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어제 오늘 나를 열심히 비난 중이다.

본인 말고 대화할 상대 없냐며 (네 없는데요 이 새끼야) 

트위터를 안하니 자기한테 미주알고주알, 귀찮아 죽겠다고.

이놈의 새끼 내가 찌질거릴 때 아이고 우리 찌질이 우쭈쭈 우쭈쭈 해줬던 건 까맣게 잊고 이런다 막.

아이고 동네 사람들 머리 검은 짐승 하는 짓 좀 보소 아이고 아이고.


니가 너무 귀찮다며 나에게 1. 게이가 되라 2. 덕질을 해라 3. 그냥 트위터를 해라. 이 세가지를 권했다.

진짜 사람 시무룩하게 만드는데는 뭔가 있다.

 

오늘 시간이 날 때 마다 괴담을 쓰고 있습니다.

괴담을 쓰고 있노라니 즐거워져서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는 기분이 되었지만

실은 우울하다. 

누군가에게 소소한 일들을 듣고 또 얘기하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데.

트위터도 안하고 하니 도대체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 없단 말이죠.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이것도 중얼거리고 저것도 중얼거리면서 지내게 되는거겠지.

여러분 이제 절 찾을 때 어렵지 않게 찾으실수 있게 될겁니다. 

사거리에서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는 남자가 바로 접니다. 쪽팔려 하지마 아는 척 해줘.

 

여름 휴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11월에 치앙마이에 풍등 축제를 가볼 생각이다.

지금 예약을 하면 혼자 가게되겠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여름 휴가는...혼자서 류안지에 다시 가볼까도 생각하고 있다.

이대로 가만 있으면 또 일본이나 가겠지 하하. 라섹을 해볼까!!

쓸데없는 얘기를 하니까 이렇게 속이 시원하다니. 나는 가사에 지친 주부 같은건가.

여러분 주부 까지 마라 주부 외롭다. 나도 외롭다. 집에 가면 종일 중얼중얼 혼잣말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시점에서 나에게 닥쳐올 커다란 비극을 전혀 예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트위터 계정을 없앴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 10명 남짓했던 블로그 방문 수가 0이 되었습니다.

1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친구 L이 찾아온다는 뜻이지. 너 읽고 있지? 읽냐 응 재밌냐 응?

어차피 텀블러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분 읽을 수 있을 때 읽어둬요!



요즘 생각한 것은 트위터라는 아이덴티티를 너무 오래 유지한게 아닐까 하는 의심.



"카레신사"라는 아이덴티티는 내가 트위터를 시작(09년 6월)하면서 만들어졌는데

결국 카레신사=트위터=회사원으로서의 나, 이 세가지는 같이 만들어졌고 성장해왔다.

이제는 삐뚤어질대로 삐뚤어져서 회사원으로서의 나도, 카레신사로서의 나도

이게 제정신인건가 싶을 정도로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6년 가까이 "카레신사"는 나를 대신해서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고

내가 했던 실수들을 책임지고 어리석음을 감내해가며 묵묵히 같이 있어주었다.



하지만 "카레"라는 별명을 부를 수 있는 것은 역시나 내가 카레 먹는 것을 봐준 사람들 한정이 아닐까(하하)

내 어리석음과 한심함을 용인하고, 대부분의 경우 무관심하지만 그럭저럭 나에게 호의를 보여주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준비해둔 별명이 아닐까. 굉장히 맘에 드는 이름이지만 "카레신사"는 이제 그만하는게 좋지 않을까.

트위터를 앞으로 다시 하게 될지. 무엇을 할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서른이 넘어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무엇을 시작한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하지 않기로 하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제 그리워 할 수 있는 사람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닿지도 않을 것을 그리워해서 뭐할까. 그냥 그런 사람이 있었구나 하고 혼잣말을 하겠다.

그렇게 내겐 다시 글을 쓰는 것 밖에 남지 않았다.



아침에는 일어나 침대에 누워 노래를 들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얼마 전에, 자다가 레몬에이드 병을 떨어트려 산산조각 냈다.

아니 솔직히 말합시다. 자다가 일어나 레몬에이드를 찾아 마시고는 대충 아무데나 두다가 산산조각 냈다.

동거인이 있었다면 정말 크게 혼쭐이 났겠지만, 나는 다행히고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혼냈다.

그러면 안되지 임마. 미안합니다. 다신 안 그럴게요. 웃기지마 넌 이제 병 음료 금지야 임마. 이러고 중얼 거리면서 

조각을 치웠다.


출근 시간이라 잘 치울 시간이 없었다. 대충 봉지에 묶어서 버리긴 했는데 역시 조각이 잔뜩 남았다.

시간이 날 때 마다 방을 치우면서 유리 조각을 찾고 있다. 물리학의 세계는 신비해서 책장 위에도 유리 조각이 있고

물론 책상 위에도 유리 조각이 있고, 당연하게도 화장실에도 유리 조각이 있었다.

방 한가운데 깔아둔 카펫을 이틀에 한 번은 돌돌이로 청소하는데 그 때 마다 유리 조각이 나온다.

내 방이 죽은 레몬에이드 병의 저주로 유리 조각을 생산하기 시작한게 아닐까. 나라도 그렇게 비참하게 조각조각나게 되면 원한이 남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조만간 술과 공물을 바쳐 원한을 위로해야지-하고 기특한 생각도 했다.

(혼자 사느라 정신이 이상해진 나머지 샤머니즘에 눈뜬 걸지도 모른다)


유리조각이라고 해도 안전하게 깨져서 그닥 날카롭지 않다. 조각면은 누군가가 마모시켜둔 것처럼 되어있으니 

방 안 구석구석에서 발견된다는 것 빼면 해로울 것 도 없다. 라고 생각한 건 오늘 오후까지의 일.

저녁때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30분 정도 멍하니 앉아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만 생각해야지 하고 일어서는데 그만 유리 조각을 밟았다.


아야야 으아아 아야야야 유리 조각을 밟았다. 하고 생각했다.

으아 으아 으아아 으아아 아프다아아아. 하고 생각했다.

소독 소독하지 않으면 감염되겠어 으아아아. 하고 생각했다.


"아프다"하고 소리 내어 말했다. 내가 한 말을 내가 들었다. 나 말고 아무도 듣지 못했다.

평생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15년 5월 18일의 일이다.

'부재증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0520] 하루 종일 중얼거리기.  (0) 2015.05.20
[20150519] <나>  (0) 2015.05.19
[20150514] 나이키를 사다.  (0) 2015.05.14
[20150511]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0) 2015.05.11
[20150505] 현대적인 지옥  (0) 2015.05.05


2012년 이후 내 복장은 다른 모든 직장인들이 그러는 것 처럼 적당히 예의를 갖춘 것처럼 보이는 바지에 셔츠를 걸치고 가방을 든 것으로 바뀌었다.



그럼 전에는 어떤 복장이었죠? 하고 물어본다면 전생의 일이라도 되었던 것처럼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입사 초년생이던 시절 적당히 정장을 갖춰서 입고 다녔던 것은 기억난다.

넥타이를 제외한 정장을 입고 다니면서 로봇처럼 걸어다니고 기계처럼 일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시절만 떠올리면 기억이 흐릿해 지고 정신이 혼미해진 어어어 어어어어



2012년 이후 내 복장은 다른 모든 직장인들이 그러는 것 처럼 적당히 예의를 갖춘...넘어갑시다.

다른 직장인과 약간은 다른 점이 있다면, 항상 나이키를 신고 다닌다는 점인데.

딱히 패션을 고려해서가 아니라 허리디스크가 한창 심해지고 있을 시기라서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고자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기 시작했던 것이 시작.



손을 꼽아 세어보니 얼추 3년이 넘게 운동화"만" 신고 다녔던 건데 덕분인지 몰라도 허리 디스크가 거의 나았다.

운동화를 신고 다닌 덕분에 아저씨 패션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세미 아저씨 패션을 유지할수 있었다.

평일 복장과 휴일 복장의 간극이 적어져 어색하지 않게 입고 데이트를 갈 수 있게 되었다.

아이고 운동화 고맙습니다. 님 덕분에 제가 여러가지 이득을 보았습니다.



내가 가장 애용하는 것은 역시 나이키,

세상엔 아디다스니 푸마니 하는 여럿 훌륭하신 운동화 메이커가 많은데 왜 굳이 나이키냐고 한다면

역시 다른 메이커보다 첫 인상이 덜 예뻐보인다는 점일까. 회사에도 신고 가야하기 때문에 일부러 수수하고

운동화같지 않은 디자인의 운동화를 샀는데 그게 나이키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능성에 온 힘을 기울여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있다! 그렇다! 외모가 뛰어나지 못한 가수는

저절로 노래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예쁜 신발도 충분히 있고 첫인상은 별로일지 몰라도 신으면 신을 수록 자연스럽게 맛이 우러나오는 디자인이 많습니다.

(하지만 운동화는 수명이 1~3년이죠. 우러나올 시간이 없죠.)



대략 분기나 반기에 한 번 나이키의 온라인 쇼핑몰에 들러서 새 신발을 사는데,

학생 때 처럼 한 켤레의 운동화만 신어대서 반년 만에 하나 씩 갈아치우는건 아니고

단지 새로운 디자인과 계절에 맞는 신발을 신는게 즐겁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소소한 취미가 되었군요.

피트니스 센터가 아니면 잘 달리지도 않으면서 가볍고 푹신한 신발을 신는게 사치인 건 분명하죠.

트랙을 전력질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발을 신으면서 사무실 타일과 아스팔트 이외에는 밟지도 않죠.

하지만 나이키를 사는 걸 멈추지 못하겠습니다. 얼마전에 산 것은 커다란 에어맥스 입니다 흰색 이죠.

전에는 빨간색 루나를 샀습니다. 오늘은 어떤걸 살지 고민이에요 스탠다드한 디자인의 검은색을 살지

아니면 오랜만에 스니커를 살지. 11개나 골라놓고 하나하나 뭐가 더 나을지 생각하고 있으니

오늘은 두 켤레 쯤 사도 되지 않을까.....



좋은 신발을 신으면 발이 편해져 기분이 좋아지죠, 키가 더 커지고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많지 않은 돈으로 이 정도 만족감을 주는게 괜찮은 신발 말고 또 뭐가 있겠습니까.

결국 자주 사는 것도 아닌데 뭐, 하면서 이 작은 사치를 멈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변명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건 평온한 일상과 더불어 이렇게 벌어지는 작은 사치들이 아닐까요.

써보니까 완전히 변명이네 미안합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여기서 "못한다"라고 바로 말해버리는 타입의 사람이 싫다.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요"라는 얘길 하면서 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타입의 사람이 싫은것처럼 싫다.


사람이 빅맥도 아니고 직사광선 하에 30일 정도 두면 방치하면 변할게 틀림없는데 

람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니. 변색이나 변질 같은건 사람도 쉽게 쉽게 하는거 아닙니까? (#주: 아닙니다)


요는, 단지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이 녀석 내 입맛 대로 바뀌지 않는군 쩝. 하는 소리가 아닌가.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건 이 녀석 내 입맛 대로 행동하질 않는군 쩝. 하는 소리가 아닌가.


그 어떠한 노력이 유의미한 것이고 무의미한 것인지 내가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모두는 서로에게 완벽한 타인일 뿐이야, 라고 입밖에 내고 노력하기를 포기한 순간 모든 것은 끝이난다고 생각한다.

아니 왜 사세요!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주: 아닙니다) 태양이 팽창해서 지구를 삼켜 버릴텐데 말이죠.

나는 우리의 노력이 우리를 좀 더 인간이게 할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을 직사광선에서 30일간 방치한 적도 없고, 미지근한 물에 넣어두거나 당겨보거나 

향신료를 뿌려두거나 해본적이 없어서 사람이 정말로 변하지 않는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수 있는지 알수 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리는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고 

그런 노력이 모여서 우리의 삶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가 서로 닮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서로 같은 것을 사랑하고 비슷한 말투와 걸음걸이를 할수도 있다.

그런 사소한 것들을 모아서 우리는 희미하게나마 서로를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적어도, 우리는 같은 걸음 수로 어딘가를 향할수는 있게 될 것이다.



나는 불과 얼음의 지옥을 상상 할 수 없다.

현대인에겐 현대에 어울리는 지옥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물리적 고통이 가깝지 않다. 

굶주림조차 농담꺼리가 되는 세상인데, 천개의 바늘과 칼로 된 산 같은 건 상상력이 부족한 우리에겐 너무나 먼 이야기이다.


나는, 현대적인 의미의 지옥을 제안한다.

장소는 백화점의 지하, 이마트의 식품 매장 앞, 홍대의 메인 도로 같은 것들.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기에 딱 알맞는 그런 곳. 시간은, 아무래도 좋다 지옥이니까 오전도 오후도 어쨌든 상관없다.

단지 우리가 가장 지치고 별볼일 없어 보이는 한심한 시간대가 가장 좋다.


당신은 거기서 누군가를 만난다. 누가 좋을까. 동경하던 사람? 오래전에 헤어졌던 아버지? 헤어진 연인?

누구라도 상관없다. 당신의 인생을 뒤흔들만한 그런 중요한 사람. 당신의 인생에 단 한 명밖에 없는 사람.

중요한 것은 아주 우연히 마주쳐야 한다. 꿈에라도 보고 싶었던 사람을 꿈에서도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우연히.


당신은 당연히 바보같은 실수를 한다. 입을 떼지 못하고. 손은 덜덜 떨리고. 다리는 힘이 빠져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나머지. 수만 번을 연습한 하고 싶던 말을 하지 못한다.

넋이 빠져 당신은 기어가다 시피 그곳을 도망쳐 어딘가의 의자에(혹은 길바닥에) 그대로 주저 앉아.

그대로 지옥에 떨어진다. 실망하던 그 사람의 얼굴 표정을 떠올렸다.


그렇게 방금 전의 상황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런 얘기를 했었어야 했는데.

나는 당신에게 미안하다고, 또는 고맙다고, 당신을 영원히 저주 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끊임없이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다른 경우를 생각하고. 내가 잘 해냈을 경우 일어났을 수많은 경우의 수를 나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우리에게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가느다란 거미줄 조차 우리에겐 허락되지 않는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현대적인 지옥이다.

나는 집을 샀다. 정확히는 2년 후에 지어질 집의 계약을 했다.

34평짜리 아파트고 4층에 1년 후에 집에서 가까운 곳에 신분당선이 지나가는 좋은 입지다.

지금도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통합 버스 정류장이 있다. 회사의 차장님은, 니네 집 때문에 

내 단골 아구찜 집이 없어졌어 하고 말했다. 

그거 말고 아직 내가 산 집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가끔 생각이 나면 혼자 가서 찍은 모델 하우스의 사진을 보거나 평면도를 쳐다 보거나 한다. 

곧 팔아버릴 집이란 걸 - 내가 여기서 살 일은 없을텐데 - 알면서도.


갑자기 집을 살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작년부터 그 동네에 아파트가 생긴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Y에게 몇번 모델 하우스가 생기면 같이 가고 싶다는 얘길 한 적도 있다. 다만, 겨울이 지나갈 때 쯤 아무 것도 생각을 할 수 없을 때 서울의 W지구에 청약 분양을 하는데 해보지 않을래? 라고 친구 L이 말 할 때 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 거기에 그런게 있었지 하고 확인해보니

바로 다음날이 청약을 신청하는 날이었다.


Y는 겨울 한가운데 쯤,나와 그만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Y와 나는 3년 반 쯤 알고 지냈지만, 나는 Y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작별인사를 들어야했다.


나는 요즘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지내고 있다. 한참을 생각해야 내가 무슨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회사의 내 자리에 앉아 W지구의 C아파트와 S지구의 E아파트에 대한 설명을 꼼꼼히 읽었다. 둘의 청약일정이 겹치기 때문에 둘 중에 하나 밖에 신청 할 수 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C의 2차 일정과 E의 일정이 겹쳤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E지구를 신청한 걸까.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


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되는게 더 웃기겠어.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돈도, 가족도 없는데 말야. 그리고 심지어 하고 싶은 것도 없어. 하고 L에게 얘기했다.

L이 뭐라고 했더라.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빠르게 잊고 만다. 모든게 믿겨지지 않는 꿈 같다.


L과 중국집에서 만두를 먹으면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L은 지방에 파견 나가있는 배우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나는 새우가 들어있는 딤섬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그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언제 내려가서 그를 만날건지. 언제 그가 서울에 다시 올라올건지에 대해서 얘길 듣고 

내가 한 말을 그거였던 것 같다. 새우가 들어가면 샤오롱바오라고 부르면 안되는거 아냐?

응? 샤우롱바오야?


청약 당첨 문자가 왔을 때는 화가 났다. S지구의 E아파트였다.

아주 당연하게 나는 지금도 S지구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W지구보다 당첨확률이 월등히 높았다.

하지만 경쟁률이 충분히 높았기 때문에, 나는 이게 운명의 장난 같은건가 하고 생각했다.

왜? 나는 돈도 가족도 없어. 하고 싶은 것도 없어. 나는 같이 하고 싶은 사람도 없어. 

나는 새우가 들어간 딤섬에 대해서나 바보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인데 말야. 나말고 더 필요한 사람이 있는거 아냐?


그거 슈마이라고 하지. 작년 내 생일에 먹었었어. 하나도 특별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새우가 들어간 딤섬을 먹었어. 그 때는 아직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너무 먼 전생 같아.

나는 15년 3월 15일 쯤 죽어서 전생의 일들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아.


계약일 쯤 되어서야. 그 전생에서 나는 가족을 갖고 싶다는 걸 기억해냈다.

인감도장이 필요했고(지금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다) 인감증명서와 계약금 4천 몇백만원이 필요했다.

나는 무이자로 중도금을 낼 것이고 17년에 잔금 1억 얼마를 내면 정말로 내 집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그 전에 누군가에게 내 집을 갖게 될 권리를 양도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한다.

왜냐하면 가족을 갖는 것은 14살때 이후로 내 유일한 꿈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이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것이란 걸 깨달은 그 날부터. 내 알량한 재능이나 장래 희망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이 가족을 갖는 것만이 내 유일한 꿈이었다.

그러니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제 꿈을 사셨네요. 

당신은 분명 가족이 있는 사람이겠죠.


계약을 마치고 모델 하우스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다.

이제 아무도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한 가족이 올라와 시끄럽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 방을 쓸거야, 여기 TV는 더 큰게 낫지 않아? 나는 원래부터 모델 하우스의 부속품이었다는 듯이 소파에 앉아 그 가족이 지나치길 기다렸다. 나는 혼자였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L은 괜찮아.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라고 말했다. 정말 그런 걸까

모델 하우스를 나오니 비가 내렸다. 나는 여전히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고 가방에 들어가있는 우산을 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주 조금 우는 척을 하고는, 후드를 뒤집어 쓰고 비가 내리는 길을 걸어갔다. 4월 13일의 일이다.







몇 년 전 내가 꽤 오랫 동안 다리를 절고 다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굳이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얘기 하지 않았지만 이년 가까이 매일 진통제를 먹었고 매일 아침 일어나 덜 아프기만을 바랐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기어가듯 일어나 화장실로 갔지만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일 수도 없었다. 앉을 수도 없었다.
화장실 바닥에 누워서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어쩌면 좋지.


이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어이없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고? 고통은 내가 살고 있는 집 바로 맞은 편에 있었다. 
다리는 어떻게 된거죠. 이런 경우도 있어요. 진통제를 강한 걸 드리겠습니다.
계속 이렇게 되나요? 아픈건 쉽게 가라앉으시지 않을거에요. 상태가 너무 심하니 조금 가라앉으면 수술을 하시죠. 수술을 하면 나아집니까. 수술만으론 나아지지 않습니다.
원래 이렇게 아픈가요. 네 원래 그렇게 아픈 겁니다.


매일 약을 먹고 일을 했다. 고집쟁이였기 때문이었다.
똑바로 걷는 연습을 했다. 좀처럼 똑바로 걸을 수가 없었다. 아팠기 때문이다.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농담을 하고 일을 하고 집에 갔다. 일과에 병원이 추가되었고 일주일에 4시간은 병원에 있어야 했다. 사실 그냥 아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 
멀리서 부터 나를 알아봤던 친구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오는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지훈아 넌 줄 몰랐어. 다리를 절어서? 응. 다친거야? 아냐, 다친거 아냐. 나 이제부터 계속 이럴수도 있으니까 익숙해져야해.
말문이 막힌 친구는, 울기 시작했다. 나를 붙잡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잘 모른다. 
누군가의 마음에 내가 흔적이라도 남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은 넓고 사람은 너무 많다. 그리고 사람의 수만큼 고통이 있다. 사람의 수보다 더 많은 고통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삶을 이해 할 수 없다. 그냥 살아간다는 말에 납득할 수도 없다.
그 형의 말 대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의미를 만들어내기라도 해야한다. 왜냐하면,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었기 떄문이다.
앞으로, 앞으로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붙잡고 욕지기를 삼켜가며.


내가 이제 다리를 절지 않는 것은, 강남대로를 절룩거리며 걸어오는 나를 보던 친구가 나를 붙잡고 펑펑 울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5년 2월 10일.


'부재증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0505] 현대적인 지옥  (0) 2015.05.05
[20150505]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0) 2015.05.05
[20140512] 샌드위치의 즐거움  (3) 2014.05.18
[20140304] 오다이바에서  (0) 2014.03.09
[20121203] 치킨증명  (0) 2012.12.03

샌드위치를 먹는 즐거움. 2014년 5월 12일.


인천에서 싱가폴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있다. 

이번 내 비행시간은 몹시 생산적이고도 효율적인 방식으로 운영됐는데, 이번 비행 동안 마왕이 찢어놓은 세계를 복구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마물을 화염마법으로 지져놓았고. 4월 17일부터 5월 12일 까지의 가계부를 정리하였고(게을러서 항상 한 꺼번에 정리한다) 아베코보를 4페이지 읽었고 옆자리 꼬마에게 눈을 흘겨주었다(나는 너보다 나이가 25살은 더 많다고 크왕). 물론 그 중간중간 체력을 보충하는 잠까지 잤으니 이렇게까지 효율적이게 시간을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업에 성공하고 싶으면 저처럼 시간을 사용하세요!


어쨌든 온갖 효율적인 일들을 다 하고 보니 뭔가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고 싶어져서 아이패드를 열었는데 별로 할일이 없다. 

(사실 닌텐도의 배터리가 다 닳았다. 왜 닌텐도는 돌리면 충전되는 미니 발전기와 발전기를 돌려줄 요정 두마리를 같이 팔지 않는 걸까)

한참이나 아이패드의 문서작성 어플을 열어놓고 뭔가를 써보려고 했는데 글은 무슨, 영어에세이 한 편을 뚝딱 쓸 기세였는데 실제론 5줄 쓰니까 더 이상 쓸 말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 정도 되면 본인의 재능을 탓해야 하지만 뻔뻔스러운 나는 '나는 배가 고픈걸까 배가 고파서 글을 쓰지 못하는거야' 하고 생각하고 있는 참에, 고맙게도 어탠던트 분들이 축축하고 끈쩍하게 늘어진 물건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그게 살아있는 붕어나 물에 적신 키친타올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크로와상에 치즈와 뭔가 이것저것을 싼 샌드위치였다. 

아 무엇을 숨기랴 나는 샌드위치를 너무나 좋아한다. 

그게 설령 랩으로 대충 싸서 안에는 습기가 차고 밖에는 마요네즈가 묻어나오는 물건이라고 해도 말이다.


샌드위치의 기본에 대해서 빵이라느니, 내용물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재료의 본질에 집착한 나머지 샌드위치라는 먹거리의 본질을 잊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도 좋은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가 좋다. 치즈는 한국의 슬라이스 치즈보다는 까망베르가 들어간 쪽을 좋아한다(그러려면 빵이 맛이 강해야지) 고기보다는 빵의 안 쪽에 버터를 발라 육류 맛이 나게 하는 편이 신나고 ...

아 미안합니다 이런 식으로 재료 얘길 꺼내면 끝이 없는데 말이지


하지만 진짜 기본은 샌드위치를 먹을 때는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맛있는 먹거리는 다 먹을 수 있었던 샌드위치 백작 나으리가 샌드위치를 찾은 것은 바로 져서는 안되는 카드 게임 때문이었고 분명 김혜수를 닮은 미녀가 옆 테이블에서 고혹적인 눈으로 '백작님이 이번 게임을 이기면 오늘 저 흐트러질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있었을 것이고 12게임 연속으로 꽝카드만 나와서 이제야 말로 풀하우스 정도는 한 번 나오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 오고 있는 그런 때였을 것이다. 맙소사 절대로 자리를 뜨지 않을꺼야. 야 집사! 빵이든 뭐든 아무거나 가져와! 네? 빵에다가 내가 좋아하는 소화 잘 되는 고기라도 껴서 가져오라고! 넵! 우오 샌드위치 먹는다 고기랑 빵 먹는다! 우오오!! 하고 먹었을 것이다. 굿럭 샌드위치, 당신은 멋진 남자였을게 틀림없을거에요.


샌드위치를 맛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것을 먹는 상황이다. 당신이 맛없고 비싼 부페에서 연어 샌드위치를 찾아 접시에 놓든, 여름의 낯선 거리를 헤매다 돌로 만들어진 계단에서 계란 샌드위치의 포장을 풀든. 

샌드위치의 본질은 바로 애타는 그 상황에 있고 그 음식을 먹어야만 하는 그 상황이 당신을 샌드위치 적인 공간에 밀어넣는다. 당신이 여자친구와 있든, 여자친구에게 차였든, 여자친구가 될 사람 앞에 있든지 간에 샌드위치와 당신 밖에 없는 그 고독한 공간은 우리에게 흔치않은 성찰의 기회를 준다.


그럼 이제 샌드위치의 포장을 풀자. 갓 만들어진 거라면 모를까, 만든지 조금 된 샌드위치라면 포장지에 분명 소스가 잔뜩 묻어있을 것이다. 손가락에 묻지 않도록 조심조심 포장을 풀자. 어차피 소스가 손가락에 묻어 범벅이 되겠지만 빵을 만질때 까지 소스를 묻히는 것은 참아보자. 포장을 다 풀면 샌드위치를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네가 바로 오늘의 샌드위치구나. 네 빵이 치아바타건 크로와상이건 상관없다.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하고 말해주자.

그리고 양손으로 샌드위치를 잡아라. 당신은 배가 고프고 이 신성한 먹거리는 몇시간 동안 당신을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손으로 잡지 말자, 두 손으로 잡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샌드위치라면 경건하게 떨리는 손으로 잡아주자) 준비가 되었으면 크게 한입 물자. 눈을 감고 물어야 하는지 뜨고 물어야 하는지 물어보지 말고 크게 한 입 물어서 빵과 삐져나온 내용물과 소스를 맛보자. 빵은 이빨에서 입술로, 입가로 번져가고 소스는 어느새 혀에 닿아 내용물과 섞이기 시작한다. 코에 기름기가 묻고 손가락에 빵가루가 묻었다.


알고 있다, 생각보다 맛이 없지. 샌드위치는 항상 그렇다. 당신이 원하는 만큼 맛있을수도 없고 이걸 따로따로 먹는 편이 훨씬 맛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정신을 차리기 전에 입안에 든 샌드위치를 삼켜라. 두번째 한입은 분명 첫번째 한입 보다 맛있을 것이다. 인생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말이지.


샌드위치를 다 먹는 동안 그만 비행기가 착륙할 때가 되었다. 글은 언제 쓰지?

에라 모르겠다. 다음 샌드위치를 먹을 때 쓸수 있겠지. 항상 그런것 처럼 말야.

'부재증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0505]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0) 2015.05.05
[20150210] 다리를 절지 않는 이유  (0) 2015.02.10
[20140304] 오다이바에서  (0) 2014.03.09
[20121203] 치킨증명  (0) 2012.12.03
[20120320] 일과증명  (1) 2012.03.20
2014년 3월 4일 오전 10시, 도쿄 오다이바 빅사이트

어제 누군가가 나에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수필로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네가 정말 느끼고 있는게 뭔지 생각하고 있는게 뭔지 적어보면 상처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내 경험상, 나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전부 드러내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언제부터 내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철이 들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증오하게 될 무렵에는 이미 내 모든 글이 얼굴을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지기 위해,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쓰는 글이 되어 있었다. 일부러 읽을 수 있는 곳에 일기장을 두었다. 노트의 구석에 사랑한다는 말을 써서 당신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읽었을까? 나의 마음을 알았을까? 내 글을 읽고 어서 달려와 내 사랑을 깨닫고 나를 안아주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여지는 것에 가련할 정도로 신경을 기울이는 빈약한 자아로 쓰는 글이 얼마나 훌륭할지는...알수가 없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글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거기엔 진실이 아니라 가식이, 애정이 아니라 공포가, 삶이 아니라 애처로운 자기 변명만이 가득할 텐데 말이다.

그래도 글을 쓰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는 글을 쓰는 것 외에 나 자신의 조각이나마 구원하는 방법을 찾을수 없다. 
거짓말로 가득차 있는 내 인생에 흔적이나마 진실을 남기자. 
그것이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정당한 운명임을 받아들이도록 하자.
그렇게 누군가를 부르는 내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닿을 수 있다면.




'부재증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0210] 다리를 절지 않는 이유  (0) 2015.02.10
[20140512] 샌드위치의 즐거움  (3) 2014.05.18
[20121203] 치킨증명  (0) 2012.12.03
[20120320] 일과증명  (1) 2012.03.20
[20120111] 겨울증명  (0) 2012.01.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