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딱히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후배는 이번 대선 때 이민 일정이 맞물려서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송별을 겸해 밥을 먹는데 (투표를 할 수 있어도) 누구도 뽑고 싶지 않다는 얘길 담담히 했다. 후배는 모 당의 유력후보 중 한 명을 공개 지지했으나 그 후보는 최종 대선 후보는 되지 못했다.

결국 대선 후보가 된 그 후보의 지지자들에 대해서 그런 비열한 사람들이 승리에 도취되는 걸 보고 싶지도 않다.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도 했다. 마음 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 누군가 정치인을 선거 등에서 공개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후보가 말 실수를 하기라도 하면 가까운 사람들 마저 후보보다 당신을 먼저 공격하고 자못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 하게 설교를 한다. 실수를 하지 않아도 각종 네거티브에 시달려야 한다. 

선배, 그 사람을 지지한다고 한 후에 들을 생각도 없으면서 그 사람을 왜 지지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세요? 라고 말했다. 수고했다고, 공개적으로 누굴 지지한다는 것은 용감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걸로 후배가 기분이 풀렸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 용감한 행동이다. 아무래도 나같이 무기력한 인간보다는 누군가를 열렬히 지지하고 사회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를 움직이는게 아닌가 싶다. 부정할수 없다. 우리가 피드백을 하지 않으면 정치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는 요구하는 자들의 이끌림에 의해서 움직여나가고 형성되어 왔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요구와 의견을 반영하는 것으로 확장되어 가는 것을, 우리는 사회 발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그런 열렬한 지지자들이 꼭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지지자를 지닌 정치인이 있을 때 그를 지지한다고 해서 모두 완전히 동일한 의견을 가질 수는 없다. 정치인이란 결국은 "챔피언"이고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하여 한가지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일수록 더 큰 영향력을 지닌 정치인이 된다. 수렴과 발산, 모순된 속성을 가진 이 정치인과 지지세력 사이의 균형을 우리들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정치인 그 자신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비극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 탄생했다. 크게는 수많은 전쟁들 이고 작게는 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후배에게 상대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욕을 퍼부은 사람들일 것이다. 아니 작지 않다. 나에겐 충분히 기분 나쁜 일이었다.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나는 나같은 무기력한 부동층에게 한가지 제안하고 싶은게 있다. 

우리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어떤 특정한 이유, 그러니까 계층이라거나 특별한 정책 때문에 그 후보를 꼭 지지하고자 마음 먹은게 아니라면 나는 감히, 그러니까 감히 쉽게 누군가를 지지하지 않을 것을 권하고 싶다. 생각해보면 당신 스스로가 선거에 뛰어들지 않는 이상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100%동일한 관점과 정책을 지닌 후보는 누구도 없다.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하며 짜잔 놀랍겠지만 선택을 하려면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건 Trade off를 통해 균형을 맞춰서 최상의 점수를 지닌 대안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안다, 귀찮은거. 그냥 우리 고향 사람이니까 하는 식으로 선택을 해버리면 간단하다. 당신이 가장 알기 쉬운 것 예를 들어서 국가관이나 안보관 같은 걸로 재빠르게 선택을 해버리고 TV토론을 할 때 축구경기를 하는 식으로 응원하고 투표소에 가서 딱 손 털고 투표 결과를 보는거, 그거 얼마나 쉽고 신나는가. 만약에 당신이 뽑은 후보가 당선이라도 되게 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투표 인구가 4천만명 정도 되는데 당신이 누구한테 찍든지 당신의 표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사표인데 뭐 그렇게 열심히 생각해야하는가.

나는 명확한 도덕기준을 지니고 -반드시 투표하는- 침묵하는 부동층이 우리 사회를 더 낫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수는 30%까지도 필요 없다. 단지 15%만이라도 좋다. 단독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끝의 끝까지 선택을 유보하는 그런 부동층이 필요하다. 우리의 일부가 부도덕한 선택을 할 때, 명확하고 발전적인 기준을 원칙으로 삼아 선택을 하는 그런 부동층 말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SNS에서 도덕적인 뭐시기의 시기에 중립이나 지키는 놈들은 지옥불에 타버릴 것이다 라는 위협을 들어도 하아? 하고 무시해버릴 수 있는 그런 태평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보다 악마에 가까워서 지옥불 쯤이야 뭐, 하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가 있다면, 나라는 극단으로 치닫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정체를 알수 없는 정치인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지지층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만들 것이고 우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TV토론에서 바보 같은 소리를 하지 않도록 참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정치인들의 열혈지지층이 서로를 비난하는 것을 자제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한다. 봐 우리가 싸우고 있는 사이에 저기 지옥불에 타고 있는 관중들이 눈썹을 찌푸리고 있어. 하고 말이다.

나는 진보를 원한다. 인권이 더 많이 보장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를 얻고 능력에 따라 소득을, 그리고 그 능력은 정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존권은 나라가 보장해주는 권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경제적 성장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성장을 이루어야 하며 그것이 우리나라가 이 별의 구성원 중 하나로서 이룩해야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좀 더 애매모호한 지역에 나 자신을 두고 싶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이든 완벽하게 도덕적일 수 없으며, 우리가 너무 빠르게 선택을 해버리면 더 나아질 가능성을 빼앗기는게 아닌가 의심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최고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고 우리는 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17년 4월 24일, 대선을 어 며칠이지 얼마 앞두고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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