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딱히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후배는 이번 대선 때 이민 일정이 맞물려서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송별을 겸해 밥을 먹는데 (투표를 할 수 있어도) 누구도 뽑고 싶지 않다는 얘길 담담히 했다. 후배는 모 당의 유력후보 중 한 명을 공개 지지했으나 그 후보는 최종 대선 후보는 되지 못했다.

결국 대선 후보가 된 그 후보의 지지자들에 대해서 그런 비열한 사람들이 승리에 도취되는 걸 보고 싶지도 않다.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도 했다. 마음 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 누군가 정치인을 선거 등에서 공개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후보가 말 실수를 하기라도 하면 가까운 사람들 마저 후보보다 당신을 먼저 공격하고 자못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 하게 설교를 한다. 실수를 하지 않아도 각종 네거티브에 시달려야 한다. 

선배, 그 사람을 지지한다고 한 후에 들을 생각도 없으면서 그 사람을 왜 지지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세요? 라고 말했다. 수고했다고, 공개적으로 누굴 지지한다는 것은 용감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걸로 후배가 기분이 풀렸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 용감한 행동이다. 아무래도 나같이 무기력한 인간보다는 누군가를 열렬히 지지하고 사회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를 움직이는게 아닌가 싶다. 부정할수 없다. 우리가 피드백을 하지 않으면 정치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는 요구하는 자들의 이끌림에 의해서 움직여나가고 형성되어 왔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요구와 의견을 반영하는 것으로 확장되어 가는 것을, 우리는 사회 발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그런 열렬한 지지자들이 꼭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지지자를 지닌 정치인이 있을 때 그를 지지한다고 해서 모두 완전히 동일한 의견을 가질 수는 없다. 정치인이란 결국은 "챔피언"이고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하여 한가지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일수록 더 큰 영향력을 지닌 정치인이 된다. 수렴과 발산, 모순된 속성을 가진 이 정치인과 지지세력 사이의 균형을 우리들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정치인 그 자신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비극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 탄생했다. 크게는 수많은 전쟁들 이고 작게는 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후배에게 상대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욕을 퍼부은 사람들일 것이다. 아니 작지 않다. 나에겐 충분히 기분 나쁜 일이었다.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나는 나같은 무기력한 부동층에게 한가지 제안하고 싶은게 있다. 

우리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어떤 특정한 이유, 그러니까 계층이라거나 특별한 정책 때문에 그 후보를 꼭 지지하고자 마음 먹은게 아니라면 나는 감히, 그러니까 감히 쉽게 누군가를 지지하지 않을 것을 권하고 싶다. 생각해보면 당신 스스로가 선거에 뛰어들지 않는 이상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100%동일한 관점과 정책을 지닌 후보는 누구도 없다.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하며 짜잔 놀랍겠지만 선택을 하려면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건 Trade off를 통해 균형을 맞춰서 최상의 점수를 지닌 대안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안다, 귀찮은거. 그냥 우리 고향 사람이니까 하는 식으로 선택을 해버리면 간단하다. 당신이 가장 알기 쉬운 것 예를 들어서 국가관이나 안보관 같은 걸로 재빠르게 선택을 해버리고 TV토론을 할 때 축구경기를 하는 식으로 응원하고 투표소에 가서 딱 손 털고 투표 결과를 보는거, 그거 얼마나 쉽고 신나는가. 만약에 당신이 뽑은 후보가 당선이라도 되게 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투표 인구가 4천만명 정도 되는데 당신이 누구한테 찍든지 당신의 표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사표인데 뭐 그렇게 열심히 생각해야하는가.

나는 명확한 도덕기준을 지니고 -반드시 투표하는- 침묵하는 부동층이 우리 사회를 더 낫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수는 30%까지도 필요 없다. 단지 15%만이라도 좋다. 단독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끝의 끝까지 선택을 유보하는 그런 부동층이 필요하다. 우리의 일부가 부도덕한 선택을 할 때, 명확하고 발전적인 기준을 원칙으로 삼아 선택을 하는 그런 부동층 말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SNS에서 도덕적인 뭐시기의 시기에 중립이나 지키는 놈들은 지옥불에 타버릴 것이다 라는 위협을 들어도 하아? 하고 무시해버릴 수 있는 그런 태평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보다 악마에 가까워서 지옥불 쯤이야 뭐, 하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가 있다면, 나라는 극단으로 치닫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정체를 알수 없는 정치인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지지층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만들 것이고 우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TV토론에서 바보 같은 소리를 하지 않도록 참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정치인들의 열혈지지층이 서로를 비난하는 것을 자제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한다. 봐 우리가 싸우고 있는 사이에 저기 지옥불에 타고 있는 관중들이 눈썹을 찌푸리고 있어. 하고 말이다.

나는 진보를 원한다. 인권이 더 많이 보장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를 얻고 능력에 따라 소득을, 그리고 그 능력은 정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존권은 나라가 보장해주는 권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경제적 성장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성장을 이루어야 하며 그것이 우리나라가 이 별의 구성원 중 하나로서 이룩해야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좀 더 애매모호한 지역에 나 자신을 두고 싶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이든 완벽하게 도덕적일 수 없으며, 우리가 너무 빠르게 선택을 해버리면 더 나아질 가능성을 빼앗기는게 아닌가 의심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최고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고 우리는 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17년 4월 24일, 대선을 어 며칠이지 얼마 앞두고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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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하는 기억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외할아버지를 처음으로 만난 날. 

커다란 키에 양복과 목도리, 지팡이를 한 외할아버지는 턱을 굳히고 주변을 쳐다보았다. 


두번째로 만난 날 누워있던 어머니는 아버지, 아이들을 봐주세요. 라고 부탁했다. 눈썹을 찌푸리셨던 걸로 기억한다. 

외할아버지는 누나와 나를 쳐다보고 장갑을 벗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나에게는 총명하고 씩씩하구나. 

나에게는... 너는 새끼여우 같구나. 라고 하셨다. 새끼여우. 

누나는 그날 외할아버지는 장갑을 끼지 않았다면서 네 기억이 잘못된거라고 말했다.




17년 1월 5일은 외조부의 3주기이다. 
그 뒤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항상 말이 없고 수줍음을 탄다고 하셨지만 

오늘 외할아버지를 만난다면 그 누구보다 수다쟁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몇 번이나 외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로 정리하려고 했지만 3주기가 다 된 지금까지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겠다. 


입 밖에 내지 않은 사실들이라도 그것이 잊혀지진 않듯이 감정이나 기억들이 스러지지 않고 신발 속의 모래처럼 남겨져 있듯이. 

나는 이 마음이 완전히 가시는 일 없이 그대로 남아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영원히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정리하는 일은 불가능할까. 사람은 이미 가버렸는데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감정이 남기고 간 것들이 계속해서 움직여간다.


기묘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2015년 9월 나는 교토에 여행을 갔었다. 

그 당시 나온 아이폰을 사러 간거였고 교토에 갔던 것은 일종의 벽에 도배할 때 쓰는 덧붙임 종이 같은 거였는데. 

생각보다 예약한 아이폰을 빨리 구매 할 수 있어서 오사카에서 교토에 도착하자 오후 한 가운데 쯤이었다.


내가 왜 굳이 니죠 성을 가려고 했는지, 교토역에서 내리자 별로 고민도 없이 캐리어를 질질 끌며 니죠 성에 갔다.


처음 가는 곳이었는데도 니죠 성에 가자 익숙하게 여기가 어떤 곳인지가 떠올렸다. 사람이 많았지만 아름다운 곳이었다.

헤이안쿄의 궁궐이었던 니죠 성은, 그 후로 계속된 증축과 개축을 겪었으며 니죠의 어전과 그 정원은 우아하다. 

병사들을 막기 위해 축조된 벽과 해자, 그리고 연못들. 총을 쏠 수 있는 각도를 생각하여 꺾여진 길들.

끊임없이 니죠 성에 대한 것들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성을 관람하는 것이 다 끝나고 성 앞의 벤치에 앉자.

나는 그제서야 나에게 이런 것들을 설명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외할아버지였다.



아사쿠사의 뒷길, 아카사카의 가게, 우에노의 꽃, 히로시마의 해변, 니죠의 정원, 가모가와의 강변.


일본의 정경을 사랑하셨기에 분기에 한 번은 일본에 다녀오셨다.

자주 어떤 곳이 아름다운지를 설명하셨다. 즐거운 듯이 예전의 일들을 얘기해주셨다.

크게 앓으셔서 더 이상 해외를 가지 못하게 되시고 나서 오히려 그런 얘기를 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일본 출장에 다녀올 때 마다 외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먹거리들을 사서 보내드렸다.


할아버지가 조금 나으시면 제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일본에 며칠 다녀올게요.

어머니나 이모가 같이 가면 오히려 불편해 하실테니까. 어떠세요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마음에 안드는게 있을 때면 그러시던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는 먼 곳을 쳐다보셨다.


니죠 성에서 가라스의 길을 건너 로쿠도인으로 가는 사거리. 나는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이제야 왔네요. 이제야 이해했어요. 


아사쿠사의 뒷길, 아카사카의 가게, 우에노의 꽃, 히로시마의 해변, 니죠의 정원

가모가와의 강변. 반팔의 소년이던 외할아버지가 앉아 책을 읽던 곳.



나는 외할아버지가 얘기했던 정경을 근거로 4개 정도 후보지를 구글 맵에서 찾아냈다.

물이 흐르다 느려지고, 굽이 치고. 다리가 멀리 보이며 기온의 한참 남쪽. 강변으로 내려가는 경삿길.

밤이 되면 금방 까맣게 되었지만, 경삿길 부근에 누워서 책을 읽었다. 해가 질 때 까지-하고 말씀하셨다.

오래 찾을 것도 없었다. 북쪽에서 부터 차례대로 후보지를 가보다 세번째 쯤 나는 여기가 외할아버지가 있던 곳이란 걸 알았다.

반팔의 소년이 밤이 올 때 까지 산시로를 읽다가 일어서던 곳. 이제는 찻길이 생겨서 조용하지 않았지만

나는 가모가와의 강변에서 조용히, 서른도 넘었으면서 새끼 여우처럼 울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신 적이 있었다.

뭐라도 해라. 돈을 벌어. 버러지처럼 살지 말아라. TV를 트시더니- 봐라 저기 자막 나오는 거

보험쟁이든 외판원이든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할 것이 아니냐. 제 밥값을 못하면 인간 쓰레기나 다름없어.

할애비는... 할애비는 늙었어. 외손자가 제 몫을 할 때 까지 건강하게 살아있을 자신이 없어.
너 스스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돼. 뭐라도 해라 뭐라도 제발.

혹은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던 큰 손자를 자주 그리워하셨다.

서울대 병원에 큰 병환으로 입원하고 계실때 병실을 지키다 이모와 교대하는 나에게 들리란 듯이 외손자는 어쩔수 없군. 이라고 중얼거리셨다.

친손주들은 영화에 음악을 공부하는데 그건 뭐라도 제대로 하는거에요 이모? 네가 참아. 너한테 투정부리시는거야 알면서.

외할아버지가 첫번째 쓰러지셨던 날. 나는 해외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바로 차를 돌려서 댁으로 갔다. 외할아버지는 낭패해하셨다. 

일어설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어. 걷지 못하는 짐승은 죽는거다.

이모와 외삼촌과 어머니와 내가 외할아버지의 옆에 있었다.

할애비는...이제 다 틀린 것 같다.

괜찮을겁니다. 외할아버님. 이라고 말하자 외할아버지는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너는 아무 것도 모른다.

외할아버지 댁에 있을 때의 내 자리 - 외할아버지의 애장서들을 모아둔 책장 옆 -에 서서 나는 외할아버지을 보았다. 

그래요? 외손자니까요?

일주일 후 두번째 쓰러지셨고 ICU에 들어가셨다.

1월 4일은 토요일이었지만 나는 회사일이 있어서 하루 종일 다른 곳에 있었다.

팀장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장례 지원을 하는 일이었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는데.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외할아버지 많이 아프셔 어서 왔으면 좋겠다.

일원동에서 흑석동의 병원 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
그리고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 

나는 강남역에서 멈춰섰다. 외할아버지를 뵙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가실 분이 아냐. 그렇다고 해도 기다려주실거야. 

한시간이 넘게 강남역에서 시간을 보냈다.

무엇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은 아무 나쁜일도 일어나지 않을걸 믿는다는 듯

(외할아버지가 나를 버리고 먼저 갈 일이 없을 거라는 듯이)

ICU의 면회시간이 끝날때 쯤, 병원에 도착했다.

어머니, 할아버지는요? 응 괜찮아 많이 나아지셨어 하고 어머니는 눈물을 닦았다.

내일 일요일이니까 내일 면회시간에 올게요. 응 그래 고마워.

어머니와 나는 병원 주차장에서 한참을 그냥 앉아있었다. 너무 늦게와서 죄송해요. 아니야, 회사일 하고 있었잖아.


1월 5일. 나는 버스를 타고 종로에 도착했다.

아이패드 케이스를 사고. 커피를 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딴 짓을 하고도 어쩔수 없이 외할아버지가 누워 계신 병원에 왔다. 

혜화동의 병원으로 정오 쯤에 옮겨지셨다. 나는 이모가 울면서 건 전화에 잠에서 깨었다.

외할아버지에게 나는 세 명의 친손자와 네 명의 외손자 중 하나였다.

당신이 가장 사랑한 친손자는 외할아버지가 살고 있던 서울의 집을 물려받았고 

외할아버지의 책장들을 물려받고 싶었던 나는 친척들과 등을 돌리게 되었다. 내내 장례식장을 지키던 나는 이제 이걸로 됐어요. 

하고 한 마디를 하고 식장을 나가 집으로 갔다. 

나는 당신의 시신도 묫자리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려주실거죠 외할아버지. 제가 갈 때 까지요. 

제가 할아버지를 뵈러 갈 때 까지 그대로 있어주실거죠?


입으로 내지 않은 진실이라고 해서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내가 왜 외조부 댁 바로 옆의 대학에 갔는지, 의미없이 특차로 그 과에 들어갔는지 그 이유를 들어야할 사람이 물어보지 않았다.

네가 대학에 들어갔으니 이제 한 달에 한 번 할애비와 점심을 먹자구나. 괜찮겠느냐.

네 외할아버님. 

하지만 제가 왜 이 학교에 갔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물어보시지 않으시네요. 당신은 몇년 후에 저에게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뭐가 미안하세요. 하나도 안 미안해요. 할아버지 저한테 미안한거 하나도 없어요. 안 미안해 할아버지 그런 말 하지마.

 
입으로 내지 않은 감정이라고 전해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이야 말로 내 어린시절을 지켜준 내 진짜 아버지이며 당신이야 말로 내 이상의 "신사"라고. 

결국 나의 마음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뒤로 가끔 외할아버지의 책장에 대한 꿈을 꾼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이란 것이 시간이나 공간 같은 보통은 넘어서지 못하는 것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기억이나 감정들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데 그것이 찌꺼기가 아니라 어떤 씨앗이 혹은 복수의 평면에 작용하는 시작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몹시도 후회하는 것들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나는 거기에 대해 몹시도 부정적이다. 가모가와의 강변은 여우를 묻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


16년 12월 30일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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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의 기억이다. 모든 기억의 본질은 거짓말이지만. 

나는 거기에 진실이 한 줌 쯤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들을 소중하게 간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2015년 봄, 나는 마포구 어디 쯤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다. 우리 둘은 자주 밤새 술을 마셨다. 문을 여는 술집을 찾아다녔고 아침이 올 때 쯤이면 카페에 앉아서 미역처럼 늘어져 있었다. 친구의 집은 걸어서도 갈수 있게 가까웠다. 친구는 집이 먼 나를 버리고 휙 가버리지 않았다. 미안해진 나는 마포구에서 분당까지 어떤 경로로 가면 제일 싸게 나오는지 아주 잘 알게 되었다.

왜 우리 둘이 그렇게나 술을 마셔댔는지 모르겠다. 친구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의 이유는 간단했다 나에겐 강을 건너서 만나러 갈만큼 친한 친구가 많지 않았다.


"너 그래서 죽을 날 정해놓으니까 좋냐?"

"어어???"

"너 그거 거기에 써놓은거 너 죽을 날이잖아. 너같이 자기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애들 하는게 뻔하지 뭐"

"푸하하하 무슨 소리야 도대체"

"내 말이 틀려? 아냐 맞아 그것만 말해"

"어 맞아"

"얼마나 됐어?"

"음... 한 일년 좀 더 됐나. 조건을 걸어놓고 그게 안되면 죽기로 했어"

"조건이 뭔데?"

"이런 식으로 내년에도 살고 있으면 죽어야지, 하고 생각했어"


나의 플랜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서 빚이나 보험 같이 꾸준히 돈이 나가는 것들을 다 정리했고

주변 친구들에게 농담인듯, 농담이 아닌 듯 물건들을 나눠줬다. SNS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메모해서 책상에 올려뒀다.

언제쯤 회사를 관둬야 할지, 언제쯤 계약들을 해지해야할지 그런 것들도 일정을 정해놓고 차근차근 움직이고 있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구체적이고 집요하며 의지를 꺾지도 않는다. 한 번 정하면 망신창이가 될 때 까지 멈추질 않는다.

무엇보다 죽어야 할 이유가 아주 심플했다. 나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다. 나는 해야할 것이 없었다.


"뭐가 그렇게 어려워?"

"나 어려운거 없어. 알잖아 나는 사는게 어렵지 않아. 내가 하고 싶은 건 대체로 했고 못하는 것도 없어, 그냥 단지"


그냥 단지. 나에겐 이유가 없었다. 나의 실험은 실패했다.

나는 더 큰 것을 바라야 했지만, 작은 것을 바랐고. 내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들에 집중했다.

공부를 해야할 때 알바를 하고, 시험을 봐야할 때 책을 읽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단지 내 재능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무책임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걸 손에 넣었지만. 그게 다 였다. 그 이상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사실"

'어, 나는 사실 가족을 갖고 싶었어'라고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 단어 하나하나에 담겨진 내 마음이 너무 구질구질하고 구차해서 나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얌마, 이 누나가 너 안 죽게 해줄게"

"???무슨 소리야"

"봐봐 잘 봐봐. 너 같은 애들은 목표가 사라지면 아무 것도 못하니까. 죽기로 한 날을 잊어버리면 넌 못 죽어"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진짜라니까, 봐봐 자아 내가 하나 둘 셋, 하고 말하면 까먹는다 너"

"어??"

"하나, 둘, 셋. 자 까먹어라"

"어??"

"어??"


나는 그 뒤로 정말 내가 죽기로 한 날짜를 잊어버렸다. 

얼마 뒤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시계를 보더니 "자아, 지났다 짠"하고 말했을 때 나는 그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친구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 지금도 나는 그 날짜를 기억하지 못한다.


홋카이도 여행은 친구와 계획한 것이었다. 친구는 내 계획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차라리 프랑스라던가 미국이라던가. 그게 낫지 않겠니?

하고 말했길래 홋카이도 여행은 플랜C정도로 홋카이도에 뭐가 있는지만 사전에 체크해두었다. 

하지만 여행을 같이 가지 못하게 되었고. 나는 혼자 여행을 갔더랬다. 이것이 내 홋카이도 여행기의 가장 처음에 붙어있었어야 할 오프닝이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있었던 일을 전부 말하지 않을 뿐이다.


이제 여행기는 두 개가 더 남았다. 두 개 다 삿포로에서 있었던 일이다.



친구는 나에게 너무 가까운 이름이다.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쉽게 친한 척을 하기 힘들게 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선배는. 하는 소릴 들었었다. 냉혈인간에 무표정하지. 하는 소리도 들었다. 사실 어디에 가나 항상 저런 소리를 듣는다.
그냥 엄청나게 같이 재미있게 놀고 얘기도 잘 통하고 보기보다 사교적인데 역시 이 사람은 마음을 안 열어. 하는 느낌이 있어요. 라는 소리도 들었다.
마음을 여는게 도대체 뭐야 이 멍청이들, 하고 마음을 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만을 친구들로 사귄다. 그냥 있는 그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너는 내 친구야. 하고 생각이 되는 사람들말이다.

중학교때부터의 친구 결혼 소식을 들었다.
페북에 그의 이름을 링크한 게시물이 떴기 때문이다. 오랜 연인인 그의 신부가 될 분이 올렸다. 나도 알고 계신 분이기에 "와. 결혼해요? 전혀 몰랐네"하고 댓글을 달았다. 사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둘이 아직까지 사귀고 있을거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여자친구 분은 당황하셨는지 한참 남았어요 ㅎㅎ 하고 댓글을 다셨다. 정말 매너가 없었지. 그래도 한참 동안 친구에게 연락이 없었다.

서운했다.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생각보다 친하지 않은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평일 오후에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엄청나게 빈정댔다. 야 아냐 너 해외있더라구 그래서 전화 끊었어. 어이구 그러세요?
아 그래서 응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어이구 그러세요? 내가 그런 소식을 페북으로 들어야겠냐 것도 니 여친 게시물로 어이구.
친구는 변명하기를, 야 네가 보고 싶어서 연락을 하는 건 항상 나였잖아. 하고 말한다.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 몇 명 중에 제일 제정신이 아니고 퉁명스러운 것은 나였다. 그는 그런데 또 결혼한다고 연락하기 겸연쩍더라고. 하고 말했다 야 너 부천 안 오면 내가 니네 동네로 갈게 진짜 미안하다. 응? 연락하면 평일에 시간 좀 내.
물론 그 녀석은 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결혼을 앞둔 신랑이 얼마나 바쁜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니.

버스를 타고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걸어와야 하는 서울의 끝은 멀어서 충분히 이것저것 생각해내기에 충분했다. 어쩌지 어머니한테는 뭐라고 인사드리지 걔 누나한테는? 일단 만나면 더럽게 멀다고 한 대 때릴까? 만나면 같이 셀카나 한 장 찍어야지 생각해보니 그 녀석 대학원 조교하던 때 이후로 처음 만나는 거니까-4년도 더 됐잖아.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이름을 도대체 왜 바꿨는지(심지어 바꾼 이름이 촌스러워)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결혼식의 신랑은 바쁘니까 얘기할 시간은 있겠지. 한 2,3분 정도도 없나. 그러기엔 내가 너무 늦게 왔구나 식 시작 겨우 10분 전이잖아. 제길 이 녀석 때문에 시험까지 취소했는데 축의금을 이렇게 많이 내다니 빅 손해란 느낌인걸...보나마나 그 녀석 친구 중에 내가 제일 멋있을텐데 너무 자리를 빛내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다)

아. 결혼식 장에는 사람이 가득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 뿐이었다. 왜 저 녀석 아버지 자리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 있지. 그냥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신랑석이든 신부석이든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녀석이랑 나는 사람들로 가득찬 자리 구석에서 시시덕거리는 그런 학생이었다. 성적에도 운동에도 취미에도 관심없이 재능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이 즐거워서 몇 안되는 친구들과 함께 바보같은 농담을 하는데 몇년을 보냈다.
오늘은 나랑 같이 구석에 앉을 녀석이 없구나. 신랑이잖아 그 녀석.

축의금을 내고 식장을 둘러보고 아 테이블제잖아 나 간다. 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식장을 나왔다. 밖에는 아깐 없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야 뭐냐. 하고 말하고 친구는 평소처럼 뭐냐가 뭐야 꺼져. 하고 말하다가 입을 다문다.

그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때는 아주 옛날이다.

악수를 해본 적도 없는 우리는 아주 어색하게 악수를 하고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간다, 하고 가버린다. 야 어디가? 하고 그가 물어보지만 이젠 내가 알던 이름도 아니고 낯선 표정에 낯선 말투의 사람에게,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만나지 않았고 나는 우리 둘 다 알던 오락실의 중학생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온 것 뿐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옛날 우리는 학원도 가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오락실에 모여 오락을 했다. 집에 가고 싶지가 않았던 녀석들 뿐이었다. 작은 돈으로 오랫동안 게임을 하기 위해 오락실을 전전하면서 여러가지 게임을 익혔다. 한 명이 돈이 떨어지면 다 같이 나왔다. 매일매일 만나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것도 우스웠다. 집까지 가는 길은 길었다. 내일 다시 방과후가 될때 까지 우리는 괴로웠다. 어쩌면 괴로웠던 것은 나 뿐인지도 몰랐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녀석이었으니까 내 외로움에 어울려줬을 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간다. 하고 한 마디 했을 뿐이다. 평소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평소처럼, 집까지는 나 혼자 가야한다.

16년 7월 23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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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가 지났다. 

피트니스에서 트레드밀에 올라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평소라면 안 볼 여행 프로그램을 봤다.

노인들이 타이완의 과일 가게에서 망고와 석가 같은 과일들을 먹고 있었다. 

트레드밀의 TV는 그닥 선명하지 않지만, 입가에서 물이 떨어지고 과일향이 사방에 퍼지는 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밤의 마트에 가서 망고를 샀다. 

노랗고 둥글 넓적하게 온순한 작은 망고를 몇개 샀다. 망고는 공화국의 사람 값처럼 쌌다.

나는 망고를 자르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가운데에 대충 칼을 넣고 껍질을 벗겨 입안에 넣었다.

망고는 달콤하고 시었다. 과육은 생각보다 얇았다. 


나는 눈물이 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 나는 뭐가 먹고 싶다거나 하는 걸로 떼를 쓰는 아이는 아니었다. 

달라붙어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아이였지.할아버지가 해줬던 이야기가 기억났다. 

 

언제 쯤이었을까 옛날 중국에 뭐시기 라는 이름의 남자가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가난한지, 부자인지 다른 가족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는 병에 걸린 늙은 어머니가 있었다.

새도 날지 못할 만큼 눈이 내리는 겨울, 쇠약해진 어머니는 남자에게 딸기가 먹고 싶구나. 하고 말을 한다.

노인의 투정이었을까 열이 머리에 까지 미쳐 제대로 생각을 못했던 탓일까. 한 겨울에 딸기라니.

하지만 쇠약해진 나머지 딸기가 나오는 봄까지 버틸수 없어 보이는 어머니에게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절을 하고 물러나온 남자는. 채비를 갖추고 산으로 떠난다.

강을 건너고, 숲을 가로지르고, 갖은 고생을 하며 연못 근처의 공터에 다다른 남자는 

거기서 빨갛게 익어 얼지도 않은 딸기를 발견해 소중히 품고 돌아와 노인에게 먹인다.

 

그래서요, 할아버지 딸기를 먹여서 어떻게 되었어요?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되다니, 그냥 딸기를 먹였다는 이야기야. 

병이 낫거나 그러진 않고요?

아니 도대체 뭐하는 병이길래 한참을 앓던 사람이 딸기를 먹는다고 낫는다더냐. 

- 그냥, 딸기를 먹고 싶다고 하니 딸기를 가져와 먹인게지.

그게 뭐에요, 별로다. 무슨 얘긴지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너한테는 아직 이야기가 어려웠구나.


할아버지는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내가 하는 이야기에 틀렸다고 하는 법도 없으셨다.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 손자가 하는 말 들어보시오 이 아이가 이렇게 똑똑하다오.

내가 기억하는 한, 할아버지가 놀라서 호통을 치신 것은 5살쯤 되던 내가 선풍기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 였다.

아이고 이놈. 하고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매어주셨다. 그게 다였다. 아이고 이놈.


할아버지는 16년 3월, 금요일의 어느 밤에 돌아가셨다.

얼마나 오랫동안 아프셨는지, 해로 세어도 한참이었다.

보통 사람은 돌아가시고도 남은 뇌수술을 받은지 십년도 넘었지만

이렇게 돌아가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걸 믿지 않은 것은 나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강건했던 할아버지를 무너트린 건 노쇠였는지 우울이었는지.

가끔식 건강하고 힘이 강했던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일부로 보였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금방 다시 건강해질 거라고 믿은 것은 나 뿐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눈이 망가지고 귀가 안 들리고 머리 한 쪽이 움푹 패였어도.

건강이 점점 나빠져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항상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였다.

 

할애비는, 위가 찢어졌단다.

전보다 더 작아진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길을 가다가 쓰러지고 말았지. 사람들이 꼼짝없이 죽는다고 했는데 이렇게 일어는 났단다.


할아버지는 커다랬는데 건강한 땀내가 나고 성큼성큼 걸어다니셨는데

할아버지가 떼어냈다는 몸의 일부가 얼마나 컸던지 할아버지는 조그맣게 되셨다.

할애비랑 점심이나 먹자구나. 시간 있느냐?

할아버지랑 저는 제 평생만큼 시간이 있어요. 아시잖아요.

이야기하다가 가끔 혼자 잠드시는 것도 괜찮아요.

할머니 몰래 술드시겠다고 제 핑계 대시는 것도 괜찮아요.

걸음이 엄청나게 느려지신 것도 괜찮아요.

할아버지 다 괜찮아요. 내가 서투르고 느리게 걸을 때 할아버지가 거기에 있었잖아요.


친구들이 말이다. 이제는 죽어도 장례에 참석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루는 친한 친구 놈이 죽었는데도 코배기도 안 비추길래,

아이 이놈아 내가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데도 이렇게 식장엘 다녀왔는데 너는 뭐하는거냐? 하고 했더니

이보게 자네는 그래도 아파트 단지 밖에 나갈수나 있지. 하더라고

이것이 할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마지막 농담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것이 있는데, 할아버지는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망고가 맛있고 더 달수록 나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중국의 뭐시기 라는 남자가 바로 이런 마음이었겠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아주 잠시라도 맛있는 것을 먹이려는 마음.

어머니, 먹어보세요 딸기에요. 입술이 말라붙어 터지고 죽도 못 삼키시는데도 딸기는 드시고 싶어하셨잖아요.

 

그리고 이것이 호흡기를 차시기 전에 할아버지와 나의 마지막 대화이다.

할아버지는 마지막 순간 까지 의식이 또렷하셨다. (그렇다고 믿는다)

그러나 호흡기를 차셔서 말씀을 못하시고 그렇다 아니다 라는 의사 표현만을 하셨다.

할아버지는 의지가 강한 분이셨다. 내가 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아마 끝까지 이겨내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셨던게 틀림없다.


할아버지, 고모가 전화해서 깜짝 놀랐잖아요. 이게 뭐에요

그렇게 됐다.

어울리지도 않게 누워서 뭐하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얘야, 할애비가 많이 어려울 것 같구나.

왜 자꾸 이상한 소리 하세요. 할머니랑 고모가 겁먹잖아요.

-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잖아요.

그래 그렇구나. 많이들 겁을 먹었겠구나.

어서 일어나세요. 일어나서 불고기랑 평양 냉면 먹으러 가요.

...요새 할애비는 불고기도 평양냉면도 별로구나.

그럼 뭐가 먹고 싶으세요?

글쎄다. 요새 먹고 싶은게 뭐였냐면.


나는 할아버지가 무엇이 먹고 싶으셨는지 끝까지 듣지 못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다.

할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내일 못 오면 모레 올게요.였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나는 개처럼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게 내가 사람이라는 증거라도 되는 듯이 울었다.

나에게 그 마음은 사랑이었다. 재처럼 희미하고 지워지지도 않는 그런 사랑이었다.



16년 4월 비오는 날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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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물건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아요?"라고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그러게? 지금 내 방을 둘러보니 확실히 그런 경향이 있다. 내 책상에 앉아 왼쪽을 쳐다보면 형이 준 소품 그림이 있고. 

그 아래 플레이스테이션3,4가 상자처럼 쌓여있다. 그 위에는 물론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블루레이 소프트웨어가 몇개 더 쌓여있다. 야쿠자거나 야쿠자처럼 생긴 군인이거나 야쿠자처럼 구는 미국인이거나 하여간 그런 녀석들이 주인공이랍시고 사람들을 때리는 게임들이다. 

나는 준법 정신이 투철해서 이런 불법적인 폭력이 나오는 게임을 아주 좋아한다. 책상 위의 무인양품의 뻐꾸기 시계는 거의 정확하게 1년 정도 울지 않고 있다. 내가 이걸 왜 샀는지 잊어버렸지만 왜 멈춰놓은 채로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걸 돌보지 않게 된게 언제인지만 기억한다. "뻐꾹"하는 소리가 아주 귀여웠는데.


그 앞에는 그룹 이름으로 되어있는 크리스탈 상패가 있다. (내가 뭘 잘 했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런 걸 받았다) 그 옆에는 돼지 모양의 저금통 위에 냄비를 잡는데 쓰는 장갑이 올려져있다. 물휴지가 있네. 

옆에는 다크타워와 건축과 내러티브, 그리고 하버드 비즈니스 클래식 그리고 존 키건의 저작 몇 권이 쌓여져 있다. 실은 책이 마흔권 정도 "쌓여"있다. 내가 분명 여기 있는 책들은 "금방 읽을 책들"로 분류해 둔 것 같은데. 

이 책들보다 더 "아주 금방 읽을 책들"이라는 명목으로 바닥에 책의 탑이 생겨나고 있다. 제 1책의 탑, 제2 책의 탑...이 책의 탑들은 불길한 모르고스의 탑들처럼 남동쪽에 위치하는데, 너무 늘어난 나머지 이제는 대략 중간계에서 샤이어가 위치한 서쪽을 침략하기 시작하고 있다. 


책 앞에는 생수병과 코카콜라 제로 그리고 몇가지 잡동사니가 있다. 별거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내 약들이 다수(제길! 늙은이처럼 이렇게 약을 정기적으로 먹어야 하다니!) 그리고 기한이 지난 삼성카드의 명세서와 올해 5월에 끊은 병원의 영수증과 약들. 

그리고 1995년쯤 디즈니 랜드에 여행을 다녀온 사촌형이 사준 딱따구리 연필까지 있다. 잠깐 디즈니랜드에 가서 사온 건데 왜 딱따구리 연필이야?

일관성이라곤 없는 혼돈의 땅. 그냥 물건을 올려놓았으니까 책상인줄 아는거지 효율성이나 일관성은 하나도 없이 정리된 내 책상.


아직 바닥에 늘어져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포스팅에 혼돈이 가득하다.

비교적 동향인 내 방의 남쪽엔 옷이 가득차있는 행거가 있고 서쪽엔 세로로 놓여진 침대가 있다. 풍수지리랑은 아무 상관도 없지만  현관문 앞에는 분리수거를 해야할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다.

매일 매일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방 때문에 고통받으면서도 방을 치우지 않고 있다. 그냥 침대에 누워 손을 뻗으면 닿는 연습장을 잡고 아래와 같은 문구를 적는다.


"모든 사랑은 사라지고 그 모든 것들이 고통이 되었다.

나는 고통들을 멈춰보려 했지만, 이미 너무 오래 전부터 나는 그 가증스러운 것들을 나 자신의 안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거짓말을 멈추지 못했다. 

그 거짓들은 바다에 치는 천둥아 작은 항구를 뒤흔드는 것처럼 나를 흔들어댔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부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가지를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을 멈추고 그대로 있었다. 그게 다 였다"


And in the end, the love you take is equal to the love you made.


15년 12월 27일 비틀즈의 편곡 앨범 Reloved를 들으며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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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맡에 쇠로 된 숟가락을 놓고 잔다. 

어디선가 읽은 베트남의 소수 민족의 풍습에서, 잠든 사이 그리운 사람이 나타나면 쇠로 된 숟가락을 주고 보내야 한다고 한다. 그 그리운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숟가락을 주고 떠나보내야 한다고 한다. 내가 숟가락을 놓고 자는 이유는, 어느날 밤에 낫토를 먹고는 치우는 걸 잊었기 때문이다.


졸려서 죽을 것 같다. 몇주 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 자고 있어도 잠을 자지 않고 있다고 느낀다.

해가 뜨면 노래를 틀고 누운 상태로 노래를 듣는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잠시 눈을 감는다. 잠이 올것 같은 기분이 들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침엔 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했다.어떻게 된건지 점점 일이 늘어난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귀찮은 일들이 잔뜩 늘어났다.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거기서 오류를 발견해낸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고 해도 일정한 량 이상의 데이터를 처리하게 되면 거기서 오류가 생겨난다. 그걸 막기 위해 머릿속에서 오류를 검증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그걸 사용한다.

누군가가 싸운다. 서로 힘을 휘두르고 상대의 뒷통수를 쳐서 자기의 훌륭함을 증명하려고 한다. 나는 그 사이에 껴서 서로의 표정을 살핀다. 나는 일하는 곳에서 훌륭한 거짓말쟁이다. 왜냐하면 아직 저 사람들이 내가 거짓말쟁이란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서툰 거짓말을 하고, 무의미한 거짓말과 중요한 진실을 섞어서 뭐가 뭔지 모르게 만든다.

요는 모두가 만족하는 해답은 진실이랑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나는 꽤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


이보세요. 정신차리세요 저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저를 믿으면 안됩니다.


어린애처럼 얼굴을 찌푸리고 큰 소리로 울면서 잘못과 거짓말을 빌고 싶다.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요. 할수만 있다면 세계를 예전으로 돌리고 싶어요.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기 전에 당신을 알기 전으로 말이죠. 그리고 당신 인생에 끼어들기 전에 작은 다리에서 뛰어내릴거에요.


너무 졸립다. 견딜수가 없어서 데스크에 앉아 눈을 감는다. 소름이 끼치도록 짧은 꿈을 꾸고 잠에서 깨서 무언가를 깨닫는다.

이렇게 깨닫는 것들은 항상 잔혹하고 무의미할 정도로 정확하다. 빌어먹을 집에 갈걸 그랬어. 이런걸 지금 깨달아서 뭘 하겠어.하고 생각한다. 아까 말씀드렸다 시피 모두가 만족하는 해답은 진실이랑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나는 표정 하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긴다. 집으로 가자.

누군가가 스쳐지나가다 웃으며 나 공룡싫어해요 아무리 얘기해도 그 영화 안 볼거야. 하고 말하고 작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미소를 지은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고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저 사람이 나를 불러 세우면 무릎을 꿇고 영원한 사람을 맹세할지도 몰라. 하하하


차에서 내려 가방안에 넣어둔 바질시드 드링크를 마신다. 그레이프 후르츠와 망고. 어째서 가방에 넣어두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술을 마실 수 있다면 마셨을텐데 나는 술을 마셔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나를 용서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파괴된 채로 이렇게 살아갈수는 없다. 나는 더 이상 우울하지가 않다.

내가 내가 바란만큼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내가 노력한 만큼 괜찮은 사람도 아니었다는 사실이 더 이상 슬프지가 않다.

나는 준비가 된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도그마. 엉망이 된 30대 남자의 한심한 삶. 그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더 이상 농담이나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같은게 아니라는 것.

삶이란것이 바로 우리의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은 결국 우리의 부존재이기 때문에. 삶과 존재를 떼놓을 수 없는 이상 이 한마디를 놓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야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살아가야한다"

이 비루한 삶이. 이 비루한 삶을. 이 비루한 삶이라고 해도.


천천히 되풀이 하자. 나는 당신에게 아무 것도 줄게 없다. 나는 당신에게 아무 것도 받을 것이 없다.

잠시 생각을 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인간은 얼마나 소름끼치는 괴물인걸까. 그런 괴물이 되어서 뭐가 좋을까.

나는 농담을 하지도 못하게 될거다. 사람들이 농담을 하지 않는 이유는 농담을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게 어렵지 않다는 걸 꺠달았기 때문인걸까.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 약해서 농담이라도 할수 있었으면 했는데 말야.


친구와 차를 몰고 시골길을 가던 일이 기억났다. 태양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어.

그만해. 나를 여기서 데려가서 그 길로 데려가줘. 거기가 내 내세고 나는 이제 어디에도 없어.


어느날 당신의 머리맡에 내가 나타난다면, 숟가락을 건내기 전에 잠시 시간을 줬으면 한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세계에 없다. 그건... 분명 어떤 유령 같은 흔적인게 틀림없을 것이다.

당신을 해치지 않을테니, 숨을 몇번 쉬고 눈을 깜빡일 동안 나의 유령을 잠시만 내버려두길 바란다.

나의 유령은 당신이 나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사라질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다.

절대로 나는 당신의 머리 맡에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여기에 없다. 나는 이 공간에 부재한다.









매일 같이 낫토를 먹고 있다. 한달 정도 되었다.


낫토가 뭐냐면, 대두를 낫토균으로 발효시킨 일본의 반찬이다. 단맛 짠맛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일반적인 짠맛의 낫토. 겨자도 넣고 간장도 넣는 일본인 기준의 촌스러운 맛이라서 간사이 지방에선 좀처럼 먹질 않는다.

11세기 경의 기록에도 낫토와 비슷한 음식에 대한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정말 일본에서 오래된 음식인데 지역차이가 있다니 재미있다. 어쨌든 발효 식품이라 보관성이 좋지만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 대표적으로 혈압강하 효과 같은 것은 정평이 나있다.

낫토균으로 제대로 발효하지 않은 낫토는 그냥 짠 콩일 뿐이라 건강에 하나도 안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애초에 나는 맛이 있어서 먹는 것이다. 비주얼은 그닥 좋지 않다. 계란 노른자랑 생선알이랑 합체된 것 같은 비주얼입니다. 

저도 가끔 고민을 할 때가 있긴 해요. 이걸 왜 먹을까 나는. 인류는 도대체 얼마나 배가 고팠던 것일까. 어쨌든.


처음에는 신세계 백화점 지하의 식품 매장에 낫토가 있길래 흰 죽이랑 먹으면 맛있겠다 싶어서 냉장고에 3통 정도를 사놨는데

어느덧 매주 낫토를 사서 매일 매일 먹고 있다. 처음에는 일본산 낫토(3팩에 3,4천원 정도입니다)를 사서 먹었는데

얼마 전에 풀무원에서 생낫토가 나왔다는 걸 알게되어서 그걸 대량으로 샀다. 

(오뚜기에서 나온 제주 콩으로 만든 어쩌고 하는 낫토는 양이 묘하게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무엇을 숨기랴, 오늘도 샀습니다. 유자 향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낫토에 유자향 같은게 나면 어쩌란거냐. 하고 중얼거리며 2셋이나 샀다. 16개를 산건데 이 정도면 2주 정도는 충분히 버틸것 같아서 흐뭇하다. 호두나무 숲을 만난 다람쥐의 기분이 이럴까.


내가 낫토를 먹는 방법은 평범하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흰죽에 비벼서 먹는거고 가끔 두부 위에 올려서 먹기도 하지만

그냥 생 낫토를 동봉된 소스와 버무려 충분히 징그럽게 늘어붙었다 싶을때 쯤 후루룩 후루룩 하고 먹는 것이다.

한 팩으로 아쉬운 기분이 들 때면 두 팩을 먹을 때도 있다. 두팩이라고 해도 그렇게 양이 많은게 아니다. 원래 밥반찬이니까 콩자반 두 주먹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뭐라고 콩자반을 두주먹이나 먹어 미친거 아닌가? 네 맞습니다.


씁쓸한 얘기지만, 좀 비정상이란 건 알고 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한가지 음식만 먹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크게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고 마지막에 입력된 음식을 몇주고 몇달이고 계속해서 먹는 것이다. 고장난 기계 처럼. 어떤 때는 두부, 어떤 때는 고구마, 지금은 낫토. 묘하게 노인식 인걸.

미각이 묘하게 둔해지기 때문에 사실 뭘 먹어도 상관이 없다. 육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정신소모를 피하는 방식인 것이다. 역시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걸까. 아니 도대체 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걸까.

나는 아무 것도 달라진게 없는데. 우두커니 섰다가 휘적휘적 걸어가고 또 생각하고. 잠시 산을 보고 하면서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말이지.





오늘은 집에 오는 길에 트랙에 서서 예전에 알던 여자아이에 대한 생각을 했다.

평생 그 사람이 말했던 것은 단 하나도 잊어버리지 못할줄 알았는데 이미 어떤 것들은 잊어버렸고 더 심한 것들은 잊어버렸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그 사람과 매일 매일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게 바로 10년 전 이 맘때였다.

집은 305호, 현관문의 비밀번호는 2005. 너 왜 집에 의자 하나 밖에 없냐 내 의자 없냐, 라고 물어보면 오빠 미쳤어요 오빠가 뭔데 내 방에 눌러 앉으려고 해. 라고 말하고는 한참 레포트를 쓰다가. 오빠 뭐해요. 라고 물어보았다.

오빠 나 이거 다 써야 나갈수 있어요. 내가 써줄게. 오빠보다 내가 글 잘써요. 조금만 기다려요. 방 구석에 누워있지 좀 말고 사람들이 자꾸 오빠보고 내 남자친구냐고 물어보잖아요. 아니라고 해라. 아니라고 했어요. 잘했네 우리 흰둥이. 근데 나 보고 싶은 영화있는데. 비포 선셋 보러 가요. 응 보러 가자. 그리고 토마토마 먹고 싶어요. 응 먹으러 가자. 오빠는 하고 싶은거 없어요? 하고 있어.


나는 하고 싶은걸 하고 있어 L. 나는 내일도 낫토를 먹을거야.

그리고 당분간은 네 생각을 하게 내버려둬.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나를 기억하든 잊어버렸든 간에.









갑자기 등이 아프다. 등을 세로로 자르면 오른 쪽의 한 가운데 높이는 어깨 뒤에서 한 뼘 정도 아래.

금요일 옆 자리의 대리가, 왜 그래요? 라고 묻길래 담에 걸린 것 같아요. 라고 대답했지만.

이게 내 오랫동안 고질병 중 하나인 등, 허리와 관련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면 불안하다.


고등학교 3학년때도 갑자기 숨을 쉴수가 없어서 새된 소리를 내며 자율학습을 마친 나를(11시에 끝났다. 근성 봐라) 

어머니가 급하게 스포츠 마사지를 하는 곳으로 데려가 교정시켜서 나은 적이 있긴 한데. 

이렇게 숨 쉬는게 아플만큼 그리고 오랫동안 아픈 적은 오랜 만이다.

아니 일본 출장을 가서 목이 아파서 1주일이 넘게 고통 받은 적도 있었다. 가정집에 근육 이완제 상비하세요 여러분.


현재 만 36시간을 돌파하고 있고. 

오른 쪽 폐로 숨쉴 때 마다 아파서 의식적으로 왼쪽 폐를 사용하고 있으며(바이오 피드백!) 

폼롤러로 마사지를 계속 하고 있다. 너무 아파서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을 잘수가 없어서 낮잠을 자면서도 몇번이나 깼다.


결국 침대에 누워서 쌔액쌔액 소리나 내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생각 밖에 없었다.

생각을 하는 건 내 건강에 좋지 않다. 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는 건 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얼마전 깨달았다.

그렇다면 생각을 해야지.끓어가는 가래가 내 오른쪽 등에 모여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열을 끓게 하고 산소에 닿은 핏줄들이 점차 검게 변하게 하는 그런 생각들.


얼마전 친구가 내 안 좋은 것들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다.

L이야 항상 내 귀찮은 점과 안 좋은 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상당히 본격적으로 내 단점에 대한 평을 들었는데


- 최근에 L이 나에게 얘기한 내 나쁜 점은 이랬다 1. 너는 약하다 2. 너는 귀찮다 3. 너는 정의롭다 4. 너는 재수없다.

- 떠올리고 보니 L을 몹시 패고 싶어졌다. 이 새끼는 왜 내 친구인 걸까.


대충 어떤 내용냐면 1. 너는 사람의 호의에 보답하는 법을 모른다 2. 너는 패시브 어그레시브하다 3. 너는 경박하다 4. 너는 드라마 퀸에 빗칭이 쩐다 5. 너는 시끄럽다. 등등 이거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일단 내가 그렇게 경박하고 한심한 인간인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저런 이야기를 듣자 무슨 얘길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나에게 실망한 사람"이라는 엄청나게 긴 항목을 가진 리스트에 한 명이 더 추가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진짜이든 거짓이든 간에 나는 뭐라고 말도 못할 정도로 피곤해져서, 그대로 벤치에 앉아 시신경의 피로 회복에 탁월한 효과를 지닌 녹색 잔디를 보았다. 그런다고 나아질리가 없었다. 내가 피곤한 건 현대인의 병 같은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것이 있었지만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는 더 이상 내가 솔직할수 있다는 걸 믿지도 않았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었지만 서투르게 변명해보자. 누가, 이 자리에 선 누가 솔직함이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미덕임을 주장 할 수 있을까. 왜곡되다 못해 본인이 왜곡되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 할 수 있을까. 가장 많은 상처를 입히는 것은 결국 날 것 그대로의 마음인데. 진짜 서투르네.

집어치우자.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아니고 해야할 이야기도 아니다.



몇년 동안 나는 내가 마음 속 깊이 사랑한 사람을 몇명 잃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변한 것 없이 지금도 원래의 모습 그대로 살고 있으며. 나는 지금도 그들을 잃은 것을 생각하면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하지만 결국, 내가 그들을 다시 찾지 않게 된건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였다. 토할 것 같이 솔직한 그들의 말이 나에게 유효했다. 고통을 받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그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을텐데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은 나를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한 적도 없는 그들의 솔직한 말 한 마디였다. 나를 아직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모든 것들은. 원래 존재한 적도 없는 것이었다.


이윽고 어린애의 투정이나 다름없는 깨달음이 나에게 내려올 게 틀림없다.

나는 잘난 척 하면서 더더욱 혼자가 되는데 몰두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으면서.



금요일, 결혼을 맞은 사촌형이 축의금함을 맡아줄 수 없겠냐는 얘기를 했다.

큰 사촌형에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그리고 작은 사촌형의 결혼식까지? 결혼식을 보지도 못하는 축의금함 담당 같은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럴바엔 그냥 회사 출근 할 테니, 나는 결혼식 안가는 걸로 하자. 라고 말했다. 형은 화를 냈다.

이걸로 일년에 한 두번은 얼굴을 봤었던 사촌형을 다시는 못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단점을 이야기해줬던 친구에 대해, 한 때 나는 그가 나를 어떻게 평가 할지 걱정한적이 있었다. 

나는 그가 나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해주길 바랐다. 이제 나는 그걸 걱정하지 않는다.


모두가 서로에게 솔직한 마음을 얘기한다면, 세상에 가득찬 무의미한 고통과 방향 잃은 사랑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더더욱 외롭고 별볼일 없는 장소가 될 것이다. 



Dominique Saunders 의 the true story based on 앨범을 듣는다. 15년 5월 24일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였습니다 짜잔.


일의 개요는 이러하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미국으로 연수를 가신 주치의 선생님 대신 다른 교수님께서 나를 봐주셨는데 몇가지 건강 수치가 굉장히 나빠져서 두달 후에(보통은 세달, 길면 거의 반년) 찾아오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굉장히 우울해졌는데. 올해 들어서 내게 일어났던 몇가지 일 때문에 계속 몸이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살짝 중2병에 걸린 기분으로 내 정신이 몸을 거부하는건가. 하는 대사를 실제로 입에 내뱉기 까지 했었다. 

(사촌형 앞이라서 다행이었다. 맙소사)


그러나 불행중 다행인지. 오랜만에 오늘 체중을 재어보고 나서 원인을 알아버렸다.

응 불행 중 다행이지. 작년 건강검진에 비해서 9키로그램이 늘었다.

뭐라고, 응 뭐라고? 내가 잘못 본거겠지.

응...

그래 응 9킬로오오오오 그래에에에엠???????

9!!!!킬로그램!!!!!! 으아!!! 으아!!!으아아아아아!!!!!!!

19.84파운드!!!! 2399.99돈!!!!!! 으아 으아 으아아아아아!!!!!!!!


여러분 9킬로그램이 어떤 무게인지 아십니까? 

방금 진정하기 위해서 9킬로그램을 구글에 검색해보니 같은 중량의 가스 보틀 사진이 나왔고요.

자전거랑, 9킬로그램을 세탁할 수 있는 세탁기가 나왔어요. 아하, 내 살을 세탁할 셈인가.

9킬로그램 짜리 물고기를 잡은 어부 사진도 나오는데 맙소사 내 살이 저렇게 두 손으로 들어야 될 정도구나......

여러분 뒤룩뒤룩 이라는 소리 듣고 싶으면 저 걸어다닐때 옆에서 귀 기울이시면 됩니다.

뭐라고 귀 안 기울여도 들린다고. 그래 맞다 자네 말이 맞다!!!!!!!!으아아아아!!!!!


이런걸 그냥 살이 쪄서 그런걸. 어째서지 계속 몸이 안 좋아지네 왜 그런걸까.

이렇게 고민했던 내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여러분 잠시만 기다리세요 저 우리집 테이블에 명치 좀 쎄게 부딪히고 올랑께!!!

내가 나 자신을 심하게 패고 싶다!!!! 죽어라 나!!!!!


- 테이블에 명치를 부딪히면 심하게 아프다는 걸 알았음 -


어쩔 수 없이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사실 살이 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디 라인에 변화가 없는거 아냐? 하는 말도 안되는 핑계로 조금 찐거겠지 하고 있었는데.

그래 내가 바디 라인의 변화를 민감하게 관찰 할수 있었으면 병아리 감별사가 되었겠지 별볼일 없는 영업사원하고 있겠냐....

나빠지는 건강 때문에 안 그래도 운동량을 늘리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 내가 처방받은 것처럼 1주일에 2400칼로리 정도 운동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9킬로그램을 찌고도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살려고 하다니 하하 건방지구나 나!


대신 예상에 없던 다이어트가 스케쥴에 등장했기 때문에 인내심 게이지가 쉽게 한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1. 돈도 아끼고 2. 글도 쓰고 3. 장래도 생각하고 4. 트위터는 안하며 5. 살도 뺀다. 맙소사 무리야.

아무래도 트위터 부터 다시 할 것 같은 암울한 예감이 든다.

입으로 뒤룩 뒤룩 소리 내면서 트위터.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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