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이 낫토를 먹고 있다. 한달 정도 되었다.


낫토가 뭐냐면, 대두를 낫토균으로 발효시킨 일본의 반찬이다. 단맛 짠맛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일반적인 짠맛의 낫토. 겨자도 넣고 간장도 넣는 일본인 기준의 촌스러운 맛이라서 간사이 지방에선 좀처럼 먹질 않는다.

11세기 경의 기록에도 낫토와 비슷한 음식에 대한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정말 일본에서 오래된 음식인데 지역차이가 있다니 재미있다. 어쨌든 발효 식품이라 보관성이 좋지만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 대표적으로 혈압강하 효과 같은 것은 정평이 나있다.

낫토균으로 제대로 발효하지 않은 낫토는 그냥 짠 콩일 뿐이라 건강에 하나도 안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애초에 나는 맛이 있어서 먹는 것이다. 비주얼은 그닥 좋지 않다. 계란 노른자랑 생선알이랑 합체된 것 같은 비주얼입니다. 

저도 가끔 고민을 할 때가 있긴 해요. 이걸 왜 먹을까 나는. 인류는 도대체 얼마나 배가 고팠던 것일까. 어쨌든.


처음에는 신세계 백화점 지하의 식품 매장에 낫토가 있길래 흰 죽이랑 먹으면 맛있겠다 싶어서 냉장고에 3통 정도를 사놨는데

어느덧 매주 낫토를 사서 매일 매일 먹고 있다. 처음에는 일본산 낫토(3팩에 3,4천원 정도입니다)를 사서 먹었는데

얼마 전에 풀무원에서 생낫토가 나왔다는 걸 알게되어서 그걸 대량으로 샀다. 

(오뚜기에서 나온 제주 콩으로 만든 어쩌고 하는 낫토는 양이 묘하게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무엇을 숨기랴, 오늘도 샀습니다. 유자 향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낫토에 유자향 같은게 나면 어쩌란거냐. 하고 중얼거리며 2셋이나 샀다. 16개를 산건데 이 정도면 2주 정도는 충분히 버틸것 같아서 흐뭇하다. 호두나무 숲을 만난 다람쥐의 기분이 이럴까.


내가 낫토를 먹는 방법은 평범하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흰죽에 비벼서 먹는거고 가끔 두부 위에 올려서 먹기도 하지만

그냥 생 낫토를 동봉된 소스와 버무려 충분히 징그럽게 늘어붙었다 싶을때 쯤 후루룩 후루룩 하고 먹는 것이다.

한 팩으로 아쉬운 기분이 들 때면 두 팩을 먹을 때도 있다. 두팩이라고 해도 그렇게 양이 많은게 아니다. 원래 밥반찬이니까 콩자반 두 주먹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뭐라고 콩자반을 두주먹이나 먹어 미친거 아닌가? 네 맞습니다.


씁쓸한 얘기지만, 좀 비정상이란 건 알고 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한가지 음식만 먹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크게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고 마지막에 입력된 음식을 몇주고 몇달이고 계속해서 먹는 것이다. 고장난 기계 처럼. 어떤 때는 두부, 어떤 때는 고구마, 지금은 낫토. 묘하게 노인식 인걸.

미각이 묘하게 둔해지기 때문에 사실 뭘 먹어도 상관이 없다. 육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정신소모를 피하는 방식인 것이다. 역시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걸까. 아니 도대체 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걸까.

나는 아무 것도 달라진게 없는데. 우두커니 섰다가 휘적휘적 걸어가고 또 생각하고. 잠시 산을 보고 하면서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말이지.





오늘은 집에 오는 길에 트랙에 서서 예전에 알던 여자아이에 대한 생각을 했다.

평생 그 사람이 말했던 것은 단 하나도 잊어버리지 못할줄 알았는데 이미 어떤 것들은 잊어버렸고 더 심한 것들은 잊어버렸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그 사람과 매일 매일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게 바로 10년 전 이 맘때였다.

집은 305호, 현관문의 비밀번호는 2005. 너 왜 집에 의자 하나 밖에 없냐 내 의자 없냐, 라고 물어보면 오빠 미쳤어요 오빠가 뭔데 내 방에 눌러 앉으려고 해. 라고 말하고는 한참 레포트를 쓰다가. 오빠 뭐해요. 라고 물어보았다.

오빠 나 이거 다 써야 나갈수 있어요. 내가 써줄게. 오빠보다 내가 글 잘써요. 조금만 기다려요. 방 구석에 누워있지 좀 말고 사람들이 자꾸 오빠보고 내 남자친구냐고 물어보잖아요. 아니라고 해라. 아니라고 했어요. 잘했네 우리 흰둥이. 근데 나 보고 싶은 영화있는데. 비포 선셋 보러 가요. 응 보러 가자. 그리고 토마토마 먹고 싶어요. 응 먹으러 가자. 오빠는 하고 싶은거 없어요? 하고 있어.


나는 하고 싶은걸 하고 있어 L. 나는 내일도 낫토를 먹을거야.

그리고 당분간은 네 생각을 하게 내버려둬.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나를 기억하든 잊어버렸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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