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맡에 쇠로 된 숟가락을 놓고 잔다. 

어디선가 읽은 베트남의 소수 민족의 풍습에서, 잠든 사이 그리운 사람이 나타나면 쇠로 된 숟가락을 주고 보내야 한다고 한다. 그 그리운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숟가락을 주고 떠나보내야 한다고 한다. 내가 숟가락을 놓고 자는 이유는, 어느날 밤에 낫토를 먹고는 치우는 걸 잊었기 때문이다.


졸려서 죽을 것 같다. 몇주 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 자고 있어도 잠을 자지 않고 있다고 느낀다.

해가 뜨면 노래를 틀고 누운 상태로 노래를 듣는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잠시 눈을 감는다. 잠이 올것 같은 기분이 들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침엔 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했다.어떻게 된건지 점점 일이 늘어난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귀찮은 일들이 잔뜩 늘어났다.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거기서 오류를 발견해낸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고 해도 일정한 량 이상의 데이터를 처리하게 되면 거기서 오류가 생겨난다. 그걸 막기 위해 머릿속에서 오류를 검증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그걸 사용한다.

누군가가 싸운다. 서로 힘을 휘두르고 상대의 뒷통수를 쳐서 자기의 훌륭함을 증명하려고 한다. 나는 그 사이에 껴서 서로의 표정을 살핀다. 나는 일하는 곳에서 훌륭한 거짓말쟁이다. 왜냐하면 아직 저 사람들이 내가 거짓말쟁이란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서툰 거짓말을 하고, 무의미한 거짓말과 중요한 진실을 섞어서 뭐가 뭔지 모르게 만든다.

요는 모두가 만족하는 해답은 진실이랑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나는 꽤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


이보세요. 정신차리세요 저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저를 믿으면 안됩니다.


어린애처럼 얼굴을 찌푸리고 큰 소리로 울면서 잘못과 거짓말을 빌고 싶다.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요. 할수만 있다면 세계를 예전으로 돌리고 싶어요.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기 전에 당신을 알기 전으로 말이죠. 그리고 당신 인생에 끼어들기 전에 작은 다리에서 뛰어내릴거에요.


너무 졸립다. 견딜수가 없어서 데스크에 앉아 눈을 감는다. 소름이 끼치도록 짧은 꿈을 꾸고 잠에서 깨서 무언가를 깨닫는다.

이렇게 깨닫는 것들은 항상 잔혹하고 무의미할 정도로 정확하다. 빌어먹을 집에 갈걸 그랬어. 이런걸 지금 깨달아서 뭘 하겠어.하고 생각한다. 아까 말씀드렸다 시피 모두가 만족하는 해답은 진실이랑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나는 표정 하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긴다. 집으로 가자.

누군가가 스쳐지나가다 웃으며 나 공룡싫어해요 아무리 얘기해도 그 영화 안 볼거야. 하고 말하고 작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미소를 지은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고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저 사람이 나를 불러 세우면 무릎을 꿇고 영원한 사람을 맹세할지도 몰라. 하하하


차에서 내려 가방안에 넣어둔 바질시드 드링크를 마신다. 그레이프 후르츠와 망고. 어째서 가방에 넣어두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술을 마실 수 있다면 마셨을텐데 나는 술을 마셔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나를 용서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파괴된 채로 이렇게 살아갈수는 없다. 나는 더 이상 우울하지가 않다.

내가 내가 바란만큼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내가 노력한 만큼 괜찮은 사람도 아니었다는 사실이 더 이상 슬프지가 않다.

나는 준비가 된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도그마. 엉망이 된 30대 남자의 한심한 삶. 그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더 이상 농담이나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같은게 아니라는 것.

삶이란것이 바로 우리의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은 결국 우리의 부존재이기 때문에. 삶과 존재를 떼놓을 수 없는 이상 이 한마디를 놓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야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살아가야한다"

이 비루한 삶이. 이 비루한 삶을. 이 비루한 삶이라고 해도.


천천히 되풀이 하자. 나는 당신에게 아무 것도 줄게 없다. 나는 당신에게 아무 것도 받을 것이 없다.

잠시 생각을 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인간은 얼마나 소름끼치는 괴물인걸까. 그런 괴물이 되어서 뭐가 좋을까.

나는 농담을 하지도 못하게 될거다. 사람들이 농담을 하지 않는 이유는 농담을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게 어렵지 않다는 걸 꺠달았기 때문인걸까.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 약해서 농담이라도 할수 있었으면 했는데 말야.


친구와 차를 몰고 시골길을 가던 일이 기억났다. 태양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어.

그만해. 나를 여기서 데려가서 그 길로 데려가줘. 거기가 내 내세고 나는 이제 어디에도 없어.


어느날 당신의 머리맡에 내가 나타난다면, 숟가락을 건내기 전에 잠시 시간을 줬으면 한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세계에 없다. 그건... 분명 어떤 유령 같은 흔적인게 틀림없을 것이다.

당신을 해치지 않을테니, 숨을 몇번 쉬고 눈을 깜빡일 동안 나의 유령을 잠시만 내버려두길 바란다.

나의 유령은 당신이 나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사라질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다.

절대로 나는 당신의 머리 맡에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여기에 없다. 나는 이 공간에 부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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