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홋카이도 여행기의 마지막이다. 이것은 일종의 유언이다.

나는 이제까지 내 안의 무언가를 버려서 삶의 의지를 이어갔다. 그래서 이번엔 글을 쓰는 것을 그만 둘 생각이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우울할 때면 청소를 한다거나 인간관계를 정리한다거나 하는 것의 조금 다른 표현일 뿐이다.

당신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무엇하나 제대로 버리지 못한다. 


이번에 정리하는 것은 내가 글을 쓰려는 의지이다. 언젠가 아름다운 것을 쓸 수 있으리란 희망이다.

이런 글에 대한 동기만은 아주 오랫동안 나의 힘이 되어주었다. 

알량한 재능, 그리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 그리고 스스로를 위로하겠다는 욕심. 오만함.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고집이었고 동시에 내 삶의 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글을 쓴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만 쓰겠다.

끝맺을 필요가 없는 글을 굳이 쓰는 이유는 이 마지막 글만은 나를 위한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삿포로. 두번째 홋카이도 여행의 마지막이 될 날.

나는 삿포로에 도착하자마자 길을 잃었다. 농담이 아니다. 장방형으로 이루어진 도시에서 주소도 알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길을 잃는게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이런 식이다. 음음 목적지가 동14 남20이니까, 이 쪽으로 쭉 가서 꺾으면 되겠지! 하고 서 14 북 2에 가있는 식이다.

걸음은 엄청나게 빨라서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4블럭 정도는 거뜬하게 지나쳐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는데 정말이다. 나랑 같이 걸어다니면 알 수 있다. 장소를 찾는데 디테일하지 못하다.

망연자실해서 몇분 간이나 멈춰서서 자기 반성을 했다. 철새 여러분 나에게 힘을 주세요. 지구의 자기장을 느끼게 해주세요.

제법 발달해있는 시가지인 삿포로역-스즈키노역 라인과는 다르게 삿포로에도 덜 발달되어 있는 시가가 있는데 중심지에서 멀어질 수록 

건물들이 작아지고 낡는다. 나름 그런 것도 풍취지만 길을 잃어버린 자에게 그런 여유는 없다. 

두번 째 홋카이도 여행의 실질적인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나는 해야할 것이 많았다.


홋카이도가 아무리 자연경관이 클라이막스가 되는 지역이라고 해도 삿포로에는 사람이 모이니만큼 볼만한 것들이 많다. 

홋카이도 전역에서 몰려온 식재료의 스프 카레, 라멘, 스시. 카이센동은 싱싱하고 전 지역의 스위츠 샵에서 모여든 유명 디저트들은 아, 왜 인간은 

하루에 먹을 수 있는 밥에 한계가 있나요. 오늘 하루 잔뜩 먹고 두달 간 굶으면 안 될 까요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사실 일본에 와서 나는 책이나 전자제품, 옷, 화장품 등도 꽤 많이 사는 편인데 실은, 아사히카와를 제외하면 

그런 "일본 여행 와서 기본인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은 삿포로 밖에 없다.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해. 이래선 후라노에서 첫차를 타고 여기에 온 의미가 없다. 나를 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 손에 구글 맵을 숫제 그냥 켜둔 상태로 호텔을 찾아 걸어갔다. 

스즈키노 옆에 있는 호텔로 다가갈 수록 교통정체가 거의 없는 삿포로인데, 어째서인지 관광버스가 여기저기서 몰려들어 길이 막히는 게 보인다.

 코스프레라도 하는 듯이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도 여기저기에 보였다. 나이대도 다양하여 청소년, 청년, 장년, 노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들 부끄럽기 짝이 없는 복장에 진한 화장을 하고 씩씩하게 한 방향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렇다, 16년 YOSAKOI 소란부시 축제가 같은 시기에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도 여러가지 지역 축제가 있다. 

지금은 전국에서 200개가 넘는 팀이 모여들어 5일 동안 각자의 공연을 하고 시민들과 춤을 추는 축제가 되었지만, 

원래부터 소란 부시는 홋카이도 지역에서 청어잡이 철에 부르던 노래이다. 기본적인 가사는 이렇다


야렌 소란 소란, 청어가 오니 갈매기가 시끄럽구나 은빛 비늘에 여울이 빛난다 쵸이!


이런 가사를 지닌 민요에 전국 사람들이 춤을 추고 대회까지 연다구요? 네 그렇습니다.

다소 촌스럽던 민요는 이토 타키오라는 민요가수가 편곡한 버젼이 의외로 인기를 끌고, 

왓카나이 남중이란 곳의 특활 부가 전국 규모 대회에서 우승을 함으로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것이 1991년.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는 느낌으로 각자가 자기 지역에 맞는 가사를 붙이고 안무를 붙여서 각자의 특색에 맞는 

소란부시를 만들어내 공연을 하는데,  그 특징은 파워풀한 안무와 흥겨운 후렴구. 

내가 딱 마음에 든 교토 지역의 공연팀인 "샤라란"의 소란 부시 가사는 이렇다.


흐드러지는 벚꽃과도 같이, 나의 벗들이여 춤을 추어주어 고맙구나. 아프고 고통스럽던 날들이여 안녕.

잔물결이 밀려오고 우리는 모든 인연을 끊는 그 춤사위를 추네.


????그렇다. 그냥 아무말이나 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처음 공연에서는 "피투성이가 되어 어둠 속을 달려나가는 나의 동지들이여"라는 마이크 워크

(그렇다 소란 부시를 하는 동안 이 팀은 정체불명의 MC하나가 계속 이상한 소릴 한다)를 하길래 미친놈들인가! 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다른 팀을 압도하는 군무 수준과 닌자를 이미지화 했는지 중2병을 빤듯한 구성에 나는 이 안무팀이 너무 좋아지고 말았다.

(급히 어느 지역 팀인지 알아내서 공연시간을 확인했으나 시간이 맞질 않았고.결국 그들의 공연을 보게 된 두 번 다 뜻하지 않은 우연이었다)


위에서 얘기한 것 처럼 YOSAKOI축제는 5일 간 시가의 중심이 되는 오도리 공원을 비롯 삿포로 각 지역의 공연 장에서 공연을 하는데 

유료 티켓을 사지 않아도 사도, 한 껏 즐길 수 있으며. 아무 공연장에 가서 질릴만큼 특색있는 공연들을 보고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면 되는 것이다.

호텔에서 짐을 맡기고 오도리 공원에서 소란부시 공원을 보느라 생각보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나는 삿포로 역에서 간단히 2시간을 기다려 스시를 먹고(하하하), 다른 무엇보다 생각을 하기 위해 홋카이도 대학에 간다.

1876년도에 개교한 이 아름다운 학교는, 삿포로 역 바로 위에 있으면서도 거대한 부지와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오래된 학교이기 때문에 건물은 고풍스럽고 깨끗하고 잘 정리 된 부지 내의 공원은 넓고 평화롭다. 

보통 닥터 스크루의 배경으로 유명한 대학교...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서른이 넘은 덕후인 사람들 뿐이겠지. 

원래 농학교였기 때문에 수의학과 농학이 굉장히 강한데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지금도 농과 대학의 편차치가 굉장히 높다. 

실용학문으로서 농학이 수준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일본내에서 농학의 실용성이 높기 때문이다.


학교 부지에는 어딜봐도 관광객인건 나 정도 밖에 없었다. 

모두들 소란부시를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사람이 없는 곳을 굳이 찾아서 홋카이도 대학까지 온 나도 대단하다 싶다.

적당한 잔디밭을 찾아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한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운다. 

고통스러웠다. 정말로 휴가가 끝나서 고통스러웠던 것이 아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인정해야했다. 더 이상 살아갈 의지가 없다는 것과 이제까지 해온 것들이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며 도망쳐온 시간 낭비였다는 것을.

도망치고 도망쳐서 어디에 다다를 것인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징기스칸과 맥주를 마셨다. 나오는 길에 샤라란의 공연과 우연히 마주쳤다.

이제는 갈 곳이 없었다. 나는 뭘 해야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호텔 방에서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무작정 걸어갔다.


나는 홋카이도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이제 여름이 지났고 가을이 끝나간다. 

곧 겨울이 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아래와 같이 쓴다.

언젠가 당신은 당신의 낙원에 다다를 것 이다. 거기에 나는 흔적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실이 고통스럽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당신을 잊어버릴 수 있다면 내 3분의 1을 불태우고 그 나머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괜찮은 거래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삶은 계속 되고 언젠가 사랑은 다시 시작 될 것이다. 감정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돌아오는 편지처럼 어느날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된 편지를 받을 것이다.

그것은 슬픔이고, 그것은 기쁨이다. 

어느 비오는 날 세상의 모든 우산이 펴지는 것처럼 당신의 마음이 활짝 펴져 사랑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죽은 사람처럼 살던 내가 여행에서 돌아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무슨일이 생길지 궁금하지 않은가.

어떤일이 일어날지 두근거리지 않는가?


나는 낙원에서 잠이 든 적이 있다.

삿포로의 북동쪽, 버스를 타고 가면 있는 모에레누마 공원은 건축가 이사무 노구치의 마지막 꿈이었던 공원이다.

1977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화 하겠다는 플랜하에, 1988년 모든 플랜을 짜고 88세의 나이로 죽는다.

공원이 열린 것은 2005년 그가 죽은 후 17년 후이다. 착공을 시작한 것이 1982년이니 23년에 걸친 거대한 프로젝트 였던 셈이다.

그는 지구 자체를 재현하고자 했다. 재생한 땅에 태어난 "낙원"

산과 숲을 공원에 만들고 재생 에너지로 모든 에너지를 감당하는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파도가 이는 해변을 공원 중심에 만든다.

인간의 흔적을 없애지 않으면서 자연을 재생하려는 목적. 그 얼마나 순진하고 오만한 플랜인지 모에레누마 공원은 아름답다.


나는 자전거를 빌려 두시간 동안 공원을 돌아다녔다. 산을 오르고 바람을 느끼고. 잔디밭에 누워서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면 나는 끊임없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찾고 있는 것은 뭐죠, 찾기 힘든 것입니까? 가방 속에도 책상 속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데 아직도 찾아볼 생각입니까?

그것보다 - 저와 춤추지 않겠습니까. 꿈속으로 꿈 속으로.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밤이 되고 삿포로 역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공원 저 너머에서 아직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이 "들려"왔다.

오도리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다. 

모두들 손을 들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흔들고 서로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춤을 추고 있었다. 

밤이 되면 금방 가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서로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텐데.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화가 났다.

여러분은 각자의 삶이 있잖아요. 우리는 모두 타인이잖아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서로의 삶에서 서로를 밀어낼 뿐이잖아요.

나를 배신할 거잖아요. 내 마음을 져버릴 거 잖아요. 나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아요. 옆에 두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거잖아요.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모두 내 착각이었죠. 차라리 날 죽이고 가요. 내버려두지 말아요. 이럴거면 처음부터 나를 발견하지도 말지 그랬어요.

그래, 내 사랑하는 당신. 저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나는 이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질러요.


그런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춤을 추고 있었다. 춤을 추어도 바보, 춤을 추치 않아도 바보라면, 추지 않으면 손해.


야렌 소란 소란 소란 소란 소란 하이하이

목이 쉬도록 노랫소리를 높여라 팔이 떨어지는 춤사위로다 쵸이!


박수를 치고, 다시 춤을 추고. 앉아있다가 일어서고.

여느 꿈처럼 싸구려 전깃불과 스포트 라이트가 사방에 걸려있는데 사람들은 동작을 맞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모두가 자기 멋대로 노래를 부른다.


야렌 소란 소란 소란 소란 소란 불어오지 말아라 밤중에 돌풍아

남편은 오늘밤도 바다서 머문다 쵸이! 야세 에에야안사노 돗코이쇼 하아 돗코이쇼 돗코이쇼


나는 춤을 추지 못하고 공원의 구석에서 낯선 사람들의 춤을 추며 눈물이 가득 고여 밤이 희뿌옇게 사라져가는 것을. 내 마음이 가라 앉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꿈 속에서 춤을 춘다. 가장 멋지게 누가 봐도 감탄할 정도로 춤을 추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나는 춤을 추어야했다. 왜냐하면 내가 울고 있는 사이에 모두들 저렇게 즐겁게 춤을 추고 있지 않은가. 계속해서 계속해서.


이것이 내가 6월의 홋카이도에서 깨달은 마지막의 것. 소음에서 걸어나와 춤을 추겠다는 것.

나의 나라로 돌아가, 당신에게 같이 춤을 추지 않겠냐고 권하는 것. 다시 한 번 더.




이야기는 나에게서 시작하여, 당신으로 끝이 났기에 여기서 여행기를 끝낸다. 

16년 10월 10일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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