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아룁니다.

노츠케 반도 네이쳐센터 I상.

 

잘 지내고 계십니까? 저는 6월에 노츠케 반도를 방문하였던 한국인 K라고 합니다.

지금쯤 노츠케 반도는 여름을 맞이해서 더욱 아름다워졌겠군요. 꽃들이 피어나고 더 많은 새들이 반도를 찾아왔겠죠.

저는 홋카이도 여행 후 한국으로 돌아왔고 어느덧 몇개월이 지났지만 노츠케 반도를 방문하였던 일은 아직 잊지 않고 있습니다.

I상의 친절하신 가이드에 노츠케 반도의 이곳저곳을 돌아봤던 추억은, 이번 홋카이도 여행의 가장 소중한 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노츠케 반도를 다시 한 번 가게 된다면 모래밭도, 바람도, 거품처럼 날리던 바다도 그대로 일까요. 

I상께서는 시간이 지나면 사구도 사라지고, 숲도 사라져서 이 곳이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거라고 말하셨었지만,

저는, 어째서인지 노츠케 반도의 모습이 변할 거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습니다.


어떤 세상의 끝이라는 개념의 하나로서, 모습을 바꾸더라도, 위치를 바꾸더라도 영원히 이 별 어디엔가 

노츠케 반도의 풍경이 남아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만큼 그 곳은 아름다웠습니다. 

다시 뵙기를 기대하며.

 

16년 8월.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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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상, 기억은 점점 흐려지고 떠올리지 않았던 것들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의 기억은 불완전 하고 자아란 것은, 파도 위를 표박하는 물거품 같은 것이겠지요.

어떤 중요한 기억만이 사람의 깊숙한 곳에 남아 그 사람을 규정하고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한다는데

저는 아무래도 얕은 바다에서 튀기던 물거품과 황량한 사구 위에 불던 바람소리를 깊숙히 간직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그날 아침 어항에서 I상을 만나던 일부터 배를 탈 때의 일. 바다를 달려 사구 위에 도착한 일

시간 순서대로, 아니 그 시간 그대로를 기억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듭니다.

 

과연, 싶을 정도로 홋카이도의 바다는 추웠습니다. 6월 인데도 불구하고 귀가 얼어붙을 것 같고

뺨이 덜덜 떨려오더군요.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가져온 후드티 두개를 겹쳐서 입어야 했을 정도였어요.

꼬락서니가 굉장히 우습게 되었는데. 웃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무시해주신 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얕은 바다라 그런지 물거품이 튀어오르고 한참 해주시던 설명은 제대로 듣기가 힘들었습니다.

시레토코 곶에서 밀려나온 흙들이 모여서 사구가 만들어졌고 매년 조금씩 스러져서 앞으로 백년 쯤이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실 상 지금의 노츠케 반도는 사라진다고 하셨던가요. 

 

실제 제가 노츠케 반도를 보았을때의 감상은 그런 불안정한 지형이라기 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섬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육로로 본섬과도 이어져있고 네이쳐 센터나 등대, 산이 보이지 않게 사바나처럼 넓은 공터(물론 진짜 사바나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넓겠죠)

철새들이 도래하는 습지가 있는 땅이니 그리 쉽게 이 곳이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100년, 긴 시간이죠. 100년 뒤에 제가 살아있기나 혹은 제 이름이라도 기억하는 사람이라도 있을까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애닳은 마음이 들은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처럼, 생명처럼 반도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세상의 어느 누가 강의 사라짐을, 산의 사라짐을 걱정할 까요. 누구의 평생 동안 그걸 목격할 날이 있을까요.

오직 사람의 힘으로, 때때로 하늘의 힘으로 땅이 패이고 무너져 다른 풍경이 되는 것을 보는 일이 있을 뿐이지요.

 

배를 타고 도착한 반도를 보는 순간, 저는 바로 이 곳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하하 하고 웃었을 때, (분명, 와아 저 사람 미친 사람인가봐 하고 생각했을게 틀림없을텐데도) I상은 제 쪽을 안 쳐다보려고 하셨습니다만, 

저는 기가 차서 웃은게 아니라 이 곳이 마음에 들어서 웃고 말았습니다. 

언덕이나 산 처럼 높은 곳이 없이 높은 곳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2,3미터 정도의 평탄하게 넓은 땅.

바람이 멈출 곳이 없고 물이 고일 곳이 없이 황량하고 아름다운 땅. 이 곳에 발을 디뎠을 때의 감상은 그야 말로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약간의 흙 위에 바람을 이기고 자라난 풀들, 진흙을 밟지 않도록 해변에 놓여진 잔교를 건너자. 

바람이, 바람이,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아무 것도 거칠 곳이 없는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와, 흡사 바다 위를 걸어서 건너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물 그림자도 없이 해변, 아니 해변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물거품 부서지는 흙과 바다의 경계에서 공기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엔 새가 많아요. 알고 계시나요? 하며 준비해온 쌍안경을 건내주셔서 바라보니 두루미가 있습니다.

몇 쌍 정도 두루미가 여기에 와 있어요. 오늘은 짝궁이랑 떨어져서 혼자 먹이를 찾으러 나왔나 보네요.

다른 동물들은 뭐가 있죠? 새 말고? 여우요. 여우. 네 홋카이도에는 여우가 많으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개보다 여우가 많을 걸요.

그냥 길에서 지나가다가 아 여우다 하고 보는 일도 많고. 아 여우다 할 정도로 여우가 많다구요. 그냥 마을에서도?

물론 삿포로 같은 도시는 다르겠지만, 여긴 시골이니까요.


그리고 급작스럽지만, 여길 찾는 분들의 반은 이걸 보러 오시는거죠. 라며 잔교 위를 걸어 I상은 해변가 위에서 말라버린 숲으로 갑니다.

분명 에전에는 잡목림이었을 곳이, 지형의 변화로 그대로 말라 죽어가며 소금끼 짙은 바람에 하얗게 말라서 남아있습니다. 

분명 지형이 변화함에 따라 전에는 그나마 비옥한 흙이 있었던 곳 위에 짠물이 들어온 것이겠지요. 

짠물이 올라와 땅은 갯벌이 되었고 어느새 주변은 바다로 둘러싸였습니다.

나무들은 금세 죽었고 썩어가고 무너져가며 하얀 풍경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더 울창하고 잔목들이 많았지만 점점 규모가 작아져가고 있어요. 이 마른 숲도 사라지고 있는거죠. 새로 잔목이 생겨날리 없으니까.

10년 전에는 훨씬 많았나요? 그렇죠 10년 전에는 정말 세상이 멸망하는 것 같은 풍경이었어요. 그래서 유명해졌고 사람들이 많이 왔었죠.

어때요 맘에 드시나요? 아주 맘에 듭니다.


갯벌을 지나면 좀 더 풀 숲이 우거진 곳이 나오고 잡목림이 있습니다. 본토에는 고산에만 나는 여러가지 꽃들이 여기엔 그냥 피어있어요.

춥기 때문에? 춥기 때문이죠. 봐요 고토리에요, 일본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새에요. 보이나요?

넓게 펼쳐진 풀 숲에는 일부러 뿌려놓은 것보다 많은 꽃들이 피어나고 또 죽어가고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풀 숲 너머 네이쳐 센터 건너편에는 홋카이도 본섬과 맞 닿지 않은 거친 바다가 있었습니다. 깊고 푸르고 검다.

노츠케 반도를 넘어서면 쿠니시리가 있죠. 러시아령으로 되어 있는 섬? 네 북방영토. 저 쪽엔 고래가 굉장히 많아서 반도의 등대에서 보면 가끔 고래가 보여요. 아 진짜? 엄청나게 빠르게 들어가버리기 때문에 사진은 아직까지 한 장도 못 찍었는데  한 번 보면 엄청나게 감동하게 되죠.

많이 보셨어요? 많이 보지만 볼 때 마다 감동해요. 고래니까요. 고래니까 그렇죠.


등대 밑 모래 밭에서는 뭐지 하고 발을 굴러보다, 여우가 뚫어놓은 굴에 발이 빠집니다.

여긴 엄청나게 넓군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살아요. 거의 다 어부들이죠. 그리고 별장처럼 가끔 놀러오는 사람들.

초원을 걸어서 외딴 오두막에 들어갑니다. 새들을 관찰하는 작은 오두막이지요. 안에는 넓은 창을 열고 새들이 쉬는 연못을 볼 수 있습니다.

창문을 단단히 고정하고 자리에 앉아서 새들을 봅니다. I상이 가리키는 새들을 보며 새들의 이름을 따라합니다.

물새들은, 평온하게 앉거나 졸거나 헤엄을 치다. 문득 생각난 것처럼 하늘로 날아가고 또 그만한 수의 새들이 연못으로 날아옵니다.

영국 사람들이 겨울이 되면 찾아와요. 가끔 태국 사람들이 여름이 되서 찾아올 때도 있죠. 여기서 밖에 볼 수 없는 새들이 몇 종류 있으니까

그렇군요. 저는 연못 수면에 반사되는 햇볕을 망연히 쳐다봅니다. 


제가 이 모래투성이의 반도를 방문한 이유를 설명드렸던가요.

이 곳의 사람들은 이 홋카이도에서도 끝인 이런 곳에 왜 한국인이 혼자 찾아왔는지 궁금해 하더라고요.

하긴, 비행기를 두 번,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배를 타야 하는 곳에 가장 아름다운 계절도 아닌데 혼자 이런 곳에 오는게 궁금하지 않을수가 없겠군요.

저는, 사실 홋카이도에 노츠케 반도를 보기 위해 왔습니다. 이 곳을 떠난 후에 이곳 저곳에 갈 계획이 있긴 하지만...


저는 꽤 오랫동안 살아갈 이유가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황량한 풍경을 찾아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을 보려고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살아갈 이유가 없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치가 없는 삶이라고 해도 존중은 해야하는 법. (일종의 인권 보호인가. 하고 생각하고는 자신의 저열함에 실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을 찾아온 이유는, 풍경이 아닌 개념에 가까운 것을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땅 끝이나 세상의 종말 같은 거창한 말로 설명하긴 그렇지만, 저 먼 곳에 있는 "피안"을 보고 싶었다고 하는게 비슷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없는 곳에 가서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나 자신이라는 이름의 고통, 무의미한 삶에 대해 느끼는 고통. 거기엔 해결책도 없고 결론도 나지 않으니

저는 저 멀리를 보고 싶었습니다. 저 멀리에 무엇이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반도를 나오는 길에 I상이 보여주신 숲을 기억합니다.

반도 중심의 마른 숲처럼 흰 색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숲. 지금은 사유지라서 들어갈 순 없고요.

언젠가 저 숲이 점점 가라 앉아서 또다른 세상의 끝 같은 풍경이 되겠죠.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세상의 끝은 사라지지 않고 "이동"할 뿐이구나. 숲이 생명을 다하는 것처럼 끝도 생명을 다하고

또다른 숲이, 세계가 이어지게 되는구나. 하고 납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I상, 이 사구는 언젠가 사라지지만, 그 전에 이 말라붙은 숲이 사라지고, 그 전에 "제"가 사라지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러한 "개념"들이 사라지기 전 까지는 제 안의 기억을 할 수 있는 한 소중히 간직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그것이 제가 저라는 개념의 종말을 맞이하는 가장 건전한 자세가 되겠지요.


차를 몰고 가다가 아 여우다. 하고 말하시고는 손가락을 해변의 한 점을 가리키셨었죠.

거기에 정말 여우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시는거죠? 하고 물어보니 뭐라고 대답하셨더라.

틀림그림 찾기 같은거에요. 라고 하셨었죠. 틀린그림 찾기.


다시 만날 날 까지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진다. 

어느날 남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를 듣자 그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신은 그에게 소명을 부여하기 위해 불타는 나무나 광휘에 휩싸인 사람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지금은 좀 더 복잡한 방식으로 그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우연과 망상의 세계에서 그것은 어떤 형태라도 취할 수 있다.

비논리적인 흐름으로 이어지는 광고, 우연히 주변 사람들이 건네는 한 마디. 갈 생각이 없었던 곳으로 길이 이어지고.

우리의 편리한 뇌는 알아서 커다란 사람의 얼굴을 공백에서 발견하고, 커다란 누군가의 의지를 우연과 우연사이에서 연결해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소리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5년 6월29일. 구시로.


(몇 번이고 똑같이 그 침대에서 일어난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


너무 늦게 일어났다.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조식을 먹었다.  

캐리어를 맡기고 역에 오니 구시로 습원과 호수를 잇는 노선을 타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노롯코라는 이름의 구식 열차를 타고 습지와 호수를 달리는 것이 구시로의 중요한 관광 상품인데 노롯코의 첫차를 놓쳤다.

관광센터가 열리기를 기다려서 물어본다. 어떻게든 안될까요? 아 다음열차 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기다리셔야해요

혹시 구시로에서 하고 싶으신거 다른게 없나요? 아뇨 그냥 구시로 습원을 걸어다니고 싶습니다.


내가 홋카이도에 오기로 한 것은. 구시로 습원에 대한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 동부의 구시로시 바로 북쪽에서부터 양탄자같이 펼쳐지는 것이 바로 구시로 습지. 일본에서 최초로 람사르조약에 등록된 총면적 183평방킬로미터의 거대한 습지이다. 이곳에는 에조 사슴, 흰꼬리 독수리를 비롯하여 2천 종류에 이르는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여름에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며 겨울에는 특별천연기념물인 단학도 찾아온다. 대습지를 조망할 수 있도록 주위의 구릉에는 여러 개의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구시로 시 습지전망대는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어 초록의 양탄자 위를 산책할 수도 있다. 특히 호소카 전망대는 눈 아래로는 구시로 강의 물굽이를, 멀리로는 아칸의 연봉들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일본정부 관광국 구시로 습원 안내 부분)


내가 본 사진은 넓은 녹색 사이로 오래된 기차가 대각선으로 난 철길을 따라 달리는 모습이었다. 스펙타클하거나 아름다울 것도 없는 비인간적인 광경.

달리는 기차는 이 땅에 무신경한 녹색을 사진으로 담을 때 촛점을 찾지 못해 당황한 사진 작가가 놓아둔 절취선 같았다.

도서관에서 빌린, 발간된지 10년쯤 된 가이드북은 다른 페이지는 너덜너덜했지만 이 페이지는 아주 깨끗했다. 

그래 여기를 가야지, 여길 걸어다닐거야. 하고 홋카이도 여행을 결정했다. 


하와이든가 프랑스든가 간다고 하지 않았어?

안가, 홋카이도에 갈거야. 나는 여길 걸어다닐거야. 하고 습지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너도 참. 친구는 그것말고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원래 하와이에 갈 예정이었다. 그래 홋카이도 여행을 가기 전에는 그런 계획이 있었다. 나도 내가 그럴 줄은 생각도 못했다)


노롯코를 타고 전망대로 가는 것도 있고, 구시로 습지를 걸어다니고 싶으면 네이쳐 센터로 가서 하이킹 코스를 가보세요.

네이쳐 센터는 버스를 타고 가나요? 네, 시간표를 보여드릴게요.


구시로는 그 자체만으로도 조용하고 평안한 도시이다. 2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좀 그렇지만. 

항구는 깨끗하고 넓으며 본격적인 어항이라기 보다 잘 꾸며진 항구도시처럼 느껴진다. 성수기가 되면 로바다야끼나 구시로 주변의 아칸호 등을 즐기러 많은 사람이 온다고 하지만 구시로 시 자체에 상주하는 인구는 많지 않아 보인다. 미술관과 관광객을 위한 시장, 예를 들어서 항구에는 피셔맨즈 워프라는 순수하게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있다. 식물원에 밥집 그리고 작은 해산물 소매 시장 까지 있어서 과연 홋카이도 동쪽의 중심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내가 갔을 때는 사람이 그닥 많지 않았고. 여름에는 이 주변에 로바다야끼의 가판이 쭉 늘어선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외의 시설물들은 붉은 벽돌을 써서 만든 것들이 많았다. 넓은 땅을 마음 껏 써서 다리와 석상을 배치해서 의외로 이 도시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생활감은 적고, 어디랑 비슷한가 싶으면 러시아의 항구가 이런 느낌이겠지. 싶다.


(구시로에는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비가 있다. 그가 쿠시로신문사의 기자로 잠시 일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걸 쿠시로를 떠나기 직전에야 알았다)


아침시간이 지나서야 노롯코를 탔다. 석탄운송용 화차를 승객이 탈수 있게 개조한 차체는 안은 나무이고 편안하게 탈 수 있는 차량은 아니다. 거꾸로 그 느릿느릿함과 불편함이 매력으로 여러가지 노선에서 같은 이름으로 운행되고 있는 열차이다. 항상 인기가 많고 성수기에는 어느 정도 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탈 수 없다. 하지만 비성수기에 여기를 방문하는 사람이 그닥 많지 않아 이 열차를 탄 사람 중에 내가 제일 어린 사람이란 것은(서른이 한참 넘었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구시로 습원역에서 내려서 전망대를 구경했다. 구시로 습원의 전체 크기는 서울의 3배 정도 된다.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는 걸로 반족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나는 전망대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구시로 역으로 돌아가는 열차가 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저 쪽에서 부터 이 쪽까지 산도 없이 넓게 펼쳐진 광경을 보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바로 구시로 역으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산길을 올라 네이쳐 센터로 들어갈 수 있는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는 구시로 역을 중심으로 서북쪽으로 올라가 네이쳐 센터로 갔다. 거기엔 누구나 구시로 습지를 걸어다닐 수 있는 코스가 있다.

산 틈을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길로 들어가니, 나무로 만든 센터가 보였다.

실례합니다. 

나는 센터에 들어가 안에 들어가 있는 아무에게나(한 명 밖에 없었다)말을 걸었다.

약초꾼 처럼 생긴 중년의 남자였다. 남자는 센터가 닫을 시간이 다가와 귀찮은듯 고개를 들었다.

여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횡단하려면 얼마나 걸리죠?

2시간? 3시간? 중간에 길이 공사 때문에 막혀서 오래 걸릴거에요.

중년의 남자는 종이 지도를 꺼내 선을 긋는다. 이렇게 나아가요.

선은 거칠고 곧게 종이의 반을 가로지른다.


(나는 구시로 습원을 나올 때 그가 가르쳐준 코스를 그대로 따라 나왔다 정말 한참을 걸어서 슬슬 무리다 한계다 하는 시점에서 "작년 곰이 출몰한 지역이니 주의해주세요"하는 표지판을 보고 엄청난 힘을 발휘하여 기어나왔다)


센터 밖에는 나무 잔교가 놓여져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갈 수록 소리가 커져간다.

그것은, 처음에는 바람소리처럼 들렸다.

새가 부르고, 바람이 부르고 나무가 몸을 흔드는 소리. 거칠 것이 없는 평평하고 광활한 습지를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소리.

잔교를 조금 더 걸었을 뿐인데,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도 이곳 까지 오지 않는다.


녹색이, 녹색이, 녹색이, 녹색이 펼쳐져 있다.

녹색의 소음이 산불같은 소리를 내면서 사방에서 떨어져 내린다.

상상하고 있던 흙의 비린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싱싱한 풀을 갓 잘라내었을때 나는 냄새만이 느껴진다.

여긴 거대한 풀의 한 가운데야. 세상에 놓여진 세상의 끝 중 하나야. 너는 그래서 여기까지 온거야.


나는 습원에 놓여진 나무 잔교의 한 쪽에 서서 귀를 기울여 사방을 본다. 눈으로는 어떤 새도 동물도 볼수가 없었다.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이 내 옆을 치고 가버렸다. (나는 순순히 나의 끝을 인정했다)

나는 여기에 무너지기 위해 온 것이다. 멀리 바다를 건너, 기차를 타고 밤의 끝에 도착한 도시에서. 습지로.

무엇이라도 혼잣말을 해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소음이 나를 안았다.


나는 그렇게 통곡하기 위해 찾아간, 그 땅 끝 같은 벌판에서 소리를 들었다.

소리는 하늘에서 내려왔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소음. 우주의 모든 곳에서 떨어져 나온 신호 같았다.

그것은 내 삶의 끝이고. (언젠가 혹은 바로 지금) 이빨처럼 나를 찢어 흩뿌릴 것이다.

나의 일부가 저 푸른 습지에서 소음이 되어 사라졌다. 

나는 소음과 끝의 위로를 받아들였고 습지를 걸어나온 나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조각이 되어 습지에서 산으로, 그리고 도시로 각자 걸어나갔다.


여기에 있는 나는, 3시간에 걸쳐서 구시로 습원을 가로 질러 산을 넘어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고,

구시로 역에서 오비히로 역으로 밤 기차를 탔다. 밤은 길었고 내내 같은 노래를 듣고 듣고 또 들었다.

소음으로 인해 조각난 나를 채우려는 듯이 굴었지만 분리된 나를 이을 수는 없었다.

여러분은 영영 구시로 습원에 남은 나와 길을 돌아 나온 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남은 것은 일부분의 나 뿐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내 일부는 아직도 습지의 한가운데서 그 소음을 듣고 있다.




문제는 날씨였다.

아십니까, 비가 오는 산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털복숭이 아저씨처럼 술잔을 기울이는 것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사내다운 풍취가 없어서 온천에 들어갔다 와서 책이나 읽는거죠.


전날 다이세츠잔의 한 쪽 구석인 소운쿄에 도착해서 오후를 보내고 나니, 멈추지 않는 비 때문에 쿠로타케를 가볍게 등산하려던 계획도 망해버렸다.

이상한 곳에서 부지런하기 때문에 소운쿄의 케이블카를 타고 쿠로타케의 중간 지점까지 올라가 산에 비가 내리는 광경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지만

슬로프를 타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또 산 정상까지 왕복 2시간이 좀 넘는 스케쥴을 소화할 자신은 없었다. 게다가 사방에 곰을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가득해서 그 전 날 시레토코에서 정말로 곰을 만난 나로서는 겁을 먹고는 일찍 숙소에 들어와 온천을 하고 잠이 들었다.

달리 할일이 없기도 해서인데 리조트형 관광지로 꾸며져 있다고 해도 결국은 산 속의 골짜기, 기념품 샵이나 라멘집, 이탤리언 레스토랑이 있지만 본토의 화려하게 디자인된 온천마을에 비하면 아무래도 소박하다. 야생의 사슴들이 그냥 공터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걸 보았다.

다음날 호텔 뒤의 산책로를 걸을 때도 얼마나 사람이 없던지 곰나오겠어 라는 생각을 서른 번은 한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제는 날씨였다.

원래대로라면 다음날 일정은 비에이에 가서 자전거로 아오이케에 가는 거였는데, 이렇게 비가 내려선 3분만 자전거를 타도 독감에 걸릴 정도다. 호텔의 송영버스를 타고 아사히카와에 가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금 떠나는 아사히카와-비에이-후라노 라인은 15년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 곳. 대략 어떤게 있는지도 알고 뭘 볼수 있는지도 안다. 어디를 가든 갔던 곳을 한 번 더 가는 수 밖에 없는데...하고 지도를 보던 나는 버스안에서 충동적으로 로쿠고를 가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후라노 시내에 위치한 곳이라서 비가 와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겨울 시즌이 아닌 후라노 시는 커다랗게 4개 정도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비에이와도 이어지는 후라노 북부 지역으로 사실상 하계 후라노의 클라이맥스인 라벤더 밭과 멜론 농장이 있으며. 도미타 팜은 홋카이도에서도 아사히카와 동물원에 필적하는 유수의 관광지이다. 중심지인 후라노 시내는 사실 별다르게 볼 것이 없는 곳으로 시골 읍내답게 번화한 곳으로 후라노 마르쉐 정도가 그나마 볼만한 지역. 후라노의 서쪽은 겨울 관광의 중심지인 후라노 프린스 호텔이 있는 지역으로 와인공장이나 치즈 공방 같이 참가형의 액티비티도 가능한 곳이지만 비 겨울 시즌이라면 역시 약간은 애매하다. 후라노 지역이 상상 외로 넓기 때문인데(다른 홋카이도와 똑같다) 동쪽에는 로쿠고麓郷가 있다.

숲과 구릉으로 이루어진 후라노의 숲, 로쿠고. 후라노 시내에서도 꽤 멀기 때문에 유리 공방이나 잼 공방, 그리고 앙팡맨 숍 정도가 유명한 곳인데. 후라노의 다른 공방/농원들이 그렇듯이 메인이 되는 것은 방문자가 같이 참여해서 뭘 만들거나 하는 클래스가 유명하다.

달리 생각하면... 체험 클래스에 안 들어가면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곳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도 내가 왜 로쿠고에 가겠다고 생각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여기서 결말을 미리 말해주겠다. 나는 로쿠고에 가 수 킬로미터 시골길을 비를 맞으면서 걸었고. 시골길을 걷는 내내 나는 왜 자꾸 이런 여행을 할까 반성을 했다. 결국은, 그냥 뭐라도 해야지 하는 동아시아인 적인 부지런함이 아니었을까. 혼자 하는 여행 내내 나를 저주처럼 묶고 있는 동아시아인 적 부지런함. 오오 공자여 오오 맹자여. 농사천하지대본이여.


버스에 내려 아사히카와에 도착 할 때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점심을 굶고 편의점에서 대충 빵을 사서 전차를 탔다.

아사히카와와 후라노는 가깝다는 이미지가 있는데도 1시간은 걸리고 그나마 전차도 많지 않다.(그건 작년의 여행때 뼈저리게 느꼈다)

비는 전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강해졌고 후라노 역에 도착해서 짐을 맡기고 후라노 사람들도 잘 모르는 로쿠고행 버스를 탈 때 쯤이면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비에이에 가지 않기로 한 본인의 현명함을 칭찬하고 그대로 호텔에 들어가 쉬기로 하지 않은 어리석음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비는 중학교 수학여행의 벌칙게임 처럼 내렸다. 집요했고 개 중에 팔꿈치로 치는 비매너인 녀석이 있었고 가끔 멈추는가 싶더니 더 씩씩하게 내렸다.

버스는 다리를 건너 구릉을 타고 올라가 내가 봤던 그 어느 홋카이도의 거리보다 작고 초라한 시내에 도착했다. 로쿠고였다.

건물들이 있지만 가게는 아닌것 같고, 건물은 모두 적어도 20년은 될 듯하게 오래 되었다. 구글맵을 살펴보니 밥집은 두 서너 곳. 버스 정류장은 하나 뿐이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자전거를 빌렸을텐데 자전거를 어디서 빌려야 하는지도 알수가 없었다.


이제는 소똥이나 말똥 냄새가 난다 정도로 홋카이도의 어딘가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이 로쿠고는 로쿠고 숲과 전망대를 중심으로 작은 시내가 있고 농지와 여러가지 관광지가 흩어져 있는 구조이다. 그닥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찾아오는 것 같진 않지만 산천은 수려하고 길가의 농가가 평범하게 아름답다. 80년대 부터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의 촬영지였는지 여기 저기 그런 곳이 있다고 안내문이 붙어있지만 외국인인 나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차라리 아름다운 농토와 숲이 있어요 하고 홍보하는게 낫지 않았으려나. 8,90년대의 드라마가 어디에서 촬영되든 너무 오래 전 아닌가? (슬프게도 후라노 서부 지역도 그런 안내 푯말이 꽤 많다. 여기선 이런 드라마를 촬영했어요. 라고 써있지만 오다 유지 이전의 일본 드라마는 나에게 있어서 유사 이전보다 멀디 멀다. 대부분의 일본인에게도 그럴 것이다)

5시 경엔 후라노 시내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간다. 그 때 까지 글래스 포레스트라는 유리 공방과 잼 공방을 둘러보고(그래 가볍게 둘러보자고 생각했지) 후라노 시내로 돌아가기로 했다. 유리 공방은 로쿠고 읍내에서 바로 옆, 잼 공방은 5킬로미터 정도 시골길을 걸으면 있는데 학습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비가 좀 오지만 걸어서 가지 라고 또다시 생각했다.


유리 공방은 4,5건물 정도의 판매 건물과 유리 제조 공방이 같이 있는 곳이다. 어느덧 유리 공예 자체가 촌스러운 것으로 변했지만 이 공방은 그런 점은 전혀 부정하지 않고 물량으로 그걸 극복해내려는 것 같았다. 유리로 된 것이라면 거의 모든 종류를 다루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 오타루의 오르골 공방처럼 할수 있는 한 모든 종류를 진열해두고 네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이 중에 하나는 말야. 하는 느낌이다. 

가장 압도 당한 것은 작은 크기의 유리 공예품들, 각종 동물들을 갖가지 디자인과 포즈로 제작해놨는데 중형 전시대에 양쪽으로 가득차 두줄 정도 그런 물건들로 가득차 있다. 이런 집착이면 유리로 디오라마를 만들라고 해도 만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맥주를 마시고 있는 토끼 인형이 제일 맘에 들어서 주의깊게 보고는 다시 올게요, 하고 나왔다.

가장 사고 싶었던 것은 묵직하게 언더락을 마시면 제일 좋을 듯한 유리잔들. 때마침 일본의 아버지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제품들을 중점적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공방의 앞에는 작은 화로가 있고 사람들이 유리를 불거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가님, 이 유리는 베네치아적인 데포르메와 투명도가 핵심이군요. 부드러운 곡선은 얼마전 뉴욕에서 전시회를 한 그 분의 영향인가요.

자네는 공부를 많이 하는군, 이런 데이비드 카퍼필드 적인 디테일의 가장 중요한 점은 유리를 불 때의 호흡량에 따라 달라지지 나는 요즘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 자전거를 육십킬로미터씩 탄다네.

(위의 대화는 제가 제 멋대로 생각한 것들입니다) 같은 훌륭한 대화를 하고 있겠지. 멀리서 멍하니 공방을 쳐다보다 걸음을 돌렸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이 정도면 잼 공방에 다녀와야 한다.

비 때문인지 길가에 피어있는 꽃에서 강한 향이 느껴진다. 공기가 맑은 홋카이도인데 하늘이 흐려 멀리 까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세븐 일레븐에서 사서 일본에 올 때 다시 가져온 우산은 너무 작다. 비는 지치지도 않고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멀리서 아이가 보였다. 여자아이같은 뒷 모습에 우산이 없이 시골길을 걸었다. 어쩌면 5분 전 쯤에 지나갔던 초등학교의 학생인 것 같다.

예비 우산이 있던가.

우산을 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에서 우산 없이 걸어다는 아이에게 우산을 빌려준다고 했을 때 한 번도 우산을 받았던 아이가 없었다.

아무리 쫓아가려고 해도 의외로 걸음이 빨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잠시 길 옆에 떨어진 솔방울이 귀여워 사진을 찍느라 눈을 돌렸더니 사라져버렸다. 


길고 우아하게 굽은 시골길을 4,50분 걸었을까 표지판을 따라 숲 안으로 들어가면 잼 공방이 나온다.

이 떄 쯤이면 비는 그치기를 포기하고 쏟아져내리기 시작하고 6,7팀 정도의 사람이 잼공방에 비를 피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

잼 공방은 70평쯤 되어보이는 1층에 잼이 가득하다. 홋카이도의 자연은 풍요로워 일본내에서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식량 자급율을 가지고 있다. 그건 일반적인 곡물 뿐만이 아니라 고기, 우유 등의 부식들의 생산량에서도 마찬가지라서 각종 과일 또한 엄청난 양으로 생산된다. 의심이 나서 제쳐본 잼들은 열이면 열 모두 홋카이도에서 생산된 과일들로 만들어진 잼이었다. 하나 정도는 외국산 잼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포기하고 크로와상 카탈라나와 카레를 시켜 밥을 먹었다. 온 몸이 노곤해져 3년만에 먹는 식사 같은 기분이다.

한 떼의 대만인들이 인당 하나 씩의 카레를 시켜 커다란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주방에는 쉐프의 음식을 쉐프의 어린 딸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일본의 카레는 한 접시로 모든게 설명되는 훌륭한 음식이다.


카레를 먹고 나오면 바로 보이는 것이 앙팡맨 샵과 앙팡맨의 석상들이다. 하나같이 비를 맞고 있지만 씩씩하게 여기 저기를 바라보며 서 있다.

히로시마의 어떤 절에서 아이들을 공양하기 위한 절에 앙팡맨의 석상이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비를 맞고 있는데도 쓸쓸하기 보다 용감하게 보인다.


호빵맨, 그러니까 앙팡맨 기념관은 고치현(야나세 타카시의 고향이다), 후쿠오카와, 나고야, 고베, 요코하마 같은 곳에 위치해있다. 홋카이도에 있는 곳은 앙팡맨 샵이니까 뮤지엄보다는 격이 낮은 곳인데, 1층에는 앙팡맨 구즈로 가득하고 2층에는 야나세 타카시의 "앙팡맨 전설"에 대한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그림은 세균맨에게 주먹을 날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배가 고픈 동물들에게 자신의 머리를 떼에서 주는 장면. 작가는 태평양 전쟁의 참전병으로 전쟁 중에 전우 대부분이 죽고 기적적으로 생환하지만 전쟁 중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이 바로 배가 고팠던 것,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고 한다 영웅 중에 가장 훌륭한 영웅은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영웅이 아닐까. 그렇게 앙팡맨이 탄생한다. 고향으로 돌아와 만화가가 된 그는 50이 훨씬 넘은 나이가 되어야 만화가로서 대성하고 90세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일하다 94세의 나이로 영면한다.

별의 생명이 내려와 사람들에게 끝없이 자기를 베푸는 영웅, 귀환병은, 만화가는, 노인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앙팡맨의 이야기를 그렸을까.

그가 처음에 그린 앙팡맨은 그를 전투기로 오인한 사격에 의해 격추되어 앙팡맨이 죽는 것으로 끝난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전쟁으로 한줌의 재와 폐허가 된 고향에서 그는 어떤 생각으로 만화를 그린 걸까.

어딘가로 날아가는 앙팡맨. 석양으로 향하는 앙팡맨. 동물들과 손을 잡는 앙팡맨.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팝아트가 있을까.


돌아오는 길엔 비를 맞으며 시골길을 가던 아이를 생각했다. 가까이 갈수도 더 이상 멀리 떨어질 수도 없는 거리를 가던 아이.

우산도 없이 길을 걷다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숲이 시작하는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麓郷(로쿠고)의 로쿠란, 산 아래의 언저리를 의미한다.

그곳에는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살며, 산으로 간 사람들은 그곳을 고향처럼 여겨 때때로 돌아오기도 한다.


돌아가는 길에 글래스 포레스트에 들려서 유리로 된 토끼인형과 몇가지를 사야지. 선물을 해야겠다. 기뻐해줄지 잘 모르겠다.

"무엇을 위해 태어나 뭘 하며 살아있는가를 대답할 수 없다니, 그런거 싫다"

앙팡맨 샵에 새겨져 있는 야나세 타카시의 말- 이것은 앙팡맨 행진곡의 가사이기도 하다-이 잊혀지지 않는다.


16년 6월9일 후라노시에서의 일이다.



"죄처럼 푸르고, 기억처럼 앙상하나. 아름답기 그지 없다"


15년 7월 1일.

남자는 도북버스 시로가네 선의 시간에 맞춰서 자전거를 반납한다.

키가 크지만 등이 굽고 안경을 썼다. 낡은 유니클로 청바지에 아메리칸 어패럴에서 산 회색 후드티를 입었다. 

안에 입은 남색 셔츠는 땀과 비가 섞인 냄새가 나서 고약하기 그지 없다. 남자는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멀찍히 떨어져 선다.

가방은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한 긴 사각의 백팩이고 비교적 새것 인 것은 나이키 신발 밖에 없다.

좀처럼 웃지도 않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을 하고 있다. 따분한 인상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음료수를 사고 있으니, 가게의 주인이 말해준다.

저 여자아이들도 아오이케에 가. 슬쩍 쳐다보니 튼튼하고 따뜻하게 옷을 입었지만 묘하게 새것.

대만 사람이나 싱가폴 사람이려나, 하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가겠군.


버스는 하루에 고작 네 번, 아사히카와 역에서 비에이 역을 거쳐 시로가네 온천까지 가는 노선이다. 

9시 26분, 12시 11분, 15시46분, 17시26분. 비에이역 출발, 아오이케 도착.

15시 46분 버스를 타고 가면, 16시 06분에 도착. 돌아오는 버스는 16시 43분에 출발한다.

37분 밖에 체류 안하잖아. 괜찮으려나. 왕복 40분에 37분짜리 체류라니.


비에이의 시가지는 보잘 것 없다. 

후라노도 비에이도 농촌치고는 비교적 세련되었지만 건물들은 평범하고 화려하게 뭘 먹거나 쇼핑을 하는 건 바라기 힘들다.

"비에이센카(비에이 북쪽 시가지에 있다)"나 "후라노마르쉐(후라노 시가지에 있다)"같은 농산품과 기념품을 손쉽게 살 수 있는 곳도 생겼고 

비에이의 북쪽의 주택가에는 온통 이탤리언과 프렌치 뿐이지만 비에이역 주변은 평범하게 약국과 도장가게, 꽃집 같은 것들이 있다. 

관광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곳으로 보내고 자기들의 삶을 침범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농지로 들어가지 마세요. 비에이가 아름다운 이유는 농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는 안내문을 어딜가나 볼 수 있다.

두시간도 넘게 비에이의 구릉을 자전거를 타고 굴러다녔기 때문에 젖은 휴지처럼 지친 남자는 사실 아무 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홋카이도에 도착한 뒤 매일 짧게는 세시간에서 길게는 여섯시간 정도의 기차이동을 하고 있고,

매일 매일 적어도 8킬로미터 정도는 걷고 있다. 오늘은 오전 내내 비오는 길을 걸었고 오후 내내 자전거를 탔다.

더 이상 움직이기도 싫으면서 앉을 곳도 없는 낡은 버스 표지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여자 둘은 사이가 좋은지 지친 행색을 하고도 서로 끊임없이 소근대며 얘기를 나눈다.

키득키득 웃으며 잠시 남자쪽을 쳐다보다가 남자가 쳐다보자 금방 고개를 돌려버린다.

생각 했던 것보다 더 오래 기다려 버스가 온다.


낡은 버스는 덜컹거리며 숲길을 달려간다. 언덕과 밭과 숲과 구릉이 스쳐지나간다.

이 땅에서 버스를 타면 아름다운 광경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아무런 감흥없이 가버린다.

여길 여행하는데는 자전거를 타는게 좋겠지. 오토바이가 제일 좋으려나. 하고 남자는 생각한다.

바람을 느끼고, 소리를 기억하는데 차는 좋지 못한 탈 것이다. 

그는 아주 잠시 졸고, 버스는 정류장에 도착한다.


버스가 내리고 아주 잠깐 흙길을 걷자 거기에 푸른 연못이 있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작은 연못이 있었고 죽은 나무들이 있었다

연못은 파랬고, 나무들은 희디 희였다

연못의 반을 도는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연못가에 서서 움직이질 않았다

모두 푸른 색을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흙길을 빠져나와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에 선다. 

그는 혼자 였기 때문에 그가 그 연못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아무도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남자는 울컥하는 무언가가 핏덩이처럼 목 아래 차오르는 걸 느낀다. 버스 정류장 뒤의 숲으로 들어가 숨을 들이쉰다.

녹슨 철창과 군데 군데 보이는 콘크리트에도 불구하고 길 옆의 숲조차도 주먹질처럼 빽빽하게 녹색이 들어서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손목 냄새를 맡는다. 땀 냄새가 아니라 아까 본 푸르디 푸른 연목에 시체처럼 서있는 흰 나무 같은 냄새가 난다.

이 연못은 88년에 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의 연못, 

어째서 이런 물 빛을 내는지는 알수가 없고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물에 잠겨 있는 흰 나무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사라져갈 것이고

언젠가 산 속의 그냥 평범한 연못이 될 것이 틀림없다. 

남자는 어느날 처음으로 이 "만들어진"연못이 푸른 물을 머금고 있는 걸 본 사람의 마음을 떠올린다.


빗줄기가 거세지기 시작하자. 그는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든다.

한참을 지나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여자 둘이 연못이 있는 숲길에서 빠져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온다.

그들은 버스 시간이 다 되도록 연못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우산이 없는지 둘은 서로를 반쯤 얼싸안고 나무 아래에 선다.


남자는 영어로 말을 건다. 우산 쓰세요, 저는 하나가 더 있습니다.

두 여자는 당황한듯 애매모호하게 우산을 받아 하나의 우산을 같이 쓴다. 

생각 했던 것보다 더 오래 기다려 버스가 온다.

오늘 오전부터 비가 내렸으니 우산이 있었을거야.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남자는 버스의 오른 쪽에 여자들은 버스의 뒷 편에 앉는다. 시로가네 온천에서 돌아가는 사람들이 몇 명 타고 있지만.

아오이케에서 버스를 타는 것은 외국인인 그들 세 사람 밖에 없다. 빗줄기가 점점 세지고 세상이 젖어서 녹아들어가는 것처럼 추워진다.


남자는 비에이 역에서 내리려던 걸 포기하고, 아사히카와 역까지 그대로 버스를 타기로 한다.

그리고 친한 누나가 쓴 문장을 떠올린다.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겠지만, 그대로 버스를 타기로 한다"

눈을 감고 버스가 도착하길 기다린다.



16년 6월.

주인어른, 아오이케는 요즘 어때요?

그대로야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찾긴 하지.

자전거를 타면 얼마나 걸리죠?

작년에도 말했잖아 가는데 두시간 오는데 두시간, 중간에 언덕이 있어서 힘들고.

12시에 버스가 있어. 지금 8시 정도니까 밥먹고 가면 되지 않을까?

요즘은 비가 와서 별로 파랗지 않을거야.

날이 개어야 파란가요?

그렇지, 날이 개면 물이 그렇게 파래. 그래서 겨울엔 볼 수 없어.


남자는 잠시 생각한다. 지난 번에도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페달을 두 세번 밟는 듯 하더니 금방 역의 광장을 벗어나 휙하고 가버렸다.




이 글을 쓰면서 John Butler Trio의 "Sunrise over sea"에 포함되어 있는 곡 "What you want"를 들었다.

오늘은 16년 6월 14일. 여행기 다섯 번째 까지 써있던 홋카이도 여행은 약 350일 전의 이야기이고. 

두번째 홋카이도 여행은 그저께 끝이 났다. 아름다운 기타리프와 시작되는 이 곡의 단순한 가사는 아래와 같다.


넌 어떤 얘길 하고 싶은거야, 집에 도착하길 기다리면서

난 전화로 하는 이런 이야기에 질렸어. 

하지만, 나한테 네가 어떤 기분인지 말해봐,
나도 너처럼 외롭고 너에 대해 알길 바라.
지금 난 춥고, 얼간이 같아 너처럼 말야.

하지만 난 날아가 버릴 수도 있고, 완전히 타인이 될 수도 있어.
그리고 넌 산 위에 비추는 햇빛이 될 수도 있어.

그것도 아니라면, 넌 단지 어리로 와서 머무룰 수도 있지.
넌 집으로 바로 갈 수도 있고.
...
나는 오래된 실수들을 고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을거라고 생각해.
....


여행기의 두번째 시작은 16년 6월 5일 부터 시작한다.

홋카이도 동부를 여행하기로 마음을 먹은 나는, 홋카이도에서 조차도 아무 것도 없는 곳인 노츠케 반도에 가기 위해 

삿포로 역에서 국내선을 타고 나카시베츠 공항으로 이동. 거기서 세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길거리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시골 중의 시골.

오다이토미나토에 도착한다.(미나토란 "항"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나는 오다이토 항에 도착했다)

홋카이도에 처음오는 것도 아니고 일상회화 수준의 일본어는 어렵지 않게 하며, LTE 로밍이라는 강력한 아군을 지닌 나로서도 

터프하기 짝이 없는 일정이었는데, 홋카이도 동부의 일정이란 것이 그런 식이었다.

다들 렌트카를 몰고 다니거나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에 4번 밖에 없는 버스를 잡아 타거나 비싼 돈을 주고 택시를 타야했다.

심지어 어떤 버스는 일년 중 5개월에만 운행하기도 하였다. 동네란 것들이 "쵸(정)"하나에 편의점이 하나 밖에 없는 곳들이 잔뜩 있었고 며칠 후 시레토코의 우토로에 도착했을 때는 길을 건너서 편의점 두개가 나란히 있는 걸 보고 손을 합장하며 자본주의의 은혜에 감사했을 정도였다.


거기서 나는 한 시간에 한 대 밖에 없는 버스를 타고 공항에서 나카시베츠 버스 정류장으로 간 다음

(믿어집니까? 공항인데 공항 앞에 버스가 한시간에 하나야?)

버스 정류장에서 시베츠로 가는 버스를 탔다. 뭔가 적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놀랍게도 내가 나카시베츠 버스 정류장에서 뭘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을 빼앗긴 액션스타처럼 버스를 탄 나는 여기까지 했으면 뭐라고 해야지 하는 미친 생각에 시베츠 버스 정류장으로 가지 않고 시베츠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는 살몬(연어)과학관이라는 곳에 간다. 연어와 연어 초밥을 같이 전시해두고, 제일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은 칠성장어에게 손을 물리는 체험을 하는 수조였는데(칠성장어는 이빨이 없어서 물려도 안 아프단다) 내가 제일 재미있게 시간을 보낸 곳은 인공적으로 만든 작은 강에서 장난감 낚시대로 물고기 모양의 플라스틱 조각들을 낚는 곳이었다. 과학관을 나와 2킬로미터 남짓을 걷는데도 힘이 들었다.

12키로미터 쯤 걸어서 오다이토 미나토의 숙소까지 가겠다는 생각은 1.5키로미터 지점 쯤에서 날아갔다. 유럽처럼 단정하게 정리하려고 노력한 도로의 구석 벤치에 앉아 후드 하나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동부 홋카이도의 6월 날씨와 내가 도대체 여길 왜 온거야 하는 자괴감에 넉다운이 되어서 앉았다.

물론, 거기서 나를 기적적으로 북돋아 준 응원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났고 터벅터벅 걸었고 가지고 온 짐 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나는 현명하게도 보통 3일용이라고 불리우는 작은 캐리어에 옷만 꽉차게 담아갔다) 마음을 굳게 먹고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꼼짝없이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국내선 항공을 조금 고생해서 12시 편을 탄 덕에(원래 계획은 5시 30분 정도에 도착하는 편이었다) 연락 버스가 아직 있었고. 대절하다 시피 버스를 혼자 타고 오다이토 미나토 항과 숙소인 우타세야까지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시바견 두마리가 나를 보고 미친듯이 짖기 시작했다. 그날 내가 미나토항에서 갈매기 외에 목격한 유이한 생명체였다.


여관은 2층에 온천, 12테이블 규모의 식당까지 갖춘 멋들어진 건물이었는데

그날의 손님은, 나 혼자였다. 저녁은 해물 특선이었는데, 이 항구의 명물인 특대형 가리비도 있었다.

얼마나 큰지 손바닥 만 한 것을 양념을 치지도 않고 그대로 구워내는데도 맛이 있다.

여관의 주인(보통 여자인 경우가 많고, 오카미상이라고 부른다)은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테이블 옆에 서서 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했다.


"손님은 왜 이런 구석진 곳 까지 온거에요? 한국인이라며"

"아, 이번 여름 휴가를 계획하고 있을 때 노츠케 반도의 사진을 봤어요 너무 아름다워서 여길 꼭 가야지 하고 생각해서"

"홋카이도 여행의 전체를 노츠케 반도를 방문하는 걸 기본으로 짰어요 오늘이 제 이번 여행의 첫번째 날이자 하이라이트입니다"

"어머 대단하네 그런 멀리서 노츠케 반도를 보러 오고 말야"


주인에게 했던 얘기는 진실의 반 밖에 되지 않았다.

노츠케 반도를 보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째서 이런 세상의 끝이나 다름 없는 풍경을 보고 싶어했는지.

내가 무슨 마음으로 이 곳에 왔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겠지. 그걸 누구한테 말하겠는가.


그날 밤 나는 밤새 앓았다. 머리가 아팠고 토했고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어서 아침이 되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기만을 바랐다. 나는 왜 이런 곳에 있는거지 하는 생각을 이백번 쯤 했고

어디든 좋으니 잘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사백번 쯤 했다. 물론 하나 하나 세어 본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세어봤어도 비슷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홋카이도 두번 째 여행의 첫 번째 밤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오래된 실수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고칠 수 있다면 그건 오래된 것도 실수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고칠 수는 있다.


이제야 나카시베츠 버스 터미널에서 뭘 했는지 기억이 난다. 친절한 직원을 만나 버스 정류장을 안내 받았다.

라멘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다 시간에 쫓겨 바로 버스를 탔다. 인간은 이렇게 쉽게 잊어버린다.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 자신을 고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집에 갈 때 까지 뭔가 말해볼 생각이다.


다음 글은 아마 15년의 여행에 대해서 조금 더 쓰게 될 것이다.

이렇게 15년과 16년의 여행을 내 안의 맥락에 따라 번갈아 가면서 올리게 될 것 같다.

고백 할 것이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나에겐 유일한 친구이다. 

나에게 친구란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걸 이해해주길 바란다.




15년 7월 1일 홋카이도 여행 4일 째


눈을 감으면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언덕을 달려내려가는게 느껴진다.

이렇게 눈을 감으면 언젠가는 나뒹굴어질 거란걸 알면서, 나는 언덕을 내려갈 때 자주 눈을 감았다.

자전거는 튼튼하고 전동식이라 기어를 올리고 힘을 주면 언덕을 미끄러지듯이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길고 긴 녹색의 구릉을 미끄러지듯이 내려간다. 


비에이는 아름다운 곳이다. 


나는 비에이에 대한 글을 쓰지 못해서 1년 간 여행기를 완성하지 못했다.

원래 이 여행기는 내 친구를 위해 쓰기 시작한 이야기이었지만, 여행기를 쓰기 시작하기 전, 친구는 나에게 실망해서 나를 떠나갔다.

언젠가는 네가 이걸 읽지 않을까 하고 어렴풋하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알고 있다 그 사람은 다시는 나의 글을 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걸 이렇게 쓸꺼야. 하고 친구에게 얘길 했고 그걸 그대로 쓰는게 나에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을 읽어야 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원래의 구조는 불완전해지고 글은 무의미해진다. 결론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여행기는 결국 온전히 나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1년 가까이 여행기를 끝마치지 못한 것은 그 이유이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이 이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비를 맞으며 시골길을 걷고, 갖가지 색으로 펼쳐진 라벤더 밭을 보고 자전거로 구릉을 오르며 보았던 모든 것들을.

내가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소리를 듣고. 어떤 기분으로 너에게 지금 무얼 하고 있냐고 물어봤던 건지.


나는 일부러 너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는다. 너의 얼굴도 목소리도 떠올리지 않고, 옛 친구에게. 라고 생각하며 글을 쓴다.


15년 7월 1일. 홋카이도 여행 4일 째.


저기, 내가 가끔 아주 잘못된 판단을 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솔직히 나는 8킬로미터 쯤 걷는 것은 그닥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물론 그게 홋카이도의 6월이라는 점에서 1점 플러스(예에!) 그리고 비가 오고 길을 잘 모른다는 점에서 1점 마이너스지...2점쯤, 아니 3점쯤 마이너스지.

도대체 왜 그렇게 오전 내내 후라노를 걸어다녔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아사히카와에서 후라노로 가는 열차를 탈 때는 분명 아, 이거 먼걸 하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 그리고 아침부터 흐리군 비가 오겠어. 하는 생각도 했던거 기억난다. 라벤더를 보고 기분이 들떴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봐 내가 도대체 언제 그렇게 넓은 곳에 라벤데가 펼쳐져 있는걸 봤겠어?


라벤더 바타케 역에서 내렸을때 쯤엔 굉장히 실망하고 아 뭐지 이거 하는 기분이 들었던것 같은데 말야....

라벤더 바타케 역은 상시 개장되는 역은 아냐. 라벤더 철이 되어야 정차하는 역이라서 그런지 역 주변엔 창고 뿐이야. 내린 순간 아, 내가 지역관광청에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까. 창고만 가득하고 자꾸 나에게 영어로 얘기하려고 드는 청년에게 겨우겨우 도미타 팜이라는 곳이 라벤더가 굉장히 많다는 얘기를 듣고 그 쪽으로 갔지. 나는 일본어로 얘기하고 청년은 영어로 얘기하고! 내 뒤에서는 여자 두 분이 저 사람 한국인인가봐 쫓아가자 수군수군. 이러고 있었다고! 게다가 지역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슬로프를 손보고 있는걸 봤을때(그리고 그 언덕에 미묘한 보라색으로 심어져 있는 라벤더를 봤을때) 나의 실망은 어떤 결심적 지점에 다다랐지. 야, 어서 라벤더 바타케 역으로 돌아가서 비에이로 가버리자! 하고.

아 하지만, 도미타 팜의 멜론을 안 먹을 순 없었어. 아까 청년이, 라벤더는 아직이지만 메론은 드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기 때문이지.


그래 무엇을 숨기랴. 이 동네에서 재배하는 메론은 칸탈루프가 많아. 일반 메론은 참외에 가까운 맛이지만 이건 두리안에 가깝달까.

너도 잘 알거야. 보통 멜론처럼 옅은 녹색이 아니라 오렌지처럼 샛노란 메론 말야. 나도 많이 먹어본 것은 아냐. 동남아에서 먹으면 거의 좀 단단한 칸탈루프를 먹게 되지. 하지만 여기의 멜론은 좀 달라 엄청 물이 많고 부드럽고 달지. 듣기로는 프로슈트와 함께 먹는 것도 일반 메론이 아니라 이런 칸탈루프 종의 메론이래. 그래 이것도 숨길수 없지 나는 참외는 싫어하지만 햄메론은 너무나 좋아한단다. 안 갈 수가 없었어. 메론이 있다니!


라벤더 바타케 역에서 10분간 실망하고 10분간 꽃밭을 구경하면서 북쪽으로 걸으면 그 쯤에서 내가 와야 할 곳을 왔다는 걸 알게 되지.

엄청난 색이 펼쳐져 있거든. 그래, 라벤더 밭이야. 갖가지 색의 꽃들이지. 알겠어? 눈 앞에 언덕이 가득하고 그 언덕 모두에 꽃이 심어져 있어. 

저쪽 멀리 마르쉐 풍의 매점이(얏호 여기선 멜론빵 멜론케익 생멜론 멜론 아이스크림을 팔아!) 있고 아직 제철이 되지 않은 라벤더의 보라색은 비를 맞아 점점 진해져가. 바람이 강해져가는데 꽃들은 아랑곳하지 않아. 네가 이걸 보았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라벤더, 사루비아, 해바라기, 양귀비. 그리고 라벤더와 사루비아와 해바라기와 양귀비.


솔직히 말한다면 그렇게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었어. 중국인 관광버스가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도착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들은 군대처럼 내려서 향수와 각종 샤프란을 파는 가게로 달려가 기념품을 싹쓸이 하고 다들 손에 뭔가 들고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어. 그렇게 많아보였던 라벤더도 중국 관광객들과 1:2정도 비율인 것처럼 보였지.


나는 오백엔에 믿을 수 없을만큼 단 삶은 옥수수를 먹으면서(미안, 멜론 빵 먹었다는 얘기 빼먹었네 보자마자 먹었어) 온 몸에 차오르는 감동과 기력에 이제 뭘 할까 생각하고 있었지. 여길 도망쳐야 한다는 건 명백했는데 어쩔까 비에이에 가야하나. 아니면 로컬 미술관을 하나쯤 들를까. 고민하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툭치더라고.


"???"

"저기 한국분이시죠"

"아, 네..."


아까 기차역에서 날 쳐다보던 여자 두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어.


"일본어 잘 하시길래 한국분인지 일본분인지 헷깔리셔서요" 하며 내 옆에 다가오더라구 히이익

"혹시 도미타 팜 다음에 어디 가실거에요?"

"아, 저..." 뭔가 기분이 이상했지. 그도 그럴 것이 후라노에 온다면 비에이에 가거나 후라노 역으로 돌아가거나 둘 중 하나니까. 어쩌지 나처럼 비에이를 가는 사람이면 어쩌지? 설마 동행하자는 건 아니겠지 히이이익. 결단을 내려야해 하고 생각했지. 아 절대로 쫓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자.

"가미 후라노(약 8키로미터 정도 떨어져있다)까지 걸어서 가려고요"

"걸어서요?"

"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하고 나는 한국인에게서 도망치겠다는 씩씩하고 멍청한 이유로 3시간에 걸친 비오는 시골길 트래킹을 시작하고 말았어.


자, 이 시점은 겨우 오전 9시야. 나를 위해서 유투브를 열어서 Take me country road를 켜주지 않을래?

기껏해야 경기도에서 근교 농업 하는 거나 봤던 내가 뭘 알았겠어. 그렇게 컨츄리 로드가 길고 길줄은...

컨츄리 로드라니, 컨츄우우우우우우우리이이이이이 로오오오오오드 정도 된다구. 

처음 출발 할 때는 가미 후라노 쯤에 있는 고토 스미오 미술관에 들릴 생각이었지. 

미술관 자체도 아름답지만 자연 풍경을 세밀한 묘사로 그려낸 작품도 뛰어나지

문제는 내가 걸어야 되는 거리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한 것 뿐이야.


비가 왔지만 우산을 쓰면서 걸을 정도는 아니었어. 중학교때 이런 생각했던거 기억나? 한 번 쯤 비오는 날 우산 없이 걸어올 때가 있잖아. 

왜 기말고사 성적이 이것밖에 안나올까, 용돈을 깎이는게 아닐까. 그래도 주말에 치킨시켜먹고 싶은데 엄마한테 혼나겠지? 그런 생각하면서, 

미안 나만 그렇구나. 하여간 나는 그런 분위기였어. 그냥 농촌을 왜 걸어서 종단하겠다고 했을까. 머릿속에선 여러가지 잡념이 들기 시작하지.


잠깐만, 내가 걸어가면서 컨츄우우우우우리리리리 로오오오드 부르는거 녹음한거 있는데 들어볼래? 눈물과 웃음의 대서사시라구.

불러도 불러도 언덕이 안 끝나!

밭은 쳐져 있었지. 내가 자주 보던 논이 아니라 꽃을 심은 밭. 커다란 트랙터들.

여기가 미국이었으면 나는 24키로미터 지점 쯤에서 코요테한테 물려죽거나 지쳐서 3주 후에 발견되었겠지.


2시간 후 (그래 8키로미터 정도는 2시간이면 주파한다) 카미 후라노 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어떠한 긍정적인 마음도 없었어.

그냥 어딘가 들어가서 대충 따뜻한 음식을 먹고 아이폰을 충전한 다음 침대에 누워서 SNS에서 출근해있는 사람들이나 놀리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가 길었고(이 때 쯤 12시가 좀 안됐었어) 다음 내가 갈 곳이 있으니까.


비에이는 홋카이도의 거의 정 중앙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야. 1899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마을이고 구릉지역에 있지.

농촌이구나, 싶은 조용하고 작은 마을인데 연간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길 찾아온대. 

개척마을이었을 때는 아이누어로 "피-에(탁한 강, 기름이 떠있는 강)"이라고 불리우는 곳이었대. 

그래 누가 여길 탐낼까 싶을 정도로 구릉에 강에 숲이 있는 작은 마을이야. 사람들이 여길 찾아오는 이유는 다른게 아냐, 아름답기 때문이야.

일본 안의 유럽이라고 해도 괜찮을거야. 나도 맛있는 집을 찾으려고 했더니 이탤리언이랑 프렌치 비스트로만 잔뜩 나오더라고.


시가지는 비에이 역과 철도를 중심으로 남동/북서로 나뉘어져 있어. 주택가가 있는 곳은 주로 비에이역 주변의 남동쪽이지

하지만 요즘은 북서쪽의 주택가에 비스트로가 많이 생겼나봐. 트라토리오? 비스트로? 잘 모르겠다. 그냥 일반 주택처럼 하고 있고 아주 작은 간판만 하고 있어서 정확히 어떤 가게인지는 모르겠어. 개 중에는 아주 멋진 피자 화로가 집 옆에 보이는 곳도 있었는데 설마 취미로 그런걸 하신건 아니겠지?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이탤리언에서 밥을 먹었어 내가 외국인인걸 아니까 아무 것도 묻지 않았지. 세트 메뉴에 디저트까지.

테이블이 세개 밖에 없는 가게라 그냥 아는 사람 집에 불려가 밥을 먹는 느낌이었어. 정신을 차려보니 뭘 먹었는지 찍어두지도 않았더라.

기억하고 있어, 샐러드, 파스타, 케익. 하하 


나는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지. 여길 돌아보고 싶었어. 나는 이 다음에 갈 곳이 있었거든.

역 앞에는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많아. 깨끗해 보이는 자전거가 많은 집에 들어갔지. 잡화점도 겸하고 있는 곳이야.

자전거 코스 좀 찍어주세요 라고 하니까 어디까지 알아봤는지 몰라도 내 말대로 해, 라는 표정으로 코스를 그려주셨지.

대략 설명해주신건 여긴 자전거 코스가 크게 세개 정도 있다는 거야.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구릉코스, 다른 하나는 산쪽으로 가는 코스 다른 하나는 남쪽의 시가지를 가는 코스.

어느게 제일 비에이 답나요. 라고 물어보니 구릉에 가야지. 하고 한국어로 된 지도를 꺼내 색연필로 코스를 주욱 그려주셨어.

이게 한시간 짜리에요. 한시간 반을 가려면, 여기서 한 바퀴 더 돌면 되지.


"버스는 두시간 뒤에 있으니까. 한시간 반 코스로 타고 돌아와서"

"돌아와서 아오이케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되겠네요"

"그래요'

"다녀오겠습니다"


후에 알게 된 거지만, 나는 이 분이 알려준 코스를 비슷하게 가려고 노력은 했는데 약간 틀렸어. 

이렇게 가면 두시간짜리 코스인데 잘도 시간내에 왔네 하고 웃으셨지.


기찻길을 너머서 본격적으로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하면, 여기가 이 작은 시내와는 전혀 다른 곳이란걸 알 수 있어.

녹색

끊임없이 펼쳐진 녹색.

녹색 뒤에는 녹색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흰 꽃(무슨 꽃일까)과 보라색 꽃과 내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꽃들이 가득해.

올라오는 길조차도 그런데. 언덕길로 내려와 아주 먼 곳에 보이는 또다른 언덕으로 뛰어내려갈 때의 기분은...

나는 페달을 밟았어. 으으으 아아아 하고 작은 소리를 질렀지. 허벅지가 아프고 엉덩이가 쑤셔왔지만 도저히 멈출수가 없었어.

도대체 어디까지 이 길이 계속 되는지 저 너머에는 이 녹색이 끝날까? 아니면 계속될까. 작은 공포와 작은 기대가 번갈아가며 솟아올랐고

나는 언덕의 가장 위에 올라설 때 마다 멈춰서서 사방을 바라보았지. 구릉 사이에 서있는 나무들. 녹색과 노란색의 길들.

이렇게 넓은데, 아무도 없었어. 이렇게 아름다운데 나 밖에 없었어. 아무리 먼 곳을 쳐다봐도 이 모든 땅이 비어있었지.


사람들과 때로 스쳐지나가면, 중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지나가면 나는 길을 잠깐 옆으로 비켜서 흰색 꽃을 바라보았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면 페달을 밟고 하늘을 날듯이 언덕길을 달려내려갔어. 

나는 바람이에요. 자 봐요 엄청나게 빨라요. 나를 보지 않으셔도 되요. 저는 바람일 뿐이니까요.


언덕을 몇개나 올라왔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높은 곳에 나무 하나가 있었어.

사진을 찍었지. 내 얼굴을 찍고 하늘을 찍고 그리고 공터를 찍었어.

내 옛친구. 너는 내가 사진을 찍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아직 기억하고 있니?

나는 약속처럼 너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었어. 그것이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처럼.

그리고 금방 다시 자전거에 탔지. 쉬지도 않았어.


구릉을 달려내려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 곳을 쳐다보고 있었어.

커다란 나무가 있어서 나는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만이 아니었어. 고개를 드니

거대한 신과 같은 것이 지평선 위에 서있었다. 다이세츠잔, 구릉 너머로 보이는 산.

22만6천 헥타르에 달하는 위대함. 나는 말야, 왜 옛날 사람들이 산을 신으로 받들었는지 이해했어.

낯선, 아주 낯설고 거대한 것을 보자 저런 것이야 말로 사람의 이상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걸 실감했지.


결국 이 구릉을 한바퀴 돌아서 전망대에 돌아오자 나는 공주처럼 지쳐서 헥헥거리고 있었지.

그제서야 오늘 처음으로 생 멜론을 시켜서 전망대 테이블에서 먹었어. 물론 기적처럼 맛있었지.

점원에게 물었어. 저기 저렇게 가득히 피어있는 꽃의 이름이 뭐죠?

믿어져? 저 하얀 아름다운 꽃이 고구마 꽃이래. 너랑 같이 볼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나는 고구마 꽃이 피어있는 밭을 한참 바라보다, 자전거에 올라탔어.


곧 자전거 대여시간이 끝난다. 이제 자전거를 반납하고. 버스를 타고 아오이케에 갈거야.

거기엔 아무 것도 없이, 단지 아오이케만 있을 뿐이라고 하더라.

돌아가는 길은 알고 있어 이 언덕길을 내려가 구릉을 두개 타고 가면 된다.

눈을 감으면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언덕을 달려내려가는게 느껴진다.

바람이 불었다.





...

남자는 아무도 없는 플랫폼에 혼자 서있다. 누군가 그를 1년이 넘게 기다리게 한 것 같은 모습이다.

6월이지만 홋카이도에 있기에는 조금 섣부른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다. 발치에 작은 캐리어가 있다.

휴가의 첫날, 공항에는 일찍 도착했지만, 열차를 놓쳐 4시간이 넘게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다섯시가 된 지금에서야 열차를 한 번 갈아타고 4시간 가까이 걸려 섬의 남부에 있는 구시로란 도시로 갈 생각이다.

대합실엔 지친 한 무리가 날씨 예보가 나오는 NHK를 보고 있다. 


벌써 플랫폼 건너편은 새까맣다. 드문하게 서있는 교외의 건물들은 아무 흥미로운 것이 없는데 남자는 그 쪽을 쳐다본다. 

밭인지 공터인지 알 수 없는 땅이 있고 사람 한 명 짐승 하나 지나다니지 않는다. 

생각이 났다는 듯이 아이폰을 들어 역의 여기 저기를 찍는다. 반댓 편에는 남자 처럼 일찍 플랫폼에 기다리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있다. 

저쪽 반댓 편은 숲이 있다. 숲의 건너편도, 까맣기는 마찬가지이다.


남자 자신 외에 아무도 그를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남자는 허공을, 자신의 얼굴을 쳐다본다.

곧 열차가 온다. 열차를 타고 그는 아주 멀리 갈 생각이다.

2015년 6월의 일이다.


혼자서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었겠지만, 기차 여행을 하고 싶었다.

원래는 친구와 같이 가기로 했던 여름 휴가 계획이 어그러진 것은 5월이었다.

원래 일정은 파리였던가 하와이 였던가, 아니면 저 먼 남미였던가.

여행을 혼자 가려면 가지 않는게 나을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주 멀리 느리게 흔들리며 나를 옮겨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저 소란과 말들 사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공항에서 산 오리 인형을 가방 위에 올려놓았다. 오리는 소리도 내지 않고 나를 쳐다본다.


복도자리라 창 밖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끊임없이 무엇인가 흔들리고 스쳐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아주 멀리로 가고 있다. 오리와 함께 이 밤의 기차를 타고. 

친구의 생각을 한다. 그 사람은 지금쯤 어디에 있는거지. 눈을 감는다.


구시로 역,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흩어진다.

이 남쪽 끝의 항구 도시는 홋카이도 열차의 마지막 도착지점이기 때문에 이 곳에 탄 사람들은 모두 여기에 오려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11시에 가까운 늦은 시간에 내리는 걸까. 아, 오늘은 일요일이지. 입으로 한국어를 중얼거리고 웃는다.

택시를 타도 괜찮았지만, 호텔은 걸어도 충분한 거리에 있다. 역 앞 사거리를 건너서 나도 월요일을 찾아 흩어지는 사람들중 하나가 되었다.

북쪽 항구 도시의 밤은 6월인데도 추웠다. 가방에 든 후드 티를 입을 생각도 못하고 반바지에 티 차림으로 신음 소리를 내며 걸었다.

지금은 영상 8도, 내일 해가 뜨는 시간은 3시 45분이고 첫번째 열차를 탈 때 쯤이면 기온이 14도까지는 올라갈 것이다.


아무도 없다. 사거리를 세번 건널 동안 마주치는 사람 한 명도 없고 건물은 완전히 불이 꺼져있다.

거리의 건물들은 2층보다 높은 건물은 거의 없다. 비교적 새로 만든 오피스 건물들도 있지만 대부분 낡고 노란 가로등 불빛에 이라크의 흙벽돌 집처럼 보인다. 바람이 부는데도 그 바람소리 사이로 내 숨소리가 들린다.

나는 죽어있는 도시에 온 걸까. 사거리를 여섯개 지나쳐서 구시로 시청에서 오른쪽. 사거리를 다섯개 더 지나쳐서 구시로 시청에서 오른쪽.

졸음과 추위에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중얼거린다. 세상이 내가 기차를 타고 있는 사이에 멸망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시청 옆의 편의점에 들어가 물을 샀다. 편의점의 점원도 호텔의 데스크에서 서있는 남자도 졸린 기색이 역력하다.

이 도시에 12시는 유령과 바람 외엔 아무 것도 지나다니지 않는 것이다.

방에 들어가 침대에 앉아 안심한다. 그렇다 나는 이런 아무도 없는 풍경을 보러 이 곳에 온 것이다.


내일은 습지에 갈 것이다. 누우면 언제나처럼 잠이 온다.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일본의 대도시는 심하면 천년도 전에 만들어진 도시일때도 있지만, 삿포로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다른 대도시와는 아주 결정적인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서양식의 Av, St, 개념으로 구획되었다는 점. 

예를 들어, 주소를 봐서 서5, 남10 이런 식의 주소가 많고. 유명한 징기스칸 체인점인 다루마 같은 경우엔 "다루마4.4호점"같은 식의 이름이 있는데 그건 남4,서4지점의 다루마라는 얘기다. 거의 균등한 블록에 장방형의 도시라 길을 찾기가 엄청 편리.


이 주소의 기점이 되는 장소가 어디냐하면 대충 삿포로 시계탑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한다는 얘기는 한국의 웹에선 검색해도 나오지 않으니 확실히 말하기가 어렵고 삿포로 시계탑의 주소에는 동서남북 어떤 옵션도 붙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북쪽 블럭인 크로스호텔 삿포로는 북2가 주소이다)

기회가 있다면 삿포로 시계탑에 기점이 되는 돌이라도 있지 않을까 찾아보고 싶은데 항상 관광객이 바글거려서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삿포로에 낯선 여행객이라고 해도 대충 이 정도만 기억해두면 안심. 길을 잃을 걱정은 거의 없다.

건물을 못찾는다고 해도 한 블록 정도 돌아볼 생각을 하면 문제가 없다. 혹시 그래도 불안하다면 용과 같이 5를 하면 됩니다. 거기 삿포로 시가 나오는데 웃길 정도로 삿포로시를 잘 축소해놔서 처음 가보는데도 대충 어디에 뭐가 있을지 추측이 갈 정도였으니까. 깨알같은 홍보로군요 세가님 저에게 돈을 주세요. 홍보해드립니다.

(주의: 정말로 삿포로 시내 확인을 하겠다고 게임을 해선 안됩니다. 이상한 농담이라고 생각해주세요)


...하지만 여기까진 일반적인 얘기. 제 길잃는 재주가 얼마나 출중한지 삿포로시에서도 길을 잃었습니다 저는!

아주 깜짝 놀랐다니까요! 걸음도 얼마나 빠른지 스즈키노 역에 가야하는데 정신차려보니 호스이 스스키노 역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었어!

그러니까 삿포로시를 여행하시는 여러분은 길이 아무리 찾기가 쉬워도 방심하시면 안됩니다. 잘못하다간 스스키노 역 주변에 유흥가가 있는데 거기서 이상 기묘한 노래방 디스플레이 같은거 구경하다가 길을 잃을수가 있어요(변명이다)

 

그리고 한가지 주의할 점이, 삿포로시를 도보로 걸을때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기가 힘들다.

블럭과 블럭의 거리가 거의 일정한데 신호등의 타임이 미묘해서 매 블럭을 건널 때 마다 신호등에 걸린다. 진짜로.

예를 들어, 남10서6인 노보텔 삿포로 북7서5인 삿포로카니본케까지는 고작 2.3키로미터 정도로 걸어서 30분이 안 걸릴 거리인데 실제로 걸어보면 더 걸린다. 이유는 신호에 18번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리듬이다. 

음 블록이다 걸어가야지. 

신호네 파란불 기다리자. ..기다리자. 아 바뀌었다. 

블록이다 걸어가야지. 어 신호네. 파란불 기다리자. ...기다리자. 아 바뀌었네.

역시나 걷다보면 약간 짜증나는 느낌이다.


블록이 짧은 거리는 아닌데 거의 걷는 시간과 신호 기다리는 시간이랑 비슷한 듯 하다.

만약에 걸음이 몹시 느린 노약자라면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끊임없이 걸어갈수 있겠지만 그건 또 너무나 가혹하다.

성인 남성 반 밖에 안되는 속도로 걷는 노약자를 쉴 시간도 안 주고 계속 걷게 하다니! 삿포로 시 공무원들이여 너희들은 짐승인가!!

이 가혹한 신호 체게에 고통받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닐터. 삿포로 시민들은 어떻게 극복하는 걸까 하고 유심히 지켜보니까. 의외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휘이이잉 하는 느낌으로 한번에 몇 블록을 이동할수가 있는 것 같았다. 거의 두블록은 기본?

잘은 모르겠지만 상당히 쾌적한 속도로 신호 같은건 신경쓰지 않고 움직이는 시민들이 많았다.

호텔에서 자전거를 빌려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관광객인 나는 자전거가 없으니.

이런 삿포로 시민들의 기득권을 인정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좋겠어 이 사람들.





길을 헤매는 사람에게야말로 달콤함이 필요하다. 

 

이번 여행에서 정말 지독하게 길을 헤맸는데

헤맬 때 마다 길바닥에 앉아서 울기보다는 아무가게나 들어가서 뭘 사먹었다.

홋카이도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전체적으로 다 맛있었다.

그 중에서 제일 꿀맛이었던 것이 롯카테이 본점에서 먹었던 디저트들이었는데

그 디저트들을 먹은 얘기를 하려면 가장 장렬하게 길을 헤맨 3일째 날 얘기를 할수 밖에 없다.

시간 순서대로 써도 내가 도대체 왜 이 따위로 헤맸는지 이해가 안가는 이야기기라

성의없이 휴먼굴림체로 대충대충 쓸 수 밖에 없다. 그 개요는 하기와 같다.

 

숙소 ->어리버리 -> 오비히로 역 -> 마나베 정원 -> 배고픔 -> 오비히로 역 -> 판쵸

-> 롯카테이 본점 -> 어리버리 -> 오비히로 경마장 -> 미도리가오카 공원 -> 폭우에서 길잃음 -> 오비히로 역

-> 롯카테이 본점 -> 모든 걸 포기 -> 오비히로 역

 

전날 구시로에서 3시간 기차타고 오비히로에 도착.

오비히로 시의 중심가는 오비히로 역을 중심으로 시의 북쪽에 기울어져 있는 형태인데 왼쪽으로 굽은 가지 처럼 통통하게 남서쪽으로 기울었다. 북쪽엔 토카치 천, 동쪽 끝에는 사츠나이천을 기대고 남서쪽의 끝에는 피파이로 산(성의없는 이름이다) 토카치호로시리 산을 접했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넓은 땅이 소위 말하는 토카치 평원의 일부로, 정원 문화와 낙농업이 크게 발달한 남쪽의 번화지역이다.

 

홋카이도에 와서 한 두번 실수한게 아닌데, 가이드북에 오비히로에서 가면 좋은 곳 뭐 이렇게 써있다고

절대로 가까운게 아니다. 대학교 들어가서 저 서울살아여 이러면 꼰대들이 서울이 다 니네집이냐 하는 이유가 있었다. 편의상 오비히로를 얘기할 때 토카치 지방과 함께 묶는데 정확히는 토카치에 오비히로가 있는 것으로 토카치 평야는 무려 3,600제곱키로미터(충청북도의 반정도)

그리고 정식 행정구역인 토카치 군은 오비히로 주변의 군이니까 복잡하기 짝이 없다 토카치 지방과 토카치 평야와 토카치 군은 다르다! 알게 뭐야 하여튼 넓다.

 

이 쪽에서 가려고 한건 토카치 천년의 숲이라고 인공적으로 만든 거대한 수목원.

천년 후 까지 남을 숲을 만들겠다는 그 스케일에 반했습니다. (사실은 치즈가 맛있다고 해서 가려고 했지만)

전날 인상 깊었던 구시로 습원에 한 번 더 갈까 고민하는 바람에 전날 관광버스 예약을 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2분의 4박자로 비가 내려서 걍 무슨 습원이냐 수목원이나 가자 라고 생각했는데

비오는 날에 습원은 가면 안되지만 수목원에도 가면 안된다는 생각은 못한 나는 바보.

솔직히 버스 예약 안 했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고 생각한게 정말 바보 같았다.

호텔 프런트에 물어보니까 차 타고 40분 넘게 걸리는 곳인데 예약도 안하고 가실려구요 하길래 포기. 

다른데 갈만한 곳 없냐고 물어보니까 오늘은 반에이 경마도 없는 날인데 하고 말끝만 흐리고...

 

반에이가 뭐냐 하면 만화 은수저에 나오는 바로 그 짐수레 끄는 말로 하는 경마가 바로 반에이 경마.

거기 경마장에 바로 오비히로에 있고(여기만 있다) 은수저 만화 자체도 오비히로 농고가 배경이다. 덕후들 참조요.

 

멍청한 외국인이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걸 귀찮아 하지 않은 친절한 호텔 프런트에서 어렵게 찾아봐 준 곳은 홋카이도 식 정원인 마나베 정원.

이런 홋카이도식 정원은 오비히로와 아사히카와에 많은데 일종의 개인이 운영하는 수목원.

전통적인 일본 정원과는 다르게 유럽식 정원의 영향을 받아서 다양한 식생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넓다.

솔직히 이 시점에서 나도 그냥 정원이겠지 금방 끝나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날 하루 종일 걷고 걷고 또 걷게 될줄은 몰랐던 것이다. 안 그랬다면 이런 개인 규모의 수목원 따위 가지 않았을 거다.

 

- 마나베 정원

잠시였지만(이 때는 잠시 그친건지 몰랐지...) 비가 그쳤기에 버스를 타고 마나베 정원으로 갔다. 시내에서 15분 정도의 거리.

마나베 정원에 가니까 입구에는 화분들을 잔뜩 팔고 관광객들에겐 15분/30분/45분짜리 산책 코스가 있다는 안내가 있었다. 가니까 젊은이는 나 밖에 없다. 서른살도 넘은게 젊은이라고 하면 웃기지만 거기 가면 알수 있다 압도적인 차이로 내가 최연소인게 분명.

할아부지 할머니들이 버스를 타고 몰려와 (일본인답게) 조용히 산책하거나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이 곳의 공기에 스며들지 못하는 느낌...

내 선택지는 저 보기보다 늙었어요, 라고 늙은 척 하거나 저 길가다가 우연히 헤맨겁니다, 두 개 밖에 없었다. 

당연히 후자를 골랐습니다. 후드 뒤집어 쓰고 어쩌다 흘러들어온 힙스터인 척하면서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도 메소드 연기를 했습죠.

마나베 정원은 전형적인 홋카이도식 정원 중의 하나라는데, 꽤 넓은 부지에 구역을 나눠서 식생을 완전히 분리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45분 정도 정원을 걸어다니니까 예쁘기도 하고 나무들도 평화롭고 폭포도 있고 연못도 있고 하여튼 그래서 나올때 쯤엔 마음이 온화해졌쯤.

수많은 노인들과 동료의식 느꼈다. 그들도 나를 동료로 받아준 듯한 느낌이 들어...

 

- 판쵸

1시간 정도 산책을 한건데 버스 시간 안 맞아서 40분간 수목원에서 비맞으며 기다리다 시내로 돌아오니까

이미 기력은 제로였다. 비는 오고 쉴 수 있는 곳도 없고. 마음이 삐뚤어지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점심은 계획이 있었다. 일본 최초의 부타동 집이었다는 판쵸가 바로 오비히로 역 앞에 있는 것. 무려 1909년에 개점한 집으로.

흔히 돼지갈비 덮밥 같은 걸로 생각하기 쉽지만 풍부한 고기에 달기보다 짠맛 베이스의 양념이라 생각했던 맛과 다르다.

8테이블 남짓한 작은 가게라 모르는 사람과 합석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줄을 서서 기다리기 시작한 시점에 들어가 아이고 부타동 조상님 하고 넙죽 업드려서 제일 비싼 1300엔 짜리 시켰더니 밥 위에 돼지고기만 잔뜩 올려져 나왔는데 합석한 아저씨들이랑 눈치보며 어색하게 한술 뜨다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뛰어난 밥맛과 숯불구이한 돼지고기의 풍부한 맛이 어우러져 밥 먹다가 박수 칠뻔. 

게다가 비도 완전히 그쳐서(착각이었다 오후 늦게 비 미친듯이 오기 시작함) 오비히로 괜찮은 곳이구나.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쩔수 없었던게 그 시간대에 다음 숙박지(아사히카와) 로 가는 기차가 없었는데, 어디 들어가서 그냥 휴식이나 취하지, 그 때 나는 괜찮을 줄 알았다.....

 

돼지고기가 과했을까. 8장이나 되는 돼지 고기를 먹으니 힘이 너무 난 탓이었다.

앞으로 에정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오비히로시를 탐험해보자!(=할거 없으니 그냥 돌아다니자)라고 생각한 것. 오비히로시는 삿포로시와 같이 계획하에 만들어진 도시이다. 서구의 도시처럼 스트리트와 애비뉴가 정확하게 나눠져있진 않지만 구획을 정하고 그 위에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방향만 똑바로 잡으면 길을 찾는게 편하다.

낯선 도시를 구경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 분명 이것저것 즐거운 게 많을거야.라고 생각했다.

앞에서 설명했지만, 남쪽의 번화가이자 낙농업이 발달한 토카치 지방의 중심가가 아닌가.

 

- 롯카테이 본점

우선 첫번째 목적지는 오비히로 중심가의 북쪽에 있는 롯카테이의 본점. 롯카테이는 홋카이도의 유명한 제과 기업으로 일본 면세점을 가도 꽤 자주 볼 수 있는 초콜릿으로 유명한 가게다. 하지만 초콜릿만이 업이 아니라 일본에서 접할 수 있는 스위트 종류는 대부분 취급하고 있다.

일본식 과자의 세계야 워낙 넓고도 깊어서 모든걸 취급한다고 볼순 없지만 팥 계열의 모나카, 안미쯔, 젤리야 당연히 취급하고 각종 케익류, 샌드류도 폭넓게 취급하고 있다. 내가 특히 즐겁게 먹은 것은 본점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크림과 바삭한 과자류. 파손과 부패에 약한 것들만 골라서 먹었는데 과연 훌륭했다. 많은 여행객이 지적하는 바, 다른 음식들은 특별히 싼건 아니지만 

홋카이도 특히 오비히로의 스위츠들은 말도 안되게 싸고 괜찮은 퀄리티다.

바로 이런 단 음식이야 말로 여행을 즐겁게 해주는 소소한 기쁨. 입에 달콤한 것이 들어오면 그야말로 펄펄해진다.

1층에는 제과점, 2층에는 카페를 운영하며 레스토랑이 입점해 있는데 스프카레가 있는걸 보고 저녁때 너를 먹으러 올게 스프 카레야하며 롯카테이를 20분도 채 안 머무르고 용감하게 떠난 것이 오후 1시쯤.

 

- 반에이 경마장

두려울게 없는 상태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오비히로 읍내를 도는 것이 아니냐. 볼만한 것은 다 보겠다 하는 심정으로 반에이 경마가 열리는 오비히로 경마장으로 걸어갔다가 남쪽에 있는 미도리가오카 공원(동물원이 같이 있다)을 한바퀴 돌며 오비히로 시내의 평범한 일상을 만끽하겠다 하는 오늘의 마지막 잘못된 판단을 했었던 것이다.(아니 몇개 더 한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것이 끝난 지금 그날 내가 롯카테이 본점 부터 걸어간 루트를 구글 맵으로 계산해보니 약 14키로미터 정도.

비오는 6월 말의 홋카이도. 얼간이 같이 걸어갔던 나.

매주 주말, 혹은 월요일만 열리는 반에이 경마가 있다. 말에 관한 박물관과 홋카이도 식료품을 파는 마트, 음식점 등이 있어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종합 휴식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경마가 열리지 않는 날에도 충분히 즐거운 공간이지만. 경마가 열렸다면 더 즐거웠겠지...왜 여길 기를 쓰고 걸어갔을까.

 

- 미도리가오카 공원

오비히로의 가장 커다란 공원. 얼마나 커다랗냐 하면 50헥타르 부지에 있습니다. 안에 미술관, 오비히로100년 기념관, 오비히로 동물원이 있고도 남는다.

무려 뉴욕의 센트럴 파크 7분의 1넓이입니다. 이게 얼마나 넓은건지 잘 이해하기 힘들겠군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100헥타르인 에버랜드의 반, 서울랜드는 28헥타르 입니다.

미도리가오카 공원을 산책한 일 하나가 에피소드 반 정도의 분량이 될것 같은데. 다른 이유는 없고 공원 안에서 길을 잃었다...잃을 정도로 숲이었습니다.

비도 오고 그래서 그런지 50헥타르 부지에 나 혼자 있었던 것 같은 느낌. 롯카테이에서 사온 팥떡을 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아서 꾸역꾸역 먹었답니다.

1시간 넘게 헤매다가 문득 이러다간 큰일나겠다 싶어서 찻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뛰쳐나갔더니 풀밭에서 사람들이 고기를 굽고 놀고 있었다.

 

미도리가오카 공원을 나오고도 한참을 걸었다. 오비히로 역까지도 멀었고 저녁을 먹을 생각이라 롯카테이까지 꾸역꾸역 걸어서 레스토랑이 저녁 개점을 하는 시간을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창 밖을 보고 있노라니 뭔가 귀찮아져서 저녁을 먹지 않고 기차를 타러 떠났다. 스프카레? 먹었으면 체했을게 틀림없다.

로바다야끼의 본고장이 구시로라 여기서라도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안한건 아니지만. 결국 그대로 모든걸 포기하고 오비히로를 떠났다.


- 총평

혼자서니까 가능한거지, 누군가. 예를 들어 당신이 있었다면 나는 이렇게 여행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을 숨기랴, 홋카이도에 처음 갈 때 내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기차여행"이었다.

이유란게 별게 없는게 Anna Kendrick의 "Cups"의 가사가 이랬기 때문이다.

 

나는 멀리로 떠나는 표를 하나 샀지.

위스키도 두 병 샀으니, 다정한 길동무가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내일 떠날 건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멀리로 가는 표를 하나 샀지.

엄청나게 아름다운 풍경일거야. 산도 보고, 강도 보고.

하지만 너랑 같이 있으면 더 아름다운 풍경일거야.

 

나는 멀리로 떠나는 표를 하나 샀지.

위스키도 두 병 샀으니, 다정한 길동무가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내일 떠날 건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가버리면, 내가 가버리면 말야.
넌 내가 가버리면 날 그리워할 거야.
 
나는 여기서 곡의 화자가 샀다는 티켓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기차로군! 하고 추리해냈다.
이유는 역시 1. 비행기에서 술을 가지고 탈순 없지 2. 그레이 하운드는 지정석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기차 창가에 앉아있는 Anna Kendrick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아 궁색하네.

기차여행을 하고 싶었다. 어쩌면 기차여행을 하고 싶어서 홋카이도에 간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기차여행에 대해서 할 말이 몇개 있지만 여기선 주의할 점을 간단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홋카이도 레일 패스 외 각종 정보는 하기 링크에서 확인 할 것.
http://www2.jrhokkaido.co.jp/global/korean/railpass/rail.html

<<홋카이도 기차 여행의 주의할 점>>
 
1.
가장 중요한 것은 홋카이도는 넓다. 미국인은 코웃음을 치겠지만, 한국인 기준으로는 넓다.
첫번째 이동이었던 신치토세 공항에서 구시로까지의 이동은 순수하게 이동만 4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매번 이동 할 때 마다 2시간 이상이 걸렸고. 원하는 시간에 열차의 착발이 있을거란 보장이 없었다.
열차운송의 나라인 일본이라서 의외였던 부분으로 인구밀도가 낮어서 그런지
대도시간의 이동도 인구 밀도가 높은 서부 이외에는 하루 4번 정도 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아침에 두건, 저녁때 두건. 이런 식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두가지 준비, 첫 번째는 스마트폰 어플로 일본의 열차 시간을 체크할 것.
내가 쓰는 것은 야후 재팬의 교통 정보로 도쿄의 본토에서는 거의 100%에 가까운 정확도를 자랑하는 훌륭한 어플인데
홋카이도에서는 상황이 다른게, 열차의 지정석이 만석이 될수 있다...나도 몇번 당했습니다....
다른 걸 써도 상관없지만 항상 열차 시간과 빈자리를 체크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야후재팬의 로선 정보는 하기 링크에서 확인할 것.
http://transit.yahoo.co.jp/

두 번째는, 약간 큰 규모의 열차 역마다 항상 있는 녹색창구(미도리노 마도구치)를 이용해서 
열차 시간을 사전에 체크하고 예매를 할 것.
뒤에 레일패스에 대해서 적겠지만, 레일패스를 쓴다면 지정석은 무료로 예매가 가능하며 전날, 최소한 당일 아침에 예매하면
그날 자리가 부족해서 이동을 못하는 불상사를 피할수 있다. 나름 엘리트인 JR직원들이라 일처리도 정확하고 영어도 어느 정도 통한다! 필요한 경우 관광에 대한 가이드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고 시간표 배부야 당연히 공짜다.
 
2.
다음은 홋카이도, 아니 일본의 열차 체제에 대한 이해. 기본적으로 도심을 달리는 열차는 자유석, 그러니까
그냥 표만 사면 되는 전철식 구성을 하고 있는데 조금 멀거나 쾌속, 특급 같은 열차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먼거리를 가는 만큼 화장실도 달려있고(감사합니다) 자유석이 한 열차에 2차량 정도, 나머지는 거의 지정석으로 채워진다.
서울에서 선량하게 살고 계신 여러분은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지방에서 살거나 어딘가 여행이라도 가본 분들은
사전에 좌석을 지정한 티켓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이렇게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간다)
 
그러니까 열차 칸의 종류는 이런 식인 것이다.
 
-자유석
-지정석(모든 차에 있는건 아님)
-그린차(모든 차에 있는게 아님)
 
거의 모든 열차에는 표만 사면 타는게 가능한 자유석, 즉 입석이 있고 대부분의 열차는 "지정석"을 구매해서 이동해야합니다.
열차 표는 만국 공통, "착발 지점" "시간대" "차량번호" "자리"가 기입되어 있고. 2시간 이상의 이동은 무조건 지정석으로 이용하는게 좋다.
홋카이도 레일 패스가 있어도 창구에서 지정석을 발급 받아서 차량에 타야한다. 항상 차량 내에서 표를 검사합니다.
보통 앞 좌석 머리 뒷 부분에 티켓을 꽂아주는 곳이 있어서 거기에 티켓을 꽂아두고 주무시더라고요.
 
그린차는 일종의 1등석인데, 저도 출장 때 이용할 때만 사용해봤으니까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홋카이도에서는 거리가 길어서 그런지 그린차가 엄청 비싸고 복잡해요, 도쿄에선 스이카로 이리저리 해서 저리저리 하면 간단한데(시무룩) 
 
3.
사실은 가장 중요한 점인데. 어떻게든 기차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차로 이동하는 시간을 디자인해야 한다.
1번과 2번의 이유로 자기가 원하는 시간대에 완벽한 기차가 있을지 알수가 없다. 
사전에 어떤 시간대에 어디서 어디로 이동해야한다는 디자인이 나오면
관광객들에게 중요한 홋카이도 레일패스를 사용할지 안 할지 결정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치토세->구시로의 이동이 8천엔이 넘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쓰는 편이 안 쓰는 것보다 이익이 되었는데. 계산해보면 좀처럼 할인 이익을 보기 힘들다.
충고를 하자면 어차피 지정석을 예매하기 위해서는 미도리노 마도구치에 가야하기 때문에
삿포로 시내에서 이동할 때 편하겠다고 레일패스를 쓰는 것은 효율이 좋지 않다.
장거리 이동이 있을 때 할인효과를 누리기 위해 혹은 편하게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사용하는게 좋다.
매번 계산하고 돈내는 것보다 레일패스로 바로 발급받는게 상당히 편하다.

이렇게 각 구간 어떻게 갈 것인지까지 결정하게 되면
어느 방향으로 갈때 어떤 풍경을 볼 수 있을지까지 계산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은 이미 사람의 업이라기 보다 덕후의 영역.
물론 이런걸 알려주는 곳이 몇군데 있더라고요. 있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철덕이란 참 두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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