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4일 오전 10시, 도쿄 오다이바 빅사이트

어제 누군가가 나에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수필로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네가 정말 느끼고 있는게 뭔지 생각하고 있는게 뭔지 적어보면 상처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내 경험상, 나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전부 드러내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언제부터 내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철이 들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증오하게 될 무렵에는 이미 내 모든 글이 얼굴을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지기 위해,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쓰는 글이 되어 있었다. 일부러 읽을 수 있는 곳에 일기장을 두었다. 노트의 구석에 사랑한다는 말을 써서 당신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읽었을까? 나의 마음을 알았을까? 내 글을 읽고 어서 달려와 내 사랑을 깨닫고 나를 안아주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여지는 것에 가련할 정도로 신경을 기울이는 빈약한 자아로 쓰는 글이 얼마나 훌륭할지는...알수가 없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글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거기엔 진실이 아니라 가식이, 애정이 아니라 공포가, 삶이 아니라 애처로운 자기 변명만이 가득할 텐데 말이다.

그래도 글을 쓰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는 글을 쓰는 것 외에 나 자신의 조각이나마 구원하는 방법을 찾을수 없다. 
거짓말로 가득차 있는 내 인생에 흔적이나마 진실을 남기자. 
그것이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정당한 운명임을 받아들이도록 하자.
그렇게 누군가를 부르는 내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닿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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