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모두 다 그런 것처럼, 나에게도 "나의 나무"가 있다.

"나의 나무"가 무엇인지 설명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나로서는 나의 나무가 없는 사람을 상상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긴 하겠다. 예를 들어 아직 나의 나무가 있어본 적이 없는...그러니까 한 3살 쯤 된 사람. 아니면 다른 별의 지적 생명체가 지구 문명의 멸망 후 인류 문명의 서버들을 어렵게 돌려서 내 글을 읽고 있다거나. 해독에 수고하셨지만 다른 별의 사람이여 이 글에 뭔가 유용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뒤로 가기를 눌러 어딘가에 있는 알콜스왑으로 물건 이리저리 닦아보기 포스팅이나 읽어보십쇼.

짧게 설명하자면, 내가 말하는 "나의 나무"는 살아가다 특별히 사랑하게 되는 나무를 뜻한다. 오에 겐자부로의 유명한 에세이집 <'나의 나무' 아래서>에는 소년 겐자부로가 몹시 사랑하여 자주 그 아래에 앉고, 마음이 외롭거나 할 때 위안을 받았던 커다란 나무 이야기가 나오는데.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쓴 에세이 중에 안 그런게 있는가 싶겠지만) 우습고도 슬픈, 무력한 소년시절을 쓴 이 에세이에서 그는 2차 세계 대전 중의 일본이라는 가혹하고 잔인한 시대에서 아니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자기가 사랑했던 그의 ”나의 나무“에서 나즈막한 기도나 오래된 이야기에게서 얻는 그런 위로를 받습니다. 훌륭한 책이랍니다. 아동 대상의 에세이지만 그의 다른 소설들 보다 나은거 아냐 싶을 정도니까.

아주 어릴 적에 내가 가졌던 "나의 나무"는 관목처럼 키가 작은 단풍나무였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뜰에 심어진 관상용의 나무이다. 크게 자라지도 굵고 단단하게 자라지도 못한채 자라버린 나무였다. 원래 그럴 태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 그 나무를 볼 때는 내가 너무 작았는데도 다른 나무보다 눈에 띄게 작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십 몇년이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는데 오래된 단지인 만큼 단지의 나무들은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어떤 나무들은 5층 짜리 작은 아파트의 건물 높이 만큼이나 자라났지만. 그 단풍나무만은 좀처럼 자라지 않았다.

- 그 이유는 (아니 정말 그 이유에서 였을까) 내가 어린 시절부터 그 나무에 원숭이처럼 매달려 괴롭혀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릴 적 책을 읽지 않는다면 단지의 뜰, 아니면 주변의 야산을 쏘다녔는데. 무당벌레나 꿀벌을 수십마리씩 산채로 모으거나 개미들 위에 과자를 뿌려 개미들이 그걸 옮기는걸 구경하는데 영원같은 시간을 썼지만 그것이 지겨워지면 대체로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아마 다른 나무는 내가 오르기엔 너무 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그 나무에 매달렸을 것이다. 나무로서는 정말 곤란했을게 틀림없는데 어딘가에서 나무는 가지만으로 생식이 가능하다는 걸 읽고는(그건 아마 접붙이기에 대한 이야기였을텐데) 그래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단풍 나무의 싱싱한 가지를 몇개 부러트려서는 그 근처에 심고 물을 주고 그랬었다. 아니 못되쳐먹은 꼬마였네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내가 점점 커지는 동안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더 쉬운 나무타기 상대가 된 그 작은 단풍나무는 결국 어른이 되어 무슨 교목처럼 키가 커진 나보다 작아지게 되었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렇게 된건 역시 내가 중학생이 되도록 그 나무에 매달려 지냈기 때문 일 것이다. 부드럽고 탄력있게 휘는 그 가지에 나는 더 커지고도 가끔 매달려보곤 했는데 부러질까 두려워 체중을 실을 수는 없어도. 어두운 밤 집에 돌아오는 길 역시 아무런 이유 없이 무슨 불길한 징조라도 되는 양 양팔로 가지를 잡고는 대롱대롱 매달려 마음이 내킬 때 까지 있곤 했다. 전세계의 소년소녀 모두가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한참 그렇게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역시나 그 작은 나무를 사랑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재건축으로 사라졌다. 나무들은 잘리거나 파내어졌다. 13동 앞에 서있던 커다란 백목련이나 6동 뒤로 줄지어 서있던 포플러는 아마 파내어져 팔렸을 것이다. 단단하고 곧은 훌륭한 나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작은 단풍나무는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너무 매달려 커지지 못한 단풍은 그냥 잘려졌을 까 아니면 어느 좀 마음 착한 인부의 손에 파내어져 여느 부지의 정원 구석진 곳에 심어졌을까? 운이 나쁘자면 또 어디 학교의 운동장 같은 곳에 심어져 원숭이 같은 인간놈들을 세명씩 네명씩 매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단풍나무 생각을 하며 한번 알아볼까 싶다가도 자기 땅 한평 없는 월급쟁이가 나무의 행방을 알아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금세 그만둔다.

나무에게서 위로를 받는다는 게 우스운 이야기이긴 하다. 나무가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쓰다듬어 주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그 등치에 기대거나 그늘 아래 앉는 것 뿐인데 나무로부터 위로를 받는다니. 인간은 정말 제멋대로가 아닌가. 우리가 나무를 사랑하든 증오하든 나무들이 우리를 구분이나 할 수 있으려나, 우리가 나무에 울분을 터트리고 주먹을 휘두르고 그 아래에서 눈물을 흘린다고 한들 나무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싶다. 그저 바람소리에 맞춰 그 가지를 흔들고 나뭇잎 부서지는 그 소리와 함께 그늘을 내려 볕을 가리기나 할 뿐이지.
말하자면 나의 나무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그림자다.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어서 우리는 그저 서있을 뿐인 나무를, 그 그늘과 단단한 침묵을 사랑하고 마는 것일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나의 나무란 대체 그런 것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을 생각하듯이 나의 나무를 생각한다. 어쩌면 당신을 나의 나무를 그리워하듯이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학 시절 내가 좋아했던 나무는 단과대 옆에 서있었다. 7층에 있는 학생회실을 나와 창가에 서면 보이는 커다란 나무로. 여느 건물 3층 4층 까지는 닿을 듯한 여름이 되면 가지를 사방으로 뻗는 나무이다.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사방으로 뻗은 가지들과 풍성하게 매달린 나뭇잎들이 일제히 흔들려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나는 어느 봄 학교에 처음 들어가 혼자 어슬렁거리다 문과대 창을 통해 나무를 보고는 한눈에 그 나무가 마음에 들어 매일매일 혹은 기회가 날 때 마다 창가에서 나무를 바라보았다. 질리는 일은 없었다. 복학을 하고 돌아왔을 때도 처음 한 것도, 졸업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것도 7층에 올라가 그 나무를 바라본 것이었다. 나의 학교 생활은 멍청하고 한심한 일화들과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읽은 책들, 그리고 변하지 않고 철이 되면 바람에 흔들려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번 겨울 볼일이 있어 학교에 돌아가 보니 그 나무는 있던 자리 그대로 있었으나 커다란 가지 대부분이 잘려져 있었다. 눈이 내렸지만 어떤 눈송이도 나뭇가지에 매달리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또 7층에 올라 나무를 바라보고 나무가 내던 소리를 떠올렸다. 항상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23년 2월의 글이다.

'부재증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1230] Novos Baianos - a menina dança  (0) 2022.12.30
[20220720] 닻  (0) 2022.07.20
[20210425] Teal and Orange  (0) 2021.04.25
[20210418] 까마귀의 이치  (0) 2021.04.18
[20201205] 워치를 샀다. 이름은 아직 없다.  (0) 2020.12.06

얼마 전 이상한 일이 있었다.

무선 이어폰을 끼고 화장실에 가며 폰을 자리에 놓고 가는 바람에 화장실 문을 닫자 블루투스의 신호가 끊겨 듣고 있던 노래의 재생이 끊겼다. 이상한 일은 노래가 끊겼던 일이 아니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싶어 볼일을 마치고 나오며 무선 이어폰을 재작동하자 듣고 있었던 한국의 유행가가 아니라 낯선 외국어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흥겨운 리듬의 곡이다.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인데도 아는 노래처럼 느껴지는 건 보컬이 내가 예전에 많이 듣던 곡의 가수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운 기분이 들어 노래를 몇 분 정도 듣다가 사무실의 자리로 돌아와 내 스마트폰을 보았다. 노래는 역시나 내 폰에서 재생되는게 아니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분명 다른 사람의 신호가 - 사무실 내에서 나와 같은 종류의 스마트폰을 쓰는 누군가 - 섞여서 들어간게 아닐까. 아주 예전 라디오로 음악을 듣던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일이다. 아니 그 때는 다 유선 헤드폰과 이어폰이라 그럴일이 더욱 없었으려나. 낯설고도 익숙한 외국의 노래에 아쉬운 기분 반으로 무선 이어폰 연결을 다시 설정해 내가 처음부터 듣던 노래를 들으려는데 문득, 어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익숙한 음악의 가수가 누구였지? 아니 것보다 그 가수의 그 노래, 내가 엄청 많이 들었는데 그게 제목이 뭐였지? 진짜로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나는 그리 부지런한 음악 감상자가 아니다. 스트리밍의 시대에 나만 그런 것은 아닐꺼야 하고 혼자 하고 혼자 듣는 변명을 해본다. 유튜브와 애플뮤직 두 개나 굳이 음악감상 앱으로 쓰는 것은 그냥 해둔 구독을 해지하지 않을 뿐이다. 스포티파이까지 쓰기에는 너무 듣는 노래만 들으며 멜론을 쓰기에는 내가 너무 속물이다.

컴퓨터가 되었든 스마트폰이 되었든 파일을 어딘가에 저장하던 시절에는 나름 분류도 하고 태그도 하면서 음악을 들었던 것 같은데. 요즘 음악감상 앱의 알고리즘은 너무 편리하여 어떤 가수의 곡을 하나 고르면 자동으로 그 다음곡이 알아서 흘러나온다.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고 어떤 기분인지 쓰면 검색이 괜찮은 재생목록을 골라준다. 생각은 필요 없고 그냥 기분만 있으면 된다.
앨범 전체를 들으며 앨범 전체의 구성을 하나의 음악을 듣는 것처럼 듣던 그런 감상법도 딱히 필요 없다. 하나의 좋은 곡이 끝나면 그것과 비슷한 그리고 더욱 포퓰러한 음악을 골라주니 항상 클라이막스만 골라서 신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얏호. 그러다보니 장르에 대해서도 가수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없다. 제목을 외울 필요도 없다. 그게 뭐 어때서요 라고 묻는다면 나도 솔직히 그게 싫다는 것도 이래선 안된다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 시대에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대체로 "소유"와 비슷한 의미였던 것 같다. 꽤 비싼 돈을 들여야만 음향기구를 갖출 수 있었고 LP나 CD, 이도 저도 아니면 Tape라도...하여간 물리적인 매체를 사서 듣는 것이 중요했다. 나도 CD의 부흥 무렵에 태어나서 그런지 그 후 대용량의 인터넷 회선이 당연한 시대가 되자마자 음악을 모으는데 열중했다. 유명한 당시의 유행가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의 유행곡을 하드에 저장하고 CD로 다시 리핑해서 들었다. 각자 컴필레이션 CD를 만들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이 로맨틱한 제스추어였던 시대이다.

나는 음악 수집에 꽤나 악질이라서 한국인은 나말고 아무도 모를만한 음악을 폴더로 정리하고 들으면서 뿌듯한 기분을 느끼고 때때로 인터넷에 잘난척하는 글을 써댔다. 아무도 모르는 음악에 대해서 글을 쓰니 조회수는 두자리수나 겨우 올라가고 가끔 달리는 댓글은 저 말고 이 아티스트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 분이 계셨군요 어쩌고 하는 역시나 잘난척 하는 댓글들 뿐이었다. 복제된 컨텐츠의 시대일 수록 나는 내가 가진 데이터 베이스의 방대함과 희귀함에 (그리고 그걸 몹시 싼 비용 그러니까 드는 비용이 오직 나의 차고 넘치는 여가 시간인데, 생각해보면 10대 20대의 청춘만큼 귀중한 싸구려가 어디있을까 제기랄, 하여간 몹시 싼 비용으로 구축한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자부심을 가졌다. 이런 취미는 본질적으로 몹시도 궁핍한 것이어서, 동시대 한국인의 기준으로 성의만 있으면 가능한 것이라 자부심을 가질 이유는 한 개도 없었는데 말이다.

요는, 한 때 나는 음악을 모으는 것과 듣는 것 모두에 시간을 마음 껏 낭비할 수 있었으며. 엄청난 시간을 다양한 음악을 듣는데 쏟았지만 거기에는 어떤 깊이도 없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하드디스크를 채우고 리핑된 CD에 네임펜으로 사람들은 알아주지도 않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적는게 내 취미였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뒤의 결말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났다. 시대가 변하고. 인터넷이 더 발달하였으며 회선은 빨라졌다. 서버의 운용비용이 더 낮아지자 음악파일을 다운받는 시대에서 스트리밍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각 음악 사이트는 통합되었으며 결국 내 하드와는 상대도 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음악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더 멋진 (더 멋진?) 음악 저장고를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게 되자 금세 음악 모으는 것을 관두었다. 그랬던 것 같다.

애플 뮤직의 초기에는 전처럼 재생목록도 만들고 했던 것 같지만 뭘 쳐도 거기에 음악이 있는데 내가 뭐라고 개인 음악 저장고를 유지한단 말인가. 제기랄. 하지만 노래를 모으게 되지 않게 된 무렵부터 나는 그렇게 열심히 음악을 듣지 않게 되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테니 단순히 말하긴 어렵겠지만 어느새부터인가 나는 더 이상 음악을 취미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외국 어딘가의 음악감상 카페에 들어가 커피 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인 불편한 자리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한참을 울던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간건지 본인인 나 조차도 알수가 없다.

이제는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그 노래가 유럽의 곡이 아닌건 알 수 있었다. 제목도 영어가 아니다. 유튜브에서 재생했던가 싶어서 재생 목록을 찾아보다가 1,2년 어치의 검색을 해서 나올 곡이 아니란걸 깨달았다. 샤잠 같은 곳에 콧노래로 노래를 불러보다가 내가 일반인 뺨치는 음치라는 걸 다시 기억해냈다. 기억나는 키워드로 구글링을 해보기도 한다. 무슨 짓을 해도 나오지가 않는다.

결국 집에 가는 길에 내 트위터를 검색했다. 나는 꽤 오랫동안 맘에 드는 노래는 유튜브 링크를 트위터에 올리곤 했는데 키워드 유튜브로 내 트위터를 검색하면 분명 제목이 나올 것이다 싶었다. 제목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러니까 왜 그 정도로 특이한 노래인데 제목을 기억못하는가 싶지만 하여간 내 트위터를 검색했다. 정말 다양하게 이상한 노래를 엄청나게 들었구나. 1년치를, 2년치를, 3년치를 넘어갈 시점에서 노래를 하나 찾았다.

원래 기억하고 있었던 것과는 다른 부분도 있고 가사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것은 애초에 내가 전혀 모르는 외국어 (포르투갈어였다)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활동한 것은 1979년에 내가 듣던 곡은 1972년에 발표한 노래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찾아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애초에 이 곡을 왜 듣게 된건가 싶어서 생각해보니 나는 한 때 남미의 재즈를 엄청나게 들었는데 그 때 이어졌던 것 같다. 왠지 그리운 기분으로 노래를 듣고 또 유튜브가 이어주는 다른 노래들도 따라 들었다. 아 역시 좋은 노래들이다.

글을 쓰는 지금은 다른 곡을 듣고 있다.
유튜브에도 애플뮤직에도 없는 한 15년 전 쯤 발매된 곡이다. 혹시나 싶어서 검색해봤는데 역시나 한국의 스트리밍 사이트에나 있는 곡이다. 분명 내 하드 어딘가에 앨범 전체를 추출한 (그렇다 나는 앨범도 엄청나게 사댄 사람이다) 파일이 있을텐데 지금은 들을 길이 없다.

만오천원이든 구천구백원이든 결재해서 들어볼까 하다가 미리듣기로 음악을 들어본다. 듣고는 너무 좋아 한 번 더, 그리고 한 번 더. 그렇게 글 하나를 통채로 다 쓰는 동안 1분간의 미리듣기를 반복한다.


이 노래가 이렇게 좋았던가 아니면 내가 미리 듣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좋게 느껴지는 걸까. 그건 스트리밍 시대에 살고 있는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22년 12월 30일의 글이다.

브라우저를 열고 닻이라고 검색한다.
이미지 검색 결과에는 우스울 정도로 비슷한 아이콘 이미지들만 가득하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낡고 검고 상처입어서는, 누군가의 몸뚱아리처럼 조용한 닻의 사진이었다. 조금 더 이미지를 스크롤해보다 생각을 달리해서 키워드를 바꿔 검색해본다.
어릴 적 나는 누군가에게 닻이 무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단어의 뜻을 물어보는 일이 좀처럼 없고 제 멋대로 단어의 뜻을 상상해보는 버릇이 있어 상대는 신기한 마음이 들었나보다. 나를 쳐다보며 뜸을 들이더니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잡아주는 무거운 추가 닻이야. 라고 말했다. 나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뾰로통해져서는 물었다. 왜 배가 떠내려가면 안되는데? 그러니까 말야 왜 배가 그냥 가버리게 내버려두면 안되는거야?

나는 예전에 꽤 오랫동안 새벽3시가 되면 잠에서 깨어났다. 그냥 깨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공포에 질리거나 아니면 울부짖으며 잠에서 깨어났으며. 잠에서 깨어나면 때때로 오열을 했고 가끔은 바로 다시 잠들었으며 대부분 두통약을 삼키고 그대로 누워 해가 뜨길 기다렸다. 다른 사람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두통약이 고통을 잊는데 도움을 줬고 밤에 겪는 고통보다는 살짝 더 견디기 쉬운 소화불량과 가끔 좀 버겁게 느껴지는 위통을 대신 주었다. 나중엔 이틀에 한 번은 두통약을 샀고 결국 나중에는 두통약을 200알 단위로 샀다. 일본 아마존은 가격이 싼 대신 약물 오남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충고도 해주지 않았다.
글쎄 어째서 새벽 3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만났던 연애는 긴 짝사랑에서 이어진 연애였는데. 정작 연애는 길지 않았고 이별 후의 매일은 내가 얼마나 그 사람을 좋아했는지, 아니 사랑하고 있는지를 되새기는 길고 지루한 과정이었다. 술을 마셨고 아무 약속이나 잡아서 나다니고 금세 우울해져서 아무도 듣지 않을 노래들을 듣고 다녔다.
헤어진 뒤 그 사람과는 밥을 먹을 기회가 두번 있었고 몇번인가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다. 우리가 운명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집이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었는데, 어찌됐든 나는 그럴 때 마다 과하게 행복해했다. 어느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람이 심하게 불어 무엇이라도 저 편에서 날아오지 않을까 싶던 날. 언덕에 올라 고개를 들어 뒤를 바라보니 하늘이 맑았고 구름은 가벼워 바람소리와 저 멀리 자동차 소리 말고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때 내 일부의 어떤 것이, 아주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겨온 어떤 것이 정말로 물질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나를 떠나 휘익—날아가버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뭔가가 차오르는 것을 꾹 참아가며 성지순례를 하는 기독교도처럼 다리를 끌며 집으로 걸어갔고 집에 문을 따고 들어오자마자 문자 그대로 무너져 통곡했다.

그 뒤로 내가 새벽3시에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최소한 그랬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아주 오래 전 일이 되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었다.

오랜만에 새벽3시에 잠에서 깼다. 1분도 어기지 않은 그 시간이다. 아직 추분이 되지 못한 한 여름의 하늘도 그 때는 어둡고, 나는 몹시도 혼자여서 무시무시하게 겁을 먹은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잠이 오길 기다렸다.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꼭 몸이 물에 녹아, 남겨진 마음만 돌처럼 가라앉고 잊혀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과 초에 묶인 사람처럼 마음이 답답해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방을 치우고 입으로 소리를 냈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할 수만 있다면 발을 구르고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나는 나는 여기에 있어. 하고 말이다.

그러던 중 나는 닻의 이미지에 마음이 도달한다. 물 속에 조용히 잠겨서 배가 움직이지 않도록 묶어둔 무겁고 거대한 추. 물은 어둡고 더러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닻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나는 문득 그 닻이 꼭 내 몸뚱이처럼 느껴져서.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묶어둔 것이 따개비가 가득 붙고 녹색 해초들이 치감고 있는 내 몸이 아닐까 싶어져서. 황급히 일어나 거실의 불을 켜고 다시 끈다. 그렇게 하면 내 운명이 나에게로 주의를 돌려 내 목숨을 구해주기라도 할거란 듯이.

나는 그렇게 몇 번 더 새벽3시에 일어났다. 빈도는 점점 늘어나고 아마 곧 나는 매일 매일 그렇게 일어날 것이다. 내 운명은 왜 이렇게 천천히 다가오는 것일까. 하고 나는 울먹이며 말한다. 그리고 불을 켠다. 다시 끈다. 그리고 다시 켠다.

22년 7월의 글이다.

20년 11월 어떤 기사가 올라왔다. 시부야역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사망한 중년여성에 대한 기사로, 사인은 외상에 의한 지주막하출혈 - 뇌출혈의 일종이라고 담담하게 적고 있다. 뒷통수를 둔기로 가격당해 죽은 것이다.

며칠 뒤 확인된 사건의 개요는 간단했다. 죽음의 현장이었던 곳은 버스 정류장의 벤치로, 차가 끊기고 시작하는 그 짧은 심야 시간에 버스 정류장의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곤 했던 64세의 노숙인 오오바야시 미사코씨를 마음에 들지 않아한 한 남성이(그는 현장 근처에서 살고 있는 주민으로 알려져있다) 그를 돌을 넣은 페트병으로 가격하여 - 그 남성은 죽일 생각이 없었다고 하였으나 - 살해한 것이다.

단신으로 처리 될지도 모르는 기사에 특이한 점이 있었던 걸까? 통행인이 많은 시부야 역의 일각에서 일어난 그 죽음의 무참함 때문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신이 발견되었을 당시 그에 대해 신분을 증명 할 만한 것들이 없어서 최초 신원 불상으로 발표되었던 이 사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신의 신분이 밝혀지게 되었고 범인은 그 후 일주일도 안되어 체포되었다.

내가 읽었던 기사는 범인이 체포된 시점의 기사로. 거기에는 가해자에 대한 긴 설명과 말도 안되는 변명도 같이 적혀 있었으나, 나는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싶지 않기에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가지 매체에서 찾아 퍼즐을 맞추듯이 알아내었다. 피해자 오오바야시 미사코씨는 노숙인으로 시부야 근처의 사람들에게도 안면이 알려져 있었던 사람이었다. 다만 사람을 피하는 노숙자치고도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극히 꺼렸는데 노숙 생활을 한 것은 올 11월을 꽉 채워서 생각해도 9개월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히키코모리로 살면서 평생 거의 일을 하지 않았던 가해자와는 달리 30년이 넘게 일을 하면서 살았던 것이 된다. 

그는 20년 초 까지는 도내의 아파트에 혼자 살 고 있어 주거지가 안정되어 있었고 올 2월 까지도 파견직으로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주로 시식 업무를 담당하며 살아왔지만 최근 Covid-19의 확산으로 슈퍼마켓에서의 일자리를 잃었으며, 결국 어느 시점에선가 집세를 내지 못해 아파트를 나와 노숙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발표하였다.
다만, 전술한 바와 같이 노숙을 하고 있으면서도 행색이 깨끗하고 몸가짐이 바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냥 보기에는 전혀 노숙인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시부야의 버스 정류장에서도 버스의 막차가 끊기고 첫차가 오기 전의 아주 짧은 시간에만 잠시 쉬어가려는 듯이 벤치 위에 앉아서 쉬기만 하였다고 하며 누워서 자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고 주변의 시민들은 말하고 있다.
또 그가 항상 똑같은 시간에 앉아있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노숙인인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어쩌면 그가 노숙을 시작한 이후 짐을 두고 있는 다른 생활 공간이 있었고 단지 버스 정류장의 벤치는 밤을 잠시 피할 피난처 같은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찰이 그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3일이 걸렸다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는 대해 결혼을 한 적이 없으며, 아이를 낳은 적도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꼭 그가 아무도 찾지 않을 사람이었다는 듯 한 설명이었다. 죽음의 순간, 오오바야시 미사코씨의 주머니에 들어있던 것은 8엔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일본의 매체들이 8엔의 무상함과 비참함을 표현하려는 듯이 기사의 제목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보도된 후 시민들이 시부야에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우리가 그 일 수도 있다고 시위를 했으며 그 모인 숫자가 1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은 제목에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몇개월이 지났다. 그의 죽음 이후 나는 계속해서 NHK 등 주요 언론매체에 그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왔지만 12월 이후 더 이상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의 죽음 이후로 일본사회에 무엇인가 바뀌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이 일본사회의 병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떠한 분열과 개인의 파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더 이상 그 기반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 여러 산업 분야에서 중소 사업체는 무너져가고 실업자들이 쏟아져나온다. 투입한 자본을 돌려받지 못해 계속해서 무너져가는 사업체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차라리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한쪽 켠에선 자신이 이제까지 쌓아온 기술과 숙련을 인정받지 못하고 비숙련 노동자로서 불완전한 고용상태에 몰리고 있다. 그들을, 아니 우리를 지탱해줄 그물은 어디에도 없고 다들 서로의 눈치를 보고 고개를 숙이며 일자리를 잃은 것이 우리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눈짓을 몰래 보낸다.

 

여기 숫자가 또 몇 개 있다.

옥스팜은 20년 4월 Covid-19으로 인해 전체 소득이 최고 20% 감소 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으며 이 경우 극빈층은 전세계적으로 4억 3천5백만명이 늘어 총 9억 2천 200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하였고, 월드 뱅크는 20년 10월 극빈층이 7억 3천만명으로 늘어났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월드 뱅크는 덧붙여서 이전까지 극빈층은 저학력의 농업 종사자들이 많았으나 현재는 기본 학력을 갖춘 도시 노동자들 사이에서 극빈층이 늘어나고 있음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하였다.
같은 날 발표 된 미국의 재산 분석 전문기관 웰스엑스는 순자산 3천만 달러 이상을 보유한 전세계 갑부들의 수가 23만 8천여명에서 28만 여명으로 늘었으며 세계 갑부들이 5개월 동안 늘린 재산은 6조 83백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 모든 보고서는 오오바야시씨의 죽음 이전에 발표되었다. 나는 이러한 현상들이 인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부를 쌓은 사람들이 악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왕정에서 왕에 대한 무모하고 절대적인 충성이 죄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추구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 될 수 없다. 때때로 나는 그것이 우리 현재의 유일한 선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한다.
하지만 나는 숫자와 숫자화 된 사람들의 이름들을 떠올리고 이 모든 현상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단일화된 현상이 아닌가 의심한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우리 등 뒤에 있는 사람들을 잊어버리게 된다면,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잊어버리게 된다면. 우리의 세대와 우리의 땅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신의 등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쌓아올린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지운다. 그리고 다시 글을 써내려간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서.

21년 4월의 새벽의 글이다.


작년 겨울, 나는 러닝 코스라도 찾아볼까 싶어서 가벼운 차림으로 집 근처 산책을 나갔다. 내가 사는 곳은 수도권의 공업 도시로 넓은 산업 연구 단지와 그 기반 시설로 몇천 단위의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라 어디를 돌아다녀도 길게 달릴 만한 곳은 없었다. 크게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국도 주변은 그래도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3킬로미터 정도의 직선 루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후보지를 몇 군데 선정하고 나가보았던 것인데. 이내 나는 길 주변을 까맣게 채운 까마귀들에 질려서, 아니 겁먹고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까마귀들의 겨울 도래지가 된 것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겨울철 이 지역을 찾아와 산과 들에서 겨울을 지내던 까마귀가 도심지나 국도로 모여든 것은 정말 최근의 일로, 이 도시의 배경지였던 전답과 야지가 차례차례 개발되어 아파트가 된 탓에 밤에 안전하게 보낼 곳이 없어진 까마귀 떼들이 나머지 도심지로 몰려든 것이다. 송전선들이 집중되는 교통의 요지일수록 (전깃줄이 많아) 말 그대로 까맣게 까마귀로 가득해서 저녁 나절이 되면 히치콕도 질릴 정도의 까마귀떼가 몰려들고, 땅에는 일부러 뿌려도 어려울 정도로 하얗게 새똥으로 범벅이 되었다. 나도 이런 상황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파트 단지와 회사로 이어지는 좁은 루트만 반복해서 돌아다니고 있어서 이 정도로 심각한지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나는 전깃줄에 매달려 있는 까마귀 떼를 보고 거의 질려 도망을 갔고. 나 말고도 다른 행인들이 파랗게 질려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까마귀라고 하면 반포지효라든가 오비이락이라든가. 여러가지 관련된 사자 성어도 많지만 무수하게 몰려있는 까마귀들에 대해서 표현한 문장은 찾기가 어렵다. 지금 그나마 생각이 나는 수도 많은 까마귀에 대한 문장으로는 ‘三千世界の鴉を殺し、主と添寝がしてみたい (삼천세계의 까마귀를 죽이고, 서방님과 늦잠을 자고싶구나)’ 라는 일본의 도도이츠 (都々逸、남녀들 사이의 사랑을 노래하던 속곡)가 있다. 이는 출처가 정확하지 않으나 19세기 일본 양이지사였던 다카스키 신사쿠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해석하면 까마귀가 우는 아침이 되면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실테니, 삼천세계 즉 사바세계의 까마귀를 모두 죽여 아침이 오지 않게해 당신과 함께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구나...라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유명한데. 하여간 여성의 깊은 애정과 그 깊은 애정을 실현하는 방식의 과격함으로 유명한 구절이다.

그런데 왜 하필 까마귀이냐 하면, 사실 까마귀는 아침에 우는 새로 유명해서지만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사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결성 때문에 저 위의 도도이츠에서 한 발짝 더 나간 해석도 있는데.
고전 라쿠고로 유명한 산마이키쇼三枚起請라는 이야기의 베리에이션 중 하나로. 대략 내용을 설명하자면 남자손님과 쉽게 결혼 약속을 하는 기녀를 둘러싸고 그 기녀가 손님 중 세명과 결혼 약속을 한 걸 알게 된 남자들의 호들갑을 떠는 것이 이 라쿠고의 주요 스토리인데 앞 부분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다 빼고 까마귀에 대한 것만 설명하자면.
마지막 부분 드디어 기녀가 신의가 없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며 ‘너같은 신의가 없는 사람들 때문에 (계약과 신의를 담당하는) 우에노 신사의 까마귀가 한 번에 세마리씩 떨어져 죽는 것이다!’라고 말하자 기녀는 웃으면서 말한다 ‘저는 세상의 까마귀를 모두 죽이고 싶은데요?’ ‘아니 까마귀를 죽여서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럼 느긋하게, 아침잠을 자보게요’ 라고 대답하고 라쿠고는 끝이난다.
아까 위에서 설명했던 유명한 도도이츠 삼천세계의 까마귀를 비틀어서 남자가 다 뭐냐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느긋한 아침잠이다 라는 기세 좋은 대답으로 끝내는 셈이다.

근본적으로 이 라쿠고에서 나오는 키쇼라는 것이 기녀가 기녀에서 은퇴했을 때 누군가에게 결혼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는 문서, 요는 키쇼를 세 장이나 썼다고 못난 남자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세 장을 쓰든 네 장을 쓰든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종이 한 장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그 근성이 마음에 안든디. 나는 원본의 도도이츠보다 이 라쿠고에서의 주인공이 하는 저 마지막 대사를 몹시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든 까마귀는 억울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인간인데 우에노의 까마귀들이 떨어져 죽어야 하는가. 게다가 인간이 늦잠 좀 자겠다고 (까마귀가 좀 시끄럽기로서니) 그걸 다 죽이겠다고 하다니. 삼천세계이든 우에노든 까마귀가 떼죽음을 당하는 것은 둘 다 다를 바가 없다. 우리 동네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까마귀의 서식지에 아파트를 잔뜩 지어버리니 도심지로 까마귀들이 나온 것이 아닌가.

나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쳐 분연히 주먹을 쥐고 역시 까마귀는 나쁘지 않다 보통은 인간이 나쁘다. 하고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지만 국도변 보도를 완전히 하얗게 물들인 까마귀 똥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고 그걸 물로 청소 하고 있는 자영업자 분들을 보면 아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고 인간에게도 나름의 억울한 부분이 있어! 하는 생각이 들고 최대한 까마귀가 없는 도로로만 다녀야겠다고 결심한다.

어느 날 나는 오늘에야 말로 새로운 루트를 찾아볼까 싶어서 잘 가지 않는 길로 가보다가 국도 곁 야지가 그대로 드러나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와 쓰레기들만 가득한 구석의 어느 국도 변에서 연석과 트럭 사이에 까마귀 두 마리가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주변을 찾아보았고 그 두마리 주변엔 하얗게 똥이 떨어져 있었지만 어디에도 까마귀 떼는 보이지 않았다. 상처는 보이지 않지만 무슨 연유에 떨어져 죽은 것이리라. 묻어주기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땅이라도 팔 것이 있나 야지를 둘러보는데, 분명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까마귀가 아니 까마귀 떼가 야지 근처 나무 근처 어두운 곳에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나는 쓰러진 까마귀를, 그리고 저 멀리의 까마귀 떼를 번갈아가며 보다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도망을 갔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저 땅에 떨어진 까마귀는 어떤 이유로, 땅에 떨어지고 만 것 일까. 누가 어떤 인간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떨어진 것인가. 나는 급하게 자리를 비우고. 까마귀들은 이번만은 봐주겠다는 듯이 나를 보고만 있었다.

20년 12월의 글이다.

아니 그러니까 무려 두달을 기다려서 애플워치가 왔다. 10월 중순 쯤의 내 메모를 슬쩍 들여다보면 “연휴 중 변덕으로 웨어러블 기기를 하나 샀다. 하나도 필요 없는 비싼 전자 제품을 또 산 것이다.”라고 써있는데, 아 맙소사 변덕으로 산 애플워치를 이렇게 오래 기다려서 받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그 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하루에 한 번은 꼭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 들러서 로그인을 했고. 자기 구매 내역을 확인하려면 꼭 두 번 로그인을 해야하게 만든 애플 홈페이지의 구조에 치를 떨었다.

마스크를 재빨리 내려서 페이스 아이디로 로그인을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할 동안 내 기대치는 최고조에 이르렀고 두근두근 하는 마음에 구매내역을 확인하면. 항상 내 애플워치는 <준비 중>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대실망쇼에 목숨이 좀 줄었을 지도 모른다. 분명 내분비계 어딘가에 악영향을 미쳤을거라고.

그래서 매일매일 이걸 어느 시점에서 취소 하는게 가장 현명한 행동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가장 현명한 것은 이걸 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만...

그런거 있지 않나. 정말 필요한거냐 아니면 갖고 싶었던 거냐 하고 물어보면 별로 할 말은 없다. 양 쪽 다 아니기 때문이다. 변명조차 할 수 없다. 몇 년 간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 결국 산 거지만 이걸 가지고 도대체 뭘 하지 싶다. 역시 그것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처럼 보이게 만드는 애플의 마케팅 팀의 승리겠지. 이걸로 뭘 해야할지도 모르면서 사게 만들다니.

순순히 사실을 얘기하자면 카드 결제를 하고 난 다음, 배송 예정일을 봤을 때도 주문일로부터 6~8주가 나왔다. 방망이 깎는 노인에게 8인 식탁을 부탁해도 저것보단 빨리 도착 할 것 같았지만 당시 나는 거꾸로 좀 안심이 됐다. 그 동안 좀 갖고 싶은 생각이 없으면 구매를 취소해도 될 것이고, 8주는 충동구매를 반성하고 스스로 뺨을 두대 정도 때린 다음 카드 결제를 취소한 후 안심하기 까지 충분한 시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숨길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나는 이번이 웨어러블 기기를 산 처음이 아니다. 그것고 굉장한 돈 낭비였는데.
순토의 카일라쉬라는 모델로 발매 당시 120만원 쯤. 정확히는 웨어러블이 아니라 아웃도어용으로 유명한 메이커에서 스마트폰 연동도 되는 모델을 발매한 것인데. 코퍼 모델의 간지에 반한 데다가, “특정한 위치를 입력하면 세계 어디에 있더라도 그곳까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먼지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 불명의 기능에 마음을 빼앗겨 그만 사고 말았다. 너무 인문계스러운 프로모션 포인트 아닌가요. 내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위치를 등록해 두면 너와 나의 방향과 거리를 알 수 있어...하고...

네 물론 거의 쓰지 않았고 방 찬장에 그대로 있습니다. 처음엔 여행 갈 때 마다 차고 나갔는데, 생각해보면 제가 여행을 가는게 무슨 오지도 아니고...그냥 일본이나 하여간 아시아 어딘가라서 딱히 방향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물론 툼레이더 리부트 작에선 고대 히미코국의 유적이라면서 일본의 오지가 나오지만 제 말을 믿으세요 일본에 그런 오지는 없습니다. 식생도 우리나라랑 거의 같아서 방향을 몰라도 휘휘 동서남북 한 번 돌아보면 방향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거짓말 같죠? 제가 홋카이도를 몇번이나 갔다고 생각하시는거에요.

게다가 결정적으로 시계를 차고 다니는 습관이 없는 사람이 이틀에 한 번은 충전해줘야 하는. 그리고 기능은 시간을 알려주는 것과 이동루트를 트랙킹해주는 것 밖에 없는 물건을 차고 다닐리가 없었다...(물론 다른 기능도 자잘하게 많았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쓰는 건 그 정도였습니다)는 얘기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플워치를 산 건 실수구만 싶긴 한데. 심지어 내가 샀다는 얘길 뒤늦게 듣고 구매버튼을 누른 친구가 나보다 3주 먼저 애플워치를 받았다. 3주 먼저 라기 보다 그 친구는 그냥 일주일 동안 배송이 빠른 다른 쇼핑몰을 쳐다보고 있다가 재고가 뜬 걸 보고 바로 주문을 했고 그 다음날 애플워치를 받았다. 100% 재생 알루미늄이라는 이유로 조금 장난감 느낌이 나는 블루 컬러를 산 나와는 다르게 친구는 스테인레스를 샀다. 과연...싶을 정도로 예쁘고 깔끔한 디자인이었으며. 나는 지금이야 말로 구매를 취소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과 아 억울해 진짜 이거 올 때 까지 기다린다!!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취소를 정말로 누르려던 날, DHL의 배송 번호가 떴다. 그러고도 약 7일간 추적 루트에 아무것도 뜨지 않아. DHL마저 나를 속이려는 건가 (저는 일 관련으로 DHL에 관해서는 무분별한 신뢰를 주고 있습니다)하고 화가 날 때 쯤에, 갑자기 회사로 DHL트럭이 찾아와 시계를 받았습니다. 어...감사합니다.

유용하냐고요? 어...일단 이제와서 이런 얘기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나는 시간 감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기차타고 다닐때 익힌 능력인데 대체적으로 지금 몇시 몇분인지를 가늠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원래부터 시계가 거의 필요 없습니다. 몇분이 지났는지도 대충 안다고요. 그래서 시계 페이스는 정보값이 제일 적은 사람 얼굴을 그래피티로 해둔 것을 하고있습니다. 귀여워요 누르면 조금씩 변한다는 점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쓰는 기능은 운동기록 기능과 아침에 깨워주는 알람 기능. 그리고 아이폰이 어디있는지 모를 때 커다란 소리를 내서 알려주는 기능 정도입니다. 후회하고 있느냐 하면 아니 뭐 어차피 산거고 귀엽고 해서 딱히 싫진 않습니다.

어쨌든 제 워치는 6세대에 파란색 알루미늄. 파란색 솔라루프를 하고 있습니다. 제 손목에 차면 정말 쪼끄마하답니다.

사람이란 원래 변덕스럽고 뭔가 실수를 하는 존재니까요. 실수를 함으로서 뭔가 고민도 해보고 수습도 해보면서 성장하는게 아닐까 한다니까요. 그래서 이번 애플워치 구매도 긍정적으로...잠깐만 어떻게든 그럴듯 하게 수습을 하려고 했는데 실패했어.

20년 12월의 글이다.

기억은 어떤 순간을 머리 속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에 일어날 일을 기억해내는 일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일어날 일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당신은 어느날 밤 나에게 인사를 하고 급하게 사거리를 건너서 가버린다. 나는 몇 번이나 당신이 길을 건너는 것을 지켜보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당신의 뒷 모습을 처음 본 밤의 일이다.

밤은 차갑고 미지근 하다. 공기는 낮게 깔렸고 나는 오늘의 내일에 비가 내릴 것을 안다. 우리는 내일도 만날 것이고 나는 또 똑같은 뒷모습을 보내고 혼자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실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날 밤은 내가 당신의 뒷모습을 보는 첫번째 날이다. 나는 내가 신은 나이키의 콧등을 보고 번화가의 진열장을 쳐다본다. 그 때 내가 보지 않았던 것들을 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당신이 떠나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척 하고 어서 돌아가 오늘 마저 읽지 못한 책을 더 읽어야지 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

당신은 나에게서 도망치는 것 처럼 가버리고,
나는 당신이 가버리는 장면에서 등을 돌려 그 가버리는 모습을 끝까지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당신이 가버리는 장면에서 등을 돌려 그 가버리는 모습을 다시 한 번 쳐다보려고 애쓴다.

혹시 당신이 나를 한 번 더 쳐다보지 않았을까 하고 바란다.
내가 원한다면 나는 당신이 내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당신은 내 쪽을 쳐다보지 않았고 나 또한 당신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기억 속의 장면을 삼키기 위해 노래를 떠올린다.

- 해가 반짝이는 날 구름도 말끔하게 사라져버린 공기마저 달콤한 그날.
- 당신 나에게 그 거리로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그 거리로 갈 수 있죠?

실제로 그러지 않았음에도 그 장면의 마지막에 노래를 부르는 나를 삽입한다. 꼭 그렇게 하면 시간을 되돌려 길을 건너는 당신에게 내 노래를 들려 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

나는 술집의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미 술에 얼큰하게 취해 얼굴이 빨개진 나는 안 좋은 버릇으로 먹지도 않을 안주를 뒤적거리며 이것도 저것도 더 시켜볼까 하고 생각한다. 테이블 건넛편에 앉아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상대도 이미 한참 취해서 더 이상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는 눈치이다.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들라크루와 그리고 쇼팽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니 이젠 음악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 겨우겨우 회사원이나 하고 있는 제가 예술이 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건 주제넘은 일이지만

이라고 말을 꺼내면서 나는 주제넘게 예술론에 대해서 길고 지루한 의견을 말한다. 사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삶은 콩을 좀 더 시킬까였으면서, 상대의 눈치까지 보며 혹시라도 틀린말을 하게 될까봐 고리타분한 고전 독일의 미학론보다 하나도 나을게 없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칸트의 미학론이었던가 괴테의 미학론이었을까. 학교에서 배운 애매모호한 그리고 이제와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렇게 상대가 내 말에 질려하고도 남았겠지 하고 내심 안심하는 시점까지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상대가 하는 말을 놓친다.

네 뭐라고요? 라고 다시 물어본다. 상대는 약간 풀린 혀로 그럼 님이 생각하는 예술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뭐냐고요? 라고 다시 말해준다. 당황한 나는 너무 바보 같은 말투로 더 바보 같은 대답을 한다.

- 시간을 뛰어넘는 것이요.

...

녹음 된 파일을 본다. 200X년 X월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녹음 파일은 여러 개이고 젊은 나의 목소리이다. 건방지고 오만하고 자신에 차있으며 틀린 이야기를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서,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 어딘가 운동장이나 역의 뒤 구석에서 스스로만 납득 할 수 있는 이론들을 녹음하곤 했다. 때때로 알바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새벽이 흐리게 시작되는 그런 때면 감정에 복받쳐서 더욱 아무 말이나 하곤 했다.

그 중에 하나를 들어본다. 녹음된 상태는 좋지 않고 파일의 시작부분에 차가 다가왔다 멀어지는 소리가 같이 녹음되어 있다. 나는 이 녹음 파일이 어디서, 왜 녹음된 건지 떠올리려고 한다. 목소리는 약간 술에 취한 것 같고 뭔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 모든 이야기에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불멸이란 결국 죽음에 대한 복선이다. 가장 유명한 불멸자인 아킬레우스가 발뒤꿈치의 약점을 제외하고 무적의 신체를 가지는 이유는. 그가 결국 그 약점으로 죽을 것을 의미한다...

200X년의 나는 스스로가 아니면 아무도 듣지 않을 녹음 파일에 약 10분에 걸쳐서 결락과 제한이 만들어내는 불멸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이 불멸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두려워해야한다. 우리가 가진 영혼이 정말 불멸한다면 그 불멸하는 영혼은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후 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불멸성이라는 철학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해야한다.

나는 거기까지 듣고 녹음된 파일을 닫는다. 그 뒤에 어떤 이야기가 녹음되어 있는지 기억 해낸다. 나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이 파일을 지울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둘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

여덟? 아홉살때 쯤의 나. 아버지는 서른 다섯 쯤이다. 아버지와 나는 저녁을 먹고 있다. 생선을 먹던 그는 나에게 생선을 먹으면서 열역학의 제 1법칙에 대해서 설명한다.

- 쉽게 말하자면 네가 지금 먹고있는 생선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얘기야, 질량 보존의 법칙에서 모든 질량은 형태만 바꿔서 존재한다고 하지...

아버지는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만을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내가 열역학을 이해하길 기대하며 한참을 설명한다.

- 젓가락으로 생선의 살을 발라내면...이 생선의 살은, 네 안에서 네 몸이 되고 또 에너지가 되어 운동을 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네 몸도 다른 형태로 바뀌어서 다른게 되는거야 어느 것도 사라지는 것은 없고 순환하게 된다.

- 지금 내가 말한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돼?
하고 아버지는 묻는다.

서른이 넘은 나는 대답한다.
관측하는 우리가 닫힌 계 안에 있으며 우리는 순환하는 것이 아닌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여 결국은 더 낮은 곳으로 사라진다는거죠.
하지만 아버지는 서른이 넘은 나의 대답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묻는다.

- 이해가 돼? 세상에 어느 것도 사라지는 것은 없는거야.

아버지를 쳐다보며, 항상 과학보다 신학에 더 관심이 많았던 어린 나는 우물쭈물하다 그럼 우리의 영혼은 나중에 어디로 가요? 하고 묻는다. 불교도인 아버지는 무슨 생각인지

- 우리에겐 전생도 영혼도 없어
라고 대답한다.

...

이 우주는 불멸이 아니기에 약점도 없는 신, 브라흐마의 하루이다.
그의 하루는 길고 긴 계절로 나뉘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의 하루를 계절로 나누고 또 계절로 나눈 찰나와 같은 나눈 짧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라고들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이름은 칼리유가이며 우리는 불화와 불만의 아이들이다. 정당한 댓가와 정의는 이 시대와 조금도 관련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당함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고 우리의 불행은 우리의 시대가 불의한 시대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데서 연유한다.
우리는 얼마나 하찮고 고귀한지 마음과 생각을 다하여 우리의 삶과 칼리유가의 시대를 벗어나 신의 하루를 세려고든다.

나는 때때로 그의 하루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주 전체를 하루동안 살아가는 그와 달리, 나는 겨울이 삶의 전부인 것 처럼 살아간다.
나는 겨울에 태어나 첫번째 기억조차 겨울에 대한 것이다. 모든 일들은 겨울에 일어난 일이고 나의 평생은 겨울에 걸쳐있다. 그런 시간 밀도의 차이는 내가 그를 인식하기도 쉽지 않게 만든다. 해를 볼 수 없을 촛불에게 내일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신의 하루는 인간에겐 의문의 덩어리 일 뿐이다.
내가 그에게 질문을 힌다고 가정할때 물어볼 것은 정해져있다. 하지만 질문의 내용보다 질문을 하고 대답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우리의 삶이 다 가더라도 신의 하루는 지루할 정도로 오래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모든 말들은 고스란히 신에게 전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가 우리의 질문에 생각을 하고 대답을 할 때 까지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시간을 가늠 해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의 대답이 도착했을 때 나는 연못 안의 얼어붙은 물고기이거나 또는 누구에게도 도달하지 못한 노래일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겠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

오늘 아침 일어나 긴 바지를 입고 집 밖에 나왔더니 발치에 낙엽이 수도 없이 떨어졌다. 햇볕이 쨍해 모자 위에 후드를 쓰고도 눈이 부시지 않는 그늘로 걸었더니 찬 기운이 안개처럼 깔렸다. 평소보다 아침의 해가 더 낮구나 정말 겨울이 온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해가 반짝이는 날 구름도 말끔하게 사라져버린 공기마저 달콤한 그날.
- 당신 나에게 그 거리로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그 거리로 갈 수 있죠?

나는 뭔가 이해할 수 없는 기억을 떠올린다. 내가 아는 한 나는 손을 내밀었고 당신은 그 손을 잡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손은 서늘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그 감촉과 당신의 체온은 봄날의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나는, 나의 운명은 분명.

20년 11월의 글이다.

'부재증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418] 까마귀의 이치  (0) 2021.04.18
[20201205] 워치를 샀다. 이름은 아직 없다.  (0) 2020.12.06
[20191227] 사악한 자들의 기도  (0) 2019.12.27
[20191114] 이슬의 세상  (2) 2019.11.17
[20191010] 저녁 벚꽃놀이  (0) 2019.11.17

몇년 전인가, 겨울 나절 아직 봄이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노인과 둘이서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나무는 앙상하니 얼음을 털어내지 못하고 바람도 불지 않는 오후라 멀리까지 바라보아도 사람 하나 없었다. 

밥을 먹고 돌아가는 길이었으니 산책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발끝을 바라보며 걷던 노인은 익숙치 않은 외국어로 나에게 질문을 했다. 당신은 기도를 하나요?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역시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로 "누구에게요?"라고 대답했다.

노인은 앞서보다 더 천천히 나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나요? 

나는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짧은 말은 모두 필연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지만. 질문을 받은 이상 할 수 있는 최선의 언어로 대답해야하기에 나는 한기처럼 멈춰서서 생각을 했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확한 대답을 찾았다. “저 또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저는 저의 신에게 기도를 합니다. 저의 신은 침묵이며 숨결이고 질서입니다.
그는 중력처럼 연약하고 모든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제가 어떤 때 어느 곳에서 기도를 하더라도 그가 저의 기도를 듣고 있을 거란 걸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저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제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때때로 제가 아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제는 모르게 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아서 모르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더 정의에 부합하는 행위로 느껴집니다.

저는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말과 기도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란 구절을 믿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게으르지 아니한다면 해야할 바를 성취할 수 있고 그 모든 것은 언젠가 소멸한다는 말 또한 믿습니다.
사랑이 없는 자의 노력 또한 신에게 닿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 마저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젠가 세계의 색이 흘러내리고 그림자가 무게가 되어서도 우리의 말들이 공중에 그대로 남아 우리를 증언할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언젠가 살아있었다는 유일한 증거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네, 저는 기도를 합니다. 왕국도 도시도 노래도 코끼리도 책도 모두 언젠가 낡아 사라질 것이고. 별보다 이 기도가 오래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노인은, 늙은 외국인 엔지니어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하더니 이윽고 그 질문이 사실 혼잣말이었다는 듯이 기도는 하는 게 좋지요. 누구에게라도 누구를 위해서라도.

나는 몇 년이나 지나서 노인의 말을 떠올리고, 그의 마지막 말 앞에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오래 전의 일이었고 그는 이미 은퇴한지 오래라 그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알수가 없다.

나는 그 늙은 엔지니어를 위해 기도를 해보려 노력한다. 그러다 나는 변덕스럽게도 신을 위하여 기도를 했다. 

이 세상에 누군가 선량한 마음을 지닌 이가 있다면 그 누구보다 외로울것이기에, 누군가 한 명 쯤은 그의 평온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물방울이나, 새가 날개를 휘두르는 소리처럼 기도는 멀리까지 전해진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의 기도가 신에게 가서 닿을지는 아직 알수 없다.



19년 12월의 글이다.

데스크탑을 껐다. 

사람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사무실을 떠날 때는 의식처럼 정해진 순서대로 행동하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모든 다른 자리 처럼 지금의 내 자리도 우연히 나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항상 아주 멀리 떠나는 사람처럼 책상 위의 쓰레기를 모아 버리고. 달력과 노트를 정리한 다음, 나 대신 자리를 지킬 사람 모양의 인형 하나를 올려 둔다. 아무리 정리해도 내 자리는 다른 누구의 자리보다 내 자리처럼 보이지만, 시도를 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오늘 저녁 때 가을 비가 내릴 거라고 했는데 비는 아직 오지 않는다. 챙겨온 우산을 서랍에 넣고는 잠근다. 

커다란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노래를 튼다. 가방을 멘 다음. 의자를 넣고 한 번 더 사무실을 둘러본다. 누군가 사무실에 남아있을 때는 인사를 한다. 안녕히계세요. 아무도 사무실에 남아있지 않아 사무실을 마지막으로 나설 때엔. 불을 끈다. 안녕히계세요.

나는 회사의 정문에서 우리집 현관문 앞에 떨어트려 주는거나 다름없는 통근버스 노선이 하나 있지만, 너무 더워 걷기가 곤란 할 때가 아니면 출근 할 때도 퇴근 할 때도 그 버스는 타지 않는다. 누가 나에게 왜 걸어서 출퇴근을 해요 라고 물어보기에. 개를 산책시키는 것처럼 스스로를 산책시키는 거에요, 라고 대답했다. 일어나서 잠이 들 때 까지 나는 대체로 계속 혼자지만. 완전히 혼자가 되서 어딘가에서 다른 한 곳으로 걸어가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걸어가는 것이 좋다. 겨울 밤길을 혼자 걸어가는 거라면 더 좋다. 꼭 정신의 메트로놈을 맞추는 것처럼 기분이 좋을 때는 진정하게 해주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기분을 낫게 해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추위를 느끼며 걷고 있노라면 내가 이렇게 걷기 위해 만들어진 사람인 것 같다.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고 다리가 납처럼 무겁고 숨이 모래처럼 갈라질때 까지 걸어다니고 싶어진다. 나는 애초에 목적을 위해서 뭘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뭘 하고 싶어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소리로 음악을 틀고 신발 안에 발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해 보고 계단을 내려간다.

요즘은 예전처럼 퇴근이 늦지 않다. 일주일에 70시간을 넘게 일하던 때보다 훨씬 낫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한가하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간에 출근을 해도 정신 없이 일을 하다 보면 저녁이 되고,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시간이면 일어나 집에 간다. 일을 하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얼마 전 부터는 게임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요 몇 년 전 완전히라고 할 정도로 게임을 하지 않았는데, 그 때는 게임을 하지 않아도 생각해야할 사람들과 생각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이제는 생각해야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대신 게임에 대한 생각을 하곤 한다. 예를 들어 과일을 먹어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괴물이라거나, 그 괴물에게서 (반드시 빼앗기고 말 운명의) 과일들을 지키는 유령들 이라거나 하는 유사 셰익스피어 적인 악몽의 서사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도대체 왜 이런 이상한 규칙을 지닌 작고 우스꽝스러운 세계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게임 안으로 각자의 작은 촉수를 내밀어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 처럼 보인다. 게임 안에서 우리의 의지가 움직이는 것이야 말로 가장 즐거운 유희인 것 처럼 불편하고 이해하기 힘든 규칙에 따라서 (예를 들어, 너는 게임 안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지만 거북이와 정면으로 맞서면 죽고 말아, 혹은 너는 뭐에 부딪혀도 죽지만 네 키보다 높이 점프 할 수 있어) 게임을 플레이 한다.

규칙이 복잡하고 그래픽이 정교해져도, 게임의 법칙은 단 하나 뿐이다. 이해하기 힘든 불합리한 세계에 우리의 의지를 구현하는 것. 그리고 때때로 거기서 이야기를 떠올리고 또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 거기에 더해서 우리의 실체가 살고 있는 세상 또한 게임 안의 세계처럼 불합리한 규칙의 세계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는 것. 왜냐하면 게임에서의 죽음과 실패는 현실에는 어떤 영향도 끼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가 결코 말하지 않는 게임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하지 않을 때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책을 읽는다. 
다시 생각해보자. 걸어 다니고 있지 않을 때는 항상 무언가를 읽고 있기 때문에 내가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문제가 너무 많은 것을 읽어서 라는 걸 내심 깨닫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게임을 다시 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소설 또한 다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은 게임보다 훨씬 안전한 매체이다. 글은 어떤 시대에서도 총칼보다 강한 적이 없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라는 말은 총칼을 가진 권력자들이 엄살을 부리며 하는 소리임에 틀림없다. 그런게 아니라면 너무 많이 읽어서 지상낙원을 이룩한 곳이 한 군데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은가. 내가 아는 한 모든 지상 낙원은 아스피린과 밀가루의 부족으로 멸망한지 오래이다.

높지 않은 건물인, 사실은 원래 공장이었던 사무실을 나와서 조금 걸어가면 커다란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가 나온다. 사거리는 멋지게 뻗어 시야를 가리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운이 좋으면 해가 지는 시간에 퇴근을 해 엄청난 색으로 물들인 하늘을 보면서 퇴근 할 수도 있다. 매일 매일 같은 곳에 서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우리 회사 부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고. 무엇보다 항상 같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지 못한다면 그런 활동도 별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스타그램에서 초기에 올린 사진을 보니 무려 2011년의 사진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갈 수록 내가 사진을 찍는 폰이 바뀌어서 요즘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록 인스타그램의 이미지들은 묘하게 선명하고 밝아졌다. 나는 그게 꼭 기억의 은유처럼 느껴져서 불쾌해지고 말았다. 자연적으로 열화되지 않은 이미지가 아니라 앞으로 발전해나가며 선명해지는 이미지라니, 언젠가는 인스타그램의 이미지가 현실의 해상도를 따라 잡을 지도 모른다고 늙은이 같은 걱정을 한다.

사거리를 지나갈 때는 어째서인지 잠시 멈춰서서 왼쪽의 커다란 건물을 흘끗 보고는 헤드폰의 볼륨을 올린다. 이제는 이유도 기억나지 않고 그냥 버릇이 되었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소리로 듣는 것은 좋은 버릇이 되지 못한다. 듣는 음악은 대중이 없지만, 항상 가장 큰 소리로 항상 가장 빠르게 걸어 거리를 지나간다. 어떤 시간에 지나가든 간에 사거리에서 이어지는 그 길에는 사람이 있다. 모두 후회하는 일은 하나도 없는 사람 처럼 걸어간다.

문득 내 출근길과 퇴근길의 루트가 달라지는 지점이 이 지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출근 길엔 좀 더 왼 쪽의 커다란 건물에 가까이 그 바로 앞을 걸어 작은 공원 앞을 지나가는데, 퇴근 할 때는 커다란 건물에서 약간 빗겨가 사거리의 중앙부를 가로지른 중앙대로를 따라 걸어간다. 무슨 이유 일까 생각해 보려다 스스로의 행동에 하나하나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인 것 같아서 그만둔다. 사람은 대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제대로 이해받기 힘든 법이다.

어쨌거나 사거리와 중앙대로는 항상 엄청난 바람이 분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실상 우리 회사가 있는 곳은 거대한 공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바람을 막아줄만한 것은 거의 없고 커다란 빌딩이 연달아 서있어서 자연스럽게 바람이 강해진다. 가끔 내가 걸어가는 곳이 경기도 어딘가의 도시인지 아니면 지구 구석 어딘가의 황야인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나는 바람이 강하게 불 수록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언젠가 토요일 급하게 출근을 하며, 벼락이 치는 것을 보았다. 아파트를 가로 지르고 언덕을 올라 내려가는데 회사가 있는 단지 저 쪽에 벼락이 치고 있었다. 태풍이 불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엔 아무도 없었고 나는 벼락이 치는 곳으로 계속 걸어가며 그 장면을 혼자 보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꼭 태초의 산에 변덕스러운 신이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위험할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홀린 광신도처럼 계속 걸어갔다.

새삼스럽게 세어보니 벌써 10년 가까이 이 회사에 있었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으나 나는 하나도 달라진 점이 없이 똑같이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사는 곳이 달라져도 어디에서 일해도 나는 퇴근길에는 항상 한참을 걸어야 만족을 했다. 전철이 너무 가깝다면 전 역에서 내려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걸으려고 헀다. 무엇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나는 걸어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사랑했고, 너무나 많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나는 내가 시간 그 자체로 되는 것처럼 굴었다. 똑딱 거리는 시계처럼, 나무 위에 달려 있는 광신도의 시체처럼, 변하지 않고 도달 할 수 없는 어떤 시점처럼 행동했다. 꼭 영원히 거기에 존재할 계절처럼 살았다.

나는 누군가의 옆 모습을 떠올린다. 정신을 흐트러트리지 않기 위해 바쇼의 마지막 시를 떠올린다. 방랑에 병들어/꿈은 마른들판을/헤매인다. 최초의 시는 기도였으며 모든 시는 무언가를 이해해보려는 시도이다. 스산한 기분에 사거리에 서서 한 마디 입 밖에 내어보려고 하지만, 한 마디 조차 입 밖에 낼 수가 없다. 
인생이 꼭 누군가의 자리 건넛편으로 보는 재미없는 영화인 것 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멀리 길 건너에 보이는 사람들과 흘끗 보이는 모르는 사람의 집안 풍경은 우스꽝스럽게 따스해 보인다. 나에겐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겨울의 밤 길을 혼자 걸으면, 항상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 이리저리 이지러지고 망가져도 겨울의 기온이 나를 다시 한 번 나 자신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오로지 나 였으며 앞으로도 나 외에 다른 것은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겨울이고, 내가 입으로 뱉는 것마다 추위, 머리 속에 있는 것은 바람 뿐이다. 나무가 쓸려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가방을 고쳐매고, 어깨를 둥글게 구부리고는 계속해서 걸어간다. 밤처럼 쏟아지는 것은 비이다. 노랗게 붉은 나뭇잎들이 땅바닥에 떨어져 차가운 돌바닥을 밟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하늘이 거기에 있는지 똑바로 바라보기도 힘들어서 물에 젖은 안경을 손으로 훔쳐가며 그대로 걸었다. 
며칠 전 아침 똑같은 길을 거꾸로 올라가다가 가로수 옆에 기대듯 피어있는 작은 꽃을 하나 보았다. 처음 그 꽃을 보았을 때는 무심결에 지나쳤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그 꽃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비는 계속해서 쏟아지고 나는 그 꽃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차피 우리가 원하는 유일한 것은, 별이 멸망 할 때 까지 서쪽으로 계속해서 가는 것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신들이 당신들의 의지를 우리를 통해 구현하는 방식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한참을 멈춰있다가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19년 11월의 글이다.


저녁 벚꽃놀이 집이 있는 사람들은 돌아가고夕桜家ある人はとく帰る

- 잇사


지금은 밤이고 부산 앞 바다를 지나는 중이다. 이제까지 몇 번이나 그 위를 지나 왔을텐데 이렇게 부산 위를 지나가고 있는 걸 확실히 인식한 적은 처음이다.

당신에게 부산이 어떻게 아름답다고 설명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나는 시속 810킬로미터에 상공 8500미터에서 이곳을 지나치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지금 지나가고 있는 부산 앞 바다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설명하고 싶다. 이런 속도로 움직이는 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잠시 뿐이다.

그러나, 당신 그 검은 바다 앞을 흔들거리는 등불들이 서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지 꼭 설명하고 싶다. 산과 바다로 이루어진 도시 밤의 상공에서 볼 때 꼭 커다란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영혼들 처럼 보이는데 검은 - 분명 산일 것이다 - 구름들이 빛의 무리를 집어 삼킬듯 일렁이면 빛 또한 점점이 저 멀리로 저 멀리로 이어진다. 바다를 감싸듯 커다란 원형의 신도심과 구도심은 각자가 하나의 벌떼들인 것 처럼 이어졌다 또 끊어졌다를 반복한다.

빛이 점점 이어지고 끊어지기를 반복하더니, 금세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숨을 멈추고 있는 시간보다도 빠르게 나는 도시의 상공을 지나쳐 왔다. 나는 눈을 감지도 않고 생각한다. 이제 부산을 지나온 것 같다. 우리가 꼭 모든 스쳐지나가는 것을 애정하고 아쉬워하는 것처럼.

나는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상공에서는 영혼 하나 보이지 않는다. 비행기는 잠시 더 높이 날았다가 금세 고도를 내릴 것이다. 그리고 영혼이 강줄기를 타고 우리에게 흘러오듯이 또 빛이 보일 것이다. 아주 금방, 곧. 우리가 숫자를 세는 것만큼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19년 10월의 글이다.

'부재증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1227] 사악한 자들의 기도  (0) 2019.12.27
[20191114] 이슬의 세상  (2) 2019.11.17
[20190515] 따분하다.  (1) 2019.05.15
[20190328] 여름이 없는 세계  (0) 2019.03.28
[20190314] Let’s do hard drugs and fix our problems  (0) 2019.03.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