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당신에게 전하려 하지만. 왜 아름다운지는 너무 길어 쓸 수가 없다.
잃어버린 문장은 돌아오지 않고, 심상은 그대로 남아 저기 밤 어딘가를 헤매인다. 똑같은 꿈이 몇 번이나 반복되고, 어떤 심상이 낮의 나에게까지 다다른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정경은 세상의 끝이 틀림 없다. 하늘은 어둡고 세상은 온데간데 없이 땅그늘 저쪽 지평선도 보이지 않는 곳에 내가 있다. 군데군데 불그스러미, 나무는 검게 타고 희게 말라붙은 땅 위에서 그 뿌리는 타닥타닥 소리를 낸다. 불씨가 피어오르고 재가 눈처럼 흩날려 하늘을 하얗게 채운다. 손가락에 불이 붙을 것처럼 잔불들이 피어오르고 또 사그러든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들판이 불타오르고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들판엔 필시 나 말고 아무도 없을 것이다. 숨도 쉴 수 없게 매캐한 연기와 타는 냄새가 가득하여 나는 무심코 입을 열려다 입을 열어선 안된다는 걸 깨닿는다. 입을 벌려선 안된다. 입을 벌리면 입 안에 재가 들어와 불이 붙을 것이다. 어떠한 말도 해서는 안된다. 나는 급히 하려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문다. 누군가가 나에게 속삭인다. 봐,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나는 이제 조금 두려워
....
저는 요즘 매일 새벽 3시가 되면 잠에서 깨어납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울면서, 때로는 소리를 치면서 잠에서 깨어납니다. 아무런 소리 없이 조용히 잠에서 일어나는 때도 있습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아마 매일 아침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쩌면 아구찜을 너무 많이 배달시켜 먹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밤은 깊고, 제 집에는 저 외엔 아무도 없습니다. 벌레도 없는 19층의 집은, 다 먹은 하겐다즈 통과 아보카도 껍질의 원한에 찬 소리 외엔 고요하기만 해서 제 울음소리와 숨소리 외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제 울음소리는 꼭 우리에 갇힌 커다란 짐승의 소리 같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우는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아마도 겁을 먹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견딜 수 없이 무서워진 것이지요. 저는 세상에 저 혼자만이 남아있는게 아닐까 의심하고 마지막 한 사람이 된 기분을 만끽하면서 오열합니다. 얕은 내세에라도 온 듯이 밤은 아무 소리도 없이 또아리를 틀고 어딘가에 구멍이 난 것 같은 바람 소리만 들려오는데 저는 누구에게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합니다.
아주 견딜 수가 없을 때는 글을 찾아 읽습니다. 한참이나 글을 읽고서야...저는 안심하고 다시 잠이 들 수 있습니다. 그 문장들이 저를 상처입힐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읽습니다. 그 글은, 기도문도 아니고 시도 아니지만 유일하게 저를 안심시킵니다.
누군가가 때때로 이 별이 둥글다는게 얼마나 안심이 되는 일인지, 라고 에세이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는 세계 건넛편에 어딘가에 “내일”이 있다는 점에 기뻐하고, 또 “오늘”이 오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있는 세계 건넛편이 있다는 점에 안심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사람은 정말 별 거 아닌 사소한 것에 안심한다는 점에서 먼 조상인 쥐들이랑 별로 다를바가 없는 것 같아요. 쥐와 토끼들은 항상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기 위해 머리를 모아서 잠이 든 답니다.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말이에요. 우리는 세계의 반댓 편이라도 거기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하죠.
두 번째 잠은 항상 더 수월 합니다. 밤의 저와 낮의 제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처럼 두 번째 잠의 저는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내려고 하듯이 빠른 속도로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비가 오는 절, 오래된 건물들.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 서울의 구석진 곳. 때로는 교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리들.
저는 미술관 앞에서 기다립니다. 커피를 사서 앉으면 옆에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나란히 앉아서 냄비 요리가 끓기를 기다립니다. 메뉴를 주문하고 신기한 라떼를 마시고, 창 밖을 바라보고 또 걸어갑니다. 꿈은 혼란스럽습니다. 손을 잡고 이마의 냄새를 맡고. 서늘한 손등이 제 팔짱을 끼고 저는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합니다. 옆에 서있는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가장 아름다운 문장만을 찾아서 읽습니다. 공항에서 저는 전화를 걸고 선물을 사서 소파위에 놓아둡니다. 뛰어가는 사람을 종종 걸음을 쳐서 쫓아가고. 꽃을 사서 지하철을 탑니다. 로비의 구석에서 농담을 생각합니다. 어디 있어요 지금 거기로 갈게요 뭘 하고 싶어요 저는 똑같은 꿈을 다른 방향에서, 다른 꿈들을 모두 똑같은 의미인 것 처럼 꿉니다. 저는 이 두번째 꿈을 굉장히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그 모든 소원을 담아서 꿈을 꾸지만 거기서도 나는 보고 싶었노라고 말을 하지는 못하고 다만 손을 뻗어 이마를 만집니다.
저는 매일 아침 한 시간 정도를 걸어서 출근합니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꿈은 이야기의 영역이고, 이야기 속에서만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되면 사람은 이야기 자체에 떠내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걸어서 회사를 나가는 그 시간을 통해서 저는 꿈과 현실을 분리해냅니다. 나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내가 더 이상, 스스로가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게 되기 전에 저는 이야기를 자신의 닻으로 삼고 아침의 산책을 현실과 이야기를 분리하는 강으로 삼습니다.
잠에서 깬 저는, 밤의 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끔식 들이차는 눈물이나 숨이 막히는 느낌도 그저 딸국질이나 하품이나 다름없이 저는 물 한 잔을 마시거나 가까운 공원에 걸어가 야외의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돌아갑니다.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출근하고 투덜거리고 말합니다. 일이 끝나면 걸어서 집에 돌아갑니다. 석양을 보고 문득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것을 입에 담지 않습니다. 어떻게 아름다운지 설명 할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그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도, 똑같이 새벽 3시에 일어나 자신을 상처입힐 문장들을 읽습니다.
그리고는 전과 그대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출근하고 투덜거리고 말합니다. 저는 그 글들을 너무나 사랑하여 무심코 정신을 집중해서 글을 읽으려고 하지만 너무 자세히 읽어서는 안됩니다. 딱 잠이 완전히 깨지 않을만큼 거기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을 확인하고 저는 눈을 감습니다.
세계 건넛편에 일어난 일인것처럼 멀고, 또 어떤 것도 저에게 닿지 않습니다. 어째서 새벽 3시인지 생각해봐도 연유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는 태어난 시간을 모릅니다. 누가 일부러 지운 것처럼. 어머니는 묘시쯤이었을거야, 라고 말하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제 사주는 불을 타고 나서 어디에서 사주를 보든 인생이 무난하고 부유하게 큰 병 없이 오래 행복하게 사는 사주라고 합니다. 나쁜 사주가 나왔을 때 누가 나쁜 사주라고 말을 할까만.
언젠가 평범하게 좋은 사주라고 얘기를 듣던 때 궁금증이 들어서 제 생시가 묘시이거나 인시이거나 하는거에 따라 제 사주가 많이 바뀌나요? 하고 묻자 사주를 보는 노인은 달라지는 건 별로 없지 근데 너는 인시에 태어났으면 다른 사람은 구하겠지만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는 없어. 라고 말했습니다.
....
이번에야 말로 저는 결심을 하고 대답도 없는, 전해지지 않을 그 말을 합니다. 나의 말은 내가 듣고. 그 어디에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려 흰 것이 입안에 내려앉기를 기다립니다. 이윽고 잔불을 품은 그 재는 눈처럼 가볍게 혀 위에 내려앉을 것이고, 비단을 찢는 소리를 내며 제 혀를 태울 것입니다. 제 혀는 죽고, 곧 썩어 검게 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만. 그 맛은 분명 달콤하기 이를 데 없을 것입니다.
18년 5월 11일 밤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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