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등이 아프다. 등을 세로로 자르면 오른 쪽의 한 가운데 높이는 어깨 뒤에서 한 뼘 정도 아래.

금요일 옆 자리의 대리가, 왜 그래요? 라고 묻길래 담에 걸린 것 같아요. 라고 대답했지만.

이게 내 오랫동안 고질병 중 하나인 등, 허리와 관련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면 불안하다.


고등학교 3학년때도 갑자기 숨을 쉴수가 없어서 새된 소리를 내며 자율학습을 마친 나를(11시에 끝났다. 근성 봐라) 

어머니가 급하게 스포츠 마사지를 하는 곳으로 데려가 교정시켜서 나은 적이 있긴 한데. 

이렇게 숨 쉬는게 아플만큼 그리고 오랫동안 아픈 적은 오랜 만이다.

아니 일본 출장을 가서 목이 아파서 1주일이 넘게 고통 받은 적도 있었다. 가정집에 근육 이완제 상비하세요 여러분.


현재 만 36시간을 돌파하고 있고. 

오른 쪽 폐로 숨쉴 때 마다 아파서 의식적으로 왼쪽 폐를 사용하고 있으며(바이오 피드백!) 

폼롤러로 마사지를 계속 하고 있다. 너무 아파서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을 잘수가 없어서 낮잠을 자면서도 몇번이나 깼다.


결국 침대에 누워서 쌔액쌔액 소리나 내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생각 밖에 없었다.

생각을 하는 건 내 건강에 좋지 않다. 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는 건 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얼마전 깨달았다.

그렇다면 생각을 해야지.끓어가는 가래가 내 오른쪽 등에 모여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열을 끓게 하고 산소에 닿은 핏줄들이 점차 검게 변하게 하는 그런 생각들.


얼마전 친구가 내 안 좋은 것들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다.

L이야 항상 내 귀찮은 점과 안 좋은 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상당히 본격적으로 내 단점에 대한 평을 들었는데


- 최근에 L이 나에게 얘기한 내 나쁜 점은 이랬다 1. 너는 약하다 2. 너는 귀찮다 3. 너는 정의롭다 4. 너는 재수없다.

- 떠올리고 보니 L을 몹시 패고 싶어졌다. 이 새끼는 왜 내 친구인 걸까.


대충 어떤 내용냐면 1. 너는 사람의 호의에 보답하는 법을 모른다 2. 너는 패시브 어그레시브하다 3. 너는 경박하다 4. 너는 드라마 퀸에 빗칭이 쩐다 5. 너는 시끄럽다. 등등 이거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일단 내가 그렇게 경박하고 한심한 인간인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저런 이야기를 듣자 무슨 얘길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나에게 실망한 사람"이라는 엄청나게 긴 항목을 가진 리스트에 한 명이 더 추가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진짜이든 거짓이든 간에 나는 뭐라고 말도 못할 정도로 피곤해져서, 그대로 벤치에 앉아 시신경의 피로 회복에 탁월한 효과를 지닌 녹색 잔디를 보았다. 그런다고 나아질리가 없었다. 내가 피곤한 건 현대인의 병 같은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것이 있었지만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는 더 이상 내가 솔직할수 있다는 걸 믿지도 않았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었지만 서투르게 변명해보자. 누가, 이 자리에 선 누가 솔직함이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미덕임을 주장 할 수 있을까. 왜곡되다 못해 본인이 왜곡되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 할 수 있을까. 가장 많은 상처를 입히는 것은 결국 날 것 그대로의 마음인데. 진짜 서투르네.

집어치우자.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아니고 해야할 이야기도 아니다.



몇년 동안 나는 내가 마음 속 깊이 사랑한 사람을 몇명 잃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변한 것 없이 지금도 원래의 모습 그대로 살고 있으며. 나는 지금도 그들을 잃은 것을 생각하면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하지만 결국, 내가 그들을 다시 찾지 않게 된건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였다. 토할 것 같이 솔직한 그들의 말이 나에게 유효했다. 고통을 받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그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을텐데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은 나를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한 적도 없는 그들의 솔직한 말 한 마디였다. 나를 아직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모든 것들은. 원래 존재한 적도 없는 것이었다.


이윽고 어린애의 투정이나 다름없는 깨달음이 나에게 내려올 게 틀림없다.

나는 잘난 척 하면서 더더욱 혼자가 되는데 몰두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으면서.



금요일, 결혼을 맞은 사촌형이 축의금함을 맡아줄 수 없겠냐는 얘기를 했다.

큰 사촌형에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그리고 작은 사촌형의 결혼식까지? 결혼식을 보지도 못하는 축의금함 담당 같은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럴바엔 그냥 회사 출근 할 테니, 나는 결혼식 안가는 걸로 하자. 라고 말했다. 형은 화를 냈다.

이걸로 일년에 한 두번은 얼굴을 봤었던 사촌형을 다시는 못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단점을 이야기해줬던 친구에 대해, 한 때 나는 그가 나를 어떻게 평가 할지 걱정한적이 있었다. 

나는 그가 나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해주길 바랐다. 이제 나는 그걸 걱정하지 않는다.


모두가 서로에게 솔직한 마음을 얘기한다면, 세상에 가득찬 무의미한 고통과 방향 잃은 사랑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더더욱 외롭고 별볼일 없는 장소가 될 것이다. 



Dominique Saunders 의 the true story based on 앨범을 듣는다. 15년 5월 24일의 일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