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내가 꽤 오랫 동안 다리를 절고 다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굳이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얘기 하지 않았지만 이년 가까이 매일 진통제를 먹었고 매일 아침 일어나 덜 아프기만을 바랐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기어가듯 일어나 화장실로 갔지만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일 수도 없었다. 앉을 수도 없었다.
화장실 바닥에 누워서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어쩌면 좋지.


이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어이없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고? 고통은 내가 살고 있는 집 바로 맞은 편에 있었다. 
다리는 어떻게 된거죠. 이런 경우도 있어요. 진통제를 강한 걸 드리겠습니다.
계속 이렇게 되나요? 아픈건 쉽게 가라앉으시지 않을거에요. 상태가 너무 심하니 조금 가라앉으면 수술을 하시죠. 수술을 하면 나아집니까. 수술만으론 나아지지 않습니다.
원래 이렇게 아픈가요. 네 원래 그렇게 아픈 겁니다.


매일 약을 먹고 일을 했다. 고집쟁이였기 때문이었다.
똑바로 걷는 연습을 했다. 좀처럼 똑바로 걸을 수가 없었다. 아팠기 때문이다.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농담을 하고 일을 하고 집에 갔다. 일과에 병원이 추가되었고 일주일에 4시간은 병원에 있어야 했다. 사실 그냥 아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 
멀리서 부터 나를 알아봤던 친구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오는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지훈아 넌 줄 몰랐어. 다리를 절어서? 응. 다친거야? 아냐, 다친거 아냐. 나 이제부터 계속 이럴수도 있으니까 익숙해져야해.
말문이 막힌 친구는, 울기 시작했다. 나를 붙잡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잘 모른다. 
누군가의 마음에 내가 흔적이라도 남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은 넓고 사람은 너무 많다. 그리고 사람의 수만큼 고통이 있다. 사람의 수보다 더 많은 고통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삶을 이해 할 수 없다. 그냥 살아간다는 말에 납득할 수도 없다.
그 형의 말 대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의미를 만들어내기라도 해야한다. 왜냐하면,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었기 떄문이다.
앞으로, 앞으로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붙잡고 욕지기를 삼켜가며.


내가 이제 다리를 절지 않는 것은, 강남대로를 절룩거리며 걸어오는 나를 보던 친구가 나를 붙잡고 펑펑 울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5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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