경내 관음보살 사당 앞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다보면, 그래 비싸면 어때 하는 생각이 든다.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면 끝도 없이 아까운 법이다. 그리고 이것은 패가망신의 지름길.


차가운 냉수를 자리에 가지고 단숨에 마신다. 계란후라이目玉焼き 써니사이드업一面으로 해달라고 부탁하고 밥을 가지러 간다. 반찬을 많이 먹을게 아니라서 작은 접시에 밥과 반찬을 놓을 있게 해둔 곳이 좋다. 

먹을까 밥도 좋지만 죽이 좋다. 낫토를 달라고 부탁하고 청어구이와 . 두부라도 있으면 더할나위 없다. 자리에 앉으면 낫토를 휘휘 비빈다. 겨자도 간장도 넣는다. 나는 한국인이니까 자극적이어야지 하고 택도 없는 생각을 하며 비빈 낫토를 죽에 섞는다. 만약에 김을 같이 가지고 왔다면 김을 부스러트려 위에 뿌린다. 휘휘 비빈 입을 먹는다. 되었는지 모르고 자리에 그냥 앉아있으면 계란 후라이를 가져다 때가 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계란 후라이에 간장을 뿌린다. 가끔은 간장도 뿌리지 않는다.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노른자를 깨서 먹기 시작한다. 차를 가져와서 같이 먹을까 하다가. 내일은 쌀밥에 오챠즈케를 해서 먹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한다. 정원을 보고 가장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며 말을 건다. 안녕. 잤어?


<영원>, Childish Gambino - Redbone


불교가 성립된 2천년이 넘었다. 만인의 고통을 개인의 자아로 설명하려 위대한 종교는, 우리가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의 고통은, 우리와 유리될 없다. 현세의 우리가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단지 우리가 스스로를 벗어낼 있을 까지 스스로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물론 이것은 나의 해석이다. 수천년 동안 불교를 알았던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불교를 이해해왔다. 한가지 얘기해보자, 자기 인식은 최고의 부조리이며 부조리를 깨닫는데서 자아가 시작된다고 현대인은 설명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수도 있다. 

달마는 앞에 붉은 눈이 쌓이기 전에는 너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겠노라 혜가에게 말한다. 혜가는 달마 앞에서 자신의 팔을 자르고, 말이 없던 달마는 너의 마음을 내게 가져오너라 그러면 내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겠다, 말한다. 혜가는 대답한다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혜가와 달마 사이에 쌓인 눈은 혜가가 흘린 피로 붉다.

도쿄의 국립박물관에는 불상들만을 모아둔 세션이 있다. 불상은 일본미술의 중요한 부분이다. 선종과 민중신앙, 밀교가 묘하게 뒤섞인 일본의 불교는 민중에 대한 숭배의 대상이자 신앙을 완성시키는 상징물로서 불상을 내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국립박물관에서도 이렇게 불상을 중요하게 여긴다. 모아둔 것은 일본의 불상만이 아니다. 아시아 각지의 불상이 모여있다. 재미있게도 불상은 성립시기, 지역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지역의 인종적인 차이에 따라 얼굴이 달라지는 모습은 예술양식의 변화를 뛰어넘는다. 


인도의 불상을 보자, 사실 성립시기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같은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신라시대의 작품과도 아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 같이 완성도가 높으며 서양 고전적이라고 해야할지, 근육질의 몸에 높은 콧대를 불상의 얼굴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문득 우리나라 일반적인 사찰 대웅전에 있는 석가여래상을 떠올린다, 황금칠이 되어있고 게슴츠레 눈을 불상 말이다. 인도의 불상이 사진에 가깝다면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불상은 데포르메다. 석가여래의 이미지만을 남겼다. 하지만 아니 어떻게 이렇게 잘생긴 상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조상님 도대체 이러셨나요 하고 가슴을 친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불상, 돌로 만든 오래된 것들을 보자. 깨달음을 얻는 석가모니를 나가의 왕이 비와 바람에서 보호하는 장면을 재현했다. 동그란 얼굴에 눈썹이 짙고 잘생긴 눈을 하고 있다. 입술은 커다랗고 두툼하다. 석가모니에게는 32가지 신체적 특징이 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그걸 무시하고 만들었을 같지 않지만 다르다 확연하게 다르다. 그렇지만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다. 그렇군요 님도 석가모니시군요 하고 불상을 보며 숙연하게 인정한다.


누군가 나에게 한국의 불상이 저런 머리스타일, 흡사 마카로니를 같은 것은 외국(인도)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말로 인도인을 적이 없는 장인들은 결국 예전부터 내려온 불상의 이미지를 보고 불상을 만든다. 자연스럽게 머릿 속의 공백은 자기가 평생 보아왔던 얼굴로 채운다. 석가모니가 머나먼 서역, 그러니까 인도 어딘가에서 태어난 사람이란 것은 머리로는 이해할 있다. 그렇지만 자기와 다른 이목구비를 했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자기도 모르게 구세주는 분명 우리와 같은사람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거꾸로 불상의 얼굴에 의도적으로 실존인물의 이미지를 삽입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많은 불상이 그렇다. 스승의 얼굴을 본따 불상을 만드는 경우도 흔하며, 예를 들어 천상도나 만다라를 만들 때는 수없이 많은 불타와 보살의 이미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상상력과 양식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실존인물을 본따 그림을 그렸다. 때때로 귀족들과 권력자들은 자기의 얼굴을 극락의 모습을 그린 벽화에 넣어주길 부탁했다. 서툰 기도처럼 극락의 형상에 자기가 포함되어 있으면 극락에 갈수 있을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우지 뵤도인의 봉황전에는 그렇게사람 얼굴을 천상도가 있다.


나는 어느날 어떤 불상의 사진을 보았다. 내가 아는 누군가의 얼굴을 너무나 닮아 몇번이나 불상을 직접 보러 가려고 했지만, 결국 번도 불상을 보진 못하였다. 이번 도쿄 여행에서도 불상을 보지는 못했다. 


우리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우리들의 얼굴을 불상에 새기고 있다면. 우리와 닮은 불상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름 모를 보살과 부처의 상을 마다 거기에 내가 아는 얼굴이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가 영원만큼의 생을 있다면 언젠가는 영원과도 같은 얼굴을 당신과 다시 만날 있을지도 모른다.


......


17년에 글을 읽어본다. “별이 멸망한 후의 노래들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적고 나는 줄을 적었다. “우리들 유기체가 숨을 쉬고 잠을 자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들이 없을 정도의 많은 별들이 멸망해 간다. 어느 가을 초입의 일이다. 나는 당신을 기다린다나는 무슨 말을 쓰고 싶었던 걸까. 어쨌든 이걸로 나의 이번 여행기는 끝이다.


나는 보통 하나의 장면을 쓰기 위해 하나의 글을 쓴다. 장면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나는 쓰고 있는 동안 이해하지 못한다. 글을 쓰는 과정은 결국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과정이다. 하지만 나는 도쿄여행기를 지금도 아무것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누군가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는지 이해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마 당신은 내가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도 어울리지 않지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toto Africa 들었다. 여행기를 쓰면서는 Shaun Way back Home 들었다. 여행기를 마지막으로 고치면서는 결국 Olafur Arnalds 앨범을 들었다.

그럼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어디까지 가야 집에 도착 있을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18 12월의 글이다.


과학위성 카시니는 토성과 그 위성을 탐사하기 위해 97년 발사되었다. 금성과 지구, 그리고 목성 사이를 떠돌다 2004년 토성궤도에 진입하여 13년간 그 탐색을 계속하다 17년 4월 토성의 고리 맨 안 쪽을 조사하는 그랜드 피날레 궤도에 진입. 동년 9월 15일 토성의 대기에 돌입하여 별의 일부가 되었다.

17년의 10월 4일인 오늘, 그저께는 K와 저녁을 먹었다. 어제는 소설 한 권을 들고 바를 돌아다녔다. 김렛을 시키고 카운터에 앉아 메모장을 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나오시마 여행기의 후편이었다.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두 가지 질문을 한다. 첫 번째는 이것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글을 쓰는가...>

나는 술을 한 잔 더 시키고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오늘은 혼자서 다른 가게에 가기로 한다. K는 어제 귀국했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시며 이번 교토의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다.


- 술

나는 칵테일 중에는 김렛을 많이 마신다. 문학적인 이유입니까 라고 한다면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슴슴하지도 시지도 상쾌하지도 않은 그 묘한 경계선의 향이 좋다. 나도 술을 시작한 것은 소주였기 때문에 너무 단 술은 좋아하지 않는다.

김렛은 크게 보아 진 베이스로 구분되는데 그 유명한 마티니(베르무트를 반 섞는다)도 진토닉도 김렛도 금주법 시대의 느낌이 나는 톰 콜린스도 모두 진 베이스이다. 유럽에서 크래프트 진의 붐이 일어난 것은 09년 경,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는 술의 제법이 공인되어 명문화 된 것은 08년이 되서야였다고 한다.

모든 술은 세금의 역사이기 때문에 술의 제법은 거의 세법이 정한다. 하지만 곡물의 증류주, 즉 싸구려 재료로 대량으로도 만들수도 있어서 대충 대충 사탕수수로 만들면 럼이고 곡물로 만들면 진이지 하하하 하는 식으로 생산(알콜 도수는 40%정도로 조정한다)되고 판매되어 왔기 때문에, 다시 말해 국가에서 일일이 신경써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싸구려 술이었다. 

아직도 쥬니에브르 혹은 쥬네바는 네덜란드의 오리지널의 약용술 스타일을 뜻하지만 많이 퍼진 것은 영국 스타일의 드라이한 진. 크래프트 진 쪽은 여러가지 약초 예를 들어서 크랜베리 나 제라늄 같은 걸 쓰기도 하는 것 같다. 영국에서 진의 위치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그래 진로의 빨간 뚜껑 소주 정도 였던게 아닐까 싶다. 역시 술 또한 그 태어난 지역, 사랑 받은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 후에도 오랫동안 칵테일의 베이스 정도로 오래 쓰이다 요즘에는 특정하게 정해진 형태가 없다는 점 때문에 로컬 크래프트 진이 많이 생겨나 진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난 모양이다.

우연히 들어간, 아니 거짓말이다 오후 3시부터 이미 오늘은 낮부터 술을 마셔야지 하고 마음 먹고 호핑할 술집을 찾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호텔에 반납하고 술집이 많은 시죠를 거쳐 폰토쵸, 모토마치 쪽으로 뛰다시피 걸어갔다. 오후의 햇살이 남아있을 때 구석 3층의 바에 올라가 유일한 손님으로 카운터에 앉았다.

추천이 있을까요. 라고 묻자 나온 술은 와사비 잎을 올린 진토닉이 나왔다. 

기본에 충실한 진토닉이지만 향은 압도적이다. 진하기 때문에 압도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와사비 뿌리보다 더 맑은 물에서나 수확이 가능한 잎와사비의 향은 맵지 않다. 맑다.

과연, 술도 결국 그 지역의 특산물이라는 걸까요. 굉장한 향이군요.

마스터는 아주 살짝 웃는다.

나는 연달아 술을 시킨다. 이미 바 호핑을 하겠다는 생각은 버린지 오래다. 이 다음은 김렛을, 그리고 그 다음은 앱생트를 베이스로 한 마스터의 추천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꼬냑을 베이스로 한 술을 시킨다. 향의 미묘한 부분을 캐치해서 그걸 얘기해주면 그럴 수록 마스터는 특이하고 재미있는 향을 가진 술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되지도 않는 외국어로 낄낄거리며 마스터의 술을 칭찬한다.

계산을 하고 일어서려는 참인데 마스터가 명함을 건낸다. 나도 명함을 공손히 받는다. 실은 저는 이 가게 이름을 읽는 방법도 모르겠습니다. 하고 웃었다

아직 오후 6시가 막 된 참인데. 예정은 있으신가요.

꽃이라도 사러 갈까 싶어요.

네 꽃을 사러 갈 생각입니다.


- 미소

K와 스페인 요릿집의 카운터 자리에 앉아 칠레 와인을 마신다.

우리는 이미 엉망으로 취해있다. 모츠나베를 파는 작은 가게의 카운터에 앉아서 맥주를 각 두 잔씩 마시고 나베를 한 번 더 시켜서 두 잔을 더 마셨다. 오이무침이니 뭐니 하는 안주를 잔뜩 시켜서 먹고 마시기를 반복한다. 가게에서 나왔지만 비는 많이 그쳐있었다. 

아직 돌아가기엔 시간이 이르다. 아쉬워져서 칵테일을 마셨다. 외국인으로 가득한 가게에 들어갔지만 노래는 시끄럽고 칵테일은 이름만 봐도 싸구려 리큐르로 말았다. 잔당 860엔. 좋은 칵테일을 마시기엔 너무나 싸다. 옆 자리 러시아인들은 너무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K의 이마를 쳐다본다. K는 신기할 정도로 각도에 따라 얼굴이 달라져서 쳐다보는 재미가 있다. 되는 대로 싸구려 칵테일을 한 잔씩 들이켰지만 역시나 입만만 버릴 맛이었다.

어쩌지 하고 가게를 나왔지만 아직도 숙소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축구를 틀어놓은 밝은 가게로 들어갔다. 역시나 여기도 외국인이 가득하다. 나도 외국인이지 나도 외국인이지. 하고 일본어로 칵테일을 두 개 시켰다. 여기 무한정 마실 수 있는 플랜이 있는데요, 라고 메뉴를 가리키니 선배 여기 칵테일 무한정으로 마시고 싶으세요? 라고 반문하길래 싸구려 칵테일을 두 잔씩 들이켰다. 역시나 싸구려는 싸구려였다. 입 맛을 계속 버렸다.

아까 비가 오니까 나베를 먹어요. 라고 말한 뒤 검색을 돌리기 시작했다. 교토는 항상 혼자 왔기 때문에 맛있는 가게가 어딘지 잘 모른다. 대충 아무 가게나 들어가 밥을 먹고 종일 걸어다니고 절을 보는게 내 교토 여행이기 때문이다.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서 모츠나베 가게 두 개를 찾아냈다. 맛있는 집인건 사실일텐데 전화를 돌려보니 예약이 가득차있다. 급해진 나는 검색어를 바꾸다 아까 찾은 가게의 분점을 찾아낸다. 여기다 싶어서 예약을 걸고는 백화점의 로비에 앉아서 K를 기다린다.

종일 걸어다녔고 저녁을 같이 먹을 줄 몰랐기 때문에 피곤한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연기를 하는게 힘들었다. 시간이 남아서 백화점의 지하층에서 꼭대기 층까지를 왔다갔다 돌아다녔다. 그것이 무의미하게 체력을 낭비하는 일이란 것을 그 때는 몰랐다. 비는 생각보다 많이 내렸다.

정확히 시간에 맞춰서 도착한 K는 내가 비오는 날 무슨 고생이야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됩니다. 하고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은 가게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아니 실은 예약을 해두고 딱 중간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그래서 그 중간 이후에 아주 좁은 골목길에서 현지인들과 몸을 좁게 구기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골목길 두 개를 지나고 모퉁이 세 번을 돌아 찾아봐야 작은 나무 간판을 볼 수 있다. 일행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여기에요, 라고 뒤를 쳐다보는데. 왜인지 K는 웃고 있었다. 

오늘 교토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오전 혼자 교토의 외곽 루리코인에 가서 그 유명한 창문을 찍었다. 예정에 없이 방문한 루리코인이지만 어차피 교토는 너무 많이 와서 어디를 가야할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 가지 않은 곳이 남아있다는게 더 놀라울 정도였다. 나는 그 창의 이야기를 하려다가 K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K의 이야기는 술에 취하든 취하지 않았든 아주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진다. 밤을 새도 한 순간도 끊기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한다. 나는 재미있어하기 시작한다. 길게 이어지던 K의 이야기가 어느새 커다란 원을 그리기 시작하고 그가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게 무엇인지 깨닫는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K는 취했다. 나는 술이 깨기 시작했다. 와인을 마시면 머리가 아프고 나는 술이 아주 쉽게 꺤다. 괜찮아요 선배 얼굴이 엄청나게 빨간데. 그것은 제가 홍인종이기 때문입니다. 홍인종 인디언, 네이티브 아메리칸. K는 너무 오랜만에 듣는 단어라는 듯이 중얼거리더니 안주를 시킨다. 안주는 올리브와 문어 타파스.

이야기는 원을 그린다. 다양하게 이상한 소리와 헛소리를 한다. 나도 K도 이제 못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이상한 소리를 주어섬기기 시작한다. 오늘 밤은 이게 마지막이다 우리는 이걸 마시고 K와 나는 언제 취했냐는 듯이 똑바로 걸어서 사거리에서 헤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K와 나는 같은 손등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는 많은 부분이 같고 아주 작은 부분이 다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캐나다의 리조트와 일본의 여행과 오늘 걸어다닌 이야기와 서로의 날씨 경향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또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한다. 아무리 화제를 바꿔도 서로는 막힘없이 서로 딴 소리를 해댄다.

표정을 만드는게 귀찮다는 듯이 K는 되는대로 지은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그제서야 그날 처음으로 웃는다.


- 꽃

교토의 꽃이라면 사라쌍수의 꽃이려나, 헤이케이 이야기는 그 첫머리 "기온정사"에서 이렇게 읊는다.


祇園精舎の鐘の声 기원정사(祈園精舍)의 종소리 諸行無常のひびきあり 제행무상의 울림 있으니

沙羅双樹の花の色 사라쌍수의 꽃의 빛깔 盛者必衰のことわりをあらはす 성한 자 필히 쇠한다는 이치를 드러낸다


사라쌍수란 석가모니의 열반시에 그 동서남북에 서 있었다는 사라수 나무를 뜻한다. 아열대에 가까운 인도의 나무가 교토에서 관리되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힘든 관리가 필요한 모양이다. 실제로는 거의 노란 색 혹은 붉은 색을 띄나 교토에서 자라는 사라수 꽃의 빛깔은 희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아열대 기후에서 피어나는 꽃이라 초여름인 6월에 잠시 아름답고 풍성하게 피어나지만 쉽게 변색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자필쇠의 이치를 나타낸다고 하는 것일까. 그러나 반대로 불교식 장례에서 쓰이는 종이 꽃의 모델은 사라수 꽃이다. 그렇다면 그 종이 꽃은 영원하다고 할 수 있을까.

교토는 일년 내내 꽃이 핀다. 아마 오래된 귀족 취미와 정원 문화에 의해서겠지만 겨울인 12월, 1월에도 남천이 만개하고 백량금이 피어난다. 봄은 말할 것도 없다 매화가 지자마자 복숭아 꽃이 피며 영산홍이, 사라쌍수가 여름이 시작하면 도라지 꽃. 가을이 시작되면 베고니아, 털머위, 사가키쿠가 피어난다. 그러나 일년 내내 피어나는 꽃은 당연히 없다. 사람들은 꽃이 피어나고 짐을 보며 생명의 유한함을 생각하고 생명이 이어짐을 떠올렸다.

꽃은 매년 같은 모습으로 피어나지만 사람은 서로 닮지 않는다. 하고 읊은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는 뜻일 것이다. 

곧 사라질지도 모를 꽃을 매년 매 계절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시간이 꽃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일 것이다.


- 밤

아직도 내 일부는 교토의 밤 거리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이미 한 달이 훨씬 지나서 계절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내 유령은 초가을의 옷을 입고 기온의 시조와 산조를 거쳐 카라스마루의 사거리를 돌아다닌다. 밤의 엘리펀트 팩토리와 이쿠보시를 들르고 다리 위에서 멍하니 달을 쳐다보고 밤을 생각한다.

내가 아는 밤은, 키가 크고 단정한 이마와 눈썹을 하고 있다. 흰 얼굴을 하고는 달처럼 웃는다.  곧은 손목과 손가락 나를 잡아채고 잰 걸음으로 달려가 나를 새벽에 데려다 놓을 것이다. 몇번이나 몇 번이나 밤은 내 잠을 빼앗았다.

밤이 나를 쫓아오길 기다린다. 아마 밤은 또다시 바람소리를 내며 내 앞에 나타나 나를 기다렸느냐고 물을 것이다. 나는, 밤을 위해 준비한 꽃을 건네며 당신은 어땠느냐고 물을 것이다. 당신도 나를 기다렸나요.


- 사거리

나는 기온시조 역 2번 출구 뒤의 벤치에 앉아 사람을 기다린다.

고로케 두 개를 샀고. 먹고 싶은 저녁을 골라뒀다. 너무 비싼 저녁이긴 한데 어차피 내가 살 거고 가격이 어떤지는 죽어도 얘기해주지 않을 생각이다. 오늘 저녁 하루 보고 다시 안 볼 사람에게 너무 과도한 것 같긴한데 내가 먹고 싶은 것이기도 했고 그럭저럭 아무거나 먹고 싶진 않았다.

오늘은 밥을 먹고 혼자 커피를 마시러 갈 생각이다. 가지고 온 책을 더 읽고 일찍 자야지. 내일은 어디에 갈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이번 교토 여행은 너무 즉흥적으로 온 거라서 남은 일정에 뭘 하든 별로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른다.

한참을 걸려서 교토로 오고 있는 사람이라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10월 1일 오후 7시 30분의 일이다.

......

이번 교토 여행기를 쓰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오직 서툰 사람들만이 자기가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를 문장으로 고백한다.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쓰려고 했다. 내가 보았던 순간들, 그 말들과 순식간에 번져나가던 미소. 진동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서.나는 추한 것 보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더 용서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본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표현 할 수 있는 재주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의 순간이 괴롭다.

어쩌면 결국 아름다움이란, 스쳐지나가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것은 천년을 이어진 이끼의 정원 위에 내리는 빗 소리이고 오후 나절 창 에서 내리 쬐어 테이블의 윤곽을 흐리게 만드는 햇살이다. 숨소리만큼 짧고 미소처럼 번져가는 것이며. 무참히도 아름다운 분홍빛 꽃잎. 어느날 밤 당신이 나에게 말할 그럴까 라고 말하는 짧은 대답이다. 

긴시간에 걸친 질문이 짧은 대답으로 끝나는 것처럼.  나는 아름다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것이 스쳐지나가는 것이라면, 나는 언젠가 이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일까 하고 겁에 질려서는. 두 번을 세 번을 반복해서 말한다.우리(내)가 아름다움에게 할 수 있는 보답은 사랑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학위성 카시니의 마지막 항해는 그녀의 고향 시간으로 2017년 9월 15일이었다. 자기가 태어난 별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인사는 토성과 고리 사이를 22번 통과하고 탐사하지 않은 곳을 바라보다가 일어났다. 위성은, 안테나를 지구 쪽으로 돌려놓기 애쓰며 - 토성의 일부가 되며, 토성의 하늘에서 그 여행을 끝냈다 (In the skies of Saturn, the journey ends, as Cassini becomes part of the planet it self) 카시니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에는 희미하게 토성의 위성 안셀두스가 찍혀있다. 20년 간의 항해를 끝으로 그녀는 그녀가 가장 사랑하고 그리워해온 별과 하나가 되었다.

우리시대의 누구도 카시니처럼 사랑하지는 못했다. 우리의 위안은 아직 우리에게 많은 순간들, 혹은 기회가 남아있다는 것 뿐이다. 

설령 어떠한 끝이 약속되어 있다고 해도 그것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도, 우리가 우리의 삶보다 더 긴 단위로 숫자를 셀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일종의 영원과 닿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낮과 밤이 간다고 해도 정말로 우리가 가진 사랑이 다 할 날이 있기야 할까?

아름다운 당신,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내 앞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입 밖에 내지 않고 기도하는 것 뿐일까.


Olafur Arnalds의 "August"를 듣는다. 17년 11월의 글이다.

17년 9월 30일 이제껏 없었다던 10일간의 휴가 중 5일을 보내기 위해, 교토로 갔다. 이번에도 여행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연휴 기간 동안 내가 밥을 해먹고 싶지 않았고, 이런 여행이라도 가야 연휴 동안 아무 것도 안 했다고 징징 안 대시겠죠- 라고 후배가 이야기를 했으며 때마침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비행기가 있는 곳이 간사이 뿐이었다. 계획 이라고는 아이폰을 사는 것과 일본에서 놀고 있는 후배와 저녁을 먹는 것 뿐이었다.

4박 5일 간의 교토 여행 동안 나는 아이폰을 사고 친구와 두 끼의 저녁을 먹었고 비가 오는 루리코인과 오하라를 들렀으며 사이호지에 갔다 사전 예약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일 해지는 가모가와의 강변에 앉아 시간을 보냈고 밤에는 칵테일 바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고 호텔에 가기 전 커피 하우스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여기저기 호텔이나 카페에서 밥을 먹었고 교토국립미술관과 산쥬산겐도를 들렀다. 나는 여행 내내 하고 싶은 말을 찾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아직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고 나는 여행의 기록을 정리한다. 

이번 여행기는 <낮>과 <밤> 두 개로 정리한다. 두 가지의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를 거의 완성하고 보니 어쩌면 여행의 기록을 정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핑계이고 나는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진 건지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우리에게 혹은 내가 당신에게 할수 있는 말은 제한되어 있고 나는 힘들게 힘들게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한 마디만을 여기에 쓴다.

이번 여행에도 음악을 많이 듣진 않았다. 교토는 여러분의 생각보다 조용하다. 가게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지 않고 아무 것도 듣지 않는 편이 많은 것을 들을 수 있다. 여행 중 월요일에는 종일 비가 내렸다. 이끼의 정원 위에 비가 내렸다. 당신은 어떤 소리가 날지 상상 할 수 있을까? 


가장 많이 들은 것은 Sonder의 Too fast
https://youtu.be/zZmPZDySFMI

그리고 Kamasi Washington 의 harmony of difference 앨범이다.
https://youtu.be/rtW1S5EbHgU


괜찮으면 이 글을 듣는 동안 이 곡들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 커피

커피를 좋아하십니까? 저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지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건 안하려고 드는 속물 근성 때문에 믹스 커피를 거부하고 살아온 기나긴 삶. 그 후 시애틀의 카페 체인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믹스가 아닌 커피가 당연해진 것도 20년이 다 되어 가건만. 
좋아하는 커피라면 몇 개 정도는 항상 댈 수 있지만, 커피라면 글쎄요 싶다. 콩의 차이와 배전의 차이를 아직도 모르겠다. 주는대로 마십니다. 
교토의 커피를 이야기할 때면 보통 8,90년대의 소위 서드 웨이브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콩을 쓰더라도 균일한 향과 맛을 내는 추출방식이 대세였던 시대에서 산지와 추출방법을 다양하게 하려고 했던 시도 말이다. 지금에야 당연하게 생각되던 콩 산지에 대한 애호가 대중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공급망을 통일함으로서 균일한 커피 맛을 만들려고 했던 대규모 커피 체인점이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던 지점과 일치한다. 거꾸로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산지"를 중요시하는 점이 교토인의 마음에 든걸까? 아니면 예술의 영역에 가버려서 귀찮게 변해버린 차노유(다도)에 질린 걸까. 가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만 교토의 번화가에는 골목 골목 마다 커피 하우스가 있다. 물론 교토의 여러 커피 전문점들은 길어야 겨우 100년 (그렇다, 소바 집에 500년을 넘게 하고 당고 집이 400년을 이어가는 동네에서 100년은 고작인 것이다) 정도의 역사를 가졌지만 실은 교토는 일본 내에서도 인구 당 커피 소비 량이 최고인 도시. 일찍 부터 아침을 먹으러 커피 하우스에 가보면 동네 사람일게 분명한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 지역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내는 스타벅스의 컨셉 스토어도 교토에는 두 점포나 있으며, 니넨자카의 다다미 방 형식의 스타벅스는 한국에서도 기사화가 될 정도로 이슈가 되었다. 해당 사실로만 보면 그냥 스타벅스가 노력하는구나 정도겠겠지만 교토 인들의 커피 사랑을 생각하면 그래 이 동네는 그럴만 하다 하는 생각이 든다.
교토의 커피는 조금 특이하다. 배전은 지독하리만큼 진하게 하지만 추출은 맑다. 마시는 순간 차를 마시고 있는건가 하는 착각이 든다. 내가 잘못 주문한 건가 하고 커피를 내려놓고는 맛을 느끼려고 눈을 감아본다. 기름지지 않다. 향은 훅하고 들어오는 듯 하지만 결코 진하지 않다. 그래 나는 착각하지 않았어 내가 마시는 건 차야 커피가 아니라고. 나는 안심하며 잔을 다시 들고 조금 더 마셔본다. 아 하지만 커피이다. 카페인이 올라오지도 않고 입안에는 쓴맛이 아주 얇게 남다가 날아가버린다. 고소함은 없다.
교토의 오리지널이라고 불릴만한 커피라면 역시 이노다 커피인데 커피에 밀크와 설탕을 넣어주는, 일본에서라면 특이한 커피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응당 진해야할 이노다 커피 조차도 맛이 느슨하다. 이걸 싫어해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에 극단적으로 가까우면서 결코 차의 맛은 아니며 성의가 없는 맛 또한 아니라니.
몇개의 커피 하우스에 들러서 커피를 마셨다. 의자는 딱딱하고 서비스는 과한 곳 하나 없이 딱 맞아 떨어진다. 팔짱을 끼고 괜찮은 문장이 떠오르기를 기다힌다. 교토에 와서 콜드브루 같은 걸 시킬리가 없다. 커피가 나오는데는 항상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커피가 나와도 금방 마시진 않는다 괜찮은 문장이 떠오르면 그걸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매일 아침 일찍 교토의 커피를 마신다. 좋아하건 싫어하건 교토를 시작하게 하는 것은 커피이다.


- 강변
쇼와 39년 7월 10일 일본법률 167호 하천법에 의거하여 하천은 원류에서 하구 혹은 합류 지점까지 동일한 명칭으로 통일되게 되었다. 가모가와는 비와호에서 부터 흘러나오는 “요도가와”의 지류로 요도가와는 지역에 따라 세타가와, 우지가와 등으로 이름을 바꿔 바다로 흘러가게 된다. 고도 교토를 관통하며 흐르는 강 답게 많은 문학 작품에 등장하며 때로는 그냥 “동하(동쪽의 하천)”이라고 불린 적도 있는 듯 하다.
한국인이라면 아무래도 동서를 관통하는 하천에 익숙하기 때문에 어째서 이런 곳에? 하며 방향을 착각하기 딱 좋은 북남 방향의 하천이다. 거대한 분지인 교토를 오사카와 잇는 수운으로 오랫동안 이용되어 왔으며 의외로 풍수지리적으로는 그닥 좋지 않은 위치라고 해서 후세에 말이 있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으나, 누가 신경을 쓰겠는가 이미 교토는 천년 동안의 수도였고 그 동안 험한 일도 좋은 일도 수도 없이 많았는데. 
가모가와에 오게 되면 놀랄만한 것은 수서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대도시를 관통하는 강 치고는 깨끗하게 관리 되어 있어서 특히 새들이 많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는 점 많은 사람들이 매일 가모가와 강변을 산책하거나 운동을 하고 있고 밤이 되면 산조와 시조 사이의 번화가를 중심으로 “가와도코”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가와도코는 나무로 된 바닥을 강변에 설치하여 음식점이나 술집을 강변에서 영업할 수 있게 한 장소인데, 밤이 되면 가와도코에서 설치한 노란 색 등롱들이 아름답게 빛난다. 결코 밤의 어둠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명을 설치해두었다. 
이런 가와도코를 제외하고도 강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밤의 강을 감상하는데 일본인들이 그들 사이의 심리적인 거리를 자조적으로 “가모가와 등간격의 법칙”이라고 일컬으며 이런 무리들 사이는 자동적으로 등간격으로 배치된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데 과연, 딱히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 없이 다들 적당한 간격을 두고 강을 바라보고 있다.


- 숨

아마노산 콘고지의 목조 대일여래상은 항삼세명왕, 부동명왕과 같이 한 조로 취급되고 있지만 <국보>를 주제로 한 이번 교토 국립박물관의 전시에는 대일여래와 부동명왕만이 전시되었다. 
실상, 불상 미술은 간다라 미술에 의해서 기초적인 기술은 모두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신성한 인간, 혹은 신으로서의 불상을 표현하는 방법 자체는 끊임없이 발전과 쇠퇴를 거듭해왔다. 신상이 상당한 과장, 데포르메를 가진 다는 것은 상식이다. 보통 거대한 인체의 형태를 하는 신상은 거대할 수록 그 모습을 한 눈에 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작가는 신상의 머리를 상대적으로 크게 설계하고 참배자가 바닥에서 “우러러”볼 때에 자연스러운 위엄을 갖도록 한다.
태양의 화신이자 우주 제공의 조화를 상징하는 대일여래, 그리고 그 대일여래의 뜻을 받아 일체의 장애를 제거하는 그의 분노를 나타내는 이 부동명왕.
이 두 상도 동일한 강조와 불균형을 통한 조화를 통해서 만들어졌는데 기본적으로 실제 인체의 몇배나 되는 형태를 한 이 좌상들은 조형미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물론 우주가 혼돈 속에서 태장의 질서 속에 수태되고 완성되는 모습을 그리긴 하나, 이 조상의 기본 목적은 장엄함과 숭고함에의 표현이다. 아름답지 않아도 좋다. 설령 그것이 공포라도 좋다. 이걸 보는 자들이 이 앞에 엎드리고 신의 세계를 편린이나마 맛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종교 철학의 구현이다.
부동명왕. 자리에 앉아 항마의 검과 금강삭을 지닌 채 자신의 앞에 선 참배자를 휘둥그레 쳐다보는 이 명왕은 정면이 아닌 아랫쪽에서 볼 때 솟아오른 어깨와 부푼 흉곽 때문에 자연스럽게 명왕의 동작 - 숨을 들이키는 호흡과 오른 쪽의 칼을 들고 휘두르려는 준비 자세-을 떠올리게 된다. 명왕의 정면에 있는 이상 그의 시야 밖을 벗어날 수 없다. 항마의 검은 당신을 향하며 금강삭이 겨누고 있는 상대는 당신이 된다. 신상이 숨을 다 들이키는 순간 동작은 시작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다. 아무리 정교하다고 하여도 목조로 만든 신상이 움직일리가 없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이 숨을 들이쉬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일여래. 원래는 가운데에 놓여있어야 할 이 금색의 조상은 부동명왕의 상과는 반대이다. 그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지혜의 수인인 지권인을 한 대일여래는 황금 빛으로 빛나며 눈을 반쯤 감았다. 그의 숨은 고요하며 들이키는 숨이 아니라 들이내쉬는 숨을 암시한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당신을 벗어난 모든 세계이며 그게 비추는 것은 당신을 포함한 모든 세계이다. 
내쉬는 대일여래와 들이쉬는 부동명왕. 세계는 불타의 한 호흡 위에 놓인다.


- 나무
서기 594년 건립된 오하라의 잣코인에는 일본의 유명한 “헤이케이이야기”에도 나오는 소나무가 있다. 그 구절은 대략 1186년의 봄, 고시라카와 법왕이 오하라에 행차하며 헤이케 일족의 명복을 빌고 있던 겐레이몬 도쿠코를 방문하는 장면이다. 
나카시마의 소나무에 기대어...애달프게 너울거리는 보랏빛 등나무 꽃이여, 라고 시인은 읊는다.
이 유명한 나카시마의 소나무는 2000년에 발생한 본당의 대화재로 큰 피해를 입고 2004년 말라죽고 만다. 
오래된 이야깃 속에서 옛날과 지금을 이어주던 천 년의 세월을 보낸 소나무를, 지금의 우리는 흔적만을 볼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가 아니 어떤 사람들이 이 나무를 너무나 사랑하여 천년을 살게 했으나 그들의 사랑으로 조차 나무의 생명을 더 이어지게 하는 것은 어려웠구나. 



- 창
어두운 방안에 빛이 들어오고 손 때가 묻어 까맣게 되고 만 기둥들, 꺼끌꺼끌한 다다미. 사람들이 그 위를 걸어다니는 소리. 이끼 낀 정원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또 하나의 눈꺼풀을 감는다. 
눈꺼풀 뒤에 있는 방, 자리에 앉아 어딘가에 있는 창문을 연다. 볕이 충분히 들어오도록. 
나는 한참을 창 앞에 서서 소리를 듣는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언제인지 모를 녹색의 계절들이 스치면, 이윽고 충분하리만치 볕이 들어온다. 빛을 받은 사물의 윤곽선들은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한다. 색은 더 진해지고 형태는 더 분명해진다. 사물들은 따뜻해져가고, 그 직선과 곡선의 모든 형태를 더 날카롭게 빛내는 것도 잠시. 무너져내린다. 흐트러진다. 
먼 곳 하얀 모래의 별이 모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부드럽게 가라앉는 것 같다. 나는 우리를 지탱하는 것이 그림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색도 윤곽도 모두 그림자가 벌인 행위임을. 빛이 오는 쪽으로 몸을 돌린다. 녹아없어지는 형태들. 밤이 오길 기다린다. 우리는 어두운 곳에서야 말로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인식 안에서 존재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혹은 우리 유인원 류는 두 가지 사건을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연결된 것으로 인식하는 사고-인과-를 발명해냄으로서 서사와 논리를 만들어냈다.

 어째서일까, 좀처럼 글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토마토 스프를 끓이고 빵을 버터에 발라 구워먹었고 미드를 한 시즌 통채로 보고 나니 그제서야 뭔가를 써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담배를 필 줄 알았다면 글을 시작하기 편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나의 동료 일반 인간들, 혹은 유인원들의 사고체계와는 다르게 이 글은 논리적인 서사가 없다. 

 17년 5월 31일 부터 6월 7일 까지 홋카이도를 여행했다. 올해로 3년 째, 초여름에 홋카이도를 여행하고 있다. 이미 길고 긴 홋카이도 여행기를 쓴 적이 있기 때문에 굳이 여행기를 쓸 필요는 없겠지만, 나중을 위해 간단한 메모를 써서 남기려고 한다. 친구는 이번에는 음식에 대해서만 정리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는데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 전과 같이 플레이 리스트와 먹을 것에 대해서 정리하겠다.

- 프롤로그
 여행의 주제가는 Codes In the Clouds <Where dirt Meets Water>였다. 여행 중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이다. 이지리스닝에 가까운 곡(뭐라고? 이지 리스닝을 뭘로 보는거야) 이고 실은 어느 곳에 있어도 듣기에 알맞은 노래였다. 무섭도록 홋카이도의 어느 곳에서도 잘 어울렸다. 아마 아이누 민속 체험을 할 때 들었어도 좋았을 노래이다. 문과생의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노래의 제목이었다. 

 그 다음은 Kyte <Boundaries> 낮은 선율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같은 가사가 반복된다. Hear Silence choking you, Listen to the World. Run away speaking true, Break down in the cold. 라고. 맙소사 가사가 왜 이래. 하고 계속해서 들었다. 홋카이도에 있을 때는 항상 세상의 끝을 생각하게 된다. 거기에 무엇이 있든지 간에 끝을 바라보는 것은 내 나쁜 습성인지도 모르겠지만 홋카이도에서 나를 가장 매혹시키는 것은 바로 그 어떤 경계를 넘어선 듯한 느낌이다. 네 물론 동네 마다 24시간 편의점이 있는 섬에서 그런걸 느끼다니 자의식 과잉은 확실합니다.

 여행 내내 별 심각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주변을 흘끔 거렸고 그렇지 않을 때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나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문제다.

- 오타루의 플레이 리스트
 이 곳에 마을이 생겨난 것은 1596년, 1800년대 초의 홋카이도 개척 초기에만 해도 오타루는 삿포로보다 훨씬 커다란 홋카이도 제2의 도시였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와 고풍스러운 일본은행 건물,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있는 회관들. 모두 좋았던 오타루를 보여주는 유산이다. 지금이야 삿포로의 위성도시에 관광업으로 유지되고 있는 작은 거리가 되었다. 물론 도시 자체의 활력도 많이 줄어들어 오후 6시가 되면 거의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고 거리에선 사람들이 자취를 감춘다. 아무리 비성수기의 거리라지만 너무했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얼마나 신나던지!


 숙소가 보통 오타루라고 얘기하는 오타루 운하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오타루 짓코였기 때문에 항상 산책을 하며 왔다갔다 할 수 있던 점은 좋았지만 홋카이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황폐한 곳이 군데군데 있었다. 뉴욕의 힙스터들 한 떼가 몰려들어서 이제부터 갤러리를 열겠다고 선언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거리는 결국 사람의 흐름, 아무리 관광지가 되어 유지가 된다고 해도 그 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정한 흐름이 도시를 성장시키고 유지시킨다. 오타루가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얼마나 유지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이 곳에서는 오타루 짓코의 보트 선착장을 바라보며 Glenn Gould 가 녹음한 Bach BMW 988, Bach BMW 1048 을 들었다. 그냥 바다를 보면 바흐를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보통은 그냥 사무실에 있을 때 듣고 싶어집니다만 네...그냥 좋아해서 들은 거 로군요. 겨울 바다도 아닌데 슈베르트나 쇼팽을 들을 순 없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겨울에 여길 왔다면 블루스를 들었겠지 싶다. 밝고 명랑한 Analogfish <Baby soda pop>은 어떨까? 오타루 짓코의 밤 풍경은 멋지다. 그리고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몹시 낭만적인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 오타루의 거리
 나는 홋카이도 여행을 가는 사람들에게 항상 오타루는 여행의 마지막에 배치하도록 권유하는데, 보통은 말을 듣지 않는다. 삿포로에서 너무 가깝기 때문에 무심코 오타루에 먼저 가게 되는게 아닐까 싶은데 하여튼 오타루는 홋카이도 3대 과자 대장인 롯카테이, 르타오, 기타카로가 거리 하나에 모여있기도 하고 오르골 공방 등 도 있어서 자칫 잘못하다간 세일만난 비단장수 처럼 봇다리 단위로 쇼핑을 하게 될수도 있다. 더 안 좋은 경우는 오타루에서 잔뜩 산 과자를 홋카이도 여행 내내 다 먹어치우고 출국하기 전에 한 번 더 사는 것이다. 당신이야 말로 오타루 지역 상권의 수호자이십니다.

 특히 르타오는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거지만) 이름부터가 오타루(おたる)의 애니그램 (オタル->ルタオ)이라서 그런지 도시 전체에 아주 각양 각색의 컨셉의 르타오 지점이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들 6시 전에 문을 닫았다 어쩌란 말인가) 수공예품과 디저트를 좋아한다면 오타루는 정말 개미지옥 같은 곳이다. 내가 추천하는 곳은 오르골 공방과 캔들 공방 정도. 특히 캔들 공방은 해외의 희귀한 캔들이 많아서 항상 공부하겠다는 경건한 마음으로 들르게 된다.

 다양한 경로로 미스터 초밥왕을 읽은 한국인에게 오타루의 먹을거리라면 역시 스시인데, 초밥 거리가 있을 정도로 스시가 유명한 오타루에서 기대한 만큼 맛있는 스시집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생선의 신선도가 아주 뛰어난데도 실제로 스시로 먹어보면 기대한 만큼 맛있지 않다. 아니 어째서 이 곳은 쇼타의 고향이 아닌가.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도 오타루의 스시에 대해서는 기대가 높지 않았는데, 친구의 추천으로 스시집 ㅋ의 오마카세를 시켜보고 그냥 내가 스시를 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스시를 꽤나 먹어봤다고 해도 내가 스시와 스시의 재료에 대해서 뭘 알겠는가. 스시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것은 초밥을 쥐는 요리사. ㅋ에서 스시를 먹은 후 뛰어난 재료를 선택하고 기술을 다해 만들었을 때 스시가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렇게 맛있는데 인당 오천엔 오마카세라니, 인류에게 재능을 기부해서 다음 생에 진짜 좋은 걸로 태어나시려고 그러는 걸까.일본어를 모르면 예약도 주문도 안되는 시스템인데(예약할 때 오마카세로 할 것인지 다른 요청이 없는지 물어본다) 스시를 먹다 보니 중간에 예약없이 중국인 청년이 식사가 가능하냐고 물어보러 들어왔다. 거절하시는걸 보고 딱 예약 받은 만큼만 재료를 준비해두신다는 걸 깨달았다. 과연... 그리고 이 년 전에 예약 없이 ㅇ스시집에 갔다가 거절당했던 기억이 나서 왠지 유쾌해졌다.

 가장 맛있던 것은 광어 같은 기본적인 재료였는데, 사장님께서는 도키사케(홋카이도의 자연산 연어이다)같은 걸 더 맛있다고 생각할거라고 생각하셨는지 좀 시무룩해 하셨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일본의 오래된 도시는 항상 그렇듯이 소바가 맛있었다. 오타루에서 스시를 못 먹겠으면 그냥 소바를 먹는게 좋을 것 같다.


- 샤코탄, 바다와 하늘과 카무이미사키
 샤코탄은 오타루의 서쪽에 있다, 비쿠니 같은 어항도 있지만 바다에 맞닿은 산으로 이어진 지역이라 교통이 불편하다. 샤코탄에 가는 길의 버스에는 나 말고 세 명 밖에 손님이 없었다. 제복을 입은 운전기사가 모는 버스는 조심스럽게 시골길을 달렸다. 해변을 달리다 나무로 만든 집이 가득한 마을에서 방향을 돌려 산 위를 오른다. 샤코탄은 산과 바다가 맞닿은 곳이다. 가는 도중에 내가 먹은 체리 냄새가 났고 길가에는 작약도 패랭이도 아닌 보라색 꽃이 잔뜩 피었다. 오르막 길 옆 산 속에는 야구장이 있고 그 너머의 숲은 푸르렀다.

 비가 왔기 때문에 카무이미사키를 갔지만 오래 체류하지 않았다. 바다가 아름다웠지만 기후에 따른 영향이 커서 날씨가 맑은 날에만 샤코탄이 자랑하는 "샤코탄 블루"를 볼 수 있는 것 같다. 바람이 조금만 쎄도 위험해서 올라가는 길을 폐쇄한다고...
그도 그럴 것이, 1900년대 초반에만 해도 카무이미사키의 등대에 살고 있는 등대지기 일가가 해변의 길을 건너 등대로 가다 사고를 만난 적이 있었을 정도로 외진 곳이다. 이 곳에 있는 염불터널은 위에 나온 등대지기 가족의 사고 이후 만들어진 터널이다. 양쪽에서 파기 시작했지만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아 염불을 외우면서 서로 방향을 맞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안 쪽에서 두 번이나 꺾이는 동굴이 되었다.(지금은 폐쇄된 곳이다)

 여러가지 전설이 있지만 사실 바다의 끝에 닿은 카무이미사키의 아름다움에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운 이야기는 없다. 어떤 이야기도 이 곶보다 아름답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갈대가 핀 언덕을 오르면 곧 관문이 보이고 그 뒤로 곶이 보인다. 관문 뒤로는 보이는 것은 하늘과 바다.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고 그 발판은 몹시 좁았다. 분명 끝까지 올라가면 스크롤이 올라가고 엔딩이 나왔을 것이지만, 나는 아직 엔딩을 볼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중간에 돌아왔다. 카무이미사키 끝까지 가 보신 분은 알려주세요 엔딩 나오던가요.

 여기서는 아무 노래도 듣지 않았다. Death cap for cutie <I will Follow you into the Dark>를 들었으면 어떨까 싶다. 돌아오는 길에는 Arizona <Oceans Away>를 들었다. 버스의 창으로 빗방울이 부딪히고 거칠어진 바다가 아름다웠다. 지금 생각하면 이현우 10집의 <마취>도 괜찮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 삿포로의 샌드위치
삿포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번 썼다. 특히 몇 번이고 길을 잃고 있다는 얘기를 썼는데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길을 잃었다. 더 이상은 슬퍼서 쓰지 않겠다.
친구가 삿포로는 샌드위치가 맛있다고 했을 때 나도 샌드위치라면 환장하는 몸이지만, 정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외국인들은 한국에 오면 "닭한마리"를 먹는데 나는 그런 걸 먹어본 적이 없다. 그냥 한국인 블로그에서 돌아다니는 정보인가 하고 생각했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홋카이도의 노포 카페인 ㅅ에서 먹은 샌드위치는 엄청나게 맛있었다. 계란 샌드위치와 가츠 샌드위치는 나도 워낙 좋아하다보니 자주 먹었는데 이 곳의 샌드위치는 진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단연 이제까지 먹었던 모든 계란 샌드위치 보다 맛있었고 같이 시킨 후르츠 샌드위치는 소박 단순하나 대단한 맛이었다. 아주 신선한 부드러운 촉감의 하얀 빵에 신선한 제철 과일을 넣고 빵의 부드러운 식감에 지지 않는 살짝 단 신선한 크림을 넣으면 완성되는 샌드위치다. 내가 너무 신선함과 부드러움을 남발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먹어보면 알 수 있다 소프트 앤드 신선데쓰.

 오도리 공원 벤치에 앉아서 울면서 먹었다. 다음에 홋카이도에 가게 되면 꼭 다시 먹으리라.

 그러고보니 친구가 추천해준 홋카이도의 먹거리는 모두 다 맛있어서 이런 것이 재능의 차이인가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 친구는 홋카이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면서 "이거 맛있을거야"하고 추천해준 것이다. 그 때의 나의 마음은 서울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홋카이도처럼 맛있는 후르츠 샌드위치는 만들지 못할거라고 생각했을 때의 감정과 비슷했다.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질투한 것처럼 질투가 났다.

 삿포로를 떠나면서 들은 노래는 신나는 락 음악인 Jimmy Eat World <The Middle>과 Gnash <I hate u, I love u> 좀 복잡한 심정이었다는 걸 밝혀둔다. 노래를 그닥 열심히 듣지 않았기 때문에 라인업이 거의 비슷비슷하다.


- 도야호
 여행 중에 마지막 까지 고민한 루트가 바로 이 도야호로 가느냐 아니면 니세코로 가느냐 였다. 렌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삿포로까지 송영버스를 보내주는 도야호로 가게되었다고 합니다. 보고 싶었던 요테이 산은 버스 안에서 볼 수 있었다. 도야호로 가는 길과 도야호에 도착해서까지 생각이 이것저것 많아서 복잡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 여행이 힘들어진다.

 하지만 도야호의 리조트에 도착하고 호수를 한 바퀴 걷자 많은 것들이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용기가 생겼다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계속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는 아름다웠다. 체류한 2박 동안, 호수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는데 전혀 질리지가 않았다.
처음 봤을 때의 거칠어진 호수도, 다음 날 나카지마에 다녀와서 낮잠을 자며 보았던 호수도, 날이 흐려져 수묵화로 그린듯했던 호수도. 그리고 매일 밤의 불꽃놀이와 비오는 하늘 아래서의 온천을 하며 보는 호수도 좋았다. 맑은 날이면 호수 너머로 요테이 산이 보였다. 분명 누군가는 산을 보고 신을 떠올렸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당신을 떠올렸다고 대답할 것이다.

 비가 오지 않는 숲을 올라 꼭대기에서 공터를 걸었다.
 비가 오는 산을 올라 꼭대기에서 구운 계란을 먹었다.

 이렇게 이틀 밤을 보냈다.

 이곳에서 주로 들은 곡은 Olafur Arnalds <Near Light>, Douglas Dare <Swim> 이다. Arnald의 노래를 이지 리스닝의 부드러운 곡이지만 Swim은 불안하고 슬픈 곡이다. 날씨가 안 좋을 때 도야호는 먹물로 만들어진 세계처럼 변한다. 우리가 호흡하는 것이 공기가 아니라 물로 만들어진 무언가고 저 하늘은 우리가 알기 전에 물에 잠긴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나는 너무 많은 물을 보면 두려워진다. 그래서 이런 곡을 들었던 것 같다.

- 도야호 온천 리조트의 식사
 온천 리조트의 식사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온천 료칸의 식사라고 하면 좀 환상을 가지고 있겠지만, 혼자서도 씩씩하게 료칸을 잘 가는 저는 거기에 환상이 없습니다. 맛있는 곳은 맛있고 맛 없는 곳은 맛없지만 가격은 평등하게 비쌉니다. 그래서 의외로 온천 료칸과 리조트의 식사는 신경써서 고르는게 좋다. 굳이 고르자고 하면 리조트 쪽을 더 좋아하는데, 식사가 망할 가능성이 적고 온천 탕이 다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에 묵었던 ㄴ리조트의 식사는 훌륭했다. 부페의 퀄리티는 그냥 먹을만하지 싶었지만 따로 주문하였던 가이세키 석식/조식은 둘 다 수준급이었다. 가이세키 요리를 시키면 꼭 전반부에 사시미가 나오는데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막판에 나오는 튀김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시미도 튀김도 단독으로 먹을 때 훨씬 맛있다.

 실은 내가 일본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얀 쌀밥과 밥반찬. 절대로 부페로는 나올 수가 없는 맛이다. 야채 요리를 먹으면 그 지역의 음식문화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밥과 함께 오이절임 같은 걸 우물우물 씹고 있노라면 일본여행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국그릇에 뚜껑을 열고 국을 마시고 우물우물 밥을 씹는다. 정말로 잘 먹었습니다 하는 인사가 나온다. 물론 제가 이번에 먹은건 음식이 나오기 전에 전체 코스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요리장의 도장까지 찍히는 그런 가이세키였습니다. 미안합니다. 하나도 안 소박해.


- 비에이의 거리
홋카이도에 왔을 때 한 번도 비에이를 빼먹은 적이 없다. 아름다운 언덕과 그 바람들을 잊을수가 없다. 이번에도 청의 호수(아오이이케)에 다녀왔는데 비도 오고 성수기도 아닌지라 사람이 나 외엔 딱 두 명 밖에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듣고 있는 곡은 Olafur Arnalds & Nils Frahm <Life Story>이지만, 비에이에서 계속 흥얼거린 노래는 Beatle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Yellow submarine>이다. 그 외에 자이언티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선곡하는 재주는 없는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구릉을 넘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푸른 언덕을 넘어서 바람이 불고 멀리 나무가 보이는 곳에 올라오면, 나는 이 곳이야 말로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곳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을 생각하면 머릿 속 어딘가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 비에이의 야채
 이번에 먹은 것은 만날 가서 먹는 대중식당 ㅈ의 튀김덮밥과 레스토랑 ㅇ의 요리.
한국인에게 너무 잘 알려진 것이 틀림없다. ㅈ에 들어갈 때는 한 무리의 붉은 등산복 한국인들이 있어서 압도당하고 말았으나 변함없이 맛있었다. 물론 큰 소리로 가게에서 떠드는 사람들 덕분에 피곤해졌다. 도대체 왜 본인들이 무리지어 있으면 좀 시끄러워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달리 생각해보면 한국인 등산객(등산객이 아닐수도 있다, 그냥 등산복을 입었을 뿐이다) 한 무리가 있는데 조용하다면 그거대로 무서울 것 같긴 하다. 

 먹는게 정말 즐거웠던 것은 역시 레스토랑 ㅇ의 요리. 특히 야채요리는 아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요 싶을 정도로 맛있었는데, 풍요로운 비에이의 밭에서 자란 야채인만큼 삶고 끓여서 그릇 위에 올려놓은 것만으로도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알고보니 얼마 전에 미슐랭에 새로 등재되었다고, 비에이에는 미슐랭에 등재된 가게가 둘이나 있는 셈이다. 한 곳은 프렌치, 다른 한 곳은 이탤리언이다.

- 후라노의 멜론
 (달리 쓸 곳이 없어서 비에이 부분에 쓰는거다) 내가 좋아하는 멜론은 후라노에서 판매하는 칸탈로프 멜론인데, 이제까지 유바리시에서 재배하는 유바리 멜론과 같은 종으로만 알고 있다 아무리 먹어봐도 맛이 달라서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유바리킹멜론은 스파이시 칸탈로프와 얼즈페이버릿을 교잡한 종으로 일반 멜론에 가까운 맛과 식감이 특징이라고 한다.
실은 후라노의 멜론이 유바리보다 수확철이 좀 늦기 때문에 이번에는 먹지 못했다. 홋카이도의 멜론 하면 유바리를 떠올릴 정도로 일본인의 유바리 멜론 선호도는 절대적인 것 같다. 그러나 내 입장에선 보수적인 유바리 멜론보다는 부드럽고 진한 후라노의 레드퀸 품종이 좋다.

 이제까지 몇 번이나 홋카이도의 멜론 얘길 하면서 후라노의 멜론이라고 정확하게 적지 못한 것에 도의적인 책임을 느낀다. 다음에 여름의 홋카이도를 방문하게 된다면 더 열심히 후라노의 멜론을 먹어줄 생각이다. 굳은 결심을 한다.


- 삿포로의 스프카레
 역시 스프카레라고 하면 야채인가. 이번이 스프카레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것 같은데 항상 고기투성이의 녀석을 먹다가 이번에는 야채 위주의 녀석을 먹었더니 즐거웠다. 꼭 겨울밤 땅에 묻어놓은 야채를 꺼내다가 자 스프 해먹자 하고 호호 불어가며 먹는 느낌이다. 홋카이도 대학 앞의 스프카레 집이었다. 국적불명의 인테리어에 딱히 인도 같지도 않고 네팔 같지도 않은게 맛은 일본풍이었다. 왜 이런 집이 맛있는 걸까. 한국에서 이런 디스플레이의 집은 100%의 확률로 맛이 없다. 

 홋카이도는 치사하다 고기도 싸고 맛있는 주제에 야채도 싸고 맛있다. 한국은 어차피 농산물시장 개방할거면 쌀 농사 말고 밭 농사 위주로 구조를 바꿨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맛있고 신선한 야채는 항상 수요가 있다. 이미 망한거 어쩔수 없긴 합니다만 아쉽다.

- 삿포로의 징기스칸
 이번에 와서 안 건데, 징기스칸도 여러가지 스타일이 있었다. 처음 징기스칸을 먹은게 아사히카와, 그리고 그 다음이 다루마 - 둘 다 비슷한 한국식 고기 요리이다. 판 위에 야채를 깔고 양고기를 먹지만 소스 같은 것은 올리지 않는다 - 였기 때문에 꼼짝없이 징기스칸이란 양고기를 한국식으로 먹는 요리이다. 하고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 가본 마츠오의 징기스칸은 탕이 있었고 그 외엔 양고기와 야채 위에 소스를 뿌린다. 그리고 그것은...불고기 양념입니다. 어찌 되었든 한국식 고기 요리였습니다. 취향인 쪽은 다루마 같다 아무래도.

- 마지막, 소프트 아이스크림
 공항에 내려서, 그리고 공항에 돌아와서 르타오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훌륭한 맛이었다.
여기에 쓰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여행 내내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계속 사먹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제일 훌륭했던게 바로 이 공항에서 먹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이었다. 왜 이 곳의 소프트가 맛있는지야 100개도 넘는 이유가 있겠지만, 소프트크림을 먹으며 이 여행을 오게되서 잘 되었다는 생각했다. 

 홋카이도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그것은 홋카이도에 오는 아주 훌륭한 이유가 된다.


- 에필로그
에필로그 곡을 고르는게 쉽지 않다. 어쩐 일인지 여행 중에 한 번도 듣지 않았던 노래를 고르게 된다.
밝고 명랑한 락인 The Charlatans <So Oh>, Kleerup <With Every Heartbeat> 그리고 (나에겐) 항상 홋카이도를 기억하게 하는 John Butler Trio <Young And Wild> 이 정도가 좋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한다면 여행 도중에 저스틴 비버의 <What do you mean>을 꽤 들었다. 좀 복잡했던 것 같다.

 굳이 추가 한다면 한 곡을 더 추가하고 싶다. Aaron Carter <Sooner or later>란 팝 음악이다. 이 글을 고치면서 이 곡을 들었다.

"빠르든 늦든 그녀는 시카고로 떠날거야, 빠르든 늦든 그녀는 가버릴거고, 나는 그녀에게 뭐라도 이야기를 해야해"

 이 노래는 결국 용기에 대한 노래인 것 같다. 나는 용기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할 자격이 없다.


 지난 1월 여행 후 나는 반성이 없는 삶의 훌륭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몇 년 간 나는 계속해서 고민-꼭 다른 생에 있었던 일처럼 멀고 먼, 그러나 아직도 나와 같이 있는 그런- 하고 있는 것이 있고 나는 그 고민이 어떤 형태로도 해결 될 수는 없으나, 어딘가에 그에 대한 답, 혹은 보답이 있을거란 희망을 갖고 있다.

 여행 중에 문득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과거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는 오지 않았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연속 선상 어디에 우리가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건은 계속해서 과거가 되어간다. 

 그렇다면 인과와 순차적인 사고 방식-서사-의 노예이길 거부한다면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총합이 현재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들에 의해서 과거가 선택적으로 기억되어지는 것이라면.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기억이 바로 과거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 쯤의 좌표에서 당신의 인생에 놓이게 될까. 

 우리가, 우리를, 어디서부터 우리라고 여기고. 어느 시점에서 드디어 만났노라고 말 할 까.

17년 6월11일의 글이다.


이 포스팅은 17년 3월 4일부터 7일까지 나의 트위터 계정 @currydevil 에 작성하였던 <교토 여행의 기본>트윗타래를 정리한 글이다.

굳이 트위터의 타래를 여기다가 다시 정리하는 이유는, (1) 틀린 내용과 오타가 많아서 내가 거슬리고 (2) 타래가 너무 길어져서 내가 읽기 곤란해졌기 때문이다.

많이 틀린 내용은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트윗 타래 자체가 교토 초행길의 사람들을 위한 온전한 어드바이스 수준이다.


트위터에 교토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으나, 교토 여행을 가보고 싶으신 분 흥미가 있으신 분을 대상으로 <교토여행의 기본>에 대해서 타래를 쓰겠습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오늘 한가하고 저는 항상 분석하고 정리하고 분류하는 습성이 있거든요.

1. 왜 교토 여행인가요 이것은 교토 여행을 가고자 하는 분들에게 제가 묻고 싶은 부분입니다. 지금 시대의 여행은 예전보다 훨씬 안전하고 자기가 가진 조건에 따라서 손쉽게 여러 여행지를 비교할수 있습니다. 제주도든 상트페테르부르크든 정보는 넘쳐나죠

아마 교토를 여행하고 싶으시다면 이미 어떤 것이든지 "이유"를 가지고 있으신거겠죠? 간단히 교토를 다른 여행지와 비교하자면, 한국에서의 이동시간은 짧습니다. 간사이 공항에서 1시간 이내니까 반나절이면 도착할수 있고 비행편은 항상 넘치죠.

숙박? 1400년 가량 끊임없이 사람들이 왕래했던 도시 답게 싼 숙박업소에서 최고급 숙박업소에 특이한 숙박업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15만원대 정도로 약간 비싸죠. 음식? 걱정마세요 다양한 가격대로 양질의 요리가 있고 한국이냐 양식 요리도 있습니다.

기후요? 아 이건 좋은 점수는 못주겠네요. 교토의 여름은 길고 후덥지근 하죠. 상쾌하고 아름다운 휴양지는 아니에요. 도심지의 공기는 은근히 좋지 않고 차도가 좁아 기침이 나옵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여행지로 나쁘지 않아요.

오히려 교토의 여러가지 조건은 한국인에게 여행지로서 축복이나 다름없는 곳이죠. 저는 이런 분들에게 교토 여행을 권하고 싶습니다. 1. 한 번도 교토를 안 가본 분 2. 미술에 관심이 있으신 분 3. 힙스터 4. 가벼운 가족여행 5. 산책이 좋은 분

이런 분들에게는 교토를 권하지 않습니다. 1. 걸어다니기 싫은 사람 2. 울버린 3. 투덜이 4. 야채 싫어하는 사람 5.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방사능 때문에 불임 판정을 받은 사람 6. 동남아 밤문화를 검색해본 사람

2. 교토란 어떤 곳일까요? 사전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지금 현재의 교토에 대해서 얘기 하자면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땅값이 오르고 투자금이 모이고 있는 곳으로 오랜 기간 침체해 있었던 간사이 경제가 살아나는 증거이기도 하죠.

-다시 말해 약 천오백년 동안 교토는 일본국의 문화 중심지였고 누적된 유물유적은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을 정도이나, 동시에 그로 인해 일본 미술의 가장 중요한 중심축이고. 그 기반 하에 모여들고 있는 자본으로 세련된 취향이 모여들고 있는 곳입니다.

여행자에겐 축복. 그야말로 종합 선물세트와 같은 곳입니다. 사실 교토에서 할수 없는 여행 액티비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익스트림 스포츠(장기나 바둑은 가능) 2. 레알 마드리드 경기 관람(TV로는 가능) 3. 한 반지를 용광로에 넣어서 멸망을 막음

거꾸로 말하자면,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교토에 여행을 가려는 사람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히 정해야합니다. 네이쳐 리조트도 아니면서 어떤 시기에 어떤 곳을 가는가, 가 너무나 중요한 곳이 바로 교토입니다. 하고 싶으신게 있나요?

제가 오늘 교토에서 잠이 깬다면,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가벼운 차림으로 근처 카페에 들어가 빵으로 아침을 먹을 겁니다. 숙소는 시조에서 시치조 사이. 오전에는 뒤돌아보는 불상이 있는 에이칸도에 가서 사진을 찍다가 점심때 소바를 먹으러 갑니다.

이동은 자전거를 빌려도 되지만, 그냥 걸어다닐거에요. 교토는 오래된 도시라 모든 것이 걸어다니는 것 기본으로 도로가 짜져 있죠(그 덕에 자동차와 도보길 사이가 너무 가까워요) 소바를 먹으니 좀 귀찮아져서 교토시립미술관에 갑니다. 빨간 벽돌의 건물이죠

다 보고 나니 다른 사원에 들르기엔 시간이 좀 많이 지났어요. 기온 구석진 골목 안쪽 보이지 않는 구석에 제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어요. 떡과 차를 마시니 힘이 나서 단골 골동품 가게에 들러 인사를 하고 숙소에 돌아가 1시간 정도 오후 늦잠을 잡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멋진 야채가 나오는 유토후(끓인 두부)집에 설렁설렁 걸어가 밥을 먹습니다. 밤의 교토는 어둡고 가게들의 조명은 밝지 않아요. 샛길로 가모가와의 강변을 거닐다 맥주를 한 캔 따서 둔치에 앉아 마셔요. 오늘은 그믐달인것 같은데..

숙소에 돌아가면 8시 정도죠. 교토에 오면 항상 석양을 보는데 오늘은 오후 늦잠을 자느라 석양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내일 보죠. 내일도 느즈막히 일어나 어디에 갈지 정할겁니다. 자 저의 이상적인 교토 여행은 이런 식입니다. 실은 이렇게 못하죠

제가 교토여행을 갈 때 마다 미친듯이 돌아다니고 헥헥 거리고 먹어치우고 검토하고 도로를 질주하는걸 트위터에 날 것으로 쓰고 있지만, 그런 것만이 교토여행이 아니라는 의미로 쓴겁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오래된 거리를 걷고 커피를 마시는 것도 교토입니다.

맘에 드셨다면, 교토여행의 기본에 대해서 좀 더 쓰도록 하겠습니다. 여행의 기본은 예산과 일정, 그리고 숙소겠죠? 마음에 드셨나요?


3. 교토를 가려고 하는데요 네, 앞의 1,2번을 읽어서 그러신건 아니겠지만 교토에 가시려는 분이군요. 여러가지 질문이 있으실거에요. 처음가시는 분인가요? 아니면 곤란한데요 이미 가봤으면 알아서 공부해서 가거라...어른이면 그렇게 살아야지?

일단 예상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드리자면 교토에 가면 이곳을 가야한다! 같은건 없어요. 금각사가 어쩌니 기요미즈가 어쩌니. 솔직히 님 취향도 모르면서 그런걸 말씀드리긴 쉽지 않아요. 얼마나 있는게 좋냐고요? 글쎄요 그건 님 사정이죠!

하지만 처음가시는 분들이니까, 팁을 드리죠. 인천공항에서 간사이로 가는 첫번째 비행기는 8시에서 9시 사이에 있어요. 이동시간은 항공 1시간 40분, 게이트 빠져나오는데 약 1시간, 철도로 간사이에서 교토까지 약 한 시간.

다시 말해 아주 빨리 당일날 교토에 도착한다면 1시입니다. 돌아올때요? 돌아오는 가장 늦은 비행기는 약 저녁 7~8시입니다. 역산하면 다섯시까지 공항 도착 여유 잡고 출발시간을 잡으면 3시 정도. 교토에서 마지막 점심을 먹고 공항에 가시면됩니다

일정 얘기를 가장 처음에 말씀드린 건 주요 관람지가 9시에 열어서 4시정도로 닫기 때문에 저같이 미친 사람이 아닌 이상 9시 입장 2시간 관람 1시간 밥먹고 이동해서 2시간 관람, 이렇게 하루 두군데 이상은 관람이 어렵습니다.

밥집? 괜찮은 카페들은 5시에서 6시경 문을 닫습니다. 점심? 보통 2시에서 4시까지는 런치 후 휴식시간 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구경하고 먹고 다니고 싶어도 다 문을 닫으니 천천히 느긋하게 구경하는 것이 교토 여행의 기본입니다. 일정이 그려지시나요?


일정 정리 첫째날: 아침 출발, 점심때 교토 도착, 오후 피곤해서 기절, 밤 밥먹고 잠 두번째날~귀국 전날: (하루 두 군데씩 일정) 귀국날 아침 먹음, 쇼핑, 점심 먹음 공항으로 가서 밤 늦게 공항 도착. 울면서 집에 감 이런 형태가 되죠.

그리고 예산. 교토는 아아주우 비싸게 다닐수도 있습니다. 재미삼아 2박 3일짜리 여행을 400만원 정도로 셋팅 해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가시는 분이라면 이 정도로 생각해주세요 항공권 왕복 30만원, 1박 숙소 12만원 오케이?

자, 여기에 따라 붙는 비용들, 하루 두 군데를 가면 입장료 2만원, 교통비는 걸어다니니까 안 쓰고 차 마셔야 하니까 만원, 밥값 점심 저녁 만원씩 이만원! 3박 4일을 간다면 약 60만원에 여섯 군데 정도 들를 수 있군요.


여기까지가 교토 여행의 기본인 셈이군요. 앞으로는 숙소가 왜 12만원이에요? 숙소 어디로 잡아야 해요? 교토 가서 뭘 먹으면 좋을까요? 뭘 보면 될까요?(윽 이거 묻지 말랬지) 같은 내용을 쓸 참입니다. 도움이 되고 있으신가요 호홋


실은, 지금부터가 본론인 실전강좌인데 쓰기가 귀찮아지고 있어요. 어쩌죠.


게다가 위의 예산 정리 잘못했네요 60만원 아니고 80만원 정도? 저는 예산 개요 잡을 때 (항공권+숙박비)*2 정도로 전체 예산을 잡습니다. 어디 여행을 가든 거의 그렇게 pre예산을 잡아요.


3. 교토 지역의 특수성 모든 걸 이해할 필요는 없겠지만, 교토의 특수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1) 계절별 차이가 크다. 즉 딱히 비성수기가 없으나 벚꽃이나 단풍철 같은 초성수기에 몹시 아름답고 몹시 비쌉니다.


(2) 구역으로 나누어서 이해해야합니다. 그닥 크지 않은 시가지이고 도보로 어디든 갈수 있지만 각 구역별로 유적의 분포, 영업시간, 할수 있는 것의 차이가 큽니다. 좀 멋있게 말해보자면 교토여행은 시간을 여행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3) 그리고 야채를 먹어야 한다.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교토는 야채와 과일이 맛있습니다. 사실 고기는 별거 없고 여러분이 일본갈때 마다 죽어라고 먹는 스시는 발효스시류가 더 많습니다. 야채...


(4)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밥을 세끼 먹는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꼭 모든 예산과 시간을 하루에 한 번은 차를 마신다고 생각하세요. 커피든 차든 디저트든, 나는 뱃때지가 출렁거리는 잉글리쉬이다 라고 생각하고 차를 드세요. 그것이 교-토-입니다


얘기가 좀 샛길로 새고 있는데, (5) 우지나 오하라 같은 지역을 가지 않는 이상, 모든 이동은 도보로 간다고 생각해주세요. 물론 아라시야마 같은 곳에 가려면 전차를 타는 것이 좋지만, 교토 여행의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거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특수성의 마지막, (6) 교토에서 꼭 봐야 할 것은 없습니다. 모든 유적지가 대부분 아름답고 (중국인이 많으냐 적으냐의 차이는 있으나) 인생에 한 번쯤은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 입니다. 어디를 가야하냐에 집중하지 말고 그냥 교토에 집중해주세요


자, 그럼 여러분은 교토에 가고 싶은 이유가 있고, 일정을 어떻게 짤지 예산을 어떻게 짤지 대략 감을 잡았으며, 교토여행의 특수성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실질적인 이야기로 넘어가죠. 근데 또 귀찮아 어쩌지 쓰면서 계속 귀찮아


4. 다짜고짜 실전, 숙소를 어디로 잡아야 할까요? 네, 귀찮으니까 실전이다. 여러분이 쓰는 숙박예약 페이지를 열어서 교토를 검색해주세요. 에어비앤비는 빼고요 제가 에어비앤비를 싫어하니까요. 교토에는 특이한 숙박 업태가 있습니다 "하타고"라는 것인데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교토의 전통 가옥에서 자는 것이고. 보통 다른 나라에서의 에어비앤비와 비슷한 서비스 입니다. 교토의 골목에서 다다미집, 전통 욕조, 전통 정원..보기만 해도 좋아 보이죠?

결론은 안돼. 하지마. 입니다. 장점이야 수도 없는 곳이지만 결정적으로 저런 숙소는 비싸고 서비스가 부족합니다. 여러분이 돈이 많은 미국인이며 인생에 한 번 교토에 온다면 모를까 여러분은 2시간 거리에 사는 한국인 입니다. 제가 추천하는 숙소는 호텔


저런 하타고야의 경우 가격이 비싸거나 입지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으나 전문적인 비즈니스 호텔은 오히려 가격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중국인들 덕분에 가격이 더 내렸죠.대략 교토의 숙소 가격은 최고급 호텔 - 하타고야 - 일반 비즈니스 호텔 순입니다.


에어비앤비는 어느 지역으로 가거나 현지 언어와 사정에 대해 이해할수 있을때 가는 것이 좋습니다. 원래부터 전문 숙박업소가 아니기 때문에 최근에 교토에 가족여행을 간 친구는 A&B숙소에서 난방을 켜지 못해 술을 마시고 있는 저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럼 다시 지도를 펴서 숙소를 보죠. 업소 분포를 보시면 알겠지만, 종으로는 교토역에서 교토고쇼까지 횡으로는 미부까지 분포되어 있는걸 확인할수 있습니다. 왜냐고요? 거기가 교통 중심지거든요! 교토도 사람사는 곳이라 주택지엔 숙박지가 없어요!


단순하게 가죠. 여러분이 가고 싶은 장소 가까이에 도보거리의 숙소를 잡으시는게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한국인 6시에 문을 닫는 가게를 이해하지 못하죠? 여러분께 추천드리고 싶은 라인은 시야쿠쇼부터 교토역까지 이어지는 종라인입니다.


이 라인은, 번화가이면서 숙박업소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고 아침에는 일찍 저녁에는 늦게까지 문을 여는 가게가 많습니다. 물론 가라스마루 쪽도 그렇지만 그 쪽 숙소는 너무 비싸고 수가 적습니다. 거꾸로 하타고야에 가시려면 이 중심지는 피하는게 좋습니다.


다행히도 교토는 버스 비가 어디를 가든지 210엔으로 비교적 쌉니다. 싼 가격에 홀려 교토역 주변에서 숙박을 하는 방법도 있죠(이상하죠 교토역이 싸다니) 교토 초보자들에게 베스트 숙소는 기온 주변입니다. 접근성이 좋죠. 조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자, 그럼 교토의 실전 편. 교토에서 무엇을 할수있을까요 편이군요. 음 그건 다음 시간에...? 에라 모르겠다.


감기 걸려서 일찍 잤더니 알림이 미친듯이 올라와있네요. 이대로는 안되겠어서 실전편 5. 교토에서 무엇을 할수 있냐고 묻기 전에, 를 적습니다. 저는 한국 블로그 정보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트위터 정보도 마찬가지죠 여러분 제 말을 믿지마세요


일본 여행을 할 때 가장 신뢰할만하고 깔끔한 곳은 (제가 항상 추천드리는거지만) 일본 정부 관광청의 홈페이지 입니다 각 지역별로 어떤 관광명소가 나와있는지 알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허접한 그것과는 달라요


그리고 교토 관광 가이드를 참조하세요. 제가, 혹은 트위터나 블로그의 누가 백날 어디가 좋다고 얘기하는거 믿지 마시고 이곳에서 벚꽃의 개화시기, 축제의 일정등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걸 다 확인하시고 나면 가이드북이나 주변 사람들의 의견, 블로그, 트위터를 참조하세요. 교토는 넓고 아주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가본 사람" "현지인의 추천"을 믿지 마세요. 그들도 교토을 다 모릅니다. 물론 저도 그렇죠.


제가 몇 번의 여행으로 가본 교토의 신사와 절이 30곳이 약간 안 됩니다. 근데 거기서 제일 좋은 곳이 어디였을까요? 저는 교토를 딱 한 번만 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이 타래를 쓰고 있습니다. 교토에 가게 되면 여러분 각자의 교토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교토를 다니기 시작한 사람에게 제 충고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그만큼 교토는 넓고 깊습니다. 저는 매 여행 동안 교토의 정원과 사찰에 집중했는데도 아직 갈 곳이 많고 정원 중엔 특정 계절이 더 아름다운 곳이 있어요. 아직 멀었죠.

5-1 근데 절이랑 신사 밖에 없나요? 맙소사, 이 질문이 나올 타이밍이 아닌데 나와버렸군요. 네, 관광청의 홈페이지를 보면 교토에는 절밖에 없는 것처럼 보여요. 절-정원-신사는 교토의 트리니티죠. 그래서 절이 싫어서 교토에 안간다는 분도 있어요


물론 위에 링크를 걸어드린 교토 가이드를 보시면 좀 더 폭 넓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예를 들어서 교토의 전통 공예 쇼핑, 꽃꽃이 클래스 등에 대해서도 확인하실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그런게 아닐거에요. 좋아요 힙스터 여러분


교토의 여행은 크게 두 가지 교토의 전통을 따르는 여행과 새로운 흐름을 따르는 여행이 있습니다. 새로운 흐름이란 전술한바와 같이 교토는 일본 미술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개인 갤러리의 수와 질, 그리고 전문 아트 갤러리의 수에서 몹시 뛰어나죠.



방금 1월 21일부터 1월 29일까지 있었던 일본여행의 정산을 마쳤다.

누구에게 돈을 주거나 할 필요는 없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혼자서 정산을 하고 반성을 한다.아무런 반성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깔끔하고 단정한 것으로 변할까.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반성이 없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우리는 전혀 나아짐이 없이 어린이 만화동산에 나오는 동물들처럼 마음 편하게 행복하게 살수 있을 것이다.

하여간, 이번 여행은 여행기를 안 쓰게 될 혹은 부분 부분의 감상기만을 쓰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플레이 리스트로 여정을 정리해두려고 한다. 평소에는 플레이 리스트를 준비하고 여행에 갔지만 이번 여행은 좀 급작스럽게 갔기 때문에 현지에서 노래를 찾아서 하나하나 들었고 개중에는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못들은 노래도 많다.

어떤 상황에서 어울리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바람이 부는 나오시마의 바닷가에서 혹은 고야산의 눈내리는 밤 오래된 절방에 앉아서- 음악을 듣는 것.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번 여행에서는 음악을 그닥 많이 듣지 않았다. 가끔 어떤 음악보다도 여행지에서 들었던 소음들에 대한 기억이 나를 위로할 때가 있다.

이번 여행의 가장 명확한 주제가라고 한다면 San Holo의 "Light"일 것이다. (웃기지도 않지만) 여행 중에 이 곡은 한 번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갔다온 후의 1주일 동안 내내 이 곡을 들었다. 나는 이번 여행으로 무엇을 바랐을까. 

San Holo - Light

https://www.youtube.com/watch?v=ULHeRdgeT54


#추가

글을 다 쓴 다음에 깨달았지만, 링크가 아닌 소스코드로 연결시킬 경우 저작권 위반이다. 곡을 듣고 싶으신 분은 알아서 링크를 복사하시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작업 다 해놓고 다 지웠다. 무의미한 노가다는 사람을 슬프게 한다.


(1) 출국, 새벽

새벽 4시, 밤을 새다시피 하며 나와서 캐리어를 끌고 버스에 탔다. 종일 피곤했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미친 아저씨처럼 중얼거리고 방향을 자꾸 틀렸다. 공항에서는 전직하신 부장님을 만났는데 둘 다 피곤에 절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공항의 커피샵에 멍하니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는 금방 서로 갈 곳으로 가버렸다. 도대체 이 여행을 왜 가는건지, 왜 거기에 가겠다는 건지 나로서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로 출발했기 때문에 그닥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아래의 4곡은 아이폰을 플라이트 모드로 바꾸기 전에 급하게 애플 뮤직에서 찾았던 곡이다. 그렇다, 저 중에서 모임별의 곡은 애플 뮤직에 없다. 그래서 히로시마 공항에 도착 후 유투브로 노래를 찾아 들었지만 왜 이게 그렇게 듣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Coldplay - Fix You

https://www.youtube.com/watch?v=k4V3Mo61fJM 


모임별 - 영원이 시간을 관통하는 그 순간 나를 보지 말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9HO08GwRMG0


P!nk - Just Give Me A Reason ft. Nate Ruess

https://www.youtube.com/watch?v=OpQFFLBMEPI


Lukas Graham - You're Not There

https://www.youtube.com/watch?v=IC-bSbXZBcU


(2) 히로시마, 후쿠야마, 오카야마(쿠라시키 미관지구)

히로시마는 전에도 "거대한 영등포"라는 감상을 피력한바 있는데, 미야지마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영등포. 이번 여행에는 뜻하지 않게 비중없는 조연 정도의 위치에 머물렀는데 16년에 히로시마 풍 뎃판야끼 먹다가 체한 것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언젠가는 복수하러 가고 싶다.

이번 여행의 세 개의 목적지 중에 하나였던 쿠라시키. 후배는 이 곳에 대해서 "커다란 전주 한옥 마을이지요"라고 얘기 했는데 그 말에 100%동감하지만 동시에 이 곳이 어떤 우아함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 할 수 없다. 관광객들로 들끓으면서도 도시의 벽들이, 운하의 물들이 단단함을 가지고 존재했다. 우습게도 구라시키 시 자체는 일반적인 일본의 중소도시로 역에 내리는 순간 잘못 찾아왔나 싶을 정도로 평범하다. 단지 구라시키 미관지구와 오하라 미술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하나로 아름다운 곳이 되기 때문에 아이러니 하게도 찬란하게 빛나다가 쇠락한 도시가 주는 아름다움은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로서의 매력은 후쿠야마시가 더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공통적으로 히로시마에서 카가와에 이르기 까지 모든 도시가 조용한 우아함을 가지고 있다. 후쿠야마에서 겪은 교통정체 조차 뭔가 의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용한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여기에서는 Dusko Goykvich의 곡 중 "The Fish"를 주로 들었는데 유투브에서 찾을 수 없어서. 하기 전체 앨범의 링크로 갈음한다. 

(실은 듣다 보니까 멈출 수가 없어서 이 앨범을 글 쓰는 내내 읽고 있다)


Dusko Goykovich - Samba Do Mar

https://www.youtube.com/watch?v=NCk1TrwVgAA


지금 생각해보니, 구라시키의 운하를 보면서 이 노래를 들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 야마구치 모모에의 가을의 코스모스와 좋은 여행을

山口百恵 秋桜コスモス

https://www.youtube.com/watch?v=89HBcy08960&list=PLREXMY7xQwKlyeUlpwptZ9KJ3_24Dlqw4


山口百恵 いい日旅立ち

https://www.youtube.com/watch?v=Dgv3vNdRVfU


(3) 오카야마(고라쿠엔)

오카야마를 상징하는 것은 오카야마 성과 고라쿠엔이며 이 지역에 가장 특징적인 것은 데님 소재의 직물들이다. 오카야마는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세련된 도시였다. 전에 고베가 상상했던 것보다 근엄했던 도시였듯이 말이다. 화려한 조명이나 활기차게 들리는 음악 같은건 여기엔 필요 없어요. 하고 "거리"자체가 말을 하는 느낌이다. 나는 어쩔수 없이 여기서도 재즈를 엄청 들었는데 실은 나에게 재즈는 우아하거나 세련된 이미지가 아니라, 후회와 불안정함을 드러내는 이미지이다. 예전을 되돌리려는 듯이 클래시한 옷을 입고 길을 나서도 전과 똑같이는 절대로 될 수 없다. 나에겐 그런 것이 재즈이다.

아래의 곡들은 고라쿠엔의 찻집에서 팥죽(젠자이)를 마시면서 나온 음악들을 사운드 하운드로 잡은 것들이다. 과연, 훌륭하군 하고 감탄했는데. 팥죽은 별로였다. 애기를 들어보니 원래 녹차원이라서 녹차가 맛있지 젠자이는 그저 그렇다는 듯. 아이고


João Gilberto - LP Amoroso

https://www.youtube.com/watch?v=b81ywX5cUmQ


Desafinado - Eliane Elias

https://www.youtube.com/watch?v=iGctJbPaCBI


(4) 카가와(나오시마)

여행의 목적 중 하나가 지추 미술관에 소장중인 모네의 수련 이었던만큼 좀 억지로 루트에 포함이 되었다는 느낌인데(구라시키의 오하라 미술관에서 연작 중 하나를 본 뒤에 역시 그냥 나오시마는 가지 말까 하고 고민하기도 했다), 겨울 바다의 섬치고는 따뜻했고 역시나 겨울바다의 섬답게 미친듯이 바람이 불었다. 트위터에다가도 적었지만 이번 여행 중 가상의 여자친구와 동행하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12번 차였고 그 중에 8번을 나오시마에 관련해서 차였다. 좀 명랑하려고 락 음악을 들으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대 실패였다. 바람 소리를 듣는게 더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세토 내해의 겨울은 맑았고 밝았다.

나는 자전거를 몰고 산길을 전속력으로 달려 내려가 끼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해변에 내려왔다. 바람이 불었고 저기 어딘가에 해가 떠있었다. 내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내가 무엇보다 간절하게 바다를 보고 싶어했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Maroon 5 - Don't Wanna Know

https://www.youtube.com/watch?v=ANS9sSJA9Yc


The Chainsmokers - Closer (Lyric) ft. Halsey

https://www.youtube.com/watch?v=PT2_F-1esPk


내가 너무 멀리 가버리기 전에 내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지만. 하고 중얼 거렸다.


(5) 카가와(다카마츠), 도쿠시마(도쿠시마)

도쿠시마에서 새벽3시에 일어나 택시를 타고 첫 페리를 타러 갔다. 그 때는 Olafur analds의 "Island Songs" 앨범을 계속해서 들었다. 뭐 여행 내내 이 앨범이 거의 주제가라도 되는 양 짧게 짧게 이동하면서도 계속 들었지만. 이 앨범이 가장 어울리는 순간이 바로 이 때였을 것이다. 새벽이라 승객은 나 말고 여섯 팀도 되지 않았다. 어머니와 같이 탄 젊은 어머니. 간이 식탁에서 도시락을 먹던 남자. 구석에 앉아 바로 잠을 자던 사람. 나는 음악을 들으며 무언가를 그리고 쓰다가 금세 잠이 들었다. 깨어나보니 해가 떠있었고 와카야마에 도착해 있었다.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Ólafur Arnalds - Particles ft. Nanna Bryndís Hilmarsdóttir

https://www.youtube.com/watch?v=wEj7xYyj9n4


Ólafur Arnalds - Doria

https://www.youtube.com/watch?v=wFp6xnJbs0w


(6) 와카야마(고야산)

내가 장담하건데, 와카야마의 고야산이야 말로 블루스가 어울리는 땅이다. 전세계에서도 손꼽히게 블루스 땅이다. 물론 아무도 블루스를 안 들을 것 같긴 하다. 이 시기(1월)의 고야산은 눈이 많이 내리고 춥기 때문에 일본인은 앵간 해서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고야산의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서양인이거나 동양인 관광객(나) 뿐이었다. 석양을 찍으러 다이몬에 갔을 때 일본인 관광객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을 정도다. 그 사람들 사진만 찍더니 차에 타고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블루스가 어울린다고 쓴거 치고 블루스를 안 들은 것은 눈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련다.


Anthony Hamilton - Do You Feel Me

https://www.youtube.com/watch?v=1in5wAVOyIk&list=PLb75VpbNymWVrgZkU47_70_HGGFSxAsN1&index=2

B.B. King - The Thrill Is Gone ft. Tracy Chapman

https://www.youtube.com/watch?v=xVxCtt3s_1M&list=PLWCJOLJ9si2lFFJ_3lh3d3j9LbgIuVIhK


오래된 사찰인 콘고잔마이지에서 템플 스테이를 했다. 고다츠와 이불을 깔아줬고 저녁은 유토후의 가이세키 요리였다. 절에서 한게 아닌듯 맛있었고 즐겁게 먹었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다 방의 창을 여니 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리가. 소리가. 소리가. 소리가 내렸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Nujabes - luv (sic.) pt 3 [ft.shing02]

https://www.youtube.com/watch?v=UyoYf7rZVGI


오쿠노인으로 가는 산 길에서는 아무 음악도 듣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곳에 가게 된다면 알게 될 것이다.

그 산 그 길에는 오직 나 밖에 없었다. 입산 제한이 걸렸었거든. 착한 어린이는 따라하지 마세요. 저도 거기 스님께 자기 책임하에 가라는 허락을 받고 간겁니다.

긴 산 길에는 수많은 묘지가 있었다. 천녀에 걸쳐서 모인 묘지 들이다. 아주 오래된 것들도 새로운 것들도 있었다. 나는 묻는다, 어떠한 번뇌가 있든지 이 곳에서 풍상을 맞고 시간을 보내고 생각하고 새와 짐승의 울음소리를 듣다 보면 부처가 될 지도 몰라. 

길은 대답한다. 우리는 바람이 되고 돌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겨울이 되고 번개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따뜻함이 될 것이다. 우리는 흐름이 되고 우리는 빛이 되어 사라질 것이다.

아아, 우리는 소리가 될 것이야. 하고 나는 말한다.


(7) 오사카(난바, 신사이바시)

오사카는 나에게 내내 이런 느낌이다. 오래 된 영상으로 젊은 여성이 노래 부르는 것을 듣는다.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당신과 같은 나이였다면 나는 분명 내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을텐데. 하고


Tina Charles - I Love To Love

https://www.youtube.com/watch?v=ug2P9o6di2k


실제로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는 짧은 기차에서는 놀런즈의 다음 노래를 들었다. 

찾아보니 놀런즈가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은 80년대 초반 일본에서 개최된 국제 가요제에서 우승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과연 80년대 일본이 추구 하던 어떤 아름다움이 놀런즈가 원조란 말이지.


The Nolans I'm In The Mood For Dancing

https://www.youtube.com/watch?v=4UZYXFgQnAo


(8) 교토

교토에 있던 3박 4일 동안 매일 해가 지는 것을 보았다. 첫번째 날엔 이나리 신사, 두번째 날엔 가모가와 델타에서, 세번째 날은 롯카쿠인의 벤치에 앉아서였다. 지루하지 않았다. 지루 할 수가 없었다.


PETIT BISCUIT - Sunset Lover

https://www.youtube.com/watch?v=wuCK-oiE3rM


haruka nakamura - Lamp feat.Nujabes

https://www.youtube.com/watch?v=cHQ-oVSYkeU


Luv(sic) Part6 - Uyama Hiroto Remix featuring Shing02

https://www.youtube.com/watch?v=FvcyZOVCORM&list=RDcHQ-oVSYkeU&index=7


이번 교토에서 방문한 곳은 차례대로 도호쿠지, 후시미 이나리, 도호쿠지(재 방문), 센뉴지, 기온, 교토 고쇼, 가모가와 델타, 도다이지였다.

3박 동안 교토에서 묵으며 많은 생각을 했고 혼자 매일 술을 마셨다. 돌아다니고 후회하고. 고민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했다.

내 삶엔 아무 것도 없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번 여행 동안 계속, 진실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했다. 나는 봄에 닿을 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다 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토요일은 따뜻했다. 흡사 봄처럼. 삶처럼 아름다운 토요일이었다. 토다이지의 정원이 보이는 툇마루에 앉았다. 그림자가 드리우고 햇볕이 내 손등에 와서 닿았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 처럼 깜짝 놀랐다. 토다이지의 각 사찰에는 토요일을 맞아 다도회가 열리고 있었다. 나이가 든 부인들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모여서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시를 읊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나는 불룩하게 튀어나온 주머니처럼 그 사람들 사이에 있었지만 누구도 나를 내쫓지 않았다.

나는 상냥한 목소리를 들었다. 봄이 나에게 말을 거는 소리였다. 타인이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서 상냥함을 느꼈다면 사랑을 느꼈다면 그것은 내 안에 상냥함과 사랑이 있기 때문이었다. 봄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 봄이 그렇게 말했다. 당신의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넌 내가 없어도 괜찮아. 하고 다시 없이 사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빛. 그것은 중력이었다. 아직도 나의 삶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봄이. 봄이 올 것이다. 


(9) 돌아오면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1월 11일에 발매 된 이 곡을 계속 들었다.

누구도 날 알지 못해 내 어머니 집의 피아노처럼은. 넌 내가 뭔갈 가지고 있다고 했지 어떤 사람들은 그걸 소울이라고 했어.

너도 알지만, 나는 떠났어 내 둥지에서 날아갔지. 그래도 나는 혼자가 아닐거야 내 가슴 속에서 최고가 뭔지 내가 돌아올 거란걸

그래 너도 알고 있지.


Sampha - (No One Knows Me) Like The Piano

https://www.youtube.com/watch?v=njHcZMLDdSc


지금 생각해보니 이 음악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Roosevelt - Moving On

https://www.youtube.com/watch?v=ruNW8MeR_tM


Marshmello - Alone

https://www.youtube.com/watch?v=YnwsMEabmSo


山下 達郎 - Tatsuro Yamashita - Ride on Time

https://www.youtube.com/watch?v=s19SzmIcFmU


위의 플레이리스트보다 더 많은 노래를 들었다. 간단히 더 쓰자면 찰리 푸스의 "We Don't Talk Anymore"나 라라랜드의 OST들, Seafret의 "Wildfire", 윤하의 "빗소리" 같은 노래는 틈틈히 듣고 듣고 또 들었다. 언젠가는 이 노래 들을 듣지 않을 수 있게 되길 바라며 들었다.

사실, 내 예전 여행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내 여행기의 제목들도 거의 노래 제목이기 때문에 플레이리스트로 여행을 정리한다는게 이번만의 일이란게 아닌 걸 알 것이다. 사진은 나의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참조하기 바란다. 


나는 생각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것이야 말로 현실의 증거라고. 나는 아직 미치지 않았고 현실에 닿아 이 글을 쓰고 있다. 

17년 2월 5일의 글이다.


지추미술관地中美術館에 대해서 쓰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관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지추 미술관은 나오시마直島라는 섬/그리고 지추 미술관이라는 건물/그리고 그 안에 전시되어 있는 많지 않은 수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어느 하나를 빼고는 말할 수 성립될 수 없다. 구성요소가 적기 때문인가? 아니다, 안 그래도 각개의 전시물 사이의 느슨한 연결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구성요소가 너무 많지 않은가 생각이 될 정도이다.

(쓸 수 있을지 몰라도) 결론 부분은 명확하다. 비효율과 자연에의 접합. 나오시마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관람자의 체험이다.

여기 지추 미술관을 방문하고 전시물들을 본 뒤 부분적인 감상을 기록해두도록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그게 아주 먼 미래의 나 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있는 글은 아마추어의 인상비평 정도의 글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하신 분은 다른 글을 읽으시는게 좋겠다.

(1)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의 작품 시간/지연/정지, Time/Timeless/No time, 2004

콘크리트의 복도를 내려와 어두운 문을 지나면, 지추 미술관의 가장 심층에 놓인 이 작품을 보게 된다.
직경 2.2미터의 검은 색 구체가 중심에 놓여있으며 27개의 금박을 입힌 목제 기둥이 방의, 아니 공간의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작품은 계단 위에 놓여진 ...일종의 오브제의 형태이다. 가장 낮은 바닥에 입구가 있으며 (계단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는) 그 위의 중간 단에 검은 색 구체가 놓여있다. 우리는 (관찰자라는 행운으로) 가장 낮은 단에서 시작하여 구체와 같은 단에, 그리고 구체보다 한 단계 높은 단위에 까지 오를 수 있다. 동쪽에 입구가 있는 이 공간의 천장은 궁륭형태에 사각지대 천창이 있어 나오시마의 태양광을 그대로 받아 비춘다. 일출과 정오, 그리고 일몰에 맞추어서 이 공간의 빛은 시시각각 변하나 공간은 넓다. 밝고 선명하며 누군가의 머릿속에 들어온 것 처럼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다. 우리의 집중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 뿐이다.

우리가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의 충격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먼저 관찰하게 되는 것은, 사방에 배치되어 있는 기둥의 각도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황금색으로 코팅되어 있는 이 기둥은 바로 공간에 입장하기 전에 큐레이터가 친절하게 노란색 기둥에는 손대지 말아주세요. 라고 말했던 그 기둥이다. 어째서 각 기둥이 똑같은 규격이 아닌지 관찰을 하게 되면 금세 이 기둥들이 천장에서 쏟아지는 태양광을 반사하기 위한 오브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천창을 통해서만 조명이 변화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도 이 작품의 양상은 변화하게 된다.
물론 우리의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중앙에 놓여진 검은 구체이지만 검은 구체에 주목하지 않고 이 공간만을 바라보게 된다면 예를 들어서, 미술관에 들어와 처음으로 이 작품을 보고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확인하게 된다면 예민하지 않은 관찰력을 가지고 있어도 "시간"의 흐름이 이 공간의 주제이자 작품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지추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나오시마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의 특징이기도 한데.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인 <오픈 스카이>는 사각형의 닫힌 공간에 하늘에 집중 할 수 있는 사각형의 천창을 뚫어놓아 관찰자가 시간에 따른 작품의 변화를 나오시마의 하늘을 통해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공간의 중간에 놓여진 검은 구체-화강암으로 만들어진 2.2미터의 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오브젝트는 나오시마의 해변 열린 공간에 전시되어 있는 동일 작가의 작품인 seen/Unseen/Kown/unknow에 주요 전시물이 두개의 거대한 구형과 비슷하게 보이는데. 전시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시선을 잡아 끄는 이 검은 오브제는 "방점"이자 "소실점"으로서 이 공간에 있는 동안 우리가 이 오브젝트를 무시하고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전시 공간에 있는 이상 이 구형의 주변을 돌고 인식하고, 심지어 우리가 이곳을 떠나도 전시 공간을 떠올리게 되면 가장 먼저 이 구체를 떠올리게 된다. 이것은 시간에 의해 변화하지 않고 위치에 의해서도 변하지 않으며 공간 자체를 지배하는 거대한 점, 그렇다면 나는 감히 말할수록 있다. 이 검은 구체는 이 공간의 신이다.
신에 대한 은유이며 이 공간을 지배하는 신 자체이다. 우리가 말을 걸수도 없고 대답도 하지 않는다. 굴러떨어지거나 소실되는 일 또한 없다.
우리, 공간의 밖에서 온 관찰자가 검은 구체에 가까이 다가갈 때 우리는 검은 구체의 곡면에 의해서 계단이 기묘한 모습으로 일그러져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태양광을 비추기 위해 만들어진 천창과 함께, 흡사 한 개의 눈을 지닌 얼굴이 웃으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곳처럼 보인다.
그것은 신의 얼굴이다. 방 한 가운데에 위치한 신. 그 신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를 바라본다.

(2)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작품 수련Warter lilies

바닥이 이상하다. 흰색의 작은 (일반적인 주사위보다 작은) 정사각형으로 바닥을 깔았다. 물 빠짐과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한 것 일까. 습기를 유지하기 위한 것일까. 신발을 벗고 전시 공간에 들어가면 습기가 가득찬 공간에 있다는 착각이 든다. 그렇다 그것은 착각이다. 예술작품에 있어서 습기란 작품을 유지하기 어렵게 하는 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한 공간에 있다는 착각은 작품 앞에 서있는 때 더 강해진다. 모네의 수련. 늪의 표면에서 터져나온 색과 생명.

전시 공간 안에 수련 다섯 점이 전시되어 있다. 사이즈에 따라 배치 한 것인지 뒷면 양쪽에는 100*200의 작품이. 양 옆에는 200*200의 작품이. 그리고 정면에는...200*300의 두 장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걸려있다. 압도적인 이미지. 물기가 하나도 있을리 없는 공간에 느껴지는 습기. 높은 천장으로 소리가 난반사되어 울린다. 들릴리가 없는 물방울 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생각한다. 수련이란 원래 아름다운 작품이 아니었던가. 어쨰서 이렇게 거대하고 무질서하며 깊은 가. 사방을 돌아보아도 늪으로 가득한 이 전시공간에서 수련이라는 아름답고 우아한 이름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보는 것은 혼돈이고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그 혼돈에서 터져나온 생명이다.

사실 나에게 이 작품은 개인적인 의미가 있다. 지추 미술관을 방문한 것은 이 수련을 보기 위해서 였다. 같은 여행에서 오하라 미술관의 수련을 보았지만 전혀 다른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동양화를 전공하였는데 몇 안되는 서양화 그림도 가지고 있다. 그 중 가장 같은 그림이 식탁의 내 자리에서 보이는 곳에 걸려 있었는데 검은 밤과 숲을 그려넣은듯한 그림으로 항상 아무도 이 그림의 윗쪽과 아랫쪽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농담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그림은 수련을 몹시 닮았다.

이것이 홋카이도 여행기의 마지막이다. 이것은 일종의 유언이다.

나는 이제까지 내 안의 무언가를 버려서 삶의 의지를 이어갔다. 그래서 이번엔 글을 쓰는 것을 그만 둘 생각이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우울할 때면 청소를 한다거나 인간관계를 정리한다거나 하는 것의 조금 다른 표현일 뿐이다.

당신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무엇하나 제대로 버리지 못한다. 


이번에 정리하는 것은 내가 글을 쓰려는 의지이다. 언젠가 아름다운 것을 쓸 수 있으리란 희망이다.

이런 글에 대한 동기만은 아주 오랫동안 나의 힘이 되어주었다. 

알량한 재능, 그리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 그리고 스스로를 위로하겠다는 욕심. 오만함.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고집이었고 동시에 내 삶의 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글을 쓴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만 쓰겠다.

끝맺을 필요가 없는 글을 굳이 쓰는 이유는 이 마지막 글만은 나를 위한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삿포로. 두번째 홋카이도 여행의 마지막이 될 날.

나는 삿포로에 도착하자마자 길을 잃었다. 농담이 아니다. 장방형으로 이루어진 도시에서 주소도 알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길을 잃는게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이런 식이다. 음음 목적지가 동14 남20이니까, 이 쪽으로 쭉 가서 꺾으면 되겠지! 하고 서 14 북 2에 가있는 식이다.

걸음은 엄청나게 빨라서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4블럭 정도는 거뜬하게 지나쳐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는데 정말이다. 나랑 같이 걸어다니면 알 수 있다. 장소를 찾는데 디테일하지 못하다.

망연자실해서 몇분 간이나 멈춰서서 자기 반성을 했다. 철새 여러분 나에게 힘을 주세요. 지구의 자기장을 느끼게 해주세요.

제법 발달해있는 시가지인 삿포로역-스즈키노역 라인과는 다르게 삿포로에도 덜 발달되어 있는 시가가 있는데 중심지에서 멀어질 수록 

건물들이 작아지고 낡는다. 나름 그런 것도 풍취지만 길을 잃어버린 자에게 그런 여유는 없다. 

두번 째 홋카이도 여행의 실질적인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나는 해야할 것이 많았다.


홋카이도가 아무리 자연경관이 클라이막스가 되는 지역이라고 해도 삿포로에는 사람이 모이니만큼 볼만한 것들이 많다. 

홋카이도 전역에서 몰려온 식재료의 스프 카레, 라멘, 스시. 카이센동은 싱싱하고 전 지역의 스위츠 샵에서 모여든 유명 디저트들은 아, 왜 인간은 

하루에 먹을 수 있는 밥에 한계가 있나요. 오늘 하루 잔뜩 먹고 두달 간 굶으면 안 될 까요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사실 일본에 와서 나는 책이나 전자제품, 옷, 화장품 등도 꽤 많이 사는 편인데 실은, 아사히카와를 제외하면 

그런 "일본 여행 와서 기본인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은 삿포로 밖에 없다.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해. 이래선 후라노에서 첫차를 타고 여기에 온 의미가 없다. 나를 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 손에 구글 맵을 숫제 그냥 켜둔 상태로 호텔을 찾아 걸어갔다. 

스즈키노 옆에 있는 호텔로 다가갈 수록 교통정체가 거의 없는 삿포로인데, 어째서인지 관광버스가 여기저기서 몰려들어 길이 막히는 게 보인다.

 코스프레라도 하는 듯이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도 여기저기에 보였다. 나이대도 다양하여 청소년, 청년, 장년, 노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들 부끄럽기 짝이 없는 복장에 진한 화장을 하고 씩씩하게 한 방향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렇다, 16년 YOSAKOI 소란부시 축제가 같은 시기에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도 여러가지 지역 축제가 있다. 

지금은 전국에서 200개가 넘는 팀이 모여들어 5일 동안 각자의 공연을 하고 시민들과 춤을 추는 축제가 되었지만, 

원래부터 소란 부시는 홋카이도 지역에서 청어잡이 철에 부르던 노래이다. 기본적인 가사는 이렇다


야렌 소란 소란, 청어가 오니 갈매기가 시끄럽구나 은빛 비늘에 여울이 빛난다 쵸이!


이런 가사를 지닌 민요에 전국 사람들이 춤을 추고 대회까지 연다구요? 네 그렇습니다.

다소 촌스럽던 민요는 이토 타키오라는 민요가수가 편곡한 버젼이 의외로 인기를 끌고, 

왓카나이 남중이란 곳의 특활 부가 전국 규모 대회에서 우승을 함으로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것이 1991년.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는 느낌으로 각자가 자기 지역에 맞는 가사를 붙이고 안무를 붙여서 각자의 특색에 맞는 

소란부시를 만들어내 공연을 하는데,  그 특징은 파워풀한 안무와 흥겨운 후렴구. 

내가 딱 마음에 든 교토 지역의 공연팀인 "샤라란"의 소란 부시 가사는 이렇다.


흐드러지는 벚꽃과도 같이, 나의 벗들이여 춤을 추어주어 고맙구나. 아프고 고통스럽던 날들이여 안녕.

잔물결이 밀려오고 우리는 모든 인연을 끊는 그 춤사위를 추네.


????그렇다. 그냥 아무말이나 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처음 공연에서는 "피투성이가 되어 어둠 속을 달려나가는 나의 동지들이여"라는 마이크 워크

(그렇다 소란 부시를 하는 동안 이 팀은 정체불명의 MC하나가 계속 이상한 소릴 한다)를 하길래 미친놈들인가! 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다른 팀을 압도하는 군무 수준과 닌자를 이미지화 했는지 중2병을 빤듯한 구성에 나는 이 안무팀이 너무 좋아지고 말았다.

(급히 어느 지역 팀인지 알아내서 공연시간을 확인했으나 시간이 맞질 않았고.결국 그들의 공연을 보게 된 두 번 다 뜻하지 않은 우연이었다)


위에서 얘기한 것 처럼 YOSAKOI축제는 5일 간 시가의 중심이 되는 오도리 공원을 비롯 삿포로 각 지역의 공연 장에서 공연을 하는데 

유료 티켓을 사지 않아도 사도, 한 껏 즐길 수 있으며. 아무 공연장에 가서 질릴만큼 특색있는 공연들을 보고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면 되는 것이다.

호텔에서 짐을 맡기고 오도리 공원에서 소란부시 공원을 보느라 생각보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나는 삿포로 역에서 간단히 2시간을 기다려 스시를 먹고(하하하), 다른 무엇보다 생각을 하기 위해 홋카이도 대학에 간다.

1876년도에 개교한 이 아름다운 학교는, 삿포로 역 바로 위에 있으면서도 거대한 부지와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오래된 학교이기 때문에 건물은 고풍스럽고 깨끗하고 잘 정리 된 부지 내의 공원은 넓고 평화롭다. 

보통 닥터 스크루의 배경으로 유명한 대학교...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서른이 넘은 덕후인 사람들 뿐이겠지. 

원래 농학교였기 때문에 수의학과 농학이 굉장히 강한데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지금도 농과 대학의 편차치가 굉장히 높다. 

실용학문으로서 농학이 수준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일본내에서 농학의 실용성이 높기 때문이다.


학교 부지에는 어딜봐도 관광객인건 나 정도 밖에 없었다. 

모두들 소란부시를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사람이 없는 곳을 굳이 찾아서 홋카이도 대학까지 온 나도 대단하다 싶다.

적당한 잔디밭을 찾아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한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운다. 

고통스러웠다. 정말로 휴가가 끝나서 고통스러웠던 것이 아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인정해야했다. 더 이상 살아갈 의지가 없다는 것과 이제까지 해온 것들이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며 도망쳐온 시간 낭비였다는 것을.

도망치고 도망쳐서 어디에 다다를 것인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징기스칸과 맥주를 마셨다. 나오는 길에 샤라란의 공연과 우연히 마주쳤다.

이제는 갈 곳이 없었다. 나는 뭘 해야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호텔 방에서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무작정 걸어갔다.


나는 홋카이도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이제 여름이 지났고 가을이 끝나간다. 

곧 겨울이 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아래와 같이 쓴다.

언젠가 당신은 당신의 낙원에 다다를 것 이다. 거기에 나는 흔적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실이 고통스럽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당신을 잊어버릴 수 있다면 내 3분의 1을 불태우고 그 나머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괜찮은 거래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삶은 계속 되고 언젠가 사랑은 다시 시작 될 것이다. 감정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돌아오는 편지처럼 어느날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된 편지를 받을 것이다.

그것은 슬픔이고, 그것은 기쁨이다. 

어느 비오는 날 세상의 모든 우산이 펴지는 것처럼 당신의 마음이 활짝 펴져 사랑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죽은 사람처럼 살던 내가 여행에서 돌아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무슨일이 생길지 궁금하지 않은가.

어떤일이 일어날지 두근거리지 않는가?


나는 낙원에서 잠이 든 적이 있다.

삿포로의 북동쪽, 버스를 타고 가면 있는 모에레누마 공원은 건축가 이사무 노구치의 마지막 꿈이었던 공원이다.

1977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화 하겠다는 플랜하에, 1988년 모든 플랜을 짜고 88세의 나이로 죽는다.

공원이 열린 것은 2005년 그가 죽은 후 17년 후이다. 착공을 시작한 것이 1982년이니 23년에 걸친 거대한 프로젝트 였던 셈이다.

그는 지구 자체를 재현하고자 했다. 재생한 땅에 태어난 "낙원"

산과 숲을 공원에 만들고 재생 에너지로 모든 에너지를 감당하는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파도가 이는 해변을 공원 중심에 만든다.

인간의 흔적을 없애지 않으면서 자연을 재생하려는 목적. 그 얼마나 순진하고 오만한 플랜인지 모에레누마 공원은 아름답다.


나는 자전거를 빌려 두시간 동안 공원을 돌아다녔다. 산을 오르고 바람을 느끼고. 잔디밭에 누워서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면 나는 끊임없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찾고 있는 것은 뭐죠, 찾기 힘든 것입니까? 가방 속에도 책상 속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데 아직도 찾아볼 생각입니까?

그것보다 - 저와 춤추지 않겠습니까. 꿈속으로 꿈 속으로.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밤이 되고 삿포로 역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공원 저 너머에서 아직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이 "들려"왔다.

오도리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다. 

모두들 손을 들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흔들고 서로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춤을 추고 있었다. 

밤이 되면 금방 가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서로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텐데.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화가 났다.

여러분은 각자의 삶이 있잖아요. 우리는 모두 타인이잖아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서로의 삶에서 서로를 밀어낼 뿐이잖아요.

나를 배신할 거잖아요. 내 마음을 져버릴 거 잖아요. 나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아요. 옆에 두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거잖아요.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모두 내 착각이었죠. 차라리 날 죽이고 가요. 내버려두지 말아요. 이럴거면 처음부터 나를 발견하지도 말지 그랬어요.

그래, 내 사랑하는 당신. 저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나는 이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질러요.


그런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춤을 추고 있었다. 춤을 추어도 바보, 춤을 추치 않아도 바보라면, 추지 않으면 손해.


야렌 소란 소란 소란 소란 소란 하이하이

목이 쉬도록 노랫소리를 높여라 팔이 떨어지는 춤사위로다 쵸이!


박수를 치고, 다시 춤을 추고. 앉아있다가 일어서고.

여느 꿈처럼 싸구려 전깃불과 스포트 라이트가 사방에 걸려있는데 사람들은 동작을 맞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모두가 자기 멋대로 노래를 부른다.


야렌 소란 소란 소란 소란 소란 불어오지 말아라 밤중에 돌풍아

남편은 오늘밤도 바다서 머문다 쵸이! 야세 에에야안사노 돗코이쇼 하아 돗코이쇼 돗코이쇼


나는 춤을 추지 못하고 공원의 구석에서 낯선 사람들의 춤을 추며 눈물이 가득 고여 밤이 희뿌옇게 사라져가는 것을. 내 마음이 가라 앉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꿈 속에서 춤을 춘다. 가장 멋지게 누가 봐도 감탄할 정도로 춤을 추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나는 춤을 추어야했다. 왜냐하면 내가 울고 있는 사이에 모두들 저렇게 즐겁게 춤을 추고 있지 않은가. 계속해서 계속해서.


이것이 내가 6월의 홋카이도에서 깨달은 마지막의 것. 소음에서 걸어나와 춤을 추겠다는 것.

나의 나라로 돌아가, 당신에게 같이 춤을 추지 않겠냐고 권하는 것. 다시 한 번 더.




이야기는 나에게서 시작하여, 당신으로 끝이 났기에 여기서 여행기를 끝낸다. 

16년 10월 10일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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