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나에게 너무 가까운 이름이다.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쉽게 친한 척을 하기 힘들게 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선배는. 하는 소릴 들었었다. 냉혈인간에 무표정하지. 하는 소리도 들었다. 사실 어디에 가나 항상 저런 소리를 듣는다.
그냥 엄청나게 같이 재미있게 놀고 얘기도 잘 통하고 보기보다 사교적인데 역시 이 사람은 마음을 안 열어. 하는 느낌이 있어요. 라는 소리도 들었다.
마음을 여는게 도대체 뭐야 이 멍청이들, 하고 마음을 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만을 친구들로 사귄다. 그냥 있는 그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너는 내 친구야. 하고 생각이 되는 사람들말이다.

중학교때부터의 친구 결혼 소식을 들었다.
페북에 그의 이름을 링크한 게시물이 떴기 때문이다. 오랜 연인인 그의 신부가 될 분이 올렸다. 나도 알고 계신 분이기에 "와. 결혼해요? 전혀 몰랐네"하고 댓글을 달았다. 사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둘이 아직까지 사귀고 있을거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여자친구 분은 당황하셨는지 한참 남았어요 ㅎㅎ 하고 댓글을 다셨다. 정말 매너가 없었지. 그래도 한참 동안 친구에게 연락이 없었다.

서운했다.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생각보다 친하지 않은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평일 오후에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엄청나게 빈정댔다. 야 아냐 너 해외있더라구 그래서 전화 끊었어. 어이구 그러세요?
아 그래서 응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어이구 그러세요? 내가 그런 소식을 페북으로 들어야겠냐 것도 니 여친 게시물로 어이구.
친구는 변명하기를, 야 네가 보고 싶어서 연락을 하는 건 항상 나였잖아. 하고 말한다.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 몇 명 중에 제일 제정신이 아니고 퉁명스러운 것은 나였다. 그는 그런데 또 결혼한다고 연락하기 겸연쩍더라고. 하고 말했다 야 너 부천 안 오면 내가 니네 동네로 갈게 진짜 미안하다. 응? 연락하면 평일에 시간 좀 내.
물론 그 녀석은 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결혼을 앞둔 신랑이 얼마나 바쁜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니.

버스를 타고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걸어와야 하는 서울의 끝은 멀어서 충분히 이것저것 생각해내기에 충분했다. 어쩌지 어머니한테는 뭐라고 인사드리지 걔 누나한테는? 일단 만나면 더럽게 멀다고 한 대 때릴까? 만나면 같이 셀카나 한 장 찍어야지 생각해보니 그 녀석 대학원 조교하던 때 이후로 처음 만나는 거니까-4년도 더 됐잖아.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이름을 도대체 왜 바꿨는지(심지어 바꾼 이름이 촌스러워)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결혼식의 신랑은 바쁘니까 얘기할 시간은 있겠지. 한 2,3분 정도도 없나. 그러기엔 내가 너무 늦게 왔구나 식 시작 겨우 10분 전이잖아. 제길 이 녀석 때문에 시험까지 취소했는데 축의금을 이렇게 많이 내다니 빅 손해란 느낌인걸...보나마나 그 녀석 친구 중에 내가 제일 멋있을텐데 너무 자리를 빛내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다)

아. 결혼식 장에는 사람이 가득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 뿐이었다. 왜 저 녀석 아버지 자리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 있지. 그냥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신랑석이든 신부석이든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녀석이랑 나는 사람들로 가득찬 자리 구석에서 시시덕거리는 그런 학생이었다. 성적에도 운동에도 취미에도 관심없이 재능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이 즐거워서 몇 안되는 친구들과 함께 바보같은 농담을 하는데 몇년을 보냈다.
오늘은 나랑 같이 구석에 앉을 녀석이 없구나. 신랑이잖아 그 녀석.

축의금을 내고 식장을 둘러보고 아 테이블제잖아 나 간다. 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식장을 나왔다. 밖에는 아깐 없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야 뭐냐. 하고 말하고 친구는 평소처럼 뭐냐가 뭐야 꺼져. 하고 말하다가 입을 다문다.

그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때는 아주 옛날이다.

악수를 해본 적도 없는 우리는 아주 어색하게 악수를 하고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간다, 하고 가버린다. 야 어디가? 하고 그가 물어보지만 이젠 내가 알던 이름도 아니고 낯선 표정에 낯선 말투의 사람에게,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만나지 않았고 나는 우리 둘 다 알던 오락실의 중학생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온 것 뿐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옛날 우리는 학원도 가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오락실에 모여 오락을 했다. 집에 가고 싶지가 않았던 녀석들 뿐이었다. 작은 돈으로 오랫동안 게임을 하기 위해 오락실을 전전하면서 여러가지 게임을 익혔다. 한 명이 돈이 떨어지면 다 같이 나왔다. 매일매일 만나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것도 우스웠다. 집까지 가는 길은 길었다. 내일 다시 방과후가 될때 까지 우리는 괴로웠다. 어쩌면 괴로웠던 것은 나 뿐인지도 몰랐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녀석이었으니까 내 외로움에 어울려줬을 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간다. 하고 한 마디 했을 뿐이다. 평소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평소처럼, 집까지는 나 혼자 가야한다.

16년 7월 23일의 일이다.

'부재증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1230] 가모가와, 강변의 여우  (1) 2016.12.30
[20160316] 여행의 이유  (0) 2016.09.16
[20160406] 망고  (0) 2016.04.06
[20151220]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0) 2015.12.27
[20150612] 나의 부재.  (0) 2015.06.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