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신사: 닭이 싫은 한국인.


깐부치킨 순살크리스피를 사서 전철을 타니, 엄청난 냄새가 퍼져나갔다.

인내심이 없는 학생 몇명이 입을 모아 "치킨냄새"라고 외치면서 탐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누군가는 입을 열고, 누군가는 입을 다물고 쳐다보지만 모두들 끈쩍끈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팬티 라인이 비치는 흰 바지를 입고 전철에 탄 아가씨가 된 기분이다. 그만둬 내 엉덩이야 그만 쳐다봐.


어쩌다 이런 냄새나는 음식을 가지고 전철을 타게 되었느냐면, 그냥 일요일 오후에 뭔가 먹을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치킨을 먹으려고 했을 뿐이다. 평소에는 굽네치킨을 시켜먹지만 여자친구가 사줬던 깐부치킨이 맘에 들어서 그걸 먹으려고 했을 뿐이다. 우리 동네에는 매장이 없는 데다가 보통 배달도 안해준다고 해서 가장 가까운 매장으로 가지러 갔을 뿐이다.

그게 지하철로 4정거장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다. 막상 사러 갈 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의지에 가득찬 원정이었구나.


솔직히 나는 치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한국 "치킨"요리가. 식감은 퍽퍽하고 고기는 빈약하다. 냄새는 역하고 튀기는 기술은 형편없으니 아무리 맥주랑 같이 먹는다고 해도 굳이 이런걸 먹어야 할 이유를 못 느낀다. 


물론 바야흐로 시대는 치킨의 시대라 내 초등학교 때 부터 멕시칸-페리카나-장모님으로 이어진 양념통닭라인 부터 안동찜닭의 시대. 치킨의 부활 교촌치킨. 오븐의 혁명 굽네치킨 그리고 현재의 닭한마리, 닭강정 열풍까지 한국인으로서 치킨에서 벗어나 살긴 힘들다. 프랑스의 근대 생활혁명의 모토가 가정에 닭을, 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고봉밥에 야채나 올려먹던 한국인의 식생활은 개선이 되어도 너무 되었다. 원래부터 학생에겐 치킨, 직장인에겐 삼겹살. 이었던 외식의 밸런스가 어느 때 부터인가 학생에겐 치킨, 직장인에겐 치맥이 되어버린 지도 오래다.


다시 말해 치킨요리의 가장 중요한 원료인 닭(미안합니다 당연한 얘길 해서)이 수요과잉이란 점. 결국 이런 폭발적인 수요를 충당시키기 위해서 공장에서는 엄청난 양의 닭을 찍어내며 각종 영양제와 항생제를 먹인다. 운동은 커녕 산책도 한 적 없이 수많은 형제들과 꼬꼬댁거리다가 어린 나이에 뽑혀져 나오는 닭고기들이 맛이 있을리가 없다. 그런 닭 중에서 저품질의 닭은 당연히 원가압박이 심한 군부대나 학교로 납품이 될 것이고. 학생시절과 군인시절. 나는 그런 맛없는 닭을 먹으면서 헛구역질을 해댔다. 물론 옆의 전우들과 학우들은 닭마시쩡마시쩡! 이러면서 잘도 먹더만.


그래서 평소에 닭이라도 먹으러 가자고 하면, 이런 맛없는 걸 왜 먹어 라며 투덜거리는 나도. 어쩔수 없이 닭이 먹고 싶은 때가 있다. 결국 이렇게 수도사 복장 안에 터질 듯한 엉덩이를 감춘 흰 바지의 아가씨 같은 꼬락서니를 하고(그만해) 닭을 사러 나서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는 시간만 해도 왕복 24분. 집에서 역까지 왕복 20분. 가산 디지털 단지 역에서 깐부치킨 매장을 찾는데 10분(맙소사 지하에 있었어). 합계 54분이다. 뭔가를 먹으러 가는 것치고는 꽤 의욕을 부린 셈이다.

과연 이 치킨은 맛이 있을까? 여자친구는 집에서 치킨을 시켜서 이미 치킨이 도착했다는데. 나는 왜 이 추운 겨울에 코트에 냄새가 배도록 치킨을 껴안고 있는 것일까.


어서, 어서 먹자 치킨. 입가에서 침이 흐른다. 눈이 빨갛게 되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 신이시여 우리들의 이 더럽혀진 영혼을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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